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2-1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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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탁구미션연합회, 신년감사예배 드려…

경남탁구미션연합회(회장 황의승 장로, 구. 경남탁구선교회)가 지난 2월 8일(토) 오후 5시, 창원시 성산구 창원성결교회(우재성 목사)에서 신년감사예배와 하례회를 가졌다. 1부 신년감사예배는 경남탁구미션연합회 수석부회장 배병호 장로의 인도로 시작해 직전회장 하성암 장로가 대표로 기도하고 부회장 김숭 피택장로가 성경봉독(삼상20:17)한 후 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박석환 목사(소금과빛교회)가 ‘사랑하면 다 됩니다.’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박석환 목사는 “사랑의 결핍이 문제의 원인이 된다”라며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축복이 된다”고 전했다. 설교 후 경남탁구미션연합회 지도목사 김영암 목사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쳤다. 2부 하례회는 경남탁구미션연합회 사무국장 이정애 권사의 사회로 회장 황의승 장로가 인사말을 전하고 창원성결교회 담임 우재성 목사가 환영사를 전했다. 이어,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이사장 이종승 목사가 축사를 전하고 영상으로 축전을 보내온 경상남도 박완수 도지사가 인사와 함께 축하의 말을 전했다. 또 최형두 국회의원이 참석해 축사로 경남탁구미션연합회의 신년감사예배를 축하하고 인사를 전했다. 또 경남탁구미션연합회와 협력하는 선교사인 YTTM 탁구선교회 대표 양영자 선교사가 격려사를 전한 후 경남탁구미션연합회 감사 윤병택 장로가 경남탁구미션연합회의 사역들을 소개하고 경남탁구미션연합회와 굿네이버스가 MOU체결을 통한 협력을 약속했다. 이어, 사무차장 김성권 장로가 광고를 전한 후 모든 순서를 마무리 했다. 경남탁구미션연합회는 오는 10월 YTTM 탁구선교회와 함께 전국오픈대회로 제5회 탁구선교 한마당 축제를 열 예정이다.

경남장로합창단, 단장 이·취임식 가져…

경남장로합창단(단장 박명도 장로)이 지난 2월 10일(월) 오후 7시, 창원시 진해구 재건자은교회(강형열 목사)에서 단장 이·취임식을 가졌다. 이·취임식에 앞서 드린 1부 감사예배는 경남장로합창단 부단장 배재권 장로의 인도로 시작해 전 단장 박영효 장로가 대표로 기도하고 서기 이강욱 장로가 성경봉독(사43:1-7)한 후 경남장로합창단 부인회 합창단이 경남장로합창단 못지 않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이어, 재건자은교회 담임 강형열 목사가 ‘지명하여 부른자에게 주시는 3가지 축복’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강형열 목사는 “우리는 내 마음대로 살아선 안되는 사람들”이라며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순종하는 삶을 살 때 넘치는 기쁨을 맛보여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라고 전하고 지명하여 부른자에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3가지 축복에 대해 설명했다. 설교 후 경남장로합창단 총무 이재규 장로가 광고를 전하고 강형열 목사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쳤다. 예배 후 이어진 2부 단장 이·취임식은 부단장 김종욱 장로의 사회로 경남장로합창단 단 깃발 전달 후 이임하는 윤병석 장로에게 공로패를 전달하고 취임하는 박명도 장로가 취임선서 후 취임인사를 전하고 지휘자 조충환 장로와 이지수 반주자에게 위촉장을 수여했다. 3부는 신년하례로 축하 시간을 가졌다. 연출 최문욱 장로의 사회로 진행된 하례회에서는 최문욱 장로가 내빈을 소개하고 경상남도 박완수 도지사가 영상으로 축사를 전하고 전국장로성가합창단 협회장 박정도 장로가 축사를 전했다. 이후 임원소개와 경남장로합창단 신년 목표 발표 후 모든 순서를 마무리 했다.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 전국 주요 도시서 열려…

두 번째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이하 국가비상기도회)가 지난 1월 18일(토),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전, 인천, 대구, 전북, 포항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열렸다. 주요 도시에서 열린 이번 국가비상기도회에는 현장과 온라인에서 총 15만여 명(주최측 추산)의 성도와 시민들이 동참했다고 전해진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앞에서 열린 기도회는 3만여 명의 성도들이 참여했다. 이 집회는 박종호 목사(세이브코리아 사무총장)의 기도로 시작해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심하보 목사(은평제일교회), 이호 목사(거룩한대한민국네트워크)가 차례로 메시지를 전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 학계, 문화계 인사들도 참여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임종득 의원(국민의힘)은 “순교자들의 헌신으로 세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라”라며, 성도들이 기도로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부산·울산·경남권 성도들이 모인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앞에서는 만여 명의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문훈 목사(포도원교회), 손현보 목사(세계로교회), 윤상현 국회의원,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나서 메시지를 전했다. 손현보 목사는 “다수당의 힘으로 대통령과 정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며 “선거를 해도 더 이상 국민 주권이 반영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크다.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을 위해 반드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전했다. 김문훈 목사는 “이 시대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 무너진 대한민국의 성벽을 다시 세워야 할 때”라며 “통곡하며 성벽을 재건한 느헤미야처럼, 무너진 대한민국을 기도로 다시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황교안 전 권한대행은 “지금은 제2의 6·25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이라며 “좌파들에 의해 무너지는 나라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성도들의 행동과 기도를 호소했다. 강동명 목사(김해중앙교회)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고 하나님의 귀가 듣고 계신다”며 나라를 위해 눈물과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할 것을 호소했으며, 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박석환 목사(소금과빛교회)는 “한국교회가 이념과 사상에 물들어 바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침묵하는 교회는 죽은 교회”라며 정의를 위하여 교회가 목소리를 낼 것을 촉구했다. 또 경남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이경은 목사(순복음진주초대교회)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일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역사하심, 일하심이 있도록 기도해야한다”며 교회가 국가를 위해 기도할 것을 호소했다. 이외에도 대전역 서광장, 인천 부평역 광장, 대구 동성로, 전북 오거리문화광장에서 동시간에 기도회가 열렸으며, 포항 영일대 광장에서는 19일 오후 3시에 별도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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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기장총, 제6회 정기총회 개회

창원특례시기독교장로총연합회(회장 남재우 장로, 이하 창기장총)가 지난 2월 10일(월) 오전 11시, 창원극동방송 공개홀에서 ‘제6회 정기총회’를 개회했다. 회무에 앞서 드린 1부 예배는 창기장총 수석부회장 신기성 장로의 인도로 시작해 부회장 하성암 장로가 대표로 기도하고 서기 배병호 장로가 성경봉독(삼하23:1-7)한 후 중앙아트 진해선교합창단 지휘자 손봉준 집사가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창원특례시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남일우 목사(선한열매교회)가 ‘마지막 말’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남일우 목사는 말씀을 통해 “장로님들의 기도가 힘이 있다고 믿으시고 더 기도에 힘써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설교 후, 창원극동방송 송대준 총무부장이 이경 지사장을 대신해 축사를 전하고 진해중앙교회 담임 박영배 목사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치고 창기장총 사무총장 신이철 장로가 광고를 전했다. 이어진 2부 회무는 창기장총 명예회장 임명곤 장로의 기도 후 대표회장 남재우 장로가 개회를 선언하고 인사를 전했다. 이어, 회순채택 및 각 보고 후 전형위원을 통한 임원선출을 통해 신임 대표회장에 신기성 장로를 추대하고 수석부회장에 신이철 장로를 선출했다. 신임 대표회장 신기성 장로에게 이임하는 남재우 장로가 회기를 전달하고 창기장총에서는 남재우 장로에게 공로패를 전달했다. 신임 회장 인사를 전한 신기성 장로는 앞선 명예회장 및 임원들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작고하신 전임 회장 최주철 장로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전했다.

창녕기연, 신년연합부흥성회 성료

창녕군기독교연합회(회장 이재격 목사, 이하 창녕기연)가 지난 2월 3일(월)부터 5일(수)까지 창녕중앙교회(임석민 목사)에서 ‘신년연합부흥성회’를 개최 했다. ‘오직 복음으로’(롬1:16)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부흥성회는 서울보은교회 손덕현 목사를 강사로 초청해 말씀을 전했으며. 5일(수) 오전에는 목회자 부부를 위한 세미나를 준비하기도 했다. 창녕기연 부흥성회 첫 날 집회는 회장 이재격 목사(창녕제일교회)의 인도로 시작해 부회장 이상주 장로(남지중앙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서기 박성익 목사(계성교회)가 성경봉독(고후6:10)한 후 손덕현 목사(서울보은교회)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손덕현 목사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은 행위적인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주시는 신앙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기쁘게 하신다. 어떤 경우에도 기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라며 “세상 사람들의 눈에 우리가 가진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은 현상일 뿐이다. 우리의 실상은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이다. 세상은 우리를 현상을 보고 평가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예수님을 나타내는 귀중한 삶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가진자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가진 삶을 말한다. 예수님을 가진 것으로 우리의 실상은 모든 것을 가진 자로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고 전했다. 손덕현 목사는 “우리는 복음 중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생겼다는 것이다.”라며 하나님의 나라와 아버지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권세와 아버지께 청구 할 수 있는 특권에 대해 설명하고 “이 복음을 알아야 우리가 누리고 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 남은 집회에서 손 목사는 ‘십자가 복음을 가진 사람’(고전1:18), ‘참 아름다운 체질을 가진 사람’(대하27:6)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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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완 목사] 침묵의 유익 (수6:8-11)

“침묵이 좋은 몇 가지 이유”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침묵은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는 것을 도와줍니다. 침묵은 입에서 나오는 거친 말을 예방합니다. 침묵은 후회할 말들을 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침묵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수 있게 합니다. 침묵은 언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바로 기도하게 해줍니다. 침묵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합니다. 침묵은 당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합니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훨씬 더 무게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 공동체에서의 모든 문제들은 다 말 때문에 발생합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연산군은 모든 신하들에게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 입은 화를 초래하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는 글이 새겨진 목패(木牌)를 목에 걸고 궁중 출입을 하도록 엄명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만큼 말로 인하여 조정에 혼란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예방차원에서 그런 조치를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이목구비(耳目口鼻)를 만드실 때 눈도 귀도 두 개씩을 만들어 주신데 반해서 입은 한 개만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는 것과 듣는 것에 비해서 말을 조금씩 하라는 뜻이고, 꼭 필요한 말만 하면서 살라고 하신 의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뿐인 입으로 너무 많은 말을 하고 너무 불필요한 말을 하려다 보니까 오해가 생기고, 문제가 생기고, 시끄럽고 혼란한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말을 해도 될 때가 있지만 지금은 우리가 말을 절제하고 침묵해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왜 침묵이 필요하고 유익한 것일까요? 첫째는, 침묵은 질서유지의 비결입니다.(수6:10) 둘째는, 침묵은 지혜로운 삶의 비결입니다.(잠17:28) 셋째는, 침묵은 원수를 대적하는 비결입니다.(사53:7) 사회적으로 혼란한 일이 많은 이때에 침묵하며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우승 목사] 15년을 더 산 사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히스기야 왕의 스토리는 참으로 흥미롭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15년 더 연장해 주셨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사야 선지자는 병든 히스기야 왕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다. (왕하20:1)에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을 왕은 받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형선고를 받은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한 다음에 사력을 다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왕하20:3)에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라고 말씀한다. 왕은 살려달라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주 앞에서 진실되게 살아온 것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했다. 이런 자신만만한 기도는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진실되게 살려고 애쓴 자만이 할 수 있는 기도로 보인다. 이 기도 후에 곧바로 하나님의 응답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임한다. (왕하20:5-6)에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라고 말씀하셨다.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서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 앞에 내 놓은 카드는 지금까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왔던 선한 행실이었음을 기억하자. 우리나라 야사(野史)에도 히스기야 왕처럼 15년을 더 살았던 인물이 전해진다. 조선 명종 때 유명한 맹인 점장이, 홍계관(洪繼寬)이란 이가 있었다. 그가 사람의 앞날에 대해서 일러주는 족족 다 맞았기에 고관대작들이 앞 다투어 그를 극진히 대접하고, 자신의 앞날을 물어보곤 하였다. 당시 높은 벼슬에 있는 상진(尙震) 정승은 홍계관에게 자신의 죽을 해를 점쳐 알고 있었다. 그가 예언한 죽을 해를 당하여 상진 정승은 신변을 정리하고 재산처분을 한 다음 조용히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가 다 지나도록 아무런 변고가 없었다. 새해가 들어서면서 홍계관이 매우 이상하게 생각해서 상진 정승을 찾아갔다. 상진 정승은 “내가 너의 점괘를 믿고 작년에 명이 다할 줄 알고 기다렸는데 어찌 맞지 않는가?” 라고 물었다. 이에 홍계관은 “혹 음덕(陰德)으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으니 대감께서도 반드시 그런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다. 음덕(陰德), 다시 말해서 남모를 큰 선행을 뜻한다. 상진 정승은 옛날 자기가 수찬(修撰) 벼슬에 있을 때 큰 잘못을 범한 대전 수랏간 별감을 용서해 준 일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홍계관은 ‘대감의 수명이 연장된 것은 반드시 이 음덕으로 응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다. <연려실기술>이라는 문헌에 상진 정승의 증조부인 상영부(尙英孚)가 재물이 많아서 주위 사람들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었는데 말년에 차용증서들을 다 불태웠다. 그렇게 한 마음의 동기를 묻자 ‘혹 이 선행으로 후손들이 잘 될는지 누가 알겠소?’ 라고 대답했고, 얼마 후에 상진(尙震)이 태어났다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기독교 윤리에 입각해서 자선을 하고 봉사를 하지만 우리 한국인은 덕을 쌓고, 그 음덕으로 복과 영달을 누린다고 생각했다. 곧 서양 사람은 내세에서 자신의 선행으로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반면, 동양 사람들은 현세에서 보상을 받거나 아니면 후손이 대신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성경도 선행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다고 말한다. (잠언19:17)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또한 성도의 선행은 하나님께서 다 보신다. (딤전5:25)에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선행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라. (마태5:16)에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라는 말씀을 꼭 기억하자

[이정희 목사] 기독교 용어 고찰 52 : 연기설(緣起說)의 인연(因緣)은 쓸 수 있는 말인가?

I. 서언(序言) 얼마 전 몇 사람의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인연(因緣)이란 말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우리 교인들도 흔히 인연이란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불교의 가장 중심적인 교리 중의 하나인 연기설에서 나온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도 인연이란 말은 수도 없이 많이 한다. 그렇지만 이런 말들의 유래와 그 근본 의미를 안다면, 이는 반드시 금지해야 할 용어이다. 이에 본 호에서는 인연의 모체가 되는 연기설과 인연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II. 연기설(緣起說)이란?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 중의 하나는 바로 연기설이다. 이는 ‘세상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영원불변한 실체는 아무것도 없다’는 이론이다. 또한 연기설에는 세 가지의 근본 원리가 있는데, 첫째는 ‘인과(因果)의 법칙’으로서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에 의해서 반드시 결과가 온다는 이론이다. 둘째는 ‘인연의 법칙’으로서 세상 만물의 변화에는 인과 연, 즉 원인과 조건의 작용에 의한다고 했다. 셋째는 ‘상호 관계성의 법칙’인데 개개의 사물들은 서로 의존하여 존재하는 관계에 있다는 이론이다. 이상의 연기설은 세계와 인생의 모든 현상을 12연기(十二緣起)로 설명하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에 지은 업(業)에 따라 현재의 과보(果報)를 받게 되며, 현재의 업에 따라서 미래의 고(苦)를 받으면서 12가지 인연을 맺게 된다. 곧,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근(六根)·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 등으로서 이를 십이 인연(十二因緣), 십이지(十二支)라고도 한다. 특히 11번째의 생(生)은 업(業)의 인연으로 미래의 생을 받게 된다는 이론으로 전생과 관계가 있다. III. 인연(因緣)이란? 앞에서 논한 연기론의 세 가지 근본 원리 중에서 두 번째의 ‘인과(因果)의 법칙’중에 ‘인연의 법칙’이 있다. 한자어로는 원인 인(因), 묶음 연(緣)이며, 국어사전의 뜻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인 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서론에서 언급한 대로 불교의 가장 기본적 교리인 연기론(緣起論)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불교에서는 인연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연은 어떤 결과를 만드는 조건으로서, 직접적인 조건은 因으로서 원인을 이루는 근본 동기가 되며, 간접적인 조건은 緣으로서 원인을 도와서 결과가 생기게 하는 조건이라고 한다.’ 즉, 여러 가지 원인 중에서 주된 것은 因이고, 보조적인 것을 緣으로 여긴다. 결국 모든 사물은 이러한 인과 연의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변화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다. 이는 서로의 인연이 맺어지기 위해서는 전생에서 두 사람이 무려 3천 번의 인연이 있어야 되는데, 그 직접적인 조건은 因이고, 옷깃을 스치는 것은 간접적인 조건인 緣이라고 했다. IV. 적절성과 대안적인 용어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인연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불교의 세계관인 전생(前生)을 인정하는 경우가 될 뿐 아니라 연기론, 즉 인연 사상을 그대로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결국 인연이란 우리 기독교인은 반드시 삼가야 될 말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적인 용어는 무엇인가? 우리 기독교에서는 불교적인 인연의 관계는 일단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대안적인 용어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국어사전적인 인연의 의미는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원인과 결과’를 말하기 때문에 불교적인 요소를 제외한다면 인연은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연의 한자어나 우리말이 불교의 용어와 동일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기독교적 용어를 굳이 찾는다면, ‘하나님께서 자연과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원리와 법칙’을 의미하는 ‘섭리’를 말할 수 있으나 그 말도 인연과 반드시 같은 말은 아니다. 이상으로 볼 때 인연은 전통적으로 모두 다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말할 수는 있지만, 이는 분명히 금지해야 할 불교의 교리적인 용어로 반기독교적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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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일상의 삶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임재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소망한다. 날마다 순간마다 그분과 동행하기를 원하며, 그분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복을 누리기를 소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마귀의 거짓말’에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잠언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잠9:10).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길 때,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성경 말씀과 신앙 공동체를 통해 양육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더 잘 인식하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요10:4)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는 무생물 속에서도 분별할 수 있다. 시편 기자는 푸른 나무, 겨울에 내리는 흰 눈, 비바람과 폭풍우 속에서도 이 모든 것들을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감지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과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닫힌 체계로 간주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읽는 경향이 있다. 현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시고 난 후 이제는 자연이 스스로의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만들고 자신은 창조 세계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이 매일, 매 순간 계속해서 창조 사역을 이루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시147:15-17). 우리는 시편 기자가 보았던 성경적 안복으로 창조 세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쉽게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성경과 이질적인 세계관이나 믿음의 강력한 영향력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무와 동물을 보면서 그것들이 ‘자연’이라는 자율적 실체에 속한다고 여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매 순간, 숨결처럼 우리 가까이 계셔서 그것들을 생명으로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그것들이 창조 세계에 존재함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과학과 기술이 압도하는 세계관에 매몰된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구약성경 시대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성경적 세계관은 과학적 탐구를 조롱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물에 신실하시기 때문에 과학이 견고한 기초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약속하신 대로 계속해서 질서 있게 유지하시고 보존하실 것이다(시148:1-6). 인간 삶에 대한 이원론적 관점은 하나님과 세상을 양립할 수 없는 두 영역으로 나누려고 한다. 신체적 치유의 경우를 한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일반적인 의학적 방법을 통해 치유되면 우리는 이를 ‘자연적’ 치유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안수 기도를 통해 치유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를 ‘초자연적’으로 치유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현실을 단순히 자연적 영역과 초자연적 영역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친구 디도가 단순히 자신을 방문했을 때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고후7:6). 바울은 디도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디도가 자신의 ‘자연적인’ 자유 의지로 방문을 결심하고 준비했음을 알았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손길이 그 방문 뒤에 있었음을 알았다. 이것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동시에 둘 다였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모든 치유를 어떤 수단이든 ‘초자연적’이면서도 동시에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한 신학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스라엘에게는 단 하나의 경험 세계만 있었다. 세상의 경험은 항상 하나님의 경험이기도 했고, 하나님의 경험은 세상의 경험이기도 했다.” 우리 모두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풍성하게 경험하는 복을 향유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김성수 목사 (아프리카 탄자니아 연합대학교 총장)

[김경헌 목사] 엘리압(4) (삼상17:28-40)

그렇다면 엘리압은 누구처럼 살아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다름이 아닌 이삭처럼, 므낫세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이삭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아직 수혼 제도가 세워지기도 전입니다. 자신을 대신할 동생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 아브라함이 다시 아들을 낳아 자신의 이름을 끊어지게 하지 않을 방법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삭은 순종했습니다. 엘리압은 어떻습니까? 일곱 명의 동생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일곱이란 의미를 우리는 잘 압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엘리압은 수혼 제도를 통해서 자신의 이름이 영영토록 끊어지지 않을 보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일곱 명의 동생 중에는 하나님께서 기름까지 부어주신 동생 다윗도 있었습니다. 엘리압은 부활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엘리압은 부활의 신앙을 가졌던 완전한 아버지 아브라함의 언약을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이 자신의 이름 속에 담겨 있습니다. 엘리압의 형제가 몇 8명입니다. 안식후 첫날, 주일, 부활의 날, 할례할 8일 이 모든 의미가 엘리압이라는 이름 속에, 엘리압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야말로 엘리압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름이 끊어지지 않고, 죽어도 살아나는 부활의 약속으로 겹겹이 둘러 싸여져 있었습니다. 자신이 이름으로도, 자신의 형제들로도 장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함에 눈곱만큼도 하자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엘리압은 골리앗 앞에서 겁에 질려 기가 죽어있었다 해도 다윗의 등장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과 본분을 찾았어야 했습니다. 엘리압은 자신의 이름 속에 있는 뜻처럼 당당히 이삭의 길을 갔어야 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엘리압이 골리앗 앞으로 가야 했습니다. 이삭이 자신의 발로, 아니 아버지 아브라함을 도와 모리아산 제단 위로 올갔던 것처럼 엘리압은 나중된 자가 먼저 되고 있는 다윗의 등장으로 정신을 차리고 골리앗 앞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세움받은 목사와 장로들은, 먼저 된 자들은 정신 바짝 차리고 이 장면을 죽을 때까지 잊어선 안 됩니다. 부족하여 엘리압처럼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다 해도, 순간적으로 자신의 사명과 직분의 이름을 망각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다윗의 등장으로 반드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다윗의 등장 앞에서 자신의 오랜 경륜과 경험과 연륜과 위치를 가지고 화를 내고, 지적하고, 억 박 지르는 엘리압이 되어선 안 됩니다. 자기가 부인되지 않으면, 자기가 죽지 않으면 엘리압이 됩니다. 먼저 된 자는, 교회의 진정한 장자는 먼저 죽는 자입니다. 교회 안에서 진정한 장자는 누구입니까? 먼저 된 자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자기를 태워 죽일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으로 오르는 자입니다. 제 발로 죽음의 제단 위로 올라가는 자입니다. 이 사실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성수 총장] 탄자니아 아름다움과 상처가 공존하는 나라

작년 2월부터 아프리카 탄자니아라는 나라의 다르 에스 살람(Dar es Salsaam)에 소재하고 있는 <탄자니아 아프리카 연합대학교>(The United African University of Tanzania)에서 총장으로 1년을 봉사하면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경험한 일들은 나에게 깊은 기쁨과 동시에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이 나라는 말 그대로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땅이다. 사람들은 순수하고 따뜻하며, 정이 많다. 광활한 대지와 끝없이 펼쳐진 자연 자원은 이 나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현실은 매우 무겁게 느껴진다. 심각한 빈부격차는 사회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이를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반대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어간다. 이 극단적인 현실의 간극은 나를 깊은 갈등과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더욱 가슴아픈 사실은 사람들 사이에서 거짓말이 너무 쉽게 오간다는 점이다. 문자그대로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 거짓말을 하고 들통이 나도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만연한 이 잘못된 관행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어서 무감각해 보이기도 한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말이 진리처럼 통용되는 곳이다. 공무원, 경찰, 심지어 정의를 지켜야할 법정마저도 부패의 사슬에 얽매여 있다. 뇌물은 정의를 왜곡 시키고 억울한 자를 더욱 억울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기독교 대학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열정은 때로 깊은 번민과 회의감으로 바뀌곤 한다. 이곳 대학 직원들조차 “여기 탄자니아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믿지 말라”는 조언을 해 올 때면 더욱 더 그러하다. 이런 조언을 해주는 이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내가 갈등하는 문제의 무게를 한 층 더 더해주고 있다. 여기에서 또 다른 고민이 생겨난다. 선교를 위해 이곳에 와 있는 한국인들 중 일부 역시 이곳의 부정적인 관행에 너무도 익숙하게 물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먹먹해 진다. 선교지에서조차 믿음과 정직이 흔들리고 있다면, 과연 이곳에서 하고자 하는 나의 조그마한 봉사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지 묻게 된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꼴이 아닌가? 이러한 고민들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다시 금 떠올리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왜 이 아름답지만 열악한 환경으로 부르셨을까? 이 땅에서의 사역과 봉사가 과연 나에게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 일까? 내가 이 땅에서 배운 것은 단순히 이들 탄자니아 사람들의 필요와 문제뿐만 아니라, 나 자신 역시 다시 금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갈수록 인간의 연약함과 나 자신의 부족함만 느낄 뿐이다. 탄자니아는 여전히 아름답다. 세렝게티 사파리의 초원은 여전히 푸르고 사자와 표범은 여전히 먹이를 찾고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 속에는 치유해야 할 상처가 너무도 분명히 큰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상처를 마주하며,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이 땅 가운데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지 묻는 것은 내게 남은 과제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한없이 왜곡되어 있는 이 땅의 현실 앞에서 다시 금 하나님께 무릎 꿇는다. 하나님, 부족한 나를 이곳에 보내신 당신의 오묘한 뜻을, 당신의 지혜를 간구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아멘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감싸 안으며 친히 말씀하시는 것 같다. “여기 아프리카에도 내가 사랑하는 나의 백성들이 있음을 네가 보았지? 네가 좀 어렵다고 이들을 외면할 수 있겠니? 이 땅에서의 봉사는 그저 너의 능력이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인간의 약점과 한계를 넘어, 내가 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는 그 현장에 네가 계속 발걸음을 옮겨 갈 수 있어야지! 탄자니아의 아름다움과 상처를 품으며, 나의 부름에 신실하게 봉사하기 바란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너에게 용기를 주고 너의 무릎을 일으켜 줄 것이다!” 주여! 제가 여기 있습니다. 부족한 나를 보내소서! 순종하겠나이다! 아멘!!! 김성수 목사 (탄자니아 아프리카 연합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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