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선교 137주년 기념 ‘2026 경남선교의 날 감사예배’ 드려
경남선교 137주년을 기념하는 ‘2026 경남선교의 날 감사예배’가 지난 10월 4일 오후 3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창원공원묘원 내 경남선교120주년기념관 광장에서 열렸다. (사)경남성시화운동본부가 주관하고 (사)경남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김영암 목사, 이하 경남기총)와 (사)경남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이경은 목사, 이하 경남성시화)가 주최한 이번 감사예배는 137년 전 경남에 복음을 전한 호주 선교사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경남교회의 복음 전파와 세계선교 사명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예배는 경남기총 수석부회장 허남길 목사의 인도로 시작됐다. CTS경남방송 지사장 윤종은 장로가 기도하고, 창원YWCA 회장신옥희 권사가 요한복음 12장 24절을 봉독했다. 이어 경남기총 대표회장 김영암 목사가 ‘한 알의 밀알과 그 열매’를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 목사는 설교에서 지난 7월 17일 향년 92세로 별세한 호주 선교사 존 브라운(한국명 변조은)의 삶과 사역을 소개하며 호주 선교사들이 경남과 한국을 위해 흘린 눈물과 헌신을 되새겼다. 설교 후 경남성시화 회계 정천 장로가 헌금기도를 드렸으며, 대표회장 이경은 목사가 환영사를 전했다. 이 목사는 초기 선교사의 죽음이 당시에는 실패처럼 보였지만,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선교사들이 경남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게 됐다며 선교사들의 뜻을 이어 경남교회가 다시 선교의 사명을 품고 세계 복음화를 위해 나아가기를 소망했다. 이어 김영암 목사가 인사말을 전하고, 경남성시화 대표본부장 김우태 목사가 경과보고를 했다. 수석본부장 서민석 목사(새소망교회)는 합심기도를 인도했다. 참석자들은 △국민통합·경제발전·평화통일 △경남도지사 및 단체장·기관장과 18개 시·군 발전 △경남 2,600여 교회의 부흥과 민족복음화·성시화·세계선교 △포괄적 차별금지법 및 악법 제정 무산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축사에는 최형두 국회의원(국민의힘·마산합포구), 허성무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성산구), 이혜련 창원특례시의회 의장이 나섰다. 최형두 의원은 경남을 호주 선교사들의 발자국과 헌신이 깊이 새겨진 곳이라고 강조하며, 호주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과 경남의 신앙 선배들이 이어온 믿음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남과 호주가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오늘날에도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며, 경남선교의 날을 통해 선한 메시지가 세계로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허성무 의원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기독교가 평등과 사랑의 정신을 전하고 독립운동과 자유·민주주의 수호, 도시화 과정의 공동체 형성 등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경남에서는 호주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이 지역의 역사와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혜련 의장은 137년 전 복음을 들고 경남을 찾은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의 헌신을 기리며,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 교회가 지역사회에 빛과 희망을 전하는 마중물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감사예배를 통해 지역사회가 이웃을 더욱 돌보는 공동체로 발전하기를 기원했다. 이날 감사예배는 내빈소개와 광고에 이어 경남성시화 이사장 이종승 목사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한편, 이날 감사예배에는 진해침례교회 찬양팀과 경화교회 호산나 찬양대, 양산온누리교회 헵시바 여성중창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난타팀이 참여해 찬양과 연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
한국교회 주요 교단, 새 리더십 세우고 새 회기 출발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이 9월 셋째 주 정기총회를 일제히 개막하고 새로운 회기를 이끌 지도부를 구성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통합·고신·합신·백석과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는 각각 정기총회를 열고 총회장과 부총회장 등 신임 임원을 선출하는 한편, 개회예배를 통해 교단이 나아갈 방향과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다시 확인했다. 올해 주요 교단 총회에서는 교회의 공교회성 회복과 화해와 하나 됨, 교단 안의 상처와 갈등 치유, 영혼 구원과 부흥, 목회자와 장로의 영적 정체성 등이 공통적으로 강조됐다. 각 교단은 새 지도부 출범과 함께 교단이 직면한 신학적·목회적 현안과 제도 개선, 다음세대 및 목회 현장 지원 등 다양한 안건을 다루며 새 회기를 시작했다. 예장 합동은 14일 서울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시무)에서 제111회 정기총회를 개회했다. 개회예배에서 장봉생 총회장은 ‘하나님의 총회’(히12:22~24)를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총대들이 단순히 한 해의 회무를 처리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공교회 현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총회장은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 모였다”며 교회와 성도들이 교단에 속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총회가 되기를 당부했다. 제111회 총회장에는 정영교 목사가 선출됐으며, 목사부총회장에는 송기섭 목사, 장로부총회장에는 손원재 장로가 각각 선출됐다. 총회는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교단의 주요 정책과 목회 현안을 논의하며 회무를 이어가고 있다. 예장 통합 제111회 총회는 15일 서울 영등포구 도림교회(정명철 목사 시무)에서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하나 되게 하소서’(신30:19~20, 엡4:1~6)를 주제로 개막했다. 개회예배에서 권위영 목사는 교회가 기후위기와 저출생·고령화, 다음세대 이탈과 내부 갈등 등 여러 변화와 위기 앞에 서 있다고 진단하고, 제111회 총회가 ‘생명을 선택하는 일’과 ‘성령이 이루신 하나 됨을 지키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목사는 “우리가 살아갈 생명의 길, 우리가 걸어갈 화해의 길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갈 수 없다. 제111회 총회는 십자가의 정신으로 걸어갈 것”이라며 “구호만 외치다 흩어지는 말의 잔치가 되지 않고 실제적인 역사가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 됨은 서로의 차이를 없애는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성령이 이루신 일치를 지켜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110회기 목사부총회장이었던 권위영 목사가 제111회 총회장으로 취임했으며, 목사부총회장에는 결선투표를 거쳐 김한호 목사가 선출됐다. 장로부총회장에는 단독후보로 나선 박기상 장로가 추대됐다. 예장 고신은 15일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위로’(Comfort, 고후1:3~4)를 주제로 제76회 정기총회를 개회했다. 개회예배에서 증경총회장 김상석 목사는 고신총회가 여러 갈등과 상처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위로와 교회의 회복을 강조했다. 김 목사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며, 그 위로를 받은 성도는 다시 다른 사람을 위로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총회 안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 온 모습을 돌아보며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회개해야 한다고 권면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세워주는 총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총회장 선거에서는 당초 단독후보로 나선 이규현 목사가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서 다시 후보 등록과 선거가 진행됐고, 신진수 목사(창원한빛교회)가 제76회 총회장으로 선출됐다. 목사부총회장에는 김은태 목사, 장로부총회장에는 이연호 장로가 각각 선출됐다. 신진수 총회장은 총회가 산적한 현안에 집중하는 동시에 몇몇 사람에게 역할이 집중되지 않고 임원과 총대들이 함께 책임을 나누는 ‘함께하는 고신총회’를 만들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침은 14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부흥의 새 시대로’를 주제로 제116차 정기총회를 개회했다. 개회예배에서 직전 총회장 이욥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합2:2~4)을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하박국 선지자가 혼란스러운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바라본 것처럼, 교단 역시 현실의 어려움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데 있다며, 새로운 회기를 앞두고 교단을 살리는 지도자가 세워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 제116차 총회장에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김선배 목사(디딤돌교회 협동)가 선출됐다. 김 목사는 총회가 갈등과 분열의 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기쁨을 회복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며 교단을 섬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예장 합신은 15일 경북 경주시 코모도호텔에서 제111회 정기총회를 개회했다. 개회예배에서 박찬식 목사는 ‘약한 그 때가 강함이라’(고후12:7~10)를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사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를 통해 교회와 총회를 섬기는 이들이 자신의 강함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은혜일 때도 있지만, 문제가 있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더 큰 은혜일 때가 있다”며 “목회자와 장로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많이 하는가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라고 말했다. 총회가 추진하는 사업의 규모보다 목회자와 장로가 먼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당부했다. 신임 총회장에는 박찬식 목사가 선출됐으며, 목사부총회장에는 김명호 목사, 장로부총회장에는 구자영 장로가 각각 선출됐다. 박 총회장은 새 회기 공교회성을 회복하고 총회와 노회, 지교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가운데 지교회와 다음세대를 지원하는 총회가 되도록 힘쓰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예장 백석 제49회 정기총회는 14일 천안 백석대학교회에서 ‘백석, 예수생명의 공동체’를 주제로 개막했다. 개회예배에서 김동기 총회장은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를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미약하게 시작한 교단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오늘의 성장과 부흥을 이루었다고 강조했다. 김 총회장은 “이제 백석의 시대가 되었다”며 50주년과 100주년을 향해 하나님의 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교단과 학원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에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기를 소망했다. 또한 개혁주의생명신학을 통해 민족과 세계를 새롭게 하는 교단이 되기를 당부했다. 제49회기 총회장에는 이승수 목사가 추대됐으며, 제1부총회장 임석순 목사, 제2부총회장 이정기 목사, 장로부총회장 신맹섭 장로도 함께 추대됐다. 이승수 총회장은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운동과 기도·성령운동을 비롯한 새 회기 과제를 제시하며 백석총회가 한국교회를 섬기는 ‘영적 장자교단’으로 나아가는 데 힘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주요 교단들은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정기총회 회무를 이어가며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과 목회 현장의 변화, 다음세대와 교회 지원, 제도 개선 등 각 교단이 직면한 과제들을 논의하고 있다.
-
법원, 고려학원 이사 후보 자격 가처분 기각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 후보 자격을 둘러싸고 제기된 가처분 사건에서 법원이 고신총회 선거관리위원회의 후보자격 판단을 유지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정 모 목사가 고신총회를 상대로 제기한 ‘2026카합21418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고려학원 이사 후보자의 정년을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와 총회 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격을 심사·판단할 권한을 갖는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됐다. 법원은 총회 규칙과 선거 관련 조례 등을 종합해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자의 자격 여부를 심사하고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판단했다. 선관위가 내부 절차에 따라 다수결로 후보자격 여부를 결정한 것 역시 관련 규정에 어긋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특히 법원은 고려학원 이사의 임기를 총회에서 이사로 선출된 시점부터 계산해야 한다는 신청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청인 측은 총회에서 이사로 선출될 경우 사실상 그때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것으로 봐야 하며, 이 기준에 따르면 정 목사가 이사 임기 중 총회가 정한 70세 정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고려학원 정관과 총회 관련 규정, 과거 이사들의 실제 임기 적용 사례 등을 검토한 결과 이사 임기가 총회에서 선출되는 9월부터 곧바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다음 해 4월경 개시돼 온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2026년 9월 총회에서 이사로 선출되더라도 총회 선출일을 이사 임기의 시작으로 볼 수 없고, 실제 법인 이사로서 임기가 개시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정년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이는 지난 8월 26일 심문에서 재판부가 집중적으로 확인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재판부는 2014년 총회 결의 이후 선출된 고려학원 이사들의 실제 임기가 언제 시작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의 제출을 요구한 바 있다. “임기 중 70세 도달…후보자격 제한 위법 아니다” 총회 관련 규정은 고려학원 이사 후보자가 이사 임기 중 70세 정년에 해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의 자격 요건을 두고 있다. 법원은 정 목사가 이사로 선출되더라도 실제 이사 임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70세 정년에 도달하게 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가 정년 규정을 적용해 정 목사의 후보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총회 규정에 근거한 것으로, 이를 위법하거나 부당한 결정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결국 후보자의 나이를 총회 선출일만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실제 이사 임기가 시작되는 시점과 전체 임기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결정의 핵심이다. 신청인 측이 제시한 과거 이사 선출 사례도 법원의 판단을 바꾸지는 못했다. 신청인 측은 과거에도 정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사로 선출되거나 임기를 수행한 사례가 있었다는 점을 들어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일부 예외적인 사례가 존재하더라도 사례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면 이를 총회의 확립된 관행이나 규범으로 보기 어렵고, 그 사례만으로 신청인에게 동일한 후보자격이 인정될 것이라는 법적 신뢰가 형성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제76회 총회 앞두고 선관위 기존 결정 유지 이번 사건은 심문 과정에서 종교단체의 자율성과 사법심사의 범위도 쟁점으로 다뤄졌다. 재판부는 지난 8월 26일 심문에서 이 사건이 종교단체 내부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해당하는지, 학교법인 이사 선출과 후보자의 구체적인 법적 지위가 결부돼 사법심사가 가능한 사안인지를 양측에 질의했다. 최종 결정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권한과 고려학원 이사의 실제 임기, 정년 규정, 과거 적용 사례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가처분 인용 여부를 판단했다. 법원의 이번 기각 결정에 따라 제76회 고신총회를 앞두고 이어져 온 고려학원 이사 후보 자격 논란은 일단 선거관리위원회의 기존 결정이 유지되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다만 가처분은 본안판결과 달리 신청인이 주장하는 권리가 존재할 개연성과 긴급하게 임시적 지위를 인정할 필요성 등을 판단하는 절차인 만큼, 이번 기각 결정이 관련 법률관계 전체에 대한 최종적인 본안판결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총회를 앞둔 상황에서 정 목사에게 고려학원 이사 후보자로서의 임시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제76회 총회에서 진행될 고려학원 이사 선거에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기존 후보자격 판단이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은 고려학원 이사 후보자의 정년 여부를 판단할 때 총회 선출 시점이 아닌 실제 이사 임기의 개시 시점과 전체 임기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점과, 과거 일부 예외 사례만으로 총회의 일반적인 관행이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
고신대, 개교 80주년 기념식 및 홈커밍데이 개최
고신대학교(총장 이정기)는 지난 9월 4일 한상동홀에서 ‘개교 80주년 기념식 및 홈커밍데이’를 개최하고, 지난 8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새로운 미래를 향한 출발을 다짐했다. ‘은혜의 80년, 함께 여는 미래’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는 1946년부터 이어온 고신대학교의 신앙과 교육의 역사를 되새기고, 교단과 교회, 동문, 교직원, 학생 등이 함께 대학의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1부 기념예배는 고신대학교 데이브레이크팀의 찬양에 이어 이신열 교목실장의 인도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찬송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를 찬송했으며,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 윤창현 장로가 기도하고 전국여전도회연합회 회장 임명애 권사가 여호수아 4장 19~24절을 봉독했다. 이어 고신대학교 음악과 동문합창단이 특송했다. 고신총회 최성은 총회장은 ‘이 돌들이 무슨 뜻이냐 묻거든’을 제목으로 설교했다. 예배는 학교법인 고려학원 전임 이사장 황만선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2부 기념식은 개교 80주년 기념영상과 외국인 유학생들의 난타공연으로 시작됐다. 사회는 고신대학교 명예동문 이하나 아나운서와 동문 김정민 씨가 맡았다. 신학대학, 보건복지대학, 창의융합대학, 라이프대학, 의과대학, 간호대학을 대표하는 학생과 동문들은 각 학과 깃발을 들고 함께 입장했으며, 최성은 총회장과 이상일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장, 이정기 총장, 역대·현 총동문회장과 대학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학생과 동문, 주요 내빈들은 개교 80주년을 기념하는 개막 퍼포먼스와 케이크 커팅을 통해 새로운 80년의 출발을 알렸다. 이어 전재수 부산시장과 이기정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을 비롯한 교계와 동문, 각계 인사들의 축하영상이 상영됐다. 이정기 총장은 기념사를 통해 지난 80년 동안 대학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해 온 교단과 교회, 성도와 후원자, 동문과 대학 구성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기독교 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상일 이사장은 인사말을 전했으며, 조승환 국회의원과 진상원 고신대학교 총동문회장이 축사했다. 기념 시상식에서는 30년·20년·10년 장기근속 교직원 24명이 표창을 받았다. 총회장상은 입학관리팀 김신용 팀장, 이사장상은 신학대학원 관리팀 백광석 계장, 총장상은 고신대학교복음병원 심장내과 허정호 교수, 총동문회장상은 고신대학교 총학생회 최수현 학생이 각각 수상했다. ‘자랑스러운 고신대인상’은 목회·선교 부문 노정희 선교사, 사회봉사·의료 부문 민형래 선교사, 교육·문화·예술 부문 임창호 교장에게 수여됐다. 대학의 발전과 후배 양성 등에 기여한 학과별 동문 19명에게는 ‘자랑스러운 고신대인상 특별공로상’이 수여됐다. 또한 배우 임지규 씨에게 개교 80주년 기념 명예학사학위가 수여됐다. 축하공연에서는 고신대학교 태권도학과 시범단이 한상동 목사와 주남선 목사의 믿음과 헌신을 주제로 한 공연을 선보였으며, 음악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삼손중창단도 무대에 올랐다. 고신대학교 교무위원과 교직원들도 공연에 함께 참여했다. 행사 마지막에는 참석자들이 “은혜의 80년, 함께 여는 미래”를 함께 외치고 교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제창했다. 기념식과 함께 교내에서는 ‘은혜동산 80th 기념식수’도 진행돼 개교 80주년을 기념했다. 고신대학교는 1946년 설립 이후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 앞에서’라는 코람데오 정신을 바탕으로 교육과 인재 양성에 힘써 왔다. 대학은 개교 80주년을 계기로 이러한 설립 정신과 신앙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계승하며 새로운 80년을 준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고신대학교 제공>
-
고신 경남지역장로회, 거제·통영 수해 교회에 복구성금 2,150만 원 전달
예장(고신) 총회 산하 경남지역 8개 노회 장로회 연합체인 경남지역장로회연합회(회장 이수환 장로, 이하 경장연)가 지난 8월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거제·통영 지역 교회들의 복구를 위해 성금 2,150만 원을 전달했다. 경장연은 9월 8일 오전 11시 30분 충무제일교회 5층 소예배실에서 ‘경남남부노회(거제·통영) 극한폭우 피해 복구성금 전달식’을 가졌다. 이번 성금은 경남남부노회 산하 교회들이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경남지역장로회가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경남지역 8개 노회 장로회와 교회, 목회자와 장로들이 뜻을 모아 마련했다. 성금 전달에 앞서 드린 예배는 경장연 총무 구영근 장로의 사회로 찬송 208장 ‘내 주의 나라와’를 부른 뒤 직전회장 송재철 장로가 기도하고, 고린도후서 9장 11~15절을 교독했다. 이어 경남남부노회 노회장 장종환 목사(충무제일교회)가 ‘연보’를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장종환 목사는 설교에서 연보는 자신의 것을 내어 어려운 이웃의 부족함을 채우고 돕는 데 의미가 있다며,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과 함께 성도와 교회가 서로의 필요를 돌아보고 나누는 교제와 섬김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초대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을 위해 연보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이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배는 찬송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를 부른 뒤 장종환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어 경남남부노회장로회 총무이자 경남지역장로회연합회 서기인 김재상 장로가 피해 상황을 보고했다. 경남남부노회는 집중호우 이후 피해 교회들을 직접 실사해 교회별 피해와 복구 상황을 파악했다. 보고 자료에 따르면 산하 여러 교회에서 본당과 교육관·식당 침수, 산사태와 토사 유입, 옹벽·축대·담장 붕괴, 누수와 전기시설 고장, 음향·전자기기 및 집기 파손 등의 피해가 확인됐다. 일부 교회는 진출입로가 막혀 고립되거나 교회 전체가 침수됐으며, 대량의 토사가 유입돼 상당한 복구 작업이 필요한 상황도 보고됐다. 노회 측은 보고 당시 아직 피해 상황이 모두 접수되지 않은 교회도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 보고 후 경장연 회장 이수환 장로는 경남남부노회 산하 교회와 성도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이 회장은 8개 노회 장로회와 교회, 목회자와 장로들이 한마음으로 성금을 마련했다며, 비록 모든 피해를 복구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 하루속히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이수환 회장은 별도 인터뷰에서도 이번 성금이 피해 복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피해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와 힘을 얻기를 바란다며 어려울 때 서로 손을 잡아주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사랑이라고 말했다. 전국장로회연합회장 윤창현 장로도 인사말을 통해 최근 수해 현장에서 장로들이 함께 힘을 모아 복구와 지원에 나섰던 일을 언급하며, 어려움을 당한 교회들을 위해 장로들이 연합해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윤 장로는 이번 성금 전달을 위해 뜻을 모은 경남지역장로회와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피해를 입은 교회와 성도들의 삶이 하루속히 회복되기를 함께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경남지역장로회가 마련한 피해 복구 성금 2,150만 원이 경남남부노회 측에 전달됐다. 감사 인사에 나선 경남남부노회장로회장 신승서 장로는 노회가 피해 교회들을 직접 실사하고 교회별 복구 예상 금액을 파악했다며, 전달받은 성금은 각 교회의 피해와 복구 규모를 고려해 나눠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종환 노회장도 피해 현장을 찾아 마음을 모아준 것 자체가 교회들에게 큰 힘이 된다며 감사를 전하고, 앞으로 다른 지역이 어려움을 당할 경우 경남남부노회도 함께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첨부] 경남남부노회 극한호우 피해 교회 현황 ※ 아래 내용은 경남남부노회가 현장을 실사한 뒤 이날 피해 상황 보고 자료에 제시한 교회별 사례를 정리한 것으로, 경남남부노회 산하 전체 피해 교회의 최종 명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제동시찰 교회 주요 피해 내용 새롬전원교회 교회 주차장에 토사가 쌓이고 본관 뒤편 산비탈이 흘러내리면서 비품이 파손됐다. 정전으로 8월 17일부터 21일까지 예배를 드리지 못했으며, 진출입로 토사 유출로 3일간 고립됐다. 지세포교회 유치부실·중고등부실·전도회실 등이 침수돼 전기판넬, 냉장고, 제습기, 신디사이저와 가구 등이 피해를 입었다. 선교관 바닥 보일러와 거실·방 일부가 내려앉고 창고 비품도 피해를 입었다. 지세포제일교회 주차장이 침수됐으며 본관 1층 식당·교육관·목양실과 각종 시설이 침수됐다. 본관 2층도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만남의교회 폭우로 본당 천장이 손상됐다. 송정교회 주차장에 약 1m 높이로 돌과 토사가 쌓이고 야외창고 컨테이너와 배수관로, 펜스 등이 파손됐다. 본관 1층도 침수돼 사무실과 교육부서 시설, 각종 전자기기와 비품이 피해를 입었다. 영월교회 본당과 교육관 바닥이 침수되고 바닥 일부가 파손됐으며 장판·벽면 뒤틀림과 곰팡이 피해가 발생했다. 담임목사 모친의 주택도 산사태로 큰 피해를 입었다. 유천교회 주차장 토사 유입과 배수 막힘, 본관 1층 침수, 담장 붕괴, 식당 침수와 누전 위험, 지붕 누수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주님의품교회 주차장과 교회 외부가 전체 침수돼 약 6톤의 토사를 제거했으며 옹벽 균열과 하부 세굴이 발생했다. 본당 1층과 식당이 전면 침수돼 전기·음향시설과 피아노, 예배의자, 각종 집기 등이 피해를 입었다. 연사교회 교회 문화시설의 에어컨과 실외기가 고장 나고 선교사관의 전기가 단절됐다. 거제열린교회 1층 식당과 지하실이 침수됐다. 고현교회 지하 교육관이 침수됐다. 거제성광교회 지하 식당과 교회 차량이 침수됐다. 연초중앙교회 주차장에 토사가 유출됐다. 사곡교회 1층 본당과 시설 전체가 침수되고 교회 차량도 침수됐다. 통영시찰 교회 주요 피해 내용 여차중앙교회(한산도) 교회 부엌이 침수되고 바닥 균열이 발생했다. 교회 밭이 토사에 덮여 농작물 피해와 울타리 유실도 발생했다. 창동교회(한산도) 교회 뒤 사택과 밭 사이 축대가 붕괴해 토사가 유출됐으며, 밭의 농작물과 울타리도 피해를 입었다. 통영성민교회 교회 지하가 침수돼 전기판넬과 컴퓨터·음향기기 등 각종 전자기기가 파손됐으며 교회 앞 도로도 유실됐다. 정량교회 누수로 본당과 1층 창고가 침수되고 전기 누전 피해가 발생했다. 충무제4교회 교회 옆 옹벽이 붕괴해 피해를 입었다. 제자들교회 폭우로 외부 가건물인 목양실에 누수가 발생해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포토슬라이드1 / 3
종합
-
고애연 제12회 서울포럼 개최…한국교회의 시대적 사명 모색
고신애국지도자연합(대표 이성구 목사, 이하 고애연)은 지난 9월 3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올공혁명과 한국교회의 사명’을 주제로 제12회 서울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최근 2030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이어진 이른바 ‘올공혁명’의 의미를 살펴보고, 선거의 공정성과 자유민주주의, 국가안보, 한국교회의 시대적 역할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포럼에는 목회자와 장로, 성도 등이 참석해 개회예배와 주제발제, 질의응답, 시국선언문 채택 등의 순서에 참여했다. 1부 개회예배는 김종부 목사의 사회로 김삼관 장로(서울은퇴장로회 회장)가 기도하고, 이성구 목사(고애연 대표)가 엡 6:11~12을 본문으로 ‘영적체제전쟁’을 제목으로 설교했다. 예배는 천헌옥 목사(전 코닷 편집장)의 축도로 마쳤으며, 참석자들은 국가의 공의 회복과 청년 세대, 한국교회의 각성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이어 옥재부 목사(고애연 실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2부 시국포럼에서 이성구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이른바 ‘올공혁명’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고, 한국교회가 청년들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고 진리와 자유를 지키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홍미란 하보우만 홍보부장이 90일간의 올공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올공, 2030 나라를 살리다’를 소개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민경욱 전 국회의원은 ‘올공혁명과 선거 정의 회복의 길’을 주제로 발표했다. 민 전 의원은 2030 청년들이 제기하고 있는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관한 요구에 주목해야 한다며,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선거관리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모스 탄 전 대사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국제연대의 사명’을 주제로 자유와 인권, 법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이희천 전 국정원 교수는 ‘국가 안보와 체제 위기 속 한국교회의 파수꾼 사명’을 주제로 대한민국이 처한 안보 상황을 진단하고, 한국교회가 자유민주주의와 신앙의 자유를 지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럼 참석자들은 발제를 마친 뒤 오지석 목사(고애연 실행위원)가 발표한 ‘진리의 나팔을 불어 무너진 공의를 세우고 한국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을 회복하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채택했다. 고애연은 선언문에서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에 순교적 신앙으로 항거하며 세워진 고신 교단은 국가 권력의 시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대를 일깨우는 예언자적 전통 위에 서 있다”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생명윤리, 한국교회의 강단이 위협받는 엄중한 시국 앞에서 신앙적 양심과 결의를 천명한다”고 밝혔다. 선언문에는 △2030 청년들이 제기하는 선거 투명성 문제에 대한 제도 개선과 책임 규명 촉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로가 된 북한군 청년들과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의 인권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 요구 △낙태약 미프진 도입 반대 △제76회 고신총회의 손현보 목사 설교 관련 연구보고서 처리 결의 존중 △한국교회 강단의 예언자적 사명 회복 등의 내용이 담겼다. 특히 고애연은 제76회 고신총회가 손현보 목사의 설교 네 편에 관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연구보고서를 총회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하지 않고 ‘참고’하기로 한 결의를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총회 결의 이후 총대들을 모독하거나 공교회의 결정을 훼손하는 언행에 대해서는 교단 헌법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교회의 정치·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고애연은 나단과 엘리야, 세례 요한이 권력자의 죄를 책망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목회자들이 정교분리를 침묵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되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국가와 사회의 불의를 지적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언문은 “전국의 모든 강단이 오직 성경의 권위로 시대의 죄악을 꾸짖는 예언자적 보루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선언문 발표 후 자유민주주의와 선거 정의, 청년 세대의 각성, 생명윤리 수호, 북한 주민과 억류 국민의 인권, 한국교회의 예언자적 사명 회복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연대할 것을 다짐했다. 포럼은 고명길 목사(고애연 전문위원장)의 기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자료제공 = 고애연
-
한국교회언론회 “낙태약 도입, 생명·윤리적 문제 우려
한국교회언론회가 정부의 낙태 약물 도입 추진에 대해 생명권과 의료윤리, 법·제도적 문제를 제기하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태아를 죽이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정부가 낙태 약물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생명 존중의 가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언론회는 대통령의 지시 이후 관련 부처가 낙태 약물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충분한 사회적·의학적·윤리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건강권, 의료인의 양심과 신념 보장, 약물 오·남용 가능성 등을 우려했다. 또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가 낙태 약물 도입을 서두르기보다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생명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정책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회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명 존중”이라며 정부가 생명을 지키고 보장하는 정책을 앞장서 펼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전문이다. 태아를 죽이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가? 낙태 약물 도입은 생명적·윤리적·위헌적 이재명 정부가 내년 초에 낙태 약물의 국내 도입을 추진한다. 성평등가족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6일, 낙태 약물 도입 방안을 발표했는데, 대표적인 낙태 약물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7월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사용 허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후 급격히 이뤄진 조치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면 살인약(임신 9주 이하라고 하지만, 살인은 살인)을 함부로 들여와도 되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저출산 국가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출산 장려 정책에 치중해야지, 어떻게 낙태 정책을 펴는가? 그리고 낙태약 사용에 대하여 의료계나 종교계에서는 강력하게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계는 ‘행정적 조치로 의사 개인의 재량에 약물 낙태를 맡기는 것은 국가의 근본적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건강권 조화라는 중대한 규범적 난제를 개별 의사에게 떠넘기는 것은 헌법적 질서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또 ‘집권 세력이 약자 보호나 생명권 존중과도 맞지 않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건강권도 우려했는데 ‘낙태를 경험한 여성의 정신건강 악화와 약물남용, 자살 시도 위험이 상승한다는 역학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의료윤리 측면에서도 우선적으로 ‘생명 보호, 상업주의 배격, 양심과 신념에 반하는 비윤리적 의료 행위 강요 금지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편 종교계에서도 ‘근본 숙제를 건너뛴 채 알약 한 알의 간편함으로 생명을 끝내는 약물부터 허용하려는 것은 책임 회피라고’ 질타하고 있다. 정말 이래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이재명 정부가 낙태 약물을 도입하려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즉 의학적•보건학적 안정성 문제와 법•제도적 공백의 문제, 그리고 생명윤리와 사회적 문제로 논란을 키울 것이다. 더 나아가 약물의 오•남용이나 생명 경시 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모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명 존중이다. 이것이 크게 부서지는 화(禍)는 막아야 한다. 그야말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일은 없어야 한다. 생명을 죽이는 일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훨씬 중요하며, 간편하게 태아를 살해하는 것보다 어렵더라도 생명을 지키고 보장하는 정책을, 정부가 앞장 서서 펼쳐야 한다.
-
밑거름선교회, 새 리더십 세우고 건축선교 사명 다짐
건축 관련 전문가와 전문 기술인들이 자신의 재능과 경험을 활용해 선교지를 섬겨 온 밑거름선교회가 새로운 임원진을 세우고 건축선교의 사명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밑거름선교회는 지난 8월 27일 오전 11시 부산 신흥교회(정용달 목사 시무)에서 회장 이·취임 및 부회장·총무 취임 감사예배를 드렸다. 1부 감사예배는 자문 권경호 목사(부평교회 원로)의 사회로 김정구 선교사가 기도하고, 신흥교회 박민영 집사가 특별찬양했다. 이어 김종철 목사(고성제일교회, 전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장)가 느헤미야 6장 15~16절을 본문으로 ‘52일 만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 목사는 여러 방해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완성한 느헤미야의 사역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이어진 2부 회장 이·취임 및 임원 취임식에서는 변진현 총무가 회원들을 대표해 이임하는 배동석 장로(동래제일교회 원로)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배 장로는 이임사를 통해 함께 사역해 온 회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신임회장에는 정용달 목사가 취임했다. 정 목사는 취임사를 통해 밑거름선교회가 이어온 건축선교의 정신을 계승하고 선교 현장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며 사역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부회장에는 허은진 장로(광주 경신교회)와 김용달 장로(가야성안교회)가 취임했으며, 추장열 장로(신흥교회)가 총무 겸 회계를 맡았다. 축하 순서에서는 우상민 원장(부산 샬롬치과)이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전했으며, 윤현주 목사(동래제일교회 원로)와 이광용 장로(부경그룹 회장)가 축사했다. 모든 순서는 신경규 목사(전 전문인선교회 회장)의 축도로 마쳤다. 밑거름선교회는 건축 분야의 전문가와 전문 기술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중심이 된 건축전문선교회다. 회원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시간, 노동을 선교를 위해 사용하는 자비량 선교의 정신으로 선교 현장을 섬기고 있다. 선교지에 교회와 선교센터를 건축하는 한편,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현지 성도들의 집을 수리하고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사역도 펼쳐왔다. 선교회는 건축 자체에 목적을 두기보다 건축을 통해 현지 주민들과 삶을 나누고 복음을 전하며 지역교회와 공동체를 세우는 데 사역의 의미를 두고 있다. 특히 예배당이나 교육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선교 현장에 교회와 선교센터를 세워 예배와 복음전도, 다음세대 교육과 지역사회 섬김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번 회장 이·취임 및 신임 임원 취임을 계기로 밑거름선교회는 새로운 임원진을 중심으로 선교 현장의 필요에 따라 건축과 주거환경 개선 등 전문인 선교사역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UAUT 김성수 총장 자료 제공>
기타
-
[연속기획 ①] 손현보 목사 설교에 대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 비평 #1
손현보 목사의 네 편의 설교에 대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연구보고서는 설교의 본질과 교회의 공적 사명을 점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비평은 보고서 밖에서 새로운 논거를 끌어오기보다, 먼저 보고서 자체가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조항이 실제로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지를 검토한다. 그런 뒤에야 보고서가 다루지 않은 조항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이를 위해 먼저, 교수회 보고서가 각 논거로부터 실제로 어떤 소결을 도출했는지 정리해 둔다. ● 선지자직 대 목사직의 구별: 선지자들이 고발한 왕은 언약 공동체의 직분자였으므로, 오늘날 선지자적 메시지의 일차적 대상도 교회 지도자여야 한다. ● WCF 1.6: 설교의 내용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이며, 새로운 계시를 생산하거나 정치적 판단을 그 자리에 대신 앉힐 수 없다. ● WCF 30.2: 설교는 교회에 위임된 천국 열쇠의 사역이므로, 그 목적은 정치적 각성이 아니라 회개와 구원이어야 한다. ● WCF 20.2: 목회자가 정치적 판단을 신앙의 절대 명령과 동일시하면 성도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 ● (그 밖에 WCF 8.8·14.1은 설교의 효력이 성령께 있다는 것을, WCF 21.1·21.5는 설교가 공예배의 본질적 요소라는 것을, WCF 25.2-4는 개체교회의 순수성이 복음 진리의 수용 정도로 결정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이 세 조항에 대해서는 이 비평문이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 비평은 이 소결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각 소결이 인용된 본문·조항의 전체 내용과 정확히 부합하는지를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 제1장: 선지자직에 관한 보고서의 전제를 예언서 본문으로 재검토한다. 제2장~제4장: 교수회가 인용한 WCF 조항(1.6, 30.2, 20.2)을 원문으로 되짚는다. 제5장~제6장: 보고서가 다루지 않은 조항(WLC 159, WCF 19.6)으로 논의를 보충한다. 제7장: 실제 검증 기준을 세운다. 따라서 이 글은 손현보 목사의 설교를 무조건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수회 보고서와 손현보 목사의 설교를, 고신교회가 이미 공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바로 그 기준 앞에 함께 세워 보자는 것이다. 제1장. "목사는 선지자가 아니다" - 선지자의 대상이 언약 공동체에 국한되었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교수회 보고서는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이렇게 주장한다. "구약 이스라엘은 언약 아래 구성된 신정 공동체, 곧 구약 형태의 교회였으며(행 7:38), 선지자들이 고발한 왕은 세속 정치인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의 직분자였다. 이 구조를 오늘에 적용한다면 선지자적 메시지의 일차적 대상은 세속 정치권력이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들이어야 한다. 그 방향을 건너뛰고 곧바로 외부 정치 권력에 대한 규탄으로 나아가는 것은 선지자 전통을 그 신학적 맥락에서 분리하여 선택적으로 차용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세 갈래로 구성된다 - 권위의 근거, 메시지의 대상, 고발의 목적. ● 첫째 주장 - "목사는 선지자와 같은 권위를 갖지 않는다"- 은 설교자가 직접 계시를 주장할 때에 동의한다. 이것이 곧 선지자가 말할 수 있었던 대상의 범위까지 계시적 권위에서 나왔다는 뜻은 아니다. 미리 밝혀 두자면(근거는 뒤에서 WCF 19.5로 확인한다), 선지자가 이방 권력에까지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계시적 권위 때문이 아니라, 그 권력 역시 하나님의 도덕법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째 주장(계시적 권위의 차이)을 인정하는 것이, 둘째·셋째 주장(대상의 범위)까지 자동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와 셋째는 성경 본문 자체와 충돌한다. ● 둘째 주장 - "선지자들이 고발한 왕은... 언약 공동체의 직분자였다"- 은 사실과 다르다. 예언서에는 언약 공동체 밖의 이방 권력만을 대상으로 하는 독립된 장르가 존재한다. 이른바 "열국에 대한 신탁"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한 신탁에 앞서, 다메섹·가사·두로·에돔·암몬·모압이라는 여섯 이방 나라를 향해 먼저 신탁을 선포한다(암 1:3-2:3)—이 나라들은 언약 공동체가 아니며, 그들이 고발당한 죄목은 언약 위반이 아니라 전쟁 포로를 노예로 팔고, 형제의 계약을 어기고, 임신부를 가르는 잔학 행위였다. 이사야는 바벨론·앗수르·모압·다메섹·구스·애굽·두로를 향한 무거운 심판 신탁을 별도의 장으로 묶어 선포한다(사 13-23장). 예레미야도 애굽·블레셋·모압·암몬·에돔·다메섹·바벨론을 향한 신탁을 남긴다(렘 46-51장). 다니엘은 이방 황제 느부갓네살과 벨사살에게 직접 그들의 죄와 임박한 심판을 선포했다(단 4-5장). 요나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보내져 그 도시의 회개를 촉구했다. 이 본문들이 보여주는 것은, 선지자적 고발의 일차적 대상이 언약 공동체 내부의 직분자로 국한된다는 전제 자체가 예언서 전체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선지자들은 언약 백성의 죄뿐 아니라, 언약과 무관한 이방 세속 권력의 불의—전쟁 범죄, 교만, 폭력—를 향해서도 직접 심판을 선포했다. ● 셋째 주장 - 고발이 "언제나 회개로의 초대와 언약적 회복을 향해 있었다"- 역시 위 본문들 앞에서 보편화될 수 없다. 다메섹과 가사와 두로는 애초에 언약 공동체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에게 "돌아갈 언약"이 없었다. 이 나라들을 향한 신탁은 회복을 향한 초대가 아니라, 그들의 죄에 대한 순수한 심판의 선언이었다.다만 요나서는 이 패턴에 중요한 결을 더한다. 요나가 니느웨에서 선포한 메시지는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 3:4)는, 그 자체로는 회개의 조건이나 초대를 담지 않은 무조건적 심판 선언이었다. 그럼에도 왕으로부터 시작된 니느웨의 회개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셨다(욘 3:5-10). 이는 다메섹·가사·두로의 사례와 모순되지 않는다—오히려 정확히 같은 원리를 확인시켜 준다. 선포의 문법이 무조건적이라는 사실과, 그 대상이 실제로 회개하여 심판이 유보될 가능성은 별개다. 회개의 문은 선포 문장 안에 명시적으로 담기기보다, 선포자와 청중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과 그 대상 사이에 비가시적으로 전제되어 있을 뿐이다(이는 제3장에서 아합의 경우로 다시 확인한다). 다메섹과 가사와 두로가 실제로 돌이켰다는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원리적으로 회개의 여지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언약 공동체가 아닌 이상 그들을 향한 신탁이 "언약적 회복"이라는 특정한 신학적 문법으로 짜일 이유는 없었다는 것—이것이 이 단락이 실제로 주장하는 바다. 이 성경적 논증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자체의 증거를 더할 수 있다. WCF 19장 5항은 이렇게 선언한다. "도덕법은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든 그렇지 않은 자든 모든 사람을 영원히 구속한다(The moral law doth for ever bind all, as well justified persons as others, to the obedience thereof), 그 법에 담긴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 때문에도 그러하다." 이 조항은 도덕법의 구속력을 언약 공동체—"의롭다 함을 받은 자"—에 국한하지 않고, "그 외의 사람들(others)"에게까지 명시적으로 확장한다. 웨스트민스터 신학 자신이, 하나님의 도덕적 요구와 그에 따른 책임이 언약 공동체 안에 있는 자로 제한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이는 예언서의 "열국에 대한 신탁"과 정확히 부합한다. 따라서 "선지자적 메시지의 일차적 대상은 언약 공동체 내부여야 한다"는 보고서의 전제는 예언서의 실제 구성뿐 아니라, 고신교회가 공적으로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9장 5항과도 어긋난다. 도덕법이 "모든 사람"을 구속한다면, 그 법에 따른 책망과 심판의 선포 역시 원칙적으로 언약 공동체 안에 갇힐 이유가 없다. 이것이 앞서 예고한 구별—선지자의 대상 범위는 계시적 권위가 아니라 도덕법의 보편적 구속력에서 나온다는 것—의 신앙고백적 근거다. 제2장. WCF 1.6 — 교수회가 인용한 바로 그 조항이 이미 답을 담고 있다 교수회 보고서는 "설교의 내용" 항에서 이렇게 말한다. "설교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신 말씀이다(WCF 1.6). 설교는 새로운 계시를 생산하거나 인간의 전통을 추가하는 행위가 아니라, 성경에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사역이다(WCF 1.6)." 그러나 WCF 1.6의 실제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 사람의 구원,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한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은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거나, 선하고 필연적인 귀결로 성경에서 추론될 수 있다(expressly set down in Scripture, or by good and necessary consequence may be deduced from Scripture)." 보고서는 이 조항의 전반부만 인용하고, 후반부는 인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후반부야말로 웨스트민스터 신학이 성경의 충분성을 이해하는 핵심 방식이다. 성경에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라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이, 성경으로부터 오늘의 정치 현실에 대한 정당한 결론을 추론하는 것 자체를 막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신학 전통이 스스로 이 원리에 근거하여 시민 정부에 관한 별도의 장(WCF 23장)을 두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교수회가 인용한 조항 자체가, 보고서의 결론보다 넓은 범위를 설교의 정당한 내용으로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손현보 목사의 정치적 판단이 "선하고 필연적인 귀결"인지, 아니면 자의적 추론인지를 검증하는 것이지, 정치적 판단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배제할 성경적, 신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제3장. WCF 30.2 - "천국 열쇠"는 정치적 발언의 금지 규정이 아니다. 교수회 보고서는 WCF 30.2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설교는 교회에 맡겨진 천국 열쇠의 사역이다. 교회는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말씀과 권징으로 천국을 닫고, 회개한 죄인에게는 복음의 사역과 권징의 해벌로 천국을 열어 주는 권한을 위임받았다(WCF 30.2)." 이 인용 자체는 정확하다. 그러나 이 인용이 보고서 전체 구조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추적하면,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다. 보고서는 이 인용을 설교의 "정의"를 세우는 여덟 개 항목 가운데 하나(8번, "설교와 교회, 그리고 치리")로 제시한 뒤, 스스로 이렇게 명시한다—"8가지 항목 전체를 평가하지는 않는다... 비교적 명백한 판단이 가능한 세 항목, 곧 설교의 내용, 설교의 방식, 설교의 목적에 한정하여 분석한다." 그런데 정작 실제 평가에서 "설교의 목적"을 판정하는 기준은, 30.2가 명시한 두 축—회개하지 않는 자를 향한 "말씀과 권징으로 닫음"과 회개한 자를 향한 "복음으로 엶"—가운데 후자만을 반영한다. 보고서의 결론은 이렇다: "손현보 목사 설교의 목적은 죄인을 회심으로 이끌고 성도를 성화의 길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게 하는 데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정치적 각성과 행동을 조직하는 데 맞추어져 있다고 평가된다." 즉 보고서는 30.2를 인용할 때는 "닫음"과 "엶" 두 기능을 정확히 함께 제시했다. 그러나 그 문안이 실제로 설교의 "목적"을 판정하는 기준으로 쓰일 때는, 회개하지 않는 죄를 향한 "말씀"의 선포—30.2 자신이 명시한 절반의 기능—가 조용히 빠진다. 이것은 각기 흩어진 여러 조항을 종합하다가 하나를 놓친 것이 아니다. 하나의 조항, 한 문장 안에 나란히 기록된 두 기능 가운데, 자신에게 유리한 절반만 판정 기준으로 채택하고 나머지 절반은 인용은 하되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식의 선택적 적용은, 그 조항이 처음부터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었던 것처럼 결론을 이끌어내는 결과를 낳는다. 학술적 인용의 기준에서 이는 단순한 누락이 아니라, 인용된 문안의 균형을 결론 단계에서 지우는 것에 해당한다. 정밀하게 읽으면, 30.2는 회개하지 않는 자를 향해 천국을 닫는 권세가 "권징"만이 아니라 "말씀과 권징(the Word, and censures)" 두 가지로 함께 행사된다고 명시한다. 권징이 당회의 공식 치리 절차라면, 여기서 "말씀"이 가리키는 것은 설교를 통한 책망과 선포다. 30.2 자신의 논리 안에서, 회개하지 않는 죄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것은 설교가 회피해야 할 일탈이 아니라, 천국 열쇠의 사역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요구되는 절차의 절반이다. 보고서가 이 절반을 인용 단계에서는 정확히 밝히고도 판정 기준 단계에서 누락시킨 것은, 30.2를 "설교=천국 열쇠의 사역이므로 그 목적이 회심·구원·성화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편향된 결론으로 이끌기 위한 선택적 독법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한나의 기도("여호와는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 2:7-8)와 다니엘의 증언("그가 왕들을 폐하시기도 하시며 왕들을 세우시기도 하시며", 단 2:21)이 보여주듯, 성경은 통치자의 흥망 자체를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이루시는 일로 증언한다. 이 신학 앞에서, 특정 통치자의 몰락을 언급하는 정치적 판단을 그 내용 때문에 처음부터 배제하는 것은 성경 자신의 증언과 충돌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30.2는 "천국을 닫는" 권세의 대상을 "회개하지 않는 자"로 규정할 뿐 그 소속 교회를 조건으로 달지 않으며, WLC 159는 설교가 선포해야 할 "하나님의 모든 뜻"을 회중 내부로 제한하지 않는다. 이 두 조항 가운데 어디에도 "천국 열쇠는 회중 내부에만 적용된다"는 반론이 설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이 반론은 30.2를 문자 그대로 읽은 것이 아니라, 30.2가 말하지 않은 제한을 그 위에 덧씌운 것이다. 그러므로 30.2가 실제로 요구하는 검증은 정치적 결론의 내용이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는 방법과 그 결론에 부여되는 권위에 있다-이는 제7장에서 다룬다. 제4장. WCF 20.2 — 양심의 자유는 양방향으로 작동한다 교수회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밝히는 바와 같이, 하나님만이 양심의 유일한 주인이시며 사람이 만든 교리와 계명으로부터 양심이 자유하게 하셨다(WCF 20.2). 설교가 특정 정치적 결론에 대한 동의를 신앙의 충성과 연결하는 순간, 그것은 신자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기보다 제한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WCF 20.2의 실제 문안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만이 양심의 주인이시며, 그분의 말씀에 어긋나거나 그 말씀을 벗어난 신앙과 예배에 관한 사람의 교리와 계명으로부터 양심을 자유롭게 하셨다." 이 조항이 금지하는 것은 정확히 두 가지다. 성경의 말씀에 반하는 사람의 명령 성경 말씀을 벗어난 신앙·예배에 관한 사람의 명령 보고서는 이 조항을 손현보 목사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서만 적용한다. 그러나 "정치적 내용을 담은 설교는 전면 금지된다"는 규범 자체가, 성경이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사람의 규정으로서 성도의 양심에 부과된다면, 그 규정 역시 20.2가 경계하는 "말씀을 벗어난 사람의 명령"이 될 위험을 안는다. 교수회가 20.2를 인용하려면, 이 조항이 자신의 결론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제5장. 새로운 근거 - WLC 159, "하나님의 모든 뜻" 여기서부터는 보고서가 다루지 않은 조항이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159문의 실제 문안은 다음과 같다. "말씀의 사역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신실하게 하나님의 모든 뜻(the whole counsel of God)을 밝히 드러내며, 지혜롭게 청중의 필요와 능력에 맞추며... 진실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그들의 회심과 덕 세움과 구원을 목표로 해야 한다." 성경은 왕과 통치자, 재판과 정의, 가난한 자에 대한 압제, 생명과 가정, 권력의 남용을 반복해서 다룬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선포하라는 이 명령은, 성경이 다루는 공적 주제에 대한 정당한 적용을 설교의 원칙상 배제할 수 없게 한다. 다만 이 조항은 동시에 "지혜롭게", "진실하게"라는 조건을 붙인다. 제6장. 새로운 근거 - WCF 19.6과 그 한계 교수회 보고서는 "설교의 목적" 항에서 이렇게 말한다. "공적 신앙의 필요성은 신자의 삶 전반에 적용되는 일반 원리로서, 성도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신앙적 책임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청이다. 반면 설교의 본질은 공예배 안에서 은혜의 방편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의 직무에 관한 규범적 문제이다... 공적 신앙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설교가 그 실천의 직접적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자동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보고서는 여기서 "신자의 삶 전반에 적용되는 일반 원리"를 인정하면서도, 그 원리의 신앙고백적 근거를 명시하지 않는다. 바로 이 자리에 WCF 19.6이 들어간다. WCF 19.6의 실제 문안은 다음과 같다. "참된 신자는 행위 언약으로서의 율법 아래 있지 않으나... 그 율법은 여전히 그들에게 삶의 규범(a rule of life)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그들의 의무를 알려주며, 그에 따라 행하도록 지도하고 구속한다." 이 조항이 실제로 말하는 것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19.6은 율법이 "삶의 규범(a rule of life)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그들의 의무를 알려주며, 그에 따라 행하도록 지도하고 구속한다"고 선언한다 - 이는 사적 경건이라는 좁은 영역으로 한정하는 수식어를 두지 않은, 포괄적 진술이다. 이 원리는 디모데후서 3:16-17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과 정확히 공명한다. "모든 선한 일"은 예배당 안의 일로 국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율법이 신자의 삶 전체 - 정치를 포함하여 - 의 규범이 된다"는 결론은 19.6 본문이 실제로 선언하는 원리(포괄적 "삶의 규범")로부터 정당하게 도출된다. 또한 뒤이어 구체적으로 예시하는 기능 - 죄를 깨닫게 하고, 겸비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필요를 보게 하고, 부패를 억제하는 것 - 은 성화에 초점을 둔 사례들이며, "가정·직업·교육·정치"와 같은 공적 영역을 조항이 직접 열거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확장이 필요로 하는 것은 원리 자체의 정당성이 아니라, 그 원리를 "정치"라는 구체적 영역에 적용할 때 따라야 할 절차 - 곧 WCF 1.6의 "선하고 필연적인 귀결"이라는 기준(제2장)이다. 제7장. 이 구별이 판정 기준으로 작동하려면 지금까지 재검토한 세 조항(WCF 1.6, 30.2, 20.2)과 두 개의 근거(WLC 159, WCF 19.6)를 종합하면, 이제 손현보 목사의 설교를 실제로 판정할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다만 이것이 "정치적 설교는 무조건 정당하다"는 결론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 기준을 세우기 전에, 먼저 하나의 함정 - 판정 기준을 잘못된 자리에 놓을 위험 - 을 짚어야 한다. 그 정치적 결론의 내용 자체를 판정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앞서 확인했듯, 성경은 통치자의 흥망을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이루시는 일로 증언한다(삼상 2:7-8; 단 2:21). 이 신학 앞에서, "이 결론은 특정 정치인의 몰락을 말하므로 그 자체로 비성경적이다"는 식의 판정은 성립할 수 없다. 남는 것은 결론의 내용이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는 방법과 부여되는 권위에 관한 두 가지 질문이다. 첫째, 그 정치적 판단이 본문에서 "선하고 필연적인 귀결"(WCF 1.6)로 도출되었는가, 아니면 이미 형성된 결론에 본문이 사후적으로 동원되었는가. 둘째, 설교자가 그 정치적 판단을 성경적, 신학적 분별로서 제시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직접적 명령과 동일한 권위로 제시하여 20.2가 금지하는 "말씀을 벗어난 사람의 명령"이 되었는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은 신학적 원리 선언만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실제 설교 본문을 문장 단위로 검토해야 나온다. 결론. 인용된 조항 앞에서 다시 물어야 한다 이 비평이 보인 것은 네 가지다. 선지자직의 범위: 선지자적 메시지의 대상이 언약 공동체 내부로 국한된다는 보고서의 전제는 예언서의 "열국에 대한 신탁"과 WCF 19.5("도덕법은 모든 사람을 구속한다") 양쪽 모두와 어긋난다. 성경 추론의 충분성: 교수회가 인용한 WCF 1.6은 후반부("선하고 필연적인 귀결")를 포함해 다시 읽으면 오히려 정당한 정치적 적용의 여지를 열어 둔다. 천국 열쇠의 사역: 교수회가 인용한 WCF 30.2는 설교의 내용적 범위가 아니라 치리의 절차에 관한 조항이며, 오히려 그 자신의 논리 안에서 회개하지 않는 죄를 향한 "말씀"의 선포를 요구한다—다만 그 선포의 정당성은 내용이 아니라 방법과 권위로 검증되어야 한다. 양심의 자유: 교수회가 인용한 WCF 20.2의 양심의 자유 원리는 손현보 목사의 정치적 발언뿐 아니라, 정치적 침묵을 신앙의 규범으로 만드는 교단의 결정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 네 가지 재검토에 더하여, 보고서가 다루지 않은 WLC 159와 WCF 19.6은 "하나님의 모든 뜻"이 공적 영역을 포함한다는 원리를 뒷받침하되, 그 적용에는 명확한 한계가 따른다는 것도 함께 밝혔다. 그러므로 문제는 정치적 발언의 존재나 그 내용 자체가 아니라, 제7장이 제시한 두 질문—해석의 방법과 권위의 수준—을 네 편의 설교라는 구체적 텍스트에 적용할 때에만 비로소 답할 수 있는 것이다.※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6.3지방선거] 송순호 창원시장 후보, 6·3 지방선거 비전 제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송순호 창원시장 후보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창원의 미래 비전과 시정 운영 방향, 교계와의 협력 방안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송 후보는 “멈춰 선 창원을 다시 뛰게 만들겠다”며 제조 AI 산업 육성, 권역별 균형발전, 청년 유출 문제 해결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또한 과거 학생인권조례 논란과 관련해서는 “교계의 우려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사회적 갈등 사안에 대해서는 충분한 소통과 조정을 강조했다. 다음은 송순호 후보와의 일문일답. ▲ 창원시장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시민들에게 제시하고 싶은 핵심 비전은 무엇입니까. - “2010년 창원․마산․진해가 통합해 통합 창원시로 출범할 당시 시민들의 기대는 매우 컸습니다만, 지난 15년을 돌아보면 통합의 시너지가 충분히 발휘되고 있지 않습니다. 지역간 불균형, 정체된 성장 동력, 각종 현안 사업의 장기 표류 등 시정의 난맥상은 엉킨 실타래와 같습니다. 여기에 전임 시장의 중도 낙마까지 겹치면서 시정의 연속성마저 흔들려 시민들께서 창원의 미래에 대해 심히 낙담하고 계십니다. 저는 창원시의원 세 차례, 경남도의원 한 차례 등의 의정활동을 하면서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흡해 온 지역 전문가이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택한 최고위원과 이재명 대통령의 인도 특사 활동 등 26년의 지방과 중앙정치를 두루 경험한 정치가로서 지금의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고, 제대로 된 창원의 방향을 제시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제가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할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창원시장 출마는 단순히 저 송순호 개인의 정치적 도전을 넘어, 인구 100만 명의 거대 도시 창원특례시를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들고, 멈춰 선 창원을 더 늦기 전에 다시 뛰게 하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내린 결단입니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은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책임감, 강한 실행력, 속도감으로 괄목할 성과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제가 창원시장이 된다면, 이재명처럼 일하겠습니다. 대통령과 직통으로 통하는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창원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 가겠습니다.” ▲ 창원은 제조업 기반 도시로서 산업구조 변화와 경기 침체를 동시에 겪고 있으며, 이와 맞물려 청년 유출과 인구 감소 문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역경제 회복과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적 정책 방향은 무엇입니까. - “창원은 앞으로 기존의 중후장대형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산업환경에 맞게 전환하고 전후방 산업 생태계를 새롭게 재편함으로써 지역경제 회복, 청년 유출과 인구 감소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패키지형 정책이 필수적이고 최적화된 대안입니다. 우선, 창원국가산업단지와 마산자유무역지역을 중심으로 피지컬 AI 특화 밸리와 AI․데이터 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으로 창원을 제조 AI 중심도시로 거듭나게 하고, 진해신항을 북극항로 개척에 대비해 조선, 물류, 에너지 전진기지 기반 구축과 함께 스마트 항만 장비․부품 클러스터를 조성하여 글로벌 물류 허브로 육성하는 전략을 마련함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함께 지역경제를 혁신적으로 도약시키겠습니다. 또한, 창원시와 대기업,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창원형 제조 AI 펀드’를 조성해 첨단 혁신산업 성장을 뒷받침하는 투자생태계를 구축하는 한편, AI 혁신인재 양성센터 설립, 채용조건형 계약학과 설치를 통해 인재 유출 방지와 창원 주력산업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겠습니다. 아울러, 공공주도 정비사업 추진과 패스트 트랙 도입, 단독 주택지 지구단위계획 규제 완화, 의료․돌봄 통합지원 공공임대주택 건립, ‘창원형 은퇴자 마을’ 조성을 추진하고, 특히 도심 중심지에 ‘청년특화주택 1,000호’를 공급하여 주거와 일자리․문화가 결합된 생활 플랫폼형 공간을 제공하는 등 청년 유출과 주택 노후화, 고령화에 대응하는 종합적인 주택정책 패키지를 마련함으로써 ‘청년이 떠나가는 도시에서 찾아오는 도시’로 반드시 탈바꿈을 시키겠습니다.” ▲ 창원․마산․진해 권역 간 균형 발전을 위한 시민 체감도 높은 정책 방향은 무엇입니까. - “통합된 창원시의 균형발전 전략의 핵심 방향은 ‘마산을 마산답게, 창원을 창원답게, 진해를 진해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통합시라는 큰 틀에서 세 도시의 정체성을 되살리고 각 지역이 지닌 고유한 매력과 잠재력을 복원시킴으로써 통합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마산은, 마산해양신도시라는 시민 자산을 100% 공공개발 방식으로 전환해서 해운대 해수욕장 규모의 달빛해수욕장과 세계적 조각가 문신의 예술적 영감을 반영한 물놀이터 조성, 기 추진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과 한류테마 관광정원의 조기 시행 등으로 산업도시 마산의 역사 위에 해양문화․예술도시라는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 나가겠습니다. 진해는, ‘벚꽃 철에만 붐비는 도시에서, 사계절 머무는 관광도시’로의 전환을 위해, 명동마리나 항만, 진해해양공원과 소쿠리섬을 연계한 체류형 해양관광 허브 조성, 진해드림파크 산림휴양형 웰니스 관광지 조성, 근대문화유산과 군항 자원을 연계한 관광투어 상품 개발, 진해군항제를 지역 상생형 축제로 개편하는 등 인프라와 프로그램 혁신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창원은, 우리나라 산업 및 경제 성장의 동력이었던 DNA가 세계적인 제조 중심 도시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존의 국가산단은 제조 AI 허브로 새롭게 육성하고, 현재 추진 중인 제2 국가산단은 방산․소형원자로(SMR)․피지컬 AI 밸리로 특화함으로써, 창원 산업의 제2 부흥기를 열어가겠습니다.” ▲ 시정을 운영하는 핵심 원칙과 갈등 조정 방식은 무엇이며, 이를 바탕으로 시민과의 소통과 책임행정을 위한 실현 방법은 무엇입니까. - 적절한 수준의 갈등은 소모적 행위가 아니라 발전의 에너지입니다. 그만큼 시정에 대한 시민의 애정이 넘치고 참여 의식이 활발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동안은 이 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승화시킬 갈등관리 노력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시민들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시장의 부재에 따른 시정의 장기적인 표류로 지금 많은 시정의 현안들이 쌓여만 가고 있습니다. 액화수소 플랜트 사업 문제, 창원문화복합타운 활용 방안, 창원 웅동1지구 개발사업, 마산해양신도시 개발 문제 등이 대표적입니다. 시장으로 당선되어 취임하게 된다면 즉시 직제 개편과 업무 조정을 통해 일상적인 업무는 실․국장에게 과감히 위임하고, 직접 현안을 챙기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습니다. 또한, 이들 현안에는 반드시 갈등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창원형 타운홀 미팅’ 도입과 직능별 전문가로 구성된 ‘갈등관리위원회’를 복원시켜 시민의 관점에서 대화와 소통으로 갈등 해소 방안을 찾아감으로써 책임행정을 실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지역사회에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공적 역할에 대한 평가 및 창원시정과 교계의 건강한 협력 방안은 무엇입니까. - “창원특례시기독교총연합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창원시 전역에는 650여 개의 개신교 교회가 있고, 성도 수는 약 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소 우리 교계의 지역 사회에 대한 사랑과 나눔 실천은 시민의 긍지와 응집력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이제 지역 교회는 단순히 종교적 영역을 넘어, 우리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든든한 버팀목이며, 교계의 지도자와 성도님들께서 보여주시는 헌신적인 봉사와 기도는 우리 창원을 지탱하는 고귀한 정신적 자원입니다. 제가 시장이 된다면, 우리 지역 교회가 추진하는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과 자원봉사 시스템이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협력 방안을 깊이 고민하겠습니다. 단순한 정책 집행자가 아니라, 교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우리 창원을 나눔과 배려가 넘치는 ‘사랑의 도시’로 탈바꿈시키겠습니다. 정의롭고 따뜻한 창원이 되기를 바라는 여러분의 기도와 응원에 반드시 실천과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과거 ‘학생인권조례’가 지역 교계 등의 강한 반대 속에 제정이 무산된 바 있습니다. 당시 조례 제정에 찬성 입장을 보이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에 대한 현재의 입장과 교계의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당시 ‘경상남도 학생인권 조례안’ 처리 과정에서 교계가 보여주신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는, 단순한 반대를 넘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올바르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도의원으로서 당시 제가 본 조례안에 찬성했던 취지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한 명의 인격체로서 존중받고 어떤 차별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보편적 인권의 원칙’에의 동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계가 우려하셨던 교권 위축, 학교의 자율성 침해, 권리와 책임의 불균형, 그리고 성적 지향 문제 등의 부작용에 대해 세밀히 살피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다소 부족했음을 겸허히 인정합니다. 현재의 저의 입장은 시를 비롯한 행정기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나 조례가 일반인의 건전한 상식이나 윤리관, 또는 가치관에 배치되는 내용이나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앞으로 시장이 된다면,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민감한 사안, 특히 교계에서 우려하시는 성 소수자 관련 이슈나 퀴어 축제 지원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갈등의 당사자가 아닌 갈등 조정자의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지역 교계는 물론 시민단체,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창원시민과 경남기독신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을 뿐인데 지금 우리나라가 불과 몇 달 만에 국격은 상승하고 ‘이게 나라다’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우리 국민이 목도하고 계십니다. 지금 창원도 ‘다시 뛰는 창원’을 이끌 준비된 시장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이번 6.3 지방선거는 여느 때처럼 임기가 다한 시장을 다시 뽑는 의례적 행사가 아니라, 창원의 명운을 결정지을 절체절명의 계기이자 망망대해에서 멈춰버린 창원호의 엔진을 다시 돌릴 선장을 뽑는 마지막 기회라는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저 송순호는 거창한 말보다는 확실한 실천으로, 약속보다는 성과를 만드는 일 잘하는 이재명을 닮은 시장이 되겠습니다. 시장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시정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고 우리 시민이 체감하실 수 있도록 창원의 기분 좋은 변화를 착착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끝으로 창원의 밝은 미래와 우리 시민의 안녕과 복리증진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시고,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는 교계 지도자분들과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진=송순호 후보 측 제공> ※ 본지는 인터뷰를 희망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들에게 동일한 질의서를 발송하였으며, 회신 순서에 따라 인터뷰를 순차 게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희망하는 후보는 본지로 문의 바랍니다.
-
[부고] 경남기독신문 김현주 대표 부친상
▲ 김영길 씨 별세, 김현주(경남기독신문 대표)씨 부친상 = 2026년 3월 22일, 창원경상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입관 23일, 발인 24일 오전, 1차 장지 창원상복공원, 2차 장지 산청 호국원 ※ 창원경상대학교병원장례식장(055-214-1900)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삼정자로 9 (성주동)
성경
-
[조희완 목사] 패역한 시대 (렘5:10-13)
인간이 이 땅에 살아온 이후로 지금까지 인간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최초의 인간사회는 원시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는 말 그대로 원시적인 삶을 살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아무런 역사적인 기록이나 자료가 없는 시대였고, 그저 사냥이나 해서 먹고 거의 본능대로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인간사회는 농경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유목생활을 하고, 의복이나 도자기를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하고, 농사를 지어서 식생활을 해결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러다가 인간사회는 산업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살던 사람들이 기계공업을 발달시켜서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대량 생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시시대나 농경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러다가 인간사회는 지식정보화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지식을 이용해서 인간 스스로도 놀랄만한 고도의 정보통신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은 사이버 공간에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는 정보통신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지식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너무나 편리하고 살기 좋은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시대를 가리켜서 “악하고 패역한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패역하다”는 말은, “구부러졌다” “비틀어졌다”라는 뜻입니다. 그 만큼 지금 이시대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잘못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악하고 패역한지에 대해서는 구지 말하지 않더라도 신문이나 TV뉴스를 보면 대번에 그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너무나 비정상적인 시대, 너무나 악하고 패역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악하고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패역한 모습이 없어야 합니다. 패역한 삶의 모습과 그 결과가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패역한 시대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렘5:11,12) 둘째로, 패역한 시대는 자기 생각대로 행동합니다.(사65:2,3) 셋째로, 패역하면 그 자녀들이 불행하게 됩니다.(민14:32,33) 악하고 패역한 시대에 거룩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조희완 목사] 실족 예방책 (시121:1-8)
규장문화사에서 발행한 책들 중에 <교회가기 싫은 77가지 이유>라는 책이 있습니다. 전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젊은이들의 경우 39가지 이유 때문에 교회를 가지가 싫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는 노방전도 하는 모습이 너무 싫다, 술 담배를 못하게 한다, 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해서 너무 배타적이다, 기독교는 외래문화이기 때문이다, 개척교회들이 과잉 경쟁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등등 모두 39가지 이유 때문에 교회를 가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교회를 다닌 적이 있는 젊은이들의 경우는 약 38가지 이유 때문에 교회를 가기가 싫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는 교회에서 진짜 신앙인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재미가 없어서 싫다, 주일에 늦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에 싫다, 헌금의 액수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하기 때문에 싫다, 이중인격자가 많아서 싫다, 뭔가 달라야 한다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싫다,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서 교회가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마지막으로 언급한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서 교회가기 싫다”는 대목을 우리는 새겨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거 정말 교회 생활에 부담되는 대목입니다.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정말 교회에 가기가 싫어지고, 가더라도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 벽을 넘어서면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만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결국 교회를 떠나던지 아니면 실족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실족하게 되는 경우의 대부분이 다 사람 때문에 실망을 하거나 상처를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정말 불행한 일이 있다면 신앙생활 하다가 시험에 들거나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실족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실족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시121:1-3) 둘째로,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잠4:1-12) 셋째로, 빛 가운데로 다녀야 합니다.(요11:9-10) 평생 신앙생활 하는 중에 실족하여 넘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조희완 목사] 정죄와 판단 (요8:1-11)
2008년 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 30대 남성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자기가 묵고 있던 고시원 방에 불을 지르고, 놀라서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무차별 칼로 찔렀는데 6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숨진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에 돈 벌러 온 중국 동포들이어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귀한 것인데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정말 흉악한 일입니다. 그 범인을 붙잡아서 현장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때 범인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데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분개를 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주장을 들어보면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인권이 있기 때문에 보호를 해줘야 하고, 범인의 얼굴을 공개함으로 그 가족들이 받게 될 어려움을 생각해서 범인의 얼굴을 공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렇게 흉악한 사람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이기 때문에 만 천하에 얼굴을 공개해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사람답지 못한 일을 행하여서 손가락질을 당하고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 대해서 돌을 던지고 정죄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이나 악인들에 대해서 정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정죄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를 잠잠히 참아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남을 함부로 정죄하는 것을 조심하고 삼가야 합니다. 왜 함부로 사람을 정죄하면 안 될까요? 첫째로, 사람은 사람을 정죄 할 수 없습니다.(요8:6) 둘째로, 예수님도 함부로 정죄하지 않습니다.(요8:11) 셋째로, 정죄하면 내가 정죄를 받게 됩니다.(눅6:37) 사회적으로 흑백논리와 진영논리로 정죄가 난무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정죄와 판단을 삼가야 합니다.
기고
-
[기고] 바퀴벌레 선거 문화
이번 76회 고신총회 총회장 선거는 단순히 한 사람의 당선과 한 사람의 낙선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앞으로 고신총회의 선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이번 선거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째, 이참에 아예 ‘돈 안 쓰는 선거’의 제도를 만들자. 이번 76회 총회를 계기로 돈 안 쓰는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선거 조례 자체를 수정하자. 방법은 간단하다. 당일 후보 접수, 당일 투표를 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사전에 후보자를 확정하고 장기간 선거운동을 하는 현재의 방식보다, 총회 당일 후보를 접수하고 후보자들의 정견을 들은 후 바로 투표한다면 후보들이 선거운동을 위해 돈을 사용할 이유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아예 선거 조례를 개정하여 “당일 접수, 당일 투표” 제도를 도입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만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정한 선거가 되려면 돈뿐만 아니라 사전 조직과 숫자 동원도 함께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돈은 쓰지 않았지만, 조직과 숫자가 선거를 좌우한다면 그것 역시 우리가 원하는 선거는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이제는 누구도 선거에서 방심할 수 없게 되었다. 과거에는 부총회장으로 선출되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다음 총회에서 총회장이 되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부총회장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총회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총대들의 자유로운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선거 때마다 **“누구와의 약속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신뢰할 수 없으며, 결국 숫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교단에 자리 잡는다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교단의 공동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과 신뢰 위에서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단독 후보를 탈락시키는 비상식적인 선거문화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이번 선거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단독으로 출마한 후보가 총회 현장에서 낙선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단독 후보라고 해서 반드시 당선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총대들은 부적격하다고 판단하는 후보에게 반대표를 던질 권리가 있다. 그러나 단독 후보를 탈락시키고 현장에서 새로운 후보를 세워 당선시키는 방식이 과연 우리가 지켜온 교단 선거문화에 비추어 바람직한 모습인가라는 질문은 반드시 남는다. 특히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사전에 숫자를 결집했다는 의혹까지 생긴다면 더욱 그렇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런 의혹이 생길 정도의 선거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넷째, ‘바퀴벌레 식 선거문화’는 없어져야 한다. 조금 거친 표현일 수 있지만, 선거 때만 나타나 조직과 숫자를 움직이는 행태를 가리켜 **‘바퀴벌레 식 선거문화’**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두운 곳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불이 켜지면 갑자기 나타나는 바퀴벌레처럼, 평소에는 조용히 있다가 선거 때만 나타나 특정 후보의 당락을 좌우하려는 정치가 총회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바퀴벌레라고 부르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 선거 행태를 없애자는 것이다. 총회는 선거 때만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평소에도 교단과 교회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숫자가 힘’이 되는 총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선거를 보면서 이런 말이 나올까 두렵다. “총회장이 되고 싶은 사람은 먼저 숫자를 모아라. 숫자를 모을 자신이 없으면 총회장이 될 꿈도 꾸지 마라.” 이것이 앞으로의 선거문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선관위가 요구한 모든 서류를 이미 완벽하게 준비하고, 다수의 총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고 다른 후보를 당선시키는 일이 있었다는 인상을 주었다면, 우리는 그 과정을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전 모의나 조직적 표 결집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면 이는 단순한 선거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고신총회의 선거문화 자체를 바꾸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여섯째, 총대들도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번 선거의 책임을 후보들에게만 돌릴 수 없다. 우리 총대 한 사람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후보자의 신앙과 인격과 정책을 보고 투표했는가?” 아니면 “누가 될 것인가를 보고 투표했는가?” “누가 몇 표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고 투표했는가?” 총대 한 사람이 숫자의 한 표가 되는 순간 총회는 정치판이 된다. 그러나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따라 행사하는 한 표가 된다면 총회는 교회의 회의가 된다. 일곱째, 약속과 신뢰가 무너지는 총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선거 결과 자체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서로에 대한 약속과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다. “선거에서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약속은 선거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니 나도 사람을 믿기보다 숫자를 확보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교단 안에 퍼진다면 앞으로 선거는 점점 더 정치화될 것이다. 그러면 정책보다 사람이 중요해지고, 비전보다 조직이 중요해지고, 신뢰보다 숫자가 중요해진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고신총회의 모습인가? 이번 76회 총회를 계기로 오히려 좋은 제도를 만들어 보자. 돈 안 쓰는 선거를 정말 원한다면 말로만 하지 말고 선거 조례를 개정하자. 장기간 선거운동을 없애고, 당일 후보 접수 → 후보자 정견 발표 → 당일 투표 → 당일 개표 방식으로 바꾸어 보자. 그러면 후보들이 선거운동을 위해 돈을 쓸 필요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돈 대신 조직과 숫자가 선거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 없는 선거’만이 아니라 ‘돈과 조직과 숫자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한 선거’**이기 때문이다. 이번 76회 총회의 선거가 특정 개인의 승패로 끝나서는 안 된다. 돈이 힘이 되는 총회도 안 된다. 조직이 힘이 되는 총회도 안 된다. 숫자가 힘이 되는 총회도 안 된다. 약속이 무너지는 총회도 안 된다. 신뢰가 사라지는 총회도 안 된다. 선거 때만 나타나는 ‘바퀴벌레 식 정치’도 안 된다. 오직 말씀과 헌법과 양심이 힘이 되는 총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번 76회 총회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숙제다. *본고는 개인적인 견해이며,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본보는 어떠한 글이든 수용성 있게 발표 하실 수 있도록 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gnc2441115@daum.net)
-
[기고] 총회장 선거가 남긴 경고
총대들에게 묻습니다. 제76회 고신총회는 우리에게 매우 무거운 질문을 남겼습니다. 이번 총회장 선출은 단순히 한 사람이 당선되고 한 사람이 낙선한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 총회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지도자를 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을 바라보면서 총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현장에서 만들어진 후보였는가?” 선관위가 요구한 9가지 서류를 빠짐없이 준비하고, 등록금까지 철저하게 준비하여 후보 등록을 하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총회 현장에서 다수의 총대가 짧은 시간 안에 특정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일사불란하게 투표했다면, 우리는 그 과정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일인가? 그렇다면 누가 준비했는가? 어떤 과정을 통해 준비했는가? 총대들에게 언제, 어떻게 후보를 알리고 지지를 요청했는가? 그리고 그 과정은 총회가 납득할 만큼 투명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누구에게 사전 모의나 부정이 있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의문이 제기될 만한 정황이 있다면 그것을 덮고 지나가서도 안 됩니다. “부총회장이면 다음 총회장이 된다”는 공식은 사라졌습니다. 이번 총회가 보여준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분명합니다. 앞으로는 부총회장이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총회장이 된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총대들의 표가 어떻게 결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선거는 표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총회장 선거가 후보자의 신앙과 인격, 교단을 섬겨온 과정과 지도력을 검증하는 과정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총대의 숫자를 확보하느냐를 겨루는 조직력의 경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총대 여러분, 우리의 표에는 책임이 있습니다. 특정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 자체를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닙니다. 총대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누구에게든 투표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총대 한 사람 한 사람의 표는 개인적인 선택을 넘어 교단의 미래를 결정하는 책임 있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우리 편인가”가 아니라, “누가 총회를 위해 필요한 지도자인가?”라는 질문이어야 합니다. 내가 속한 세력, 내가 친분을 가진 사람,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표가 결집된다면 총회의 선거는 결국 세력 대결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숫자가 곧 힘’이라는 인식입니다. 이번 총회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경고는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숫자를 모으면 된다. 이러한 인식이 총회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면 앞으로의 선거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가 더 많은 총대를 사전에 결집하느냐가 중요해지고, 누가 더 조직적으로 움직이느냐가 당락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 신앙적 지도력과 교단을 향한 섬김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습니다. 총회가 숫자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제도를 돌아봐야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총회는 반드시 제도적인 점검에 들어가야 합니다. 후보 등록 절차는 공정했는가? 후보 등록과 관련된 정보는 모든 후보에게 동일하게 제공되었는가? 총회 현장에서 특정 후보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면 그것은 선거 규정상 허용되는 범위였는가? 총대들의 자유로운 판단과 투표를 방해하는 요소는 없었는가? 그리고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가? 이러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 일을 덮지 맙시다. 이번 총회장 선출을 두고 서로를 공격하거나 분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우리 총회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 지금 이야기해야 합니다. 오늘 침묵하면 내일은 더 큰 조직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숫자로 승부하는 선거를 아무 문제 없이 받아들이면, 다음에는 더 치밀한 조직과 더 큰 숫자를 가진 사람이 총회를 좌우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가서 후회해서는 늦습니다. 그러므로 제76회 총회를 지나며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어떤 총회를 원하는가? 사전에 조직된 숫자가 결과를 결정하는 총회인가? 아니면 모든 후보가 공정하게 검증받고, 총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따라 판단하여 지도자를 세우는 총회인가? 이번 제76회 총회의 결과를 단순히 승자와 패자의 문제로 보지 마십시다. 이것은 우리 총회의 선거문화와 미래에 관한 문제입니다. 총대 여러분, 우리의 한 표에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총회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숫자가 힘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숫자가 총회의 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76회 총회의 총회장 선거가 우리에게 남긴 이 경고를 가볍게 넘기지 마십시다. *본고는 개인적인 견해이며,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본보는 어떠한 글이든 수용성 있게 발표 하실 수 있도록 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gnc2441115@daum.net)
-
[김경헌 목사] 탄핵도 아니고 ……
제76회 고신총회에서 총회장 후보로 단독 출마하여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책을 발표하고 약 3개월 동안 선거운동을 진행한 후보가 총대들의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는 현장에서 새로운 목사가 총회장으로 입후보하여 선출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일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번 일은 한 후보의 낙선과 다른 사람의 당선이라는 결과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총회가 스스로 정한 선거 절차를 얼마나 공정하게 운영했으며, 그 과정이 교단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는지를 묻는 문제다. 물론 선거관리위원회 규정에 단독 입후보자가 과반을 얻지 못할 경우 다른 사람을 선출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이 있다면, 형식적으로는 그 규정을 근거로 현장 선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규정이 어떠한 상황을 전제로 만들어졌느냐 하는 점이다. 규정의 존재가 그 규정을 적용한 과정의 공정성까지 자동으로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단독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당선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총대들에게는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다만 그 권리가 행사되는 과정에서 정식 입후보 절차와 정책 검증의 기회가 사실상 무력화된 것은 아닌지, 사전에 준비한 다른 인물을 선출하기 위해 현장 선출 규정이 이용된 것은 아닌지를 묻는 것이다. 입후보자가 아무도 없거나 선거 과정에서 후보가 확정되지 않는 상황을 대비하여 총회 현장에서 후보를 추천하고 선출할 수 있도록 한 규정과, 특정 후보가 정식으로 단독 입후보하여 수개월 동안 정책을 발표하고 선거운동까지 한 상황에서 총대들이 사전에 뜻을 모아 그 후보를 낙선시키고 현장에서 다른 사람을 선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만일 후자의 일이 사전에 조직적으로 계획되고 실행되었다면, 이것은 단순히 ‘규정상 현장 선출이 가능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선거의 공정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했느냐는 훨씬 근본적인 문제다. 정식으로 후보 등록을 하고, 총회가 정한 일정에 따라 정책을 발표하며, 3개월 동안 총대들에게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알리며 선거에 임한 후보가 있었다면 그 후보에게는 최소한 공정하게 경쟁하고 평가받을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겉으로는 단독 후보로 선거를 진행하게 해 놓고, 실제로는 일부 총대들이 사전에 다른 인물을 추대하기로 뜻을 모은 뒤 단독 후보에게 과반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낙선시키고, 곧바로 현장에서 자신들이 준비한 인물을 총회장으로 선출했다면 과연 이것을 공정한 선거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총회가 정한 후보 등록과 정책 발표, 수개월 동안의 선거운동은 무엇을 위한 절차였는가? 정식 후보에게 요구했던 준비와 검증의 과정은 그 선거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더욱이 "현장에서 다른 사람을 선출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입후보자가 없는 경우를 대비한 규정’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식으로 단독 입후보한 후보를 낙선시킨 뒤 사전에 준비한 다른 사람을 현장에서 선출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규정 해석과 논의가 필요하다. 이 문제에 답하려면 실제 규정의 문언과 제정 취지, 이번 선거에서의 적용 경위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현장 선출이 가능하다"라는 말만으로는 그 규정이 이번과 같은 과정까지 정당화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규정에 문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규정을 만든 본래의 취지와 절차적 공정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정식 후보가 수개월 동안 정책을 준비하고 선거운동을 한 반면, 다른 후보는 공식적인 입후보 절차와 선거운동을 거치지 않은 채 현장에서 총회장으로 선출된다면, 그 결과를 바라보는 총대와 교회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허탈감과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3개월 동안 준비하고 자신을 검증받았는데, 다른 사람은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현장에서 총회장이 되는 것이 과연 우리가 지켜야 할 선거의 모습인가? 같은 직책을 맡을 사람을 선출하면서 준비와 검증의 과정이 이처럼 달라졌다면, 총회는 그 차이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결과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것이었다면 그 문제는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사전에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기로 뜻을 모으고 현장에서 다른 사람을 선출했다면, 그것은 규정의 빈틈을 이용하여 선거의 결과를 사실상 미리 정해 놓으려 했다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확인해야 할 것은 현장에서 투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 투표에 이르기까지 어떤 논의와 준비가 있었으며, 그 과정이 정식 선거 절차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까지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아무런 공식적인 선거운동이나 정책 검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총회장이 되었다면, 그 당사자 역시 최소한 그 과정이 공정했는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총회장에 선출되었는지에 대해 교단 앞에 설명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당선이라는 결과가 선출 과정에 대한 질문을 지워 주지는 않는다. 교단을 대표하는 자리에 선 만큼, 그 과정에 제기되는 의문에도 책임 있게 답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것을 단순히 ‘규정에 따른 합법적인 선출’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교단의 선거는 법조문 몇 줄만 지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공정성, 투명성, 신뢰, 그리고 선거 과정에 대한 총대들의 납득이 함께 확보되어야 한다. 규정이 현장 선출을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하여 특정 후보를 조직적으로 낙선시키고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사람을 현장에서 선출했다면 과연 그것이 규정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지 엄중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이번 일은 특정 개인에 대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1) 정식으로 입후보한 후보에게 공정한 선거의 기회가 주어졌는가? 2) 현장 선출이라는 제도가 어떤 취지에서 만들어졌는가? 3) 사전에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조직적인 논의가 있었는가? 4) 있었다면 그것은 선거관리 규정과 총회의 정신에 부합하는가? 최소한 이 네 가지 질문에 대해 교단은 정직하게 답해야 한다. "규정에 있다"라는 답변만으로는 이 질문들이 해소되지 않는다. 총회장의 자리는 누군가가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으로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수개월 동안 정책을 준비하고 교단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비전을 제시한 후보를 조직적인 방법으로 떨어뜨린 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서서 총회장이 되었다면 그 과정 자체가 교단의 신뢰를 얻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총회장은 누군가의 전략으로 만들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총대들의 공정한 판단과 교단의 신뢰 위에서 세워져야 한다. 따라서 제76회 고신총회의 이번 총회장 선출 과정에 사전 모의나 조직적인 낙선 계획이 있었는지, 현장 선출 규정이 이번과 같은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선거관리위원회의 규정과 총회의 정신에 부합했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전 모의나 조직적인 낙선 계획이 있었다면 그 경위와 규정 위반 여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러한 사실이 없었다면, 제기된 의혹에 대해 확인된 사실과 적용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해야 한다. 어느 경우든 교단이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이 필요하다. 교단의 지도자를 세우는 선거에서 절차의 공정성이 무너지면 그 결과에 대한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그 신뢰의 상처는 한 후보에게만 남는 것이 아니라, 총회와 교단 전체에 남는다. 이번 일을 단순히 "규정에 있으니 문제없다"라고 넘길 것이 아니라, 총회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공정하게 총회장을 선출했는가?” 이 질문에 누구도 부끄럽지 않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답은 규정의 문구를 반복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실제 선출 과정에 대한 투명한 설명과 객관적인 확인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본고는 개인적인 견해이며,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본보는 어떠한 글이든수용성있게 발표하실수있도록 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gnc2441115@daum.net)
기획기사
-
[연속기획 ⑧] 이성구의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시대적 배경으로 본 비평 #8
“17세기 영국의 신앙고백을 오늘 한국교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가?”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시대적 배경과 설교자의 선지자적 사명에 비추어 본 손현보 목사 설교를 비판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 비평 - 안타깝다. 거센 저항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난해76회 고신총회가 전라 서울 중부 충청서부노회의 청원을 받아들여 손현보 목사의 설교를 문제 삼았을 때부터 이 사건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총회에 답안을 제시하기 전에 공개토론회든지, 간담회든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과의 논의를 거치면 좋겠다는 의견을 신대원과 총회 신학부에 제시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총회가 가까워지니 교수회는 총회가 의뢰한 신학부의 질의에 대답하는 형태의 짧지 않은 글이 인터넷에 나타났다. 논의하자고 청원한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문건이 고신의 공식 기관지가 아닌 교회 비판에 열을 내는‘뉴스앤조이’라는 인터넷 매체로부터 흘러나왔다. 교수회의 답변이 총회가 열리기 전에 얄궂은 교회 비판 언론을 통해 나타난 이유와 경로에 대한 논란은 일단 접어두고 보고서의 본질을 논해보자. 교수회는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대답을 내놓았다. 당연히 격한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포장은 그럴듯했으나 벗겨본 결론은 역사를 한 발짝도 앞으로 옮기지 못한 채 원론적 수준에 그치는 작품이었다. 논란의 소지는 오래되었고, 증상은 심각한데 신대원 교수회는 고민 없이 여전히 그냥 그대로였다. 장로교 교리 표준서를 들먹이고, 설교의 내용 방법에 한정한다며 줄을 그었지만 역시 그들의 주장은 오늘의 역사적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는16,7세기 유럽 수준에서 머물렀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최대한 성경적으로 문제에 접근해 보자. 과연 오늘 고신 교회는 목사의 설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신대원 교수회의 설교 해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흔히 교회의 위기는 곧 설교의 위기라고 말한다. 과연 손현보 목사의 설교 비판에 열을 올리는 자들은 거기서 교회의 위기를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지 상관없이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손현보 목사와 대비되는, 자신들의 위치가 위태롭다고 보았기 때문일까? 교수회는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손현보 목사의 설교를 평가했다. 웨스트민스터 고백서(WCF)와 신조를 중심으로 설교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그것을 근거로 네 편의 설교를 평가했다. 필자는 교수회가 내린 설교의 정의와 설교 평가 내용을 중심으로 교수회의 시대착오적 평가와 설교 비평의 오류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번 교수회 평가서를 작성한 교수 중에는 한 때 제자들이 들어있기도 하여서 조심스럽지만 정확한 평가를 위하여 있는 그대로 지적해 보고자 한다. 반박의 여지가 있을 때는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활발하게 토론에 임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학문적 목회적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 소위 정교분리 문제의 근거로 사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1장4항 분석과 비평 교수회는 고백과 신조를 근거로 하여 설교에 대한 정의를8가지 영역으로 종합적으로 재구성하여 정리하였다. 깔끔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교수회는 손현보 목사의‘정치설교’를 다루면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지난해 제75총회에 제출된 자료로 대신한다고 하였다. 소위 정교분리에 대한 견해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태도이다. 필자는 먼저 손현보 목사의 설교가 정치설교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근거인 신앙고백서31장4항에 대한 분석을 통해 교수회의 입장을 반박해 보고자 한다. (1) 신앙고백서의 시공간적 한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WCF)는 익히 알려진 대로 대륙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130년 뒤인1647년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신앙고백서가 작성되던17세기 중엽(1640년대) 영국은 왕정을 지지하는 왕당파와 청교도 중심의 공화파인 의회파가 맞붙은 청교도 혁명(Puritan Civil War, 1642~1651)의 한복판에 있었다. 당시 종교와 정치는 칼날처럼 얽혀 있었다. 영국 왕 챨스1세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대주교 윌리엄 로드와 함께 국왕 중심의‘주교제(Episcopacy, 성공회)'를 강요하며 청교도들을 잔인하게 탄압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대결이 불가피하였고, 왕당파 군대에 맞서기 위해서 의회파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스코틀랜드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스코틀랜드는1560년도에 존 낙스(John Knox)가 이미 종교개혁(Scottish Reformation)을 이루고 개혁주의 신학을 도입하고 장로교회의 기틀을 확립한 상태였다. 잉글랜드 의회파의 요청을 받은 스코틀랜드는 그 대가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교회를 하나로 통일하자는’엄숙동맹과 계약(Solemn League and Covenant, 1943)’ 체결을 요구하여 성사시켰다. 이와 함께 잉글랜드 의회는 스코틀랜드 군대의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양국교회의 교리를 하나로 일치시키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소집하였다. 총회는 타락한 성공회 주교제를 폐지한 자리를 대신해 개혁주의(장로교) 신앙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CF)를 작성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백서는‘청교도 혁명의 영적 설계도’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위대한 고백서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현재 우리가 가진 고백서의 원본은 기독교 국가와 다종교국가라는 원형적 차이, 시대적으로400년 가까운 시대적 차이를 가진다. 해석적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A. WCF는 특정 시대 특정 국가의 상황이 반영된 고백서이다. 교수회는 지금부터397년 전에 완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WCF)의 시대적 공간적 한계를 의식하고 있다: 공의회가 교회적 사안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해서‘정치와 교회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고백서가 성경의 권위처럼 불변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님은 명백하다. 고백서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가 가능하고, 때로 변화되어야 하는 특정 시대 특정 그리스도인들의 고백 묶음이라고 말해야 정확하다. 그런데도 교회가 정치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경우를 아예‘비상시국’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것이 바른 방향인가? 비상시국(cases extraordinary)은 구체적으로 언제를 가리키며, 교회는 시민적 사안을 두고 항상 비상시국이라는 한계 내에서만 발언이 가능한 것인가? B. WCF는 국가교회 체제의 사물이다. 영국은 고백서 제정 당시, 신학과 신앙은 개혁파를 따랐지만, 여전히 국교회 체제였고, 의회를 에라스투스파가 지배하던 시대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독일의 신학자 에라스투스(Thomas Erastus, Erastianism)와 뜻을 같이하던 사람들은‘국가(세속 정부) 가 교회의 교리, 치리, 행정 등 교회의 일에 대해 최종적인 통제권을 가진다’라는 견해를 밝혔고, 당시 유럽 국가들은 교황제도를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 국가교회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슷한 흐름이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WCF는 여전히 국가의 교회 통제를 인정하는 국가교회 체제를 배경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교수회가 근거로 삼는 오늘 우리가 가진 고백서23장은 여전히 국가교회의 잔재를 담고 있다. 23장3항은“국가공직자들은 말씀과 성례의 집례나 천국의 열쇄권을 전유하거나 믿음의 사안에 조금이라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양육하는 아버지처럼 우리 공동의 주님의 교회를 보호하되….”라며 국가공직자를 놀랍게도 아버지에 빗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의 우리 교회가 사실상 용납할 수 없는 표현이다. 4항도 우리에게 전혀 불필요한 표현을 포함하고 있다. “…. 교황이 그들을(공직자나 백성) 이단이라고 판결하거나 어떤 다른 구실로든 그들의 통치권이나 생명을 빼앗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뜬금없는 표현이 여전히 오늘의 우리 고백서에 포함되어 있다. 교황과 맞서 싸우던 시대, 여전히 교황의 기세가 등등하던 시대에 유사성을 가진 국가교회를 배경으로 한 교회가 가질 수 있는 고백의 내용이 여러 차례 수정을 계속해 온21세기 한국교회 교리표준 속에 그대로 포함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따라서 교수회가 근거로 삼은 고백서23장과31장은 시대 상황을 담는 변화가 필요하며 그것을 근거로 오늘의 설교자를 비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C. 영국국교회는 지금도 정치제도권의 강력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1647년 신앙고백서를 인준했던 영국 의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영국국교회(성공회)에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제도적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영국 의회는 지금도 교회를 대신하여 발언해 줄 공식 대변인들을 보유하고 있다. 고백서 제정 당시 상황에서는 의회 의원들 모두 공식적으로 국가교회의 일원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제도적으로 지금까지 영국 의회는 공식적으로 교회의 영향을 받도록 구성되어 있다. 상하 양원으로 구성된 영국의회의 상원은‘House of Lords'(귀족원)라 불리며 성공회 주교(Bishop) 26명이 의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상원은 하원에서 올린 법안에 대하여 면밀히 심사하여 수정안을 제시할 권한을 가진다. 주교들은 상원 회의장 단상에 직접 서서 성경적 윤리적 부당성에 대해 연설하고 법안을 수정하거나 부결시키기 위해 투표할 수 있다. 의회제도 내부에서 교회를 대신하여 합법적으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졌다. 상원이 특정 법안을 반대하면 최대1년간 법안 통과를 늦출 수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성경적, 교리상으로 문제 있는 법안이 제기되면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 있는 공식적 발판이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국가가 교회의 일에 관여하지 않게 하려고 교회도 공의회를 통하여 교회적 사안만 다루는 것으로 한정을 지었지만, 교회의 일이 국가에 의해 침해받을 때는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의회 내의 장치가 단단하게 마련되어 있었고 지금도 일정부분 작동하고 있다. D. WCF 23장, 31장을 개정한18세기 미국 장로교회도 여전히 기독교 국가와 유사한 상황이었다. 1788년 미국 장로교회가 이 고백서를 채택할 때23장(정부)을 일부 수정하고31장(총회) 2항을 삭제하였고, 31장4항은 전혀 수정하지 않은 것은 당시 미국 사회는 인구의 절대다수가 기독교인이거나 기독교적 세계관(청교도 및 복음주의 영성)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의회에 선출되어 들어가는 정치가들 역시 대부분 기독교적 가치관에 익숙한 인물들이었다. 따라서 미국 장로교회는 교회가 정부나 의회를 감시하거나 압박하지 않더라도, 성경적 양심을 가진 기독교인 의원들과 시민들이 의회를 통해 사회를 기독교적 가치로 이끌어갈 것이라는 신뢰와 낙관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굳이 교회가 조직적으로 국가와의 경계를 무너뜨려 가면서 정치문제에 개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E. 고신총회가 받은WCF고백서는 여전히 영국과 미국의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다. 영국은 국교회의 배경, 미국은 국교회는 아니지만 국가 전체가 절대적인 기독교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가운데 만들어지고 수정된 고백서가 바로 오늘 우리 한국 장로교회가 가진WCF이다. 우리는 미북장로교회가1903년에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컴벌랜드 장로교회와의 합병을 위해 성령론을 담은34장과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의 복음을 강조한35장을 추가한 고백서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한국 장로교회가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을 거쳐 우리에게 전달된 이 고백서를 수정 없이 완전한 우리의 고백으로 받아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영국의 원본을18세기 미국교회가 수정한 바 있는31장 대회와 공의회의 역할에서 특히 오늘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4항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가? 기독교 인구20%에 그치고 기독교 역사가140여 년에 불과한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을17세기 영국이나18세기 미국 상황에 그대로 대입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본문에 관한 질문이 이어진다. (2) ‘교회적 사안(ecclesiastical matters)'을 결정할 최종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WCF는 지금부터384년 전 발생한 청교도 혁명(1642-1651)으로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에 교회 체제에 대한 논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교회 체제의 영국교회가 국가를 대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 중심으로31장4항을 정리해 놓고 있다. 대회와 공의회는교회적인 사안만을 다루어야 한다. 비상시국에 겸허한 청원이나 국가공직자의 요청을 받아 양심상 행하는 조언 외에는 국가와 연관된 시민적 사안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이 조항에 대하여 교수회는 철저하게 문자 그대로 따를 뿐, 시대적 상황에 따른 새로운 해석의 영역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원리에 따라 교회 직원들의 치리회인 공의회(당회, 노회, 총회)는 교회와 관련된 문제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다루거나 결정 내려서는 안 된다(31장4항). 따라서 공의회는 상정된 안건이 교회적 사안(ecclesiastical matters)인지 아닌지 신중하게 판결해야 한다. 만약 그 안건이 교회적 사안이 아니라고 판결하면 치리회는 그 안건은 다루지 말아야 한다. 신앙고백서는 교회적 사안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신앙과 교리에 관한 논쟁, 목회 현장에서 제기되는 여러 양심의 문제들(cases of conscience), 예배와 교회 정치에 관한 것들, 교회 안에서 접수된 불만들(31장2항).” 교수회는 고백서가 서술한 대로, 교회 공의회는 제기되는 문제를 교회적 사안과 시민적 사안으로 구별하고, 교회는 오직 교회적 사안만 다루어야 한다고 못 박는다. 중요한 것은17세기 영국이나18세기 미국은 세속 정부가 대부분 신자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에 따라 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그런 신뢰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가 끊임없이 창조 질서를 파괴하고 기본권인 자유와 교육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거듭하고 있는 때에도 교회가 과연 교회적 사안만을 구별해 내어서 그것만 다루어야 하는 것인가?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여러 가지 문제가 그리 쉽게 나누어질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손현보 목사는 설교를 통해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비성경적임을 설파하고, 정부가 행한 코로나를 빙자한 주일예배 금지를 통렬히 비판했다. 이런 반기독교적인 행위를 이끄는 집권당 대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재명을 악으로 규정하고 악의 세력이 무너지게 기도하도록 성도들에게 요구하였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설교가 철저하게 성경적 가르침과 가치에 기초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고 수많은 사람이 그 확신에 찬 악한 세력에 저항하는 외침에 동의하고 있다. 실제로 동성애 반대, 주일예배 금지 반대는 교회적 사안이다. 특히 동성결혼 허용 같은 문제는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교회적인 사안일 뿐 아니라 건강한 가정조직을 해치는 시민적 사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교수회는 갈수록 우리 사회가 세속화되면서 교회적 사안이자 시민적 사안일 수 있는 문제들이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전혀 대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손 목사의 설교가 교리와 충돌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질서를 부정하는 세력이 노골적으로 전방위적으로 교회를 압박하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설교의 위법성만 찾으려는 교수회의 태도는 대부분의 교회를 설득하기 어려울 것으로 사료된다.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더 남는다. “설교자가 다룰 수 있는 주제와 범위도 공의회의 결정 사항인가?” “설교의 주제나 범위도 매주 당회의 결정을 거쳐야 하는가?” 그럴 수가 없고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다. 장로교 전통 어디에도 그런 규정이나 관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그 작업은 설교자의 자유로운 양심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손현보 목사가 고신총회에 소속되어 있는 한 우리는 그의 신앙 양심과 신학, 성경관과 그의 설교 방향을 존중해야 한다. 고백과 교리에 어긋나지 않고, 이단으로 확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면 기도하며 계속 지켜보며 뜻을 함께 모아가야 할 것이다. (3) 비상시국(cases extraordinary)에만‘겸손히’ 청원(humble petition)하고 국가공직자의 청원을 받아 조언하라는 고백서의 내용이 오늘 한국교회에 적용될 수 있는가? WCF는 조직체로서의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엄격하게 말하면서도 비상시에는 국가에 대해 교회가 말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쪽문을 열어놓고 있다. 대회와 공의회는 교회적 사안만을 다루어야 한다. 비상시국에 겸허한 청원이나 국가공직자의 요청을 받아 양심상 행하는 조언 외에는 국가와 연관된 시민적 사안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교수회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정치와 교회가 구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와 교회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우리의 신앙고백서에 따르면, 치리회는 예외적으로 정치와 관련된 일을 다룰 수 있다(31장4항). 하나는 비상시국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의 위정자가 요청하는 경우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비상시국에서 치리회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정치와 관련된 안건을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안건을 결정해서 그것을 정치에 제안할 때는“겸허한 청원”(humble petition) 형식을 사용해야 한다. 교회가 정치에 전하고자 하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전하는 형식 역시 중요하다.” 오늘 우리 고백서 가운데 가장 처참한 표현이자, 반드시 제거해야 할 어귀가 바로‘by the way of humble petition', ’겸손한 청원의 방법으로’라는 구절이다. 이 용어는 그야말로17세기 영국국교회가 할 수 있는 표현이다. 교수회에 물어보자. 왜 교회가 국가에 겸손해야 하는가? 어떻게 교수회는 조건 없이 이 고백서의 표현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전체주의적 좌편향적인 정부에게 적용하기를 요구할 수 있는가? 이 표현은 동양적 겸양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17세기 당시 영국 왕과 의회(정부)는 기독교 신자들로 구성되었고, 교회의 권위를 인정했다. 따라서 교회가 정부에 의견을 낼 때,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기독교 정부가 선처해달라"는 의미로'겸손한 청원'이 가능했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오늘날 다원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정부는 영적 눈이 없는 세속 정부이며, 불교·천주교·이슬람·무종교인이 섞여 있는 다원주의 사회를 다스리고 있다. 기독교는 국가의 신하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를 가진 국민이요 주권자이다. 주권자가 세속 권력의 독선에 맞서는데 왕정 시대의'겸손한 청원'이라는 노예적 단어를 쓰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1788년 미국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이때 국가 위정자가 교회를 간섭하거나, 교회가 국가에 종속적인 태도를 보이는 뉘앙스의 구절들을 대폭 삭제하거나 수정했다. 즉, 국가교회 시절의 단어를 그대로 현대다원주의 사회에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미240년 전에 신학적으로 정리하였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이 항목은 여전히 남아있고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렇다면'겸손한 청원' 대신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이 구절을 어떻게 재해석해서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 측면을 신앙고백서에 추가하도록 노력하면서 교육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선지자적 책망(Prophetic Rebuke)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속 정부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대적하는 법(차별금지법 등)을 만들 때, 교회는'겸손하게 청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들처럼"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이며, 국가를 망하게 하는 길"이라고 당당하고 무섭게 책망해야 한다. 영적 권위를 가지고 위정자의 양심을 두드려야 한다. 둘째로 헌법적 저항(Constitutional Resistance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성도는 국가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할 때는'청원'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투표권'이라는 합법적인 권리를 총동원하여 정당하게 저항하고 맞서 싸우도록 가르쳐야 한다. '겸손한 청원'은 국가교회 체제의 유물이다. 영적 눈이 없고 백성의 말을 듣지 않는 지금의 세속 정부를 향해"제발 들어주십시오"라고 겸손히 구걸하는 방식은 맞지 않고, 전혀 효과도 없다. 성경적 가치체계가 흔들리는 오늘날의 비상시에 목회자들이 가르쳐야 할 진짜 신앙고백서의 정신은, 문자에 갇힌'겸손한 청원'이 아니라,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세속 권력의 죄악을 꾸짖는'담대한 선지자적 선포'와 주권자로서의'당당한 저항'이라고 할 것이다. 목회자들이 이 구시대적 문구 뒤에 숨어 침묵의 핑계로 삼지 못하도록, 성경적'선지자적 권위'를 가지고 정부와 맞서도록 깨우고 고백서를 수정하는 작업이 시급한 일이라 사료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국가공직자의 요청을 받아 양심상 행하는 조언”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국가 위정자도 어떤 비상한 일이 발생하여도 교회에 공식으로 청원하는 법이 없다. 세속 위정자들은 이미 그들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다. 따라서 교회가 국가의 청원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적극적으로 국가가 성경적 원리에 반하는 일을 자행할 때는 헌법적 질서를 따라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행동하는 게 맞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자 대한민국의 주권자이기도 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바른 태도라 할 것이다. 2. 손현보 목사의 설교에 대한 교수회의 평가에 대한 비평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는2025년 교회와 정치 관련 보고서에서 이미 굉장히 위험한 발언을 쏟아낸 적이 있다. 보고서3항“교회와 정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구약성경의 종교와 정치 관계와 규범은 신정일치 국가에 주어진 것임으로 자유 민주 공화정을 채택한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와 정치와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은 신약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교회와 정치와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가르침은 아래의 성경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1) 구약의 정치 관련 교훈은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교수회는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완전히 갈라놓고, 구약은 현재와 전혀 다른 상황이므로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하여 구약과 신약의 완전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교회와 정치의 관계는 신약에서 찾아야 한다”라는 주장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구약과 신약은 연속성과 불연속성 두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의 제도와 규범을 현재에는 전혀 적용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면, 이게 과연 올바른 개혁신학적 입장인가? 구약에 기록된 각종 법에 관한 교훈을 신약 시대(오늘날)에 전혀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은 신학적으로 옳지 않다. 구약과 신약은 단절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구속사적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구약의 법을 오늘날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의 방식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구약의 법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신약 시대의 연속성을 설명한다. 첫째, 도덕법(Moral Law)은 십계명과 같이 하나님의 영원한 성품과 기준을 나타내는 법으로 연속성이100% 유지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성도의 삶의 기준으로 유효하다. 둘째 의식법(Ceremonial Law)은 제사, 할례, 정결 의식 등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표 하는 법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형태는 완성(폐지)되었지만, 그 속에 담긴'거룩함'과'예배'의 정신은 신약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레위기 서를 읽고 배우는 이유이다. 셋째 시민법 혹은 재판법(Civil Law)이라 불리는 부분은 고대 이스라엘이라는 신정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주어졌던 정치, 경제, 사회적 정책과 법률이다. 이 법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법이 담고 있는 중요한 요소인'정의와 공의', '약자 보호', '책임'이라는 도덕적 원리와 교훈은 오늘날에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한다. 물론 문자주의적 적용의 한계(안식년에 빚을 탕감해 주거나, 토지를 영구 매매하지 못하게 하는 법 등을 현재 적용 불가한 것), 율법주의(율법 준수와 구원) 에 대한 경계 때문에 불연속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구약의 율법과 역사 지혜서 등에 담긴 모든 교훈은 결코 오늘의 정치 상황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신약성경 자체도 구약의 교훈이 신약 성도에게 여전히 유효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5:17)이나"모든 성경(구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등은 구약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구약의 정책을 오늘날 문자 그대로(literally) 집행할 수는 없지만, 그 정책안에 녹아 있는 하나님의 뜻과 영적 원리(Spirit)는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강력한 교훈으로 살아 있다고 말해야 한다. 따라서"구약의 교훈을 신약에 사용할 수 없다"라는 말은 성경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주장으로 교수회의 진의를 알고 싶어진다. 교수회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손 목사와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설교자들이 그들의 설교를 선지자들의 사역에 견주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태도는2026년9월 총회에서 다루어질 교수회 보고서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2) 설교의 내용이 성경 본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적 위기 진단과 특정 정치인에 대한 평가가 주를 차지하며, 본문이 자기 맥락 안에서 해석되지 않는다는 교수회의 비판은 지나치게 도식적이다. A. 교수회는 손현보 목사의2025년1월 한 달간의 설교 네 편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그 설교는 손 목사 설교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는 한 교회에서30년 이상 목회를 계속하고 있다. 장기 목회를 하는 목사의 설교는 교회력을 따라, 교회의 목회 계획을 따라 설교도 맞추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대한민국의 현재와 장래를 염두에 두고 정치영역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오늘과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말씀을 찾아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살펴 오늘 성도들에게 필요한 교훈을 설교했을 것이다. 설교자는 누구나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오늘 성도들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 context)을 분석하고 그 상황에 적합한 말씀(text)을 찾아 설교하게 된다. 2025년1월은 탄핵 국면이 시작되는 절박한 시점이었다. 그런 시대적 상황 가운데서 나라의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그 상황을 분석하고 필요한 말씀을 전한 설교가 왜 문제가 되는가? 교수회의 주장을 따라 본문이 자기 맥락 안에서 해석되지 않았다고 하자. 그렇다면 언제나 모든 설교자가 그런 본문의 세밀한 해석을 바탕으로 설교하는 길을 가고 있는가? 설교가 언제나 동일한 해석 방법을 따라야 한다면, 동일한 본문은 항상 동일한 설교를 낳아야 하지 않는가? 왜 설교자에 따라 동일한 본문을 다르게 설교할 수 있을까? 언제라도 신학교가 정한 정교한 해석 방법을 따라야만 설교가 가능하다면, 신학교에서 훈련받지 않은 사람은 설교할 수 없는 것일까? 가령 교수회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아모스5장24절에 나타난 정의와 공의에 관한 말씀을 다른 설명 없이 오늘의 악한 정부나 개인에게 적용할 수 없는 것일까? 아무리 살펴보아도 아모스 시대의 정황과 우리 정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얼마든지 언제 어디서라도 아무런 설명 없이도 정의와 공의를 강조하는 설교를 해도 무방해 보인다. 교수회는 보편성 있게 제대로 설교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하지만, 신학교가 세운 틀에 의해서만 설교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3) 구약의 선지자와 오늘의 설교자를 차등화하려는 시도는 근거와 설득력이 부족하다. 1) 교수회의 차등 주장 교수회는 설교의 내용을 지적하면서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교회의 설교자는 동일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오늘의 설교자가 선지자처럼 설교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단정한다. 그러면서 동일하지 않은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선지자와 설교자는 권위의 근거가 다르다. 선지자의 권위는 직접 계시 사건에 근거하지만, 설교자는 단지 기록된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직무를 맡은 자일 뿐이다. 둘째, 메시지의 일차적 대상이 다르다. 구약 이스라엘은 신정 공동체였으며(행7:38), 선지자들이 고발한 왕은 세속 정치인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의 직분자였다. 따라서 설교자가 외부 정치권력에 대한 규탄으로 곧바로 나아가는 것은 선지자 전통과 맞지 않다. 셋째, 선지자적 고발의 목적과 방향이 설교자와 다르다. 선지자들의 고발은 언제나 회개로의 초대와 언약적 회복이었고, 심판 선언은 공동체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이끄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손현보 목사의 네 편의 설교에서는 죄의 진단이 성도와 교회를 향한 내적 성찰로 이어지지 않고, 특정 정치 인물과 세력에 대한 규탄으로 집중되어 옳지 않다. 넷째, 선지자들과의 비교 없이 손현보 목사의 네 편의 설교는 은혜 언약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인류가 당면한 가장 결정적인 죄의 문제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유일한 해결책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생명과 구원과 축복으로 이루어지는 은혜 언약 구조가 없다. 손현보 목사의 네 편의 설교에서 성경은 설교의 내용을 생성하는 원천이라기보다, 정치적 결론을 보조하는 장치로 기능한다고 주장한다. 2) 교수회 차등 주장에 대한 반론: 신약교회의 설교는 선지자의 전통 위에 서 있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는 무슨 연유인지 설교의 내용에 대한 비판을 시작하면서 애써 선지자적 전통이 오늘의 설교사역에 이어지는 것을 부인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과연 교수회의 주장이 정당한가? A. 권위의 문제: 신약도 사도를 비롯한 설교자들이 선지자의 전통 아래 있음을 확인한다. 교수회가 주장하는 대로 선지자와 설교자의 권위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직접적인 계시를 받아 전한 선지자와 이미 계시가 된 말씀으로 설교하는 사람이 같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전혀 연관성이 없는가? 아니다. 사실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신약성경은 구약 선지자와 신약 설교자(혹은 복음 전도자) 사이에 분명한 사명적·기능적 연속성이 있음을 여러 본문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신약성경이 두 직분의 연속성을 여러 가지로 입증해 주고 있다.. 그 가운데서'예언(Prophecy)' 은사가 신약에서 계승되고 있음을 고전14장3절이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여기서 신약 교회에 주신'예언'의 은사는 미래를 맞히는 점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預言)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위로하는 설교 사역을 뜻하고 있다. 바울은 신약의 설교자(예언하는 자)가 구약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공동체를 세우는 기능을 그대로 이어받았음을 확증해 주고 있다. 마23:34, 엡4:11절은 복음 전파자를 향하여 선지자로 부르고 있다. 예수님은 신약 시대를 내다보시며"내가 너희에게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라고 하셨고, 바울은 교회의 직분을 논하며"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라고 하였다. 초대 교회 안에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자들을 지칭할 때 여전히'선지자'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으며, 이는 목사와 교사(설교자)의 사역 속에 선지자적 정체성이 녹아들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약 성경은 구약의 선지자가 바라보았던'메시아의 성취'를 오늘날 설교자가'선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직분이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하나의 연속된 끈에 묶여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손목사의 설교를 부정하기 위하여 설교자의 권위를 굳이 열등하게 만들려는 자세는 신약성경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일이므로 조심할 일이다. B. 메시지의 대상이 다르다는 주장: 근거가 없다. 교수회는 구약 선지자들의 설교대상과 오늘 설교자의 설교대상이 다르므로 오늘의 설교자를 선지자적 사역을 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구약선지자들은 예언을 할 때 이스라엘 신정공동체를 대상으로 했고 고발한 왕은 세속 정치인이 아니라 언약공동체의 직분자라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 점에 관하여서는 안상렬목사가 그의 글에서 다른 각도로 잘 설명하고 있으므로 참고하면 유익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하자. 교수회의 이 주장은 정말 놀랍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설교의 일차 대상이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교회지도자여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다. 보라. 호세아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구약 선지자들이 행한 열방예언에 각 나라 왕들과 지도자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선포의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손현보목사도 설교 속에 이재명을 언급했지만 듣는 사람들은 이재명이 아니라 세계로교회 성도들이었다. 손목사는 그 설교를 통해 이재명의 비성경적 행위, 그의 정치노선의 좌경화로 인한 위험성을 자기 교회 성도들에게 알리고 설교함으로써, 교회가 긴장하고 나라가 바로 서도록 기도하고 행동할 것을 설득한 것이다. 구약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영상을 통하여 누구에게나 전달될 수 있을 뿐이다. C. ‘선지자의 고발과 손현보목사의 고발은 목적과 방향에서 서로 다르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교수회는 선지자들의 고발은‘언제나 회개로의 초대와 언약적 회복’을 향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지자의 설교가 언제나 회개를 촉구했고 회복이 약속되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선지자들의 긴 설교가 죄의 지적과 심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언의 끝자락에 와서야 회복을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구약의 선지자들 중 메시지가 회복이나 구원의 약속 없이 오직 심판과 파멸의 경고로만 끝낸 선지자도 있다. 오바댜와 나훔이 그들이다. 나훔은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의 잔인한 악행으로 인해 그들이 완전히 멸망할 것이며, 그 소식을 듣는 모든 이가 기뻐하며 손뼉을 칠 것이라는 냉혹한 심판으로 끝난다. 회복의 여지가 전혀 없다. 마지막 구절을 보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문을 듣는 자가 다 너를 인하여 손뼉을 치나니 이는 네 악행을 늘 받지 않은 자가 없음이 아니냐 하니라" (나훔3:19) 구약 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1장21절)인 오바댜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의 형제국가였으나 예루살렘 멸망을 방조하고 기뻐한 에돔을 향하여 그들의 교만함으로 인해 완전히 멸절될 것을 선언한다. 마지막에 시온 산의 승리를 언급하지만, 에돔에게는 오직 철저한 파멸만 남는다. 마지막 구절이 심판을 명확하게 한다: "구원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오바댜1:21). 손현보목사의 설교를 들은 청중들은 4. 손목사의 설교가 정치적 판단을 먼저 제시하고 본문을 보조자료로 사용하는 방식상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주장은, 설교의 방식에 대한 편협한 이론을 따른 결과이다. 손목사가 설교를 전할 때 사용하는 방식은‘나라가 망한다’와 같은 정치적 결론을 제시하면서 청중의 정치적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감정적 긴장이 충분히 조성된 후에야 성경 본문을 후행적으로 호출하는 것을 문제삼고 있다. 다시말하면, 성경본문을 설교의 출발점이나 해석의 중심으로 삼지 않고 설교자의 판단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본문을 동원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설교에서 적용은 반드시 해석에 근거해야 하는데 손목사의 설교는 그 관계가 역전되어 적용이 먼저되고 해석은 적용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주장이다. 교수회의 이 주장은 평시에 일반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모든 설교가 언제나 그런 방법을 따를 수 없고 굳이 그렇게 해야 되는 것도 아니다. 문학적으로 연역법과 귀납법은 정반대의 접근법이다. 일반적으로 논리를 펴갈 때 차곡차곡 사실과 해석을 쌓아 결론에 도달하기도 하고 결론부터 내리고 설명을 이어가기도 한다.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하고 그 근거를 제시하는 강조법도 있다. 문제는 교수들의 시대인식과 손목사와 교회의 시대인식이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삶의 현장에서, 예배당을 폐쇄하려는 정부에 저항하는 담임목사가 지속적으로 고발을 당하고 재판을 받는 것을 지켜보며 국가의 위기와 행동의 긴급성을 느끼는 사람들과, 대학원에서 세상과 상관없이(?) 비교적 평온을 누리는 신학교수들과는 설교를 전하고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5. 교수회는 손현보목사가 정치적 설교를 통해 교회가 정치적 행동에 나서고,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반대의식을 형성하고, 결국 성도간의 대립을 초래하여 복음전파의 문을 닫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바, 교수회의 이런 주장은 역시 철저하게 도식화된 이론을 바탕으로 한 현실성이 매우 빈약한 접근법이다. 교수회는 손목사의 설교를 정치라는 도그마에 가두고 비판을 시작한다. 교수회가 말하는 정치는 구체적으로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가? 정치적 행동은 어떤 행동인가? 정치란 사회구성원 간의 이익과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체의 규칙을 만들어 공동선을 추구하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이 당연이 이런 과정에 참여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교회를 향하여‘정치적’이라고 말할 때는 특정 정치 세력과의 결탁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여겨진다. 교수회가 손목사의 설교를 정치적이라고 규정짓는 것도 특정 정치인을 규탄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규탄한 사실만으로 정치적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우리가 흔히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을 두고‘정치적’이라고 표현할 때는 반드시 그 행동을 통하여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 때문이다. 이익과 상관없는 어떤 일을 한다고 하여 정치적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설교를 정치적으로 한다고 할 때는 그 설교를 통해 어떤 정치적 이익을 얻기를 기대할 때 가능한 말이 아닌가? 손현보목사는 소위 정치설교를 통하여 개인이나 교회가 이익을 누릴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코로나 시절 예배를 강행하고 설교한 일은 거듭된 소송전으로 기괴로움을 당했다. 2024.10.27주일200만명 연합예배에 시비를 거는 사람도 많았다. 교육감 후보에게 차별금지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고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당해5개월간 감옥살이를 하는 초유의 사태도 겪었다. 그에게 주어진 이익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론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의 가장 큰 문제는 손현보 목사의 네 편의 설교에 대한 몇몇 개별적 평가에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17세기 영국과18세기 미국이라는 특정한 역사적·정치적 상황에서 형성되고 수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조항을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적용하면서 그 시대적·역사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우리가 소중히 계승해야 할 개혁주의 신앙의 표준이다. 그러나 신앙고백서 자체가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17세기 영국은 국가와 교회가 오늘날처럼 제도적으로 분리된 다원주의 사회가 아니었다. 국교회 체제 아래에서 정치와 종교가 긴밀하게 얽혀 있었고, 교회가 국가와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도 존재했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 만들어진‘교회적 사안’과‘시민적 사안’의 구분이나‘겸손한 청원’이라는 표현을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신앙고백의 정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신을 특정 시대의 문자 속에 가두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교수회의 구약과 선지자 이해에도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구약 이스라엘이 신정공동체였고 구약의 선지자들이 직접계시를 받아 말씀을 전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오늘의 설교자가 구약 선지자와 동일한 계시적 권위를 가진다고 말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구약의 정치·사회적 교훈이 오늘의 국가와 사회에 적용될 수 없다거나, 오늘의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시대의 죄악과 국가권력의 잘못을 책망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성경은 하나의 구속사이며 구약과 신약은 단절되어 있지 않다. 구약의 시민법을 오늘의 국가에 문자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담긴 정의와 공의, 생명의 존엄, 약자 보호와 권력의 책임이라는 하나님의 도덕적 원리는 오늘도 살아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설교자는 새로운 계시를 받는 선지자는 아니지만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시대와 교회를 깨우는 선지자적 사명까지 상실한 사람은 아니다. 이 구별과 연속성을 함께 보지 못하면 결국 구약을 오늘의 정치·사회적 현실에서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설교자의 공적 사명마저 지나치게 축소시키게 된다. 더구나 교수회는 손현보 목사의 네 편의 설교를 평가하면서 설교의 내용과 방법과 목적을 지나치게 정형화된 틀 안에서 판단하였다. 그러나 설교는 언제나 동일한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위기를 먼저 제시하고 성경의 답을 제시할 수도 있으며, 본문을 먼저 해석한 뒤 현실에 적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의 순서 자체가 아니라 그 시대진단과 현실 적용이 과연 성경의 진리와 원리에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손현보 목사의 설교를 평가하려면 먼저 그가 제기한 현실의 문제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그것이 성경적 가치와 충돌하는 문제였는지, 그리고 그가 적용한 성경적 원리가 정당했는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단지 특정 정치인과 정치권력을 언급했다는 이유로‘정치설교’라는 범주에 넣고, 그 설교가 교회의 덕을 해치고 복음전파를 방해한다고 결론짓는 것은 충분한 논증이 될 수 없다. 한국교회가 지금 물어야 할 질문은“목사가 정치를 말해도 되는가?”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국회가 교회의 신앙과 예배, 창조질서와 성경적 가치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법과 정책을 만들 때 설교자는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목회자는 어느 지점에서 침묵을 깨고 시대를 향해 말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교수회 보고서가 진정 개혁주의적 설교의 방향을 제시하려 했다면 바로 이 질문에 답했어야 한다.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회가 시대의 도전 앞에서 성경적으로 판단하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할 신학교이지, 과거의 신학적 문구를 오늘의 현실에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설교자의 입을 닫게하는 기관이어서는 안 된다. 개혁주의는 과거의 문장을 반복하는 신학이 아니라‘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정신으로 매 시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현실을 새롭게 분별하는 신학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수회는 이번 보고서를 최종적인 판단으로 고집하기보다 제기된 비평에 귀를 열고 다시 검토해야 한다. 17세기 영국과 오늘의 대한민국 사이의 역사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고,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균형 있게 살피며, 구약 선지자와 오늘의 설교자의 차이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시대를 깨우는 사명의 연속성도 함께 인정해야 한다. 시대가 달라졌다면 적용에 대한 신학적 고민도 깊어져야 한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가 달라졌다면 신앙고백의 정신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 그리고 시대의 죄악 앞에서 설교자가 무엇을 말해서는 안 되는지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반드시 말해야 하는지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오늘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가 고신교회 앞에 감당해야 할 책임이며, 시대를 책임지는 개혁주의 신학의 사명이라 할 것이다. 손현보목사는 단순히‘정치 설교’를 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거스리는 자에게 심판을 선언하였고, 나라가 나아가는 방향을 알지 못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갈 길을 명확히 제시했을 뿐이다. 그의 설교를 내용도, 방법도, 목적도 고백서와 교리서의 원리에 어긋나고 성경적이지도 않은 것으로 결론짓고, 그를 소위 정치 설교자로 몰아가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 오늘 우리는 역사와 현장을 무시하는 닫힌 신학 이론가들과,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위기의 때에 침묵을 택하는 비겁한 설교자들의 결탁으로 일어나는 부끄러운 현상을 마주하고 있다. ※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연속기획 ⑨] 고명길의 절차적 행정적 비평 #9
교수회 보고서에 대한 절차적·행정적 비평 누가 몇 사람의 연구를 ‘고신의 신학’으로 만들었는가? - 공청회와 공개토론 요청마저 외면한 교수회 보고서의 절차적·행정적 문제고 - 들어가는 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손현보 목사 설교 네 편에 관한 보고서」가 공개된 이후 고신애국지도자연합(이하 고애연) 필진들은 이 보고서를 신학적·신조적·주권론적·목회적·이념적·교회사적 등 여러 관점에서 연속적으로 비평해 왔다. 서로 다른 전공과 관점에서 작성된 비평들이 한결같이 보고서의 성경해석과 신앙고백 적용, 설교와 목회에 대한 판단, 국가주권에 대한 이해, 시대인식과 교회사적 균형 등에 중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보고서의 내용뿐 아니라 이 보고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도 물어야 한다. 누가 작성했으며 몇 명의 교수가 실질적인 연구에 참여했는가. 교수회 전체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보고서를 읽고 토론했는가. 다른 견해를 가진 신학자와 목회자의 의견은 청취했는가. 손현보 목사의 설교와 목회를 다르게 평가하는 입장은 충분히 검토했는가. 무엇보다 고애연이 보고서가 완성되기 수개월 전부터 공식 공문을 통해 요청했던 공청회와 좌담회, 공개토론과 다양한 견해의 수렴은 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이번 문제는 교수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총회의 공식기관으로서 이 연구를 맡아 총회에 책임 있게 보고해야 할 총회 신학부의 책임이 있고, 교수회 이름으로 보고서를 제출한 고려신학대학원과 원장의 책임이 있다. 사전에 충분한 공론화와 검증을 요청하는 공식 공문까지 받고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더욱 무겁다. 1. 고애연은 보고서가 나오기 넉 달 전부터 공개검증을 요구했다 고애연은 보고서가 공개된 뒤 뒤늦게 반발한 것이 아니다. 2026년 4월 14일 고려신학대학원장과 교수회 앞으로 “‘손현보 목사 건에 대한 신학적 연구’ 관련 공청회(또는 좌담회) 개최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식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에서 고애연은 연구 결과가 총회에 보고되기 전에 “공개적이고 공정한 토론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교단 내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건강한 신학적 합의를 이루자고 요청했다. 또한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연구 결과가 보고될 경우 오히려 더 큰 갈등과 오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을 미리 지적했다. 요청도 막연하지 않았다. 연구 결과를 총회 보고 이전에 공개하고, 교수회 주관 또는 총회와 협력하여 공개 공청회를 개최하며, 공청회가 어려울 경우에는 교수회와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좌담회라도 열어 달라고 했다. 또한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요청했다. 이것은 교수회의 연구를 방해하자는 요구가 아니었다. 연구를 중단시키거나 결론을 미리 정해 놓으라는 요구도 아니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성경과 신앙고백, 실제 설교 원문을 놓고 공개적으로 검증하자는 것이었다. 대규모 공청회가 어렵다면 소규모 좌담회라도 하자고 했다. 이 정도의 최소한의 검증절차를 요구한 것이 과연 무리한 요구였는가. 2. 총회 신학부에도 별도의 공식 공문을 보냈다 고애연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만 요청한 것이 아니다. 이틀 뒤인 4월 16일에는 총회 신학위원장 앞으로 다시 공식 공문을 보냈고, 참조란에는 “총회 신학위원회,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라고 명시했다. 이 공문에서도 요구는 분명했다. 연구 결과를 총회에 보고하기 전에 공개하고, 총회 신학위원회 주관으로 공개 공청회를 개최하며, 공청회가 어렵다면 좌담회라도 열어 달라고 했다. 또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뿐 아니라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참여하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유도 분명했다. 연구 결과의 신학적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다양한 목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며, 결론에 대한 수용성을 높여 교단 내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고애연은 공론화 없이 연구 결과가 일방적으로 보고될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할 혼란과 갈등에 대해서는 책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까지 미리 밝혔다. 그 우려가 지금 현실이 되었다. 3. 여덟 편의 비평은 왜 쏟아져 나왔는가 보고서가 공개되자 고애연의 전문위원들과 필진들은 즉시 내용을 검토했고, 현재까지 여덟 편에 이르는 비평이 기독언론을 통해 발표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비평들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분야에서 보고서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학적 비평은 성경 본문과 설교의 공적 적용에 대한 교수회의 이해를 문제 삼았다. 신조적 비평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의 해석과 적용을 검토했고, 주권론적 비평은 하나님의 주권과 국가권력의 관계를 다루었다. 목회적 비평은 수십 년 목회와 수천 편의 설교 가운데 특정 정치적 격변기에 행해진 네 편의 설교만으로 한 목회자의 설교 목적과 목회 전체를 광범위하게 판단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물었다. 이념적 비평은 교수회 자신의 시대인식과 정치·사회적 전제가 보고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를 질문했고, 교회사적 비평은 ‘정치적 설교의 위험’은 강조하면서 ‘불의한 권력 앞에서 교회가 침묵하는 위험’은 왜 외면했는지를 지적했다. 물론 비평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보고서가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학·신조·주권론·목회·이념·교회사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이처럼 중대한 문제들이 동시에 제기되었다면, 이 보고서가 총회에 제출되기 전에 훨씬 폭넓고 깊은 검증을 거쳤어야 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고애연의 요청대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몇 시간이라도 성경과 신앙고백, 실제 설교 원문을 놓고 토론했더라면 지금 제기되고 있는 상당수의 문제는 사전에 발견되고 논의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기회를 누가 거부했는가. 고애연이 공개검증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분명히 요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4. 다른 입장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의견은 왜 듣지 않았는가 손현보 목사의 설교를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성경해석이 잘못되었다면 지적해야 하고 신앙고백과 충돌한다면 그 이유를 신학적으로 논증해야 한다. 그러나 교단 안에서 첨예하게 견해가 갈리는 사안에 대해 한쪽의 입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반대 견해를 충분히 청취하지 않은 채 그 결론을 ‘교수회 보고서’라는 공적 권위를 입혀 총회에 제출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교수회의 판단과 다른 견해를 가진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의견도 충분히 듣고 검토했어야 한다. 공교회의 신학적 판단은 반론을 배제한다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강력한 반론까지 듣고도 성경과 신앙고백 앞에서 그 결론이 유지될 때 비로소 권위를 얻는다. 교수회가 자신의 연구에 확신이 있었다면 공개토론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었다. 바로 그 검증과 숙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것이 이번 보고서의 가장 심각한 절차적 문제다. 5. 몇몇 교수의 연구가 어떻게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가 되었는지 밝혀라 이번 보고서는 개인 교수의 논문이 아니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라는 이름으로 총회에 제출된 공식 문서다. 그렇다면 교수회는 그 이름에 걸맞게 연구와 채택 과정도 교단 앞에 밝혀야 한다. 실제 몇 명의 교수가 연구와 작성에 참여했는가. 어떤 전공의 교수들이 초안을 작성했는가. 교수회 전체에 보고서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배포되었는가. 교수들이 네 편의 설교 원문을 직접 확인했는가. 몇 차례 토론과 검토가 이루어졌는가. 반대 의견이나 수정 의견은 없었는가. 최종 보고서는 어떤 절차를 통해 교수회 이름으로 채택되었는가. 이것은 특정 교수를 색출하자는 요구가 아니다. 몇 사람이 초안을 작성했더라도 교수회 전체가 충분히 읽고 토론하고 책임 있게 채택했다면 교수회 보고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몇몇 교수의 연구와 판단을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전체의 견해인 것처럼 포장해서는 안 된다.교수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면 교수회 전체가 그 이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6. 총회 신학부장 정용달 목사에게 묻는다 - 신학부는 무엇을 검증했는가 이번 사안에서 총회 신학부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총회가 이 문제에 대한 신학적 연구를 맡겼다면 신학부는 교수회가 작성한 보고서를 받아 총회에 전달하는 중간기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총회의 공식기관으로서 연구가 위임 취지에 맞게 이루어졌는지, 연구방법은 적절했는지, 반대 견해까지 충분히 검토했는지를 확인할 책임이 있다. 총회 신학부장 정용달 목사(부산 신흥교회)에게 묻는다. 2026년 4월 16일 신학위원장 앞으로 보내진 고애연의 공식 공문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연구 결과의 사전 공개, 공개 공청회, 좌담회, 다양한 신학적 견해를 가진 인사들의 참여 요청을 신학부에서는 어떻게 논의했는가. 신학부는 교수회의 연구결과를 받기 전에 손현보 목사의 입장을 직접 들어보았는가. 다른 견해의 신학자와 현장 목회자들의 의견을 청취했는가. 네 편의 설교 원문과 보고서의 평가를 직접 대조했는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대한 교수회의 인용과 적용이 적절한지도 독립적으로 검증했는가. 그런 절차가 충분하지 않았다면 신학부는 교수회의 결론을 그대로 총회에 올릴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멈추고 재검증해야 한다. 더구나 보고서 공개 이후 여섯 편의 전문적인 비평이 연이어 제기되었다. 신학부가 해야 할 일은 이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중대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다. 정용달 신학부장은 교수회 보고서를 방어하기에 앞서, 총회의 공식기관인 신학부가 이 보고서를 얼마나 독립적이고 철저하게 검증했는지부터 교단 앞에 답해야 한다. 7. 고려신학대학원 기동연 원장에게 묻는다 - 교수회 이름에 대한 책임을 져라 고려신학대학원 기동연 원장에게도 직접 묻는다. 2026년 4월 14일 고애연은 고려신학대학원장 앞으로 공식 공문을 보내 총회에 연구 결과를 제출하기 전에 공개 공청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고, 그것이 어렵다면 외부 인사와 목회자들이 참여하는 좌담회라도 개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공문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교수회에서 정식으로 논의했는가. 논의했다면 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공청회가 부담스러웠다면 좌담회라도 할 수 있었는데 그것마저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보다 원장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라는 이름으로 총회에 제출되는 문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몇몇 교수들이 초안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교수회 이름으로 제출했다면 그것은 교수회의 공적 문서다. 그렇다면 원장은 보고서가 충분한 연구와 검증, 반론 청취와 교수회 내부의 숙의를 거쳤는지 확인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보고서가 공개되자 신학·신조·주권론·목회·이념·교회사 등 여러 영역에서 본격적인 비평이 쏟아졌다. 이를 단순히 ‘반대편의 반발’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다른 견해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결과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기동연 원장은 교수회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보고서를 방어할 것이 아니라 고려신학대학원의 신학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 보고서를 다시 검증해야 한다. 신학교의 권위는 한 번 내놓은 결론을 끝까지 고집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성경과 신앙고백 앞에서 잘못이 확인되면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에서 생긴다. 8. 여섯 편의 비평 앞에서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공개검증에 응하라 이제 교수회와 신학부 앞에는 실제로 여섯 편의 비평이 놓여 있다. 보고서가 총회에 제출되기 전에 우려했던 문제가 현실이 된 것이다. 신학적·신조적·주권론적·목회적·이념적·교회사적 관점에서 서로 다른 필자들이 중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 이를 단순한 찬반이나 진영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교수회가 자신의 연구에 확신이 있다면 답하면 된다. 여섯 편의 비평 가운데 잘못된 주장이 있다면 성경과 신앙고백으로 반박하라. 그리고 교수회와 다른 견해를 가진 신학자·목회자들과 공개토론에 나와 실제 설교 원문과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놓고 검증받으라. 보고서를 이미 제출했다는 이유로 토론을 끝낼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고애연 필진들이 제기한 비평을 충분히 경청하고 답해야 한다. 공교회의 신학은 비판을 피하고 권위로 결론을 밀어붙일 때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공개적인 반론과 검증을 견뎌낼 때 비로소 권위를 얻는다. 9. 고신총회는 교수회의 보고서를 엄중히 꾸짖고 폐기하라 이제 제76회 총회에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요청한다. 이번 보고서를 그대로 받아 고신총회의 공식적인 신학적 판단으로 채택해서는 안 된다. 이 보고서는 교단의 다양한 견해를 충분히 수렴한 결과물이 아니다. 공개 공청회도 없었고, 좌담회도 없었으며, 입장이 다른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반론을 충분히 청취하는 과정도 없었다. 오히려 그러한 절차를 밟아 달라는 공식 요청이 수개월 전에 있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몇몇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보고서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유만으로 총회가 이를 공식적인 신학적 판단으로 받아야 하는가. 더구나 보고서가 공개된 뒤 신학·신조·주권론·목회·이념·교회사에 이르기까지 여섯 편의 비평이 연이어 제기되었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보고서, 공정성과 객관성에 중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보고서, 공개검증조차 충분히 거치지 않은 보고서를 어떻게 고신총회의 공식 문서로 채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총회는 교수회라는 이름의 권위에 기대어 이 보고서를 성급하게 받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왜 공청회와 좌담회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왜 다른 견해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았는지, 왜 지금 제기된 여섯 편의 비평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이 없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총회가 해야 할 일은 문제가 많은 보고서에 공교회의 권위를 덧씌워 주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검증과 공론화 없이 제출된 보고서라면 받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제기된 비평들을 검토하여 보고서의 중대한 편향과 연구상의 결함이 확인된다면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몇몇 교수의 제한된 연구가 ‘교수회의 판단’이 되고, 그것이 다시 ‘고신총회의 공식 입장’으로 둔갑하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총회가 오히려 이 보고서의 문제점을 엄중히 꾸짖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교수회의 권위보다 총회의 권위를 높이는 길이며, 무엇보다 고신의 신학과 공교회를 지키는 길이다. 맺는말- 공개검증을 외면한 보고서가 어떻게 ‘고신의 신학’이 될 수 있는가 이번 문제는 손현보 목사를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총회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신학적 판단이 그 무게에 합당한 연구와 검증의 절차를 거쳤느냐는 것이다. 고애연은 사전에 요청했다. 연구 결과를 공개하라. 공청회를 열라. 어렵다면 좌담회라도 열라. 서로 다른 신학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라. 그리고 그러한 공론화 없이 보고서가 일방적으로 제출될 경우 교단의 혼란과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보고서 하나를 두고 신학적·신조적·주권론적·목회적·이념적·교회사적 비평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이제 신학부와 교수회가 해야 할 일은 권위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서서 듣고 답하고 검증받는 것이다. 정용달 신학부장에게 묻는다. 왜 공개검증의 장을 만들지 않았는가. 기동연 원장에게 묻는다. 왜 교수회가 다른 견해를 충분히 듣고 검증하도록 하지 않았는가. 두 사람은 이제 교단 앞에 책임 있게 답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여덟 편의 비평을 충분히 경청하고, 공개토론의 장을 마련하며, 실제 설교 원문과 성경과 신앙고백을 놓고 처음부터 다시 검증하라. 그리고 제76회 총회에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그러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보고서는 받지 말아 주십시요. 중대한 결함과 편향이 확인된다면 폐기해야 합니다. 몇몇 교수의 연구가 교수회의 이름을 얻고, 교수회의 이름이 다시 총회의 권위를 얻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고신의 신학’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교회의 신학은 그렇게 만들어져서는 결코 안된다. 왜 우리는 공개토론을 요청했는데, 신학부와 신대원은 공청회나 토론을 거부 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교수회 보고서는 총회의 공식 문서가 될 자격이 없다. ※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연속기획 ⑦] 고신 신대원 교수회 보고서는 유령적(幽靈的)이고, 정치적이며, 반동적(反動的)이다
1.서론 2025년 9월 27일 고신총회는, 서울중부노회, 전라노회, 그리고 충청서부노회가 각각 청원한 손현보 목사의 정치 관련 설교(2025년 1월 5일, 12일, 19일, 26일 주일 설교)와 목사의 정치활동 및 교회의 정치 참여 문제를 신학부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 위임하여 연구를 맡겼다. 이에 대해 고신 신대원 교수회는 1년 연구 끝에 보고서를 냈다. 결론 끝 부분은 이러하다. “… 서울중부노회, 전라노회, 충청서부노회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과 같이 손현보 목사의 네 편의 설교는 정치적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고신 교회의 목사들은 강단이 정치적 목적에 종속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 교회 헌법과 그 정신에 어긋나지 않도록 설교해야 한다.” 이런 보고서 내용에 반발하여 고애연 필진들이 각자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신조 중심의 비평의 글도 있었고, 신학적 관점에서의 비평도 있었고, 목회적인 관점에서 비평한 글도 있었으며, 역사적 교회사적 비평의 글도 있었다. 이념적 좌편향에 경도된 신학 교수들을 비평하는 글도 있었다. 따라서 필자는 중복을 피하기 위해 이번 보고서를 한 가지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방법을 취하기로 한다. 2.본론 2-1.교수회 보고서는 유령적(幽靈的)이다. 먼저 보고서 몇 부분을 인용한다. “손현보 목사의 네 편의 설교는 모두 유사한 구조를 반복한다. ①설교는 대체로 대한민국이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선언으로 시작되며, “나라가 망한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다”와 같은 표현과 함께 서두에서부터 특정한 정치적 결론이 명확히 제시된다.손현보 목사의 네 편의 설교에서 나타나는 ⓶이와 같은 선언은 청중의 정치적 정서에 직접 호소하여, 정치적 위기감과 불안, 분노를 고조시킨다.”(A단락) (이상 계속적으로 필자 임의적으로 번호와 기호 부여) “정치적 판단이 우선되는 설교 진행 방식은 설교의 자리인 공예배 자체의 성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손 목사는 예배 중에 회중들에게 특정 정치적 구호를 외치게 했다. 그러나 개혁주의 전통에서 공예배는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례를 통하여 교회를 형성하시는 자리이지, 특정한 사회적, 정치적 입장을 중심으로 회중의 결속을 형성하는 집회가 아니다. 정치적 위기일수록 설교가 더욱 예배다워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③설교는 “누구를 지지해야 하는가”를 결정해 주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는 누구 앞에 서 있는가”를 묻는 자리이다.④그러므로 본문의 해석과 적용, 그에 따른 순종의 결단이 아닌 정치적 구호가 선행하는 진행 방식은 이러한 예배와 설교의 본래 질서에서 벗어난다.”(B단락) 위의 A단락은 손 목사 설교에 나타나는 상황의 엄중성(컨텍스트)에 대한 강조를 ‘정치적 위기감과 불안, 분노’를 고조시키는 설교 기법 수준으로 파악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B단락은 ⓷④문장에서 손 목사의 컨텍스트에 대한 강조를 ‘정치적 구호’ 수준으로 파악하면서 ‘예배와 설교의 본래 질서에서 벗어난다’고 평가한다. A와 B단락에 나타난 보고서의 태도는 손 목사가 강조한 컨텍스트에 대한 관심을 아예 삭제한 채 예배학과 설교학의 관점에 국한시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사실 이런 관점은 보고서 전체에 일관적으로 견지되고 있음을 나중에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예를 더 보기로 한다. “이러한 감정적 긴장이 충분히 조성된 이후에야 성경 본문이 후행적으로 호출된다. 그러나 ⑤이때 성경 본문은 설교의 출발점이나 해석의 중심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제시된 정치적 판단과 행동 촉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동원된다.본문이 설교의 논지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가 도출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보조적 자료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 결과 설교의 전체 구조는 신앙고백 문서가 전제하는 해석과 적용의 질서와 정반대 방향을 취한다. ⑥신앙고백 문서가 요구하는 핵심은 해석이 적용보다 시간적으로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용이 반드시 해석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 목사의 네 편의 설교에서는 그 관계가 역전되어, 적용이 먼저 설정되고 해석은 그 적용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C단락) 위의 인용을 살펴보자. 손 목사는 설교에서 상황의 엄중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손 목사는 이재명의 의회전제주의가 가져오는 대한민국의 정치 위기를 강조하고 있다(⓹). 그런데 보고서는 손 목사의 이러한 강조를 단순히 설교 기법 정도로 간주하면서 부정적으로 다루고 있다(⓺). 보고서 전편에 걸쳐 이와 유사한 판단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음 내용을 보기로 한다. “이러한 감정적 긴장이 충분히 조성된 이후에야 성경 본문이 후행적으로 호출된다. 그러나 ⑦이때 성경 본문은 설교의 출발점이나 해석의 중심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제시된 정치적 판단과 행동 촉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동원된다.본문이 설교의 논지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가 도출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보조적 자료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 결과 설교의 전체 구조는 신앙고백 문서가 전제하는 해석과 적용의 질서와 정반대 방향을 취한다. ⑧신앙고백 문서가 요구하는 핵심은 해석이 적용보다 시간적으로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용이 반드시 해석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 목사의 네 편의 설교에서는 그 관계가 역전되어, 적용이 먼저 설정되고 해석은 그 적용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D단락) 위의 D단락의 ⑦과 ⑧문장을 중심으로 보면 보고서 작성자는 손 목사의 설교에서 정치적 상황 제시가 성경 말씀보다 먼저 제시되었다는 사실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엉뚱한 시비다. 설교의 전개가 적용이 먼저 나오고 해석이 그 근거로 나중에 나올 수도 있고, 해석이 이루어진 후에 적용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인데, 보고서는 손 목사의 설교가 전자의 방식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초등학교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글의 전개방식에 대한 설명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결론이 먼저 나오고 근거가 나올 수도 있다. 굳이 두괄식, 미괄식, 중괄식, 이런 단어까지 동원해야 하나? 이건 너무 엉뚱하다 못해 웃긴다. 꼭 해석이 이루어지고 적용이 이루어져야 거룩한가? 1950년 8월 30일쯤, 낙동강전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던 때 초량교회에서 구국기도회가 시작됐다. 당시 한상동 담임목사와 고려신학교 교장인 박윤선 목사가 ‘전국 피난민 교역자들을 위한 집회’를 열자고 한 게 계기였다. 기도회 첫날 한상동 목사는 신명기 11장을 본문으로 신사참배, 광복 후 교권 다툼, 한국교회가 범한 죄를 회개해야 하나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근데 그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한상동 목사님이 신명기 11장을 먼저 해석하고 컨텍스트(낙동강 전선만 남은 위기상황)를 말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말하거나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상황이 급박하면 상황 속에서 헤매다가 말씀을 찾아붙들고 기도하고 해결받을 수도 있는데, 그걸 시비를 걸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각설하고 다시 본 논의로 돌아가서 A단락에서 D단락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난 보고서 작성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보고서는 손 목사의 설교에 나타난 컨텍스트 강조 자체를 깡그리 무시한다. 그리고 이를 단순히 설교에 들어가서는 안될 ‘정치적’ 발언으로 단죄하는 작업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공적 신앙’을 언급하는 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설교의 목적을 공적 신앙의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⑨공적 신앙의 필요성은 신자의 삶 전반에 적용되는 일반 원리로서, 성도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신앙적 책임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청이다. 반면 설교의 본질은 공예배 안에서 은혜의 방편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의 직무에 관한 규범적 문제이다. 전자가 신자의 사회적 실천을 다룬다면, 후자는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지를 규정한다.⑩이 두 범주는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나 동일하지 않다. 공적 신앙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설교가 그 실천의 직접적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자동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설교가 성도를 복음으로 형성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함으로써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영향은 형성과 분별을 통한 간접적 결과이지 특정 정치적 행동을 직접 명령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E단락) 위의 E단락의 ⑨문장은 ‘공적 신앙’과 ‘설교의 본질’의 차이를 강조한다. 그런데 ⑩문장을 보면 보고서 작성자는 지금까지 A에서 D단락에서 봐왔던 것처럼 ‘공적 신앙’ 설교가 지닐 수 있는 정치성도 설교의 본질에 의해 규정되고 제한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보고서는 일관되게 설교에서의 정치성 배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공적 신앙의 경우에도 그러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보고서의 관점은 명확하다. 무조건 정치 얘기하지 말라는 거다. 이렇게 가면 그게 ‘공적 신앙’이 되는가? ‘사적 신앙’으로 귀결되는 것 아닌가? 여기서 두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같다. 첫째로 보고서에서는 설교학이 조직신학이나 실천신학 요소들보다 우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 안에서 설교학은 ‘범 잡는 담비’다. 설교와 관련되면 심지어 ‘공적 신앙’ 설교까지도 ⑩문장에서 보여주듯이 무조건 설교 지침에 종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보고서에서는 A에서 E단락 전체를 통틀어서 설교 문법을 내세워 컨텍스트를 무조건 죽이고 삭제한다. 손 목사의 컨텍스트는 설교 지침의 논리에 의해 그 의미가 삭제된다. 굳이 표현하자면 설교 지침 몇 개의 도그마化다. 보고서에 인용된 설교 지침 몇 개가 전가보도(傳家寶刀)가 되어 손 목사가 제시한 컨텍스트를 갈갈이 찢어버리는 칼날로 사용된다. 인용된 설교 지침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 지침들을 기계적으로 전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걸 도표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도표에 의하면 보고서는 교묘한 바꿔치기를 보여준다. 컨텍스트를 부정하고 싶지만 그게 곤란하니까 설교 지침의 명분을 내세워 손 목사 설교의 ‘정치적’ 성격을 비판하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설교자가 설교 속에서 컨텍스트를 제시할 수 있는 권리를 교묘하게 박탈하고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신대원 교수회는 무슨 권리로 목사의 컨텍스트에 대한 인식을 삭제할 수 있단 말인가? 성경 해석은 텍스트text와 컨텍스트context 사이의 긴장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여태껏 살폈듯이 보고서에는 손 목사 설교의 텍스트-컨텍스트 두 요소 중에서 컨텍스트를 무조건 삭제하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보고서의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자신의 역사적 컨텍스트를 무시하는 자아는 유령적일 수밖에 없다(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덕의 상실, 이진우 옮김, 문예출판사, 2023년, 9면)고 매킨 타이어는 말했다. 자아 뿐만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처해 있는 컨텍스트, 시대 상황을 무시하는 교회는 유령적 교회다. 그리고 교회가 처해 있는 컨텍스트, 시대 상황을 무시하는 신학은 유령 신학이다. 이 보고서는 오로지 손 목사의 컨텍스트(이재명 의회 전제주의에 의한 대한민국의 정치적 위기)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삭제하기 위한 의도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의 제1 목표는 손 목사 설교에 나타난 컨텍스트의 부정과 삭제다. 보고서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적용된 목표이자 원칙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보고서는 손 목사의 컨텍스트 깨부수기에 일관하고 있다(보고서가 의도했든 안했든 결과적으로 교수회는 손 목사가 반대하는 진영의 논리를 옹호하고 강화하는 작업에 복무하고 있음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교수회에서는 이런 방침을 정한 후 몇몇 교수들에게 보고서 작성을 일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탓인지 보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컨텍스트를 지우는 ‘유령적’ 사고에 전념한다. 컨텍스트를 설교에 가져오지 말라는 거다. 오로지 텍스트(성경)만을 언급하라는 거다. 컨텍스트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 말고, 거룩하게 성경을 해석한 후, 현실에 대해서는 어버버하다가 설교를 마치라는 거다.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 개혁주의 설교가 아니라는 거다. 정치적으로 신학적으로 혼난다는 거다. 그 바탕을 두고 있는 정치신학이 무엇이든간에 교수회 보고서는 ‘유령적’이다. 2-2.교수회 보고서가 오히려 더 ‘정치적’이다. 보고서의 다음 내용을 살펴보자. “이러한 본문 사용 방식에 대하여 그것이 구약 선지자 전통에 따른 설교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왕과 권력자들을 향해 사회적, 정치적 악을 공개적으로 고발하였으므로, 오늘의 설교자 역시 정치권력을 향해 분명한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구약 선지자와 신약 교회의 설교자를 동일한 지위에 놓는 범주 혼동을 내포한다. ①첫째, 권위의 근거가 다르다. 선지자의 권위는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다”라는 직접 계시 사건에 근거하지만, 설교자는 새로운 계시를 선포하는 자가 아니라 기록된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직무를 맡은 자이다. 따라서 설교자가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선지자의 선포와 동일시하는 것은 인간의 해석을 계시적 권위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이 된다. ②둘째, 메시지의 일차적 대상이 다르다. 구약 이스라엘은 언약 아래 구성된 신정 공동체, 곧 구약 형태의 교회였으며(행 7:38), 선지자들이 고발한 왕은 세속 정치인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의 직분자였다. 이 구조를 오늘에 적용한다면 선지자적 메시지의 일차적 대상은 세속 정치권력이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들이어야 한다. 그 방향을 건너뛰고 곧바로 외부 정치 권력에 대한 규탄으로 나아가는 것은 선지자 전통을 그 신학적 맥락에서 분리하여 선택적으로 차용하는 것이다. ③셋째, 선지자적 고발의 목적과 방향이 다르다. 선지자들의 고발은 언제나 회개로의 초대와 언약적 회복을 향해 있었다. 심판 선언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동체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이끄는 수단이었다. 이 구조 안에서 죄의 진단은 언약 공동체 전체를 향한 자기 성찰로 확장되며, 설교자 자신과 청중을 먼저 포함한다. 그러나 손현보 목사의 네 편의 설교에서는 죄의 진단이 성도와 교회를 향한 내적 성찰로 이어지지 않고, 특정 정치 인물과 세력에 대한 규탄으로 집중된다.이것은 선지자적 고발의 형식은 빌리되 그 신학적 목적과 방향은 버리는 것이다. 선지자 전통의 핵심이 공동체의 회개와 언약적 갱신에 있다면, 그 전통을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설교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향한 자기 성찰을 담아야 한다.“(각 단락 번호는 필자가 부여한 것임) 위의 인용은 보고서 작성자 딴에는 선지자/목사의 다른 점을 대조적으로 설명하면서 목사는 정치설교를 하면 안된다는 논리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보고서가 말하는 ‘목사’는, 종교개혁 이후 그리고 프로테스탄티즘 정신을 계승하는 개신교 목사를 말하는 거 아닌가? 프로테스탄티즘은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에 대해 저항하는 정신을 말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위의 인용 ①②③단락은 정치적 판단과 발언을 금기시한다. 어떻게 하든지 컨텍스트를 지우고자 한다. 프로테스탄티즘 정신은 온데간데 없다.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컨텍스트를 설교에서 배제하고자 하는 ‘유령적’ 사고에 여전히 충실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프로테스탄티즘은 16세기 종교 개혁의 결과로 등장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며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로테스탄트 사상가들은 교회의 절대적인 권력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 역시 견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칼뱅주의와 같은 개혁주의 전통은 시민의 저항권이나 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하며 권력 분산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사상들을 발전시켰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나타난 권력 비판적 사고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그 정신은 오늘날의 개신교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교회를 억압하고 종교의 자유를 통제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신을 부정하는 보고서의 논리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 정치에 대해 바른 말을 해야, 개혁주의 아닌가? 교수회는 무슨 권리로 하나님의 종이 기도하는 가운데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의 감동으로 대한민국의 절대절명의 위기를 강조하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한 사실에 대해 시시비비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법이 무시되는 현실에 맞서서, 거룩한 저항을 해야, 개혁주의이며, 종교개혁 정신이며,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다. 이런 관점에서, 손 목사는, 개혁주의 설교를 한 것이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며,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구현한 것이다. 전체주의 독재를 경계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외친 설교가, 개혁주의가 아닌가? 교회의 존립과 종교의 자유를 위협하는, 정치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한 설교를 두고서, 고작 설교 지침 몇 개를 편협하게 적용하면서 정치적 판단하지 말라고 단칼에 재단하는 것은 무슨 법인가? 예배와 설교에 관한 몇몇 지침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 프로테스탄티즘 정신 구현보다 상위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유령적 사고가 고신 신대원 교수회 신학의 근간인가? 정치결정장애가 고신 신대원 교수회의 신학인가. 반드시 답변을 주시기 바란다. 각설하고 설교에 정치를 담지 말라는 지침을 고수하는 보고서 자체가 정치적이다. 오히려 손 목사의 설교보다 훨씬 더 정치적이다. 손 목사의 설교를 정치적이라고 공격하고 비판하고 있는 교수회 자체가 훨씬 더 정치적이다. 보고서가 담고 있는 그 ‘정치’가 무슨 정치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밝힌다. 2-3.교수회 보고서는 반동적(反動的)이다 먼저 손현보 목사의 설교를 몇 편 살펴보기로 한다. 손현보 목사의 25년 1월5일 설교를 분석해보면, 25년 1월 전후의 정치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전체주의로, 독재로 가고 있는데, 다른 영역은 거의 다 죽었고, 교회마저도 조용하더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사도 어떤 교회도, 일어나지 않더라는 겁니다. 물론 광화문이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설교 중에, 손 목사는 말합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입법권을 가지고, 행정부를 전부 다, 탄핵시키고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 하지 않으면은, 탄핵을 하겠다고, 공갈 협박을 하고 있잖아요. 대통령 권한대행에게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안 하면 탄핵하겠다. 여러분 이거야말로, 독재 중에 독재잖아요(…). 이게 바로, 전체주의 국가로 들어가는, 진입입니다.”“여러분 이렇게 막무가내로, 자기 뜻대로 하고 있는데도, 이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이 생태계 안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이 나라는 정말 큰 위기 가운데, 이 나라가 망하고 말 겁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나라가 망하겠냐? 나라 망합니다.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나 자원이 많아도, 망했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지금 조금 먹고 산다고 해서, 이게 계속될 거다? 절대로, 계속되지 않을 겁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이재명’은, 전체주의 독재를 의미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재명이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는 표현은, 전체주의 독재가 끝나야, 대한민국이 살아난다는, 의미가 된다. 25년 2월16일 행해진,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는 통로’라는, 제목의 설교를 읽어봐도, 마찬가지다. “(…) 그런데 이재명이를 내가 죽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목숨을 걸고 죽어라, 이런 뜻이 아니에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다 마비시키는 저런 자가, 상징적으로, 그런 모든 권력과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지는 그래서, 평인으로 돌아가는 그게, 죽는 거잖아요. 그런 자리에 와야, 이 나라가, 바로 선다는 거지.” 여기서 손 목사의 “이재명이 죽어야~”라는 표현은, 이재명 전체주의 독재의 종식을, 의미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다음으로 25년 4월6일 ‘비겁한 교회여! 입마개를 벗어던져라’라는 제목의 설교를 살펴본다. “그래서 저는 이재명이 죽어야, 이재명이 그런 탐욕과 적개심과, 이기심이 죽어야만이, 대한민국이 산다고 외쳤고, 여러분 이거, 저는 변함이 없습니다.” 여기서도 ‘이재명’은, 특정 인물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탐욕’과 ‘적개심’과 ‘이기심’으로 상징된, 전체주의 독재를 가르키는, 정치공학적 개념이다. 그러니까 손 목사의 “이재명이 죽어야~”라는 표현은, 앞 설교와 마찬가지로, 전체주의 독재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나온, 대응 논리로 봐야 한다. 위의 세 편의 설교문의 문맥을 전후로 살펴보면, 3권분립의 위기, 공화주의(삼권분립의 원칙이 지켜지는, 정치 시스템)의, 붕괴,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인식하는 가운데, 의회 전제주의와 전체주의 독재를, 경계하고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파악하기에는 위에서 살펴본 손 목사의 시국 인식은 앞서 소개된 6.25 때 초량교회의 구국기도회 때의 상황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구국기도회 당시에는 낙동강 전선만 뚫리면 상황이 끝나는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다. 하지만 손 목사가 파악하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은 그보다 더 급박한 상황이다. 공산화가 90퍼센트 이상 진행된 상태라고 보수 정치 전문가들은 말한다. 극좌에 의해 입법사법행정이 거의 독점되어 있는 상황이다. 교회에 대한 압력과 공격이 점점 더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필자는 다시 묻고 싶다. 교수회 보고서의 의견대로 하자면, 대한민국이 전체주의로 가고 독재로 가도, 그냥 침묵하라, 이런 논리인가? 그렇게 되면, 한국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일제 파시즘의 ‘포교 규칙’과 다를 바 없는, ‘민법일부개정안’을 통해, 교회폐쇄법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상황에서, 그냥 침묵하라, 이건 그냥 죽음을 맞이하라! 입 닫아라!, 는 논리 아닌가? 교수회 여러분, 한국교회의 자살을 소망하시는가? 손 목사를 공격하는 고신 교단 일부 인사들이여, 한국교회가 고사(枯死)하길 바라시는가? 한국교회 평신도들이여, 얀 후스라는 위대한 순교자가 나왔지만, 정치지형이 복음교회가 존립할 수 있는 토양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특히 공산주의 체제를 겪고난 후, 복음화 비율이 현재 0.1%에 그치고 있는 체코처럼, 대한민국도 그런 정치지형을 갖게 되기를 원하시는가? 루이스 벌코프의 『벌코프 조직신학』(CH북스, 2023) 854면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현세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거룩한 싸움을 싸우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실제로 이 싸움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이 말은 교회가 자기 파멸적인 내전(內戰)에 기력을 소모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 내에서와 교회 밖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적대 세력들과 흑암의 영적 권세들에 대항하여 부단한 전투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도와 명상은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교회는 이 일에만 소모해서도 안되며, 영적인 유산을 고요하게 향유하는 일에 만족해서도 안된다. 교회는 있는 힘을 다하여 주님의 싸움에 참여하여, 공격적인 그리고 때로는 방어적인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 지상 교회가 전투하는 교회라면 천상의 교회는 승리의 교회다. 천상의 교회에서 칼은 승리의 종려나무로 바뀔 것이며, 전쟁의 함성은 승리의 노래로 바뀌고, 십자가는 면류관으로 대체될 것이다. 싸움이 끝나고, 전쟁은 이긴 바 되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다스릴 것이다. 이같은 두 단계의 실존 방식을 통하여 교회는 주님의 비하와 승귀를 드러낸다.” 지금 대한민국, 그리고 한국교회는 ‘전투하는 교회’로서의 프로테스탄티즘 정신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교회 내에서와 교회 밖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적대 세력들과 흑암의 영적 권세들에 대항하여 부단한 전투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한국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와 미리 알아서 기는 교회, 그리고 멋도 모르게 오직 개교회중심주의에 몰두하고 있는 교회, 그리고 전체주의고 공산주의고 뭐든 괜찮다고 외치는 교회, 이 네 부류로 나뉜다. 지금 한국교회는 교회와 신학이 창녀가 되느냐, 선지자가 되느냐는 신앙적 분기점에 서 있다. 이런 와중에 손 목사 설교에서 컨텍스트를 삭제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설교와 예배와 관련된 몇몇 지침들을 도그마하여 손 목사 설교가‘정치적’ 발언이라는 이유로 비판하고 재단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고신 신대원 교수회는 자신들이 어느 쪽을 향해 가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란다. 손현보 목사의 방향은 분명히 프로테스탄티즘이다. 그리고 개혁주의다-“‘무형적’ 교회가 속성적으로 갖고 있는 ‘승리의 교회’는 땅 위에 있는 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이 교회를 무형 교회에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칼빈은 이 특징(승리교회의 특징)을 전투하는 교회에도 적용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개혁파 신학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앞의책, 855면)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교수회 보고서는 프로테스탄티즘에 정면으로 거슬리는 반동적(反動的)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림으로 설명하기로 한다(존칭은 생략함). 3.결론 필자는 그리고 고애연은 고신 신대원 교수회의 보고에 최종 심급(審級)의 권위를 부여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교수회의 보고서 자체가 최종 심급(審級)의 검토 대상이다. 만약 고신총회가 이 보고를 그대로 인정하고 손 목사에게 특정 조처를 취한다면 교단 교회들이 그 사태를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창세기1장3절 빛이 있으라<<<在明’의 정치관을 지지하는 교회들은 빼고 말이다. 교수회가 이번 보고에 대해 사과하거나 취소하지 않을 경우 신대원 교수 퇴출운동이 불거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든다. 멀쩡하게 목회 잘 하고 있는 교단 목사 설교를 놓고 反역사적인 담론만 잔뜩 늘어놓기 전에, 고신 신대원 교수회 자신들부터 점검하시기 바란다. 사족으로 한 말씀 더 올린다. 교수회 보고서 도입 부분에 보면 고신정신을 밝히기 위해서 고신 교단이 헌법으로 삼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겠다고 말했는데, 이게 보고서가 처음부터 안고 있는 문제였다고 본다. 물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중요하다. 하지만 고신정신은 그런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지식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티즘의 역사 현장과 주기철 목사님 순교 상황과 관련된 목회 현장에서 고신정신의 뿌리를 찾았어야, 이 보고서가 역사적 컨텍스트를 무시하지 않는 작업으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역사 현장과 목회 현장을 외면한 개념 지식만으로는 고신정신의 뿌리를 제대로 찾을 수 없다. ※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터뷰
-
[6·3 전국동시지방선거] 강기윤 창원시장 후보, “일자리·경제시장 되겠다”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창원시장 선거에 나선 강기윤 국민의힘 후보가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출마 배경과 창원시정 운영 방향, 지역경제 회복과 균형발전, 교계와의 협력 방안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강 후보는 창원을 “대변혁의 기로에 선 도시”로 진단하며, 통합 이후에도 남아 있는 마산·창원·진해 권역 간 불균형과 제조업 침체, 청년 유출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그는 “도시를 단순히 관리하는 시장이 아니라 도시를 제대로 경영할 수 있는 실무형이자 완성형 리더가 필요하다”며, 기업 경영과 공기업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창원의 경제 재도약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특히 강 후보는 ‘창원을 새롭게, 경제를 힘차게, 시민을 풍요롭게’를 핵심 비전으로 제시하며, 창원국가산단의 산업 재편,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 방산·SMR 집적화, 마산 자유무역지역의 디지털 4차산업 거점화, 진해 신항 및 배후단지 개발 등을 주요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또한 지역 교계에 대해서는 “지역 복지의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평가하며,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공동체 가치 회복을 위한 건강한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강기윤 후보와의 일문일답이다. ▲ 창원시장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이번 선거에서 시민들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핵심 비전은 무엇입니까. - 내 고향 창원의 현실을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어 위기의 창원을 다시 세우고 시민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창원은 지금 대변혁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지난 60여 년을 창원에서 살아온 저는 누구보다 지역의 아픔을 잘 압니다.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었지만, 마산·창원·진해 세 지역은 여전히 소외감과 불균형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조업은 활력을 잃어가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고 있고, 행정은 수장의 장기간 공백으로 방향을 잃고 있습니다. 이제 창원에는 도시를 단순히 관리하는 시장이 아니라, 도시를 제대로 ‘경영’할 수 있는 실무형이자 완성형 리더가 필요합니다. ‘창원을 새롭게, 경제를 힘차게, 시민을 풍요롭게’를 비전으로, 공기업 사장으로서 정부경영평가 A등급과 청렴도 1위를 달성한 검증된 경영 실력을 창원의 대도약에 쏟아부어, 100만 시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일자리·경제시장’이 되고자 합니다. ▲ 창원은 제조업 기반 도시로서 산업 구조 변화와 경기 침체를 동시에 겪고 있습니다. 이와 맞물려 청년 유출과 인구 감소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데, 지역경제 회복과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 방향은 무엇입니까. - 창원국가산업단지에서 제조업을 창업하고 중견기업을 경영한 경험을 살려 창원을 기업하기 좋은 도시, 일자리 1등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경제 회복을 위해 태양광, 수소, 해상풍력을 중심으로 한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창원 제2국가산단 방산·SMR(소형모듈원자로) 집적화를 통해 창원의 산업 구조를 완전히 재편하겠습니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에는 총 14조 원을 유치하여 30조 원 규모의 경제 파급 효과를 이끌어내겠습니다. 여기서 매년 발생하는 약 2,500억 원의 수익은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창원 경제활동인구 50만 명에게 연간 100만 원씩 ‘에너지 연금’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아울러 마산 자유무역지역을 디지털 4차산업 거점지구로 육성, 진해 신항 및 배후단지 개발을 통한 산업 재구조화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창원의 경제 체질을 완전히 바꾸겠습니다. 인구 문제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희망’의 문제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창원에 사니 살맛 난다, 여기서 꿈을 펼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역동적인 창원을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 창원·마산·진해 권역 간 균형 발전 문제에 대해 어떤 해법을 갖고 계십니까? 시민 체감도를 높일 수 있는 정책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마산, 창원, 진해가 통합해 통합창원시로 출범한 지 올해로 16년이 지났지만, 지역 불균형 개발 등으로 완전한 통합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우선 마산청사, 진해청사를 운영해 공간적인 통합과 시민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겠습니다. 마산청사와 진해청사에는 본청의 국이나 사업소를 이전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하겠습니다. 각 지역의 자존심을 세우고 균형 잡힌 성장을 이끌기 위해 마산합포구는 해양 문화 관광의 랜드마크로, 마산회원구는 첨단 산업과 교통의 허브로, 의창구는 제2국가산단 조성으로 미래 50년 방위·원자력산업의 먹거리로, 성산구는 대한민국 제조의 심장으로, 진해구는 동북아 물류 허브와 해양 레저의 중심으로 확실히 도약시키겠습니다. ▲ 시정을 운영하는 핵심 원칙과 갈등 조정 방식은 무엇이며, 이를 바탕으로 시민과의 소통과 책임 행정을 어떻게 실현하실 계획입니까. - 저는 기업을 경영하며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는 진리를 체득했습니다. 탁상 위에서 보고되는 수치나 서류에 매몰되지 않고, 시민의 삶이 숨 쉬는 현장에서 진실된 목소리를 듣는 것을 시정의 제1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이를 위해 행정 체계의 효율적 이원화를 추진하겠습니다. 시장은 직접 민생 현장을 발로 뛰며 시민의 마음을 읽고, 실무 행정은 부시장과 국·과장을 중심으로 책임 있게 운영하여 시정의 속도감과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하겠습니다. 그리고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일하다 실수가 있는 경우 적극 면책제도를 확실히 하여 창원시 공무원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갈등 조정은 항상 시민의 입장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낮은 곳으로 임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경청이라고 생각합니다. 100만 대도시 창원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저는 갈등 해결의 열쇠를 성경적 가치인 ‘낮은 곳으로 임하는 자세’에서 찾고자 합니다. 취임 초 6개월간 ‘시민 중심 비상대책위원회’를 상설 운영하겠습니다. 갈등의 당사자들과 직접 마주 앉아 고충을 끝까지 경청하겠습니다. 성급한 결론보다는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여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합의의 토대를 만들겠습니다. 합리적인 비판과 제안은 즉각 정책에 반영하는 유연함을 보이되, 공동체의 이익을 해치는 사익 중심의 갈등에는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견지하겠습니다. ▲ 지역 사회에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공적 역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또한 창원시정과 교계의 건강한 협력은 어떤 방향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 교회는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웃을 보듬어 온 ‘지역 복지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종교 시설을 넘어, 지역 주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공적 플랫폼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원시와 교계는 ‘시민의 행복’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걷는 소중한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풍부한 봉사 네트워크를 시 행정과 결합해 복지 사각지대 지원을 강화하고, 시민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 가치를 함께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 지역 교계는 퀴어축제와 같은 행사가 성경적 가치관과 다음 세대의 교육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습니다. 후보님께서는 이러한 교계의 우려를 어떻게 평가하시며, 창원시장이 된다면 관련 행사와 공공장소 사용 문제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시겠습니까. - 우리 사회의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가치이지만, 특정 사안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나 의견 개진조차 제약받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 논의되는 일부 법안들이 자칫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사회적 역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교계의 우려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창원시의 공공장소 사용과 관련해서는 ‘공동체의 조화’와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적 환경’이 최우선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광장이나 공원 같은 공공재는 모든 시민이 쾌적하게 이용할 권리가 있으며, 특히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보편적인 사회 윤리를 전달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다수 시민이 정서적으로 공감하기 어렵거나 교육적으로 우려가 제기되는 행사에 대해서는 행정적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 창원 시민들과 경남기독신문 독자들에게 후보님이 꼭 전하고 싶은 약속이나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창원시의 발전과 이웃 사랑을 위해 헌신해 오신 교계의 노력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 윤리 속에서 꿈을 키우고, 소외된 이웃이 행정의 온기를 골고루 누리는 ‘따뜻하고 품격 있는 창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늘 낮은 자세로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보편적 가치와 공동체의 조화를 지켜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사진=강기윤 후보 측 제공> ※ 본지는 인터뷰를 희망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들에게 질의서를 발송하였으며, 회신 순서에 따라 인터뷰를 순차 게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희망하는 후보는 본지로 문의 바랍니다.
-
[6·3 전국동시지방선거] 박완수 경남도지사 후보, “중단 없는 도정 필요”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재선에 나선 박완수 경남도지사 후보가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재선 도전의 배경과 경남도정 운영 방향, 지역경제 회복과 균형발전, 교계와의 협력 방안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박 후보는 지난 4년간 경남 경제 회복의 발판을 마련했다며 “민선 8기가 이룬 경남의 재도약을 민선 9기에는 대도약으로 극대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지역 소멸 위기 대응과 관련해서는 산업 고도화, 첨단 전략산업 육성, 필수의료와 돌봄 강화, 권역별 균형발전 등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교계 현안과 관련해서는 지역 교회가 도민의 정신적 평안과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퀴어축제 등 사회적 갈등 사안에 대해서는 “기본권 존중과 공공질서의 균형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며 법과 절차에 따른 행정적 조정을 강조했다. 다음은 박완수 후보와의 일문일답. ▲ 경상남도지사 재선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이번 선거에서 도민들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핵심 비전은 무엇입니까. - “도지사를 맡은 4년 전 우리 경남은 행정 공백이 오랜 시간 지속되었고, 조선업 등 주력산업 침체로 2021년 기준 경제성장률이 전국 17위로 최하위였습니다. 고용률도 전국 11위 하위권이었고, 실업률이나 청년 유출 규모도 전국 최하위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흐트러진 도정을 추슬러 ‘일하는 도정’을 만들고, 무너진 경남의 경제를 회복시키는 동시에 도민들의 민생 복지를 챙기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경남 경제는 고용률 지속 상승, 무역수지 41개월 연속 흑자, 지역내총생산 및 총인구 비수도권 1위, 사회보장제도 만족도 전국 1위 등을 달성하며 확실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4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경남의 대도약’을 완성해 도민의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중단 없는 도정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경남의 대도약’은 경남이 스스로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지역 주권 선언이자, 민선 8기가 만들어놓은 경제적 성과를 토대로 완전히 다른 차원의 대한민국 성장 동력으로 거듭나는 경남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습니다. 민선 8기가 이룬 경남의 ‘재도약’을 민선 9기에는 ‘대도약’으로 극대화하겠습니다.” ▲ 경남은 제조업 기반 산업 구조 변화와 지역 경기 침체, 청년 유출과 인구 감소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습니다. 지역경제 회복과 지방 소멸 위기 대응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 방향은 무엇입니까. - “지난 민선 8기 정책의 결과로 합계출산율과 출생아 수, 혼인건수도 증가 추세로 전환되었고, 인구 유출은 2022년 최고 유출 대비 절반 이상 감소해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청년 인구 유출도 절반가량 줄어 8년 만에 최저치를 보였습니다. 특히 30대 인구는 2년 연속 순유입 중으로, 주거환경, 교육, 일자리, 안전, 교통 등 경남의 정주 여건이 점차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고 있는 경상남도의 미래는 한마디로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균형 성장 전략’입니다. 조선, 방산, 원전 등 경남의 주력산업을 더욱 고도화하고, 피지컬 AI, 우주항공, SMR(소형모듈원전)과 같은 첨단 전략산업을 육성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습니다. 동시에 도내 권역별 육성 특화 전략과 경제자유구역 확대를 통해 균형발전을 이루어 내야 합니다. 또한 지역 대학과 연계한 글로컬 대학 육성으로 교육과 취업이 지역 내에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응급의료 컨트롤타워 구축과 같은 필수의료 강화, 주거 지원 확대, 경남형 돌봄 체계 구축, ‘도민연금’과 같은 생활 밀착형 정책 확대를 통해 도민의 기본안전망도 강화하겠습니다. 핵심은 ‘경제 성장+복지+균형발전’을 동시에 추진하는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일터와 삶터가 공존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이것이 ‘경남의 대도약’을 위한 기본적인 정책 방향입니다.” ▲ 경남 지역 간 균형 발전 문제에 대해 어떤 해법을 갖고 계십니까. 도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경남의 균형 발전은 권역별 특화 자원을 극대화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동부권은 피지컬 AI 기반 제조 혁신과 김해 국제 비즈니스 도시 조성을 통해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사천·진주 중심의 서부권은 우주항공청과 복합도시를 연계해 국가 우주 경제의 거점으로 육성하겠습니다. 산청·함양·거창·합천 중심의 북부권은 항노화, 산악관광, 승강기 산업을 집중 육성할 계획입니다. 남부권은 남해안을 세계적인 해양·관광 거점으로 키워 새로운 성장 축으로 삼고자 합니다. 지역 간 이동에 있어서는 교통 연결도 중요합니다. 도로, 철도, 사람 3개 주체가 경남 전역을 잇는다는 의미로 창원·김해·양산 등 동부권을 부산·울산과 연결하고, 도내 전역을 촘촘하고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경남형 광역교통망 구축 구상인 ‘G-링크 3.0’ 공약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공약은 기존에 진행 중이던 도로, 철도 등 중장기 인프라 구축과 함께 수요를 반영한 교통 서비스 개선, 경남형 광역급행버스 GTG, GTU, GTB 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권역별 맞춤형 전략과 광역교통망 확충을 통해 경남 전역이 동반 성장하는 균형 잡힌 발전을 실현하겠습니다.” ▲ 도정을 운영하는 핵심 원칙과 갈등 조정 방식은 무엇이며, 이를 바탕으로 도민과의 소통과 책임 행정을 어떻게 실현하실 계획입니까. - “도정을 운영하는 핵심 방향은 ‘혁신과 원칙’이고, 갈등 조정 방식은 ‘법률과 절차’입니다. 도지사 시절 실국본부장 회의에서 예산 편성과 관련해 ‘답습 관행에서 벗어나 혁신’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습니다. 특히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적극 발굴하고, 시대 변화와 지역 현실에 맞게 예산을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도정에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또한 한마음병원의 암병원 건립 이슈와 관련해서는 공공성과 공공부지 활용의 적법성은 별개의 문제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 의료 서비스 확대라는 공공성은 인정하더라도, 공용 주차장 부지를 적법한 절차 없이 사용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므로 안 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이는 ‘원칙’을 강조하고, ‘법과 절차’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도정을 대하는 자세는 ‘혁신’이고, 민원을 대하는 자세는 ‘원칙’입니다. 도민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되 ‘법률’과 ‘절차’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여 책임 행정을 실현하겠습니다.” ▲ 지역 사회에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공적 역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또한 경남도정과 교계의 건강한 협력은 어떤 방향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 “지역 사회에서 교회는 도민들의 정신적 평화를 찾아주고,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에 충실해 왔습니다. 또한 어렵고 소외된 이웃의 따뜻한 조력자가 되어 주고 있어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경남도도 이러한 교회의 공적 역할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앞서 어려운 도민의 삶을 챙기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정의 역할입니다. 교회와 도정이 각자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한다면 경남도는 더 발전할 것이라는 사실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 지역 교계는 퀴어축제와 같은 행사가 성경적 가치관과 다음 세대의 교육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습니다. 후보님께서는 이러한 교계의 우려를 어떻게 평가하시며, 경남도 차원의 공공시설 사용 및 행정 지원 문제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시겠습니까. - “사회가 발전할수록 성 정체성의 다양화가 진행되고 있는 추세이며, 이와 함께 개인의 인권과 사회적 수용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성 소수자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며, 그 인권과 기본권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다만 퀴어축제와 같은 공개적 대규모 행사가 시민 다수가 이용하는 도심 공공공간에서 열릴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시민 불편, 교통과 안전, 청소년 보호, 찬반 단체 간 충돌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행정은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혐오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시민 다수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장소, 시간, 동선, 안전대책, 소음, 노출 수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법과 절차에 따라 책임 있게 조정해야 합니다. 이념이나 혐오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권 존중과 공공질서의 균형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되, 지역사회가 감당 가능한 방식으로 갈등을 줄이는 행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경남 도민들과 경남기독신문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약속이나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지금 대한민국은 법치가 무너지고, 일당 독재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와 국회 절대 다수를 차지하며 힘으로 사법부까지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자치까지 무너지면 회복하는 데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김경수 후보는 대선 여론조작 혐의로 중도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를 빚어 경남도민에게 1년 2개월 가까운 도정 공백을 안겼을 뿐만 아니라, 방만한 조직 운영과 채무 증가, 침체한 경남 경제 등 ‘실패한 도정’의 전형을 보여줬습니다. 일당 독재와 실패한 도정의 재집권으로부터 경남을 지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경남도민을 위해 진정 필요한 일꾼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살펴봐 주시고, 일 잘하는 저 박완수의 손을 잡아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사진제공 = 박완수 경남도지사 후보 측> ※ 본지는 인터뷰를 희망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들에게 질의서를 발송하였으며, 회신 순서에 따라 인터뷰를 순차 게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희망하는 후보는 본지로 문의 바랍니다.
-
[6.3지방선거] 송순호 창원시장 후보, 6·3 지방선거 비전 제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송순호 창원시장 후보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창원의 미래 비전과 시정 운영 방향, 교계와의 협력 방안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송 후보는 “멈춰 선 창원을 다시 뛰게 만들겠다”며 제조 AI 산업 육성, 권역별 균형발전, 청년 유출 문제 해결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또한 과거 학생인권조례 논란과 관련해서는 “교계의 우려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사회적 갈등 사안에 대해서는 충분한 소통과 조정을 강조했다. 다음은 송순호 후보와의 일문일답. ▲ 창원시장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시민들에게 제시하고 싶은 핵심 비전은 무엇입니까. - “2010년 창원․마산․진해가 통합해 통합 창원시로 출범할 당시 시민들의 기대는 매우 컸습니다만, 지난 15년을 돌아보면 통합의 시너지가 충분히 발휘되고 있지 않습니다. 지역간 불균형, 정체된 성장 동력, 각종 현안 사업의 장기 표류 등 시정의 난맥상은 엉킨 실타래와 같습니다. 여기에 전임 시장의 중도 낙마까지 겹치면서 시정의 연속성마저 흔들려 시민들께서 창원의 미래에 대해 심히 낙담하고 계십니다. 저는 창원시의원 세 차례, 경남도의원 한 차례 등의 의정활동을 하면서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흡해 온 지역 전문가이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택한 최고위원과 이재명 대통령의 인도 특사 활동 등 26년의 지방과 중앙정치를 두루 경험한 정치가로서 지금의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고, 제대로 된 창원의 방향을 제시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제가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할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창원시장 출마는 단순히 저 송순호 개인의 정치적 도전을 넘어, 인구 100만 명의 거대 도시 창원특례시를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들고, 멈춰 선 창원을 더 늦기 전에 다시 뛰게 하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내린 결단입니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은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책임감, 강한 실행력, 속도감으로 괄목할 성과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제가 창원시장이 된다면, 이재명처럼 일하겠습니다. 대통령과 직통으로 통하는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창원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 가겠습니다.” ▲ 창원은 제조업 기반 도시로서 산업구조 변화와 경기 침체를 동시에 겪고 있으며, 이와 맞물려 청년 유출과 인구 감소 문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역경제 회복과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적 정책 방향은 무엇입니까. - “창원은 앞으로 기존의 중후장대형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산업환경에 맞게 전환하고 전후방 산업 생태계를 새롭게 재편함으로써 지역경제 회복, 청년 유출과 인구 감소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패키지형 정책이 필수적이고 최적화된 대안입니다. 우선, 창원국가산업단지와 마산자유무역지역을 중심으로 피지컬 AI 특화 밸리와 AI․데이터 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으로 창원을 제조 AI 중심도시로 거듭나게 하고, 진해신항을 북극항로 개척에 대비해 조선, 물류, 에너지 전진기지 기반 구축과 함께 스마트 항만 장비․부품 클러스터를 조성하여 글로벌 물류 허브로 육성하는 전략을 마련함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함께 지역경제를 혁신적으로 도약시키겠습니다. 또한, 창원시와 대기업,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창원형 제조 AI 펀드’를 조성해 첨단 혁신산업 성장을 뒷받침하는 투자생태계를 구축하는 한편, AI 혁신인재 양성센터 설립, 채용조건형 계약학과 설치를 통해 인재 유출 방지와 창원 주력산업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겠습니다. 아울러, 공공주도 정비사업 추진과 패스트 트랙 도입, 단독 주택지 지구단위계획 규제 완화, 의료․돌봄 통합지원 공공임대주택 건립, ‘창원형 은퇴자 마을’ 조성을 추진하고, 특히 도심 중심지에 ‘청년특화주택 1,000호’를 공급하여 주거와 일자리․문화가 결합된 생활 플랫폼형 공간을 제공하는 등 청년 유출과 주택 노후화, 고령화에 대응하는 종합적인 주택정책 패키지를 마련함으로써 ‘청년이 떠나가는 도시에서 찾아오는 도시’로 반드시 탈바꿈을 시키겠습니다.” ▲ 창원․마산․진해 권역 간 균형 발전을 위한 시민 체감도 높은 정책 방향은 무엇입니까. - “통합된 창원시의 균형발전 전략의 핵심 방향은 ‘마산을 마산답게, 창원을 창원답게, 진해를 진해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통합시라는 큰 틀에서 세 도시의 정체성을 되살리고 각 지역이 지닌 고유한 매력과 잠재력을 복원시킴으로써 통합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마산은, 마산해양신도시라는 시민 자산을 100% 공공개발 방식으로 전환해서 해운대 해수욕장 규모의 달빛해수욕장과 세계적 조각가 문신의 예술적 영감을 반영한 물놀이터 조성, 기 추진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과 한류테마 관광정원의 조기 시행 등으로 산업도시 마산의 역사 위에 해양문화․예술도시라는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 나가겠습니다. 진해는, ‘벚꽃 철에만 붐비는 도시에서, 사계절 머무는 관광도시’로의 전환을 위해, 명동마리나 항만, 진해해양공원과 소쿠리섬을 연계한 체류형 해양관광 허브 조성, 진해드림파크 산림휴양형 웰니스 관광지 조성, 근대문화유산과 군항 자원을 연계한 관광투어 상품 개발, 진해군항제를 지역 상생형 축제로 개편하는 등 인프라와 프로그램 혁신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창원은, 우리나라 산업 및 경제 성장의 동력이었던 DNA가 세계적인 제조 중심 도시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존의 국가산단은 제조 AI 허브로 새롭게 육성하고, 현재 추진 중인 제2 국가산단은 방산․소형원자로(SMR)․피지컬 AI 밸리로 특화함으로써, 창원 산업의 제2 부흥기를 열어가겠습니다.” ▲ 시정을 운영하는 핵심 원칙과 갈등 조정 방식은 무엇이며, 이를 바탕으로 시민과의 소통과 책임행정을 위한 실현 방법은 무엇입니까. - 적절한 수준의 갈등은 소모적 행위가 아니라 발전의 에너지입니다. 그만큼 시정에 대한 시민의 애정이 넘치고 참여 의식이 활발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동안은 이 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승화시킬 갈등관리 노력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시민들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시장의 부재에 따른 시정의 장기적인 표류로 지금 많은 시정의 현안들이 쌓여만 가고 있습니다. 액화수소 플랜트 사업 문제, 창원문화복합타운 활용 방안, 창원 웅동1지구 개발사업, 마산해양신도시 개발 문제 등이 대표적입니다. 시장으로 당선되어 취임하게 된다면 즉시 직제 개편과 업무 조정을 통해 일상적인 업무는 실․국장에게 과감히 위임하고, 직접 현안을 챙기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습니다. 또한, 이들 현안에는 반드시 갈등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창원형 타운홀 미팅’ 도입과 직능별 전문가로 구성된 ‘갈등관리위원회’를 복원시켜 시민의 관점에서 대화와 소통으로 갈등 해소 방안을 찾아감으로써 책임행정을 실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지역사회에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공적 역할에 대한 평가 및 창원시정과 교계의 건강한 협력 방안은 무엇입니까. - “창원특례시기독교총연합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창원시 전역에는 650여 개의 개신교 교회가 있고, 성도 수는 약 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소 우리 교계의 지역 사회에 대한 사랑과 나눔 실천은 시민의 긍지와 응집력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이제 지역 교회는 단순히 종교적 영역을 넘어, 우리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든든한 버팀목이며, 교계의 지도자와 성도님들께서 보여주시는 헌신적인 봉사와 기도는 우리 창원을 지탱하는 고귀한 정신적 자원입니다. 제가 시장이 된다면, 우리 지역 교회가 추진하는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과 자원봉사 시스템이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협력 방안을 깊이 고민하겠습니다. 단순한 정책 집행자가 아니라, 교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우리 창원을 나눔과 배려가 넘치는 ‘사랑의 도시’로 탈바꿈시키겠습니다. 정의롭고 따뜻한 창원이 되기를 바라는 여러분의 기도와 응원에 반드시 실천과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과거 ‘학생인권조례’가 지역 교계 등의 강한 반대 속에 제정이 무산된 바 있습니다. 당시 조례 제정에 찬성 입장을 보이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에 대한 현재의 입장과 교계의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당시 ‘경상남도 학생인권 조례안’ 처리 과정에서 교계가 보여주신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는, 단순한 반대를 넘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올바르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도의원으로서 당시 제가 본 조례안에 찬성했던 취지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한 명의 인격체로서 존중받고 어떤 차별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보편적 인권의 원칙’에의 동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계가 우려하셨던 교권 위축, 학교의 자율성 침해, 권리와 책임의 불균형, 그리고 성적 지향 문제 등의 부작용에 대해 세밀히 살피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다소 부족했음을 겸허히 인정합니다. 현재의 저의 입장은 시를 비롯한 행정기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나 조례가 일반인의 건전한 상식이나 윤리관, 또는 가치관에 배치되는 내용이나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앞으로 시장이 된다면,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민감한 사안, 특히 교계에서 우려하시는 성 소수자 관련 이슈나 퀴어 축제 지원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갈등의 당사자가 아닌 갈등 조정자의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지역 교계는 물론 시민단체,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창원시민과 경남기독신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을 뿐인데 지금 우리나라가 불과 몇 달 만에 국격은 상승하고 ‘이게 나라다’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우리 국민이 목도하고 계십니다. 지금 창원도 ‘다시 뛰는 창원’을 이끌 준비된 시장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이번 6.3 지방선거는 여느 때처럼 임기가 다한 시장을 다시 뽑는 의례적 행사가 아니라, 창원의 명운을 결정지을 절체절명의 계기이자 망망대해에서 멈춰버린 창원호의 엔진을 다시 돌릴 선장을 뽑는 마지막 기회라는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저 송순호는 거창한 말보다는 확실한 실천으로, 약속보다는 성과를 만드는 일 잘하는 이재명을 닮은 시장이 되겠습니다. 시장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시정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고 우리 시민이 체감하실 수 있도록 창원의 기분 좋은 변화를 착착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끝으로 창원의 밝은 미래와 우리 시민의 안녕과 복리증진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시고,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는 교계 지도자분들과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진=송순호 후보 측 제공> ※ 본지는 인터뷰를 희망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들에게 동일한 질의서를 발송하였으며, 회신 순서에 따라 인터뷰를 순차 게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희망하는 후보는 본지로 문의 바랍니다.
교회탐방
-
[황권철 목사] 교회 탐방 : 본산교회(강만구 목사)
본산교회(강만구 목사)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로 150에 있다. 이 교회의 뿌리는 진영교회와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 1901년 4월 12일 미국 북장로교 심익순(沈翊舜, Walter Everett, 1874∼1932) 선교사의 인도로 김해군 진영읍 신용리 383번(최익준 혹은 최춘덕 씨의 집)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다. 1920년 4월 장소와 거리 문제로 신용교회(현 진영감리교회)에서 진영교회가 분립해 나갔고, 1925년 7월 7일 본산리 주호 부락에서 본산 기도소로 세워졌다가 1930년 3월 26일에 경남(법통)노회로부터 본산교회 설립 허락을 받았다. 1940년 1월 일본 정책에 의하여 지역교회가 진영교회로 강제 합병되었다가 1977년 4월 4일에 김종수 집사댁에서 본산교회 복구 예배를 드리고 1978년 9월에서 11월까지 교회당을 신축하고 준공했다. 1977년 이후 교역자로는 안우태, 김현일, 김철수, 그리고 남영우 목사가 시무하였다가 1996년 4월 18일 강만구 목사가 부임하여 그해 6월 25일 위임받아 지금까지 30년을 섬기고 있다. 강만구 목사는 고신대학교와 고려신학대원을 제41회로 졸업하였다. 강 목사는 필자와는 신학대학원 졸업 동기로서 경남노회에서 30년 넘게 함께 사역하면서 누구보다도 남다른 애정이 깊은 믿음의 동역자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필자의 사역을 잘 도와 주고 있으며 현재도 고려파교회연구소 부소장직을 맡고 있다. 강 목사는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여러 가지 면에서 뛰어난 은사가 많은 분이다. 첫째, 그는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하여 목양하는 목회자이다. 신학과 교리와 생활에 균형잡힌 목회자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기에 모든 면에 흠결이 없는 모범적인 목회자이다. 그래서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날마다 더해 가는 점진적인 부흥을 경험하고 있다. 둘째, 그는 행정에 밝은 분이다. 교회의 목회 행정은 말할 것도 없고 시찰과 노회, 나아가 총회의 많은 분야에서 두루 잘 섬기고 있다. 특히 노회 산하에서 진영 시찰의 어른으로 이웃 교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원만하게 잘 수습하는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 그는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학구파이다. 신대원을 졸업한 이후에도 시 분야와 목회 상담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적 소양을 갖추어 여러 곳에 강의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에반겔리아대학교에서 목회학 과정을 이수하고 현재 논문을 준비 중에 있다. 금주 주신 말씀은 사도행전 10장 17절에서 23절로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자다가 꿈(dream)을 꾸기도 하고 때때로 환상(vision)을 보기도 한다. 꿈과 환상을 쉽게 분별하는 방법은 꿈은 잠을 잘 때 무의식중에서 이루어지지만, 환상은 현재 의식이 활동 중인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다른 점이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베드로가 룻다에 있을 때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였기에 도르가란 별칭까지 얻었는데 알 수 없는 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웃의 과부들이 이를 불쌍히 여겨 욥바에 있던 베드로를 청하였더니 그가 와서 다비다를 살려 주었다. 그 후로 베드로는 욥바의 무두장이 피장 시몬 집에 머물렀다. 그때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통해 가이사라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종들을 보내어 베드로를 청했다. 베드로는 그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 틈을 이용하여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환상 중에 베드로에게 나타나 하늘로써 네 귀에 메인 보자기를 내려보내 왔는데 그 속에는 가증한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들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잡아 먹으라고 했다. 베드로는 속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을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일이 세 번 있고 난 후 하늘로 올라갔다. 그때 베드로가 도대체 이 환상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종들이 와서 대문을 두드리면서 베드로를 찾았다. 그때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기를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20) 했다. 그때 베드로가 조금 전에 보았던 환상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먼저는 이 말씀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베드로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구원이 이스라엘 백성 자기들에게만 주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자기들만 선택받은 선민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 복음은 온 열방 만민에게 주어진 복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하여 바울을 세워서 그 일을 하게 하셨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다음으로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이란 인간의 고정 관념을 깨트리라는 말이다. 인간은 잘못된 선입관으로 이웃을 정죄할 때가 많다. 때로는 자기가 속한 편향된 이념에 사로잡혀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베드로를 위시한 유대인들은 고넬료 같은 로마인은 이방인으로 정죄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보낸 종들을 내가 보낸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따라가라고 하셨다. 내가 로마 복음화를 위하여 그를 선택하여 그를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이웃과 세계 열방에 전함에 있어서 인간적인 사고방식과 편협한 고정 관념을 깨트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이방인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영생을 주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구원을 주셨다고 했다.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행 11:17) 고넬료는 그 모든 가족과 이웃들이 다 하나님 앞에 깨끗함을 받았다.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사건은 성경에서 가장 바람직한 성령 충만한 사례이다. 베드로는 요한의 물세례를 받고 주님을 통해 불세례를 받았으나,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불세례를 받고 아나니아 선지자에게 물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고넬료는 물세례인 회개의 세례와 동시에 불세례인 성령의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심을 받은 자가 되었다. 우리는 구원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알고 인간의 편견과 선입 감정을 버리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아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열방과 이웃에게 복음 전하는 전도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고려파교회연구소 사역으로 본산교회를 찾았다. 예배 시간 30분 전에 도착하여 예배당 입구 로비에서 사모님을 만나 당회실 목사님께로 안내해 주었다. 그간 만남과 사역을 통해 담소를 나누고 예배를 위해 대표 기도할 윤용환 장로님이 오시기에 오늘 순방차 오신 황 목사님이 축도할 것을 말씀하고 기도하고 예배실로 갔다. 아름답게 지은 예배실과 중층까지 대부분 좌석을 메운 성도들의 모습에서 교회가 많이 부흥됨을 느낄 수 있었다. 강 목사의 설교는 본문 강해 설교로 쉬운 복음으로 풀어 주기에 온교회가 은혜받고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감을 볼 수 있었다. 예배 후 식당으로 가서 맛있게 준비한 식사를 하면서 교제를 나눈 후 강 목사님과 김진태 장로님과 여러분의 배웅 인사를 받고 연구소로 향했다.
-
[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 진영중앙교회(송철승 목사)
진영중앙교회(송철승 목사)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여래로 20번 길 26-1에 있다. 이 교회는 최기동 목사가 1993년 1월 12일 경남 김해군 진영읍 여래리 435-12번지 상가 2층에서 반성용 장로와 이기적 장로와 함께 몇몇 성도들이 모여 예배함으로 시작되었다가 1993년 10월 4일 제139회 경남(법통)노회에서 진영중앙교회로 설립을 허락받았다. 본 교회는 현 위치에 2007년 3월 8일 새 예배당을 건축하고 입당 감사예배를 드렸다. 최기동 목사는 2021년 6월 27일 29년의 목회 사역을 내려놓고 은퇴하면서 원로 목사로 추대받았다. 송철승 목사는 2021년 6월 27일 최기동 목사 은퇴와 동시에 담임목사로 위임받았다. 송 목사는 1981년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에 SFC 평신도 간사로 부름을 받아 5년간 대학생 선교를 위해 헌신하다가 고려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제69회로 졸업했다. 신학 수업 중 안양일심교회 중등부 교육전도사로 사역하였고, 이후 일산 벧엘교회, 부천 참빛교회, 거제 섬김의교회, 김포 꿈꾸는교회에서 전임 사역자로 섬겼다가 2021년 5월에 진영중앙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았다. 송 목사는 좋은 교회를 넘어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가는 위대한 교회가 되기 위해 내일을 준비하면서 역동적이고 감격이 넘치는 예배를 통해 온 교회가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고 있다. 목회의 사역 비전(Vision of Mission)으로 예수님의 비전이 우리의 핵심 사역이며 진정한 교회의 원동력으로 삼아 사람을 살리고 세우기 위해 복음을 붙잡는 교회이며, 질서가 있으나 구태의연하지 않고, 보수적 신앙을 추구하면서도 창의적이고 새로움을 구현하는 젊고 새로운 교회이며,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선교적 교회를 지향한다. 금주 주신 말씀의 제목은 디모데전서 6장 3절에서 10절로 “건강한 투자, 저축”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때 언약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박국 선지자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고 했으며, 바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고 했고, 히브리서 기자는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 10:38)고 했다. 그러면 믿음으로 사는 삶은 어떻게 사는 삶인가? 이 세상에는 성공을 추구하는 삶과 사랑을 추구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먼저, 이 세상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3-5절) 이 세상에서 부하려 하는 성공을 추구하는 탐욕의 사람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한다(딤전 6:9-10). 이런 자들은 다른 교훈을 전하는 자들이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3절) 이는 거짓 교사를 말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바른 교훈을 전하지 않는 목사를 말한다. 여기 “바른 말”이란 의학적으로 말하면 건강한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고 경건한 삶을 살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교훈을 받으면 교만하여 져서 변론과 언쟁을 일삼게 된다. 그래서 투기와 분쟁과 악한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어 결국에는 마음이 부패하여 진리를 상실하게 된다. 이들의 신앙생활은 교회를 섬김이 성공을 위한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거짓 교사는 돈을 추구하는 종교적인 장사로 전락하게 된다. 다음, 그러면 사랑을 추구하는 삶은 어떠한가?(6-8절) 사랑을 추구하는 삶은 앞서 돈을 사랑하고 성공을 추구하는 삶과 반대되는 대립의 삶이다. 이는 참된 신앙 곧 자족하는 마음을 말한다. 본문 6절에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고 했다. 자족하는 마음이란 내 안에 모든 것을 가졌다는 말이다. 그러면 예수를 믿으면 세상의 물질적인 것을 다 소유해야 하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시편에 다윗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고 했다. 다윗의 이 같은 고백은 자족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십대의 몸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사울의 박해를 받았고, 왕위에 올라서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함으로 광야에서 쫓기는 삶을 살았으나 그의 마음에는 여호와를 목자로 모시고 있었기에 광야에서도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다. 바울은 진정한 자족이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고 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일용할 것이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는가? 우리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보고 서로 비교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기에 갈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空手來空手去). 우리의 경건 생활은 자족한 마음을 가질 때 영적으로 큰 유익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이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이 같은 삶이 장래 좋은 터를 쌓는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세상 방식으로 성공하고 부자되는 삶이 아니다. 신자의 소망은 사랑을 많이 저축하는 것이 건강한 삶의 투자이다. 성도는 믿음으로 살도록 부름받은 자들이다. 영광스러운 부름에 합당한 자는 사랑으로 서로 격려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이 풍성하여 하늘의 것으로 부유한 진영중앙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진영 시찰 순방 두 번째로 진영중앙교회(54)를 찾았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발하여 예배 시간 15전에 도착하여 기도로 예배를 준비했다. 그때 안내위원으로 섬기는 장로님과 권사님이 오셔서 묻기에 「고려파교회연구소」 순회 방문 사역으로 노회 지역의 산하 교회를 방문차 왔다고 말씀하니 곧 장로님과 담임목사님이 오셔서 인사하고 예배 시간에 교우들에게 사역을 소개하고 박수로 환영해 주셨다. 예배를 통해 특별히 송철승 목사의 말씀 선포에 너무도 강한 임펙트(impact)를 받았다. 첫째로 받은 감동은 송 목사님의 강해 설교였다. 성경 말씀을 너무도 쉬운 복음으로 풀어 주는 예배가 한국교회 초기시절의 부흥사경회와 같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다. 둘째로 받은 감동은 거룩한 카리스마였다. 은혜 위에 은혜받은 은총의 삶이 말씀으로 선포되면서 강한 카리스마로 나타나서 말씀의 본질이 성도들의 삶의 전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역사하게 하는 놀라운 설교(케리그마)였다. 마지막으로는 다이나믹하게 예배하는 공동체였다. 예배가 지루하지 않고 스마트(smart)하면서도 진한 은혜가 넘치는 역동성이었다. 예배 후 목사님과 인사하고 김원철 장로님의 안내로 식당으로 가서 은퇴하신 이기석 장로님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눈 후 김 장로님의 배웅 인사를 받고 연구소로 향하였다. 2025년 2월 16일 주일 11시 예배
-
[교회순방] 진영교회(김태완 목사)
진영교회(김태완 목사)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로 28-9에 있다. 이 교회는 1901년 4월 12일 미국 북장로교 심익순(沈翊舜, Walter Everett, 1874∼1932) 선교사의 인도로 김해군 진영읍 신용리 383번(최익준 씨의 집)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진영 땅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가 세워졌다. 1920년 4월에 장소와 거리 문제로 신용교회가 분립해 나가고, 1927년 3월 20일 일본 정책에 의하여 본산교회가 진영교회로 합병되었다가 1977년 4월 10일 본산교회와 동성교회가 진영교회에서 분립하여 나갔다. 1998년 7월 1일 진영제일교회가 분립이었다가 1999년 7월 14일 다시 합병하였다. 최근에 외국인 성도들의 증가로 정규호 목사를 파송하여 2023년 1월 1일 진영외국인교회가 분립하여 설립되었다. 역대 목회자로는 1942년 4월 6일 지수왕 목사가 제1대 목사로 부임한 후 1946년 4월 강성갑 목사가 제2대 목사로, 1948년 10월 김희도 목사가 제3대 목사로, 1961년 11월 이기진 목사가 제4대 목사로, 1981년 5월 배경재 목사가 제5대 목사로, 1983년 4월 김기수 목사가 제6대 목사로, 1998년 12월 박규남 목사가 제7대 목사로, 그리고 2022년 4월 3일 김태완 부목사 부임하였다가 2024년 1월 20일 제8대 목사로 위임받았다. 교회당은 현 위치에 건축하여 2017년 11월 5일 입당 감사예배를 드렸다. 김태완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제58회로 졸업하고 경남(법통)노회에서 목사 안수받았다. 아내 박란희 사모와 결혼하여 슬하에 주안, 주미, 주연 세 자녀를 두었다. 교역 생활로는 가음정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고신총회 선교부(KPM) 파송 선교사로 태국에 가서 태국 「사랑의교회」를 섬기다가 진영교회 부목사로 부임하여 제8대 담임목사로 위임받았다. 김 목사는 위임받은 후 전임 사역자들이 닦아 놓은 터 위에 진영교회 5대 비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예배로 부흥하는 교회. 둘째, 소그룹으로 부흥하는 교회. 셋째, 교육과 훈련으로 부흥하는 교회. 넷째, 섬김과 봉사로 부흥하는 교회. 마지막 다섯째는 전도와 선교로 부흥하는 교회로 비전을 제시하고, 한 영혼을 귀중히 여기며,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김과 동시에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교회로 날마다 믿는 자가 더해 가는 초대교회 운동을 일어나고 있다. 금주 말씀의 제목은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자”(창 8:20-22; 롬 12:1-3)이다. 예배는 죄인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요 특권이다.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표시이다. 우리가 예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시고 동행해 주시며 당신의 뜻을 계시해 주실 뿐 아니라 환경과 나 자신을 변화시켜 주신다. 우리가 예배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먼저, 노아의 예배는 어떠했는가? 창세기 8장 20절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라고 했다. 그가 단을 쌓으니 21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라고 했다. 성경에서 최초의 단을 쌓은 자가 노아이다. 그가 단을 쌓으니 하나님이 향기 곧 기도와 찬양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러면 노아의 예배는 어떠했는가? 첫째, 순종이 담긴 예배이다. 하나님은 산꼭대기에서 배를 지으라고 했으나 그는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창 6:22, 7:5) 둘째, 그는 번제를 드렸다. 번제는 전부를 태워 드리는 헌신이다. 6개월 만에 홍수가 물러가고 방주에서 나왔으니 이 세상은 전쟁보다 더 참혹한 폐허와 같았다. 그런데 방주에서 나와서 처음으로 한 것이 예배였다. 예배는 생존보다 더 우선된 것으로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예배는 최고의 하나님께 최우선 순위로 드리는 최선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모세는 언약 백성들에게 십계명 전반부에서 사실상 예배를 말씀하셨다.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마 6:33)고 했다. 어느 대학 교수가 신학기 초에 화분을 가지고 와서 그 곁에 큰 돌, 자갈, 모래, 흙, 그리고 물을 가져 왔다. 이것을 이 화분에 다 넣으라고 했다. 만약 우선순위를 바꾸어 물이나, 흙이나, 모래를 먼저 넣으면 자갈이나 큰 돌이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하늘을 소유하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이 세상을 덤으로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다음, 그러면 영적 예배는 어떠해야 하는가?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롬 12:1)고 했다. 영적 예배를 드리려면 첫째,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 12:2), 세상과 동화되지 않아야 한다. 야고보 사도는 참된 경건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약 1:27) 것이라고 했다. 비록 우리의 환경이 어려워도 환란 중에 있는 사회적인 약자인 고아와 과부를 돌보면서 세속 가치관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한 언약 백성들이 세속에 물들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수 23:12-13, 수24:20)고 했다. 사사기는 언약 백성들이 세속에 물든 모습을 보여 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둘째,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마음을 바꾸는 것이 최우선적인 과제이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이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영적인 예배자에게 주시는 복이 분별력이다. 그때 비로소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영적 가치관을 가질 때 아버지의 뜻을 알고 구하게 되고 응답받는 기도를 하게 된다(요일 5:14). 결론적으로, 예배는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 예배에는 언약 말씀에 대한 순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향기로운 찬양과 기도를 받으시고, 허물과 죄를 사하시고 이 땅의 저주를 거두어 주신다. 하나님은 인간 아담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여 그리고 땅을 다스리라는 5대 복을 주셨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은 이를 거두셨으나 노아가 제단 곧 예배를 드림으로 이 복을 회복하셨다(창 9:1-3). 예배는 하나님의 저주를 거두어 축복의 문을 열게 하신다. 이 한 주간도 진영교회 속한 성도들은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경남(법통)노회 순방교회(53)로 진영교회를 찾았다. 그간 창원시찰, 창원중부시찰, 그리고 창원동부시찰 순방을 은혜중에 마치게 됨을 먼저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번 주간부터 진영 시찰을 순회 방문하기로 기도하고 우선으로 진영교회를 방문했다. 예배 시간 15분 전에 도착하여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고 있으니 안내하는 장로님이 오셔서 방문 카드를 주시기에 기록하여 드렸더니 김 목사님이 광고 시간에 특별히 인사를 시켜 주었다. 김 목사님은 2025년 표어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교회”라고 정하셨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이다. 예배가 살아나면 성도들이 영적 생기를 회복하고 교회가 부흥한다. 김 목사님의 살아 있는 말씀 선포로 초대교회와 같은 영성이 지배하고 날마다 부흥하는 역사를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오후에 창원요양병원 예배 설교를 부탁받았기에 함께 식사하지 못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병원 선교 현장으로 향하였다. 2025년 2월 9일 주일 11시 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