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동일교회, 출산 돌봄 컨퍼런스 개최
2022년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0.78명으로 추락함에 따라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붕괴 직전의 위기에 놓인 가운데, 예장(고신) 당진동일교회(이수훈 목사)가 오는 4월 17일(월)부터 19일(수)까지 2박 3일간 당진동일교회에서 ‘2023 대한민국 출산 돌봄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
고신 진주삼일교회, 전교인 부흥회 개최
예장(고신) 진주삼일교회(문장환 목사)가 지난 3월 19일(주일)부터 21일(화)까지 ‘다시 복음으로! 다시 은혜로1’라는 주제로 전교인 부흥회를 가졌다. 진주삼일교회는 전교인 부흥회를 위해 KOSTA 강사와 다니엘기도회 강사로 CBS TV ‘새롭게하소서’, ‘올포원’에 출연한 강은도 목사(더푸른교회)를 초청해 몇 주 전부터 부흥과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구하며 기도로 준비했다.
-
고신포럼, 인구절벽 고민과 함께 개최
제5회 고신포럼(대표회장 김현규 목사)이 지난 3월 13일(월)부터 14일(화) 양일간, 경주시 라한셀렉트 경주에서 열렸다. “인구절벽시대, 한국교회와 고신교회”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고신포럼은 약 400여 명의 목회자 부부가 참석했다.
-
장마제일교회, 화재로 사택 등 불타
예장(고신) 장마제일교회(이진욱 목사)가 지난 3월 10일 저녁 8시경 발생한 화재로 창고와 식당 등이 전소되고 사택 내부가 소실 됐다. 고신 전국여전도회관과 가까운 경남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에 위치한 장마제일교회에서 발생한 화재는 판넬로 지어진 창고와 식당, 서재를 불태워 전소 됐으며, 사택은 내부가 모두 불에타 형체만 남았다.
-
경남기총, 해군 및 청년선교 위한 협약식 가져
해군에 200개 함정·부대교회(Moving Church)를 설립하고 500명의 소그룹 리더(Good Christian Leader)를 양성하여 해군선교 및 경남기총 개교회의 청년선교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경남기독교총연합회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 경남지회와 손원일선교재단이 손을 맞잡았다.
포토슬라이드1 / 3
종합
-
바른가치수호, 경남도민 관심 조례 토론회 개최
바른가치수호경남도민연합(상임대표 원대연 목사)이 주최하고 경남도의회 경남조례연구회(회장 박춘덕 도의원)이 후원하는 ‘제1차 경남도민 관심 조례 토론회’가 지난 3월 27일(월), 경남도의회 대회의장에서 열렸다.
-
부산장신대, 허원구 총장 이임 및 천병석 총장서리 취임
부산장신대학교(총장 허원구 목사)가 지난 2월 24일(금), 제6대 총장 허원구 박사와 제7대 총장(서리) 천병석 박사의 총장 이·취임식을 가졌다. 예식에 앞서 드려진 예배는 탁지일 교수의 인도로 시작해 정인규 목사가 대표로 기도하고 김수찬 장로가 성경봉독한 후 김운성 목사(영락교회)가 ‘작지만 위대한 것’이라는 제하의 설교를 전하고 신동작 목사가 축도 함으로 마무리 됐다. 설교를 맡은 김운성 목사는 말씀을 통해 “개교 70주년을 맞은 부산장신대학교는 411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인내해 왔다. 화합과 변화, 영적 변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명을 감당해 왔다”면서 “작지만 크게 부풀게 하는 누룩처럼, 한 알의 작은 씨앗이지만 큰 나무가 되는 겨자씨처럼 믿음의 인재를 발굴하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2부 이·취임식은 허원구 박사가 이임사를 전한 후 탁지일 교수가 신임 총장(서리)에 취임하는 천병석 박사의 약력을 소개하고 이사장 이종삼 목사가 격려사, 부총회장 김의식 목사와 한재엽 목사의 축사가 이어졌다. 제7대 총장(서리)에 취임한 천병석 박사는 취임사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가 부산장신대학교 캠퍼스 곳곳에서 느낄 수 있길 바란다. 행복을 창출하고 행복을 누리는 행복한 학교, 창의적인 영성의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학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진실함으로 부산장신대학교의 위기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장신대하교 제공 이날 총동문회장 서영진 목사는 이임총장 허원구 박사에게 감사패와 취임하는 총장(서리) 천병석 박사에게 축하패를 전달했다. 또 동문 오송자 목사가 기부금 1억원을 전달했다. 한편, 이임한 허원구 박사는 “작지만 강한 부산장신대학교가 있기까지 어려운 환경에서 총장직을 감당했고, 특별히 재정지원 제한 대학에서 해제되는 기쁨이 있기까지 여러 사랑의 상처도 많았다”면서 “부산장신대학교가 땅끝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허원구 총장은 이전에 시무하던 산성교회에서 3월 5일(주일) 원로목사 추대식을 갖고 총회 파견순회선교사로 섬길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
한국다음세대훈련원, 청소년 위해 강연회 마련
한국다음세대훈련원(원장 손현보 목사, 이하 한다련)이 지난 3월 1일(수), 부산시 강서구 세계로교회(손현보 목사)에서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을 위한 강연회를 개최했다. “지금부터 공부해서 서울대 가볼까?”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강연회는 부산·경남 지역의 학생 및 학부모 1,500여 명이 참석하는 등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됐다. 첫 강연은 바른청년연합 손영광 대표가 강사로 나서 “20대에 서울대 공학박사”라는 주제로 강연을 전했다. 손영광 대표는 “학업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부모와의 관계”라며 “부모의 사소한 칭찬과 자극들이 자녀 공부의 시발점이 되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자라게 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강요가 아니라 설득을 통한 공부의 당위성을 아이들이 느껴야 한다.”고 전했다. 손영광 대표의 강연 후 23학년도 수능 만점자 권하은 학생이 “수능 만점자의 공부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전했다. 이어, 공신닷텀의 대표 이자 백만 유튜버로 유명한 ‘공부의 신’ 강성태 씨가 강연자로 나서 ‘공부 방법 및 동기부여’, ‘자녀 교육법’이라는 2가지 주제로 각각 강연을 전했다. 강성태 씨는 ‘빈부와 지역에 상관 없이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에게 공부멘토 한명씩을 만들어 준다.’라는 다짐으로 누적 멘토가 4천 명이 넘는다. 강성태 씨는 습관을 바꿔 공부하는 66일 공부 습관 등에 대해 전하며 학무보와 학생들에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강연회를 마련한 한다련 원장 손현보 목사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지역의 학생들이 자기 나름의 꿈을 발견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공부에 뜻을 세워 나라와 민족의 리더들로 자라나기를 바라며, 앞으로 한다련과 가덕비전센터에서 주민들을 위한 행사들을 개최함으로 지역 사회와 문화에 활력을 더하길 원한다.”라고 했다.
기타
-
[특별기고] 경남기독문화원 문화선교사 김태군 목사의 미주행전(1)
여호와 샬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한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저 역시 무엇 하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루어 질 수 없었던 미주초청 찬양집회를 다녀오게 되었고 그 짧지 않은 여정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이렇게 글을 씁니다. 별빛교회가 어떤 모습으로든지 신곡리를 섬기고 또한 출석하는 15명의 청소년들의 꿈과 소망을 키워 나가기 위해 교회 1층을 영업허가를 내어서 갤러리 카페로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몇 해 전 하나님의 은혜로 만나게 된 아틀란타 선한사마리아인교회 협동목회를 하시는 김춘곤 목사님과 서경훈 목사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기도의 동역자들로 힘을 나누고 지내다가 그 교회에서 선교를 하는 과테말라 높은뜻우리교회(배형근 목사)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그렇게 연결이 되면서 과테말라 현지 청년들을 밀양으로 농업교육과 취업을 위해 이런 저런 절차들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김춘곤 목사님의 밀양 방문을 통해서 밀양 시장님과 만나게 되고 좀 더 구체적인 일들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들이 점점 만들어 지는 가운데 과테말라 한인 청소년들이 아틀란타 선한사마리아인교회로 단기 선교를 오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아틀란타에서 연락이 오기를 저를 초청해서 부흥회와 문화선교에 관한 일들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일들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지난 6월 10일 인천을 통해 아틀란타로 가게 되었습니다. 가기 전 갤러리 카페를 오픈 하려고 했던 저의 계획은 밀양에 큰 불이 나는 바람에 오픈식도 못하고 그냥 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갑갑함을 가지고 출발을 하려니 정말 모든 것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기도와 찬양 준비로 마음을 가다듬고 출국길에 올랐습니다. 처음엔 아틀란타와 과테말라만 가려고 했지만 이런 기회가 또 오겠나 싶어서 일정을 한 주간 더 늘려서 나오는 길은 LA를 통해서 나오려고 했고 그 일정을 통해 주께서 인도하심을 느끼고 온 시간들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6월 10일(금) 아틀란타에 도착 후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마다 예배 찬양으로 영광 올려 드리며 걸어갔습니다.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주일 일정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아틀란타였기에 순간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맘 먹고 기도하며 순종하며 나아갔습니다. 도착 후 첫 주일, 한인교회인 주은혜교회(강윤구 목사)에서 1부 찬양과 2부 땐 미국인교회인 Lord of Life Lutheran Church에서 특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첫 사역이었습니다. 미국인 교회에서 “생명의 강물”을 부르게 되었는데, 한국말도 모르시는 미국인 성도님들께서 눈물을 흘리며 함께 찬양 속으로 빠져 드셔서 순간적으로 엄청 놀란 시간이었습니다. 예배가 마치고 난 뒤에도 다들 오셔서 눈시울을 붉히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순간을 누리게 되었으며 가기 전 준비한 USB음반이 있었는데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 미국인 성도님들께서 음반을 사주시고 축복의 시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은혜의 시간을 누리고 15일 수요일 양로원 데이케어 사역이 진행 되었습니다. 이민 가신 어르신들께서 아침에 오셔서 오후까지 지내시는 센터에서 예배와 미니콘서트를 가졌습니다. 고국에서 왔다고 다들 너무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마치고 함께 식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어르신들과 짧은 만남의 시간도 나누게 되었는데 모두가 하시는 말씀이 한국에 가면 꼭 만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은 정말 오시겠다는 말씀 이전에 고국을 그만큼 그리워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저 또한 남은 시간들을 더욱 더 봉사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저 하늘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17일(금) 선한 사마리아인교회로 단기선교를 온 과테말라 한인 청소년들과 아틀란타 프라미스교회에서 금요기도회로 섬겼습니다. 과테말라 단기선교팀의 오카리나 연주와 저의 찬양간증집회를 은혜 가운데 마치게 되었습니다. 프라미스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안식월이라 뵙지는 못했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의 프라미스교회는 참으로 따뜻한 교회임을 느끼고 왔습니다. 또한 프라미스교회를 섬기시는 집사님 부부를 만나서 고국의 청년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준비해 보라는 말씀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집사님부부는 미국으로 이민을 한 후 열심을 다해서 살아가시면서 청소년과 청년들을 향한 남다른 마음이 있으셔서 저에게 고마운 충고를 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섬겨 주셨습니다.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별빛교회 청소년들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제대로 잘 준비해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도록 기도하고 준비하는 비전을 품고 돌아왔습니다. 18일(토) 선한 사마리아인교회에서 부흥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토요일 오후 그리고 주일 오전과 오후 총 세 번의 집회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씀의 주제를 가지고 은혜 가운데 모든 집회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펜데믹 때문에 성가대가 모이지도 못하고 주일 예배 시 한 번도 찬양의 시간을 못했는데 이 번에 제가 인도한 부흥회에 아름다운 하모니로 성가대가 2년여 만에 예배 때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하시더군요. 참 감사하고 은혜로운 시간을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집을 숙소로 준비해 주신 선한 사마리아인교회 이 장로님과 집사님,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장로님 댁에서 지내면서 주님은 머리 둘 곳 조차 없으셨다고 하셨는데 나 같은 죄인이 이렇게 편한 곳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 어떤 것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주일이 지나고 과테말라로 떠나기 전날 급작스럽게 또 다른 데이케어에서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기쁨으로 찾아뵙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르신들을 위해 찬양과 간증을 드리고 함께 은혜를 나누게 되었는데 마치고 그 어르신들께서 저에게 찾아 오셔서 두 손을 꼭 잡으시고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고국에 가게 되면 꼭 찾아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처음 갔던 센터처럼 그 어르신들의 마음엔 고국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계셨는데 환하게 웃으시면서 다가오신 백발의 어머님은 눈시울을 붉히시면서 “실은 제가 목사 사모입니다. 그런데 은퇴하신 목사님께서 작년에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천국 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시면서 빌려오신 헌금을 봉투에 담으셔서 “고국에 돌아가면 꼭 좋은 곳에 사용해 주십시오” 하시는 겁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사모님의 사랑의 마음을 신곡리 어르신들과 별빛 아이들에게 전하려고 굳게 맘을 먹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사람과 그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존재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다음 호에 계속> 글. 김태군 목사
-
[2022. 6. 15] 경남기독신문 광고 모음
▣ 예장(합동) 경상노회 신임 임원 및 총회 총대 ▣ 밀양달빛교회 김태군 목사, 별빛 딸기쨈 ▣ 예장(고신) 제35회 전국 장로부부 하기 수련회 ▣ JW컨벤션 ▣ 코오롱 하늘채 ▣ 옹달샘 기도원 ▣(주)서진이엔씨 ▣건미생체전기 건강관리센터 ▣그레이스정원 (고성) ▣ 목양교사 세미나 ▣진주성남교회 운전기사 모집 ▣ 영남장로회신학교 ▣국제중앙신학생 모집 ▣ 창원시기독교연합회 6.25 구국기도성회
-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 한국교회 위한 공기살균기 개발
한국표준시험연구원으로부터 99.9% 살균시험인증을 받은 제품 플라즈마 이온 발생 기술을 적용한 살균력 증대와 탈취효과 멈추지 않는 코로나 전파에 대한 대비책은 ? 언제쯤 종식될련지 알 수 없는 코로라19 광풍에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한국교회를 위하여 코로나 방역에 청신호를 주는 최첨단 광양자 공기 살균기가 개발되어 화제이다.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39회)을 졸업, 육군군목으로 섬겼던 김준성 목사는 제대후 줄곧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카이스트 과학원교회를 담임하는중 한국교회가 코로나 사태를 맞아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예배당을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비전을 품게 되었다. 김 목사는 KAIS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정밀 계측장비 제조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던 성도인 조영돈 박사에게 룩스비바의 개발을 부탁, 마침내 생명의 빛이라는 뜻의 실내 공기 살균기 ‘룩스비바’를 탄생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획기적인 이 최첨단 제품을 개발해낸 조박사는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 KAIST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각종 한국형 자주포와 미사일 개발 등 국군의 무기체계 현대화에 크게 공헌해 왔다. 특히 지난 2013년부터 3년여간 한국인선교사가 세운 아프리카 탄자니아 연합대학교 교수 요원으로 파송 받아 공과대학장 사역과 2016년 12월부터 1년 6개월간은 코이카 자문단원으로 카메룬 야운데 응급센터의 각종 의료장비 유지 보수를 책임지는 평신도 선교사로도 헌신할 당시 50여명 모이던 교회에 700여명의 아이들을 모일만큼 독실한 믿음의 전문과학자이다. 예방의학 전문가들은 코로나19는 이제 소멸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감기나 독감 같이 변형하며 공존하는 전염병으로 계속 남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코로나19가 감기나 독감과 다른 것은 앓고 난 후 후유증이 심각하다는데 있다. 게다가 영국, 남아공, 브라질 변이 바이러스 등 각종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유행 위험이 크다는 진단이다. 코로나가 유행할 때마다 교회는 모이기를 폐해야 할까? 그동안 김목사와 조박사는 “‘예배를 예배 되게’라는 사명으로 예배 중에 코로나19에 전염되지 않는 그야말로 인체에 전혀 해가 없고 건강에 유익할 수 있는 ‘광양자 기술’을 통한 공기살균기 개발에 집중해 왔다. 생명의 빛 룩스비바, 예배당 철벽 방역 시동을 걸다 조영돈 박사는 “프리리엄 공기살균기 ‘룩스비바’는 광양자(UVC) 254nm 파장의 광선이 바이러스, 세균, 박테리아, 곰팡이 등을 충분히 박멸하는 살균 능력을 응용한 제품이다. UVC 파장의 범위는 100~280nm로 UVC의 살균 능력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으며, 254nm 파장일 때 살균력이 가장 강한 것으로 보고됐다. 지난 2018년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의료센터 연구진이 저명한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22nm의 단파장 UVC가 공기 중의 독감 바이러스를 억제해 사멸에 이르게 하는 걸로 발표했다. 보고서에서 ‘아주 적은 양의 원거리 UVC를 쬐어 공기 중에 운반되는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비활성화 했다’라면서 ‘원거리 UVC는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 없이 공기 중 바이러스 감염의 감소를 위한 강력하고도 저렴한 접근방식이 될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바 있다.” 김준성 목사는 “룩스비바는 교회 예배실, 아파트, 학교, 학원, 사무실 등의 공기살균으로 비말감염 등으로 인한 바이러스 전파 예방에 효과적이며, 병원 및 감염지역 등 부유 세균이 발생하는 작업장에서 호흡기 감염성 질환 예방, 지하창고 같이 햇볕이 들지 않거나 환기가 어려운 공간, 식당 식품저장시설 등 공기로 인한 식품 오염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술로 만들어진 프리리엄 공기살균기 ‘룩스비바’는 코로나19 시대 교회 예배실, 아파트, 학교, 학원, 사무실 등 한정된 공간의 공기 살균에 최적의 제품으로 평가된다. 또한 병원 및 감염지역 등 부유 세균이 발생하는 유해작업장, 지하 창고 같이 햇볕이 들지 않거나 환기가 어려운 공간 등에서도 강력한 살균성능을 나타낸다. 고가장비를 절반 가격으로 공급 가능하다 조영돈 박사는 “본래 이 기술은 병원의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에서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의료기기인데, 교회와 같이 인원이 많은 공간에서 공기살균 조건을 충족시키는 장비가 드물고, 또 있다 하더라도 교회가 사용하기에 너무 고가장비 뿐이었다. 이에 기계공학뿐만 아니라 전기, 전자, 응용과학 분야 종합적인 기술로 동급용량과 기능을 유지하고 현저하게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해 개발했다.”고 설명한다. 개발 방향과 성능은 일반적인 중·소 교회 면적 100㎡(약 30평)의 공기를 완벽하게 살균하며, 가격은 기존 제품의 절반 가격, 예배에 지장 없는 크기와 소음, 누구라도 쉽게 운용 조작 가능한 휴먼인터페이스, 소모품 교체 및 관리비용이 없으며, 실용적인 디자인 등이 특징이다. 아울러 “코로나19이라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신 빛, 즉 UVC가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생명의 빛이 예배를 가로막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강력하게 살균하는 기능이 있음이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단지 이 빛에 반사판을 사용하고 살균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구조 설계와 관리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방법만 접목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룩스비바, 질긴 바이러스도 완벽 제거가 가능 김준성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극복할 만큼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시는 분입니다. 조박사는 당초 귀국 후 제3세계에 보급할 의료장비를 국산화하기 위해 정부의 연구개발자금을 받아 연구를 하다가 코로나 사태를 맞아 마치 교회 예배가 코로나19 확산의 온상처럼 보이고, ‘예배 금지’라는 참담한 현실에서 방향을 공기살균기 ‘룩스비바’ 개발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앞으로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제거하여, 교회 예배가 회복되게 하는 놀라운 일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전망한다. 헝가리 제멜바이스대 생물물리학과 연구팀이 학술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org)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바늘로 100차례 찌르거나, 섭씨 90도 이상 고열을 가해도 죽지 않는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험 결과 이런 지독한 바이러스라 할지라도 룩스비바를 통과하는 즉시 99.9% 살균이 된다고 한다. 룩스비바는 소형(약 3평∼5평), 중형(약 10평∼15평), 중/대형(약 30평∼50평) 모델로 제작되었고 이미 설치한 여러 교회로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현재 이 제품을 구입, 사용하는 곳은 고려신학대학원, 포도원교회, 사랑제일교회, 온양온천교회, 열방교회 등 20여 곳에 이르며, 선교사게스트하우스, 러시아선교센터(허엘레나), 에스더기도운동본부, WEC선교회 본부, 벨국제학교같은 단체와 병원 등에서도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문의: 김준성 목사 010-6707-5020 ※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경
-
[황권철 목사] 세롯인 시몬(Simon's Behind Stories)-침묵의 사도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유대의 최고 권력 기관은 산헤드린 공회였다. 이 법정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탁월한 서기관들과 율법의 석학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당시 성전에서 상당히 실력행사를 했던 랍비 곧 교사들이었다.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 국가이지만 사형 집행권을 제외하고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다 집행한다. 그들이 비록 사형이 없었으나 예수를 사형에 처하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행했다. 그 당시 종교적으로는 여러 분파가 있었다. 첫째, 바리새파이다. 이는 헬라시대에 생겼으며 마카비를 지지했으나 요한 힐카누스 때에 그들과 분리하게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거룩한 무리(Holy one)로 알려졌으나 후에는 바리새파(분리주의자)로 불려졌다. 왜냐하면 힐카누스가 지지하는 로마 정부에 대항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시 자유주의(사두개파)와 다른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고 율법의 가르침을 준수했으나 율법 속에 잠재되어 있는 율법의 정신을 바로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율법의 외형적 가르침에만 치중한 바리새인들의 유형을 탈무드에서는 7가지로 지적했다. 어깨 형(shoulder), 잠깐 기다리게 하는 형(wait a little), 피 흘리기 형(bleeding), 채색 형(painted),계산 형(reckoning) 공포 형(fearing), 그리고 사랑 형(love) 바리새인이 있다고 했는데 이중에 사랑 형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위선과 외식적인 종교행위에 불과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의 외식을 책망했다. 둘째, 사두개파이다. 이들은 바리새파의 대적자로 수적으로는 적었으나 영향력은 대단했다. 재산이나 지명도나 정치적인 세력을 가진 세속적인 면에서 위대한 분들이 많았다. 이들의 출현은 고레스 왕 때에 유대인의 귀환이 있은 후 로마황제와 관계를 친숙히 한 유대인이 대제사장이 되었다는데서 생긴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들의 지위는 대제사장들과 같았으며 이들은 성민의 율법을 세속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헬라문화가 지배했을 때는 헬라문화 보급을 위해 앞장섰으며, 로마가 지배할 때는 로마와 친숙하게 지냈다. 그들의 신앙은 현실적이며 세속적이었으므로 경건생활이나 부활신앙을 인정하지 않았다. 셋째, 엣센 파이다. 이들은 일종의 금욕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세속적인 삶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그들은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했으며 농경생활로 금소하게 생활하면서 전쟁과 노예제도 및 상업을 거부하고 일정한 목적을 세워 놓고 엄격한 규율 속에 자신들을 묶어 두었다. 넷째, 헤롯파이다. 이들은 헤롯 왕가를 지지하는 자들이다. 당시 로마 정부에 소속한 헤롯 군대를 지지하여 현실적 이권에 얽매여 있는 자들이다. 세리들이 주로 여기에 속해 있었다. 이들은 로마인들의 하수 노릇을 하면서 유대인들의 피를 빨아 먹는 매국노와 같이 취급을 받은 친로마파 권력형들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세롯 파인 열심당이다. 일명 이들은 유대 민족주의자들이며 애국주의자들로 극소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지나친 애국운동으로 반민족주의자들을 대적하고 저격하므로 일명 테러분자로까지 낙인이 찍혀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다대오 유다와 가나안인 시몬이 여기에 속한 자들이었다. 열심당원 시몬 세롯 시몬은 가나안 사람이었다(마 10:4; 막 3:18; 눅 6:15).5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12제자가 되었다. 오순절과 감람산에서 주님의 승천하는 현장에도 직접 참여했다(행1:13). 세롯(헬라어 제로테스)이란 ‘열심당’, ‘열광자’란 뜻이다. 이는 아람어에서 유래된 말로 셀롯당 즉 열심 당원으로 이스라엘 독립을 위한 비밀 결사대인 일종의 테러리스트이다. 이들은 유대의 반대 세력들을 살해와 테러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르는 극열한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품속에 언제나 반달 같은 검을 품고 다니다가 매국노 로마인들을 만나면 죽이기를 망설이지 않는 극렬 테러리스트였다. 그랬던 그들이 갈릴리 가버나움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시몬은 전에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로마의 팔레스타인 통치에 대한 광적인 반대파로 즉, 열심당원이라고 했기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불리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수께 부름을 받아 사도가 되었으나 사도의 반열에 올린 이름 외에는 성경 어디에도 그의 관한 기사를 찾아 볼 수 없다. 당시 이런 신분을 가진 자들은 공직은 물론 사회활동을 할 수 없는 신분의 많은 제약을 받고 살았다. 헤게십푸스(Euseb., Hist., Ⅲ. 11, 32)에 의하면 시몬은 야고보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 나라는 언약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사상이나 이념 공동체가 아닌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성향이나 지리적인 감정, 세속적인 신분에따라 언약을 배반하면 안 된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았을 때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갔고, 후일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번제를 드리러 간 것도 언약에 기초한 삶이었다. 언약의 율법을 받은 모세는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내어 밀 때, 홍해가 갈라졌고 반석이 쪼개지며 구름기둥 불기둥의 역사가 일어났다. 바벨론 포로 시절 다니엘은 이방 왕궁에서도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여 언약 중심으로 살았던 신실한 사람이었다.
-
[황권철 목사] 유다 다대오(Jude Thaddaeus'Behind Stories)-동역의 사도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요14:22). 성경에 유다란 이름을 가진 자가 많으나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은 세 명이었다. 첫째, 예수의 동생 유다이다.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마13:55). 그는 초기에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았다. 예수님과 한 형제이지만, 같은 배에서 나왔으나 씨가 다른 형제였다. 그가 어린 시절에는 형 예수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애를 위해 집을 나갔을 때 많은 박해를 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후에 형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믿었고 비록 사도는 아니었지만 명분상 사도적 반열에 참여하여 예수가 메시야라는 언약의 복음 유다서를 기록했다. 둘째, 예수를 판 가룟 유다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유다의 이름 앞에 꼭 붙이는 한 단어가 있는데 예수를 판 자 라는 말이다.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10:4),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막3:19),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눅6:16). 요한은 가룟인 아닌 유다가 라고 하였다(요14:22). 가룟 유다는 이 땅에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남긴 불행한 자였다. 마지막 셋째, 본문에 나오는 다대오 유다이다. 마태와 마가는 다대오라고 불렀다. 요한은 왜 유다를 가룟이 아닌 유다라고 불렀을까? 신약성경이 쓰여 질 때 예수를 판 가룟 유다 때문에 유다란 치욕스러운 이름이 되어 버렸다. 그 이전 구약에서 유다 이름의 뜻은 찬송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자들이 유다라는 이름으로 불러지기를 좋아했다. 예수님도 유다의 가문을 통해서 오셨다. 그러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이후로 유다란 이름은 치욕스러운 이름이 되어 버렸다. 그 이후로 아무도 유다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그 이름을 가진 자들도 가룟 유다와 구별하여 불렀다. 다대오 유다는 시몬과 함께 열심당원이었다. 주님의 고민에 동참한 다대오 주님의 구원사역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제자들도 주님의 죽으심을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그의 괴로운 심정의 비밀을 토로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요13:21). 이제 주님이 마지막 십자가 지실 사실을 말씀하셨다. 이것이 너무도 가슴 아픈 심령의 괴로움이었다. 물론 십자가 지는 육체적인 고통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그보다 더 큰 아픔과 괴로움은 이 사실을 곁에 있는 제자들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외부에서 일어날 일이 아니고 조직 내에서 반역자가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개적으로 떠벌려 말하기도 곤란하여 지금까지 미루어 왔던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이 사실을 말씀하셨다. 할 수 없이 조직 내에 반란자가 있음을 애기했다.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이는 제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삼년 동안 훈련하여 준비해 왔는데 그것도 외부에서가 아닌 조직 내에서 반동분자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앞으로 조직의 붕괴마저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떠나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신이 떠난 이후 제자들이 서로 분쟁하여 붕괴될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것은 제자들 상호간에 불신을 조장하는 공동체의 마비현상이 생길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요13:22). 당장에 이 같은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그때 성미 급한 베드로가 단호하게 말했다.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요13:24). 그는 분노하여 누가 감히 그런 일을 꾸미느냐 하고 분개했다. 그때 가룟 유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내가 떡 한 조작을 적셔서 주는 자가 그니라”고 하시면서 가룟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는 그때가 회개 할 절호의 기회였으나 오히려 괴심한 생각을 품어 주님을 팔 생각을 했다. 그때 사단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곳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13:27). 유다는 그 조각을 받고 나간 그날이 영원한 밤이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13:30). 다대오 유다는 이 같은 주님의 아픈 마음을 다 헤아리고 있었다.
-
[황권철 목사] 마태(Matthew's Behind Stories)-언약의 사도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아 마가복음에 이어 마태복음을 쓴 사람이다. 학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기록되었다.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본명은 레위였다(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태는 본래 레위 지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이 레위라는 이름을 쓰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마태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 9:9). 그는 세관에서 일하는 세리이다. 당시 유대민족이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때라 얼마나 살기가 어려운지 도시락 하나가 귀한 시대였다(마 14:13-21). 그렇지만 세리들은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다. 그런 그가 세관에서 앉아서 일하는 좋은 자리에서 사직서를 내고 방랑자와 같은 주님의 제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따른 것은 그가 인간이 배를 불리는 빵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통치권자가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자리에 앉았어도 복음과 상관없는 시간과 물질과 권력은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엡 5:16)고 했다. 세속 풍속과 유행을 따라 고귀한 시간을 허송하지 말고 영혼을 구하고 생명을 건지는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한다. 복음서를 기록한 세리 마태 마태복음의 저자는 세리 마태이다. 그런 레위가 마가의 복음서를 손에 넣게 되었다. 아마도 같은 레위 지파 출신의 마가가 그에게 사본을 전했을 수도 있다. 레위는 그의 율법 지식과 세리 특유의 치밀함으로 구약 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야를 예수 그리스도에 연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는 자신의 이름 레위를 헬라식 이름 마태로 고쳐서 구약의 이스라엘 시대에서 신약의 이방 시대로 들어섰음을 선언했다. 특히 그의 복음서에는 마가복음에 없는 예수 탄생의 경위와 동방 박사의 이야기가 기록되었다. 세원을 추적하는 세리 특유의 솜씨로 마리아를 인터뷰하여 그 사실을 캐냈을 것이다.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태는 유대인으로서 같은 동족 유대인을 위해 이 복음서를 기록했다. 이런 마태복음은 결코 구약의 참된 계시를 인본주의적이요, 패쇄적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곡해한 유대교적 오류에 물들지 않고 예수의 복음과 구약의 계시가 상호 연속성을 가진 진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 비하여 구약의 인용이 많다. 또한 그는 당시 세리직으로 상당한 교육을 받은 자로 헬라어도 잘 구사할 줄 알았다. 그는 상당한 재산가였던 것으로 추정되며(눅 5:29), 화폐에 대한 빈번한 언급과 회계에 능한 그의 관심을 통계 수치에 밝은 직업적 기질을 그의 복음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과 신약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하게 했다. 신약성경 27권이 정경으로 채택된 때는 주후 397년경 칼타고 회에서 이루어졌다. 그 기준은 이러하다. 첫째는 사도들의 후원을 받은 책들이다(엡 3:1-5). 둘째, 그 내용이 진실한 책이다(고후 2:17). 셋째, 성령의 영감을 받은 책이다(벧후 1;21). 그러나 이 성경을 편집할 때 연대순을 기준으로 하지 않았다. 구속계시의 성취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신약의 여러 복음서들 중에 가장 우선적으로 편집한 것이 마태복음이다. 마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교량 역활을 한다.
기고
-
[특별기고] 이스라엘, 튀르키예 성지순례기
마산동부교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2022년 9월에 성지순례팀을 조직하고 교우들을 대상으로 팀원을 모집하여 10월에 32명을 확정하고 12월부터 수요예배후 1시간씩 8차례 이스라엘과 튀르키예의 순례 할 곳을 공부하였고 기도회를 통하여 은혜로 준비 하였다. 드디어 2023년 2월 20일(월) 오후 2시 교회 앞마당에서 출발기도와 단체 촬영후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8시 도착 수속하고 가이드 선교사님의 안내로 2시 15분 터키항공으로 출국하여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21일 아침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 목사님을 만나서 첫 일정을 시작했다. 첫 순방지 가이샤라로 가게 되었는데 헤롯왕은 가이사랴 항구를 건축할 당시 황제 가이사 아우구투스의 이름을 따서 가이사랴로 명명했고 로마 총독부가 있었고 그 곳에서 본디오 빌라도라는 석판이 발견되어 빌라도 총독 관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기 전 여기에 머물러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여정으로 갈멜산 엘리야 기념교회를 방문 했는데 많은 순례객들이 단체로 찬양하며 기도하는 모습에 주님을 섬기는 일에는 인종과 나라와 민족을 초월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기념교회 옥상에서 바라본 넓은 이스르엘 평원과 그 너머 스불론 땅과 므깃도 사마리아로 이어지는 산맥들을 보면서 성경의 지명들을 한꺼번에 보게되는 감격과 이 땅을 차지하기위해 치열하게 싸운 이유를 알것 같았다. 다음으로 므깃도 성채로 가서 말들을 훈련시킨 흔적들과 지하 우물 저장고를 보면서 이곳이 솔로몬 시대에 전략적 요충지였고 계시록의 아마겟돈이 이 지역임을 설명해 주었다. 다음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해준 나사렛 수태고지 기념교회를 방문하였고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성화 중 한복을 입은 마리아와 한글로 예수님을 경배하는 글을 보게 되고 원뿔모양의 천장에서 빛이 제단으로 비치면서 마리아의 잉태 사실을 암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수님이 첫 기적을 베푸신 가나 혼인 기념교회는 늦은 시각이어서 교회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문을 잡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며 하루를 마감했다. 22일 수요일 버스 안에서 기도로 일정을 시작하면서 성지순례 팀웍과 섬김과 사랑을 위하여 비밀기도 짝 마니또를 정했는데 한국에서 품은 기도짝에 대한 간증과 새로운 기도짝을 추첨하면서 서로를 많이 이해하고 교회 안에서 서로 서먹했던 관계를 해소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바알을 위해 제단을 쌓았던 가이샤라 빌립보로 가서 당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흔적들을 보게 되었고 근처에 현재의 지명 바니야스로 명명된 바니야스 폭포를 보면서 헐몬산에서 지하로 물이 흘러 솟아나와 샘을 이루고 흐르는 현장에서 사막에 강을 내겠다는 말씀이 실감나게 다가 왔다. 근처에 예수님이 선포한 산상수훈을 기념한 팔복교회로 가게 되었고 교회 내부는 팔각형 모양으로 의자를 놓아 두었고 우리 일행 32명은 “심령이 가난한 자”시작하는 팔복 찬양을 감격해서 부르며 흘러 내리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고 주위의 순례객들도 우리 찬양을 경건하게 듣는 참 은혜로운 시간 이었다. 여로보암 왕이 세운 우상이 있는 텔단으로 가서 그곳에서 발원하여 요단강으로 흐르는 물의 근원지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갈릴리 바다 근처 막달라 마리아가 살았던 마을에 있는 식당에서 베드로고기라 칭하는 생선튀김을 점심으로 먹고 갈릴리 바다에 손과 발을 담가보며 예수님이 수많은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시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오병이어 기념교회에서 모자이크에 빵이 4개만 그려져 있어서 1개가 어디 있는지 궁금했는데 가이드 목사님이 그 한 개는 예수님 자신을 가르키지 않았나 하시며 예수님 자신이 “나는 생명의 떡이다” 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 시켜 주었다. 근처 베드로 수위권 교회가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시나고그(유대인 회당)에 대한 설명을 듣고 유대인들이 회당을 중심으로 생활했음을 알게 되었고 베드로 장모가 살았던 집터위에 세워진 교회와 황금열쇠를 지닌 베드로 동상을 보면서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진면목을 보게 되었고 예수님의 사역이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많이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었다. 갈릴리 바다에서 배를 타고 국기 상기식과 애국가를 부르는데 옆 배에서도 스웨덴과 이탈리아 국기가 게양되는 것을 보며 다양한 나라에서 순례의 길을 동참하구나 하는 느낌을 안고 선상에서 드리는 수요 예배에 은혜와 감격이 넘쳤고 유창근 목사님의 설교가 예수님 당시 주님이 선포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며 진정한 예배자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23일 목요일 맛사다로 향해 가는 길에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요단강 세례터에 들러서 손에 물을 적시며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맛사다는 히브리어 어근 자체가 요새라는 뜻을 가졌고 난공불락의 성채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요새 아래에서 걸어서 올라가는 단체팀은 대부분 이스라엘 학생들로 역사공부겸 여행을 와서 조상들의 민족정신을 느끼는 현장학습의 연장으로 느껴졌다. 3단으로 된 헤롯궁과 물 저장 장치, 곡식 저장고등을 둘러보고 정상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니 로마군대가 쌓아놓은 토성의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여서 여기가 로마군의 공격을 피해서 마지막 항전을 한 곳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쿰란으로 가서 구약성서 사본들이 집중해서 발견된 쿰란의 1~9동굴중 사본이 가장 많이 발견된 4동굴을 멀리서 보면서 발견된 사해 사본이 현재 사용되고 있는 성경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구약성서 전권이 900여 두루마리로 항아리 속에 보존되었고 에스더서만 빠져 있다는 내용도 듣게 되어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오묘하며 성경의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음을 현장에서 느꼈다. 예수님이 40일 금식후 시험 받았던 시험산에서 주님이 말씀으로 세 번 마귀를 물리친 현장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주님을 더욱 붙들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근처 15분 거리에 있는 유대 광야를 걸으며 찬양하고 정상 계단에 모여 서쪽 노을을 바라보며 앞으로 순례일정과 두고 온 교회와 가정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은혜의 시간을 가졌고 베들레헴 지역에 있는 숙소로 와서 1박을 하였다. 24일 금요일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 지역으로 나가는데 분리장벽이 7M 정도 높이 서 있고 검문검색이 까다로워 30분 이상 기다리며 휴전선이 분리장벽이 아닌가하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보았다.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이동해서 브엘세바로 가면서 드넓은 평원에 밀보리 밭을 보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떠올리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번제단 모형과 당시 주거지 형태가 남아 있는 현장을 둘러 보았다. 점심식사 후 차에서 잠깐내려 다윗과 골리앗이 싸운 엘라 골짜기 지형을 보며 와 닿는 것이 있었고 그 위쪽 소라땅과 소렉 골짜기, 단지파 땅들을 둘러보고 그곳에서 많이 자생하는 합환채 설명을 듣고 열매하나를 따서 목사님께 드리면서 출산 장려를 위해 설교 자료로 유용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들의 목자교회와 보아스 광야를 거쳐 베들레헴 예수 탄생교회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동굴을 보았고 그곳에 아르메니아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가 각각 자리를 차지하여 기념하는 것이 이색적 이었다. 25일 토요일 예루살렘으로 가서 먼저 예수 승천교회를 방문 했는데 사순절 기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고 감람산에서 황금돔이 있는 다윗성과 예루살렘 성전을 보며 사진으로만 보던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그 실체를 보며 감격하였다. 주기도문 교회에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주기도문 비가 있고 우리는 한글로 된 주기도문 앞에서 주기도송을 부르며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시간을 가졌다. 힌놈의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겟세마네 벳바게의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곳에서 합심해서 기도하고 베드로 통곡교회를 향하였다. 베다니 마가요한의 집터위에 세워진 교회 꼭대기에는 닭 모양의 형상이 표현되어 있었고 예수님이 안장된 곳에는 수많은 참배객이 기도하고 예배하고 있으며 빌라도 법정에서 출발하여 비아돌로사 14 지점을 순례하며 십자가를 지시고 힘들게 걸어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묵상 하였다. 오늘 일정 마지막으로 유대인의 성지인 통곡의 벽으로 가서 저들이 진지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두루마리 성경을 열어서 낭송하고 다시 닫아 벽장 속에 넣는 경건한 의식을 통해 구약시대 제사장들도 저렇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 해 보았다. 그곳에서 조금 내려와 Dong Door(분문)가 있어 성경에서 읽은 분문을 직접 보고 신기해 했다. 26일 주일 아침 일찍 이스탄불 시내를 통과해서 보스포러스 해협의 두 다리를 지나 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을 둘러보고 근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선상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며 순례길에 참여한 이유와 목적을 되새기게 되었다. 성소피아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줄이 길어 한참을 기다리고 전에는 박물관으로 사용 되었는데 현재는 모슬렘 예배처소로 사용되고 있었서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고 제한되어 있어 안타까웠다. 점심식사를 하고 이스탄불 공항으로 가서 카이세리행 비행기를 타고 다시 버스로 갑바도기아로 이동하였고 순례일행중 생일을 맞은 세분을 위해 생일파티를 열어주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하였다. 27일 월요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갑바도기아 괴뢰메 동굴을 지프를 타고 가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형성해 놓은 동굴교회와 주거형태 생활 모습을 보았고 파사바계곡의 수많은 동굴 거주지와 교회를 보면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난과 위험을 감내하면서 생활했던 모습에 숙연함을 느꼈다. 데린구유는 지하7층까지 미로처럼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환란과 핍박을 피하여 신앙의 정조를 지킨 믿음의 선배들의 살아있는 숨결을 느끼며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28일 화요일 호텔을 출발하여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서 바울 기념교회를 둘러보고 눈 덮인 설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잠깐 숨고르기를 하였고 점심식사 후 라오디게아교회를 둘러보고 근처 히에라폴리스로 가서 드넓은 유적지를 살피고 언덕위에 있는 빌립 기념교회에서 묵상하였고 조금 지쳐 있지만 다시 힘을 내어 파묵칼레로 가서 따뜻한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서 여행의 피로를 풀고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3월1일 수요일 버스 안에서 찬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주택가에 거대한 돌기둥 세 개만 남아있는 빌라델비아교회를 방문하니 입구에 사도요한 기념교회라는 표지석이 있었다.사데지역으로 가서 사데교회의 흔적을 보고 가이드 목사님이 초대 일곱교회 중에 책망받은 교회 지역은 폐허가 되었는데 칭찬받은 두 교회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지역은 번성하다고 설명 하였다. 누가의 무덤 터를 둘러보고 빌립기념교회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사도요한 무덤교회를 들리고 에베소에 있는 셀수스 도서관 거쳐 원형 경기장에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이동환 가이드 선교사가 중후한 목소리로 찬양 할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광대하심에 전율을 느꼈다. 3월2일 목요일 튀르키예에서 마지막 일정을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님 크신 은혜”로 찬양하면서 시작하고 초대교회 어렵게 신앙생활을 했던 두아디라교회를 방문하고 버가모(버가마)교회터 위에서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을 상기 해 보았다. 갑바도기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장시간 이동하여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 선상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이스탄불공항으로 이동하여 새벽 2시25분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3일 오후6시30분에 도착하여 버스로 마산에 내려오니 4일 새벽 1시 정도 되었다. 마중 나온 가족과 성도들을 만나 긴 여정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 하였다. 11박 12일의 순례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고 성경의 역사와 지명들을 알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큰 은혜와 감동의 시간이었슴에 감사한다.
-
[이상규 교수] 왜 역사(교회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시작하면서 마틴 로이드 존스(1899-1981)는, “나는 성경 다음으로 교회사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목회자들의 교회사에 대한 무지를 통탄히 여겼고 설교자들에게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한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부흥(Revival)과 청교도(Puritans)에 대한 깊은 식견을 가진 인물이었는데, 그가 쓴 The Puritans을 보면 교회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특히 청교도 역사와 인물에 대한 깊은 식견을 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신앙과 교회의 삶은 역사의 사건에 기초하고 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와 같은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가 역사에 대한 지식이 교회적 삶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다는 점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는 항상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숙고하였다. 그래서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를 마틴 로이드 존스 보다 더 잘 아는 이가 없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제임스 패커, 존 스탓트 등도 설교자에게 있어서 교회사의 주요성을 강조한 인물이었다.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C. H. Spurgeon, 1834-1892) 또한 교회사를 중시한 인물인데 그에게는 약 2만5천권의 장서가 있었는데 이중 6천권 정도는 청교도 관련 서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교회사 특히 청교도에 대해 박식했다. 그는 설교자에게 있어서 역사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설교계의 양대 거목이라 불리는 19세기 영국의 찰스 스펄전과 20세기 마틴 로이드 존스가 이처럼 교회사를 중시했다는 사실은 설교자에게 있어서 교회사의 중요성을 대변해 준다. 이 글에서는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하면서 역사이해 혹은 인식과 관련된 주변의 몇 가지 사항에 대해 답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급하게 쓴 미완성의 글이라는 점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강의를 이끌어가기 위한 작은 안내일 뿐이다. 1.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歷史, ὶστορια)를 뜻하는 History나 Historia 라는 말은 그리스어(ὶστορια, ὶστορεω)에서 유래했는데 ‘연구,’ ‘탐구,’ ‘조사’ 혹은 ‘탐구하여 획득된 지식’, ‘연구하여 얻어진 지식’을 의미한다(갈1:18). 예컨대 헤로도투스(Herodotus, 484-425 BC)는 그의 『역사Histories』에서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들이 소멸되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저자가 조사한 내용을 역사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역사’를 과거에 대한 지식이란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세기부터였다. 로마의 역사가 폴리비우스(Polybios, 203-120 BC)는 그의 『역사Histories』에서 역사를 ‘과거에 대한 지식’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우리가 보통 역사라고 할 때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사건(events)으로서의 역사(Geschichte)와 기록(record)으로서의 역사(Historia)이다. 사건으로서의 역사는 우리의 인식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수많은 역사의 창고에서 현재나 미래에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선택하여 기록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 기록을 통해 과거를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역사를 ‘인간의 집단적 경험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그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가 인식한 바에 의한 주관적 성격을 지닌다. 이를, 헤겔은 “역사란 말은 객관적 의미와 주관적 의미를 종합하고 있는데, ‘사건’(res gestae)을 의미하는 동시에 ‘사건의 기술’(historia rerum gestarum)을 의미한다.”고 했다. 시간 세계 안에 일어난 모든 사건는 절대적이며 객관적인 것이지만(사건으로서의 역사), 그것을 인식하고 기술하는 것(기록으로서의 역사)에는 주관적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 역사가의 관점, 곧 세계관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한다’라고 말할 때 사실은 역사에 대한 기록을 공부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리하면, 역사란 고고학적 자료나 문헌자료, 혹은 현존하는 자료에 대하여 과학적 방법에 의해 수집된 조직적인 자료에 기초하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간의 과거에 대한 해석된 기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인류가 이룬 그 풍성한 유산을 모른다는 것은 나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지난 2천간 서양과 동양사회에엄청난 영향을 준 교회의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역사를 공부한 가장 큰 이유는 기원 혹은 연원에 대한 관심, 곧 호기심 때문이었다. 지난 과거를 알고 싶은 호고주의(好古主義)는 역사 공부의 출발점이었고 그 결과는 기쁨과 위안이었다. 이런 점에서 역사연구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점은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실제적인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인간 존재에 대한 확인 역사를 ‘인간의 집단적 기억’이라고 말하는데, 이 기억 곧 기록이 없다면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존재해 왔는가를 알 수 없게 된다. 이는 마치 인류가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우리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결국 인간은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역사는 개인과 집단, 부분과 전체를 아우르는 인간 삶의 기원과 연원, 변화와 발전, 흥망성쇠를 통해 개인, 민족, 국가, 사회제도, 문화, 종교를 알게 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준다. 곧 역사는 시간, 장소, 사회발전과 각종 제도들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인식하게 함으로서 정체성을 확인시켜 준다. 그래서 얼 케언즈(Earle E. Cairns)는 교회사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라고 불렀다. 역사 연구는, 오늘 우리가 누리는 앞선 세대가 물려준 위대한 유산들을 알게 해 준다. 그래서 오늘 우리로 하여금 앞선 시대에 대하여 감사하게 하고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가 파지 않는 우물물를 마시며, 심지 않는 포도원의 열매를 먹으며, 건축하지 않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기(신6:10-11)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역사발전은 우리보다 앞선 세대의 희생과 수고, 헌신의 결과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2)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 구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역사 즉 5대제국(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에 역사를 안다는 것은 구약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도움을 준다. 신약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심문받으실 때,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인정하고(요18:38, 19:4, 6) 그를 석방하려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忠臣)이 아니니이다”(요 19:12)라는 말을 듣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준다. 그런데 여기서 ‘가이사의 충신’은 바른 번역이 아니다. 바르게 번역하면 ‘가이사의 친구(φίλος τοῦ Καίσαρος)’로 번역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친구’를 ‘충신’으로 의역했을까? 한글성경 번역자들이 역사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문대로 ‘친구’라고 번역하지 않고 ‘충신’이라는 말로 의역한 것이다. 여기서 친구라는 단어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당시의 직위 혹은 자격을 말하는 고유명사였다. 당시 로마 황제는 지극히 신임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친구’라는 칭호를 수여했는데 이 칭호를 받은 자는 사전 내락 없이 황궁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다. 빌라도는 당시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재임기간 14-37년)로부터 ‘친구’라는 칭호를 수여 받았는데, 군중으로부터 “예수를 석방하면 그 친구라는 칭호를 잃게 된다”는 말을 듣고 무죄한 자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준 것이다. 정리하면, 성경 번역자들이 로마제국의 역사를 몰랐기 때문에 성경을 의역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를 아는 것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3) 역사로부터의 교훈 역사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역사가들은 역사는 개인과 집단에게 교훈을 준다고 가르쳤다. 동양문화권에서도 역사를 거울(鑑)이라고 보았다. 중국에는 자치통감(資治通鑑), 우리나라에는 동국통감(東國通鑑)이 있는데, 이 역시 역사를 거울이라고 본 것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은 역사로부터 도출된 예문을 통해 교훈과 훈계를 주기 위해 편집된 책인데, 역사를 거울로 본 것이다. 성경도 역사의 교훈을 말하고 있는데,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구약의 출애굽 사건들)이 거울이 되어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다”(고전10:11)고 말하고 있다. 역사는 거울처럼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교훈과 훈계를 주기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역사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for our learning) 기록했다(롬15:4)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키케로는, “당신이 출생하기 전의 일에 대하여 무지하다면 어린아이로 사는 것과 같다”(Nescire autem quid ante quam natus sis acciderit, id est semper esse puerum)고 했다. 스페인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또한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자들은 그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doomed to repeat it)”고 했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사례(examples)를 가지고 가르치는 설교’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의 역사서, 특히 사무엘서, 열왕기서, 역대기서는 이스라엘 왕조시대 역사인데, 여기에 여러 왕들의 영욕의 자취가 기록되어 있고 오욕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런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고 있다. 역사는 삶을 위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랄프 윈터(Ralph Winter)는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책 제1권이고, (교회)역사는 하나님의 책 제2권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역사는 ‘과거의 산물인 동시에 미래의 씨앗이다.’ 그래서 역사는 교훈을 주기도 하지만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하게 해 준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할 때 이 말에는 역사는 어느 정도 반복한다는 점을 전재로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역사는 반복하는 가? 이 점에 대해서는 차항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4) 거시적(巨視的) 혹은 통시적(通時的) 안목 역사공부는 역사적 안목, 곧 거시적 혹은 통시적 안목을 갖게 해 준다. 역사에 무지하면 어린아이로 살뿐 아니라 역사를 조망해 보는 안목을 가질 수 없다. 이는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井中之蛙)처럼 밖의 세계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역사 연구는 우물 밖의 세계를 보게 해 준다. 즉 타자의 인식을 주관화함으로서 역사를 거시적 안목으로 보게 해 준다. 1989년 시한부종말론이 유행했을 때 역사에 무지하면 당시 풍미하던 거짓 종말론이 한국교회의 특이한 현상이라고 여기지만, 이런 류의 시한부 종말론은 초대교회시대, 중세시대, 16세기 종교개혁시대, 그리고 19세기 미국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것의 한계와 기만성을 깨닫게 된다.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의 그리스도 재림론(1843)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시한부종말론이 가져오는 사회병리적 현상에 놀라지 않게 된다. 말하자면 역사에 대한 이해는 과거와 현재를 조망해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하고, 역사를 원근법적으로 파악하게 도와준다. 그래서 영국의 교회사학자인 제프리 빙햄(Jeffrey Bingham)은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역사가여야 한다. 과거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면 더 높은 곳에 앉아 더 멀리까지, 그리고 더 넓은 전경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역사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 5) 역사연구와 오늘의 현실 역사연구는 우리 우리의 현실을, 그리고 우리의 실제 모습을 깨닫게 해 준다. 특히 교회사 연구는 오늘의 교회가 본래적 교회로부터 얼마나 부합하는지 혹은 이탈했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그래서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복음주의 신앙을 첫째는 성경에 호소하여 그 정당성을 주창했고, 둘째는 역사에 기대어 당시 교회가 얼마나 본래적 교회, 본래적 신앙에서 이탈했는가를 제시하고 자 했던 것이다. 역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척도였다. 우리는 역사연구를 통해 4세기 이후 교회가 본래적 교회로부터 이탈하여 속화의 길을 가게 되었고, 6세기 이후 교리적 변질을, 9세기 이후 성직매매가, 그리고 11세기 면벌부가 소개되었고, 14세기 이후 교회가 타락하여 성직자들이 윤리적 타락이 심각했음을 알게 된다.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Vita clerici est evangelium laice)는 경구가 나온 배경을 알게 해 준다. 교회사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 혹은 특성을 이해하는데 가장 적합한 수단이 된다. 역사, 역사적 연구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진정한 교회상을 제시해 준다. 또 역사를 통해 우리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와 섭리를 헤아릴 수 있다. 6) 설교자, 역사(교회사)의 유용성 그렇다면 역사에 대한 지식은 설교자에게 어떤 유용성을 지니는가?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로, 역사는 설교자들에게 유용한 예화(사례)를 제공한다. 지난 2천여 년 간의 교회사에는 본받거나 경계해야 할 많은 사례가 있는데, 그것이 오늘 삶에 유용한 가르침을 준다. 이보다 더 좋은 사례집이 있을까? 역사에 대한 지식은 설교자에게 유용한 예화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를 ‘역사의 예화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역사에 대한 지식은 설교자들을 풍요롭게 해 준다. 둘째, 역사(교회사)는 성경의 가르침을 확증해 준다. 예를 들면, 성경은 인간은 타락했고 전적으로 타락했다(롬3:10, 20, 1:18-3:18)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진실로 인간은 타락했고,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역사는 성경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확증하는 기능을 한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사례를 가지고 가르치는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자료가 되지만 특히 설교자들에게는 성경의 가르침을 확인해 주는 기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3. 역사는 반복하는가? 우리가 주변에서 늘 듣는 말이 ‘역사는 반복한다’는 말이다. 전도사 기자도 “해 아래 새것이 없다”(전1:9)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는 실제로 반복하는가?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도 그렇게 믿었다. ‘명상록’을 썼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우리가 과거에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기 위해서는 오직 40년만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역사는 40년을 주기로 반복한다는 의미였다. 그런가 하면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에밀리아누스(Scipio Aemilianus)는 힘겹게 카르타고를 점령하고 나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역사는 반복하기 때문에 지금은 로마가 정복했지만, 언젠가 로마가 동일한 방법으로 정복당하게 될 것을 예견하고 통곡한 것이다. 역사의 반복을 믿었던 것이다. 실제로 역사는 반복할까? 만일 반복이 없다면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역사 연구는 결국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인데 과거의 일이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지난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역사는 어느 정도 반복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영국의 존 버리(John B. Bury) 같은 역사가는 역사는 반복한다고 믿었기에 역사에서 법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역사는 과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History is a science, no less and no more)’라고 말한 바가 있다. 자연과학의 법칙이란 반복된 사실에서 얻는 정리(定理)인데, 그는 역사도 자연과학처럼 동일한 사건이 반복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역사는 반복하는 것일까?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는 어느 정도 반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일한 사건의 재현은 없습니다. 예컨대 칸트와 견해가 똑같은 철학자가 후대에 나올 수 있어도 그 동일한 칸트가 다시 태어날 수는 없다. 이렇게 볼 때 역사는 반복한다고 할 수 없고, 이런 점에서 역사는 개별성과 특수성을 지닌다. 그렇지만 역사는 동일한 사건이 수없이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는 반복하지 않고 반복되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왜 그럴까? 인간의 본성(human nature)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본성을 가진 인간에 의해서는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유사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로마 시대에도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 했고, 권력을 잃은 자는 그 권력을 되찾고 싶어 했다. 이런 권력에의 욕망은 고대에도 있었고, 16세기에도 있었고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다. 고대 로마만이 아니라 아시아나 유럽 사회에서도 동일한 현상이었다. 이런 인간의 동일한 본성 때문에 유사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결국 역사는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가를 보여 준다. 비록 동일한 사건의 재현(再現)은 아니지만 유사한 사건이 거듭 반복되기 때문에 역사는 교훈을 주고,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법칙성을 발견할 수 있고, 그래서 (어느 정도) 사회과학적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4. 하나님은 역사에 개입하시는가? 하나님(神)은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3가지 견해가 있는데, 실증주의(Leopord von Ranke, Karl Marx), 관념론(I. Kant, Johann Gottlieb Fichte) 그리고 기독교적 이해가 있는데, 기독교회는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 곧 하나님의 섭리 혹은 경륜을 말한다. 그것은 인간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대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하나님은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시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악이 존재하며, 의로운 사람이 고통당하고, 불의와 부정의가 활개치고, 참학과 광포가 줄을 잇고, 무죄한 자가 칼날에 쓰러지고, 의로운 외침이 곡절되고, 공의를 외치는 이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가? 이런 의문은 오랜 역사가 있다. 기원전 12세기경에 살았던 욥은 ‘왜 의인이 고통당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고, 덕천막부(德川幕府) 치하 일본의 천주교도들도 동일한 질문을 했다. 나치 하에서 유대인들의 의문도 동일했다. 만일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하나님은 이 살육의 현장에서 침묵하시는가?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한 엘리 비젤(E. Wiesel)은 그의 책 <밤, Night>에서 이렇게 물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우리라고 이런 의문이 없을 수 없다. 실제로 인간의 역사에는 우리가 답할 수 없는 문제가 수없이 많다. 루터는, 이런 일들을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고 다스리신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저절로 되거나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役事)라는 믿음을 섭리라고 말한다. 영국의 이신론(deism)은 하나님의 창조는 인정하되 창조된 이후에는 만물이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창조한 세계에 오셔서 간섭하시고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고 가르친다(창45:5-8, 50:15-21). 하나님은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고(대하36:22, 스1:1), 포로된 자기 백성을 귀환하게 하셨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수중에 있다(마10:29)고 말한다.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역사는 인간의 그림자’라고 하여 인간이 역사의 주체라고 부장했으나, 성경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체이며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특정한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증명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1588년 7월 스페인의 무적함대라고 불리던 아르마다 함대(Armada)가 영국을 침공했다. 교황청과 관계를 단절한 영국을 다시 천주교로 복귀시키려는 의도였다. 아르마다 함대는 130척의 배와 8,000명의 해군, 19,000명의 보병으로 구성된 대군이었는데, 도버해협에 도착한 날은 7월 27일이었다. 영국은 속수무책이었는데, 오직 한 가지 희미한 가능성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실한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걸고 기도했을 때 청명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일기 시작했고, 바다에 폭풍이 몰아쳤다. 예기치 못한 기상 이변에 당황한 아르마다함대는 결국 패전하고 오직 30여 척만이 도버해협을 넘어 도망갔다. 이 사건을 역사가들은 ‘개신교의 바람(the wind of Protestantism)’이라고 부른다. 무적함대라고 불리던 아르마다 함대가 패배한 것은 커다란 이변이었고, 이 사건 이후 영국이 해상권을 장악하고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해 갔다. 그래서 아르마다 함대를 물리친 것은 하나님이 섭리하신 특별한 사건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역시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신념 체계, 곧 성경에 근거한 믿음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이성으로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믿음으로,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고 믿는 것이다. 마르크시스트들은 신(神)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 간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사건은 역사 내적인 원인과 결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역사 외적인 개입이나 간섭은 인정하지 않는다. 실증주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실증주의는 역사의 동인(cause)이나 과정을 현상세계 안에서, 곧 역사 내적인 인과론에서 찾기 때문에 하나님의 간섭이나 통치 혹은 섭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역사의 궁극적인 의미를 묻는 질문은 역사가의 영역 밖의 문제라고 말한다. 랑케(Leopold von Ranke)와 같은 실증주의 전통을 따르는 이른바 ‘과학적 역사가들(scientific historians)’은 기독교 신앙과 역사는 관련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 간섭을 인정하지 않는다. 5. 기독교는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 역사관의 문제 고대 그리스인(희랍인)들은 역사는 끝도 시작도 없는 무한한 반복으로 보았고, 그 역사 과정은 맹목적인 순환으로 보았다. 이를 회귀론 혹은 순환사관(循環史觀)이라고 말한다. 농경 문화권 속에서 계절의 순환을 보고 살았던 저들은 역사를 맹목적인 순환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즉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는 반복된 자연의 순환에서 역사의 순환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그리스인들은 역사를 본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스인들은 역사를 맹목적인 순환의 과정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역사에서 새로운 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역사는 지향하는 목표도 없고 발전이라는 개념도 없다. 결국 역사과정은 운명론적인 영원한 회귀(回歸)일 뿐이다. 그래서 그리스 철학의 근저에는 운명론(μοῖρα)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이 그리스적인 회귀론을 극복했다.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유목민이었던 히브리인들은 새로운 목초지를 따라 이동해 가면서 직선적 역사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역사의 분명한 시작과 역사의 목표를 상정했다. 즉 역사란 하나님의 창조와 더불어 시작되었고, 하나님이 정하신 종말로 나아가는 과정, 곧 역사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전개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역사는 하나님이 정하신 목표를 향하는 과정이었다. 그 역사는 모든 인류를 포용하는 일원론적이었다. 히브리인들은 역사의 무한한 회귀만을 믿었던 운명론적 역사이해와는 달리, 역사는 분명한 목표를 향한 선적인 과정, 곧 직선적 역사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자연은 신비로운 자존실체(自存實體)가 아님을 알게 되어 자연 중심 사상을 탈피할 수 있었고, 역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에 자연을 비신격화 할 수 있었다. 자연은 신비로운 정영(精靈)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無)에서 창조하신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었고, 역사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된 것이다. 정리하면,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역사 과정은 의미 없는 반복이 아니라 유의미한 진보이며, 분명한 종말을 향해 가는 목적 있는 과정이라고 본 것이다. 이것이 히브리적 역사이해였다. 이런 히브리적 역사관을 계승한 것이 기독교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역사이해는 근본적으로 다음의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타락,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계획이 펼쳐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역사에 대한 관점을 구원사관 혹은 구속사관이라고 한다. 둘째, 모든 역사 과정은 맹목적이거나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고 섭리하신다는 점이다. 이를 섭리사관(攝理史觀)이라고 말한다. 말씀을 통해서 무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피조된 세계를 지탱하시며, 모든 것과 동행하시며, 모든 것이 그가 정한 목적을 향해 발전하도록 섭리하신다. 셋째, 역사는 분명한 시작과 함께 분명한 목표, 곧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사관을 목적론적 사관이라고 한다. 역사는 맹목적인 반복이 아니라 하나님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과정이며, 역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목표를 행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피조된 세계를 다스리시고 유지하신다. 지구궤도를 돌고 있는 수많은 별들과 자연계의 미미한 현상들, 그리고 복잡한 인간의 삶이 다 그의 다스림 아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 세상에 왜 그토록 심각한 악이 활개 치며, 공의가 무너지고 의로운 자가 핍박당하는가? 이 모든 문제는 범죄한 인간의 악함 때문이다. 인간의 죄와 그로 인한 욕망, 곧 악함이 자연을 파괴하고 불의를 행하고 인간 생명을 살상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마치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하나님의 일식(日蝕) 현상’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이 역사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지만 마치 달이 해를 가려 해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루터는 ‘인간사의 불의가 하나님의 역사 간섭을 부인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현실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다’고 보았고, 그 숨은 뜻을 ‘하나님의 마스크’라고 불렀다. 부정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지만, 일제의 식민 지배나 8‧15 광복, 그리고 6‧25 동란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뜻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숨은 뜻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우리에게는 역사를 긴 안목으로 헤아리는 안목이 없다. 눈앞의 현실만 인식할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를 통시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우리의 단견으로는 하나님의 침묵을 읽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긴 안목으로 역사를 굽어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으나 먼 훗날 하나님의 인내와 침묵, 인간의 악행을 허용하신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낙담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우리의 현실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불의와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이 너무 긴 길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때’에 대한 우리의 개념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헤아리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당신의 거룩한 뜻 안에서 이루어 가실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역사를 원근법으로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우리의 날들은 오직 주의 선하신 손안에 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My times are in thy hands, 시31:15)”라고 고백한 것이다.
-
[기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다시 성탄절 주후 2022년의 크리스마스입니다. 사전적 의미의 성스러운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는 명절이 크리스마스라고 말하지만 정작 이 날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9:2) 이 빛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심으로 임하시고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창3:15)이라는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여자에게서 나셨으며 그리스도의 본질을 순전하고 흠 없이 보전하기 위하여 아담의 허리로부터가 아닌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음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날이며 “때가 차매, 아버지가 정하신 결정적인 시간,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갈4:4) 하신 날입니다.” 모든 구약의 율법이 우리를 붙들어 그리스도를 뵈옵게 하심으로 우리를 지으신 분이 우리를 다시 지으신 날(딛3;4~7)입니다. 그러나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합니다.”(요1;5) 이 어둠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빛이 비쳐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즉 세상은 자기 생활방식을 사랑합니다. 인간이 어둠 속에 있을 뿐 아니라 어둠이 인간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는”(고전1:21) 우리에게 저녁 서늘한 무렵 하나님께서 동산에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즉 타락한 에덴동산에 빛이 비친 것입니다. 이 빛은 120년간 방주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호소한 노아의 빛으로 소돔과 고모라에서 탄식했던 롯의 빛으로 아브라함과 족장들, 이스라엘 민족과 선지자들,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그 빛이 계속 비친 것입니다. 모든 빛은 그에게서 나오고 빛의 본질이 그에게 있습니다. 그 분이 빛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기까지 사백여년의 어떤 선지자도 메시지도 없는 암흑시대를 지나 마침내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사9:6) 곧 진정한 빛, 주님이 우리에게 임한 방식입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포문을 여는 첫 장 마태복음 1장의 1절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펼쳐집니다.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열네 대,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 일곱 대가 여섯 번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은 일곱 번째 일곱의 시작이 되십니다. 성경에서 7은 의미가 깊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농부들은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는 안식을 취했습니다. 레 25장의 일곱 번째 일곱 해 중에서 마지막 해인 49년째 되는 해는 희년으로 모든 노예가 해방되고 모든 빚이 탕감되는 해였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낳고, 낳고, 낳고의 연속이지만 이 안식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보여주며 문제는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안식을 함께 누릴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강조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내려오심'(강림)의 의미가 더 크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주목해볼 것은 이 족보에 상상할 수 없는 다섯 여인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마리아' 그들은 성전에 들어가 예배조차 드릴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다말과 라합은 가나안 여인들이었고,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근친상간을 거론하는 다말, 물론 수혼제로 해석이 됩니다. 매춘부인 라합, 이름을 밝히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라고 명시함으로 다윗의 치부를 여실히 드러내게 되는 밧세바, 사회 계층상 밑바닥에 가까웠던 겨우 15살의 어린 소녀 마리아... 심지어 헤롯왕이 그리스도께 보인 반응조차도 실은 이 모두가 다 우리의 영적 모습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둠의 자식들이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주일 하루 예배자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교회 문을 나서기 바쁘게 세상과 영적 간음의 배교의 자식들이고 항상 내 생각이 아버지의 말씀 위에 두는 자들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2) 이러한 우리에게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를 외면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시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시어 “우리가 누구였든지, 어떤 사람이었든지” 이전의 우리를 개의치 않으시고 주님의 자녀로 가족 삼아 주신다는 겁니다. 여기 다섯 명의 여인들 딱 중간에 룻이 자리하면서 에브라임지파와 유다지파를 하나로 모읍니다. 요셉은 유다지파 사람이고 고향이 베들레헴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나사렛에서 나셨을까 생각해 보게 합니다. 성경에서 유다에게는 하나님께서 왕의 축복을 해주셨고 에브라임에게는 장자의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한다면 이 두 축복을 다 가지고 있어야함을 봅니다. 신약시대의 시작을 예수님의 계보로 시작함은 복음은 삶의 도움이 되는 정도의 상담이나 충고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와 그의 모든 행하심에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이야기가 그냥 영웅담이 아니듯이 예수님의 탄생, 그의 성육신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 방방곡곡의 크리스마스는 이제 연말 파티용으로 전락되어 우리끼리 먹고 마시는 금송아지 파티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크리스마스입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는 우리에게 또 어김없이 빛이 비칩니다.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라”(눅 2:11)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성육신 하셨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가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 분이 우리 삶에 들어오시기 전까지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는 스스로 알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고백함으로 십자가를 알기도 전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성육신 하신 주님도 훗날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갑니다. 전쟁과 기근과 역병이 돌고 돌아도 하늘의 문은 닫히지 않습니다. 유한하고 제한적인 땅으로부터 고개를 들어 영원한 하늘을 바라보며 위의 것을 찾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하며 코로나를 함께 겪어 나가며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처방은 최신의 백신이나 해독제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사9:6)된 이 은혜의 선물, 이 빛을, 나의 예수님을 우리 함께 온전히 받아 누리는 복된 크리스마스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글. 이정은 사모(부산 고신교회)
인터뷰
-
[인터뷰] 미자립교회의 전도 사역을 돕는 방주선교회
교회가 인력 또는 재정이 어려워 상회 또는 타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는 교회를 보통 미자립교회라 부른다. 교단에 따라서는 미래자립교회, 자립대상교회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자립교회는 한국 교회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헌금으로 교회 재정이나 지출을 해결 할 수 없는 교회 들이다. 이런 미자립교회의 인력과 재정 부족은 복음 전도마저 어렵게 한다. 그런데 이런 미자립교회의 노방전도를 2014년부터 지원해온 단체가 있다. 전국 100개 이상 미자립 교회의 전도를 지원하는 방주선교회가 그런 곳이다. Q. 방주선교회와 미자립교회에 대해 잠깐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미자립교회란 교회 지출을 헌금으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또 사람을 세울 수 없는 교회입니다. 전국 6만여 개의 이르는 한국교회 중 80%가 이에 속하고, 성도 수가 적거나 농어촌에 위치하거나 다소 낙후한 지역에 개척한 교회들입니다. 이런 미자립교회는 자립을 위해 전도하여 성도 수를 늘리는 것이 필수입니다만 전도할 인원과 재정이 부족해 전도에 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방주선교회(최안나 목사)는 2014년부터 이러한 미자립교회의 노방전도 활동을 지원해 오고 한마음 한 뜻으로 전도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내고 있는 단체입니다. 2014년 최안나 목사를 비롯한 성도 3명으로 시작한 방주선교회는 사역이 알려지며 전국 115개 미자립교회와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회원교회들은 함께 전국을 순회하며 노방전도 사역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또 의료선교 단체와 협력해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전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미자립교회의 전도 사역을 돕고 있습니다. 또 매년 봄과 가을마다 전국 회원교회들이 함께 모여 컨퍼런스를 개최해, 미자립교회가 훈련 받고 자립할 수 있도록 ‘사도행전 순례 전도’ 교육 사역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Q. 미자립교회의 전도 지원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작은 교회들은 작은 전도 물품 하나 주비하기 상당히 힘듭니다.. 그런데 방주선교회를 만난미자립교회들은 많은 전도 물품을 지원받고 함께 연합해서 전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방주선교회는 매월 한 교회가 1천 여 명에게 전도 할 수 있도록 전도용품을 준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 12개 지역 약 100여 개 교회에게 마스크와 건빵, 전도지 등 전도용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주선교회에 전도용품을 지원해주는 기업이 아직 2곳이기에 이 외의 전도 물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회원들이 자립적으로 헌금을 모우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방주선교회는 더 많은 미자립교회를 톰기 위해 많은 교회와 성도님들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전도지와 전도 물품 하나도 살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있는 목사님들에게 누군가의 작은 정성이든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협력해 주시면 굉장히 많은 영혼들을 건져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방주선교회 가입문의 : 이범수목사 (H. 010-9260-2424) 김현주 국장
-
[진해서부교회 김현직 목사] 인터뷰
본지는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교회를 이끌고 경남 지역의 교계 부흥에 새 바람을 일으켜줄 목회자들을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이번 호에서는 무더웠던 지난 8월 6일, 예장(합동) 진해서부교회 위임 목사 된 김현직 목사의 이야기를 전한다. Q. 경남기독신문 독자들에게 목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진해서부교회 담임으로 부임한 김현직 목사입니다. 진해에 오기전까지 분당우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며 예배와 목양, 그리고 훈련을 담당하였습니다. Q. 지난 1월 경상노회 2022년 감사예배에서 특송 하시는 걸 봤습니다. 목사님 노래도 너무 잘하시고, 또 위임식 때 분당우리교회 성도님들이 축가로 불렀던 곡이 목사님께서 만드신 곡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에 관심이 많으신데 앞으로 교회 사역방향 등에 많은 영향이 있을까요? 또 다른 새로운 창작 활동도 이어 가실 예정이신가요? A. 제 사역의 출발점이 찬양사역이었습니다. 찬미워십과 소망의바다 미니스트리에서 팀 사역으로 훈련을 받은 후, 솔로 사역으로 전향하여 개인 음반을 출반하고 방송과 교회집회, 대학 및 기관 등에서 다양하게 음악 사역을 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작업은 개인적으로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동료 사역자나 필요한 곳에 음반참여나 방송 사역 등으로 활동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부교회는 찬양과 말씀 그리고 기도가 균형을 이루어 예배하는 교회로 세워질 것입니다. 특히 젊은 성도님들이 마음껏 예배할 수 있는 곳으로 변화될 것이며, 40-50대의 장년층과 청년들이 생동감 있게 예배하며 신앙의 유익함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사랑과 축복의 터전으로 세워져 나가기 위해 열심히 터를 닦고 있습니다. 동시에 어르신들에게는 안식과 평안함을 누릴 수 있는 평강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Q.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까지 오셔서 사역하게 되셨는데, 몇 개월 계시면서 창원시, 그 중에 진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셨나요? A. 창원이라는 도시에 처음 와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함이 많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계속 적응해 가며 지역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참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4월에 만개했던 벚꽃으로 뒤덮인 동화 속 같은 마을들이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또 그만큼 지역 주민들, 특별히 우리교회 성도님들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 귀하고 복되다는 생각에 감사함이 가득합니다. Q. 지금 진해서부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또 앞으로의 사역 방향과 계획, 목사님의 목회철학 등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제가 부임하면서 선포한 목회비전은 바로 ‘선택과 집중’입니다. 지금 서부교회는 ‘예배의 회복과 전 성도 양육’이라는 뚜렷한 방향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에 모든 마음과 에너지를 ‘집중’하여, ‘한 사람을 살리고, 한 사람을 세우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부교회는 이러한 목회비전을 중심으로 하여, ‘예배의 감격이 있는 교회, 가정을 회복시키는 교회, 다음세대에게 길을 보여줄 수 있는 교회’로 굳건히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Q. 경남지역과 창원 교계는 독소조항이 담긴 학생인권조례를 저지했던 저력이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독소조항이 담긴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운동들에 진해서부교회 담임 목사로서 함께 동참하실 수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A.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옳은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지혜롭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해 나가는 성숙함의 열매가 필요한 시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Q. 진해서부교회 교인들과 지역 교계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사랑하는 진해서부교회 성도님들, 함께 가족이 되어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어 참 기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항상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속에서 길을 찾으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경험하는 신앙생활의 ‘맛’도 충만히 누리시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우리교회는 새롭게 시작되는 그 첫 걸음을 힘차게 내딛었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부르심의 소망을 향하여 달려 나갈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큰 일’을 분명히 이루시리라 확신합니다. 늘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며,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축복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들을 세우시고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신 데에는 각 교회에게 주신 분명하신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특별히 지역사회를 섬기며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이 이 땅 가운데 흘러가게 하는 데에 교회가 전심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저와 서부교회가 지역의 목사님들과 교회들에게 그러한 귀한 동역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선하신 주님께서 우리 모든 교회 공동체의 머리가 되어주셔서, 하나가 되어 서로 도우며 연합함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
예장 고신, 제72회 총회장단 합동 인터뷰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총회장 권오헌 목사, 이하 고신)의 제72회 정기총회 첫날 일정이 종료한 가운데 신임 총회장단이 기자단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이날 총회장 권오헌 목사 부총회장 김홍석 목사, 전우수 장로, 사무총장 이영한 목사, 기독교보 사장 최정기 목사, 포도원교회 담임 김문훈 목사가 참석했으며, 인터뷰에 앞서 신임 부총회장 전우수 장로가 먼저 기도하고 시작했다. ■ 질문에 앞서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권오헌 목사 : 기독신문들이 와서 취재와서 감사하고 잘 부탁드립니다. 설교에서도 말했지만, 저희 교단이 큰 교단은 아니지만 한국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잘 보여주는 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저희 교단이 사랑이 많은 교단이었고, 교단에 대한 사랑도 있었고,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한 사랑도 있었고, 조국 교회에 대한 사랑도 있었고 기도하는 시간 마다 고신대, 신학대학원, 복음병원을 위해서 늘 기도했고, 학생신앙운동에 대해서 온 교회가 협력했던 그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세월이 복잡해지고 하니까 개교회주의나 성도들이 개인주의에 많이 빠졌는데 우리 총회부터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서로 사랑하면 좋겠다고 그런 마음이고, 그런 마음으로 교단의 다양한 의견들을 하나로 잘 모으고, 생각이 달라도 함께 사랑하면서 교단이 할 수 있는 그런 풍토를 만들 수 있다면 한걸음이라고 그렇게 애쓰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홍석 목사 : 선거 과정에서 염려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고, 과열 양상을 실제로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고신 교회의 저력은 오늘 기자단이 보셨던 것처럼 ‘그것(우려했던 모습)이 우리의 수준이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총회에서 특별한 문제없이 투표 전에 특별한 문제 없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 관용하면서 아름다운 선거가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저와 경쟁했던 후보 목사님도 우리는 싸운 것도 아니고 전투한 것도 아니고 단지 경쟁을 했을 뿐입니다. 다음 기회에 쓰임 받고 봉사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고신 교단의 저력을 보여준 총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총회장이 1년 동안 할 일은 다른 것은 없습니다. 총회장님을 열심히 도와드리고, 1년 동안 더 준비해서 총회장 때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전우수 장로 : 고신 총회에 관심을 가지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장로부총회장으로 72회기를 섬기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고, 총대들이 선택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어쨌든 제가 SFC를 통해 훈련을 받고, 장로가 되어서도 전국장로회나 교단의 각 기관들을 섬겼습니다만은, 늘 부족함이 있고, 장로로서의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장로부총회장도 1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봉사해야 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단이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습니다. 학교문제, 병원문제, 총회 회관문제, 또 다음세대나 농어촌교회, 도시미래자립교회 이런 여러 도전적인 과제들이 많습니다. 장로로서 보는 시각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1년 동안 총회장님 잘 보필하고 도우면서 섬기겠습니다. 맡은 1년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최선을 다해 할 생각입니다. 이영한 목사 : 한국교회 정체성이나 반기독교 악법이라던지 이런 것을 막기 위해 우리 총회가 최선을 다해 앞장설 생각입니다. 그리고 좋은 법이 만들어지고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우리 고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역사회를 위해, 기후환경을 위해 최선을 다해 앞장서서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 권오헌 총회장님은 SFC 대표간사를 지내셨습니다. SFC 대표간사 출신으로 최초 총회장이 되셨는데, SFC 폐지안에 대한 견해와 해결책에 대한 방안을 피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권오헌 목사 : SFC가 더 잘하라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SFC가 더 잘하라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당장 폐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러나 교단의 목회자들 가운데서는 SFC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것이고, 그 표현이 과한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는데 그런 표현이 있어야 각성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신학교육부에서 잘 논의하고 처리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영한 목사 : 부연설명을 하자면 청소년 사역, 청년대학생 사역을 위해 총회에서 113명의 상근 간사들을 두고 지원해서 사역하는 총회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SFC는 다음세대를 이끌어 가기 위한 중요한 자원이고, 거기 학교와 학원 사역을 하다보니까 우리 총회 어른들이 보시기에 생각과 안 맞는 부분들이 일부 있을 수 있습니다. 총회장님 말씀대로 잘하라는 지적으로 받아드리고 앞으로 더 발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 고신은 과거부터 고려, 합신, 순장과 교단 통합을 추진해왔고 2015년 고려와 통합을 추진했습니다. 현재 합신과 순장과의 통합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이영한 목사 : 순장하고는 통합준비위원회로 준비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통합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고신은 남한 땅에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했던 총회이고, 순장 총회는 북한 땅에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가 1.4 후퇴 때 같이 내려왔던 분들이기 때문에 상징성과 역사성이 많습니다. 우리 총회와 순장 총회가 규모가 비슷하면 쉽게 성사되겠지만 일부 순장 쪽에서는 역사성이나 그동안 지켜왔던 것에 대해 ‘고신에 흡수되지 않느냐’ 하는 우려를 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이 충분히 공감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고, 지금 공감은 거의 된 상태입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에 통합을 하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끼리 함께하는 것이 한국교회 분열 속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합신과 대신의 경우에는 교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교단을 서로 인정하고 현재는 정책이나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에 힘을 합해서 함께 하는 것과 협의하고 교류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 2019년 일산벧엘교회가 탈퇴하고 2021년 대구동일교회가 교단을 탈퇴했습니다. 통합 총회 경우에는 위원회를 구성해 탈퇴한 교회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고신 총회 차원에서 그러한 노력을 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권오헌 목사 : 당연히 있습니다. (교단 탈퇴가)신앙고백이 달라서 한 것도 아니고, 행정적이라던지 입장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니까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벧엘교회 박광석 목사님은 저와 동기기도 하고, 또 대구는 저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어떻게든 대화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리 문제 때문에 나눠진게 아니잖아요?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 사회적인 섬김을 위해 교단 차원에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으신지 질문 드리고 또 인구절벽 시대에 다음세대 복음화 전략이 무엇입니까? 권오헌 목사 : 저희 교회는 수십 년 전부터 장애인 사역을 해 왔고, 우리가 소문을 내지 않아서 그렇지 와서 보시는 분들은 모두 놀랍니다. 고신은 선전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신학적 입장 때문에 충분히 고민하고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끝까지 하는 그런 특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학적 이슈나 사회적 변화에 빨리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고민이 많아서 충분히 하나님의 뜻인지 연구하고 고민하고 기다리기 때문일 뿐입니다. 결정되면 굉장히 열심히합니다. (서울시민교회 사례 소개). 표시를 내지 않고 떠들지 않아서 그렇지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대사회적인 것은 총회에서도 많이 고민하고 있지만 우리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이번에는 예배 문제 때문에 큰 소리를 냈는데, 신사참배와 같이 신앙의 본질적인 것에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신학적 입장에서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김홍석 목사 : 다음세대에 관해서 총회교육원에서 교재 개발이 끝나서 잘 보급되고 있고, 총회 차원에서 다음세대 교육 수립을 위한 세미나를 했었고, 내년에도 계획하고 있고 교육 콘텐츠 개발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영한 목사 : 다음세대 관해 우리가 최선을 다해 지원을 하고 있고, ‘교회 사역 트랜드’라는 코로나 이후 시대를 대비해서 책을 썼는데, 여러 곳에서 최우수 도서로 선정되고,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다음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굉장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인구절벽도 젊은 세대들이 아이를 갖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열심히 국회에 가서 이야기 하고 있고, 조금 더 좋은 법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산하제한 할 때에 유일하게 그 정책에 반대를 했던 것이 우리 교단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어떻게 지원하고 어떻게 젊은이들이 아이를 갖고 편안하게 직장생활하면서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키우기 힘들 때 교회가 키워주는 방안을 연구하고 검토하고 있습니다. ■ 차별금지법에 제정 반대에 대한 입장을 계속해서 유지해 가실 예정이신가요? 권오헌 목사 : 차별금지법 제정 저지에 대해 우리 교단 대사회관계위원회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라는 말이 듣기 좋은 말이지만 법 조항에 문제가 있는 것을 계속 지적하고 있고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고 국회의원들과 만나 면담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 중 이런 독소조항이 있는 것을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십니다. 교회는 이 사회가 좋아지는 것을 바라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치 교회가 교회의 유익을 위해 고집부리는 것처럼 비치지 않도록 섬세하게 대응해나갈 것입니다. 이영한 목사 : 부연하자면, 이미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들이 있습니다. 그런 법은 우리가 찬성을 하고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성경적으로 위배 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역차별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작은교회와 미래자립교회에 대한 대응 방법과 작은 교회 목회자 은퇴 후 교회 소멸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권오헌 목사 : 저희 교회 같은 경우에는 ‘분립개척을 하자’라고 늘 이야기 합니다. 저희는 부목사님이 개척을 할 경우 교회를 떼 주고 빨리 자립할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정 지원과 전문사역자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저희 교단에도 큰 교회들이 작은 교회를 돌보고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것은 노회가 목사를 선발하고 안수하는 과정에 노회를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이영한 목사 : 고신 총회는 미자립교회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미래자립교회라는 용어로 고치고 미래에 자립할 수 있도록 총회가 적극 지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전우수 장로 : 농어촌교회와 미래자립교회가 큰 문제가 두가지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농어촌교회는 원리 어려웠고 도시의 미래자립교회는 코로나로 많이 어려워 졌습니다. 은퇴를 몇 년 앞두고 계신 목사님들의 근본적인 고민이 은퇴 후 후임 목사를 모시기 어렵고 연속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고민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총회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통합하거나 순회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노회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총회가 돌보는 것도 좋은 방안일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문제는 교회 재산권 문제가 가장 심각합니다. 유지재단에 가입은 하지 않았고 교회 재산은 있지만 교인들이 없거나 할 때 사유재산화 하려는 몇몇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총회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세워줄 필요가 있습니다. 노회와 시찰회도 팔고 가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합니다.
교회탐방
-
교회이야기[세움교회]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교회”
인구절벽과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다음세대를 양육하며 차근차근 성장해가는 작지만 강하고 건강한 교회, 개척교회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세움교회와 담임 목사를 맡고 있는 이종화 목사를 소개합니다. Q. 먼저 교회 개척 배경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샬롬!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부산 반여1동에 위치한 세움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종화 목사입니다. 세움교회는 2015년 3월 1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개척한 교회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저는 20대 때부터 15년 동안 청소년 사역을 했습니다. 특히 15년 동안 오륜정보산업학교(부산소년원)의 신앙수련회를 기획하며 섬겨 왔습니다. 오륜정보산업학교는 범죄를 지어서 소년재판을 받은 청소년들이 머물면서 공부를 하거나 기술을 배우는 곳입니다. 오륜정보산업학교에서는 매 주일 오후 2시에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의 종교행사가 있습니다. 그 시간에 김기동 목사님이 대표로 계시는 겨자씨선교회가 기독교 종교행사를 맡아서 예배를 섬기고, 각 반에 교사로 들어가서 간식도 나눠주고,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주일예배 때마다 교사와 찬양팀으로 섬길 수 있는 일꾼이 항상 부족했습니다. 그들의 문화를 맞출 수 있는 청년들이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찬양하고, 상담도 해주고, 말씀 안에서 교제를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각 교회는 주일에 여러 예배로 인해 주일 오후 2시에는 교회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교회 안에 갇혀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성도들의 좋은 열정이 아깝다’라고 생각을 했고, ‘교회가 교회 운영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가 운영과 생존만을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교회 밖에 나가서 위로와 회복이 필요한 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하나님을 예배하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부터 시작한 세움교회를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세움교회는 교회 운영을 잘 하는 교회가 아니라 절망적인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교회입니다. Q. 세움교회를 개척하신 목사님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전 세대를 세워가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이기도 하지만 청소년들을 많이 사랑하는 목사입니다. 사실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고,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청소년시기를 지루하고 의미없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하게 교회를 가게 되었고, 한 선생님의 끈질긴 기도와 헌신을 통해 고등학교 3학년 때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의 인생에 있어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공부를 해 본적이 없었고, 취업을 하기 위해 진학반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나의 인생이 세상에 내던져진 인생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다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이 믿음은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무기력하게 보낸 청소년 시기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목사가 되고 싶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가게 되었고, 교회 다닌 지 2년 만에 모교회인 성삼교회에서 청소년사역을 시작했고, 15년 동안 청소년들을 위해 사역하며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청소년이 좋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성적과 외모의 상태와 상관없이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습니다. 그들과 나누는 말씀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함께 교제하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면서 가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자녀세대를 위해 부모세대를 바르게 세대를 위한 사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전 세대를 소중히 여기는 교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Q. 현재 세움교회가 진행 중인 교회 사업 또는 방향은 어떻게 되나요? A. 세움교회는 주일 오후 2:00가 되면 두 가지 사역으로 인해 분주합니다. 하나는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학교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사역입니다. 개척한지 6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진 교회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음세대를 많이 태어나게 하셔서 교회학교를 채우셨습니다. 저희 교회는 장년 성도 30명이고, 청년부가 30명이고, 다산의 은혜로 인해 영유아부가 30명입니다. 얼마 전에도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났고, 지금도 한 아이가 배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년들과 청년들이 힘을 모아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 세움학교라는 기독교대안학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1년 3월부터 시작되는 세움학교를 위해 세움교회는 기도와 함께 장학위원회를 세워서 학교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움교회는 매 주일마다 다음세대 사역과 함께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3가지 사역에 온 성도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위기청소년들을 위해 매 주일마다 소년원에 들어가서 찬양으로 교사로 섬기는 위기청소년부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지역의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와 노숙자와 미혼모들을 매 주일마다 섬기는 오른손사역부가 있습니다. 오른손사역부의 의미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마태복음 6장 3절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교회학교와 위기청소년사역과 오른손사역을 위해 기도해주는 중보기도부 사역이 있습니다. 주일 오후 2시 가 되면 중보기도사역부는 교회 사역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는 세움의 불쏘시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저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역량 이상으로 섬기고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매 주일마다 하는 사역이라서 간증들이 많아서 이렇게 간단하게 소개할 수 밖에 없음이 아쉽습니다. Q. 세움 교회가 품은 꿈과 비전은 무엇입니까? A. “세움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워 열방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는 공동체가 된다.” 세움교회의 사명선언문입니다. 세움교회의 꿈은 세움교회 교인이 하나님의 제자로 세워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제자들이 사명자가 되어 열방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세움교회는 큰 예배당,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한 사람을 말씀과 기도의 예배자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음세대를 기대하며 축복하는 좋은 어른 그리스도인으로 선교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시울이 젖는 영적책임감을 가진 사람으로 세워가는 교회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Q.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세움 교회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떤 교회입니까? 세움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교회입니다. Q.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동안 세움교회는 어떻게 또 한걸음 나아갔습니까? A. 외적으로는 교회 예배당을 새롭게 정비하기도하고 내적으로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 유투브 채널을 만들어서 좋은 메신저들에게 부탁하여 고난주간을 위한 ‘십자가 메시지’, 부활주일 주간에 ‘부활 메시지’, 다음세대를 위한 ‘학부모교육 메시지’, 교회학교 교사들을 위한 ‘교육 메세지’를 촬영하여 업로드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시청하면서 은혜를 누릴 수 있었고, 신앙의 진보에 힘이 되었습니다. Q. 코로나19 이후 세움교회의 방향과 목회 변화? A. 이 부분에 있어서 고민이 많이 됩니다. 온라인으로 예배, 교육, 기도모임을 대체할 수 있을까? 한 두 번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속성에 있어서는 고민이 많이 됩니다. 그래서 역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교회 출입에 있어서 위생과 거리두기에 철저하게 신경을 쓰고, 모임을 조금 더 역동적으로 가져야 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앞으로도 예상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들이 계속 일어날 것 같습니다. 예상하지 못할 일이니 그냥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민이 많은 만큼 답하기 쉽지 않네요. Q. 세움교회가 알리고 싶으신 이야기들이 있나요? A.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세움교회는 기독교대안학교인 ‘세움학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구절벽시대에 교회가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인 것 같습니다. 교회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불특정 다수를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된 소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제대로 세우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움학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18절 말씀처럼 한 아이라도 확신할 수 있는 성경으로 ‘구원의 지혜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모든 선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학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항상 사람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모세시대에는 모세를 통해, 사무엘시대는 사무엘을 통해, 엘리야 시대에는 엘리야를 통해 모든 시대에서 하나님은 그 시대에 세워진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세움교회는 그 사람들을 세우는 일에 열망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기도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세움학교가 잘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ㅁ 세움교회 홈페이지 (https://www.seumchurch.co.kr) ㅁ 세움학교 홈페이지 (https://www.seumschool.org) 설재규 기자
-
창원교회, 교회 설립 125주년 기념예배 & 생명선교사 파송식
박대원 목사·서지형 사모, ‘러브더월드(Love the World)’ 미혼모 사역코로나19 극복 위해 이웃사랑성금 500만 원, 창원시에 전달교회 안·밖 청소년 10명에게 장학금 전달 1895년 6월 5일 유사림·박치우, 두 분에 의해 개척된 창원교회(안동철 목사, 고신)가 지난 6월 7일(주일) 교회설립 125주년을 맞아 기념예배를 드렸다. 창원교회는 설립 125년을 맞아 온 가족 출석주일로 지키면서 의미 있는 사역을 했다. 원래 계획했던 축하음악회는 취소하고, 미혼모 사역에 힘쓰는 ‘생명선교사’ 파송과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이웃들을 섬기기 위한 500만원을 창원시에 전달했다. 1부 예배는 안동철 목사(창원교회)의 인도로 시작해 황기성 장로(창원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코로나19로 인해 미뤄왔던 유아세례식을 진행했다. 이어 안동철 목사가 ‘하나님 마음에 맞는 교회’(행 12:21-23)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안동철 목사는 “우리 교회가 세워진 1895년은 민족에게 있어 특별한 해였습니다.”라며 “나라는 힘이 없었고, 백성들은 희망이 없었습니다. 이때 유사림, 박치우 두 분이 민족의 소망은 교회에 있음을 믿고 우리 교회를 세운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라고 교회가 세워질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안 목사는 “사울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폐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다윗을 세우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125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이 교회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모르는 것입니다.”라며 담임 목사로서의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함께 전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 칭하는 성도들 되기를 바립니다.”라며 “하나님을 앞서 내세우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설교 후 전영환 원로목사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쳤다. 예배 후 창원교회가 125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처음으로 파송하는 ‘생명선교사’ 파송식이 진해됐다. 안동철 목사가 파송 받는 박대원 목사와 서지형 사모를 소개하고 박대원 목사가 “‘미혼모’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여자라는 말을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의 생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생명을 지킨 사람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라며 미혼모 사역의 중요성과 함께 그 사역의 일꾼으로 파송함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같은 ‘교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명선교사’라는 생소한 명칭으로 파송하는 것에 대해 안동철 목사는 박대원 목사 부부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며 “미혼모 사역을 타문화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역과 같이 인정하고 기도해주는 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박대원 목사의 말을 듣고, “이미 설립 125주년에 선교사를 파송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 부부의 말을 하나님이 주신 음성으로 듣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파송식 후 이날 예배에 함께 참석한 허성무 창원시장을 통해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이웃을 섬기기 위한 500만원을 전달하고 교회 내 학생 뿐만아니라 창원교회 밖의 선교사와 목회자 자녀 10명을 선정해 총 53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하며 ‘사회적 봉사’를 감당하는 교회에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교회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편, 박대원 목사와 서지형 사모가 창원교회를 통해 생명선교사라는 명칭으로 파송되기까지 안동철 목사 가정과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안 목사가 미국 유학 중 만난 부부는 안 목사의 도움으로 첫째 남자 아이를 입양하게 되었고, 이후 박 목사 가정은 미혼모 사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러브더월드(Love the World)라는 단체를 통해 많은 미혼모를 섬기고 있다. 설재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