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10-13(화)

경남기총, 10월 미스바성회 개최…“주님 사랑은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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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선물하신 생명, 교회가 함께 품고 키웁니다

다음세대와 대한민국이 초저출산 위기를 맞이한 가운데, 월드미션교회(담임목사 조희완)가 국가적 과제인 저출산 문제 해결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 출산 장려 지원금을 전달하며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월드미션교회는 심각해지는 대한민국의 저출산 현상에 깊이 공감하고, 교회 차원에서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며 출산 친화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작년부터 당회 결의를 통해 ‘출산 격려금 제도’를 신설했다. 새롭게 도입된 지원 제도는 출산 순서에 따라 차등 지급되며 구체적으로는 ▲둘째 자녀200만 원 ▲셋째 자녀 500만 원 ▲넷째 자녀 1000만 원 ▲다섯째 이상 자녀에게는 전 가족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지원하며 성도들의 삶 현장에 실질적인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금번에 출산한 가정은 이스라엘 파송 선교사이기 때문에, 성지순례가 아닌 격려금 지원이 이뤄졌다. 이러한 정책의 결실이자 실천으로, 10월 11일 주일예배에서 여섯째 자녀를 출산한 선교사 가정에 출산 격려 축하금 1,000만 원이 전달되었다. 이날 성도들은 한마음으로 선교사 가정의 출산을 축복하며, 저출산 시대에 생명을 낳고 기르는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월드미션교회 담임목사는 “국가적으로 존립의 위기를 맞이한 저출산 문제에 교회가 방관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당회에서 뜻을 모았다”며, “이번 출산 격려금이 작은 디딤돌이 되어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가 널리 퍼지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이어 “월드미션교회는 앞으로도 다음세대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든든히 세워가는 일에 교회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비전을 밝혔다. 한편, 월드미션교회는 이번 가정 지원을 시작으로 출산 장려 및 양육 지원을 위한 다양한 후속 사역을 지속해서 펼쳐나갈 예정이다. 자료제공. 월드미션교회

양곡교회, 창립 111주년 기념 ‘양곡가족올림픽’ 개최

양곡교회(담임 장형록 목사)는 교회 창립 111주년을 맞아 지난 10월 5일 마산체육관에서 ‘2026 양곡가족올림픽’을 개최했다. 1915년 7월 17일 창립된 양곡교회가 창립 111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이번 가족올림픽은 15년 만에 다시 열린 행사로, 어린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온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교제하며 믿음 안에서 한 가족임을 확인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오전 9시 30분 조복현 권사와 김 한 집사의 사회로 입장식을 갖고 막을 올렸다. 태극기와 교회기, 대회기 기수단에 이어 파랑·초록·빨강·노랑 선수단이 입장했으며, 오전 9시 50분부터 하길원 목사의 인도로 창립 111주년을 기념하는 찬양축제가 이어졌다. 오전 10시 10분부터 드린 개회예배는 장형록 담임목사의 인도로 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를 함께 부른 뒤 준비위원장 김관수 장로가 기도하고, 부위원장 오원준 장로가 갈라디아서 4장 1~7절을 봉독했다. 이어 다윗찬양대가 찬양했으며, 연합당회장 지용수 목사가 ‘우리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를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지용수 목사는 설교에서 세상의 가정에는 부족함과 아픔이 있지만 성도들은 이를 넘어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지 목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은 우리가 택한 것이 아니다”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녀가 된 성도들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우리는 헤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세상 가운데서도 안고 업어 보호하시는 분이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해야 한다고 권면했다. 또 세상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며 성도들을 위해 일하신다고 강조했다. 설교 말미에는 성도들과 함께 “우리는 잘 된다. 잘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내 아빠다”라고 고백한 뒤 “우리도 가문을 빛내는 하나님, 믿음을 빛내는 가족이 되어야겠다”고 당부했다. 개회예배는 지용수 목사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이어진 개막식은 최문욱 장로의 사회로 지용수 목사의 개회사 및 개막선언, 장형록 담임목사의 대회사, 창원특례시 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병권 목사와 경남노회 노회장 신종주 장로의 축사, 정예준·박도훈·황지혜·제갈진호의 선수선서 순으로 마련됐다. 장형록 담임목사는 대회사를 통해 “오늘은 단순히 운동하고 경기를 즐기는 날이 아니다”며 믿음 안에서 한 가족 된 성도들이 서로를 더 가까이 바라보고 함께 웃고 응원하며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의미를 밝혔다. 특히 어린 시절 자신도 양곡가족올림픽에 참여했던 기억을 소개하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도 “교회는 참 따뜻하고 행복한 곳이었다. 나는 우리 양곡교회에서 참 많이 사랑받았다”는 기억이 남아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 승패보다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하며 세대와 세대가 믿음과 사랑으로 더욱 든든히 이어지기를 소망했다. 가족올림픽에는 전 성도가 함께하는 OX퀴즈를 비롯해 ‘복음의 BALL을 땅 끝까지 전해’BALL’래?’, ‘합력하여 전진하라!’, ‘우리교회 씽씽카 챔피언’, ‘믿음으로 당겨라’, ‘우리는 하나’, ‘사랑의 온도탑’, ‘바통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등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또 에코백 꾸미기와 네일·타투 스티커, ‘명사수 다윗: 골리앗을 맞춰라’, 투호, 목회자와 함께하는 네컷 사진, 슈링클스, 양곡시네마, 다트 등 10개 체험부스를 마련해 가족과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선교는 교회 존재의 목적”…제3회 전국목회자선교연합 선교컨퍼런스 성료

전국목회자선교연합(대표회장 조희완 목사, 이하 목선연)이 10월 5일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선교는 교회 존재의 목적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제3회 선교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번 컨퍼런스에는 전국 각 지역의 목회자와 선교사, 성도 등 500여 명이 참여해 한국교회가 다시 선교의 본질을 회복하고 교단과 지역, 개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열방과 미전도종족을 향해 함께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특히 이번 컨퍼런스는 기도로 시작해 기도회로 마무리됐다. 단순히 선교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행사를 넘어 한국교회와 세계선교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복음 앞에서 각자의 삶과 교회 사역을 돌아보며 선교적 결단을 새롭게 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첫 강의에 나선 쿠르드 정의 선교사는 ‘복음 안에서 변화하는 쿠르드 민족, 민족의 운명에 도전하는 선교’를 주제로 사역 현장의 생생한 소식을 전했다. 정의 선교사는 복음이 개인의 변화에 머무르지 않고 한 민족의 아픔과 역사 가운데 소망을 심어가는 과정을 나누며, 여전히 복음을 기다리는 미전도종족을 향한 한국교회의 관심과 기도를 요청했다. 이어 미래세대선교회 대표 김언약 선교사는 ‘한국교회 선교의 미래를 준비하다, 청년 열방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한국교회 선교의 미래를 위해 다음세대와 청년들을 선교적 세대로 세워야 함을 강조하고, 청년들이 교회 안에 머무는 세대를 넘어 복음을 들고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세대로 세워져야 한다고 도전했다. AI안전연구소 소장 김명주 교수는 ‘AI 시대의 선교와 영성’을 주제로 급변하는 인공지능 시대 속에서 교회와 선교가 직면한 새로운 환경을 짚었다. AI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선교의 본질을 잃지 않고, 기술을 지혜롭게 활용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영성과 신앙의 본질을 더욱 굳게 세워가야 할 필요성을 나눴다. 마지막 강사로 나선 복음의빛선교회 대표 김용의 선교사는 ‘기적에서 기적으로’라는 주제로 복음과 선교의 본질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선교의 출발은 방법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복음이며, 교회가 복음 앞에 다시 서고 그 복음에 사로잡힐 때 열방을 향한 선교적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강조했다. 네 차례의 강의는 각각 미전도종족의 선교 현장, 다음세대와 한국교회 선교의 미래, AI 시대의 선교와 영성, 복음과 선교의 본질을 다루며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선교적 과제를 폭넓게 제시했다. 목선연은 교단과 지역을 넘어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목회자와 교회들이 함께 연합하고 있는 선교 네트워크다. 제1회 선교컨퍼런스를 시작으로 제2회 컨퍼런스에서는 ‘연합, 도약, 성취’라는 주제를 통해 한국교회와 선교단체, 목회자와 성도들이 선교의 과업을 함께 감당해야 함을 강조했다. 올해 제3회 컨퍼런스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교는 교회 존재의 목적입니다”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한국교회 앞에 제시했다. 목선연은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선교가 일부 선교사나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들만의 사역이 아니라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에게 맡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임을 다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목회자가 먼저 선교적 목회자로 세워지고, 지역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변화되며, 다음세대가 복음을 들고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선교운동이 한국교회 곳곳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컨퍼런스의 마지막은 참석자들이 함께 드리는 기도회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한국교회의 선교적 회복과 미전도종족 복음화, 다음세대와 청년 선교의 부흥, 세계 곳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선교 현장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기도로 시작해 기도로 마친 제3회 선교컨퍼런스는 “선교는 교회 존재의 목적”이라는 고백을 각자의 교회와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겠다는 결단과 함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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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기총, 10월 미스바성회 개최…“주님 사랑은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경남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김영암 목사, 이하 경남기총)는 10월 8일(목) 오전 10시 창원세광교회(담임 황은선 목사)에서 ‘10월 미스바성회’를 개최했다. 이날 성회는 경남기총 서기 엄태호 목사(창원만나교회)의 사회로 회계 허남성 장로(상남교회)의 대표기도, 요한복음 14장 15절 성경봉독, 전태식 목사(순복음서울진주초대교회)의 설교 순으로 진행됐다. ‘정말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전태식 목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은 단순한 고백에 머무르지 않고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는 요한복음 14장 15절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미스바의 의미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삶을 돌이켜 다시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해석하며, 성도들이 자신의 생각과 뜻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언급하며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목회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성도들이 그 말씀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성회는 경남기총 대표회장 김영암 목사(경화교회)의 축도와 사무총장 김희종 목사(유호교회)의 광고로 마무리됐다. 한편, 경남기총은 오는 11월 5일(목) 오전 10시 순복음진주초대교회에서 ‘교회성장과 부흥을 위한 분별의 사명’을 주제로 11월 미스바성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성회에서는 목회데이터연구소 지용근 대표가 강사로 나선다.

경남선교 137주년 기념 ‘2026 경남선교의 날 감사예배’ 드려

경남선교 137주년을 기념하는 ‘2026 경남선교의 날 감사예배’가 지난 10월 4일 오후 3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창원공원묘원 내 경남선교120주년기념관 광장에서 열렸다. (사)경남성시화운동본부가 주관하고 (사)경남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김영암 목사, 이하 경남기총)와 (사)경남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이경은 목사, 이하 경남성시화)가 주최한 이번 감사예배는 137년 전 경남에 복음을 전한 호주 선교사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경남교회의 복음 전파와 세계선교 사명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예배는 경남기총 수석부회장 허남길 목사의 인도로 시작됐다. CTS경남방송 지사장 윤종은 장로가 기도하고, 창원YWCA 회장신옥희 권사가 요한복음 12장 24절을 봉독했다. 이어 경남기총 대표회장 김영암 목사가 ‘한 알의 밀알과 그 열매’를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 목사는 설교에서 지난 7월 17일 향년 92세로 별세한 호주 선교사 존 브라운(한국명 변조은)의 삶과 사역을 소개하며 호주 선교사들이 경남과 한국을 위해 흘린 눈물과 헌신을 되새겼다. 설교 후 경남성시화 회계 정천 장로가 헌금기도를 드렸으며, 대표회장 이경은 목사가 환영사를 전했다. 이 목사는 초기 선교사의 죽음이 당시에는 실패처럼 보였지만,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선교사들이 경남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게 됐다며 선교사들의 뜻을 이어 경남교회가 다시 선교의 사명을 품고 세계 복음화를 위해 나아가기를 소망했다. 이어 김영암 목사가 인사말을 전하고, 경남성시화 대표본부장 김우태 목사가 경과보고를 했다. 수석본부장 서민석 목사(새소망교회)는 합심기도를 인도했다. 참석자들은 △국민통합·경제발전·평화통일 △경남도지사 및 단체장·기관장과 18개 시·군 발전 △경남 2,600여 교회의 부흥과 민족복음화·성시화·세계선교 △포괄적 차별금지법 및 악법 제정 무산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축사에는 최형두 국회의원(국민의힘·마산합포구), 허성무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성산구), 이혜련 창원특례시의회 의장이 나섰다. 최형두 의원은 경남을 호주 선교사들의 발자국과 헌신이 깊이 새겨진 곳이라고 강조하며, 호주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과 경남의 신앙 선배들이 이어온 믿음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남과 호주가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오늘날에도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며, 경남선교의 날을 통해 선한 메시지가 세계로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허성무 의원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기독교가 평등과 사랑의 정신을 전하고 독립운동과 자유·민주주의 수호, 도시화 과정의 공동체 형성 등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경남에서는 호주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이 지역의 역사와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혜련 의장은 137년 전 복음을 들고 경남을 찾은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의 헌신을 기리며,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 교회가 지역사회에 빛과 희망을 전하는 마중물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감사예배를 통해 지역사회가 이웃을 더욱 돌보는 공동체로 발전하기를 기원했다. 이날 감사예배는 내빈소개와 광고에 이어 경남성시화 이사장 이종승 목사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한편, 이날 감사예배에는 진해침례교회 찬양팀과 경화교회 호산나 찬양대, 양산온누리교회 헵시바 여성중창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난타팀이 참여해 찬양과 연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 새 리더십 세우고 새 회기 출발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이 9월 셋째 주 정기총회를 일제히 개막하고 새로운 회기를 이끌 지도부를 구성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통합·고신·합신·백석과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는 각각 정기총회를 열고 총회장과 부총회장 등 신임 임원을 선출하는 한편, 개회예배를 통해 교단이 나아갈 방향과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다시 확인했다. 올해 주요 교단 총회에서는 교회의 공교회성 회복과 화해와 하나 됨, 교단 안의 상처와 갈등 치유, 영혼 구원과 부흥, 목회자와 장로의 영적 정체성 등이 공통적으로 강조됐다. 각 교단은 새 지도부 출범과 함께 교단이 직면한 신학적·목회적 현안과 제도 개선, 다음세대 및 목회 현장 지원 등 다양한 안건을 다루며 새 회기를 시작했다. 예장 합동은 14일 서울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시무)에서 제111회 정기총회를 개회했다. 개회예배에서 장봉생 총회장은 ‘하나님의 총회’(히12:22~24)를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총대들이 단순히 한 해의 회무를 처리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공교회 현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총회장은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 모였다”며 교회와 성도들이 교단에 속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총회가 되기를 당부했다. 제111회 총회장에는 정영교 목사가 선출됐으며, 목사부총회장에는 송기섭 목사, 장로부총회장에는 손원재 장로가 각각 선출됐다. 총회는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교단의 주요 정책과 목회 현안을 논의하며 회무를 이어가고 있다. 예장 통합 제111회 총회는 15일 서울 영등포구 도림교회(정명철 목사 시무)에서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하나 되게 하소서’(신30:19~20, 엡4:1~6)를 주제로 개막했다. 개회예배에서 권위영 목사는 교회가 기후위기와 저출생·고령화, 다음세대 이탈과 내부 갈등 등 여러 변화와 위기 앞에 서 있다고 진단하고, 제111회 총회가 ‘생명을 선택하는 일’과 ‘성령이 이루신 하나 됨을 지키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목사는 “우리가 살아갈 생명의 길, 우리가 걸어갈 화해의 길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갈 수 없다. 제111회 총회는 십자가의 정신으로 걸어갈 것”이라며 “구호만 외치다 흩어지는 말의 잔치가 되지 않고 실제적인 역사가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 됨은 서로의 차이를 없애는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성령이 이루신 일치를 지켜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110회기 목사부총회장이었던 권위영 목사가 제111회 총회장으로 취임했으며, 목사부총회장에는 결선투표를 거쳐 김한호 목사가 선출됐다. 장로부총회장에는 단독후보로 나선 박기상 장로가 추대됐다. 예장 고신은 15일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위로’(Comfort, 고후1:3~4)를 주제로 제76회 정기총회를 개회했다. 개회예배에서 증경총회장 김상석 목사는 고신총회가 여러 갈등과 상처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위로와 교회의 회복을 강조했다. 김 목사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며, 그 위로를 받은 성도는 다시 다른 사람을 위로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총회 안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 온 모습을 돌아보며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회개해야 한다고 권면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세워주는 총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총회장 선거에서는 당초 단독후보로 나선 이규현 목사가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서 다시 후보 등록과 선거가 진행됐고, 신진수 목사(창원한빛교회)가 제76회 총회장으로 선출됐다. 목사부총회장에는 김은태 목사, 장로부총회장에는 이연호 장로가 각각 선출됐다. 신진수 총회장은 총회가 산적한 현안에 집중하는 동시에 몇몇 사람에게 역할이 집중되지 않고 임원과 총대들이 함께 책임을 나누는 ‘함께하는 고신총회’를 만들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침은 14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부흥의 새 시대로’를 주제로 제116차 정기총회를 개회했다. 개회예배에서 직전 총회장 이욥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합2:2~4)을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하박국 선지자가 혼란스러운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바라본 것처럼, 교단 역시 현실의 어려움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데 있다며, 새로운 회기를 앞두고 교단을 살리는 지도자가 세워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 제116차 총회장에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김선배 목사(디딤돌교회 협동)가 선출됐다. 김 목사는 총회가 갈등과 분열의 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기쁨을 회복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며 교단을 섬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예장 합신은 15일 경북 경주시 코모도호텔에서 제111회 정기총회를 개회했다. 개회예배에서 박찬식 목사는 ‘약한 그 때가 강함이라’(고후12:7~10)를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사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를 통해 교회와 총회를 섬기는 이들이 자신의 강함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은혜일 때도 있지만, 문제가 있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더 큰 은혜일 때가 있다”며 “목회자와 장로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많이 하는가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라고 말했다. 총회가 추진하는 사업의 규모보다 목회자와 장로가 먼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당부했다. 신임 총회장에는 박찬식 목사가 선출됐으며, 목사부총회장에는 김명호 목사, 장로부총회장에는 구자영 장로가 각각 선출됐다. 박 총회장은 새 회기 공교회성을 회복하고 총회와 노회, 지교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가운데 지교회와 다음세대를 지원하는 총회가 되도록 힘쓰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예장 백석 제49회 정기총회는 14일 천안 백석대학교회에서 ‘백석, 예수생명의 공동체’를 주제로 개막했다. 개회예배에서 김동기 총회장은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를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미약하게 시작한 교단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오늘의 성장과 부흥을 이루었다고 강조했다. 김 총회장은 “이제 백석의 시대가 되었다”며 50주년과 100주년을 향해 하나님의 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교단과 학원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에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기를 소망했다. 또한 개혁주의생명신학을 통해 민족과 세계를 새롭게 하는 교단이 되기를 당부했다. 제49회기 총회장에는 이승수 목사가 추대됐으며, 제1부총회장 임석순 목사, 제2부총회장 이정기 목사, 장로부총회장 신맹섭 장로도 함께 추대됐다. 이승수 총회장은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운동과 기도·성령운동을 비롯한 새 회기 과제를 제시하며 백석총회가 한국교회를 섬기는 ‘영적 장자교단’으로 나아가는 데 힘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주요 교단들은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정기총회 회무를 이어가며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과 목회 현장의 변화, 다음세대와 교회 지원, 제도 개선 등 각 교단이 직면한 과제들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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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 시나브로 살아갑시다

‘시나브로’란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으로 풀이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어떤 일을 시킬 때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보다는 오랜 시간에 조금씩 꾸준히 하기를 원했다. 옛날 농사일을 할 때 주인들은 소에게 하루 적당량만 일을 시키고, 내일 일을 위해서 오늘 너무 무리하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우리가 보통 한 마지기라고 하면 약 200평 정도의 논밭을 일컫는다. 한 마지기는 하루에 소가 ‘시나브로’ 일하기에 적당한 넓이를 뜻한다. 상황에 따라서 하루에 두 마지기도 할 수 있지만 소 주인은 길게 봐서 소에게 한 마지기 이상으로 일을 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의 전통 벼농사 방법을 보면 흥미롭다. 농부는 길일(吉日)을 잡아 작년 섣달 말경 받아둔 눈 녹인 물에 볍씨를 담가둔다. 사흘 만에 건져서 하루 동안 응달에 둔다. 그럼 싹이 들랑말랑 할 때 못자리에 뿌린다. 사흘을 넘기면 싹이 돋아 나중에는 가뭄에 약한 묘가 되고 만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고, 또한 자신의 분을 지키며 살았는데 오늘날 우리들은 분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분을 지킨다는 것은 내가 처해 있는 사회적, 경제적, 인격적인 위치에 알맞은 행동을 하고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조선왕조 후기에 정승을 역임한 김좌명(1616-1671)이라는 대감이 있었다. 그 집에서 심부름하는 최수(崔戍)라는 하인이 있었는데 김좌명이 호조판서가 되었을 때에 최수를 서리(書吏)로 임명해서 긴요한 직책을 맡겼다. 한데 최수의 어미가 김좌명 대감에게 찾아가서 ‘수에게 그런 직책을 맡기는 것은 과분한 일이니 벼슬을 거두어주십시오’ 라고 직언을 하였다. 분을 지키는 우리 옛 선조들의 지혜가 이처럼 서민들 틈에까지 보편화되어 있었다. 오늘날 차관과 맞먹는 참판(參判) 벼슬을 지냈던 김정국은 청빈한 삶을 살았던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열 가지를 나열했는데 ‘서적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벗 두어 사람,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개 하나, 환기할 창 하나, 햇볕 쪼일 마루 하나, 차 다릴 화로 하나, 늙은 몸을 부축할 지팡이 하나, 봄 경치를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 라고 말했다. 성경에 분에 넘치는 재물을 탐하다가 망한 사람이 많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물이 넉넉한 소알 땅을 택했다. 그러나 풍요에 대한 갈망 때문에 아내도, 재산도 다 잃었다. 여리고 성의 재물을 취하여 숨겼던 아간은 끝내 죽임을 당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절대 예물에 손대지 말라는 당부에도 나아만 장군을 좇아가 재물을 탐하다가 나병에 걸리고 말았다. 성경에 분명 탐심은 우상숭배(골3:5)라고 했다. 즉, 탐심은 마귀를 숭배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자어 탐(貪)은 “품다”를 뜻하는 [함(含)]과 “재물”을 뜻하는 [패(貝)]가 합쳐진 글자이다. 즉 탐심(貪心)은 ‘이미 마음 속에 재물을 품은 상태’를 뜻한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본분(本分)을 알고 그 본분대로 살아가야 함이 옳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도의 본분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전12:13)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니라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바쁘게 가던 걸음을 멈추고 전윤호님의 시 <고운 밥>을 천천히(시나브로) 감상해보자. ‘신(神)도 동네마다 이름이 달라 다르게 부르면 해코지하는데 밥은 사투리가 없다. 이 땅 어디나 밥이다. 함께하면 식구(食口)가 되고, 혼자 먹어도 힘이 되는 밥. 어떤 그릇을 놓고 어떤 수저를 펼쳐놓듯 김이 오르는 밥 앞에서 모두 평등하니 이보다 귀한 이름이 더 있겠나, 논이 부족한 제주도에서 쌀밥은 아름다워 곤밥이라 부른다니 사랑하는 사람이여 우리 밥이나 함께 하자’

[이정희 목사] 무속 신앙에서 유래된 용어들 5: 터줏대감과 텃세란 말은?

1. 서언(序言) 지나치게 자신의 소유나 공동체를 타인에게서 지키려는 행위를 “터줏대감 노릇한다”거나 “텃세를 부린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는 역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무속신앙인 “터주신”이란 가택 신앙에서 유래한 것이다. 현재는 이러한 터주신인 가택 신앙은 거의 없지만, 텃세란 말은 지역과 개인 이기주의 차원에서 흔히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며, 말하고 있다. 이에 본 호에서는 그 유래와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2. 터주신과 터줏대감의 유래와 섬기는 행위 1) 터주신(地神)이란? : 이는 집터를 지키는 지신(地神)으로 땅 地와 귀신 神으로 땅을 다스리는 신령을 뜻한다. 이러한 신앙은 한국의 토속신앙인 가택 신앙(家宅信仰)으로서 집의 터를 지키는 땅의 신. 터주, 터 대감, 대주라고도 부르며 높임말로 터주신이라고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터줏대감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터주신이 하는 역할은 집안 사람의 재물의 운을 가져다주며, 건물의 안전과 집터의 운수 등을 관장하는 동시에 집의 울타리 안을 돌보며, 사악한 기운을 없애고 잡귀를 쫓아내 집안 사람들을 보호하는 신으로 여기고 있다. 2) 섬기는 행위 (1) 터주가리: 집의 장독대 옆에 해마다 추수 때 수확한 곡물을 작은 단지에 넣어서 가마니 속에 둔다. 또한 묵은 곡물은 집안 사람끼리 나누어 먹으며 복을 비는 행위를 한다. 터주가리 외에도 오쟁이에 베와 짚신을 넣고 나무에 걸어 두거나, 한 홉의 쌀을 종이나 베에 담아서 마당 중앙에 얕게 묻어 섬기기도 한다. (2) 터줏대감 놀이: 터줏대감을 섬기는 무당이 시루를 머리에 이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집안을 도는 행위로 진행된다. 또한 집안싸움이 심하거나 주변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생기면 터주신이 싫어하거나 노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여기며 이런 놀이로 터줏대감의 노를 삭히며 위로하는 행위를 한다. (3) 현대에서는 의미와 행위: 과거와는 달리 무속적인 개념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새로운 집에 이사를 오거나 그 집 터가 세다고 여길 때는 막걸리든가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신년에는 풍물놀이 패들이 지나갈 때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땅을 지배하는 여러 신들을 위로하기 위한 지신밟기를 하게 하기도 한다. 3. 텃세의 의미와 어원과 현재의 의미 1) 텃세한다의 의미와 어원: 이 말의 사전적인 뜻은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뒤에 오는 사람에 대한 특권의식이나 업신여기며 위세를 떨거나 괴롭히는 행위”로서 기존의 사람이 새로운 사람에게 권리를 주장하거나 따돌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어원적으로는 “르완다어”의 버릇없게 만들다의 “tetesha”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우리 한국적인 텃세는 앞에서 기술한 터주신(터줏대감)에서 그 어원과 유래가 있다고 보는 것이 유력하다. 2) 현재의 의미: 텃세란 말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와 닭도 텃세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거의 모든 동물에게도 이런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또한 이러한 텃세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불협화음과 내홍이 일어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도 오늘날의 현실이다. 4. 맺는말과 제언 현대에 있어서 터주신과 터줏대감이란 말은 많이 사용하지만 무속적인 의미로 생각하거나 사용하는 경우는 무속인들 외에는 거의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텃세란 말은 온갖 사회의 이기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계속 병폐로 남아 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ooo 목사, 장로, 집사, 권사는 oo 교회의 터줏대감 노릇한다”는 말이 항상 들릴 정도로 현실인 경우가 많다. 이는 이타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며, 또한 이런 말을 듣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성한 목사] 성령님의 음성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요한복음 16장 13~14절) 많은 성도들이 묻는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데 이것이 성령님의 음성인지 내 생각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무조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개인적인 욕망이나 두려움, 상처에서 나온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령님의 음성을 분별하려면 먼저 우리의 마음이 잠잠해질 필요가 있다. 엘리야가 호렙산에 있을 때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갔다. 그러나 열왕기상 19장 12절은 그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다고 기록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언제나 극적인 방법으로만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령님은 때때로 매우 조용하게 말씀하신다. 누군가에게 전화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실 수 있다. 말을 쏟아내려는 순간 잠잠하라는 감동을 주실 수 있다. 먼저 사과하라는 마음을 주실 수도 있고, 오래 붙들고 있던 상처를 내려놓고 용서하라고 하실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속에 너무 많은 소리가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휴대전화와 뉴스, 영상과 댓글, 사람들의 의견이 하루 종일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온다. 평안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불안을 증폭시키는 내용을 계속 보고 있지는 않은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고 하면서 하루 종일 세상의 소리만 듣고 있지는 않은가. 잠언 4장 23절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판단할 기준은 무엇인가. 첫째, 성경 말씀과 일치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성령님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시므로 성경과 반대되는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죄를 합리화하고, 거짓과 미움과 음란과 교만으로 이끄는 생각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가를 살펴야 한다. 예수님은 성령에 대하여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라고 하셨다. 성령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한다.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드러내고 내 이름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면 다시 점검해야 한다. 셋째, 성령의 열매를 맺는가를 보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성령의 열매라고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면서 미움과 교만과 분열이 커진다면 그것이 정말 성령의 역사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넷째, 기도 가운데 지속적으로 확인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감정이 격해진 순간 떠오른 생각 하나만 가지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다섯째, 믿음이 성숙한 공동체의 조언과도 조화를 이루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성령께 민감하다는 것은 자신의 느낌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평안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편하다고 무조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 다시스로 가는 배 밑에서 깊이 잠들었다. 잠이 들 정도로 편안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은 어려움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때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에는 고통과 희생이 따른다. 예수님도 십자가 앞에서 고통을 느끼셨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셨다. 참된 평안은 폭풍이 사라졌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나를 인도하신다는 깊은 확신에서 온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자기 느낌을 하나님처럼 섬기지 않는다. 말씀을 기준으로 마음을 살피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성령의 열매를 통해 길을 확인한다. 성령님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필요한 것은 더 큰 소리가 아니라 듣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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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단기선교’라는 용어를 다시 생각해 보자!

한국교회에는 ‘단기선교’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다. 여름과 겨울이면 많은 교회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으로 단기선교팀을 보낸다. 그들의 헌신과 수고는 귀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가서 봉사하고 복음을 나누는 모든 활동을 과연 ‘선교’라고 불러야 하는가? 오랫동안 선교는 기독교 서구에서 비기독교 세계로 향하는 일방향적 지리적 이동으로 이해되었다. 복음을 가진 교회가 복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고, 가진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돕는다는 구조였다. 그러나 세계교회의 지형은 이미 크게 달라졌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곳곳에 활력 있는 교회들이 존재하며, 과거 ‘선교지’라 불리던 나라들이 이제는 다른 나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선교는 더 이상 서구에서 비서구로, 혹은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향하는 일방통행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교회에도 중요한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조금 더 많은 돈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가는 것 자체를 선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우리는 가진 사람이고 그들은 필요한 사람이며, 우리는 복음을 가져가고 그들은 받는다”는 오래된 선교관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한 의도 속에서도 문화적 우월주의와 식민주의적 사고가 스며들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선교(mission)와 선교사역(missions)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교회 전체를 세상으로 보내시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포괄적인 부르심이다. 반면 선교사역은 복음의 증언이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미약한 곳으로 의도적으로 나아가 복음을 증언하고, 그곳에 지속적으로 복음을 증언할 공동체가 세워지도록 섬기는 보다 구체적인 사역이다. 이 둘을 구별하지 않고 해외에서 하는 모든 기독교 활동을 ‘선교’라고 부르면 오히려 선교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단기선교’라는 명칭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단기선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새로운 지역에 복음의 증언 공동체를 세우는 선교사역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지역교회와 함께하는 ‘타문화권 협력 사역(cross-cultural partnership)’에 가깝다. 그렇다면 ‘단기선교’ 대신 ‘단기 타문화권 협력 프로젝트’ 또는 ‘타문화권 협력 사역’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 명칭은 단순한 말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우리의 태도를 결정한다. “우리가 선교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주는 사람이고 현지인은 받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지교회와 협력하러 간다”고 말하면 질문이 달라진다. “우리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보다 “현지교회는 이미 무엇을 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를 먼저 묻게 된다. 여기에 중요한 신학적 이유가 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그곳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도착해야 아프리카에서 일하시기 시작하는 분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이미 그곳의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통해 일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곳에 간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기 타문화권 사역에서 주체는 방문팀이 아니라 지역교회가 되어야 한다. 단기팀이 프로그램을 결정하고 지역교회가 사람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교회가 자신의 지역에서 감당하고 있는 복음의 증언을 외부의 교회가 겸손하게 돕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단기팀은 지역교회를 우회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지역교회와 함께 사역해야 한다. 잠시 방문했다 떠나는 사람보다 그곳의 언어와 문화와 사람을 알고, 사역이 끝난 뒤에도 그 자리에 남아 복음을 증언해야 할 지역교회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교회에도 유익하다. 타문화권 협력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교회들로부터 공동체성, 고난 속에서의 신앙, 기도와 예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배울 수 있다. 참된 선교적 만남에는 영원한 ‘주는 교회’와 영원한 ‘받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주고받고, 서로 배우며, 서로를 세워 가는 교회가 있을 뿐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내심은 지배의 방식이 아니라 성육신과 섬김의 방식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문화 속으로 들어갈 때 먼저 말하기보다 듣고, 가르치기보다 배우며, 앞서기보다 함께 걸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의 단기선교도 성숙할 때가 되었다.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간다”에서 “우리는 이미 그곳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선교와 지역교회의 증언에 참여한다”로 바뀌어야 한다. 어쩌면 그 변화는 ‘단기선교’라는 익숙한 이름을 ‘타문화권 협력 사역’이라고 새롭게 부르는 작은 일에서 시작될 수 있다. 선교지에 도착하여 “우리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드릴까요?”라고 묻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분 가운데서 하고 계시는 일에 우리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습니까?” 오늘 한국교회의 단기선교가 새롭게 배워야 할 선교적 자세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김성수 총장] 세상을 닮아버린 교회, 그래도 소망은 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가장 큰 실패는 세상보다 약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과 다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시고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빛으로 세우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이 변화시켜야 할 가나안 문화에 오히려 동화되었다. 우상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따라갔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이스라엘다움”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속에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온 것이 문제였다. 사사기는 이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는 마지막 말씀은 단순히 사회적 무질서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인간의 욕망과 판단이 그 자리를 차지한 시대에 대한 진단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한복판에 살면서 가나안을 변화시키도록 부름받았지만, 오히려 가나안이 이스라엘을 변화시켰다. 이 이야기는 오늘의 한국교회를 다시금 성찰해 보도록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교인 감소와 다음 세대의 이탈을 염려한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 급속한 세속화와 가치관의 변화도 중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세상이 교회를 너무 멀리 떠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너무 많이 닮아버렸기 때문은 아닌가? 세상은 성공을 숫자와 크기로 평가한다. 교회도 교인 수와 예산과 건물의 규모로 성공을 측정해 왔다. 세상은 힘과 영향력을 추구한다. 교회도 때로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을 하나님의 나라의 영향력과 혼동했다. 세상은 편을 나누고 상대를 공격한다. 그리스도인 역시 정치와 이념의 갈등 속에서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언어를 사용한다. 세상은 돈과 성공과 편안함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마저 때로 그것들을 얻기 위한 종교적 수단으로 변질된다. 이런 교회가 세상을 향해 아무리 복음을 외친들 사람들이 그 복음을 진지하게 들을 수 있겠는가. 정의를 설교하면서 내부의 불의를 외면하고, 사랑을 말하면서 서로 미워하며, 섬김을 가르치면서 자리를 탐하고, 천국을 말하면서 세상의 성공을 부러워한다면 복음의 말과 교회의 삶 사이에는 깊은 균열이 생긴다. 어쩌면 오늘 한국교회의 더 심각한 위기는 세상이 교회를 미워한다는 데 있지 않고, 세상이 교회 안에서 자신과 다른 삶을 발견하기 어려워졌다는 데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성경은 이스라엘의 실패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운 반전이다. 사사기의 혼란 이후 하나님은 다윗을 세우시고 그의 후손을 통하여 영원한 나라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셨다(삼하 7:11-16). 하지만 다윗 이후의 왕들마저 실패했고 이스라엘은 결국 포로가 되었다. 하나님의 계획 자체가 무너진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폐허 위에서 예언자들은 놀라운 소망을 선포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실패했다고 해서 자신의 구속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 참된 왕이 오실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할 것이다. 그는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고 마침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사 11:9)이다. 이스라엘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 크다는 선언이었다. 바로 여기에 오늘 한국교회의 소망이 있다. 교회의 소망은 과거의 전성기로 돌아가는 데 있지 않다. 한때 가득 찼던 예배당을 다시 채우고 사회적 영향력을 되찾는 것이 교회 회복의 궁극적 기준일 수 없다. 진정한 회복은 교회가 다시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하나님의 백성답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경쟁할 때 섬기고, 세상이 미워할 때 사랑하며, 세상이 거짓과 타협할 때 진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세상이 약자를 외면할 때 그 곁에 서고, 세상이 돈과 성공을 숭배할 때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성도의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된다. 사업장에서 정직하게 거래하고,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약속을 지키며, 가정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존중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바로 그런 삶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 가운데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지금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할 것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먼저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교회의 미래는 세상보다 더 크고 화려해지는 데 있지 않다. 세상과 다른 공동체가 되는 데 있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다른 가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라는 부르심이다. 교회가 세상을 닮을수록 복음은 희미해지고, 교회가 그리스도를 닮을수록 하나님 나라는 더욱더 선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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