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7-20(월)

고신 전장연, 제39회 전국장로부부 하기수련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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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선교 현장에 맺힌 기도와 헌신의 열매

고신교회(담임 김경헌 목사)와 제일신마산교회(담임 김계환 목사·원로 박성실 목사), 구미온누리교회(담임 김찬일 목사) 선교팀은 지난 6월 16일부터 21일까지 네팔 코이노니아교단(망갈만 마하르쟌 목사)과 함께 5박 6일간 선교탐방을 진행했다. 선교팀은 이번 일정을 통해 한국교회 성도들의 후원으로 건축된 교회와 우물, 학교 증축 현장을 방문하고 현지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17일에는 제일신마산교회 박년자 은퇴권사와 김명환·김영혜 집사 부부의 목적헌금으로 건축된 코이노니아 파티가운교회에서 헌당예배를 드렸다. 예배는 박성실 원로목사의 인도와 말씀으로 진행됐다. 이어 서정숙 사모의 후원으로 설치된 우물 기증식이 열렸다. 같은 날 바네파교회에서도 권지도·박지영 성도의 결혼기념 감사헌금으로 마련된 우물 기증식이 진행됐다. 우물은 현지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데 사용된다. 18일에는 룸비니에 위치한 나브지반학교를 방문해 증축 기념예배를 드렸다. 학교 증축은 구미온누리교회 부흥회 헌금으로 후원됐다. 김찬일 목사의 인도로 드린 예배에서 구미온누리교회 성도들은 특송과 워십을 선보였으며, 학생들에게 준비한 선물을 전달했다. 선교팀은 19일 네팔의 역사와 종교, 문화를 살펴보고 현지 선교 환경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20일에는 카트만두 파탄에 위치한 코이노니아교단의 모교회인 파탄교회에서 현지 성도들과 연합예배를 드렸다. 네팔이 토요일을 공식 휴일로 운영함에 따라 현지 교회들도 주로 토요일에 정기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날 설교한 김경헌 목사는 코이노니아교단의 망갈만 목사와 한국인 선교사 정창영 목사가 네팔 선교를 위해 헌신해 온 과정을 소개했다. 이어 복음이 한 사람의 기도와 헌신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선교팀은 21일 귀국하며 일정을 마쳤다. 이번 선교탐방에서는 은퇴와 결혼을 기념해 드린 감사헌금과 교회 부흥회 헌금 등이 네팔 현지의 교회 건축과 우물 설치, 학교 증축 사업에 사용된 현장을 확인했다. <자료제공 = 고신교회>

영남 17개 노회 어린이 한자리에…제42회 영남어린이대회 개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영남지역 교회학교 아동부협의회(회장 김광현 장로)는 지난 7월 4일(토) 오전 9시 창원 양곡교회에서 ‘제42회 영남어린이대회’를 개최했다. 경남노회 교회학교 아동부연합회가 주관한 이번 대회는 ‘용서, 사랑의 시작입니다’를 주제로, ‘온 땅의 어린이를 그리스도에게로!’를 표어로 열렸다. 영남지역 17개 노회에서 선발된 어린이들과 교사, 학부모 등 2,500여 명이 참석했다. 개회예배는 수석부회장 김흥준 장로의 인도로 직전회장 김태년 장로의 기도, 감사 박미자 권사의 성경봉독, 양곡교회 다윗찬양대의 특송에 이어 경남노회 교육자원부장 박태부 목사(새장승포교회)가 ‘사람에게 제일 좋은 2가지’(잠 4:7)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예배는 양곡교회 장형록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박태부 목사는 잠언 4장 7절과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좋은 두 가지는 지혜와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지혜를 발휘해 가난한 가정의 어린아이를 도운 ‘만복’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지혜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잘못된 사람을 깨우치는 데 사용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것처럼 어린이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 사함과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고 설명했다. 박 목사는 어린이들이 친구와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지혜와 사랑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당부했다. 이어진 개회식은 대회기와 각 노회기 입장으로 시작됐다. 대회장 김광현 장로가 개회를 선언했으며, 김흥준 장로의 주제 제창과 준비위원장 안선호 집사의 우승기 반환이 진행됐다. 김광현 장로는 대회사를 통해 어린이들이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를 마음껏 발휘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 결과와 경쟁에만 매이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축제의 장이 되기를 당부했다. 이어 안선호 집사의 환영사와 교회학교 아동부 전국연합회장 박세웅 장로의 격려사, 경남노회장 신종주 장로의 축사가 있었으며, 경남노회 어린이 대표 박은우·이영민 어린이가 대회선서를 했다. 이날 드려진 헌금은 해외 우물파기 선교사업을 위해 사용된다. 개회식 후에는 성경고사와 성경암송, 영어성경암송, 글짓기, 그리기, 독창, 중창, 동화구연, 찬양율동 등 종목별 대회가 진행됐다. 오후에는 전자바이올린 연주와 레크리에이션, 폐회예배 및 시상식이 이어졌으며, 제43회 대회는 2027년 경서노회 주관으로 열릴 예정이다.

통합 전국장로회연합회, 제52회 전국장로수련회 개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이영묵 장로)는 지난 7월 1일부터 3일까지 더케이호텔경주에서 ‘주여! 새롭게 하소서’(시 51:10)를 주제로 제52회 전국장로수련회를 개최했다. 이번 수련회에는 전국에서 장로 3천500여 명이 참석했다. 첫날 오후 2시에 드린 개회예배는 대회장 이영묵 장로의 인도로 직전회장 길근섭 장로가 기도하고, 서기 박성기 장로가 성경을 봉독했으며, 한국장로성가단의 찬양에 이어 예장통합 부총회장 권위영 목사(서울숲교회)가 ‘주여, 새롭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권위영 목사는 시편 51편에 나타난 다윗의 회개를 설명하며 한국교회의 진정한 위기는 외부의 압박보다 내면의 정직한 영이 흔들리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권 목사는 “이번 수련회는 리모델링하거나 수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창조하는 시간”이라며 “다윗이 정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기도한 것처럼, 사람이 할 수 없는 내면의 변화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로들의 마음속에 세상의 정치와 하나님의 공의, 개인의 명예와 주님의 영광이 섞이면 교회가 시끄러워진다”며 “정한 마음이 창조될 때 사람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권면했다. 또 성령 충만함 없이는 바른 신앙생활과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며, 수련회 기간 말씀과 기도, 찬양과 간증을 통해 참석자들이 다시 거룩한 불꽃으로 일어서기를 당부했다. 이날 예배는 회계 김용기 장로의 봉헌과 안양노회의 봉헌송에 이어 권위영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어진 축하의 시간에는 이영묵 장로가 대회사를 전하고, 예장통합 증경총회장 김영걸 목사(포항동부교회)의 격려사와 교단 및 평신도 연합기관 대표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전국장로회연합회 창립 54주년을 기념하고 수련회 주제를 함께 외치며 영적 갱신과 사명 회복을 다짐했다. 첫날에는 한국장로성가단의 축하연주회에 이어 김운성 목사(영락교회)가 ‘은혜의 통로가 있습니까’를 주제로 특강했으며, 김승학 목사(안동교회)가 수요예배에서 ‘복음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어 장승권 목사(청주서남교회)가 ‘어디로 가고 계시나요?’를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수련회 기간에는 모두 여섯 차례의 특강과 두 차례의 은혜의 시간, 건강강좌와 신앙간증, 찬양콘서트 등이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장로의 영적 책임을 되새기고, 섬기는 교회와 삶의 현장에서 맡은 사명을 감당할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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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창원 이어 거제서 AI 활용 목회전략 세미나 개최

월드비전 경남울산사업본부 거제지회(지회장 이종삼 목사)는 거제시성시화운동본부, 거제횃불회와 함께 지난 7월 16일(목) 오전 10시, 거제 갈릴리숲교회 디아코니아센터에서 ‘거제지역 목회자들을 위한 2026 목회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AI 활용과 목회적 적용’을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는 지난 6월 25일 진해침례교회에서 열린 창원지역 목회전략 세미나에 이어 마련된 것으로, 거제와 통영지역 목회자 및 관심자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특성을 이해하고 목회 현장에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진행됐다. 세미나는 등록 및 오프닝에 이어 월드비전 거제지회장 이종삼 목사(갈릴리숲교회)의 인사말과 시작기도로 시작됐다. 이후 크로스로드 AI교육연구소 소장 우동진 목사가 ‘AI 활용과 목회적 적용’을 주제로 강의했다. 우 목사는 생성형 AI의 기본 개념과 활용 원리를 설명하고, 목회 현장에서 AI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질문 방식과 자료 입력 방법을 소개했다. AI가 사용자의 질문과 제공된 자료를 바탕으로 결과를 생성하는 도구인 만큼, 목회자의 역할과 신학적 배경, 교회의 상황, 사역 대상과 목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AI 활용이 목회자의 영적 판단이나 설교 사역을 대신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자료 조사와 정리, 교육자료 제작, 반복적인 행정업무를 돕는 보조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AI가 생성한 설교 초안이나 교육자료 역시 목회자가 성경과 신학에 비춰 검토하고, 교회의 신앙적 방향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내용도 함께 다뤄졌다. 강의에서는 목회 현장에 필요한 AI 활용 요소로 프롬프트, 컨텍스트, 하네스 개념이 소개됐다. 프롬프트는 AI에 입력하는 구체적인 질문과 지시를 뜻하며, 컨텍스트는 교회의 역사와 목회철학, 교인 구성, 지역환경 등 AI가 참고할 배경자료를 의미한다. 하네스는 신학적 오류와 부적절한 내용, 개인정보 유출 등을 막기 위한 점검 장치로 설명됐다. 지역사회 사역에 AI를 적용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강의자료에는 지역의 인구 구조와 가정환경, 돌봄 수요 등을 분석해 교회가 지역기관 및 월드비전과 협력할 수 있는 사역을 구상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통해 교회가 지역의 필요를 파악하고, 아동 돌봄과 학습 지원, 정서적 돌봄, 봉사와 후원 사역 등을 보다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소개됐다. 교회학교와 목회행정에 AI를 적용하는 사례도 다뤄졌다. 구글 워크스페이스와 이미지 생성 도구 등을 활용해 여름성경학교 공과와 활동지, 미션카드, 시각자료를 제작하는 방법이 소개됐으며, 구글 설문지와 스프레드시트를 활용한 출석 관리, 안전 확인, 학부모 피드백 등 반복적인 행정업무를 효율화하는 방안도 설명됐다. 이번 세미나는 AI 기술을 단순한 정보 검색 도구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목회자가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지역 목회 환경을 고려해 사역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실무 중심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디지털 환경 변화 속에서 목회 현장의 필요를 점검하고, AI를 목회와 지역 섬김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살피는 시간을 가졌다. 세미나는 박태부 목사(새장승포교회·거제시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의 마침기도 후 점심식사와 교제의 시간으로 마무리됐다.

합동 전장연, 제55회기 하기부부수련회 개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이해중 장로, 이하 전장연)는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강원도 홍천 소노캄 비발디파크에서 제55회기 하기부부수련회를 개최했다. ‘본질에 충실한 장로가 되자’를 주제로 열린 이번 수련회에는 전국에서 장로 부부 2,500여 명이 참석해 말씀과 기도로 영성을 다지고, 교회를 섬기는 장로의 사명과 책임을 되새겼다. 첫날 개회예배는 회장 이해중 장로의 인도로 남석필 장로의 기도, 박종영 장로의 성경봉독에 이어 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멘토 바나바’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으며, 부총회장 정영교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장봉생 목사는 바나바가 예루살렘교회의 영적 수준을 높이고 성도들을 위로하며 세워 준 인물이었음을 설명하고, 장로들도 교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누며 교회의 영성을 높이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권면했다. 특히 장로의 직분은 명예나 관리의 자리가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울고 기도하며 교회를 세우는 섬김의 자리임을 강조했다. 회장 이해중 장로는 대회사를 통해 수련회를 위해 40일 릴레이 금식기도로 준비한 임역원과 증경회장, 준비위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 장로는 시대가 변할수록 하나님께서 맡기신 장로의 사명과 책임을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한다며, 참석자들이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영적 회복과 부흥의 은혜를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수련회 기간에는 새벽기도회와 특강, 은혜의 시간, 심령부흥회 등이 진행됐다.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와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심령부흥회에서 말씀을 전했으며, 박성규 총장(총신대학교), 이풍인 목사(개포동교회), 최성은 목사(새벽을여는교회), 고석찬 목사(대전중앙교회), 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등이 강사로 나서 장로의 영성과 교회 섬김, 다음 세대와 한국교회의 과제를 주제로 강의했다. 참석자들은 전장연과 국내외 선교, 미래자립교회 등을 위해 합심해 기도했다. 전장련은 총신대학교 기숙사 건축과 경북신도청교회 설립, 장로신문 활성화, 국내외 선교기관 등을 위해 총 5,800만 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마지막 날 폐회예배에서는 증경총회장 권순웅 목사(주다산교회)가 설교했으며, 전장련의 신앙적 입장과 총회 발전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전장연은 결의문을 통해 성경과 총회 헌법,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장로회 정치의 신경과 교의를 수호할 것을 다짐했다. 또한 헌법 개정 절차 준수를 촉구하고, 여성강도사 제도와 항존직 정년 연장을 위한 헌법 개정, 총회 임원선거 러닝메이트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총회의 주요 부서와 위원회를 목사와 장로 동수로 구성할 것을 촉구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장련은 이번 수련회를 통해 장로직의 본질을 회복하고 말씀과 기도, 섬김의 자리에서 교회를 세우는 장로가 될 것을 다짐하며 모든 일정을 마쳤다.

고신 전장연, 제39회 전국장로부부 하기수련회 개최

고신총회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윤창현 장로, 이하 전장연)는 지난 7월 9일부터 11일까지 더케이호텔 경주에서 ‘복음 전하는 장로입니다’를 주제로 제39회 전국장로부부 하기수련회를 개최했다. 전국의 장로 부부들이 참석한 이번 수련회는 말씀과 기도 가운데 영성을 회복하고, 교회와 가정,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로의 사명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마련됐다. 첫날 개회예배는 전장연 회장 윤창현 장로의 인도로 직전회장 이연호 장로의 기도, 열왕기상 17장 13~16절 성경봉독, 소프라노 박진영의 특송에 이어 고신총회 총회장 최성은 목사가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예배는 회계 윤영우 장로의 헌금기도와 고신장학회를 위한 헌금, 최성은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최성은 목사는 사르밧 과부가 마지막으로 남은 가루와 기름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찾아오셔서 회복시키신다고 전했다. 최 목사는 “하나님은 단순히 급한 불만 꺼주시거나 위기만 넘어가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며 “인생의 기근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 도우심으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려움은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를 두려움에서 벗어나 회복의 길로 이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할 때 개인과 가정, 교회와 이웃을 살리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권면했다. 최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순종함으로 우리가 살고, 우리 후손이 살고, 교회와 총회가 살아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진 개회식은 수석부회장 오동환 장로의 사회로 회장 윤창현 장로의 개회선언과 개회사, 고신총회 부총회장 장상환 장로의 격려사 등으로 진행됐다. 윤창현 장로는 “교회와 가정,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사명을 감당해 온 장로 부부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쉼과 회복을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성령의 은혜로 새 힘을 얻어 복음을 전하는 장로로 살아가자”고 말했다. 장상환 장로는 “이번 수련회를 통해 무거운 직분을 넉넉히 감당할 영적 지혜와 새 힘을 얻기를 바란다”며 “메말랐던 영성에 성령의 단비가 내리고 사명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기를 소망한다”고 격려했다. 이어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장 이상일 목사, 고신대학교 이정기 총장, 고려신학대학원 기동연 원장, 고신대학교복음병원 최종순 원장, 전국원로(은퇴)장로회연합회 회장 김종기 장로, 한국장로회총연합회 대표회장 오광섭 장로를 비롯한 교단과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축사를 전했다. 타 교단 장로회 관계자들도 수련회장을 방문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첫날 오후에는 ‘느헤미야미니스트리와 함께하는 열린음악회’가 열려 성악과 색소폰 연주, CCM과 중창 등 다양한 무대가 마련됐다. 이어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가 ‘목숨을 걸고라도 해야 할 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으며, 저녁에는 전국 12개 노회가 참가한 찬양경연대회가 진행됐다. 수련회 둘째 날에는 손현보 목사의 말씀집회와 함께 이호진 목사, 임학 교수, 김만배 박사, 변영인 교수, 최광휴 변호사가 다음 세대 신앙교육과 건강, 가족관계, 노후 재산관리 등을 주제로 특강했다. 오후에는 전도 시상과 간증, 전도 방안 발표 등으로 구성된 전도페스티벌이 열렸으며, 저녁에는 김해동부교회 권준오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마지막 날에는 권준오 목사의 말씀집회와 김해 방주교회 전양문 목사의 설교로 폐회예배를 드렸다. 폐회식에서는 찬양경연대회와 동원상 시상, 장로 은퇴자 근속표창이 진행됐다. 첫날 개회예배에서 드린 헌금 750만 원은 고신장학회에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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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숙 목사] 분기탱천(憤氣撐天) 의미를 되새기며

사람이나 짐승이나 공통점이 있다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세계나 동물 세계에 불합리한 일들로 인하여 분한 감정이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와 극한의 대립 상태가 되어 크고 작은 전쟁이 되는 것이다. 분함의 예를 보면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 분노가, 판결의 불공평을 볼 때, 권력 남용으로 인한 불이익이 주어졌을 때, 약자로 눌림을 당할 때, 개인 사적인 이익을 위해 탐욕 품는 것을 볼 때 등등 분노가 일어나게 된다. 그 분함의 정도가 극에 도달한 상태를 사자성어로 “분기탱천(憤氣撐天)”이라고 하는데 탱(撐)의 의미는 받쳐 올리다, 버티다, 찌르다의 의미를 가진다. 고로 “분한 기운이 하늘을 찌르듯 최고조의 상태에 이름”을 뜻하는 말이다. 중국 삼국 시대(위, 촉한, 동오)에 유비가 당시 형주(지금의 후베이성)를 발판으로 정치적 야망을 키우려고 했지만 그곳 관리들은 유비를 끝까지 지지하지 못해 형주를 잃게 되었고 정치적 야망도 사라지게 되었다. 유비는 형주가 자기를 배신했다고 생각하여 분기탱천하게 되었고 복수의 날을 기다렸다. 진(秦)나라의 영정도 신하들에 의하여 배신당하였을 때 그 마음이 크게 분노하여 천지를 뒤흔들 정도였다고 한다. 요즘 우리 대한민국이 북중미 월드컵을 보면서 축구 국가대표팀의 32강 탈락이라는 결과 때문에 각계각층 사람들이 분기탱천하고 있다. 경로당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도 분개할 정도면 그 여파가 어느 정도 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원인이야 무엇이든지 간에 현실의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분노는 두 가지로 나눈다. 개인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사적인 분노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분노, 일명 의로운 분노도 있다. 출 32:19에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 모세는 분노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의분(義憤)이었다. 민 25:11에 이스라엘 거룩한 공동체 속에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들어와 음행의 모습을 보였을 때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와 분노를 대신하여 그 음행한 남자 시므리와 미디안 여인 고스비를 죽였다. 거룩한 분노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질투와 분노를 가지고 음행 당사자를 죽인 일에 대하여 칭찬하며 평화의 언약으로 그의 후손들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을 허락하였다. 느 5:7, 13장에 느혜미야의 거룩한 분노가 나온다. 당시 유다의 귀족들 민장들이 가난한 자들의 것을 착취하고 있었으며, 백성들은 안식일을 더럽히고 이방 문화가 성전에 들어온 것에 대하여 의분을 발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 정화를 위해 의분을 발하셨고 외식하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향하여서도 의분을 발하셨다. 의분이 되려면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며 하나님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가 보면 우리의 삶 속에 분노의 대부분은 나의 교만과 나의 자랑과 과시와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면에서 교훈하고 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20), 분노의 시대에 마음을 잘 다스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분노에는 앞장을 서고, 자신의 유익을 위한 분노는 다스려 가는 지혜자가 되기를 바란다.

[정우승 목사] 어리석은 자가 되라

지혜의 사람인 바울은 (고전3:18)에서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는 모호한 말씀을 하였다. 과연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바울의 행간이 궁금해진다. 바울은 생생한 어구를 사용하면서 지혜로운 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그것은 겸비하게 배우는 자가 되라는 권면을 신선하게 표현한 것이다. 더욱이 벌써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에게는 아무도 무엇을 가르칠 수 없다. 플라톤은 ‘자기는 지혜를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인간이다’ 라는 철학적인 말을 남겼다. 쿠인틸리안 역시 ‘자기들의 학식에 대해 그처럼 자신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틀림없이 훌륭한 학자들이 되었을 터인데’ 라고 한 제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서양 속담에 ‘무지하면서도 자기의 무지를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피하라. 무지하지만 자기의 무지를 아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가르쳐주라’ 는 말도 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은 자기가 어리석은 자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자기의 무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옛 선비들에게도 이러한 어리석음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었다. 영등포 가리봉동을 지나 시흥에 이르는 중간지점, 왼편에 그리 높지 않는 야산이 있다. 그 산 이름이 독산(禿山, 민둥산)이며, 이 산 이름이 연유가 되어 그 인근 마을을 독산동이라고 한다. 이 산은 예부터 벌거벗었기로 그 같은 슬픈 이름을 얻은 것 같다. 그런데 조선시대 초기에 이곳에 살았던 유명한 선비 강의(姜艤)의 호가 독산(禿山)이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강의를 찾아와 자네가 호를 독산이라고 한 것은 살고 있는 지명을 따른 것인가 아니면 딴 뜻이라도 있는 것인가 하고 물었다. 이에 그는 자기 호가 왜 독산이라고 지었는지 늘어놓았다. ‘내 집 지은 곳에 산 하나가 있는데 활딱 벗겨져서 나무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독산이라 한다. 어찌 이 산은 본래부터 나무가 없어 그러하리오. 한성 외곽에 자리잡은 까닭으로 도끼로 찍히고 소나 염소 따위에게 먹히는 것이 나날이 심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산 밑에서 성장하면서 개연히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탄식하면서 그 독산의 처지와 나의 처지를 비교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의 본성도 또한 이 산의 나무와 같은 것인데 진실로 그 마음을 바로 다스리지 못하면 뭇 사욕이 엄습해 오는 것과 바로 이 산의 나무를 도끼와 소나 염소가 해치는 그것과 같다. 감히 이것으로 표준하여 스스로 나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마음에 나무가 없다는 독산의 말은 어쩌면 현대인에게 공통된 상황의 날카로운 지적으로 보인다. 사욕의 도끼날에 남벌되어 메마르고 벌거숭이가 되어버린 민둥산, 너도 독산이요, 나도 독산이다. 우리 옛 선조들은 이 같은 마음의 벌거숭이, 마음의 어리석음을 자처하는 것으로 사리에 겸손하게 대하는 정신적 전통을 지니고들 살아왔던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이 같은 어리석음의 가치를 두는 인간을 찾아볼 수 있다. 삼성산이 시흥 쪽으로 뻗어오다가 부러질 듯 단절된 목에 형세가 뛰어나갈 것 같은 험한 바위가 바로 호암이다. 범이 달리는 형세의 바위라 그 기세를 누리기 위해서 호압사를 짓고, 다시 그 북쪽에 호랑이를 위업하는 사자암을 지은 것이다. 지금도 그 지점에 호압사며, 사자암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애써 어리석음에 가치를 두었던 흔적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율법에 능통하였던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참 진리를 발견한 이후에 이전에 자기가 알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혜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혀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의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바울처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립보서3:8-9),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젊은 시절 한 때 ‘성경박사가 아니라 성경밖에 모르는 바보’ 라는 좌우명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시절이 그립다. 세상의 수많은 때가 묻어있는 나 자신을 볼 때 심히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

[이정희 목사] 무속 신앙에서 유래된 용어들 2: 용어의 의미로 본 무교의 명칭

1. 서언(序言) 우리 말에는 종교적으로 영향받은 용어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다. 이는 오랜 역사 동안 뿌리내린 불교, 유교, 도교 등의 영향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인 단군신화와 여기에 등장하는 용어들도 실제로는 무속적인 내용이 많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기고를 했으며, 또한 이런 용어들은 우리의 기독교 언어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하다. 본 기고에서는 이를 발췌하여 비교 분석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구분하여 올바른 우리의 기독 언어생활을 도모하고자 한다. 2. 무속 신앙을 표현하는 여러 용어 1) 샤머니즘(shamanism): 이 말은 무속 신앙을 대변하는 전 세계적인 통용어로서 종교학자들이 무속 신앙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독립된 종교로 존중하려는 의도에서 주로 사용해 오는 말이다. 본래 이 말은 17세기에 시베리아 퉁구스계 민족이 주술사를 의미하는 샤만(Shaman)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유럽의 독일 지역으로 전해졌다가 영어권에서 shamanism으로 정착된 말로 유추하고 있다. 뜻은 퉁구스의 어원인 샤(scha)의 의미인“생각하다, 알다, 이해하다”로 보고 있으며, 또한 샤먼은 초자연적 힘을 가진 사람이나 신령(神靈)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사람으로서 질병 치료사, 마술사의 역할도 한다고 여기고 있다. 2) 한국에서의 용어 : 전통적 용어는 무속(巫俗), 무교(巫敎), 무(巫)라고 하는데, 무속(巫俗)은 불교학자 이능화가 이를 전통적인 관습으로 이해하여 처음 사용한 말이며, 지금은 국문학자들과 민속학자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다. 무교(巫敎)는 개신교 신학자 유동식 교수가 처음 사용한 말로 우리 기독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무(巫)는 인류학자 조흥윤이 사용한 말이며, 한국의 샤머니즘을 독특한 개성을 가진 전통으로 존중한다는 뜻이 있다. 또는 무술(巫術)은 신적인 존재를 불러들이는 무당(巫堂)을 중심으로 한 신앙 체계이며, 이들은‘이상 심리 상태’에서 신령이나 정령 등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 교류하고, 이 사이에 예언, 탁선, 복점, 치병, 제의 등을 행하여 샤머니즘 신앙의 중심이 되는 말이다. 3) 한국의 무속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 우리나라의 무속인들은 과거부터 자신들을 당골, 당골네, 당골 애미로 호칭되기를 좋아했다. 그 이유는 당골은 제정일치 사회였던 고조선 시대의 단군(檀君)과 고대 신라 왕의 명칭인 차차웅(次次雄)의 어원을 가진 역사적인 말로서, 무속인 스스로 자신들을 그 시대처럼 신의 대리인으로 선택받은 귀한 존재임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3. 맺는말과 제언 불교적 용어에 비해서 무속적인 말들은 과거부터 무속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때문에 일반 용어에서 구분이 힘들 정도의 용어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앞서 소개한 샤머니즘이나 무속 등의 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용어들은 그들의 종교적이거나 신앙적인 용어들로 치부하고 다소 비판적인 말로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문제 의식을 가지고 구분할 말도 아니다. 그래도 이런 용어들을 분석하고 소개하는 것은, 이런 말들의 실체와 이런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적시하고자 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무속적인 용어를 논하면서 우리 믿음의 정체성과 소중성을 밝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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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한국 교회와 정치적 언어의 오용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언어가 일상적인 대화와 판단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용어들이 언제부터,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는지를 묻지 않고,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한 채, 마치 영적 분별력의 기준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을 판단하고 선 긋는 데 활용되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다. 더구나 이런 언어들이 복음의 본질을 흐리게 하거나 신자의 정체성을 정치적 진영 논리로 가둬 버리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음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교회 안에서 “보수”는 종종 정통 신앙, 바른 신학, 성경 중심이라는 뜻으로 등치되며, 동시에 정치적 “우파”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반면 “진보”는 자유주의 신학이나 교회 해체적 사상과 동일시되며, 정치적 “좌파”와 혼합되어 경계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으며, 성경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의 정치 진영(열심당,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모든 정치적·종교적 진영 논리를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선포하셨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종종 당시 사회 구조의 근간을 흔들었고, 때로는 보수적 전통을 해체하며, 때로는 율법의 정신을 더욱 깊이 회복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는 복음으로 급진적이셨고,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질서 안에서 거룩한 보수주의자이기도 하셨다. 이처럼 복음은 좌우 이념의 잣대로 포섭될 수 없는 초월성과 급진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좌파”와 “우파”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국회 좌석 배치에서 기원한 분류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복지, 경제 정책, 국가 권력의 역할, 젠더 이슈, 외교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나뉜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상대적이며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에서 진보적이라 여겨지는 가치가 유럽에서는 보수에 속하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특정한 역사적 경험(예를 들면, 6·25 전쟁과 반공주의, 군사독재와 민주화 운동)을 통해 더욱 복합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이러한 정치적 용어를 성경과 신앙에 무비판적으로 이식하게 되면, “우리는 우파니까 하나님 편”이라는 착각, 혹은 “진보가 약자 편이니까 교회도 좌파여야 한다”는 이념적 오류에 빠지기 쉽다. 한국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오류가 나타난다. ‘보수 교회’는 종종 교리적 정통성과 정치적 반공주의를 동일시하고, ‘진보 교회’는 사회 참여나 인권 감수성을 복음 실천으로 등치시킨다. 그러나 복음은 이 두 영역 모두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보수주의가 가진 물질주의적 탐욕, 국가주의적 배타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은 성경의 정의와 자비의 명령에 어긋나며, 진보주의가 갖는 도덕적 상대주의, 인간 중심주의, 성 윤리 해체는 창조 질서와 성경적 인간관에 반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고 말씀하시며, 정치 권위에 대한 순종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동시에 선언하셨다. 사도 바울 역시 국가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하늘에 시민권을 둔 자’로서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삶을 강조한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진영 논리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모든 이념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시험하고 분별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교회는 성경에 비추어 좌파의 가치도, 우파의 가치도 모두 복음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수용해야 한다. 이는 ‘중립적’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교회는 언제나 예언자적이어야 하며, 권력과 체제에 대해 진리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좌우 이념을 넘어서는 복음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정치적 언어를 사용할 때 반드시 맥락과 정의를 분명히 하고, 성경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둘째, 교회가 정치 참여를 할 때는 정당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자비, 창조 질서의 회복이라는 목적에 따라 선택과 행동을 해야 한다. 셋째, 좌우를 가르는 진영 논리로 사람을 분별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을 보는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넷째, 신학교와 교회 교육 현장에서 ‘정치신학’과 ‘공공신학’에 대한 성경적 토대를 세워야 하며, 신자들이 비판적으로 세상 담론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적 분별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지금, 복음을 정치 이념의 도구로 사용하는 유혹 앞에 서 있다. 그러나 교회가 회복해야 할 정체성은 ‘우파 교회’도, ‘진보 교회’도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정의와 평화, 진리와 은혜로 세상을 비추되, 어느 정치 진영에도 복속되지 않는다. 그 길은 외롭고 손해 보는 길일 수 있으나, 바로 그 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가신 십자가의 길이며, 참된 자유와 소망이 있는 길이다. 김성수 목사(탄자니아 아프리카연합대학교 총장)

[김성수 총장] 진정한 화해와 포용의 삶

어릴 적 비 오는 날 우산 세 개가 함께 걸어가는 동요가 문득 떠오른다. 유명한 동요 「우산」(작사: 윤석중, 작곡: 이계석)이라는 노래이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란 우산, 깜장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갑니다” 가난한 시절의 어린이들이 좁은 학교길을 함께 걸어가며 서로 어깨를 맞대고 우정을 나누는 정겨운 모습을 담고 있는 노래이다. “찢어진 우산”이 함께 걸어가는 장면은 마음을 참 따뜻하게 만들어 주면서, 화해와 포용과 ‘하나 됨’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사도 바울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4–16)고 설파했다. 초대교회의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해’를 다루고 있다. 초대교회는 대부분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중심이었고, 그들은 율법, 할례, 정결 규례 등을 고수해 왔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이방인들도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에게 그들도 자기들처럼 할례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고, 이방인들은 그런 것 없이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했다. 이 긴장과 갈등은 마치 ‘중간에 막힌 담’처럼 교회 공동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고,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에는 이방인이 더 이상 들어올 수 없는 담이 존재했다. 그 담에는 “이 담을 넘는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라는 경고문까지 붙어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물리적·사회적·영적 장벽을 향해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시다. 그리스도께서 그 담을 허무셨다.” 이것은 단지 종교의 벽을 허문 사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민족과 민족 사이, 자아와 타자 사이의 적대와 단절을 깨뜨리는 복음의 선포였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자신의 조국 발칸 반도에서 벌어진 끔찍한 내전을 지켜본 뒤, 『배제와 포용』이라는 책을 통해 현대 세계가 타자를 대하는 두 가지 왜곡된 방식, 즉 연결의 부정과 분리의 부정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연결의 부정’은 “나는 너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태도다. 인간은 본래 서로 얽혀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이 연결을 불편해하고 두려워하며 끊어내려 한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크로아티아인과의 수백 년간의 역사적 연결을 부정하고, 민족 정체성의 순수함을 유지하려 하면서 결국 학살에까지 이른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오늘날 우리도 “이민자와 나는 상관없다”, “저런 문화는 나와 상관없다”, “저런 사람은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타인과의 연결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공동체성과 인간다움을 함께 잘라내는 행위이다. ‘분리의 부정’은 이와 반대로, “네가 나와 다르면 안 된다. 나처럼 되어야만 받아들여 줄 수 있다”는 태도이다. 교회 안에서도 “당신이 우리처럼 예배하고, 우리처럼 옷 입고, 우리처럼 말할 수 있어야 가족으로 받아주겠다”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작동할 때가 있다. 이것은 포용이 아니라 동일성을 강요하는 폭력이다. 예수님은 억지로 유대인을 이방인처럼 만들지 않으셨고, 이방인을 유대인처럼 만들지도 않으셨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로써, 두 존재가 그대로 존재하면서도 하나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교회는 바로 이 복음 위에 세워진 공동체이다. 다름이 위협이 되지 않고, 연결이 짐이 되지 않으며, ‘하나 됨’이 억압이 되지 않는 공동체,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정한 ‘포용’이다. 우리 모두 타인의 다름을 지우거나 연결을 끊는 방식이 아니라, 경계를 인정하면서도 열린 공간을 내어주는 포용의 삶을 영위해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김성수 목사(탄자니아 아프리카연합대학교 총장)

[이창교 목사]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자(빌2:12-18)

얼마 전 6월 6일 현충일이 있었습니다. 6·25전쟁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피를 흘리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 냈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도 이 땅에 와서 땀과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았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희생 위에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그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노인이 된 라이언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은 전우들의 묘비 앞에 섭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당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우리도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시면서까지 저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비록 온전하지는 못했지만,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이 헛되지 않도록,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책임이 있습니다. ###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게 하라 빌립보서 2장 13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따라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소원은 하나님의 소원이면서 동시에 나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입니다. 나의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자신의 소원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필요한 것을 구하고,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숙해질수록 기도의 내용은 달라집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찾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소원을 품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나의 소원이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어떤 조건을 만족시킨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미 구원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날마다 죄와 싸우며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고, 선한 일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으며, 죄 앞에 무릎 꿇지 않기 위해 영적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알고 계십니다. 때로는 이 사실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해지면 이 부담은 ‘거룩한 부담감’이 됩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거룩한 부담감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즐거움으로 다가오고, 행복함으로 다가올 수 있을 때 이것이 신앙의 성숙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부담감은 우리를 더욱 성숙한 믿음으로 이끌어 갑니다. ###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삶 저희 교회에 김필주 장로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장로님은 93세에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임종을 앞두고 제가 심방을 갔을 때,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저 잘 죽을 겁니다. 93년간 주님 덕분에 잘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잘 죽는 것만 남았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천국을 소망하는 모습이야말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 위해 애쓴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도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 보려고 애썼습니다. 부족하고 온전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하다가 왔습니다.” ###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마태복음 5장 16절은 말씀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 사람들은 성도의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요셉의 주인이었던 보디발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요셉은 종의 신분이었지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성실하게 섬겼고, 모든 일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삼았습니다. 성도는 말보다 삶으로 복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삶으로 본을 보이지 못한다면 자녀는 부모의 믿음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믿은 사람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가 먼저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먼저 믿은 우리가, 또 신앙의 영적 지도자들이 먼저 변화되고 먼저 선한 행실을 보여 주면 교인들도 믿고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많은 말이 아닙니다. 잔소리와 강요로 사람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먼저 바뀌고,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섬길 때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 받는 기쁨에서 나누는 기쁨으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다고 해도 기뻐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의 기쁨은 무엇인가를 얻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쁨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얻어서 기쁜 게 아니에요. 내가 줄 수 있어서 기쁜 겁니다.” 우리의 기쁨의 조건도 성숙해져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뻐하는 데서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더 많이 섬길 수 있어서 기쁘고, 이웃을 위해 더 많이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해야 합니다. 교회는 완전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허물이 있고, 때로는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맡기신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형편이 부족하다고 미루지 말고,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순종하고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보다 중심을 보십니다. ###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자녀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녀가 건강하게 살아가고, 믿음 안에서 바르게 서며,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부모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은혜를 기억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베풀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고, 나의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온전히 이루어 드림으로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자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위 설교문은 경남기총 6월 미스바성회에서 전 대표회장 이창교 목사(상남교회)가 전한 설교를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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