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12(금)

창원성결교회, 예수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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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서부교회, 김현직 목사 위임감사예배

예장(합동) 진해서부교회(김현직 목사)가 지난 8월 6일(토) 오후 2시, 김현직 목사 위임 감사예배를 드렸다. 위임국장을 맡은 양충만 목사(창원왕성교회)의 인도로 드려진 1부 예배는 동부시찰장 이명우 목사(실로암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경상노회 서기 조성래 목사(사랑의엘림교회)가 성경봉독(왕상17:1)한 후 김현직 목사가 부목사로 시무했던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가 ‘세 가지 질문’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이찬수 목사는 말씀에 앞서 “엘리야가 등장하던 시기가 마치 지금 악이 득세하는 시대와 같다”라며 “김현직 목사가 담임 목사로서 해쳐나가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고 힘든 일들이 많을 것인가 걱정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성도들에게 “위임 받는 목사도 인간이고 담임 목회는 초보입니다. 사람하나 없는 이곳에 사명 하나로 내려온 사역자이고 사모입니다. 어둡고 악한 시대에 주의 종이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기다려주시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했다.”라고 전했다. 이찬수 목사는 “온 교회가 아합 같은 악한 왕이 득세하는 시대에 엘리야 처럼 선포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고 그 능력으로 부흥하고 지역을 리드하는 교회로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라며 “△나는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는 사람인가? △나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통제 아래 놓여 있는가?” 라는 세 가지 질문을 늘 되새길 것을 권면했다. 설교 후 이어진 위임 국장 위임식은 양충만 목사가 임 받는 김현직 목사와 교우들에게 서약을 받고 기도한 후 김현직 목사가 진해서부교회 위임목사 된 것을 공포하고 3부 권면과 축하 순서로 넘어갔다. 3부에서는 전 노회장 최호숙 목사(인평교회)가 위임 목사에게, 부노회장 김동수 목사(새누리교회)가 교우들에게 권면을 전하고 전국장로회 회장 김봉중 장로(새누리교회)가 축사를 전한 후 전 노회장 최인수 목사(수산중앙교회)가 격려사를 전했다. 이어, 경상노회 노회장 이원평 목사(우리들교회)가 김현직 목사에게 위임패를 증정하고 김현직 목사는 답사를 통해 이찬수 목사와 경상노회 선배 목사들, 교우들과 가족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맡겨주신 교회를 성실히 사랑으로 섬기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겠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겸손한 목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다짐의 말을 전했다. 또 분당우리교회에서 함께 했던 성도들이 축가로 김현직 목사를 축하하고 당회서기 최은준 장로가 광고를 전한 후 이원평 목사가 축도함으로 모든 순서를 마무리 했다. 설재규 기자

수산중앙교회, 장로·권사 취임 감사예배

예장(합동) 수산중앙교회(최인수 목사)가 지난 7월 30일(토) 오전 11시, 밀양시 하남읍 수산중앙교회당에서 장로 및 권사 취임 감사예배를 드렸다. 당회장 최인수 목사(수산중앙교회)의 집례로 드려진 1부 예배는 창원시기독교장로총연합회 대표회장 최주철 장로(서머나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최인구 목사(남기리교회)가 성경봉독(딤전6:11-12)한 후 경상노회 전 노회장 최호숙 목사(인평교회)가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2부 취임식에서는 최인수 목사가 취임하는 장로 1명과 권사 5명을 호명하고 취임자와 교우들에게 각각 서약을 받고 부노회장 김진곤 장로(창원왕성교회)가 취임자를 위한 기도 후 최인수 목사가 양희재 장로, 김매화, 이경자, 정정자, 이현숙, 한미경 권사가 수산중앙교회 시무 장로·권사된 것을 공포했다. 3부 권면 및 축하 순서는 강득송 목사(동읍교회 원로)가 취임받는 장로에게 노회 서기 조성래 목사(사랑의엘림교회)가 권사에게 권면의 말을 전하고 양충만 목사(창원왕성교회)가 교우들에게 권면의 말을 전했다. 또 전국장로회 회장 김봉중 장로(새누리교회)가 격려사를 전하고 이보길 목사(예수은혜교회)와 권순용 목사(밀양서부교회)가 축사를 전한 후 교회가 준비한 기념패 및 꽃다발을 증정하고 경상노회 장로회 수석부회장 송태엽 장로(새누리교회)가 장로 취임한 양희재 장로에게 장로 뱃지와 기념패를 증정하고 노회장 이원평 목사(우리들교회)가 축도함으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다음은 취임자 명단이다. ▲장로 취임 : 양희재 ▲권사 취임 : 김매화, 이경자, 정정자, 이현숙, 한미경 김현주 국장

창원성결교회, 예수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기성 창원성결교회(우재성 목사)가 지난 7월 29일(금)부터 30일(토)까지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교방동 무학산 자락에 있는 무학산기도원(조상률 목사)에서 여섯 번째 ‘예수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무학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 무학산 기도원은 1960년대부터 지역의 복음화와 성령운동의 중심으로 지금도 많은 성도들이 찾아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는 곳이다. 그런 무학산 기도원이 지난 2006년 8월, 시설의 노후로 전소 하였던 것을 3년여 동안 창원성결교회가 중심이 되어 성결교단의 성도들과 교회들이 기도원을 위해 힘써 2009년 8월에 봉헌 감사예배를 드리며 새롭게 기도원을 정비했다. 이후 13년의 세월이 흘렀고 산 속에 있는 건물의 특성상 습기와 곰팡이, 벌레 등으로 시설물이 노후화 돼 파손된 곳이 많아졌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는 수시로 보수하며 관리가 됐으나 2년간 사람의 손길이 세밀하지 못해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산 속의 기도원을 관리하시는 조상률 목사 한 사람의 역량만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워 기도하던 중 창원성결교회의 예수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하나님께서 연결해 주셨다. 창원성결교회는 코로나 사태 이전 별빛교회, 대곡교회, 초동교회, 봉황교회, 청운교회에서 ‘예수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여름사역을 실시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2년간 실시하지 못했고 이번 기회에 조관행 원로 목사님과 우재성 담임 목사를 비롯한 청·장년 100여 명이 참여해 각자의 받은 은사대로 프로젝트를 섬겼다. 창원성결교회는 리모델링 계획을 세우고 3~4회 사전답사를 통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후 총괄 기획과 진행을 남전도연합회(회장 원영규 집사)와 여전도연합회(회장 김명희 권사), 청년회(회장 윤경현)가 함께 기도원 내부 도배와 전기 공사(전선 및 소켓, 차단기 박스, 환풍기 등 교체), 페인트 칠, 계단 녹 제거와 페인트칠, 청소, 화장실 및 식당 수도 정비 등의 사역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휴가를 내어 재능 기부를 아끼지 않았으며 기도원으로 향하는 진입로와 길목에 기도원 방향 표지판 및 간판, 야자 매트를 설치했다. 또 프로젝트 중에도 전도와 선교의 활동도 잊지 않았다. 특별히 창원성결교회 전도새가족부에서 함께해 등산객 400여 명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스크 및 생수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창원성결교회 전 교인이 1인당 1만원의 후원 구좌를 통해 물질의 후원을 더하고 기도와 마음으로 함께하며 직접 참여한 봉사자들은 무더운 여름 날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섬김의 기쁨을 누렸다. 창원성결교회는 이번 프로젝트에 이어 교회 학교 캠프와 수련회 후 2차 성전 청결 프로젝트로 기도원 내부 대청소와 장의자 도색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예수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는 창원성결교회 우재성 목사의 ‘2015년 여름수련회를 봉사수련회로 진행하자’는 제안을 당회가 기쁨으로 수락해 온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이뤄지고 있다. 설재규 기자 <창원성결교회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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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기총, 제4차 7회 미스바성회

사단법인 경남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경은 목사, 이하 경남기총)의 미스바성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미스바성회는 경남기총의 주최로 지난 1월부터 매주 목요일 10시 한 끼 금식과 함께 지금까지 이어져와 지난 8월 11일(목), 순복음진주초대교회에서 ‘제4차 7회 미스바성회’를 끝으로 모두 마무리 됐다. 11일 미스바성회는 경남기총 사무총장 김성권 목사(새진해교회)의 대표기도와 인도로 시작해 명예회장 박정곤 목사(고현교회)가 ‘한민족의 시대적 사명’(시33:12)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박정곤 목사는 지난 수년간 경남지역에서 악법 제정을 저지해 온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며 그것이 우리 지역의 사명이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사명을 구하고 생명을 위해 주님 위해 복음 위해 남김 없이 열심을 쏟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박 목사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기쁨과 자랑이 되길 기도하길 바란다. 그런 교회와 인생 되길 바란다.”고 전하기도 했다. 설교 후 대표회장 이경은 목사의 인도로 이어진 기도회는 그간의 죄를 회개하며 나아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길 권면하고 이경은 목사가 축도함으로 기도회를 마쳤다. 기도회 후 지금까지 미스바성회를 개회한 교회와 말씀을 전한 강사를 소개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촬영과 방송 등으로 수고하신분들과 참여한 성도들에게 영상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사무총장 김성권 목사가 광고하고 모든 순서를 마무리 했다. 설재규 기자

창기장총, 일사각오 오페라 출범식

박완수 도지사 참석 인사 및 축사 전해 창원시의원들 함께 자리해 축하 창원시기독교장로총연합회(대표회장 최주철 장로, 이하 창기장총)가 지난 7월 28일(목) 오후 6시 창원시 성산구 그랜드머큐어앰버서더 창원 빌라드룸에서 ‘2022년 창작 오페라 일사각오 출범식’을 가졌다. 출범식과 경건회에서 앞서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인사와 함께 축사를 전하고 조직위원장 김기준 장로(회원동부교회)의 인도로 시작해 창원기독교연합회 회장 제인호 목사(가음정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예장(통합) 경남노회 노회장 손태원 장로(봉덕교회)가 성경봉독(행4:19)한 후 창원시기독교연합회 대표회장 이창교 목사(상남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판단하라’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이창교 목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길을 갈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길 바란다”고 전하고 예장(고신) 경남노회 신진수 목사(한빛교회)가 축도함으로 경건회를 마쳤다. 이어진 발대식은 총괄기획 최문욱 장로(양곡교회)의 사회로 사무총장 신이철 장로(동창원한빛교회)가 참석자 및 내빈 소개를 하고 주기철목사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가 개회사를, 창기장총 대표회장 최주철 장로(서머나교회)가 인사 및 오페라 취지를 설명한 후 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경은 목사(진주초대교회)가 격려사를 전하고 창원특례시 구진호 문화관광국장, 경남동부보훈지청 박현숙 지청장이 축사를 전했다. 이어, 최문욱 장로가 함께 자리한 창원시의원을 소개하고 오페라에서 주요 배역을 맡은 출연진을 소개하며 총감독을 맡은 김동순 장로(서머나교회)가 인사를 전한 후 명예대회장 임명곤 장로(창원세광교회)가 만찬기도 함으로 모든 순서를 마무리 했다. 한편, 창원시기독교장로총연합회와 항일독립운동가주기철목사순교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일사각오창작오페라 조직위원회가 주관하며 경상남도와 창원특례시가 특별후원하는 ‘창작오페라 일사각오’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항일 운동을 펼치다 순교한 항일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의 신앙정신과 애국애족 및 항일독립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19년 갈라콘서트로 시작해 작년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창원에서 첫 오페라 공연을 가졌으며 오는 9월 24일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두 번째 그 막을 연다. 설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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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동식 목사의 〔‘통합기념 한마음교회 유감’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에 대한 반론

먼저 고신 경기중부노회 지역에 속한 ‘통합기념 한마음교회’(이하 한마음교회)에 대한 경기중부노회의 행정 처리에 대하여 존중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통합기념 한마음교회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마음교회는 일반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그 의미는 전적으로 경기중부노회에 소속된 교회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총회 차원에서 정책적인 지원과 헌금, 전국 교회의 협력이 들어간 명실공히 총회가 협력해서 세운 교회입니다. 따라서 경기중부노회의 바른 행정 처리들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총회가 결의한 사항과 통합 정신, 그리고 통합 준비위원회의 결의와 상반된 행정 처리에 대해서는 총회원 모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교회임을 명백히 밝힙니다. 그리고 통합의 한 축인 (구)고려의 목사들이 행정처리가 잘못되었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명백한 권리입니다. 또 다시 분명히 밝히는 것은 이 이의제기가 경기중부노회에 대한 이의가 아님을 주장합니다. 김동식 목사가 기고한 <‘통합기념 한마음교회 유감’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에 대한 재 반박문입니다. 그리고 통합기념교회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기 위한 주장입니다. 따라서 <‘통합기념 한마음교회 유감’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라는 김동식 목사의 글에 대하여 이렇게 주장합니다. 1. 통합기념 한마음교회는 유일무이한 통합기념교회입니다. 2. 한마음교회는 안양일심교회 40주년기념교회나 지교회가 아닙니다. 라는 소제목 1과 2에 대한 반론 통합기념 한마음교회에 현판, 단체이름이 걸려있기 때문에 통합기념교회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글의 주장자는 이렇게 허울 좋은 겉모양밖에는 주장할 것이 없습니다. 현판과 단체 이름이 들어가 있으면 뭐합니까? 통합의 한 주체인 (구)고려는 통합이 아닌 상처만 가득한데 말입니다. 이유는 총회 통합추진위원회의 결의대로 (구)고려의 담임목사가 위임목사는커녕 당회장권도 한 번 받지 못한 교회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현재는 안양일심교회 부목사 출신을 후임목사로 보냈습니다. 통합기념교회의 통합정신을 단 1%라도 생각했다면, 이런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안양일심교회가 헌신을 많이 한 것이 아니라 안양일심교회가 세우고 싶은 교회에 총회가 헌금한 목적헌금을 가져다 쓴 결과 외에 달리 무엇이 있습니까? 통합추진위원회 제12차 회의 회의록에 보면, 1년 안에 위임목사로 세우는 것을 권고하기로 했는데, 위에 말한 대로 위임목사는커녕 당회장권도 한 번 받은 일이 없이, 안양일심교회 부목사에게 교회 담임권이 넘어갔습니다. <참고자료> 제12차 회의 : 2018 년 11 월 20 일(금) 오후 1시 한마음교회당(식당 ; 둥근상시골집) ⑦ 기념교회 이성용 목사를 1년 안에 위임목사로 세우는 것을 위원들이 좋게 여겨, 해 노회와 기념교회 임시당회장에게 시행하도록 권고하기로 결의하다. 3. 당회장권을 한 번도 준 적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라는 소제목 3에 대한 반론 3)-1의 주장은, 팩트체크-1대 담임목사와-결과 팩트가 아닌 거짓이라 반론 가치가 없습니다. 3)-2의 6가지 주장은, 이렇게 일심교회 당회가 결의했는데, 김홍석 목사가 통합기념교회에 이런 행동을 했다면, 오히려 김홍석 목사가 일심교회 당회의 결의를 위반한 것입니다. 1년만 당회장권을 달라고 했던 김홍석목사가 3개월 만에 당회장권을 다른 목사에게-그것도 1대 담임목사보다 후배목사에게-이임한 것을 보면 그 진위의 정당성이 판단됩니다. 그에 더하여 2년 동안 6회의 당회장권을 바꿨다는 것(팩트입니다)은, 기본상식에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명백한 팩트인데, 뭐가 행정적 근거와 사실이 아닌지 설명해야 합니다. 4. 옛 고려 측 목사가 담임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라는 소제목 4에 대한 반론 한마음교회 ‘1대 담임목사의 과오’ 때문이라는 주장은 시각에 따라 달리 평가할 수 있으며, 재론의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리고 1대 담임 이성용 목사는 수원사명교회(상가 15평, 3-4명의 교인)를 28년간 한결같이 목회했고 예배당을 건축하고 당회를 구성한 목사입니다. 큰 교회는 아니지만, 신실한 목회자임을 28년간의 목회에서 검증된 목사입니다. 그런 목회자가 2년 만에 당회장이 6번씩 바뀌는 상황에서 무너져 간 것이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4-2) 통합기념 한마음교회 제2대 담임목사 청빙에서, 지원자 21명 중 (구)고려 측 목회자가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던 사실에 대하여, 왜 그렇게 되었지 한 번이라도 생각하셨습니까? 굳이 밝히면 (구)고려 측 목사들의 상처와 반발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해주는 메시지입니다. 5. 교단 70주년을 맞아 통합기념교회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역사의 역행입니다. 6. 무엇보다 이 문제는 고신 총회 제 71회 총회에서 모두 화합 하에 이미 처리 된 일입니다. 라는 소제목 5와 6에 대한 반론 제71회 총회에서 70주년 기념교회에 통합정신을 담아 경기북부노회 지역에 교회를 다시 세우기로 한 안건을 임원회에 맡겨 처리하도록 결의했습니다. 김동식 목사는 처리가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처리가 되었으면 왜 이런 결의를 총회가 다시 했습니까? 총회 선거를 앞둔 마당에 정당한 근거가 없이 정치 이슈화했다고 합니다. 이 재 반박 글을 쓰면서도 저는 김홍석 목사의 거짓말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박 글을 쓰거나 고소, 고발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했다고, 전임 총회장 CH목사와 전 통합추진위원 O목사에게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파기하고 하루 만에 반박 글을 버젓이 신문에 게재했습니다. 이렇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분이 부총회장 되면 고신 총회가 어디로 흘러가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분이 고신 총회 부총회장에 출마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고신의 앞날이 심히 우려됩니다. 손순호 목사 약력 현) 한강사랑의교회 개척 후 27년간 목회 (구)고려 경인지방 제3대 SFC 위원장 경인지방 SFC 간사 역임 서경노회 SFC 지도위원장 역임 (구)고려 경인노회서기 역임 경기서부노회 서기 역임 미주고신 복음대학교 목회학 박사(D.MIN) ※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특별기고] ‘통합기념 한마음교회 유감’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 본지는 반론권 보장을 사유로 김동식 목사의 반론문 게재를 수용하여 13일(토)에 기고문을 게재할 것을 약속하였으나 김동식 목사는 본지 편집인의 개인 휴대전화로 협박성 문자를 보내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속히(2022년 8월 12일 18시까지) 반론을 게재해 줄 것을 촉구하며, 반론이 게재되지 않을 경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는 물론, 명예훼손과 정신적피해에 대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임을..." 또한 타 기독 언론 매체를 통하여 본인의 기고글을 게재하는 과정에서 본지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악의적인 글을 실었다. 뿐만 아니라 타 기독 언론 매체 기사 입력 시간이 '2022년 8월 12일 12시 56분' 으로 김동식 목사가 본지에 게재를 요구하며 커트라인으로 제시한 '2022년 8월 12일 18시까지' 에 대한 약속은 스스로 지키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본지 경남기독신문은 향후 합당한 절차를 통하여 엄중히 대처할 것이다. 그러나 구독자의 알 권리와 정당한 논쟁을 보장해야 할 언론의 사명을 다하고자 요청한 반론문은 게제하는 바이다. <경남기독신문 편집인> 경남기독신문 2022년 8월 2일자 <[특별기고] 통합기념 한마음교회 유감>의 글은 행정적 근거와 사실과도 전혀 다른 사실입니다. 마치 ‘시뮬라크르-Simulacre’와 같이 본질을 복제한 가짜로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한 허상의 글이기에 그 당시 직접 경험하고 개입된 일이기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어 경기중부노회 임원들의 의견도 듣고 이 글을 씁니다. 아울러 고신 총회 경기중부노회는 행정적 오류가 없음을 밝힘과 동시에 특별기고자는 한번도 노회나 한마음교회를 수습한 당시 임시당회장들에게 서류나 사실 확인을 위해 요청한 바가 없음은 일방적 생각과 주장으로 글을 기고하였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1. 한마음교회는 유일무이한 ‘통합기념교회’입니다. 한마음교회가 세워지는데는 안양일심교회 J 안수집사의 13억 상당의 종교부지를 헌물한데서 시작됩니다. 2017년 12월 ‘총회통합기념교회 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김성복 부총회장’의 요청으로 안양일심교회 당회는 기꺼이 통합기념교회로 드리기로 하여 세워졌고, 2019년 12월 22일 설립예배를 드려졌습니다. 지금도 현관 현판에 개인, 교회, 단체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교회 홈페이지에서도 확인되고 교회 주부에 ‘통합기념교회’에 기록되어 성도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 한마음교회는 안양일심교회의 40주년 기념교회나 지교회가 아닙니다. 안양일심교회 40주년 기념교회나 지교회라는 말은 말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물론 종교부지 헌물하였고, 성도들이 10억 헌금 하였지만 안양일심교회 주보, 교회요람, 교회연혁 등 어디에도 ‘40주년 기념교회’나 ‘지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더구나 2018년에 설립되었고, 40주년은 2020년이기 때문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더구나 분명한 것은 노회에서도 한마음교회는 통합기념교회로 되어 있습니다. 3. 당회장권을 한번도 준 적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1) 한마음교회 1대 담임 목사가 선정되고 안양일심교회는 장로 2인과 성도들을 보내기로 하고 노력하였으나, 1대 담임 목사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장로 2인이 가고 성도들이 함께 하였다면 당회장이 아니라 위임목사로 세워졌을 것입니다. 그렇지 몫해서 전도 목사로 파송되어 당회장을 맡지 못한 것입니다. 2) 첫 번째 당회장이었던 김홍석 목사는 한마음교회 1대 담임 목사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하였습니다. 2018년 12월 30일 첫 공동의회에서 당회장이 담임 목사에게 위임한 내용이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성례권(학습, 세례, 입교, 유아세례)을 담임 목사에게 위임한다. (2) 제직회 일반 사무를 담임 목사에게 위임한다.(예산 편성권, 추가경정 예산 편성권, 예산에 관한 지출, 제직회를 경유한 각종 특별회계 지출) (3) 부목사 청빙을 제외한 교역자 및 임시직원(서리집사)의 임명을 담임 목사에게 위임한다. (4) 경기중부노회 및 총회를 제외하고 대외적으로 교회를 대표할 수 있도록 위임한다. (5) 본 교단 소속목사에 한하여 강도권을 담임 목사에게 위임한다. (6) 정직이하의 치리권을 담임 목사에게 위임한다 로 결의 명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당회장과 같이 위임하여 준 것입니다. 3) 시찰회와 노회는 당회장권을 주려고 하였으나 담임 목사 사역 중 전임 사역교회에서 재정문제 등 여러 문제를 노회에 제기하게 되어 당회장권이 재론 되었습니다. 4. 옛 고려 측 목회자가 담임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1) 1대 목사의 과오 때문입니다. 누구도 한마음교회 1대 담임 목사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목회 사역 과정에서 심각한 성도와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겨우 화해와 봉합이 되었지만 2020년 2월 16일 제직회와 공동의회에서 다시 격화되어 내분이 확산 되었습니다. 2차 문제의 해결방법으로 J 당회장의 중재로 3가지 합의를 하였지만 담임 목사의 일방적 합의 파기와 함께 교회 출입 금지 시키고 참으로 고통스런 자살소동까지 이어져 교회는 끝없는 파국으로 빠졌습니다. 총회 재판국의 중재와 임시 당회장과 협조 당회의 결단으로 재정지원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2) 2대는 청빙은 교회의 고유한 행정권한입니다. 청빙위원회가 구성되었고 2020년 8월 기독교보에 ‘한마음교회 청빙공고’를 통해 공개적 청빙절차를 밟았습니다. 총 21명이 청빙서류를 제출하였고 그 중에는 옛 고려 측의 목회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옛 고려 측의 목사가 제2대 한마음교회 담임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억지입니다. 21명의 지원자 중 2020년 9월 27일 청빙위원회에서 21명 중 4명으로 압축하고 면접자 2명을 최종 선정하였고 최종 결적을 내리지 못하고 1주일 기도 후 9월 26일 낮 12시 무기명 투표로 2대 담임 목사를 선정하였습니다. 3) 현재 한마음교회는 2대 담임 목사를 중심으로 회복되어 출석교인 130여 명에 이르는 은혜로 무너진 교회가 회복되어 있습니다. 5. 교단 70주년을 맞아 통합기념교회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역사의 역행입니다. 전국 노회와 교회의 후원금 13억을 말하는데 내야 할 분은 따로 있습니다. 1대 담임 목사를 잘못 세운 책임과 관계된 교회들과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경기중부노회 소속 안양일심교회 김홍석 목사와 당회 그리고 성도들은 통합기념교회를 위해 종교부지 헌납, 10억 헌금, 1차 성도 파송, 2차 성도 파송하여 한마음교회를 살린 교회입니다. 이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정치적 이슈화하여 거론하는 것은 목회자의 일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6. 무엇보다 이 문제는 고신 총회 제 71회 총회-2021년 9월 28일(화) 오후 1시 ~ 30일(목)-에서 모두 화합 하에 이미 처리 된 일입니다. 이것을 다시 거롢는 것은 총회의 결의를 번복하는 처사이고, 고신총회와 역행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본인이 총회에서 화합과 통합을 발표한 사람입니다. 아울러 총회 선거를 앞둔 마당에 정당한 근거 없이 정치적 이슈화하여 유포하는 것은 총회를 어지럽히는 것이고, 도리어 통합 정신을 고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반하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고신 총회는 한국교회의 보루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로 총회를 어지럽히고 여론을 조장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김동식 목사 약력 · 현)충훈교회 담임 · 목회학 박사 · 전임 경기중부노회 노회장 · 미주목회 13년 · 말씀회복연구소 소장 · 월간 광야 발행인 · 칼럼리스트 · CMF 전문가정사역자 ※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호숙 목사] 렌탈(rental) 문화 시대의 허(虛)와 실(實)

지금 시대는 렌탈(rental)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내 것, 내 주택, 내 땅이 있어야 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빌려서 사용하는 렌탈의 시대가 도래했다. 스마트폰 자동차,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복사기, 침대, 아이들 장난감까지 실용 제품들은 거의 다 렌탈 가능이라고 보면 된다. 왜 렌탈을 원하는 것일까? 한 번에 목돈을 투자해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기에는 경제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기존 제품에 금방 싫증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심리 특성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것에 대한 욕구가 발동하며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품을 렌탈하는 것이다. 소유보다는 공유가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석호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욕구와 현실의 괴리가 렌탈(rental) 풍조로 발전한 것” 이라고 하였다. 렌탈 시장의 끝은 어디인지 궁금해 진다. 금융계 전문직에 종사하는 최 모(여 36)씨는 시급(時給)남편 렌탈을 했다고 한다. 시급 남편은 1시간당 1만 5천원~2만 5천원을 받고 진짜 남편인 것처럼 역할 대행을 해 주는 사람이다. 최씨는 업무 파트너들과의 모임에 가면서 “결혼하지 않은 티”를 내기 싫어서 시급 남편을 렌탈했다고 한다. 주 고객층인 골드 미스들은 부동산 계약 같은 중요한 일을 할 때도 찾고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을 때도 렌탈하고, 휴일을 같이 보낼 사람이 없을 때 시급 남편을 렌탈한다고 하였다. 성경에도 인력 렌탈의 문화가 소개되는데 마태복음 9:18~26에 한 관리의 딸이 죽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셔서 죽은 딸을 보고 “이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고” 한 사건이 있었다. 관리의 집에서 장례를 치르기 위해 피리를 부는 자(장례식장에 고용되어 악기를 연주하는 자) 와 떠드는 자들(돈을 받고 곡하는 자들)을 렌탈 하였는데 이 사람들이 인력 렌탈의 원조는 아니더라도 인류 역사에 오래된 렌탈 문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언제부터인가 성행되고 있는 대리모(代理母 - surrogate mother) 개념도 부정적 인력 렌탈 개념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 대리모를 법적으로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는 일부 지역에 따라 합법이고, 영국과 호주, 아일랜,드 덴마크, 그리스,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대리모가 합법이다. 세상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대리모를 합법으로 선언한다 해도 성경적 개념으로는 합법이 되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예견하건대 성도를 대신해서 교회 예배 출석해주는 렌탈 성도가 어쩌면 탄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종합해 보면 실용 제품 렌탈 문화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하지만 인력 렌탈일 경우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가짜 남편 렌탈이라든가, 가짜부모 대행, 대리모 렌탈 등 부정적인 요소도 많다. 세상 문화는 편리한 대로 따라가지만 기독교 문화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행위라면 역행할 수 있어야 믿음의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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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나그네 인생

우리는 종종 이 세상은 우리의 본향이 아니요, 우리는 그저 나그네 인생을 살 뿐이라는 말을 합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라는 노래도 한 때 유행을 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발붙이지 않고 나그네 인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과 신앙의 열조들이 이 땅에서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히 11:9). 아브라함도 헤브론에 있는 헷 족속에게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창 23:4)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약속의 땅 가나안 아브라함의 ‘우거하는 땅’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창 17:8). 이 땅은 또한 이삭과 야곱이 우거하는 땅이기도 했습니다(창 28:4, 37:1). 우리도 이들을 모범으로 삼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생각하며 짧은 인생 나그네처럼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그네처럼 사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이 땅은 허망한 것이니 오직 영원한 하늘 나라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삶일까요? 나그네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과 열조들이 언제나 소위 내세의 영적인 문제에만 사로잡혀 생활 했을까요? 아브라함의 가슴을 환희와 즐거움으로 채워준 위대한 약속이 단지 하나님과 천군 천사들과 더불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뿐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누렸던 축복은 오히려 땅의 기름진 축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2장에서 이 내용을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이 지구 전체 모든 족속을 향한 큰 축복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생육하고 번창하여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실제로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왜 이 땅에서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성경은 약간의 대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창 12: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에 이미 거하고 있던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과 사악함이 이미 하늘에 들렸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 땅의 거민들과는 거리를 두고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가나안 거민들은 결국 이 약속의 땅에서 물러가야 하는데 아직 그런 때가 되지 않았기에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은 그들 가운데 거하면서도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아모리 족속이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않았던 것입니다(창 15:16). 가나안 족속이 약속의 땅에 살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았다고 한다면 다윗의 시대에는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다윗이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때에 드린 그의 아름다운 기도를 생각해 봅시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 29:15). 여호수아와 사사기의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하여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거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시대에도 가나안 족속들이 아직도 그 땅에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왕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축복을 누리면서도 자신을 열조와 다름없이 나그네요 우거한 자로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아가는 이 삶이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의 신분이어야 합니까?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이 땅은 나의 본향이 아니다”라고 노래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만을 소망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일까요?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살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8:20)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도 본향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창조 세계의 회복을 소망하고 도래할 새 예루살렘과 새 땅을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산업화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우거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는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살지 않으니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인종적으로 가나안 사람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종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셈, 함, 야벳 족속을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는 지금 국제결혼과 문화적 교류, 그리고 세계화를 통해서 하나가 되는 지구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가나안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종적으로나 지리적인 구분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나안 사람들에 저주가 임하도록 기도할 수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과업은 인종적으로 가나안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땅 끝까지 모든 민족과 방언과 모든 족속들을 향해 하나님 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족속과 민족과 방언을 향해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그네요 우거자라는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종적으로 가나안인 민족들을 향해서 저주하거나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삶이 아니라 구원과 용서와 사랑을 주기 위한 그리스도의 초대를 선포하면서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이미 우리에게 임했고 앞으로 온전히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도록 초대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죄악된 삶의 영역에서 본토인이 아니라 진정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면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진정한 왕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땅 끝까지 선포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김성수 총장] 영유아가 나라의 미래다!

몇 년 전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린 영국의 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내용인 즉 현대사회의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로 인해서 인형과 유모차 제조 산업이 각광받는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초롱초롱한 눈빛의 아이들이 없는 텅 빈 학교 교실과 해맑은 웃음을 머금고 뛰노는 순박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이 없는 학교 운동장과 동네 놀이터는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느껴집니다. 결혼한 젊은 부부가 유모차에 인형을 싣고 산책하는 모습을 그린 장면은 읽는 이로 하여금 소름을 끼치게까지 만듭니다. 애기를 출산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기를 갖고 양육하고 싶어 하는 모성애마저 제거할 수는 없으니 애기를 대체할 수 있는 인형산업과 유모차 산업이 각광을 받게 된다는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이 공상적인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곳곳에 산아제한을 독려하는 표어들이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 당시에는 우리 나라의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수)이 6.0명이었습니다. 한 여성이 평균 6명씩 아기를 낳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와 같은 끔찍한 출산제한 구호가 등장할 만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호가 등장한지 반세기만에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가장 빠른 인구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합계출산율은 1970년 4.53에서 1980년 초 인구 대체율인 2.1 이하로 떨어진 후, 계속된 출산 감소로 2004년 1.15명, 2017년 1.05명, 2018년에는 0.98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합계출산율이 0명대인 국가는 우리 나라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출산율 하락은 곧 다시 학령인구 감소로 이어지게 됩니다.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학교가 많아지게 되고 생산연령인구 또한 감소하게 되는 암울한 전망이 현실이 되고 가고 있습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앞으로 2년 뒤에는 전국 대학 70곳 이상이 폐교 위기에 처할 것으로 교육부는 전망하고 있습니다. 의과대학과 간호대학 등 취업이 비교적 잘 되는 학과를 제외하고는 많은 학과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또한 건강보험 및 연금 등 과중한 노인부양 문제를 야기 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젊은 노동인력의 부족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 시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출산을 장려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 내어야 합니다. 소득수준이나 노동시장 참여 등의 조건 없이 5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가정에 일정액의 양육보조금을 제공하거나 출산친화적 세제 도입, 출산 및 육아 휴직 등의 방법은 출산과 노동공급을 동시에 장려하는 방안이라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수에 따라 과세표준을 낮춰 주는 소득공제나 세액을 감면해 주는 출산 친화적 세제는 출산 장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세제의 경우 피부양자 공제 및 교육비 공제 등으로 자녀수에 따른 공제 혜택을 주고 있으나 그 혜택은 매우 한정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는 미국의 자녀 및 피부양자 세액공제와 근로소득장려세제, 영국의 자녀세액공제와 근로소득장려세제 등 출산친화적 세제와 같은 다양한 방법을 도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정책 등은 정책 비교를 위한 모의실험에서도 모두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회 문제들은 정치권이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내야 할 본질적인 문제들입니다. 그런데도 곧 물러나야 할 현직 대통령과 앞으로 5년간 국사를 맡아야 할 당선인의 힘 겨루기 모습은 국민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때로는 속이 터지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야 할 피치못할 이유가 있으면 국민들에게 좀 소상히 밝혀서 왜곡되거나 과장된,또는 가짜 뉴스가 떠 돌지 않도록해야 합니다. 봄 벗 꽃이 피기 전에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주지 않아도 되니까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대통령 부인 의상이 178벌이니 구두가 몇 컬레라는 허접스러운 뉴스도 정말 우리를 짜증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대통령 부인이면 더 검소한 생활 모습을 보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등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온갖 소리들이 다 들립니다. “평생에 옷 몇 벌 갖고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마르코스 부인 이멜다하고 꼭 같네…”, “운동화한 개 사면 2년은 신는데…”, “육영수 여사가 한복 입으면 우아하기라도 한데…”, “대통령이 왜 사채는 빌려 쓰느냐?”. 정치인들의 언행도 너무 저질스럽습니다. 청와대 이전을 반대하면서 청와대 지붕을 붉은 색으로 물들여 페이스 북에 올리는 모습도 참 치졸하고, 여당과 야당 대변인들의 담화에도 합리성과 고상함이 없습니다. 이제는 정치인들은 물론 우리 모두가 좀 품격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혼란한 국제정세를 보면서 공의와 샬롬의 가치를 구현하는 정책을 구상하고 젊은 이들이 일자리를 마련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오염된 하수를 식수로 사용해야 하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생각하고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는 지구촌의 어려운 나라 백성들을 가슴에 품을 줄 아는 선진사회의 가치관을 구현해 나가야 합니다. 출산장려의 보다 근본적인 정책도 결국은 영유아에 대한 국민 모두의 가치관 변화를 모색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아동학대와 낙태, 어린이 유괴와 영유아 살해와 같은 생명경시 풍조를 흉악한 범죄로 단정하고 추방해야 합니다. 모든 종교는 가정을 중요시하고 자식을 귀하게 여기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했으며,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에 있는 화살과 같아서 이것이 그의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며 성문에서 원수와 담판할 때에도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CTS(기독교TV)가 벌이는 “영유아가 나라의 미래다!”는 출산장려운동은 찬사를 보낼만합니다. 이제 한 달 안에 178벌의 옷을 정리해야 하는 대통령 부인과,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위해 예비비를 받아내야 하는 대통령 당선인 모두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젊은이들이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여 애기를 가지고 단란한 가정을 꾸밀 수 있는 소망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 지 진지하게 한번 구상해 볼 수 있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김성수 총장] 공의가 하수 같이…

현대사회는 과학과 과학 기술 등 여러 면에서 굉장한 승리를 쟁취한 사회이면서도 동시에 전례 없는 부정과 부패, 불공정, 불의, 고통 그리고 비극에 깊이 빠져있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방대한 선택의 범위를 구가하면서 자국의 시민들은 거대한 자유를 누리게 하는 바로 그 정부가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에 달하는 사람들을 영속적인 가난의 상태에 머물도록 만들고,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정치테러와 고문이 그들의 항존적 환경이 되도록 지원하거나 그러한 불의를 자행하는 부정의한 현실이 바로 현대사회의 한 심각한 비극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함께 분노하고 가슴 아파하며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 같이 흐르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하늘의 평강(샬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공의가 없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평강의 삶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기쁨과 떨림과 환희가 있는 샬롬은 공의로운 상태 하에서만 피어날 수 있습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많은 조건들과 상황들은 공의도 마찬가지로 깨뜨려 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공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상호간의 의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는 공의를 추구하는 사회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는 언제나 샬롬의 사회를 지향합니다. 그러나 공의를 추구하지 않는 사회는 샬롬의 성취를 가로막습니다. 예를 들어, 방직 공장 안에 어린아이들을 가두고, 자연 자원들을 함부로 낭비함으로 후손들로부터 그것을 착취하며, 자국 영토의 확장을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국가는 불의한 국가이며, 이와 같은 사회와 국가는 공의를 파괴하며 필연적으로 샬롬의 성취를 가로막는 흑암의 세력입니다. 그렇다면 공의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공의라는 단어를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냉담하고 원칙을 고수하는 비인간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의와 관련하여 연상되는 것은 재판 과정, 법적 절차, 감옥 등과 같은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공의는 본질상 권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공의와 권리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향유할 수 있을 때 그 사회는 공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권리라는 단어 역시 공의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소 냉담하고 비인간적인 어떤 것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권리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연상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 천부적 인권, 유엔 회원국의 권리, 권리 헌장 등과 같이 다소 추상적이며 고양된 권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권리의 의미를 공의와 관련하여 아주 다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개인이 어떤 것에 대해 권리를 가진다라고 할 때 그것은 윤리적으로 합법적인 권리, 그것을 실제로 향유함에 대한 주장, 그리고 그 어떤 것을 누림에 있어서 직면할 수 있는 위협으로부터 보장받을 것에 대한 주장을 의미합니다. 권리는 다른 이에 대해 윤리적으로 합법적인 권리입니다. 권리는 다른 이에 대해 의무와 책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모든 책임이 권리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모든 권리는 책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권리는 또한 그것을 실제로 누림에 대한 주장입니다.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그 권리를 실제로 향유하지 못하면 그 법은 공허한 것입니다. 그리고 권리는 그 어떤 것을 누릴 때에 일반적이거나 심각한, 그러나 고쳐질 수 있는 위협으로부터의 사회적보장을 주장합니다. 위협에 대해서 보장하라는 주장을 권리로 보는 것은 권리가 사회에서 약자와 자신을 변호할 수 없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상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권리를 우리는 자기 방어의 권리, 자유의 권리, 발언과 참여의 권리, 그리고 안전과 생계의 권리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안전과 생계의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안전과 생계권은 그것이 없다면 모든 다른 권리가 의미가 없어지며,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권리라는 의미에서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대부분의 다른 권리들보다 더 근본적입니다. 언론의 자유는 그것이 얻어지는 만큼 삶에 유익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이도 많은 다른 권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안전과 생계권보다는 임의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과 가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관용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안전을 위협받는 자들과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은 살롬의 성취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과 같은 것입니다. 부유한 자가 기아에 있는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도울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육체적으로 그 어려운 자를 공격하는 것만큼 그 주린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겠지만, 이것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공의에 관한 책입니다. 구약의 모세 오경과 선지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공의를 요구하시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공의에 대해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람들은 고아와 과부들, 나그네들, 그리고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 사회에 공의가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실제적 원칙은 공의가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공의가 요구하는 것은 고아와 과부들, 나그네들, 그리고 가난한 자들과 같이 한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지고 자신의 공정한 몫을 갖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해하는 공의의 본질은 현대 서구사회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공의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는 공의와 권리의 문제를 인간 존재의 아주 섬세한 조직과 같이 가장 근원적인 것에서부터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작금의 국내외 정세를 보면서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희생 제물이나 감언이설의 의식이 아니라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흐르게 하라”(암 5:24)는 것임을 갈파했던 아모스 선지자의 호소를 다시금 가슴에 새길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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