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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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기총, 2024년 임·역원 수련회 개최
    사단법인 경남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창교 목사, 이하 경남기총)가 지난 2월 16일(금) 오전 11시, 경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교회(이창교 목사)에서 ‘2024년 임·역원 수련회’를 개최했다. 하루 일정으로 진행된 수련회는 경남기총 수석부회장 박석환 목사(소금과빛교회)가 인도하는 예배로 시작했다. 장로부회장 손태원 장로(봉덕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서기 하동우 목사(참좋은교회)가 성경봉독(사62:6-7)한 후 대표회장 이창교 목사(상남교회)가 ‘주여! 부흥케 하소서’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이창교 목사는 말씀에 앞서 “시·군연합회가 하나가 된다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다”며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약속하시면서 새 이름을 주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고 회복 시키고 부흥케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이 약속은 그냥 이루어지거나 하나님 홀로 이루시지 않는다.”라며 “약속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을 기억하시게끔 매달려야 한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시도록 약속을 기도로 상기시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해야 할 일”이라고 전했다. 이 목사는 “한 해 동안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부흥이 경남 모든 교회들 가운데 일어나도록 하나님을 깨우는 일을 해야 한다. 종을 열심히 울리고 있으면 잠든 영혼이 깨어날 것”이라며 “하늘의 보좌를 울려야한다. 하늘 보좌를 울리는 것은 한 두 교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경남 기총과 22개 시·군연합회, 그리고 각 교회가 합심하여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전했다. 설교 후 명예회장 이경은 목사(순복음진주초대교회)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치고 총무 김희종 목사(유호교회)가 광고를 전했다. 이어진 2부 임원회(정책회의)는 대표회장 이창교 목사의 사회로 사무총장 최정규 목사(상남교회)가 경남 내 18개 시·군 22개 연합회 회장단을 소개하고 참석한 각 연합회 회장들이 소개와 함께 인사를 전하고, 최정규 목사가 경남기총의 1년간 사업계획 안을 전달했다. 경남기총은 한 해 동안 예년과 마찬가지로 경남지도자 초청 조찬 기도회와 코리아 합창제, 목사·사모 탁구대회, 8·15 특별성회 등을 계획 중에 있으며 특별히 올 해 10월에는 제1회 코리아 앙상블 챔피언쉽을 계획 중에 있다고 밝혔다. 계획 안에 다른 이견이 없어 예산안 보고 및 심의를 거쳐 기타 토의 후 경남기총에 새롭게 임·역원으로 섬기게 된 수석부회장 박석환 목사 등에 임원패 및 위촉패 등을 전달 했다. 3부에서는 합심하여 기도회를 가졌다. 총무 김희종 목사의 사회로 △전쟁의 위협과 경제회복, 국민통합, 평화 통일을 위하여 △경남 도지사 및 단체장, 각 기관장, 18개 시·군 발전을 위하여 △포괄적 차별금지법 및 악법의 제정 무산을 위하여 △경남 2,600여 개 교회의 부흥, 민족 복음화, 세계 선교를 위하여 △경남기총 임역원과 22개 시·군 기독교연합회 임역원을 위하여 △제22개 국회의원 선거를 위하여 각각 기도하고, 마지막 준비한 선물을 행운권 추첨을 통해 나누고 명예회장 최타권 감독이 마침기도 함으로 모든 순서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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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단 및 연합회
    2024-02-19
  • 소양 주기철 목사, 생가전시관 개관
    지난 2월 14일(수) 오전 11시,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항일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 기념관에서 ‘주기철 목사 생가 전시관’이 개관했다. 올 해 순교 80주년을 맞이한 소양 주기철 목사의 ‘생가전시관’은 예장(통합) 총회 산하 경남노회(노회장 이상근 목사)와 주기철 목사기념관 이사회(이사장 이상택 목사)가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 신앙과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하고자 생가 복원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2020년 12월 17일로부터 3년여만의 시간과 우여곡절 끝에 개관하게 됐다. 이날 개관 예배는 기념관 이사회 이상택 목사의 사회로 시작해 노회장 이상근 목사가 대표로 기도하고 예장(통합) 증경총회장 지용수 목사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빌2:13)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지용수 목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항상 일하고 계심을 믿고 마음속에 성령의 불꽃을 활활 피워내면 못 할 일이 없다”라며 “주기철목사기념관 생가전시관 역시 여러 고난의 과정이 있었지만 믿음으로 일하고 하나님이 역사하신 결과이다”라고 전했다. 설교 후 직전 이사장 이정희 목사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진 개관식에서는 기념관 이사회 서기 김영암 목사의 사회로 주기철 목사 기념관 관장 김관수 장로가 경과 보고를 하고 홍남표 창원 시장과 생가기념관 개관에 많은 도움을 주신 사업체과 교회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어, 이상택 목사가 기념사를 전하고 주기철 목사 손자 주승중 목사가 감사인사를 전했다. 또 홍남표 창원시장, 이달곤 국회의원, 총회 역사 및 선교유산회복위원장 김성수 목사가 축사를 전하고, 경남동부보훈지청 조경철 지청장이 인사를 전한 후 생가기념관에서 커팅식과 함께 생가기념관 개관을 함께 축하했다. 한편, ‘주기철 목사 생가전시관’은 경남노회와 주기철목사기념관 이사회 그리고 지역 교회들이 협력하여 생가 1동 38.61㎡(11.6평)로 건축됐다. 방 2칸, 마루 1칸, 부엌 1칸의 형태를 띤 일자형 한옥으로 주기철 목사의 생가 모습을 재현했고, 독립운동 활동 등을 전시물 등이 설치됐다.
    • 뉴스
    • 교계
    2024-02-16
  • [기고] 나는 정치 안 한다!
    “나는 정치 안 한다”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이 말 속에는 정치를 나쁘게 평가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 목사’라는 말도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오늘날 목사와 장로들의 사리사욕과 그것을 위한 안하무인의 협착 행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는 정치 안 한다”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현실의 안타까운 모습들 때문에 “나는 정치 안 한다.”라고 해야 건전하게 목회하는 목사처럼 보입니다. 우리 헌법 제2부 관리표준을 보면 예배지침에 이어 교회정치가 나옵니다. 교회정치는 교회, 교인, 교회 직원, 목사, 장로, 집사 및 권사, 준직원과 임시직원, 교회 치리회, 당회, 노회, 총회, 교회 회의 및 소속기관, 선교 및 대외교류, 재산, 각종 고시, 헌법개정 등, 교회를 구성하는 전부를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만 살펴보아도 “나는 정지 안 한다”는 주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치 안 하면 목회를 못 합니다. 정치 안 하면 교회를 바르게 세우지 못합니다. 인간의 교만한 속성상 바른 정치를 하다가 힘을 쥐게 되면 정치꾼으로 변질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타락한 본질적 속성 때문에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정치를 안 한다고 하는 것은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목사를 그만둔다는 것보다 못한 선택임을 자인하는 결과입니다. 홍해를 건너 해방된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리 잘 봐 준다 해도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한 상황에 모세는 자신의 목숨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보려고 합니다.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11:14-15) “당신 새끼지 내 새끼요?”, “저 새끼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소!”, “그 전에 내부터 죽이소!”, 아들의 잘못에 대해 엄마로서 더 이상 방법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하는 모습이 쉽게 연상됩니다. 사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완전한 장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생들인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마음을 발견하기에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 백성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을 향해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여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와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른 정치는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바른 정치는 완전한 장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는 하늘의 장자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를 불리기 위한 정치라는 발상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 역시 이스라엘을 심판하여 멸망시키는 것이 본심이 아니셨기에 모세의 희생적인 중심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노여움을 푸시고 모세를 축복하며 그의 짐을 들어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11:16-17) 70명의 지도자가 세워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통치 방법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통치 방법은 동일합니다. 70명의 지도자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수행하는 모세의 짐을 함께 담당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짐을 함께 담당하라고 세운 지도자들이 오히려 모세의 짐이 되어버렸습니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 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출18:21-22) 모세의 일을 쉽게 하기 위하여, 모세가 감당해야 할 짐을 함께 지기 위하여 지도자들이 세워졌습니다. 교회 내에 조직이 생겼고,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소위 정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잊어서 안 되는 것이 이스라엘의 통치는 하나님의 손 하나에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정치를 넘어 정치꾼이 되어버리니 하나님의 손을 자신들의 손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선악과에 손을 대고, 바벨탑을 쌓아 올렸습니다. 사람을 만드시면서 만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는데,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정치꾼이 되어버렸습니다. 부부관계도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바른 정치가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부부가 됩니다. 가족이나 구역, 기관, 교회, 당회는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의 통치를 위한 바른 정치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정치한다, 안 한다.” 해도 사실 모든 목사는 정치하고 있습니다. 정치해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 정치를 안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깨끗한 척, 거룩한 척 외식하는 바리새인 화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불신앙적인 책임회피의 말인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이미 고도의 정치꾼이 되어있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보수 재건?? 신 보수?? 개혁에 몸담고 개혁에 표 던진 이들의 모임 2-3년 전에 신보수라는 말이 등장하더니 급기야 지난 연말을 시작으로 새해 벽두에 보수재건이라는 대단한 주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뼛속까지 개혁이라고 주장하던 자들이 신보수를 만들어 보수를 재건하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보수와는 전혀 상관없이 평생을 소위 개혁으로 살던 사람들이 신보수의 등에 올라타고 고신을 위한 보수재건을 외치고 있습니다. 현재 고신이 개혁이라는 계파로 완전히 기울어 법도 필요 없는 상황까지 와 버렸으니 다시 보수를 일으켜 세워 한쪽으로 기울어진 교단을 바로 세우고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거룩한 희생의 명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뼛속까지 개혁이 되기도 하고, 뼛속까지 보수가 되기도 하는 자를 중심으로 고신을 위하여 보수를 재건해야 한다고 합니다. 평생토록 개혁진영에 있던 사람들이 고신을 위한 보수가 되어야 한다고 기치를 내겁니다. 오늘날 내로남불의 세상 정치도 이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며 저변확대를 위해 마치 대단한 희생이라도 하는 듯 들러리를 섭니다. 보수재건을 위하여 말입니다. 입각하지 못하면 사람이 모이지 않기에 입각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내세워 입각을 시키고 사람들을 불러모아 보수를 재건하자는 주장입니다. 천국에 계신 전임 신총회장님께서 탄식을 할 것 같습니다. 이러니 많은 목사의 입에서 “나는 정치 안 한다.”라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뼛속까지 개혁인 사람, 한평생 개혁진영에서 일한 사람들, 보수진영에 있었지만 자신의 이익 추구에만 혈안이 되어 언제든지 변질을 일삼아 왔던 자들이 이제 고신의 균형발전을 위하여 보수를 재건해야 한다는 위대한 명분을 내세워 당당하게 주장하는 모습들이 정말 가관입니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입니다. 입각해서 사람들이 모이면 한 자리씩 주어 조직을 키우면 힘 있는 보수가 됩니까? 지금 교단을 지탱하는 힘이 매관매직에 있는 것 같은데 보수재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그런 식으로 보수가 재건되지도 않겠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정치는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오늘날 세상 정치의 타락은 교계 정치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요, 결과입니다. 교단을 위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정치한다는 자들이 세상 정치하는 자들보다 하나님을 더 의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까지 망령되이 사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는 정치 안 한다.”라고 하면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고 거룩한 외식에 만취되어 있습니다. 고신의 동지 여러분 위기라고 말만 하지 말고 제대로 합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마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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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4-02-16
  • 함안군기연, 신년 군정기도회 가져
    함안군기독교연합회(회장 정진경 목사, 이하 함안기연)가 주관하고 함안군청 신우회와 함안군성시화운동본부가 후원하는 ‘2024년 신년 함안군정기도회’가 지난 2월 6일(화) 오후 6시30분, 함안군청에서 열렸다. 매년 함안군청에서 드려진 군정기도회는 올 해도 어김없이 열렸으며, 함안군청에서 근무하는 많은 성도들이 참여해 대회의실을 가득 매웠다. 함안기연 회장 정진경 목사(함안제일교회)의 인도로 시작한 예배는 부회장 옥태수 장로(함성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서기 이종호 목사(석무교회)가 성경봉독(왕상19:18)한 후 ᅟᅡᆷ안군청 신우회와 함성교회 엘림크로마하프 찬양단이 각각 특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이어 함안기연 직전회장 강석규 목사(큰빛교회)가 ‘시대를 분별하라’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강석규 목사는 말씀을 통해 “인간의 생사화복은 모두 하나님 손에 달린 것”이라며 “씨앗만 심는다고 싹이 나지 않는다. 기후가 맞아야 하고 물을 줘야하는 등의 수고가 필요하다. 인간도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버지 사랑 속에 내 인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의 뜻대로 이루시는 삶 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설교 후 이어진 특별기도 순서는 △함안군정과 각 기관장을 위하여 △함안군 복음화를 위하여 △나라와 민족의 평안을 위하여 지정근 목사(칠북교회), 박성국 목사(한길교회), 이규섭 목사(부봉교회)가 각각 기도하고 함안기연 사무총장 김옥동 목사(평기교회)가 광고를 전한 후 전임회장 최경진 목사(칠원교회)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진 2부 인사 및 교제 시간에는 정진경 목사가 내빈을 소개하고 준비한 장학금을 전달 후 조근제 함안군수와 함안군의회 곽세훈 의장이 인사말을 전하고 모든 순서를 마무리 했다. 군정기도회를 준비한 함안기연 회장 정진경 목사는 “함안군정기도회는 한 해 동안 함안 군민의 안녕과 군정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라며 “새해는 새 길을 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누리고 나누는 한 해 되길 기도합니다.”라고 축복의 인사와 함께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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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계
    2024-02-12
  • [기고] 아무리 급해도(2)
    아무리 급해도(3) : 논문표절 최근 몇 년 사이 대학 총장과 총장 후보의 논문표절 문제가 자주 불거졌습니다. 인터넷에 “대학 총장 논문표절”이라고 검색하면, 국내외 많은 대학의 논란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경우 사퇴라는 절차를 밟았고,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많은 논란 때문인지 교육부 역시 최근 연구 부정행위에 대해 아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로 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학교마다 ‘연구 윤리 진실성 위원회’ 같은 기구를 통해 특히 총장 후보에 관한 엄격한 자격 검증을 거치도록 합니다. 대학 총장은 교수들과 연구자들을 이끕니다. 연구에 부정행위가 있다면 한평생 연구로 씨름해 온 분들을 이끌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신임 총장의 2004, 2005, 2007, 2008년 출판 논문들은 각각 심각한 수준의 표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중 게재, 자기표절, 논문 쪼개기, 덧붙이기 출판 등의 연구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이미 알려졌습니다. 고려학원 이사회 역시 이 사실을 분명 알았으며, 그 심각성을 인지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총회 운영위에서도 논문표절에 관한 우려로 인해 반대의견이 나왔지만, 이사장은 “연구 윤리규정이 제정되기 전인 2017-18년 전에 자신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대법원은 이를 표절이라 보지 않는 판례가 있다”라며 설득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표절은 인정하는데 대법원이 표절이라 보지 않으니 괜찮다는 겁니까? 이런 내용이 공개된 상황에서 기독교 대학을 자부하며, 개혁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고신대학교를 비롯한 고려학원이 이런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까? 낯 뜨거워서 기도회를 어떻게 합니까? 지금 이 심각한 문제가 교육부를 통해 신임 총장의 전 소속 학교인 백석대학교에 의해 조사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인간적인 관계로 인한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닌 정확한 조사와 판단을 기대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생활의 순결에 위배됩니다. 아무리 급해도(4) : 교단 가입의 부당성 고신총회 헌법 제57조 다른 교단 목사의 가입에 보면 “다른 교단 소속 목사가 본 교단 노회에 가입하고자 하면 반드시 시무교회와 함께 가입하여야 하며 다음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총회 어느 노회에선 이런 것을 살피지 않고 그냥 원래 출신이 지역의 교회니까 받자고 했다고 합니다. 타 교단 목사의 가입 절차가 총회 법에 어긋난다면 원인 무효입니다. 지금도 대다수의 노회에서는 타 교단 출신의 목사 가입을 엄격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례가 되면 타 교단 목사 가입이 불법으로 노회마다 행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적은 글에 대해 고신대의 모 교수가 글로컬 대학을 비판하면서 소위 고신 정체성 운운했는데 이런 부당한 방법으로 교단 가입한 것은 고신 정체성과 일관성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신앙의 정통에 위배됩니다. 총장은 도덕성에 흠이 없어야 교직원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가 있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논문표절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총장이 다른 교수들, 직원들의 비도덕적인 면을 어떻게 지도할 것입니까? 정관개정의 절차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려학원의 질서를 잘 세워 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겠습니까? 교단 가입 절차에 문제가 있는 목사가 교단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울 수 있습니까? 대법원의 판례를 예로 들어 표절 문제를 넘어가려 한다면, 특정인을 선거에서 유리하도록 법을 개정하며 조치한 경우에 대해서 공직자 선거법 위반이 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 총장의 선출과정에서 드러난 정관개정의 절차 문제나 교단 가입의 절차 문제를 사회법에서 다룬다면 원인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도덕적 결함을 지닌 총장이 학생들 앞에서 교단의 핵심 정신인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외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선임한 이사회와 총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신은 사람을 못 키운다는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대로 세워야겠다면 불법을 계획하고, 눈감고, 시행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논문표절은 본인이, 정관개정의 절차적 문제는 고려학원 이사들이, 그리고 노회 가입은 그 노회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총회 임원회 역시 이 모든 일을 방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알고도 묵인하고 강행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야 고려학원이 삽니다. 기워야 할 옷이 있다면, 그리고 좋은 옷을 만들고자 한다면 제대로 해야지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총장이 열심히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약점과 비합리적인 것과 비윤리 불법적인 모든 것을 덮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고신대의 어려운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교육부의 글로컬 대학 진입과 부산광역시의 라이즈(RISE) 사업을 수주해야 하는데,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할 총장이 장관이나 시장을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두가 손뼉 치고 따라갈까요? 선임된 총장을 위해서 한 일들 같습니까? 얼마든지 일 잘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족쇄를 채워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닙니까? 아니 족쇄를 채워 소신껏 일을 못 하게 하는 것을 넘어 사리사욕을 채우지는 않을지 심히 염려됩니다. 이런 사실들을 아는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비웃지는 않을까요? 개인 어느 누구를 비웃는 것이 아니라 출옥 성도의 ‘코람데오’ 신앙을 저버린 고신을 말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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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9
  • [오태열 목사] 도파민 이야기
    도파민(Dopamine)은 신경전달물질의 하나로 뇌 신경세포의 흥분을 몸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뇌가 몸이 즐거운 자극을 받으면 도파민을 분비해준다. 뇌가 몸에 주는 선물이다. 그래서 도파민을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에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한다. 도파민의 분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인체에 이상을 가져다준다. 도파민이 적게 분비되면 우울증, 파키슨병(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들이 손상돼 발생하는 질환)을 유발한다. 반대로 과도하게 분비되면 躁症(조증, Mania)이 발생할 수 있다. 조증이란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양되어 충동적 폭력적인 행동이나, 논리적 비약 등이 나타나는 정신적 상태를 말한다. 새해가 되면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대개 작심삼일로 끝난다. 금연하기가 매우 힘든 이유는 니코틴이 유발하는 중독성 때문이다. 흡연을 하면 담배에 함유되어있는 니코틴이 뇌에 자극을 주어 다량의 도파민을 분비시켜 기분을 좋게 하고 머리를 맑게 해준다. 흡연을 하지 않으면 도파민 분비가 되지 않아 기분이 다운이 되고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래서 계속 피우게 되고, 피울수록 도파민 분비가 감소함으로써 더 많이 피우게 된다. 많이 피우다 보니 중독되어 금연이 어려워진다. 마약, 음주, 성관계 시는 평소의 2배. 폭식,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스포츠나 여행 좋아하는 일을 할 때도 도파민이 평소보다 많이 분비된다. 그 외에 나쁜 사람을 응징할 때도 도파민이 분비된다. 자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정의감과 의로운 행동에 뇌가 칭찬해주고 도파민을 분비시켜 기분을 좋게 한다. 가진 자들이 갑질을 할 때도 도파민이 분비된다. 조현아, 조현민, 조현태, 이명희, 양진호 씨가 약자에게 갑질을 계속하는 이유는 갑질을 할 때,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기에 기분이 좋아지고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을 위해 희생할 때도 도파민이 많이 분비된다. 힘들고 어렵지만 즐겁고 행복하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감정 심리학 교수인 D. Keltner가 도파민 분비를 전제로 한 유명한 “쿠키몬스터 실험”을 하였다. 권력을 타인의 상태에 영향을 미침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으로 규정하고, 권력이 사람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한 연구였다. 켈트너는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도 중독성이 있다. 도파민 분비 상태와 권력을 가졌다는 느낌은 코카인 같은 약물에 중독되어 한바탕 광기가 휘몰아치는 상태와 아주 비슷하다. 두 상태는 충동적이며, 비도덕적인 행위를 유발하고, 자기 망상적인 사고에 빠진다. 더할 나위가 없다는 기분,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된 기분은 순간 과도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권력의 역설은 늘 가까이 도사린다 라고 하였다. 우리는 어떤 도파민에 중독되어야 하는가? 중독 여부에 따라 괴물이 되기도 천사가 되기도 한다. 나쁜 도파민에 중독된다면 조현아, 조현민, 조현태, 이명희, 양진호 씨와 같이 약자를 괴롭히는 갑질하는 괴물이 되고, 선한 도파민에 중독된다면, 테레사 수녀와 같이 약자들에게 정의롭고 착한 일을 하는 천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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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8
  • [신재철 목사] 수요예배와 새벽기도
    수요예배와 새벽기도 교회를 개척하며 생긴 고민 중 하나가 예배와 모임이다. 한국교회는 모임으로 평가하자면 세계 최고가 아닐까 싶다. 질적인 부분의 평가는 패스. 다만 양적인 부분은 세계 어느 나라의 개신교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다. 「주일오전예배, 주일오후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소그룹모임, 성경공부, 제자훈련, 다음 세대 부서예배 등」 이제 나도 젖어 있어서 익숙한 모임들이다. 이런 모임과 열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존경스럽고 위대하기까지 하다. 그럼 그 좋은 것, 나도 해야지 않을까? 그런데 그러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았다. ‘죽을 것 같다.’ 힘들어서 나오는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하다 죽으면 순교? 그런 무책임한 말을 내게 적용하고 싶지는 않다. 낮에 일하며 혼자 그 많은 모임을 준비하고 인도할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말에 손가락질하겠지만 나는 일을 하면서라도 목회해야 한다. 어떻게 받은 소명인데. “여러분, 저는 새벽기도 할 자신이 없습니다. 새벽기도 없는 교회가 싫으시다면 떠나셔도 괜찮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성도들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목사의 새벽기도 포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큰 충격이 될 수 있고 실망이 될 수도 있기에 큰 두려움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성도는 나의 고단함에 수긍해 주었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오히려 새벽기도 안 하는 불경건한 목사를 통해 누군가는 안도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웃픈’ 상황이다. 전임 사역을 시작하며 쉬어본 적 없던 새벽기도를 개척하면서 쉬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새벽기도도 안 하는 목사, 이래서 되겠는가?’ 한편의 불안함은 있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달려보자. “당분간 수요일 저녁에는 교리공부로 12주 모이겠습니다.” 개척 6개월이 지나 수요모임을 광고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기간이 정해져 있다. 가을에 12주만 모이겠다는 말이다. 새벽기도보다 더 큰 부담이 수요예배였다. 교회 모든 모임이 그렇듯,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목회자만 참석하더라도 있는 모임을 없애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임을 폐하는 아주 악한 자가 될 것이다. 수요예배를 시작하는 것, 성도들이 얼마나 함께할지, 우리 공동체에 어떤 유익이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한시적, 학기제 수요모임을 준비하게 되었다. 봄, 가을. 다른 주제를 정해서 수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틀을 짰다. 「강단 위에 작은 원형 테이블을 두고 앉았다. 기타를 잡고 찬양을 2곡 부른다. 그리고 만들어 둔 교재를 열어 함께 주제별 성경을 공부한다. 기도로 마친다.」 이것이 전부다. 하지만 생각보다 참여율이 높았다. 우리 공동체가 신앙이 좋아서? 목사가 탁월한 강사라서? 안타깝게도 아니다. 기한이 정해져 있었기에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두려움이 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성도들도 견딜 힘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첫 가을학기를 마무리하며 책을 덮을 때, 우리에게는 두 마음이 들었다. ‘끝났다.’ ‘다음 학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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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8
  • [황권철 목사] 세상의 빛 : 명곡교회
    명곡교회(이상영 목사)는 경남 창원시 의창구 원이대로 219번길 12에 있다. 명곡이란 명서동과 봉곡동을 연합한 지역 이름이다. 명곡교회는 1984년 2월 5일에 설립되었기에 올해 4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명곡교회는 1991년 1월 2일 지금의 예배당이 있는 곳에 건축하여 오기 전에 1987년 1월 24일 봉곡동 36-3 승창상가 3층에 있었다. 필자가 1991년 6월 30일 바로 그곳을 임대하여 할렐루야교회를 개척하여 설립예배를 드렸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경남법통노회에서만 34년 목회를 한 셈인데 그때 명곡교회는 창원시찰 산하 교회들 중에 중간 레벨에 속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독립군 같은 한 젊은이가 우리 시찰에 나타났다. 그가 바로 2004년 2월 8일에 위임을 받은 명곡교회 이상영 목사였다. 너무도 주관과 소신이 분명한 목회자였기에 당시로써 선배들과 어른들의 눈 밖에 나 있었던 특별한 친구였다. 그런데 이 목사는 교회를 사랑하고 지역을 품고 목회하는 비전이 남달랐다. 이제 와서 그가 사역한 목장의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세간에 그를 보는 안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창원시찰과 노회와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필자는 2023년 12월 30일 밀알교회 은퇴를 하면서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았다. 이때 이 목사가 당회장을 맡아 너무도 은혜롭게 일을 처리해 주었고, 은퇴예식을 감동의 장으로 집례 해 주어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은퇴를 하고 이제 고려파교회연구소 사역을 하며 지역교회를 돌아보기 위해 작은빛교회(성희찬 목사)에 이어 두 번째 순방으로 명곡교회를 찾았다. 목회자가 지역에 같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교회를 섬겨야 하기 때문에 주변 교회를 잘 모른다. 그러므로 그 교회의 예배모범이나 그 지역의 맞춤형 목회전략을 보기 위해서는 온 회중이 함께 예배하는 주일예배를 보면 쉽게 진단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오늘 명곡교회 11시 예배에 참석하여 받은 감동을 다음 몇 가지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예배가 밝은 축제의 장이었다. 필자는 11시 예배에 맞추어 20여분 전에 교회 도착하니 주차장이 가득 차 있어 주변 주택가에 주차하고 교회당으로 갔다. 입구 로비로부터 2층 예배실로 안내 하는 위원들의 복장과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뭔가 처음 오는 새가족들에게 설레임과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한 교회였다. 주보를 받아 보니 전면에 커피 잔 같이 생긴 호야 등 아래로 THE LIGHT(세상의 빛)란 금년 한 해를 시작하는 주제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다가왔다. 마지막 폐이지를 보니 “명곡교회는 지역의 가로등입니다”타이틀에 걸맞게 예배에서 느낀 감동이 너무도 잘 맞는 조화(concept)였다. 다음, ‘리셋 버튼 누르기’의 설교 제목이다. THE LIGHT(세상의 빛)이란 주제에 걸맞게 새해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역동성이 너무도 돋보인다. 이 목사는 주보에 요약(summary)한 설교 본문을 보면 첫째, 하나님께 새로운 다름의 첫 출발의 간구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품격, 성품, 새사람으로 덧입기를 간구하라고 했다. 둘째, 지금 당장 실천 가능한 것부터 구체적으로 고백하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리셋 버튼이 필요 없는 완전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셋째, 새 출발을 위해 곁에서 세워 줄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하라. 새로운 다름의 새 출발이란 결코 나 홀로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넷째, 내게 유익하지 못한 나쁜 습관을 제거하라. 새로운 다름의 가장 큰 방해물은 건강하지 못한 중독된 습관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새해를 시작하는 신년 백두에 이 같은 설교를 시리즈로 계속해서 변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닮아가는 새 사람을 입어 새로운 다름의 세계로 나아가는 변화를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설득력 있게 설교했다. 마지막, 이 목사는 언어 구사능력이 탁월한 리더이다. 그의 남다른 탁월함이란 언어구사능력이다. 이것은 리더의 자질이다. 리더는 대중의 신비에 각인될 한 마디로 표현하는 기술을 가진 자이다. 이런 면에서 이 목사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용어를 조금 다르게 표현해 청중들의 귀에 전혀 새로운 단어로 각인될 뿐 아니라 그것을 거듭 반복하는데도 늘 새로운 신선함을 더해 주는 언어창조능력을 가진 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면서 말씀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육이 혼재된 특별한 피조물이다. 인간은 언어로 하나님과 피조세계와 소통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 같은 언어를 잘 사용하는 리더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리더요 목양자이다. 에필로그로 아우는 역시 탁월한 목회전략을 가진 자이다. 예배는 엄숙하고 경건하면서도 거룩한 축제의 장이다. 안내, 찬양, 기도, 설교, 방송자막, 손님배려, 그리고 마침인사와 식탁의 섬김 모든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래 전에 읽은 존 웨슬리(John Wesley)가 한 말이 기억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여, 가능한 모든 장소에서, 가능한 모든 시간에,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가능할 때까지,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선한 일을 하라.”마지막 축도를 하고 나서 김수중 장로의 안내를 받아 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을 들고 명곡교회를 축복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2024년 1월 14일 11시예배 순방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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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8
  • [최호숙 목사] 신앙인의 삶과 징크스(Jinx)
    원래 징크스(Jinx)란 사전적 의미는“으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악운(惡運)으로 여겨지는 것” 또는 “불길한 대상이 되는 사물 또는 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적으로 징크스는 자신이 우연히 한 행동이 나쁜 결과를 가져왔을 때 그걸 단순한 우연이나 미신이라고 여기지 않고 어떤 강한 인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여기며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이 징크스(Jinx)의 어원은 일반적으로 딱따구리의 일종인 “개미잡이” 라는 새에서 찾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새를 점을 치는데 사용했는데 머리의 생김도 그렇고 움직이는 것도 뱀과 같다고 불길한 새로 취급했다. 바로 이 새의 그리스어 이름이 junx 이다. 라틴어로는 jynx 이며,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순조롭게 일들이 잘 풀릴 때가 있는가 하면 잘 풀리지 않고 꼬일 때가 있다. 그러면 사람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습관적으로 징크스에 빠지게 된다. 위의 예처럼 “ ~ 하기만 하면 이렇게 좋지 않다”는 식이다. 징크스는 미신이라는 뉘앙스가 담긴 단어이므로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파진다”처럼 객관적으로 인과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은 징크스라고 볼 수 없다. 예컨대 “밥을 안 먹고 경기를 관람하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지더라”라는 식의 주관적인 느낌이 징크스의 예시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징크스 중 하나로 “미역국을 먹으면 떨어진다”는 징크스가 있으며, 어떤 운동선수는 목욕하고 시합을 하면 반드시 패한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시합 전에는 절대 목욕을 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아침에 맹인을 만나면 일이 꼬이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 어떤 택시 운전기사는 첫 손님으로 안경을 낀 사람을 태우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고, 어떤 학생은 시험 전날에 손톱을 깎으면 시험을 망친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축구 감독은 반드시 흰색 유니폼을 입지 않으면 패한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어 흰색 유니폼을 고집한다. 아침 첫 손님이 여자가 오면 매상이 오르지 않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어 여성 손님이 오면 그 손님을 기피하는 현상도 있다. 연예인들 중 아이유는 노래 제목애 대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데 노래 제목은 반드시 세 글자로 지어야 히트(hit) 친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히트 친 노래 제목들이 “잔소리, 좋은 날, 너랑 나, 밤 편지, 라일락...” 모두 세 글자로 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4자(字)가 죽음을 연상시킨다 하여 병실 번호 등에서 제외하고 있다. 아침부터 까마귀가 울거나 검은 고양이가 앞을 지나가면 불길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도 징크스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목회자들 가운데서도 징크스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징크스에 눌려 있다면 그것은 불신앙이다. 예수님께서 씀하시기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이사야 선지자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고 교훈 하였다. 우리는 징크스에 빠질 것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함으로 의심과 두려움을 버리고 주님 안에 굳게 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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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8
  • [이정희 목사] 기독교 용어들에 대한 고찰 30 : 설날과 세시풍속 용어들 I
    I. 서언(序言) ‘내 마음 속에는 닫힌 문짝을 열고자 하는 손과 열린 문짝을 닫고자 하는 손이 함께 살았다.’ 안수환의 ‘문’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어줍은 지식이지만 올바른 용어 사용을 가로막는 닫힌 문짝을 열고, 잘못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을 닫아보고자 하는 열망, 그래서 시작된 기고를 10년이 넘도록 해오면서 많은 용어들을 논해왔다. 그중에서 약 1여년 전에는 29회까지 우리가 흔히 쓰는 교회 용어들에서 바로 사용하거나 주의해야 될 말들을 논해왔다. 하지만 심각하게 오남용되는 경어에 대한 바른 표현의 필요성 때문에 약 1여년 동안 논해왔다. 이제 지난호의 예고 대로 다시 올바른 교회용어에 대해서 논하고자 했으나 곧 설날이 다가오는 관계로 언젠가 기고한 바 있는 설날과 세시풍속의 용어들에 대해서 2~3회 정도 논해보고자 한다. II. 설날의 어원과 유래 설날을 전후한 세시풍속으로 행해지는 일들과 이에 대한 용어들에 대해서 우리 기독교적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볼 것인가를 논하고자 한다. 1. 설날의 어원: 설날의 사전적인 뜻은 ‘새해의 첫날’이다. 또 음력 정월 초하룻날이기 때문에 원단(元旦), 세수(歲首), 정초(正初)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사린다. 사간다’에서 온 말로 ‘조심하다’는 뜻도 있다. 또 이 말은 ‘섧다. 슬프다’란 말에서 왔다고도 한다. 이러한 뜻은 다소 의외로 보이지만, 이는 설이란 그저 기쁜 날로 들뜨기보다는 한 해의 첫날부터 모든 일에 조심하며 신중하게 첫발을 내딛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설날을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의미에서 신일(愼日)이라고도 한다. 이런 뜻으로 볼 때 설날이란 말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용어이다. 2, 설날의 유래: 설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은 분명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달의 주기를 가지고 만든 태음력(太陰曆)과 이집트인들이 지구가 태양을 회전하는 주기로 만든 태양력(太陽曆)을 사용하면서부터 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왜냐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해의 시작 일을 중요시 여기며 기념하는 것은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설날을 지키는 직접적인 영향은 중국의 춘절(春節)일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춘절은 우리의 설날과 거의 비슷한 형태로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경 중국의 역사서에 ‘신라에서 지켜진 설날에 대한 기록’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고, 삼국사기에는 백제 고이왕(A.D 238년) 정월에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을 현대의 설날로 볼 수는 없으나 새해를 맞이하여 지냈던 제사라고 볼 때 비슷한 경우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설은 아주 옛날부터 이어져 온 민족의 명절인 것을 알 수 있다. 근래에 와서는 처음에는 양력의 1월 1일과 구분하여 민속의 날이라고 했으나, 1989년부터 본래 이름인 설날로 다시 불리어 졌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설날에 행해지는 각종 세시풍속들과 용어들: 차례(茶禮), 복조리 달기, 한 해 운수를 점치는 토정비결(土亭秘訣), 청참(聽讖), 설빔, 세찬(歲饌), 세주(歲酒), 세화(歲畵), 음복(飮福), 덕담, 새해 성묘 등 많은 세시풍속들과 용어들이 있다. 이 중에는 사회적인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충분히 계승하고 장려할 일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설날을 전후하여 행해지는 세시풍 속에는 성도들이 그대로 행하기에는 많은 문제점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세시풍속은 차례의식이다. 차례는 원래 하늘에 천신(天神)혹은 상제(上帝)가 있음을 믿고 제사를 지낸 천신제였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의 영향으로 천신제에서 죽은 조상(자신으로부터 4대위 조상까지) 제사로 바뀌었다. 이것은 같은 문화 영향권 아래 있는 중국과 일본에도 없는 극히 한국적인 제사 형식이다. 또한 차례라는 말의 어원은 원래 다례(茶禮)였다. 이는 원래 제사상에 술이 아닌 차를 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례 혹은 차례라고 하는 것이다. III. 기독교인 입장에서의 설에 대한 입장과 결론 설은 새 출발을 뜻하는 날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또한 부모와 어른들을 섬기는 세배나 서로 덕담을 나누는 풍습은 교회 속에서도 더 계승 발전시켜 야 할 좋은 덕목이다. 하지만 이것이 조상숭배와 미신적인 행위로 바뀌어 진 불신자의 세시풍 속은 결코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교회도 이제 선교 140년의 역사 속 에서 설날을 아름다운 기독교문화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명절이 제사 문제로 짝 믿음 가진 성도들에게 더 이상의 부담을 주는 날이 아닌, 온전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온 가족과 일 가친척들 간의 아름다운 화목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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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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