• 최종편집 2026-01-22(목)

고신 전국여전도회연합회, 제26회 신앙부흥집회 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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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전국여전도회연합회, 제26회 신앙부흥집회 개회

예장(고신) 전국여전도회연합회(회장 임명애 권사)가 지난 1월 20일(화) 오후 1시, 경남 창녕군 장마면에 위치한 전국여전도회 회관에서 제26회 신앙부흥집회를 개회하고, 말씀과 기도로 새해 영적 부흥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만남의 축복, 형통의 길’(출2:1-6)을 주제로 열린 이번 집회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여전도회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예배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개회예배는 임명애 회장(전국여전도회연합회)의 사회로 드려졌으며, 김연옥 회장(부산남부여전도회연합회)의 대표기도에 이어 김향숙 사무차장(부산남부여전도회연합회)이 성경봉독을 맡았다. 본문은 출애굽기 2장 1–6절 말씀이었다. 이날 설교는 강사로 초청한 고신 부총회장 김문훈 목사(포도원교회)가 “하나님의 구원역사”라는 제목으로 전했다. 김문훈 목사는 설교에서 출애굽기 본문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가 한 가정, 한 생명의 탄생에서 시작되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수백 년 동안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한 레위 가정의 결혼과 출산이라는 평범한 사건을 통해 시작됐다”며, “기도는 길어도 하나님의 응답은 반드시 때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모세의 탄생을 중심으로, 김 목사는 구원 역사 속에서 어머니의 역할과 여성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여자는 약해 보여도 어머니는 강하다”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믿음의 여인들을 통해 이어져 왔다”고 전했다. 이어 “모세는 왕궁이 아닌 억압의 시대,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믿음과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보호받았다”며, “오늘날 교회와 다음 세대 또한 여전도회원들의 기도와 눈물 위에 세워지고 있다”고 권면했다. 김 목사는 또한 성경에 나타난 여러 여성 신앙인의 사례를 언급하며, “하나님의 구원사는 눈에 띄는 영웅이 아니라, 말씀을 품고 기다리는 신실한 믿음을 통해 전진한다”고 강조했다. 설교 후에는 헌금기도와 함께 헌금하고 권준오 지도목사의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쳤다. 예배 후에는 참석자 전원이 함께 기념촬영을 진행했다. 한편 제26회 신앙부흥집회는 첫날 특강과 저녁예배, 둘째 날 새벽기도회와 폐회예배까지 이어지며, 전국 여전도회원들이 말씀과 기도로 다시 한 번 사명을 새기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경남마산노회 교연, 신년 교사부흥회

예장(고신) 경남마산노회 교회학교연합회는 2026년 1월 18일(주일)부터 20일(화)까지 마산제일교회에서 ‘2026년 신년교사부흥회’를 열고, 새해 교사 사역의 방향을 말씀 앞에 재정렬하는 시간을 가졌다. “Basket Maker”라는 주제로 열린 집회는 18일 오후 4시와 19-20일 오후 7시 30분에 진행됐으며, 강사로는 이종화 목사(세움교회)가 1·2일차 말씀을 전하고, 허진열 목사(브니엘교회 다음세대 총괄)가 3일차 말씀을 맡았다. 1일차에 말씀을 전한 이종화 목사는 “Basket maker”(출2:1-10)란 제목으로, 교회와 다음세대를 세우는 사역이 결국 복음 위에 사람을 ‘세워 가는 일’임을 강조하며, 교사가 아이들을 붙드는 일은 기술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내리게 하는 목회적 돌봄이라고 권면했다. 이 목사는 교사의 수고가 눈에 덜 띄어도, 복음의 토대가 흔들리지 않게 붙드는 손길이야말로 공동체의 미래를 지탱하는 힘임을 환기했다. 2일차에는 “기독교 아비투스”(잠22:6)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이종화 목사는 “예수님을 믿으면 ‘잘 죽는 은혜’뿐 아니라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잘 사는 은혜(being·well doing)’가 있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을 제일 잘 사는 방법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잠 22:6을 붙들고, 신앙교육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삶의 습관과 분위기, 가치관이 몸에 배는 ‘형성’의 교육으로 풀어냈다. 이 목사는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개념을 인용해 아비투스를 가치관·취향·행동방식·분위기·습관으로 설명하고, “교회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 환경은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아비투스’”라고 강조했다. 또한 ‘품격을 만드는 자본’을 심리·문화·지식·경제·신체·언어·사회 자본으로 소개하며, 교회 공동체가 다음세대 교육을 감당하기에 결코 빈약한 집단이 아님을 짚었다. 이 목사는 교회가 반복적으로 길러야 할 기독교적 습관의 핵심을 자족, 환대, 구제, 축복과 비전, 개혁과 희생, 연합으로 제시했다. 그는 자족을 실천하는 대표적 습관으로 감사와 식사기도를 들고, 환대는 아이들을 ‘관리’하기 전에 ‘기쁨으로 맞이하는 태도’라고 했다. 또한 구제는 교회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문화 중 하나라며, “예수 잘 믿는다는 말보다, 구제와 나눔으로 삶이 달라진 모습이 다음세대에게 더 선명한 신앙교육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에 대해서는 합심기도의 실제 사례를 들며,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부르짖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생명을 붙드시는 은혜를 나눴다. 3일차 허진열 목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막2:1-12)을 제목으로,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려간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다음세대 사역의 본질을 되짚었다. 그는 교회의 역할이 결국 아이들을 예수께 ‘데려가는 것’이며, 한 사람의 회복을 위해 지붕을 뜯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처럼 교사와 공동체가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돌봄·헌신의 실제를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학교연합회는 이번 부흥회를 통해 교사들이 새해 사역을 ‘프로그램’이 아니라 복음의 습관과 공동체의 문화로 재정비하고, 각 교회학교 현장에서 아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품는 교육이 확장되기를 소망했다.

경남노회, 2026 신년감사예배 및 하례회 열어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경남노회(노회장 신종주 장로)는 지난 1월 14일(수) 오전 11시, 경남노회 회관 예배실에서 ‘2026 신년감사예배 및 하례회’를 개최하고, 하나님께 새해의 첫 시간을 올려 드리며 노회와 지교회의 연합과 사명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신년감사예배는 부노회장 이창교 목사의 인도로 드려졌으며, 부노회장 구석영 장로의 기도와 회록서기 정재철 목사의 성경봉독(마가복음 1:35-39)에 이어 말씀이 선포됐다. 특송은 경남노회장로회 중창단이 맡아 예배의 은혜를 더했다. 이날 설교는 전노회장 이종삼 목사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님 일어나 나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 목사는 예수께서 밤늦도록 사역하신 뒤에도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신 장면을 언급하며, “목회의 출발은 기도이며,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삶 속에서만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도가 없는 교회는 부흥을 기대할 수 없다”며, 목회자와 교회가 새해에도 기도와 전도의 열정을 잃지 말 것을 권면했다. 설교 후에는 특별기도 순서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부서기 양동휘 목사가, 경남노회와 산하 지교회를 위하여 부회록서기 임융식 목사가 각각 기도했으며, 직전노회장 이상현 목사의 축도로 신년감사예배를 마쳤다. 이어진 하례회는 부회계 최문욱 장로의 사회로 진행됐다. 신년 영상 시청과 참석자들의 신년 인사 후, 노회장 신종주 장로가 신년사를 전했다. 신 장로는 “용서 없이는 사랑이 시작될 수 없다”며, “새해에는 용서와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는 노회가 되자”고 당부했다. 전노회장 박태부 목사는 신년 덕담을 통해 새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믿음 안에서 건강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축복했다. 이후 하례 인사와 케이크 커팅, 기념촬영이 이어졌고, 서기 권영국 목사의 광고와 전노회장 이상근 목사의 오찬기도 후 참석자들은 오찬과 교제의 시간을 나누며 새해 인사를 나눴다. 경남노회는 이번 신년감사예배와 하례회를 통해 ‘용서, 사랑의 시작입니다’라는 주제 아래, 노회와 지교회가 한마음으로 새해 사명을 감당할 것을 다짐하며 2026년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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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군기독교연합회, 제41차 정기총회 개최

의령군기독교연합회(회장 김길훈 목사, 이하 의령기연)는 1월 22일(목) 오전 11시, 의령군 부림교회(류계성 목사)에서 ‘제41차 정기총회’를 열고, 지난 한 해 사역을 돌아보며 새해 연합 사역의 방향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정기총회에 앞서 드려진 개회예배는 의령기연 수석부회장 류계성 목사(부림교회)의 인도로 시작해 회장 김길훈 목사(의령침례교회)가 “새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사43:18-21)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김길훈 목사는 설교에서 “성경이 말하는 ‘새 일’은 새로운 제도나 환경의 변화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는 말씀은 과거를 부정하라는 뜻이 아니라, 패배와 상실의 기억에 사로잡힌 방식에서 벗어나라는 하나님의 요청”이라며, 포로기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영적 상태를 설명했다. 이어 “교회 역시 쇠퇴와 비판, 다음 세대 이탈이라는 현실 앞에서 패배자의 기억에 머물기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부르셨는지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고 권면했다. 김 목사는 “우리는 실패자나 버림받은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지음 받은 백성’”이라며, 새 일의 출발점은 사역이나 전략이 아니라 정체성 회복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김길훈 목사는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강을 내신 목적은 삶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백성으로 회복시키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와 연합회는 문제 해결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공동체”라며, “지역 교회를 섬기는 연합회의 사명 역시 조직 확대나 사업이 아니라 예배 회복에 있다”고 말했다. 설교를 마치며 김 목사는 “하나님이 새 일을 시작하실 때 먼저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며 “기억의 방향을 새롭게 하시고, 정체성을 회복시키시며, 예배자로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의 새 일이 의령 지역 교회 가운데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축원했다. 개회예배 후 이어진 정기총회 회무에서는 회원 점명과 회순 채택, 전 회의록 낭독, 사업·감사·회계 보고가 진행됐으며, 일부 회칙 수정안에 대한 논의와 임원 개선이 이뤄졌다. 또한 교회 가입과 관련한 신안건은 충분한 논의 끝에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임원개선에서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류계성 목사는 인사를 통해 “부족한 사람이 중책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올 한 해의 키워드는 ‘소통’”이라고 밝혔다. 류 목사는 “하나님과의 소통, 임원들과의 소통, 회원 교회들과의 소통을 통해 연합회의 본래 목적과 사명을 함께 감당해 가겠다”고 다짐했다. 의령군기독교연합회는 이번 정기총회를 통해 예배와 정체성 회복을 중심에 둔 연합 사역의 방향을 재확인하며, 새해에도 지역 교회 연합과 복음 사역에 힘써 나갈 것을 다짐했다.

창원기총, 2026 신년하례 및 사랑의 쌀 전달식 개최

창원특례시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병권 목사, 이하 창원기총)는 1월 16일(금) 오전 11시, 창원산성교회(이채웅 목사)에서 ‘2026년 제14회기 신년하례 및 사랑의 쌀 전달식’을 개최하고, 새해를 말씀과 기도로 출발하며 지역사회 섬김의 사명을 다짐했다. 행사는 1부 신년감사예배로 시작됐다. 예배는 창원기총 대표회장 이병권 목사(복음교회)의 인도로 드려졌으며, 수석부회장 배성현 목사(서머나교회)가 대표기도를 맡았다. 성경봉독은 마태복음 5장 13-16절 말씀을 서기 박해섭 목사(창원은광교회)가 봉독하고 경남장로합창단(단장 박명도 장로)가 아름다운 하모니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이날 설교는 허성동 목사(제일문창교회 은퇴)가 “재능보다 덕이 앞선다”라는 제목으로 전했다. 허성동 목사는 재주와 덕의 관계를 설명하며, “덕이 없는 재주는 사람과 공동체를 세우지 못한다”며 교회 지도자들에게 재능보다 인격과 덕이 앞서는 삶을 강조했다. 특히 성령 충만을 통해 재능과 덕이 함께 세워질 때 지도자는 ‘영적 군자’로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권면했다. 이어 특별기도 시간에는 다같이 합심하여 통성기도 후 △한반도 평화와 국가지도자를 위하여(실무부회장 황규종 장로, 신촌교회) △창원특례시장과 지역 기관장을 위하여(진해기연 회장 정용기 목사, 하늘샘교회) △창원 지역 교회 부흥과 학원복음화를 위하여(창기장총 회장 신이철 장로, 동창원한빛교회) 각각 기도했다. 직전대표회장 남일우 목사(선한열매교회)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2부 신년하례식에서는 실무부회장 양동휘 목사(진해성광교회)의 사회로 순서가 이어졌다. 환영사에서 이병권 목사는 “2026년 한 해가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를 받는 해가 되기를 바라며, 그 은혜가 머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웃과 사회에 덕을 끼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축사는 제종남 마산회원구청장이 전했으며, 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김영암 목사(경화교회)의 격려사 후 특송 순서가 이어졌다. 이후 내빈소개와 함께 케이크 커팅을 진행하며 신년의 출발을 함께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 말미에는 3부 사랑의 쌀 전달식이 진행됐다. 창원기총은 2009년부터 이어온 사랑의 쌀 나누기 사역을 올해도 계속 이어가며, 올 해도 쌀 10Kg 1천 포를 지역 내 차상위계층 가정을 대상으로 쌀을 전달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다. 이번 신년하례회는 창원 지역 교회 지도자들이 말씀과 기도로 새해를 시작하며, 재능보다 덕이 앞서는 신앙과 지역사회를 향한 섬김의 사명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기획-선교보고] 빗줄기도 막지 못한 복음의 행진, "다음 세대, 세계를 품다"

지난 2015년, 다음 세대를 향한 작은 씨앗 하나가 필리핀 땅에 심겼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26년 1월, 그 씨앗은 울창한 숲이 되어 한국과 필리핀의 청소년들을 '형제'로 묶어내고 있었다. 경남노회 남선교회 연합회(회장 전병태 장로)가 주관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제8차 단기선교 영어캠프'가 지난 1월 4일부터 1월 16일까지 12박 13일간의 일정으로 필리핀 퀘존주 룩반기독학교(Lucban Christian School)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이번 캠프에는 남선교회 회원 9명과 인솔 교사 1명, 꿈을 품은 11명의 학생 등 총 21명이 참가해 믿음의 여정을 함께했다. 이번에는 특별히 노회장 신종주 장로님과 함께하였고, 남선교회 회원들은 1월8일 귀국하기까지 4박 5일간의 짧은 단기선교이지만 은혜롭고 강렬했다. 12년의 뚝심, "오직 다음 세대를 위하여" 이번 선교 캠프는 단순한 해외여행이 아니다. 경남노회 남선교회가 '친선체육대회'와 '선교대회'를 통해 모은 기금으로 학생들의 항공료와 인솔교사는 전액 지원하는, 그야말로 '사랑의 결정체'다. 특히 2023년에는 룩반기독학교 학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며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당시 한국을 다녀갔던 현지 학생들이 이제는 어엿한 시니어 고등학생(한국 고2에 해당)이 되어, 이번 8차 방문단을 뜨겁게 맞이했다. 이는 일방적인 지원을 넘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교류하는 진정한 '양방향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Day 1~2: 역사의 현장에서 선교의 현장으로 지난 1월 4일 주일 저녁, 김해공항을 출발한 선교팀은 5일 새벽 마닐라에 도착하며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했다. 톤톤(Tonton) 교장 목사의 환대 속에 시작된 이튿날은 마닐라의 역사 탐방으로 문을 열었다. 스페인 통치 400년의 흔적과 호세 리잘(Jose Rizal)의 독립 투혼이 서린 리잘 공원, 그리고 2차 대전의 상흔이 남은 유적지를 돌아보며 참가 학생들은 필리핀의 아픈 역사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했다. 이 과정에서 전병태 회장이 과학박물관 투명 유리문에 부딪히는 '열정적인(?)' 해프닝이 있었으나,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웃음으로 넘기며 여정의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오후 6시, 룩반기독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드려진 무사도착 감사예배는 감동 그 자체였다. 특히 학생들은 현지 가정으로 흩어져 2인 1조로 홈스테이를 시작했다. 낯선 문화, 낯선 언어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글로벌 리더'의 새싹이 보였다. Day 3: "우리는 하나입니다" 뜨거운 환영식 1월 6일, 룩반기독학교 교정은 200여 명 재학생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본회가 증축하여 기증한 4층 대강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은 양국의 국기가 나란히 게양된 가운데 엄숙하고도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전병태 회장과 신종주 노회장의 특별 메시지는 학생들에게 비전을 심어주었고, 이선우 안수집사가 전달한 장학금은 현지 학생들의 학구열에 불을 지폈다. 이날 오후, 비록 우천으로 인해 'Mother's Wonder Land(마더스 원더랜드)' 방문은 무산됐지만, 아름다운 정원에서의 힐링 타임은 빡빡한 일정 속 쉼표가 되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룩반 시청을 방문하여 새로 이전 건축한 시청 내부 여러 사무실을 둘러보고 끝으로 시장을 접견하였다. Day 4: 빗속을 뚫고 울려 퍼진 "바이블 데이"의 함성 이번 선교 여행의 백미는 단연 1월 7일 'Bible Day(성경의 날)' 퍼레이드였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행사가 취소될까 우려했지만, 복음을 향한 열정을 식힐 수는 없었다. 성경의 날 퍼레이드 행사 전에 특별한 '준공식'도 있었다. 지난 해 태풍으로 룩반기독학교 채플실 지붕이 파손되어 누수가 심각하다는 소식을 접한 남선교회는, 지체 없이 약 800만 원의 긴급 복구비를 지원했었다. 말끔하게 리모델링된 채플실에서 개최된 테이프 커팅식은 단순한 건물의 복구를 넘어, 아이들의 영적 보금자리를 지켜냈다는 안도감과 감사가 교차하는 자리였다. 이어서 룩반기독학교에서 시내를 지나 행사장까지 거리 퍼레이드가 진행 되었다. 선두에 경찰차의 에스코트와 함께 제복을 입은 현지 학생들의 밴드가 웅장한 연주를 시작하자, 빗줄기는 오히려 축복의 단비처럼 느껴졌다. 멈추어 선 여러 차량과 시민들은 손을 흔들며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후에 실내 행사는 5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하이라이트는 한국 학생들의 무대였다. 낯선 땅에서 갈고닦은 기타, 드럼, 신디사이저 연주와 합창이 울려 퍼지자 현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찬양'으로 하나 된 순간이었다. 성경의 날 행사를 모두 마치고 룩반 시내 투어로 필리핀의 성지순례로 유명한 ‘카마이 니 히수스(Kamay Ni Hisus)'에서 노아 방주와 아주 큰 예수상도 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일정의 마지막 만찬은 특별했다. 한국에서 10년간 일하고 돌아온 현지인이 운영하는 '무한리필 삼겹살' 식당. 비록 된장찌개는 없었지만, 한국의 맛을 재현하려는 현지 사장님의 정성과 'K-푸드'를 사랑하는 현지인들의 북적임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한류를 체험했다. Day 5: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기에" 1월 8일, 4박 5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남선교회 회원들을 배웅하는 자리는 아쉬움과 기약으로 가득 찼다. 톤톤 목사님의 환송 예배 후에 목사님 사모와 아들 소리엘 군이 공항까지 배웅해주었다. 아들 소리엘에게 알고 있는 한국어를 물으니 “감사합니다” 말 밖에는 아는 말이 없었다. 앞으로 소리엘에게 화상통화로 한국어를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헤어졌다. 단기선교팀 학생들을 필리핀에 남겨두고 우리 남선교회 회원만 오후3시경 마닐라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오후7시30분경에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전병태 회장의 가족들이 준비한 환영 플래카드로 반가이 우리를 맞아 주었고, 그리고 1차 선교의 주역 김종욱 장로와 3차 선교를 이끌었던 배병호 장로의 마중은 '선교의 바통 터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1차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대 회장님들의 헌신과 기도가 있었기에 오늘의 8차가 있었고, 앞으로 9차, 10차의 미래가 이어질 것이다. 경남노회 남선교회 연합회의 이 아름다운 선교사역은 앞으로 격년제 상호 방문(한국 학생 파송 ↔ 필리핀 학생 초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양국 간에 다음 세대 모두를 '글로벌 크리스천 리더'로 세우기 위한 거룩한 행진에 경남노회 산하 많은 교회의 더 많은 관심과 기도가 필요한 때다. <자료제공=경남노회 남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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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배우 안성기가 남긴 ‘세상에 필요한건 착한사람’

1994년 개봉되었던 베트남 전쟁사 이야기 ‘하얀전쟁’은 한국 사회에 큰 화두를 던졌다.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 남은 베트남전쟁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많이 참전했다. 전쟁이 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그 속에 응어리로 남는 비극이 바로 전쟁의 트라우마다. 적을 죽여야 하는 전쟁의 사명 뒤에 인간의 순수 심성이 양심을 괴롭힐 때가 많다. 그 큰 응어리는 전쟁을 치르고 나면 남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역사 속에 전쟁 없이 살아온 인류사는 없다. 영화 하얀전쟁의 이야기는 적을 죽이는 전장에서 겪는 사람의 양심과 선한 심성에서 겪는 괴로움이 쉬 가시지 않음을 보여준다. 국민배우 고 안성기가 주연으로 이야기를 그려냈다. 사람은 누구나 착한 심성이 있지만 배우 안성기는 아역 배우에서부터 70평생 수많은 작품을 쏟아내면서 착한 심성의 캐릭터를 잃지 않았다. 국민들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나고 나니 안성기의 심성을 남기는 어록(語錄)이 회자되고 있다. 아들이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편지 속에 “아들 다빈아,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필요하단다”라는 말이 담겨 있다. 아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의 말이지만, 세상을 떠난 후 안성기가 남긴 말이 큰 울림이 되면서 특히 오늘의 세상을 가르치고 있다. 세상이 날로 악해지고 범죄 문화가 선함을 덮어가는 세상이 되고 있다. 급속한 발전의 뒷면에서 겪는 영악(獰惡)의 극치가 슬픈 현실로 자리 잡는 암울한 사회문화의 트렌드를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사회 각계 지도층들이 보여주고 있는 선함을 가장하고 부패의 심성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문화 속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밀려오는 때가 많다. 어떠한 범죄 윤리적 갈등 속에서도 뚜렷한 죄 앞에서 반성이 없다. 온갖 생떼를 쓰고 위기를 넘기면 사회적 예우로 회복되어 위선적 위치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파렴치한 일들을 너무 많이 보고 있다. 옛 유교문화 시대에도 사회 윤리적 작은 범죄에 처벌이 가혹했다. 그리고 신분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됐다.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님의 세상 통치의 신본문화 속에 있는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우상의 범죄는 차치하자. 일상에서 겪는 소위 세상에 넘치는 자범죄(自犯罪) 앞에서 우리는 신앙의 양심에서 회심의 단계를 겪는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가장 큰 울림이 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이러한 양심의 작동은 어디에서 나올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 바로 십자가의 도에서 출발하여 땅끝까지 이어지는 복음의 사명에 있다. 성도는 처음에도 선이요, 마지막에도 선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길이 진리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교회는 선과 양심의 ‘생산공장’이라고 해야 할까. 바울 선생은 디모데전서에서 아들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사회를 탓하기 전에 곳곳의 교회 현장에서 선함과 착함의 능력이 사라지고 세속적 다툼으로 승부를 내려는 교회 문화를 많이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를 일으킨 원동력은 고귀한 복음의 능력이었다. 140년 전 기라성 같은 선교사들이 캄캄한 한국 땅을 깨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실현함으로써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누렸다. 지금 세상이 필요한 것은 성경이 가르친 선한 양심의 작동 그리고 회복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날로 약해져 가는 세태를 방관하지 말고 한국 교회가 교회로 밀려오는 세속문화를 밀어내고 양심과 착함으로 불의와 부당함을 이기는 본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 사람 국민배우가 남긴 어록에 감동되는 동기도 중요하다. 더더욱 중요한 일은 교회가 더욱 세상을 리드하는 양심과 착한 문화의 생산공장이 되도록 확장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우승 목사] 아버지와 딸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가끔 이해하기 힘든 사건을 접할 때가 있다. 그 중에서 (사사기 11장)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사사 입다의 서원으로 자기 딸을 하나님께 바치는 사건이다. 암몬 왕이 입다의 말을 듣지 않자 입다는 출정을 하면서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다. (사사기11:30-31)에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자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라고 말씀한다. 이 얼마나 경솔한 서원인가?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데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 자신의 무남독녀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한다. (사사기11:34)에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라고 말씀한다. 이 때 입다는 자기 옷을 찢으며 말한다. (사사기11:35)에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라고 말씀한다. 그 말에 딸은 (사사기11:36)에서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라고 대답한다. 정말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그리고 입다의 딸은 한 가지 청을 올린다. 다만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처녀로 죽는 것에 대해 애곡하도록 두 달의 시간을 허락받았다. 결국 입다의 딸은 산 위에서 처녀의 죽음에 대해서 애곡하고 두 달 만에 아버지께로 돌아온 후 (사사기11:39)에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라고 딸의 죽음을 암시하는 언급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어진 아버지가 착한 딸에 죽음을 강요한 사건이 있다. 경남 하동(河東) 옥종면(玉宗面)에 종화골에서 안계골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다. ‘가마고개’로 불리우는 이 고개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구전된다. 광해군 때의 일이다. 남명(南溟) 조식(曺植)의 학통의 이어 받은 종화골의 한 명문 집안에서 딸을 출가시키고자 가마 행차를 하였다. 공교롭게도 이 때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어받은 안계골의 한 명문 집안에서도 딸을 출가시키고자 가마행차를 하였다. 이 양가(兩家)는 수백 년 동안이나 학통이 다르다는 것을 두고 다투어온 적대 가문이다. 이 적대하던 가문의 두 가마가 공교롭게 이 고갯마루에서 부딪치게 되었다. 비록 좁은 고갯길이기는 하지만 가마가 못 비켜가리만큼 좁진 않았다. 고개 아래는 낭떠러지로 남강의 지류인 덕천강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 한쪽의 가마가 비켜주거나 비켜가기만 하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데 그들의 골수에 사무친 학통의식은 그 같은 겸양을 철저히 배제하고 대치하고만 있었다. 비켜가는 가마 쪽의 가문이 굽힌다는 의식에서 치열한 다툼이 생겼다. 그들은 무려 14일간 그 자리를 버티었고, 각기 각 학통에서 응원 온 유생들도 초막을 치고 버티기까지 하였다. 급기야 어느 학파에서도 물러날 조짐이 보이질 않았다. 그리하여 팽팽히 맞선 이 양 학파에서는 그 대결의 불씨가 된 시집가는 딸에게 각기 자결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가문과 학문의 명예를 구제하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시집을 가는 두 딸은 무거운 돌덩이를 붉은 비단 치마에 싸서 안고 덕천강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들의 신방은 바로 무덤이 되었고, 집을 나설 때는 꽃가마인데, 집에 돌아올 때는 꽃상여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자기 딸을 하나님께 바쳤던 입다의 행동이나, 타 학파에 밀리지 않겠다는 결연의 의지 때문에 딸에게 자결을 강요했던 선비의 행동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경의 인물이나 우리 조상들에게서 자기가 믿는 바를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는 지조와 결단력을 높이 평가할 뿐이다.

[이정희 목사]

1. 서언(序言) 요즈음 연말연시를 기하여 한 해의 마무리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달력을 나누거나 새해의 각종 절기와 행사를 계획하기도 한다. 이런 때에 달력을 받으면 올해는 어떤 해인가에 대한 연호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호는 거의 다 사용하는데, 동양의 연호는 전통적인 황제 연호와 60갑자 연호이다. 2026년은 지난 호에서 기술한 대로 60갑자 연호인“병오년”(丙午年)이다. 서양의 경우는 예수님이 중심인 서력기원인 A.D와 B.C란 연호이다. 본 호에서는 이러한 연호와 그 유래와 현재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2. 동양 연호(年號)의 의의와 유래 1) 동양 연호란?: 먼저 한자의 뜻은 年은 한 해 365일을 의미하며, 號는 차례나 순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그해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한해의 명칭으로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의 군주제 국가 시절에는 왕의 즉위 때나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 그해에 이름을 붙여서 그 해를 원년으로 해서 이후 연도를 붙여가는 황제 연호이다. 2) 동양 연호의 유래: 최초의 연호는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건원(健元)이다. 이는 황제의 권위와 국가적 정통성을 위해 시작했으며, 원칙적으로 황제만이 사용하고, 제후왕은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일본 등에서도 사용하였으나 중국은 중화민국이 성립되면서 폐지되었고, 지금은 천황제도가 있는 일본만 사용하고 있다. 3) 우리나라의 유래: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삼국시대부터 시작하였다. 고구려는 광개토왕비에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사용했음을 볼 수 있으며, 백제는 칠지도(七支刀)에 태화(泰和)라는 연호가 기록되어 있다. 구체적인 연호의 제정은 신라 법흥왕 536년에 독자적으로 건원(建元)이란 연호를 사용했다. 고려시대도 연호를 세워 그 주체성을 발휘하였으며, 조선시대는 명나라의 제후국을 자처해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지 못했으나, 갑오경장 때 개국 기원을 503년으로 채택하여 연호를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연호를 사용하다가 미 군정기(1945∼1948)에는 서력기원(西紀)을 사용했다. 해방 후 1948년 정부수립 후에는 서기와 단군기원을 공용연호로 제정하였다가 국제적인 시류에 따라 1961년에 연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775호)을 공포하고 서력기원을 공용연호로 사용하고 있다. 4) 60갑자 연호의 유래와 사용: 또 하나의 연호인 60갑자 연호의 시작은 중국에서 B.C 2637년 황제시대로 추정하고 있으나 공식적인 사용은 B.C 104년 한 무제(漢武帝)때 황제 연호인 건원(健元)과 함께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A.D 1444년에 세종대왕 때에 칠정산 역법(七政算曆法)을 편찬하면서 이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3. 서력기원(西曆紀元)의 의의와 유래 1) 서양의 연호 사용의 유래: 동양의 황제 연호나 60갑자 연호와 같은 별도의 명칭을 사용하기보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 등에서 왕의 등극한 해나 계절 주기 등을 기준으로 연도를 계산한 월력(月曆)을 사용했다. 대표적으로는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태양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토대로 만든 태양력(太陽曆)이었다. 그 이후 BC 46년 이집트를 정복한 쥴리아스 시저(Caius Julius Caesar)가 이를 로마에서 사용한 것이 태양의 공전주기에 맞춘 율리우스력(Julius Calendar)이다. 이를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A.D 1582년에 새롭게 개정한 그레고리우스력(Gregorius Calender)을 제정했고, 이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다. 2) 기독교적 연호(A.D) 사용의 유래 : ‘A.D’란 연호의 처음 사용은 주후 6세기경의 동로마 황제인‘저스틴 1세’부터였다. 그는 당시의 수도사였던‘디오니시우스’로 하여금 세계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연호를 연구하게 했다. 이에 그는 깊은 명상 중에 예수님 탄생의 해를 기점으로, 그 이전은 before Christ의 약자인 ‘B.C’로, 이후는 Anno Domine(주 오신후)의 약자인 ‘A.D’로 정했다. 또한 이를 황제에게 보고했고, 황제는 이를 선포하여 오늘까지 거의 세계 모든 나라들이 사용하는 연호로 확정되었다. 4. 기독교적 관점과 제언 이상에서 논한 대로 연호의 사용은 동서양 관계없이 고대로부터 그 역사성을 가지고 있고, 전 인류사에 공헌한 정말 유익한 것이었다. 단지 이러한 사용이 지도자의 권위를 위한 것이나 우상숭배와 점복(占卜)의 도구로 오용되는 일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감사한 일은 거의 온 세계가 지금은 공용으로 예수님이 중심이 된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는 서력기원 연호를 사용하고 있는 일이다. 이는 기독교인인 우리로서는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부디 이런 연호를 널리 사용함으로서 기독교적 언어 문화를 창출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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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묵상] 최성은 목사 - 상생의 아름다움과 복(시133: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 새해를 맞아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역 위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큰 은혜요, 기적이며,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지난 한 해 수많은 어려움과 위험한 순간들을 지나 이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해 함께 예배드리는 이 시간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특별히 지난 한 해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갈등과 불안이 가중된 시간이었고, 경북 산불과 경남 집중호우 등 여러 자연재해가 겹쳐 찾아온 해였습니다. 현장을 직접 보며 막막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함께 예배의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본문 시편 133편은 ‘성전에 오르는 노래’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이 노래는 시편 120편,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라는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곧 성전에 오르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수많은 혼란과 환난을 이기고 예배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입니다. 시편 133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터져 나오는 시인의 감격의 탄성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 감격과 감사가 오늘 우리에게도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한 해의 환란을 지나 2026년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 찬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시편 133편은 세 절에 불과한 짧은 시이지만, 하나님께서 연합하여 동거하는 교회 공동체에 주시는 복, 곧 상생의 복을 가장 아름답게 노래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의 공동체가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연합의 공동체, 상생의 공동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형제 된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시고 상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을 이처럼 아름답게 보시고 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연합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연합은 단순히 한 집안의 형제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출신 배경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본부인의 자녀도 있었고, 여종의 몸에서 난 자녀도 있었으며, 요셉 지파는 애굽 여인에게서 태어난 후손이었습니다. 분열하기에 너무나 쉬운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 곧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배하는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 한 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연합은 그들이 예배하는 하나님을 닮은 연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교회를 세우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우리가 하나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고, 사도 바울 역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했습니다. 형제의 연합은 하나님께 선한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함께 동거하며 상생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탐욕과 이기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하나님을 닮은 교회들이 연합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복음의 영광을 이 땅에 드러내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연합한 공동체에 주시는 복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회복의 복입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라는 말씀은 대제사장의 임직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용서와 회복을 선포하는 존재였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모습을 대제사장의 임직에 비유한 것은, 함께하는 곳에 회복의 능력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풍성한 생명의 복입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 땅에서 헐몬산의 이슬은 온 땅을 적셔 생명과 열매를 맺게 하는 은혜였습니다. 시인은 형제가 함께하며 상생하는 모습을 이 헐몬의 이슬에 비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 되는 곳, 상생하는 공동체에 임하셔서 풍성한 생명의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초대교회가 언제 강한 교회로 세워졌습니까? 거대한 건물이나 체계적인 조직이 있어서가 아니라,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였습니다. 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상생으로 함께할 때 오늘도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 위에 풍성한 생명의 능력을 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설 수 없다.” 말씀을 맺습니다. 지난 경남 지역 집중호우 당시, 총회 긴급구조단이 산청의 한 피해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물에 잠긴 비닐하우스와 진흙에 뒤덮인 작물을 보며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의 한 장로님께서 오히려 “괜찮습니다. 천국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로하러 갔던 우리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지난 한 해의 모든 시련을 믿음으로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새해를 맞아 형제 되어 함께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회복의 복과 풍성한 생명의 복을 더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2026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으로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시는 교회, 상생으로 세상을 섬기는 성도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위 설교문은 1월 2일, 고신 지도자 초청 신년 인사회에서 최성은 목사의 설교를 옮긴 것 입니다.

[김성수 총장] 인생은 짧다, 그러나 깊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어깨춤을 추며 흥겹게 부르던 노래 한 구절이 문득 생각난다.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가 “인생은 짧다”(카르페 디엠/carpe diem)는 의미로 남긴 짧은 라틴어 구절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오늘날 우리에게 아직도 익숙하게 들린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또 얼마나 진지하게 삶에 적용하고 있는지 새해를 맞으면서 한 번쯤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로만 크르즈나릭(Roman Krznaric)의 베스트셀러 『인생은 짧다, 카르페 디엠』은 바로 이 질문을 우리 앞에 던진다. 그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이 오늘날 얼마나 얄팍하게 오해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우리 삶을 다시 본질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현대 사회에서 ‘카르페 디엠’은 종종 “하고 싶은 건 지금 해!”, “지금 즐기자!”라는 소비주의적 문구로 탈바꿈했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유행어가 대표적이다. 이 구호는 짜릿한 여행이나 과감한 소비, 충동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며, 정작 삶의 본질을 성찰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피상적인 시간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크르즈나릭은 이를 “카르페 디엠의 납치”라고 말한다. 그는 잊혀져 가는 이 삶의 기술을 다시 우리 손에 되찾아주고자 한다. 그가 제안하는 ‘카르페 디엠’은 단순한 쾌락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의식적 선택과 자기 결단, 타자와의 관계, 죽음에 대한 명상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태도다. 그는 다섯 가지 유형의 ‘카르페 디엠’을 제시한다. 즉흥적인 기회를 붙잡는 삶(Opportunism), 감각을 통해 삶을 음미하는 쾌락형(Hedonism),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는 해방형(Liberation), 사회 정의를 위한 참여로 드러나는 정치적 형태(Political), 그리고 타자를 위한 헌신으로 드러나는 윤리적 삶(Ethical)이다. 이 모두는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단 하나의 메시지를 지향한다. 이 질문을 기독교 신앙의 언어로 바꾸면 “오늘 나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표현될 수 있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임을 기억하고, 언젠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죽음을 직면할 때,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죽음을 의식하는 삶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삶의 지혜로 이끈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크르즈나릭은 자기 결정권을 회복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소비자의 삶이 아니라, 창조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외침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무기력 속에서 하루를 흘려보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이 땅을 책임 있게 살아가는 ‘소명자’다. 아프리카 오지와 지구촌 곳곳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인재들을 양성하는 선교사의 하루도 그러하고, 세속화된 현대 도심의 심장부에서 성경적 가치관을 구현하며 다니엘처럼 오늘을 살아가려고 고민하는 평범한 성도의 하루 삶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동일하게 소중한 ‘카르페 디엠’의 시간이다.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관점이 없으면 “인생은 짧다”고 하는 이 말은 우리의 삶을 한없이 허무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얼씨고 절씨고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라는 노래 소리로 한 해를 보내고 또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짧은 인생이기에 이제는 남은 날을 헤아리면서 주님의 몸 된 교회와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게 해 달라는 우리의 기도는 짧은 인생을 더 위대하고 역동적이며 견고하게 만들어 준다. 짧은 인생이기에 더 깊이 있게 살아야 한다. 매 순간 순간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온전히 신실하게 응답하며 살아야 한다.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는 우리 모두에게 “카르페 디엠”은 단지 ‘순간을 즐기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붙들고 소명적인 삶에 신실하라’는 우리 주님의 자비로운 초대일 수 있다. 김성수 목사(탄자니아 아프리카 연합대학교 총장)

[강영구 목사] 마지막에 남는 것(벧전 4장 7–11절)

무엇이든 끝이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진지하게 만들고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연말이 되면 한 해의 끝을 생각하게 되고, 오늘과 같은 총회 자리에 서면 분주하게 달려온 시간들이 마무리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끝을 앞에 두고 돌아보면, 그때는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되는 줄 알았던 삶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끝이 가까워질수록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가 더욱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끝을 앞에 두게 되면 사소한 것과 끝까지 남을 소중한 것이 구분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가 보면, 정말 붙들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무려 2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어 온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했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틀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재림의 때를 비밀로 감추어 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이 “오늘 밤이라도 끝이 올 수 있다”는 긴장감 속에서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끝이 멀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대충 살게 됩니다. 의미 없는 것에도 마음을 빼앗기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힘을 쏟게 됩니다. 그러나 끝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만 붙들게 됩니다. 본문은 그 ‘끝까지 남는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기도입니다.“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대화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사람도, 돈도, 명예도, 권세도 떠나갑니다. 그러나 끝까지 남아 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붙들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끝까지 남습니다. 직분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자동으로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직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소홀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끝이 가까울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더 깊이 만나고, 더 친밀해지는 데 힘써야 합니다. 둘째는 사랑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만물의 마지막에 가서 남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계명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 이 땅에서 이룬 업적이나 성취를 가지고 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이 땅에 남겨 두고 가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한 것은 가지고 갑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주님은“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며 먹이고 입히고 돌본 것, 용서하고 덮어준 것, 화해한 것—이 모든 것은 세상 역사가 끝나도 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합니다. 끝이 오기 전에,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는 봉사와 섬김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봉사는 자기 힘이나 자기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 봉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이 말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섬길 때, 그 섬김은 끝까지 남습니다. 봉사와 섬김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하지 않아도 될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봉사와 섬김은 만물의 마지막이 와도 남을 일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창원기독교총연합회를 위해 묵묵히 섬긴 모든 수고와, 앞으로 세워질 임원들의 섬김 또한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오실지, 우리가 먼저 주님께로 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 우리의 마지막이 오더라도, 기도와 사랑과 섬김이라는 이 소중한 핵심 가치를 붙들고 살아가는 주님의 종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본 설교문은 2025년 12월 10일 창원기독교총연합회 총회 예배에서 전한 강영구 목사의 실제 설교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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