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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SFC 폐지(2), 당랑재후(螳螂在後)
    2007년부터 2020년까지 13년 동안 인구가 1.5% 증가한 반면, 고신교단은 17%정도 감소했습니다.(총회 촬요 참조) 특히 청소년 인구는 13년 동안 27% 감소했는데, 교신교단은 50% 감소했습니다. 13년 동안 감소한 것과 통계청에서 내놓은 미래 예측치를 대비해 보면 2020년을 기준으로 2030년이 되면 고신교단의 청소년이 71% 감소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2035년이 되면 통계적으로는 제로가 됩니다. 13년이 지나면 고신교단에서 청소년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통계상 수치입니다. 총회 미래정책위원회가 SFC에 요청하여 받은 자료에 의하면 전도에 대해서는가장 전도를 많이 한 해에 운동원 1인당 0.03명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권역과 대학에서 전도한 결과는 0명입니다. 재정과 관련해서는10년 동안 SFC에 100억 이상이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총회, 노회, 기관, 개채 교회,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것 등을 다 하면 최대 200억까지 추산한다는 기사가 났습니다.더 심각한 것은 SFC의 근본정신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인데 교회 중심이 되지 않으니 SFC 간사들이 강정마을에 가서 데모를 하는 것을 넘어 성경과 고신 신학에 위배 되는 주장을 하는 강사들을 초청하여 수련회나 세미나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청소년의 수가 감소한 것이 SFC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SFC의 사역을 재정으로만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문제는 교회 중심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SFC 폐지라는 안건이 상정되기 전에, 총회 SFC 상임위원회에서 전국 35개 노회별 SFC 담당자들을 모아 SFC 발전을 위해서 연석회의를 하는 자리에 총회 미래정책위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때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SFC의 변화와 혁신을 위하여 피터지게 토론하고 대안을 마련했더라면 SFC폐지라는 안건은 상정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회의는 본질과는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순수한 SFC 위원들은 모르는 물밑 의도와 충동질이 있었음을 충분히 예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본질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누군가 ‘감정’을 부추키는 발언을 했고, “70년이 된 SFC를 폐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우리 모두가 SFC인데 폐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총회미래정책위원이 점령군이냐?”등의 고성이 오갔습니다. 회의의 본질을 흐리고 ‘감정’을 부추키는 발언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모임은 오히려 SFC 폐지를 상정하도록 충동질하는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총회 미래정책위원회에서 2022년 7월 SFC 폐지 청원 건을 총회에 상정했습니다. 정말 SFC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겠습니까? 내 자식이 죽을 것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현재 고신대와 복음병원의 위기와 똑같습니다. 어쩌면 SFC는 고신의 정체성의 문제요, 미래에 대한 문제이기에 훨씬 더 심각한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SFC를 위해 총회상임위 두 기관과 35개 노회 SFC 담당자들이 함께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 자리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논리적인 대화나 토론은커녕 선입견을 가지고 집중적인 성토의 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SFC간사 중에서도 전도 및 학원복음화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 SFC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지 않느냐는 총회의 질문에 끝까지 차별금지법 반대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총회석상에서의 대답은 오늘날 SFC 정서는 대표간사의 말도 안 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탈교회의 극단적인 모습입니다. 수도권 SFC는 지방 SFC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다르다고 하는 대답이었습니다.(이 부분은 오히려 수도권 목회자들이 더 분개하는 부분입니다.) 일반 사회적 흐름에 반대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면 전도가 안 된다는 겁니다.(총회 회의록 참조) 학원복음화를 입에 대지도 않는 자들이 진리의 문제를 제기하니 전도를 핑계 삼습니다. 이것이 바로 탈교회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교회중심이 되지 않는 조직은 불신앙으로 변질된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학원 SFC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총회임원선거를 앞두고 ‘김경헌 = 손현보 = SFC 폐지’라는 등식을 만들어 총대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이 정말 SFC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보입니까? SFC를 위하여 순수하게 헌신하는 분들을 돼지 떼에 넣어 비탈길을 달리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미래요, 우리의 고향인 SFC를 인질로 잡아 사욕을 탐하는 짓을 더 이상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가관인 것은 2023년 8월 중순에 SFC 출판부에 큰 재정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출판부 간사 중 한 사람이 수 천 만원의 재정 사고를 낸 것입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출판부 정상화와 쇄신을 위한 전권위원회’가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 일로 애매하게 어려움을 당할 위기에 처했던 출판부의 다른 간사의 SFC지도부를 향한 애절한 호소가 항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개체교회에서 재정 비리사고가 나면 관련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SFC는 지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불과 얼마 전 KPM에서 있었던 재정 사고가 불현 듯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은급재단은 어떤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당랑재후(螳螂在後)’란 말이 있습니다. 매미를 덮치려는 사마귀가 뒤에 참새가 노리고 있음을 몰랐다는 뜻으로,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뒤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모름을 탄식하는 말입니다. 이미 참새의 부리가 쪼아버린 것 같은 먹먹한 심정이 저만의 느낌이 아니기를 바라며, SFC를 사랑하는 동지들이여 지금이라도 당랑재후(螳螂在後)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 독자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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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1
  • [기고] 아무리 급해도(2)
    아무리 급해도(3) : 논문표절 최근 몇 년 사이 대학 총장과 총장 후보의 논문표절 문제가 자주 불거졌습니다. 인터넷에 “대학 총장 논문표절”이라고 검색하면, 국내외 많은 대학의 논란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경우 사퇴라는 절차를 밟았고,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많은 논란 때문인지 교육부 역시 최근 연구 부정행위에 대해 아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로 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학교마다 ‘연구 윤리 진실성 위원회’ 같은 기구를 통해 특히 총장 후보에 관한 엄격한 자격 검증을 거치도록 합니다. 대학 총장은 교수들과 연구자들을 이끕니다. 연구에 부정행위가 있다면 한평생 연구로 씨름해 온 분들을 이끌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신임 총장의 2004, 2005, 2007, 2008년 출판 논문들은 각각 심각한 수준의 표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중 게재, 자기표절, 논문 쪼개기, 덧붙이기 출판 등의 연구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이미 알려졌습니다. 고려학원 이사회 역시 이 사실을 분명 알았으며, 그 심각성을 인지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총회 운영위에서도 논문표절에 관한 우려로 인해 반대의견이 나왔지만, 이사장은 “연구 윤리규정이 제정되기 전인 2017-18년 전에 자신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대법원은 이를 표절이라 보지 않는 판례가 있다”라며 설득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표절은 인정하는데 대법원이 표절이라 보지 않으니 괜찮다는 겁니까? 이런 내용이 공개된 상황에서 기독교 대학을 자부하며, 개혁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고신대학교를 비롯한 고려학원이 이런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까? 낯 뜨거워서 기도회를 어떻게 합니까? 지금 이 심각한 문제가 교육부를 통해 신임 총장의 전 소속 학교인 백석대학교에 의해 조사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인간적인 관계로 인한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닌 정확한 조사와 판단을 기대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생활의 순결에 위배됩니다. 아무리 급해도(4) : 교단 가입의 부당성 고신총회 헌법 제57조 다른 교단 목사의 가입에 보면 “다른 교단 소속 목사가 본 교단 노회에 가입하고자 하면 반드시 시무교회와 함께 가입하여야 하며 다음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총회 어느 노회에선 이런 것을 살피지 않고 그냥 원래 출신이 지역의 교회니까 받자고 했다고 합니다. 타 교단 목사의 가입 절차가 총회 법에 어긋난다면 원인 무효입니다. 지금도 대다수의 노회에서는 타 교단 출신의 목사 가입을 엄격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례가 되면 타 교단 목사 가입이 불법으로 노회마다 행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적은 글에 대해 고신대의 모 교수가 글로컬 대학을 비판하면서 소위 고신 정체성 운운했는데 이런 부당한 방법으로 교단 가입한 것은 고신 정체성과 일관성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신앙의 정통에 위배됩니다. 총장은 도덕성에 흠이 없어야 교직원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가 있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논문표절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총장이 다른 교수들, 직원들의 비도덕적인 면을 어떻게 지도할 것입니까? 정관개정의 절차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려학원의 질서를 잘 세워 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겠습니까? 교단 가입 절차에 문제가 있는 목사가 교단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울 수 있습니까? 대법원의 판례를 예로 들어 표절 문제를 넘어가려 한다면, 특정인을 선거에서 유리하도록 법을 개정하며 조치한 경우에 대해서 공직자 선거법 위반이 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 총장의 선출과정에서 드러난 정관개정의 절차 문제나 교단 가입의 절차 문제를 사회법에서 다룬다면 원인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도덕적 결함을 지닌 총장이 학생들 앞에서 교단의 핵심 정신인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외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선임한 이사회와 총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신은 사람을 못 키운다는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대로 세워야겠다면 불법을 계획하고, 눈감고, 시행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논문표절은 본인이, 정관개정의 절차적 문제는 고려학원 이사들이, 그리고 노회 가입은 그 노회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총회 임원회 역시 이 모든 일을 방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알고도 묵인하고 강행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야 고려학원이 삽니다. 기워야 할 옷이 있다면, 그리고 좋은 옷을 만들고자 한다면 제대로 해야지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총장이 열심히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약점과 비합리적인 것과 비윤리 불법적인 모든 것을 덮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고신대의 어려운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교육부의 글로컬 대학 진입과 부산광역시의 라이즈(RISE) 사업을 수주해야 하는데,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할 총장이 장관이나 시장을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두가 손뼉 치고 따라갈까요? 선임된 총장을 위해서 한 일들 같습니까? 얼마든지 일 잘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족쇄를 채워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닙니까? 아니 족쇄를 채워 소신껏 일을 못 하게 하는 것을 넘어 사리사욕을 채우지는 않을지 심히 염려됩니다. 이런 사실들을 아는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비웃지는 않을까요? 개인 어느 누구를 비웃는 것이 아니라 출옥 성도의 ‘코람데오’ 신앙을 저버린 고신을 말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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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9
  • [기고] 고신, 우이독경(牛耳讀經) 교단과 대학교
    지난 글에 대한 반론이 나왔습니다. 고신대학교 모 교수님이 쓴 글입니다. 반론이라는 말 자체는 없지만, 내용을 보면 반론이 확실합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것이라 짐작했던 터라 이 반론이 참 반갑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내용은 ‘우이독경(牛耳讀經)’,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지난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염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본질을 흐리는 말싸움, 감정싸움으로 비치지 않길 바랍니다.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에 나온 반론도 ‘위기’, ‘골든타임’을 표면적으로는 인정하는 듯 보이니까 말입니다.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지난 글에서 지적하고자 했던 것은 간단합니다. “언제까지, 얼마가 필요한가?” 다시 설명해 드립니다. ‘골든타임’으로 접어든 ‘위기’의 고신대학교에 관한 교단 지도자들의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교단 지도자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작금의 이런저런 노력이 귀하지 않다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와 성도를 설득해 기부금을 받는 정도의 방법이 주요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본질을 해결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고신 내부의 큰 소리를 들어달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고신교단의 교회는 고신대학교를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그런데 ‘위기’와 ‘골든타임’이라는 상황에 다시 더 큰 기부금을 요청하며 걷고 있습니다. 기도회를 하면서 말입니다. 저의 제안은 언제까지, 얼마를 기부해야 하며,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묻는 것입니다.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제는 정확한 판단과 분석이라는 것을 보고 싶고, 봐야 할 때라서 그렇습니다. 저는 저의 이 제안이 간단명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론을 보니 제 제안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장황하지도 않은 장황한 역사만늘어놓았습니다. 2003년, 2014년, 2015년의 이야기가 지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73회 총회가 드디어 제대로 된 대책을 내며 일을 시작했다는 생색뿐입니다. 과거의 장황한 역사를 꼬집은 것은 이 ‘생색’을 돋보이게 하는 양념이었군요. 책임져야 할 자들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에게 말하느냐는 마음이 행간에 엿보입니다. 설명이 어려운 듯하여 다시 설명해 드립니다. 과거에는 전혀 기부금이 없었습니까? 역대 최고 수준의 기부금을 언급하는데, 이것이 고신대학교를 살릴 수 있습니까? 이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판단과 분석을 토대로 노력하자는 겁니다. 본질을 흐리지 마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고신대학교의 상황에 관한 미화뿐입니다. 과거에는 전혀 기부금이 없었고, 과거에는 교직원들의 헌신이 없었습니까? 교수의 81%, 직원의 42%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면, 교수의 19%와 직원의 58%와는 갈등이 없습니까? 내부적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겁니까? 아니면 듣기 싫은 겁니까? 지금 모든 지방 사립 대학은 연합 대학을 통해서라도 글로컬 대학에 진입하는 일에 대학의 사활을 걸고 있는데(참고,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58472), 글로컬 대학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은 도대체 어떤 근거와 데이터를 가지고 하는 말입니까? 대학에 몸담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카테고리가 헷갈리거나, 아니면 호도(糊塗)하는 유희삼매(遊戱三昧)만있습니다. 교육부와 지자체가 발주하는 사업에 참여한 결과로 받은 금액이 64억 중 교직원 인건비, 학교 운영비로 지출된 금액이 1원이라도 있습니까? 이 금액은 그야말로 프로그램을 위한 비용입니다.혹시 64억을 받아 학교 살림이 나아졌는데도 ‘위기’와 ‘골든타임’에 동조하며 계속 모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시는 겁니까? 반론자도 고신대학교의 문제가 학령인구 감소와 그에 따른 재정위기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안으로 학생들이 공부와 자기 발전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을 제시하다니요? 또한, 구조조정을 언급하면서 실제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일반적인 상식은 ‘세속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시하면서 교직원 연봉의 십일조를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것을 언급하다니요? 도대체 구조조정과 연봉의 십일조 기부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이것이 어떻게 전체 고신대학교를 위한 상생이 되는지요? 수익 구조 다각화에 대한 노력과 5년 재정 구조에 대한 정밀 시뮬레이션 완성? 좋습니다. 바로 이런 대책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본질을 흐리지 말고, 그 방법을 고신대학교를 위한 더 큰 헌신과 헌금을 요구하는 고신 교회 앞에 설명해 주십시오. “모금하다가 안 되면 할 수 없고”라는 식의 미봉책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동참하지 않는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의 염려와 중심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고신 사랑’을 폄하하지 마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가짜 뉴스라는 지적만있습니다. “재학생 등록률과 신입생 충원 결과를 보면 1년 100억 적자가 날 것이 분명한 사실인데”라는 표현이 가짜 뉴스인가요? 제 나름대로 정보를 통해 파악한 금액입니다. 저의 부족함 때문에 계산상 조금의 오류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주는 이가 없으니 그럴 수 있지요. 그런데 이게 가짜 뉴스라고 지적받을 표현인가요? 그렇다면 반론자는 자료를 다루는 교수 아닙니까? 병원의 적자는 어떻습니까? 학교법인 고려학원의 적자가 100억 이상 나는 것이 가짜 뉴스라면, 본질을 흐리지 말고, 진짜 뉴스로 ‘정확한 적자 금액’을 분명히 밝혀주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오히려 가짜 뉴스만 있을 뿐입니다. “혹자는 의대와 복음병원을 헐값에 인수하려는 사람들과 모의를 벌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위기라고 말만 하면서 오히려 잘못된 과장 정보로 위기를 부풀리기만 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신학교수인 반론자는 정말 신앙 양심에 화인을 맞았습니까? 십계명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동료를 향한 가짜 뉴스를 은근히 양산하는 말장난을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잘못된 과장 정보로 위기를 부풀렸다면, 지금 반론자가 말하는 위기와 골든타임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이 정도 매너의 교수가 신학교수로 학교 강단에 있는 고신의 현실이 개탄스럽기까지 합니다. 본질을 흐리는 공격을 멈추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질 생각도 없는 나팔수의 아부만 있을 뿐입니다. 도대체 교수님은 우리 고신교단과 고신대학교에서 어떤 책임 있는 자리에 있습니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개진하는 것은 신자 개인의 자유이나, 총회와 고신대학교를 대변하는 듯한 이런 주장으로 교단과 고신대학교를 갈라치기 하는 (파탄 내는)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나팔수의 아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이것이 극단적인 분리주의 사고방식인 것은 모르실 리 없겠지요. 본질을 흐린 채 말장난, 정중하고 정확한 논의를 촉구합니다. 정확한 사실을 제시하는 책임 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 독자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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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7
  • [특별기고] 통합 기념 한마음교회 유감
    폭염입니다. 여름의 태양이 작열하는 계절! 이 여름에 우리 주님 다시 오신다면 태양처럼 뜨거운 신앙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으실 것 같습니다. 사역의 현장마다 여름 태양보다 더 뜨거워서 주님의 칭찬을 받는 우리 교단 교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듯이 우리는 성공적인 교단통합을 이었습니다. 그 통합기념으로 한마음교회를 설립한 것입니다. 전국 노회와 교회들이 마음과 기도와 물질을 모아 세운 기념비적 통합기념교회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통합기념 한마음교회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는지요? 통합기념 한마음교회는 고신교단의 여러 어른들과 선배 목사님들 그리고 총회 임원들 그리고 (구)고려의 선배들과 임원들이 힘들게 이루어낸 통합의 금자탑이며 결정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교회의 지 교회가 되어있습니다. 교단통합을 하면서 기념으로 교회를 설랍(립)하되 (구)고려측의 목회자를 세우기로 결의하고 설립한 교회가 바로 한마음교회입니다. 그런데 (구)고려측의 일대 한마음교회 전임목사는 당회장권 한번 갖지 못하고, 고초를 겪다가 사임하였습니다. 한마음교회 담임목사에게 이러저런 이유로 당회장권을 이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년 동안 무려 6번이나 당회장을 바꾸면서 힘들게 했습니다. 이런 상식 밖의 이상한 일이 통합기념 한마음교회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안양일심교회 부목사로 사역했던 이 모 목사가 담임으로 있습니다. 안양일심교회가 물심양면으로 많은 부분을 헌신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국 노회와 교회의 헌금으로 세운 통합기념교회를 일심교회 40주년 지교회로 삼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유감스럽게도 통합기념교회 설립을 위한 목적헌금이 한 교회의 지교회를 설립하는데 사용되는 어처구니 없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교단 전체가 바로 알고, 바로 잡아야 하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우리가 하나의 교단으로 통합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처음의 약속과 결의가 깨짐으로 아름다운 통합정신이 훼손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지만, 특히 (구)고려 측 형제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아픔이 된 것입니다. 이런 사태로 인해 안양일심교회와 당회장은 (구)고려 측 형제들로부터 신뢰를 잃었고,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미안했던지, 무마하려고 (구)고려의 어려운 분들을 후원하겠다고 접촉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고려 목사들은 의도가 순수하지 못한 후원금을 받을 리 없지 않습니까? 지난해부터 제안하는 후원금을 거부해 왔습니다. 올해 들어와서 또다시 (구)고려 동문회에 7천만원 정도를 후원하겠다고 제의를 해왔지만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교회와 선교사들이 많이 있었지만 통합기념교회를 세우려는 큰 뜻이 있기에 거절했던 것입니다. 급기야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기어코 후원을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거부했는데도 비공식체널을 통해 기어코 다수의 교회에 상당한 후원을 감행한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저도 부교역자 약 10년, 한 교회 담임목회를 27년째 하니 37년 사역을 하며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은 사람입니다. 교회의 내부 사정이 있어 그렇겠거니, 일면 이해가 가지만, 그렇지만 한마음교회의 문제는 양 교단 통합기념 교회인만큼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국 노회와 교회의 헌금은 통합기념교회를 설립하기 위한 목적 헌금입니다. 그 목적대로 쓰이지 않았다면 바로 잡는 것이 마땅합니다. 따라서 교단 70주년을 맞아 통합기념교회를 다시 세우려는 계획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국 노회와 교회의 후원금 13억여원은 교단통합의 정신과 기념을 담는 명실공히 통합기념교회 설립을 위해 쓰여져야 할 것입니다. 안양일심교회는 고신교단의 대표적인 큰 교회 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당회장 김홍석목사님은 앞으로 총회에 큰 일을 감당해야할 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중대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고 교단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안양일심교회 김홍석목사는 통합기념 교회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할 것입니다. 이것이 (구)고려측 대부분 형제들의 일치된 생각입니다. “순교자의 고장! 진리의 파숫군! 경건자의 훈련소, 예수의 제자들이 일어나는 산실!” 그 교단이 우리 고신 입니다. 저는 우리 교단의 일원이고 교단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고신의 목사로 함께 사역함이 늘 감사합니다. 저는 고신인이 된 것이 좋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뒤를 이어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 정신을 이어가는 우리 교단이 좋고 자랑스럽습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고신과 고려의 통합이 자랑스럽습니다. 통합 후 (구)고려 동문들이 연합하여 학원이사로, 고신세계선교회 이사로, 이단사이비연구소장으로, 동문회 임원으로. 각 상비부에서... 각처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운 하모니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통합입니다. 이렇게 배려해 주고, 사랑해주는 우리 ‘고신’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따라서 통합기념교회가 다시 설립되어 통합정신이 훼손되지 않고 계승되어 아름다운 교단을 잘 보전하고, 또 더 아름답게 발전되기를 기원하는 바램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 통합기념교회 설립을 이행하라! * 전국 노회와 교회의 목적 헌금을 반환하라! 2022년 7월 중순 신앙 열정이 여름 태양처럼 뜨겁기를 기도하며... ※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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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2
  • [신재철 목사] 안녕, 대전(大田) : “전학왔니더”
    “푸를 청(靑), 소나무 송(松). 청송에서 대전으로 전학왔니더.” 전학 수속이 끝나고 들어간 교실. 담임 선생님께서 친구들에게 자기소개를 해보라 말씀하셨다. 나는 큰 소리로 나의 고향 이름을 소개하며 인사했다. 아이들이 나의 인사보다 더 크게 웃는다. 왜 웃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정해주신 빈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와 다르게 아이들 얼굴이 뽀얗다. 우리 엄마가 읍내에서 사준 이랜드 옷이 촌스럽게 느껴졌다. 어쩐지 다들 공부도 잘 할 것 같다. 주눅과 함께 찾아든 두려움도 잠시. 쉬는 시간에 몰려든 아이들의 질문 세례에 정신이 없었다. 자꾸 말을 시킨다. 그리고 아이들은 더 크게 웃는다. 아마도 나의 사투리가 재미있고 신기했던 것 같다. 대놓고 놀리는 것은 아닌데 뭔가 찝찝하다. 촌놈 하나 전학 오니 신기해서 구경하러 온 느낌이다. “뭐여~ 내가 언제~” “니가 그랬잖여~ 왜그랴~” 나를 구경하러온 친구 무리와 떨어진 곳에서 조금 큰 소리가 난다. 제법 덩치 큰 남자 아이 둘이서 대화를 하고 있다. 내게 몰려든 아이들이 이제 그쪽으로 몰려간다. 아직은 인사도 제대로 못한 옆 짝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큰소리로 대화하는 두 명의 친구, 그곳으로 몰려드는 아이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첫인상이 좋았던 짝은 웃으며 답한다. “응, 쟤들 싸우는 거야. 그래서 구경 간거지모.” 응? 싸우는 것이라고? 저렇게 느린 말로, 저렇게 너그러운 톤으로 싸움이 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있던 경상도에서는 싸움이 나면 일단 말로 여럿 죽인다. 목소리도 얼마나 큰지 말한 대로 곧 실천할 것 같은 위협이 느껴진다. 경상도 말은 나름 살가운 인사도 종종 살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해를 받기도;; 뭔가 대전 친구들은 푸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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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1
  • 마음을 여는 시 [신광열 목사] 걱정
    사람이 없어 걱정이다 강 같은 어머니가 없고 산 같은 아버지도 없다 길 같은 선생님도 별 같은 지도자도 흙 같은 목회자가 없어 참으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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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을 여는 시
    2021-03-24

실시간 기고 기사

  • [기고] 나는 정치 안 한다!
    “나는 정치 안 한다”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이 말 속에는 정치를 나쁘게 평가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 목사’라는 말도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오늘날 목사와 장로들의 사리사욕과 그것을 위한 안하무인의 협착 행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는 정치 안 한다”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현실의 안타까운 모습들 때문에 “나는 정치 안 한다.”라고 해야 건전하게 목회하는 목사처럼 보입니다. 우리 헌법 제2부 관리표준을 보면 예배지침에 이어 교회정치가 나옵니다. 교회정치는 교회, 교인, 교회 직원, 목사, 장로, 집사 및 권사, 준직원과 임시직원, 교회 치리회, 당회, 노회, 총회, 교회 회의 및 소속기관, 선교 및 대외교류, 재산, 각종 고시, 헌법개정 등, 교회를 구성하는 전부를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만 살펴보아도 “나는 정지 안 한다”는 주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치 안 하면 목회를 못 합니다. 정치 안 하면 교회를 바르게 세우지 못합니다. 인간의 교만한 속성상 바른 정치를 하다가 힘을 쥐게 되면 정치꾼으로 변질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타락한 본질적 속성 때문에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정치를 안 한다고 하는 것은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목사를 그만둔다는 것보다 못한 선택임을 자인하는 결과입니다. 홍해를 건너 해방된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리 잘 봐 준다 해도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한 상황에 모세는 자신의 목숨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보려고 합니다.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11:14-15) “당신 새끼지 내 새끼요?”, “저 새끼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소!”, “그 전에 내부터 죽이소!”, 아들의 잘못에 대해 엄마로서 더 이상 방법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하는 모습이 쉽게 연상됩니다. 사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완전한 장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생들인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마음을 발견하기에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 백성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을 향해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여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와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른 정치는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바른 정치는 완전한 장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는 하늘의 장자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를 불리기 위한 정치라는 발상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 역시 이스라엘을 심판하여 멸망시키는 것이 본심이 아니셨기에 모세의 희생적인 중심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노여움을 푸시고 모세를 축복하며 그의 짐을 들어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11:16-17) 70명의 지도자가 세워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통치 방법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통치 방법은 동일합니다. 70명의 지도자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수행하는 모세의 짐을 함께 담당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짐을 함께 담당하라고 세운 지도자들이 오히려 모세의 짐이 되어버렸습니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 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출18:21-22) 모세의 일을 쉽게 하기 위하여, 모세가 감당해야 할 짐을 함께 지기 위하여 지도자들이 세워졌습니다. 교회 내에 조직이 생겼고,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소위 정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잊어서 안 되는 것이 이스라엘의 통치는 하나님의 손 하나에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정치를 넘어 정치꾼이 되어버리니 하나님의 손을 자신들의 손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선악과에 손을 대고, 바벨탑을 쌓아 올렸습니다. 사람을 만드시면서 만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는데,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정치꾼이 되어버렸습니다. 부부관계도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바른 정치가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부부가 됩니다. 가족이나 구역, 기관, 교회, 당회는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의 통치를 위한 바른 정치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정치한다, 안 한다.” 해도 사실 모든 목사는 정치하고 있습니다. 정치해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 정치를 안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깨끗한 척, 거룩한 척 외식하는 바리새인 화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불신앙적인 책임회피의 말인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이미 고도의 정치꾼이 되어있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보수 재건?? 신 보수?? 개혁에 몸담고 개혁에 표 던진 이들의 모임 2-3년 전에 신보수라는 말이 등장하더니 급기야 지난 연말을 시작으로 새해 벽두에 보수재건이라는 대단한 주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뼛속까지 개혁이라고 주장하던 자들이 신보수를 만들어 보수를 재건하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보수와는 전혀 상관없이 평생을 소위 개혁으로 살던 사람들이 신보수의 등에 올라타고 고신을 위한 보수재건을 외치고 있습니다. 현재 고신이 개혁이라는 계파로 완전히 기울어 법도 필요 없는 상황까지 와 버렸으니 다시 보수를 일으켜 세워 한쪽으로 기울어진 교단을 바로 세우고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거룩한 희생의 명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뼛속까지 개혁이 되기도 하고, 뼛속까지 보수가 되기도 하는 자를 중심으로 고신을 위하여 보수를 재건해야 한다고 합니다. 평생토록 개혁진영에 있던 사람들이 고신을 위한 보수가 되어야 한다고 기치를 내겁니다. 오늘날 내로남불의 세상 정치도 이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며 저변확대를 위해 마치 대단한 희생이라도 하는 듯 들러리를 섭니다. 보수재건을 위하여 말입니다. 입각하지 못하면 사람이 모이지 않기에 입각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내세워 입각을 시키고 사람들을 불러모아 보수를 재건하자는 주장입니다. 천국에 계신 전임 신총회장님께서 탄식을 할 것 같습니다. 이러니 많은 목사의 입에서 “나는 정치 안 한다.”라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뼛속까지 개혁인 사람, 한평생 개혁진영에서 일한 사람들, 보수진영에 있었지만 자신의 이익 추구에만 혈안이 되어 언제든지 변질을 일삼아 왔던 자들이 이제 고신의 균형발전을 위하여 보수를 재건해야 한다는 위대한 명분을 내세워 당당하게 주장하는 모습들이 정말 가관입니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입니다. 입각해서 사람들이 모이면 한 자리씩 주어 조직을 키우면 힘 있는 보수가 됩니까? 지금 교단을 지탱하는 힘이 매관매직에 있는 것 같은데 보수재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그런 식으로 보수가 재건되지도 않겠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정치는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오늘날 세상 정치의 타락은 교계 정치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요, 결과입니다. 교단을 위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정치한다는 자들이 세상 정치하는 자들보다 하나님을 더 의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까지 망령되이 사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는 정치 안 한다.”라고 하면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고 거룩한 외식에 만취되어 있습니다. 고신의 동지 여러분 위기라고 말만 하지 말고 제대로 합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마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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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6
  • [기고] 아무리 급해도(2)
    아무리 급해도(3) : 논문표절 최근 몇 년 사이 대학 총장과 총장 후보의 논문표절 문제가 자주 불거졌습니다. 인터넷에 “대학 총장 논문표절”이라고 검색하면, 국내외 많은 대학의 논란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경우 사퇴라는 절차를 밟았고,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많은 논란 때문인지 교육부 역시 최근 연구 부정행위에 대해 아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로 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학교마다 ‘연구 윤리 진실성 위원회’ 같은 기구를 통해 특히 총장 후보에 관한 엄격한 자격 검증을 거치도록 합니다. 대학 총장은 교수들과 연구자들을 이끕니다. 연구에 부정행위가 있다면 한평생 연구로 씨름해 온 분들을 이끌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신임 총장의 2004, 2005, 2007, 2008년 출판 논문들은 각각 심각한 수준의 표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중 게재, 자기표절, 논문 쪼개기, 덧붙이기 출판 등의 연구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이미 알려졌습니다. 고려학원 이사회 역시 이 사실을 분명 알았으며, 그 심각성을 인지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총회 운영위에서도 논문표절에 관한 우려로 인해 반대의견이 나왔지만, 이사장은 “연구 윤리규정이 제정되기 전인 2017-18년 전에 자신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대법원은 이를 표절이라 보지 않는 판례가 있다”라며 설득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표절은 인정하는데 대법원이 표절이라 보지 않으니 괜찮다는 겁니까? 이런 내용이 공개된 상황에서 기독교 대학을 자부하며, 개혁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고신대학교를 비롯한 고려학원이 이런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까? 낯 뜨거워서 기도회를 어떻게 합니까? 지금 이 심각한 문제가 교육부를 통해 신임 총장의 전 소속 학교인 백석대학교에 의해 조사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인간적인 관계로 인한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닌 정확한 조사와 판단을 기대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생활의 순결에 위배됩니다. 아무리 급해도(4) : 교단 가입의 부당성 고신총회 헌법 제57조 다른 교단 목사의 가입에 보면 “다른 교단 소속 목사가 본 교단 노회에 가입하고자 하면 반드시 시무교회와 함께 가입하여야 하며 다음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총회 어느 노회에선 이런 것을 살피지 않고 그냥 원래 출신이 지역의 교회니까 받자고 했다고 합니다. 타 교단 목사의 가입 절차가 총회 법에 어긋난다면 원인 무효입니다. 지금도 대다수의 노회에서는 타 교단 출신의 목사 가입을 엄격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례가 되면 타 교단 목사 가입이 불법으로 노회마다 행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적은 글에 대해 고신대의 모 교수가 글로컬 대학을 비판하면서 소위 고신 정체성 운운했는데 이런 부당한 방법으로 교단 가입한 것은 고신 정체성과 일관성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신앙의 정통에 위배됩니다. 총장은 도덕성에 흠이 없어야 교직원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가 있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논문표절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총장이 다른 교수들, 직원들의 비도덕적인 면을 어떻게 지도할 것입니까? 정관개정의 절차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려학원의 질서를 잘 세워 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겠습니까? 교단 가입 절차에 문제가 있는 목사가 교단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울 수 있습니까? 대법원의 판례를 예로 들어 표절 문제를 넘어가려 한다면, 특정인을 선거에서 유리하도록 법을 개정하며 조치한 경우에 대해서 공직자 선거법 위반이 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 총장의 선출과정에서 드러난 정관개정의 절차 문제나 교단 가입의 절차 문제를 사회법에서 다룬다면 원인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도덕적 결함을 지닌 총장이 학생들 앞에서 교단의 핵심 정신인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외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선임한 이사회와 총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신은 사람을 못 키운다는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대로 세워야겠다면 불법을 계획하고, 눈감고, 시행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논문표절은 본인이, 정관개정의 절차적 문제는 고려학원 이사들이, 그리고 노회 가입은 그 노회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총회 임원회 역시 이 모든 일을 방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알고도 묵인하고 강행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야 고려학원이 삽니다. 기워야 할 옷이 있다면, 그리고 좋은 옷을 만들고자 한다면 제대로 해야지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총장이 열심히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약점과 비합리적인 것과 비윤리 불법적인 모든 것을 덮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고신대의 어려운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교육부의 글로컬 대학 진입과 부산광역시의 라이즈(RISE) 사업을 수주해야 하는데,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할 총장이 장관이나 시장을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두가 손뼉 치고 따라갈까요? 선임된 총장을 위해서 한 일들 같습니까? 얼마든지 일 잘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족쇄를 채워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닙니까? 아니 족쇄를 채워 소신껏 일을 못 하게 하는 것을 넘어 사리사욕을 채우지는 않을지 심히 염려됩니다. 이런 사실들을 아는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비웃지는 않을까요? 개인 어느 누구를 비웃는 것이 아니라 출옥 성도의 ‘코람데오’ 신앙을 저버린 고신을 말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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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9
  • [황권철 목사] 세상의 빛 : 명곡교회
    명곡교회(이상영 목사)는 경남 창원시 의창구 원이대로 219번길 12에 있다. 명곡이란 명서동과 봉곡동을 연합한 지역 이름이다. 명곡교회는 1984년 2월 5일에 설립되었기에 올해 4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명곡교회는 1991년 1월 2일 지금의 예배당이 있는 곳에 건축하여 오기 전에 1987년 1월 24일 봉곡동 36-3 승창상가 3층에 있었다. 필자가 1991년 6월 30일 바로 그곳을 임대하여 할렐루야교회를 개척하여 설립예배를 드렸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경남법통노회에서만 34년 목회를 한 셈인데 그때 명곡교회는 창원시찰 산하 교회들 중에 중간 레벨에 속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독립군 같은 한 젊은이가 우리 시찰에 나타났다. 그가 바로 2004년 2월 8일에 위임을 받은 명곡교회 이상영 목사였다. 너무도 주관과 소신이 분명한 목회자였기에 당시로써 선배들과 어른들의 눈 밖에 나 있었던 특별한 친구였다. 그런데 이 목사는 교회를 사랑하고 지역을 품고 목회하는 비전이 남달랐다. 이제 와서 그가 사역한 목장의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세간에 그를 보는 안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창원시찰과 노회와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필자는 2023년 12월 30일 밀알교회 은퇴를 하면서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았다. 이때 이 목사가 당회장을 맡아 너무도 은혜롭게 일을 처리해 주었고, 은퇴예식을 감동의 장으로 집례 해 주어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은퇴를 하고 이제 고려파교회연구소 사역을 하며 지역교회를 돌아보기 위해 작은빛교회(성희찬 목사)에 이어 두 번째 순방으로 명곡교회를 찾았다. 목회자가 지역에 같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교회를 섬겨야 하기 때문에 주변 교회를 잘 모른다. 그러므로 그 교회의 예배모범이나 그 지역의 맞춤형 목회전략을 보기 위해서는 온 회중이 함께 예배하는 주일예배를 보면 쉽게 진단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오늘 명곡교회 11시 예배에 참석하여 받은 감동을 다음 몇 가지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예배가 밝은 축제의 장이었다. 필자는 11시 예배에 맞추어 20여분 전에 교회 도착하니 주차장이 가득 차 있어 주변 주택가에 주차하고 교회당으로 갔다. 입구 로비로부터 2층 예배실로 안내 하는 위원들의 복장과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뭔가 처음 오는 새가족들에게 설레임과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한 교회였다. 주보를 받아 보니 전면에 커피 잔 같이 생긴 호야 등 아래로 THE LIGHT(세상의 빛)란 금년 한 해를 시작하는 주제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다가왔다. 마지막 폐이지를 보니 “명곡교회는 지역의 가로등입니다”타이틀에 걸맞게 예배에서 느낀 감동이 너무도 잘 맞는 조화(concept)였다. 다음, ‘리셋 버튼 누르기’의 설교 제목이다. THE LIGHT(세상의 빛)이란 주제에 걸맞게 새해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역동성이 너무도 돋보인다. 이 목사는 주보에 요약(summary)한 설교 본문을 보면 첫째, 하나님께 새로운 다름의 첫 출발의 간구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품격, 성품, 새사람으로 덧입기를 간구하라고 했다. 둘째, 지금 당장 실천 가능한 것부터 구체적으로 고백하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리셋 버튼이 필요 없는 완전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셋째, 새 출발을 위해 곁에서 세워 줄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하라. 새로운 다름의 새 출발이란 결코 나 홀로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넷째, 내게 유익하지 못한 나쁜 습관을 제거하라. 새로운 다름의 가장 큰 방해물은 건강하지 못한 중독된 습관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새해를 시작하는 신년 백두에 이 같은 설교를 시리즈로 계속해서 변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닮아가는 새 사람을 입어 새로운 다름의 세계로 나아가는 변화를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설득력 있게 설교했다. 마지막, 이 목사는 언어 구사능력이 탁월한 리더이다. 그의 남다른 탁월함이란 언어구사능력이다. 이것은 리더의 자질이다. 리더는 대중의 신비에 각인될 한 마디로 표현하는 기술을 가진 자이다. 이런 면에서 이 목사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용어를 조금 다르게 표현해 청중들의 귀에 전혀 새로운 단어로 각인될 뿐 아니라 그것을 거듭 반복하는데도 늘 새로운 신선함을 더해 주는 언어창조능력을 가진 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면서 말씀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육이 혼재된 특별한 피조물이다. 인간은 언어로 하나님과 피조세계와 소통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 같은 언어를 잘 사용하는 리더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리더요 목양자이다. 에필로그로 아우는 역시 탁월한 목회전략을 가진 자이다. 예배는 엄숙하고 경건하면서도 거룩한 축제의 장이다. 안내, 찬양, 기도, 설교, 방송자막, 손님배려, 그리고 마침인사와 식탁의 섬김 모든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래 전에 읽은 존 웨슬리(John Wesley)가 한 말이 기억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여, 가능한 모든 장소에서, 가능한 모든 시간에,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가능할 때까지,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선한 일을 하라.”마지막 축도를 하고 나서 김수중 장로의 안내를 받아 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을 들고 명곡교회를 축복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2024년 1월 14일 11시예배 순방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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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4-02-08
  • [기고] 아무리 급해도(1)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사용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마음이 급하다고 서두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뜻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말입니다. 지금 고려학원 이사회가 이런 모습입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이해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총장이 중도 사임했습니다. 대학교의 특성상 여러 중요한 일에 총장 부재로 인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위기의식으로 인한 발 빠른 대처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사용하는” 모습이어서는 큰일입니다. 논문표절이라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을 총장에 선임했습니다. 이를 위해 불법적으로 정관을 개정했습니다. 총회운영위원회가 이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여하튼 이것을 인준하였습니다.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무너져가는 고신대학교를 살리겠다는 방법이 심폐소생술에도 못 미치는 듯 보입니다. 각종 기도회와 모금 운동이라는 획기적 자구책 없는 손 벌리는 방식으로 위기를 땜질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1) : 불법적인 정관개정 고려학원 이사회는 지난 73회 총회에 고려학원 정관개정을 의뢰했고 총회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총회에 상정되는 안건은 정확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개인이라면 당회와 노회를 거치고, 법인이라면 법인 이사회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결정한 안건을 상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총회는 바로 그 안건을 접수하여 다루어야 합니다. 지난 73회 총회는 고려학원 이사회의 이 정관개정 안건을 접수했고, 정관을 개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관개정 논의를 위한 임시이사회는 정작 총회를 파한 후 3개월이 지난 2023년 연말에 열렸고, ‘사후 인준’이라는 명목으로 통과시켰습니다. 이것이 총회 법을 따른 정당한 절차입니까? 총회는 결과적으로 이사회가 제대로 논의하지 않은 안건을 접수, 논의, 개정했고, 고려학원 이사회는 총회와 교단을 기만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정관개정을 서둘렀습니까? 총장선임과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이사회는 책임져야 합니다. 총회 정관에 따른 이사소환뿐만 아니라 법적인 책임을 물어 향후 몇 년간 총회 총대건 제한도 뒤따라야 합니다. 이것을 재단에서 몇 사람이 무리하게 진행했다면 그 관계자도 파면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은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세상에서도 볼 수 없는 불법이요 기만한 속임수입니다. 또한, 총회 임원회나 운영위원회가 이 일을 알고 있었다면 이들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술 담배나 주일성수에 목숨을 걸고 심하게 다루던 총회가 거짓말에는 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급해서 그렇습니까? 위기 상황이라서 그렇습니까? 위기라면 거짓말과 불법적인 결정을 죄의식 없이 해도 됩니까? 우리가 신사참배 반대 출옥 성도의 후손이 맞습니까? 아무리 급해도 우리가 너무 거짓말을 죄의식 없이, 부담감 없이 해서입니까?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아무리 급해도(2) : 총장 공모와 선출투표 따라서, 정관개정 절차가 끝난 후, 총장 공모를 다시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정관개정 이전에 총장 공모를 했기 때문입니다. 개정된 법에 따라서 총장을 다시 공모하고, 개정법에 따라 투표해야 합니다. 만일 개정된 법으로 총장을 뽑아야 한다면 총회가 파한 후 총장 공모를 다시 해야 총장으로 입후보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전 법을 따라 공모한 대로 지원한 후보를 놓고 투표한다면, 공모 당시의 법으로 투표해서 총장을 다시 선출해야 합니다. 총회가 소집되기 전에 이미 공모되었고 총회 시 정관이 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총장 공모는 이전에 하고, 법은 개정한 것을 따른다? 혹시라도 불법으로 뽑힌 현재 총장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교묘하게 총회가 파한 후 서류를 접수해서 총장 선출을 위한 투표를 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이는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사로운 생각으로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했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며 그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고신총회는 이와 비슷한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선출직에 출마하고 당선된 사람들이 임기를 마치기 전 사퇴하고 다른 선출직에 출마할 수 없다고 72회 총회에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법을 소급적용할 수가 없다고 해석하고선 선출직에 있었던 사람이 그사이 사퇴했고, 다시 73회 총회 임원에 출마하여 현재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개정된 법은 개정된 이후부터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인 법 상식입니다. 이를 무시하고 강행한 고려학원 이사회는 “알고 그랬을까요? 모르고 그랬을까요?” 몰랐다면 무능한 부적격자들입니다. 알고도 그렇게 했다면 정상적인 고신인이라 할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정관개정은 총장 선출투표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전 정관에 따르면, 총장 선임 시 이사회의 3분의 2를 득표해야 합니다. 하지만 개정안은 1차는 3분의 2를, 2차는 과반을 요구합니다. 물론 법리적인 해석에 따라,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평생 교회를 섬기며 이런 일을 다룬 목사들이 아닙니까? 왜 이 정관은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는 것이 안 됩니까? 1차가 3분의 2, 2차가 과반이라면 1차에 찬성이 반대보다 많은 경우에 2차 투표를 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하지만, 언론에 이미 공개된 대로 1차에 5대 6으로 반대표가 많았던 가운데 2차 투표(7대 4)를 해서 뒤집었습니다. 1차에 반대가 많다는 것은 2차 투표를 실시할 수 없는 부적격자라는 말입니다. 교회 직분자 선거도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지 않습니다! 그럼 1차 투표에 단 한 표 받은 직분자 후보도 2차에 올리시지요? 수치 문제가 아니라, 법 정신의 문제입니다. 결국, 신임 총장을 반드시 총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이 모든 불법적인 과정을 만들어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코람데오’를 이념으로 삼는 고려학원이 ‘하나님 앞에서’ 총회와 교단을 기만한 것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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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기고] 고신, 우이독경(牛耳讀經) 교단과 대학교
    지난 글에 대한 반론이 나왔습니다. 고신대학교 모 교수님이 쓴 글입니다. 반론이라는 말 자체는 없지만, 내용을 보면 반론이 확실합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것이라 짐작했던 터라 이 반론이 참 반갑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내용은 ‘우이독경(牛耳讀經)’,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지난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염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본질을 흐리는 말싸움, 감정싸움으로 비치지 않길 바랍니다.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에 나온 반론도 ‘위기’, ‘골든타임’을 표면적으로는 인정하는 듯 보이니까 말입니다.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지난 글에서 지적하고자 했던 것은 간단합니다. “언제까지, 얼마가 필요한가?” 다시 설명해 드립니다. ‘골든타임’으로 접어든 ‘위기’의 고신대학교에 관한 교단 지도자들의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교단 지도자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작금의 이런저런 노력이 귀하지 않다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와 성도를 설득해 기부금을 받는 정도의 방법이 주요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본질을 해결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고신 내부의 큰 소리를 들어달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고신교단의 교회는 고신대학교를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그런데 ‘위기’와 ‘골든타임’이라는 상황에 다시 더 큰 기부금을 요청하며 걷고 있습니다. 기도회를 하면서 말입니다. 저의 제안은 언제까지, 얼마를 기부해야 하며,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묻는 것입니다.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제는 정확한 판단과 분석이라는 것을 보고 싶고, 봐야 할 때라서 그렇습니다. 저는 저의 이 제안이 간단명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론을 보니 제 제안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장황하지도 않은 장황한 역사만늘어놓았습니다. 2003년, 2014년, 2015년의 이야기가 지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73회 총회가 드디어 제대로 된 대책을 내며 일을 시작했다는 생색뿐입니다. 과거의 장황한 역사를 꼬집은 것은 이 ‘생색’을 돋보이게 하는 양념이었군요. 책임져야 할 자들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에게 말하느냐는 마음이 행간에 엿보입니다. 설명이 어려운 듯하여 다시 설명해 드립니다. 과거에는 전혀 기부금이 없었습니까? 역대 최고 수준의 기부금을 언급하는데, 이것이 고신대학교를 살릴 수 있습니까? 이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판단과 분석을 토대로 노력하자는 겁니다. 본질을 흐리지 마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고신대학교의 상황에 관한 미화뿐입니다. 과거에는 전혀 기부금이 없었고, 과거에는 교직원들의 헌신이 없었습니까? 교수의 81%, 직원의 42%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면, 교수의 19%와 직원의 58%와는 갈등이 없습니까? 내부적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겁니까? 아니면 듣기 싫은 겁니까? 지금 모든 지방 사립 대학은 연합 대학을 통해서라도 글로컬 대학에 진입하는 일에 대학의 사활을 걸고 있는데(참고,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58472), 글로컬 대학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은 도대체 어떤 근거와 데이터를 가지고 하는 말입니까? 대학에 몸담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카테고리가 헷갈리거나, 아니면 호도(糊塗)하는 유희삼매(遊戱三昧)만있습니다. 교육부와 지자체가 발주하는 사업에 참여한 결과로 받은 금액이 64억 중 교직원 인건비, 학교 운영비로 지출된 금액이 1원이라도 있습니까? 이 금액은 그야말로 프로그램을 위한 비용입니다.혹시 64억을 받아 학교 살림이 나아졌는데도 ‘위기’와 ‘골든타임’에 동조하며 계속 모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시는 겁니까? 반론자도 고신대학교의 문제가 학령인구 감소와 그에 따른 재정위기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안으로 학생들이 공부와 자기 발전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을 제시하다니요? 또한, 구조조정을 언급하면서 실제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일반적인 상식은 ‘세속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시하면서 교직원 연봉의 십일조를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것을 언급하다니요? 도대체 구조조정과 연봉의 십일조 기부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이것이 어떻게 전체 고신대학교를 위한 상생이 되는지요? 수익 구조 다각화에 대한 노력과 5년 재정 구조에 대한 정밀 시뮬레이션 완성? 좋습니다. 바로 이런 대책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본질을 흐리지 말고, 그 방법을 고신대학교를 위한 더 큰 헌신과 헌금을 요구하는 고신 교회 앞에 설명해 주십시오. “모금하다가 안 되면 할 수 없고”라는 식의 미봉책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동참하지 않는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의 염려와 중심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고신 사랑’을 폄하하지 마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가짜 뉴스라는 지적만있습니다. “재학생 등록률과 신입생 충원 결과를 보면 1년 100억 적자가 날 것이 분명한 사실인데”라는 표현이 가짜 뉴스인가요? 제 나름대로 정보를 통해 파악한 금액입니다. 저의 부족함 때문에 계산상 조금의 오류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주는 이가 없으니 그럴 수 있지요. 그런데 이게 가짜 뉴스라고 지적받을 표현인가요? 그렇다면 반론자는 자료를 다루는 교수 아닙니까? 병원의 적자는 어떻습니까? 학교법인 고려학원의 적자가 100억 이상 나는 것이 가짜 뉴스라면, 본질을 흐리지 말고, 진짜 뉴스로 ‘정확한 적자 금액’을 분명히 밝혀주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오히려 가짜 뉴스만 있을 뿐입니다. “혹자는 의대와 복음병원을 헐값에 인수하려는 사람들과 모의를 벌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위기라고 말만 하면서 오히려 잘못된 과장 정보로 위기를 부풀리기만 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신학교수인 반론자는 정말 신앙 양심에 화인을 맞았습니까? 십계명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동료를 향한 가짜 뉴스를 은근히 양산하는 말장난을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잘못된 과장 정보로 위기를 부풀렸다면, 지금 반론자가 말하는 위기와 골든타임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이 정도 매너의 교수가 신학교수로 학교 강단에 있는 고신의 현실이 개탄스럽기까지 합니다. 본질을 흐리는 공격을 멈추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질 생각도 없는 나팔수의 아부만 있을 뿐입니다. 도대체 교수님은 우리 고신교단과 고신대학교에서 어떤 책임 있는 자리에 있습니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개진하는 것은 신자 개인의 자유이나, 총회와 고신대학교를 대변하는 듯한 이런 주장으로 교단과 고신대학교를 갈라치기 하는 (파탄 내는)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나팔수의 아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이것이 극단적인 분리주의 사고방식인 것은 모르실 리 없겠지요. 본질을 흐린 채 말장난, 정중하고 정확한 논의를 촉구합니다. 정확한 사실을 제시하는 책임 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 독자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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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7
  • [황권철 목사] 교회 순방 - 작은빛교회
    믿는 도리를 묻고 답하는 교회 작은빛교회(성희찬 목사)는 경남 창원시 의창구 원이대로 210번길 67-10에 있다. 이 교회당은 필자가 밀알교회를 개척하여 건축한 교회당이라 남다른 애정이 있는 교회이다. 2018년 8월 7일 경남법통노회 제188-1회 임시노회에서 밀알교회가 한사랑교회와 합병건이 결의됨으로 성산구 남양동 한사랑교회당으로 이동한 이후 마산제일교회를 시무했던 성희찬 목사가 중심이 되어 작은빛교회를 개척했다. 2023년 12월 30일(토) 목양 44년, 밀알교회 개척 28년, 그리고 고려파교회연구소 사역 7년째 현장 목회를 내려놓고 은퇴를 하면서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았다. 마침 교회가 준비한 사택과 연구소가 작은빛교회와 인접해 있기에 매일같이 만나는 좋은 이웃으로 지나게 되어 너무도 감사하다. 그간 임상목회현장에서 고려파교회연구소 사역을 겸하여 하니 노회와 총회 산하 교회를 돌아볼 기회가 없었는데 은퇴와 함께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고 본 교회를 후임자에게 맡기고 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연구소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은퇴를 하고 첫 주일을 맞이하는 주간으로 작은빛교회를 순방하게 되었다. 작은빛교회를 담임한 성희찬 목사는 네덜란드 아펠도른 신학대학에서 유학하여 개혁교회 전통을 고수하는 목회자이다. 2024년 표어가 “믿는 도리를 묻고 답하는 교회”로 정한 것을 보아 뭔가 독특한 점이 돋보인다. 이 교회는 대부분 한국교회가 장로교전통을 고수하는 입장에서 개혁교회의 전통을 그대로 지켜 가려고 몸부림치는 교회이다. 필자가 예배에 출석하고 보니 거룩한 영성과 순결한 말씀인 언약사상이 예배 중에 강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필자가 처음으로 참석한 작은빛교회 예배를 통해 받은 임펙트는 다음과 같다. 먼저, 개혁교회 전통을 올곧게 지켜가는 교회였다. 한국장로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전통이 공존하고 있다. 사실상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를 구분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보편적으로 보면 교회정치 부분은 장로교회 제도를 따르며,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은 개혁교회 전통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장로교회는 노회중심의 치리회 기능이 강화 된 반면에 개혁교회는 당회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개혁교회는 예배시 시편 찬송을 즐겨 부르며 신조와 교리공부를 강화한다. 작은빛교회는 예배시 시편 찬송을 즐겨 부르고 예배 중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묻고 답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오늘날과 같은 세속적인 가치관이 교회로 침투해 들어오는데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지각과 통찰력을 가지게 하는 것은 일반교회에서 볼 수 없는 거룩한 도전이었다. 다음, 온 세대가 함께 하는 예배였다. 보편적으로 장로교 전통을 따라 한국교회는 주일학교 혹은 교회학교로 이름 하여 유초등부와 중고등부(SFC), 그리고 대학, 청년부로 나누어서 예배한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언약사상을 중시하여 온 세대가 함께 예배한다. 장로교 정치제도를 중시하는 교회는 예배를 세대별로 구분하여 드림으로 교육적인 면에서 효율성을 강조하기도 하나 개혁교회는 온 세대가 연합하여 한 자리에서 예배함으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언약 아래 있는 예배자로 자라가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작은빛교회는 주일 11시 예배에 온가족이 함께 예배한다. 시편을 찬송하고, 요리문답을 묻고 답하고, 그리고 시편 교독을 낭송하는 것이 성인이나 유아 구별 없이 온 세대가 언약 아래서 하나임을 가르치는 다음세대를 세워 가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마지막, 성 목사의 설교에 묻어나는 독특한 영성의 설교 화법이었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종합예술이다. 하나님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인간을 만나 주신다. 그러나 보편적으로는 예배를 통해서 만나 주시고, 예배 가운데서는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다. 이런 면에서 예배에 있어서 목사의 설교는 너무도 중요하다. 성 목사는 성도들이 일상생활에서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 언약사상에 있어서 너무도 확고한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마침 이번 주간이 한해를 열어가는 신년예배인지라 에베소서 4장 17절에서 24절 말씀으로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할 이유”에 대하여 성도들이 세속적인 삶의 가치관으로 물들지 않고 심령의 변화를 통해 언약 위에 굳게 설 것을 강하게 말씀하셨다. 헤럴드 마이라와 마셜 셸리가 지은 『리더십 시크릿』이론 중에 현명한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 중에 첫째가 ‘학자의 두뇌’요 둘째가 ‘아이의 마음’이요 그리고 셋째가 ‘철면피 같은 얼굴’이라고 했다. 이 셋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철면피 같은 얼굴”이라고 했는데 이는 유대종교지도자들처럼 외식적인 종교인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부족과 연약성으로 양심을 짓눌려 와도 언약에 굴절됨이 없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이다. 작은빛교회는 규범이 실종 된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언약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이기에 2024년 한 해 동안 강력한 부흥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면서 축도를 하고 예배실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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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4-01-23
  • [기고] 위기의 고신대학교, 교단의 책임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는 수년 동안 고려학원이 위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두 번의 고신총회 부총회장에 출마하면서도 계속 ‘골든타임’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제게 돌아온 반응은 “고려학원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얼마든지 살릴 수 있다.”, 혹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위기를 조장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수년 동안 이사회 내에서도 위기론을 외치며 투쟁한 분들이 있었음에도 정치논리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한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최근 “고려학원이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셨던 분들이 ‘위기론’을 언급하며 대처하는 모습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도회를 하고, 모금 운동을 하며, 구조조정을 비롯한 혁신을 강조합니다. 이제라도 “고신호가 침몰하고 있다.”라는 위기를 인정하고, 공감하며, 노력하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다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교단 지도자들의 작금의 이러한 노력이 정말 우리 교단의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지는 의문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짚어 봅니다. 교직원에게 헌신을 요청할 수는 있으나,일정 부분 강요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구조조정을 앞두고 계약직에게 헌신을 요구한다는 것은 일종의 횡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방식으로 교직원의 기부금을 모금해도 한 달 치 급여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이것이 고신대의 재정 파탄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매년 전 교직원에게 기부를 요구하고, 강의료와 연구비, 그리고 각종 수당을 삭감하며, 구조조정을 연례행사로 하면 학교를 정상화할 수 있습니까? 재학생 등록률과 신입생 충원 결과를 보면 매년 100억 이상의 적자가 날 것이 분명한 사실인데, 전체 고신 교회가 다 달라붙어 매년 100억 원의 헌금을 할 수 있습니까? 한다면 학교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정원을 감축하고, 학과를 통폐합하며, 행정 조직을 개편하는 구조조정에는 사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합니다. 이런 예산 확보 없이 소위 정직원을 해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같으면 해고되는 대로 따를 수 있습니까? 결국, 일부 계약직과 일용직을 정리하는 선에 그치는 구조조정이라는 것을 시작부터 알 수 있는 데, 이것이 과연 고신총회 앞에 내어놓는 책임 있는 대안입니까? 고신대학교의 재정 악화로 의대생들의 등록금이 의대 운영비로 사용되지 못하는 가운데 영도와 송도 간의 갈등이 야기되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지적해온 직전 의대 집행부는 고려학원 이사장과 이사회에 의해 특별감사를 받고 물러나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 상황입니다. 또한, 부산의 다른 14개 대학들은 함께 조직을 구성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보조를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신대학교의 이름은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고신대학교는 하버드대학교 총장이 자진 사임한 바로 그와 같은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심도 있게 논의하지도 않으면서 기도회와 교회 모금 운동만을 벌이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기만하는 무책임한 행위입니다. 저를 기도회를 헐뜯는 사람으로 몰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정성 어린 사랑을 깎아내리는 사람으로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확한 진단과 분석 없이 기약도 없는 교회의 고혈을 짜는 외식적인 퍼포먼스와 눈속임을 중단하자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 기관이 존재하지, 기관을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과 제안을 합니다. 첫째, 교육부를 비롯한 부산광역시의 대학지원 예산 수주 없이 1년에 100억 이상을 매년 총회 산하 교회들이 감당할 수 있습니까? 이번만 모금 운동에 참여하면 괜찮아집니까? 언제까지, 얼마를 모금하실 계획입니까? 정확한 데이터와 근거가 없다면 자신의 임기만 넘기자는 식의 대처 방안을 즉시 중단해야 합니다. 교회를 기만하는 행위를 멈추고, 제대로 된 분석과 진단을 고신교단 앞에 내어놓으십시오.교육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요구하는 조건을 맞추어 지원받는 방법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반드시 수주해 내도록 해야 합니다. 수주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사회와 총회 차원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둘째, 고신대학 전체 학생 수 3,300여 명 중, 의대와 간호대를 제외하면 몇 명이나 등록했으며, 또 할 수 있는지요? 총 2,000-2,500여 명의 학생으로 대학 운영이 가능합니까? 가슴 아프지만, 학생 수가 줄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교수의 수적인 조절은 필수입니다. 이를 위한 재원 마련 대책이 당연히 따라야 합니다. 신학대학원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 수에 정비례하여 신대원 교수를 줄일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으로 교수의 수를 조정하고, 신학대학원의 규모를 줄여 운영할 대책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셋째, 이런 내용을 기반으로 정확한 분석과 전망을 제시해 주십시오. 이것을 바탕으로 전체 고신교단이 이해할 수 있는 단기, 중장기 발전계획을 제시해 주십시오. 그래야 “눈 가리고 아웅” 하는미봉책으로 인한 외줄 타기 교단이 아니라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책임 있는 교단이 될 것입니다. 나가면서 ‘미봉책’으로는 침몰하는 고신호를 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잘못을 미봉으로 적당히 넘어가면 그 잘못을 다시 반복하기 쉽습니다. 일은 근본을 살펴서 대책을 세워야 허술함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은 고신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알 권리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모든 사실을 알리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고신총회, 고려학원 이사회, 그리고 고신대학교 집행부 모두가 무거운 책임감으로 맡은 역할에 충실하면서, 누군가는 반드시 그 책임을 지고 앞장설 때 고신대학교와 우리 고신교단은 회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독자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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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8
  • [기고] ‘제3회 경남퀴어문화축제’를 대응하는 기독교의 입장
    경남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에서는 2023년 11월 25일(토) 롯데마트 옆 중앙대로에서 각종 참여형 부스를 설치, 공연, 거리 행진, 런웨이 등의 방법으로 추최측 추산 1천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제3회 경남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도내 종교계, 시민단체등은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행정당국인 창원시청에 행사를 불허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이다. 정통 개혁주의기독교 입장에서의 퀴어는 반성경적이고, 하나님의 창조섭리에도 맞지 않는 이단성의 분야이다. 하나님은 레위기를 통해 남색하는 자들에 대해 ‘돌로 치라’는 명령을 사용하시며, 그 일이 분명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파괴하는 위법행위임을 분명히 하셨다. 경남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의도는 명확하다. ‘퀴어’의 의미를 좋은 의미로 바꾸겠다는 것일 것이다. ‘퀴어’(queer)라는 용어는 ‘낯설고 이상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대중에게 노출시키고 친숙화 시켜 좋은 의미로 - 또는 무감각해지게 하기위해 – 바꾸어 대중 앞에 당당하게 서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기독교 내에서도 이를 보완해 주기 위해 퀴어신학이 나올 지경이다. 물론 퀴어신학계 내부에서 조차 통일된 신학이 나오진 않았으나 이는 분명 기독교의 이미지에 손상을 주기에는 충분했고. LGBT에게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것일 것이다. 예장통합의 총회에서 보고된 ‘퀴어신학(동성애, 양성애, 성전환)에 대한 연구보고서’에서는 “1980년대 일단의 사람들은 본래 부정적으로 사용되던 ‘퀴어’라는 용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논리에 비판적이었던 기독교 전통신학에 맞서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주요 개혁주의교단들은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먼저 합동의 경우는 명확하다. 예장합동 총회(총회장 전계헌 목사)는 제102회 총회를 통해 동성애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였는데, 총대들은 신학부 청원 사안인 "동성애자와 동성애 동조자 및 옹호자의 본 교단 신학교 입학을 금지하고 동성애 신학을 지지하거나 가르치는 교직원의 임용을 금지한다. 사후에 적발되었을 시 학교 상벌위원회와 총회에서 징계 시벌한다"는 내용을 결의했다. 더불어 헌법개정위원회가 제출한 헌법 개정안 가운데 '목사의 직무'를 규정한 기존의 조항(정치 제3조 제1~6항)에 "동성애자와 본 교단의 교리에 위배되는 이단에 속한 자가 요청하는 집례를 거부할 수 있고, 교회에서 추방할 수 있다"는 내용을 삽입하기로 했다. 고신 총회(예장고신·박영호 총회장(당시)) 또한 교단 소속 목회자·신학생·교수들의 사상을 전방위적으로 검증하고, 그 결과를 2020년 9월 22일 열린 제70회 총회에 보고했다. 보고서에 다르면 ▶전북노회는 '동성애 반대 법제화 및 전수조사' 청원을 받아 각 부서를 통해 사상 검증을 지시▶신학위원회에는 신대원 교수들 입장을 확인 ▶전국 노회에도 공문을 보내 목사 후보생들을 전수조사 ▶법제위원회(김하연 위원장)에는 동성애 지지자들을 처벌하는 관련 법규 제정을 검토하게 했다. 구체적으로 △강도사·목사 후보생 중 동성애·차별금지법·성평등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자에 대해서는 목사 고시와 신학 입학·계속 허락 청원 시 불합격 처리하도록 고시부 내규를 정하고 △신대원 교수는 이사회가 임용할 때 동성애 관련 옹호자들을 임용하지 않고 임용 후에도 동성애 관련 옹호를 할 때는 사직하겠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는 지침을 마련하며 △이미 목사나 교수가 된 사람이 동성애 관련 옹호를 할 때는 권징 조례에 의해 시벌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또한 예장통합도 같은 입장이다. 앞서 언급한 ‘퀴어신학(동성애, 양성애, 성전환)에 대한 연구보고서’ 결론에 “퀴어신학은 성경의 규범적 권위를 부인하며, 자의적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성소수자의 성애를 자연스러운 질서로 보며 더 나아가 성정체성의 구분마저 부인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상대화한다. 더 나아가 인본주의적 가치관과 기준에 의하여 전통적인 신학의 체계와 가치관을 파괴하는 세속화된 신학이다. 따라서 퀴어신학은 이단성이 매우 높은 신학이다. 이러한 이유로 본 교단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퀴어신학의 논리에 현혹되지 않도록 경계 해야 하고, 신학교에서도 신학도들에게 이 위험성을 교육하여 퀴어신학의 확산을 막아야 하며 퀴어신학을 옹호하는 어떠한 신학적 입장도 용납될 수 없다.”고 그 입장을 명확히 하였다. 우리 기독교의 생각은 일치되어야 하며, 혹시 일부 자유주의 신학이나 퀴어신학, 통일신학 등으로 인해 오염된 신앙들이 교회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단호히 이를 부정해야 할 것이다. 금번 경남퀴어문화축제를 바라보며 심한 우려의 마음이 든다. 또한 ‘죄가 관영’하기까지 참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실지 마음은 참담하기만 하다. 다행히 도민적 여론은 반대의 여론이 높다고 하니 마음이 놓이지만 25%나 되는 사람들이 이를 찬성하고 있다고 하니 이 또한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순간이라 하겠다. 김해기독교연합회 동성애대책위원회 유충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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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기고]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위엄을 입으소서!(시45:3)
    교회를 통해 각 세대마다 당신의 일을 위해 성령께서는 오순절에 교회를 탄생시키시고 시대마다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언약 하나님의 변함 없으신 사랑을 각인시켜 주시며 이 땅의 수많은 무명의 바울들과 무명의 다윗들과 그 용사들이 지금도 묵묵히 교회를 파수하며 믿음의 계승을 이어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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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4
  • [기고] 교회 정치를 교회 정치 되게 하라!
    교회 정치는 교회 직분자 손에 맡겨진 교회의 고유 권한에 속하는 부분이지만, 철저하게 성경과 신앙고백서에 근거해야 한다(참조. WC 25, 30-31장; 고신헌법전문 3항 교회 정치). 이런 점에서 교회 문서로서의 교회 정치는 비록 교회 안에서 그 사역적 권위가 인정되어야 하지만, 언제나 성경과 신앙고백서 아래에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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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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