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7-2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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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시선] 다양성을 말하면서 왜 다른 생각은 허용하지 않는가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내용의 카드뉴스 제작을 거부한 학생이 수행평가에서 0점을 받았다는 사례가 알려졌다. 학생은 반대 입장으로 과제를 제출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찬성 취지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과제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수행평가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공교육이 학생에게 특정한 가치관을 사실상 강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에서 찬반이 첨예하게 나뉘는 사안이다.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고, 종교와 양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입장도 있다. 학교가 이러한 사회적 쟁점을 다룰 수는 있다. 그러나 교육이라면 찬성과 반대의 근거를 함께 살펴보고 학생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찬성 입장만을 과제로 인정하고 반대 의견은 제출할 수 없게 한다면, 그것은 토론교육이 아니라 정답을 미리 정해 놓은 교육에 가깝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교육이 ‘다양성’과 ‘반편견’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다양성을 말하면서 성경적 창조 신앙에 따른 견해는 편견으로 규정하고, 그 견해를 밝힌 학생에게 불이익을 준다면 그 교육은 스스로 모순에 빠진다. 다양한 생각을 존중한다면서 특정한 생각만 허용하는 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또 다른 획일성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라는 말씀은 기독교 인간관의 기초다. 이는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차별하기 위한 주장이 아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엄하다는 고백인 동시에, 인간의 성이 창조주께서 주신 질서라는 고백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교육 현장에서는 생물학적 성보다 개인이 느끼는 성정체성을 우선하고,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개인이 선택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려 한다. 남자가 여자가 될 수 있고 여자가 남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나의 논쟁적 견해로 소개하는 것과, 학생들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가치로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직 세계관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아이들에게 논쟁 중인 젠더 이론을 확정된 진리처럼 주입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면 그 차이를 설명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신앙과 양심도 존중해야 한다. 경상남도교육청이 각급 학교에 안내했다는 용어 개선 사례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부모님’을 ‘보호자님’으로, ‘엄마·아빠와 함께’를 ‘보호자와 함께’로 바꾸도록 안내했다는 것이다. 물론 조부모나 친척, 위탁가정 등 다양한 양육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배려할 필요는 있다. 필요한 경우 ‘부모 또는 보호자’라고 함께 표현하면 된다. 그러나 부모와 엄마, 아빠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족 언어 자체를 고정관념이나 지양해야 할 표현으로 취급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양한 가족을 배려하는 것과 부모의 존재와 의미를 언어에서 지우는 것은 구별돼야 한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는 이른바 포괄적 언어 정책과도 닮아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 부모라는 표현 대신 보호자나 가족 구성원 등의 표현을 우선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가정환경을 배려한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배려를 위해 표현을 추가하는 것과 기존의 가족 언어를 지워야 할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공교육에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는 특정 종교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성경적 인간관과 가족관을 낡은 편견으로 취급하고, 그 신앙에 따라 다른 의견을 가진 학생에게 침묵이나 복종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국가와 학교의 중립성이란 기독교 신앙만 교실 밖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특정한 젠더 이론을 세워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차별받는 학생을 보호하는 것과 모든 학생에게 특정한 성윤리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것은 구별돼야 한다.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과 그 사람의 모든 주장과 선택에 동의하는 것도 같은 일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성과 결혼, 가족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아서도 안 된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명령하는 일이 아니라, 사실과 근거를 바탕으로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일이어야 한다. 다양성을 가르치려 한다면 반대할 자유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질문할 자유와 양심에 따라 판단할 자유가 없는 교실은 결코 자유로운 교실이라고 할 수 없다. ※경상남도교육청(교육감 권순기)은 ‘부모, 엄마·아빠’라는 용어 대신 ‘보호자’로 표기해 달라며 각급 학교와 기관에 발송한 ‘다양한 가족 형태 존중을 위한 고정관념 용어 개선 안내’ 공문을 공식 철회했다. 경남교육청은 7월 13일 “이번 조치는 해당 공문 취지가 본래 교육적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거나, 학교 현장의 오해를 유발할 소지가 있고, 이미 현행 법령에 따라 사용 중인 ‘학부모’ 용어 사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될 수 있어 취해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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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5
  • [기자수첩] 선관위의 독립성은 무책임의 면허가 아니다
    국민의 한 표는 민주주의의 가장 작은 단위이면서도 가장 무거운 권리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하고, 선출된 권력은 그 위임을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대의민주주의는 바로 이 한 표 위에 서 있다. 그런데 지난 6월 3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도저히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1차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선거 당일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투표용지가 추가로 송부된 투표소는 전국 67곳에 달했다. 이 가운데 50곳에서는 추가로 보낸 용지가 실제로 사용됐으며, 22곳에서는 투표가 잠시라도 중단됐다. 정해진 시간 안에 투표소를 찾고도 장시간 기다려야 했던 유권자들이 있었고, 기다리다 발길을 돌린 시민들도 있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고, 다른 지역에서는 개표가 진행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국가가 국민에게 투표용지를 충분히 제공하는 일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업무가 아니다. 선거인 수와 사전투표율을 파악하고, 필요한 수량을 준비하고, 부족 상황에 대비하는 것은 선거관리기관이 수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선관위는 사전투표율 증가에 따라 투표용지 인쇄 수량을 줄였으며, 관내 투표소별 선거인 수와 사전투표 결과, 선거 당일의 투표 진행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가장 기본적인 수요 예측과 현장 대응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로 축소할 일이 아니다. 국민이 투표소에 도착하고도 투표하지 못했다면, 그 순간 국민의 참정권은 실질적으로 침해된 것이다. 투표함 안에 들어간 표를 정확히 세는 것만큼이나, 국민의 한 표가 투표함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도 중요하다. 특정 후보의 당락이 달라졌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판단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는 결과만 맞으면 과정의 오류를 눈감아도 되는 제도가 아니다.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규모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국가기관의 관리 부실로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면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번 일이 선관위에 대한 불신이 오랫동안 누적된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에는 코로나19 확진자의 기표된 투표지를 플라스틱 바구니와 종이상자 등에 담아 운반한 이른바 ‘소쿠리 투표’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선관위 고위직 자녀 특혜채용 문제와 전산 보안 취약점 논란도 이어졌다. 선관위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근거 없이 확대해서는 안 된다. 보안 취약점이 발견됐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선거 조작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일부 주장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확인된 관리 부실과 정당한 검증 요구까지 모두 ‘음모론’으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은 국민에게 막연한 신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신뢰는 명령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투명한 공개와 검증, 분명한 책임과 재발 방지 대책을 통해 쌓아야 한다. 문제의 본질은 분명하다. 국가기관이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했다. 투표용지가 부족했고, 투표가 중단됐으며, 일부 유권자는 기다리다 돌아갔다.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가 계속되는 동안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다른 지역의 개표가 진행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 사실만으로도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선관위는 투표소별 선거인 수와 최초 배부한 투표용지 수량, 추가 인쇄 및 이송 경로, 투표 중단 시간, 현장 대응 과정, 연장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개표가 시작된 경위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책임자의 문책과 조직 문화의 쇄신, 외부 검증 체계의 강화도 뒤따라야 한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존중돼야 한다. 선거관리기관이 행정부나 특정 정당의 영향 아래 놓이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독립성은 외부의 질문을 차단하기 위한 성벽이 아니다. 무능과 방만함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도 아니다. 독립기관일수록 더욱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보여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공정과 공의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공의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힘 있는 자가 자신의 권한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공적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책임을 다하는 데서 드러난다. 성경은 “공의를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4)라고 말씀한다.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기관이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은 공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이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느 지역에 살든, 어느 후보를 지지하든, 모든 국민의 한 표는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공정은 선택적으로 적용될 수 없으며, 공의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달라져서도 안 된다. 국민의 권리를 가볍게 여긴 잘못이 있다면 분명히 밝히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의 참정권은 국가기관이 편의에 따라 제한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반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투표소를 찾은 국민이 아무런 방해 없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신뢰 위에 세워진다. 선관위가 지켜야 할 것은 투표함만이 아니다. 국민이 그 투표함을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신뢰까지 지켜야 한다. 그 신뢰가 무너지면 대의민주주의의 기반도 함께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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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8
  • [기자수첩] ‘전문경력자 운영 규정’, 명칭보다 원칙이 중요하다
    학교법인 고려학원이 최근 마련한 ‘전문경력자 운영 규정’을 둘러싸고 교단 안에서 여러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법인 사무국장의 정년을 앞두고 마련된 이번 규정이 사실상 특정인의 계속 근무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이를 설명하는 입장에서는 이번 사안이 ‘정년 연장’이 아니라 정관에 근거한 ‘전문경력자 운영 규정’의 마련이라고 강조한다. 먼저 사실관계를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려학원 정관 제67조에는 법인 사무국장을 2급 이상의 직원 또는 이사회에서 선임하는 전문경력자로 보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문경력자를 선임할 수 있다는 근거 조항은 현 사무국장이 부임하기 이전인 2020년 11월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전문경력자 제도 자체가 현 사무국장 한 사람을 위해 갑자기 만들어졌다고 단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현 사무국장이 정년퇴직 후 전문경력자로 다시 선임된다 하더라도, 인사 규정상으로는 기존 직원의 정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계약 형태로 다시 임용하는 절차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정관상 근거가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경력자 세부 운영 규정은 지난 2월 열린 이사회에서 마련됐다고 한다. 현 사무국장의 정년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교단 안에서 제정 배경과 향후 적용 기준을 묻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정년 연장과 정년퇴직 후 계약직 재임용은 인사 규정상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동일한 인물이 같은 업무를 계속 수행하게 된다면, 외부에서는 이를 실질적인 계속 근무로 받아들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명칭이 아니다. 전문경력자를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선임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도 중요하다. 학교법인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충분한 경험을 가진 인력이 필요할 수 있다. 법인 사무국장의 업무 특성상 이사회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산하 기관의 복잡한 행정 구조를 이해하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오랜 경험을 가진 인재를 활용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조직의 필요에 따라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일정 기간 계약직으로 활용하는 방안 역시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정년은 갑자기 찾아오는 변수가 아니다.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인사 일정이다. 조직이 지속 가능하려면 기존 인력을 다시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것과 함께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후임자를 육성하는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적임자가 없다는 설명이 반복된다면, 그동안 후임 인사를 준비하는 구조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경험에 계속 의존해야 하는 조직은 안정적인 조직이라기보다 후임 체계가 취약한 조직일 수 있다. 기존 인력의 경험을 존중하는 것과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일은 서로 충돌하는 과제가 아니다. 인수인계와 후임자 육성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사안은 법인 사무국장 한 사람의 재임용 여부에만 그치지 않는다. 고신총회 산하에는 학교법인뿐 아니라 총회유지재단과 은급재단, 고신언론사 등 여러 기관이 존재한다. 학교법인에서 정년퇴직을 앞둔 인력을 별도의 계약 형태로 다시 임용하는 방식이 하나의 선례로 자리 잡는다면, 다른 산하기관에서도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이유로 유사한 논리가 제기될 수 있다. 물론 각 기관의 특성과 현실적인 사정은 다를 수 있다. 모든 기관에 하나의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때마다 ‘업무의 연속성’, ‘전문성’, ‘적임자 부족’이라는 이유로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정년 제도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은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다. 기존 인력을 다시 활용하는 길은 넓어지는 반면,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책임 있게 성장시키는 길은 좁아질 수 있다. 예외가 하나의 선례가 되고, 그 선례가 다시 다음 예외의 근거가 되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총회 산하 기관에서 정년 이후 재임용이 필요한 경우 어떤 원칙을 적용할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전문경력자 선임의 객관적인 기준은 무엇인지, 외부 인사도 후보가 될 수 있는지, 복수 후보를 검토하는 절차가 필요한지, 계약기간과 재위촉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후임자 발굴과 육성은 어떻게 병행할 것인지 살펴야 한다. 특정인을 위한 규정이라고 미리 단정할 필요는 없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재임용을 기정사실로 전제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현 사무국장의 정년을 앞둔 시점에 세부 운영 규정이 마련된 이상, 교단 안에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이사회가 규정의 제정 배경과 향후 운영 원칙을 교단 앞에 투명하게 설명하면 된다. 규정상 가능하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적으로 허용되는가 하는 문제와 교단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서로 다르다. 학교법인 고려학원은 일반 기업이 아니다. 고신총회 산하에서 교육과 의료를 담당하는 공적 기관이다. 그만큼 인사와 제도 운영에서도 높은 수준의 책임성과 투명성이 요구된다. 사람을 위한 예외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을 세우는 일, 경험 있는 인재를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일, 규정의 명칭보다 실제 운영의 공정성을 살피는 일이 먼저다. 이번 논란이 특정인을 둘러싼 공방에 머물지 않고, 총회 산하 기관 전체의 건강한 인사 원칙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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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2
  • [기자의 시선] 부산 서부노회 총대 투표의 민낯
    지난 4월 13일에 있었던 부산 서부노회 제70회 정기노회의 총대 투표와 관련해, 노회 안팎에서는 수치스러운 장면들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총대 투표를 앞두고 한 노회원이 발언했다. 핵심은 총대를 파송하지 말고 자숙하자는 것이었다. 최근 교단 전체가 타격을 받은 노회 내 안타까운 사건을 깊이 염두에 둔 겸손하고 적절한 발언이었다. 한국 장로교회 어느 노회가 자숙으로 총대를 파송하지 않은 적이 있었을까? 만약, 이것이 받아들여졌다면 암울한 교회정치판에 그래도 잔잔한 감동을 남기는 이정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분위기는 난잡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수 노회원과 장로 총대들의 놀란 표정과 함께 웅성거리는 소리, 반대라는 목소리, 법이요, 투표요, 온갖 소리가 순간 터져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분명, 이 의견에 속으로 동의하는 자들도 제법 있었겠지만, 다수의 표정과 목소리에 묻혔으리라. 급히 거수로 투표에 들어갔을 때, 은퇴와 퇴임으로 비어있는 총대 자리를 노리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작전(?)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놀라기라도 했는지에 대한 해석도 제기된다. 단상에서 겸손히 회의를 정리하고 보조해야 할 서기부 4명 중의 3명도 총대 투표를 하자는 의견에 주저주저하며 손을 들어 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의견은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되었고, 결국, 멋있게 총대 투표에 들어가 28분의 품격있는 총대들이 선정되었다. 더 수치스러운 상황은 이후에 벌어졌다는 평가다. 사실, 지금 언급할 이 상황은 노회 개회와 함께 먼저 도마 위에 올랐었다. 한 시찰회가, 무슨 의견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긴급안건을 하나 올려 받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흐름을 보니, 노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이 내용을 미리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회장이 임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서까지 이 안건을 반려했다는 설명이 있다. 법적인 근거도 있었다. 노회 규칙상 일반안건은 14일 전에 청원해야 했으나, 10일 전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해당 시찰회는 그걸 다시 긴급안건으로 바꾸어 올렸고, 노회원들과 장로 총대들은 이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받느냐, 받지 않느냐?”로 40분 가까이 설전을 벌여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저녁 속회 후, 이 안건은 다시 도마 위로 올라왔다. 이 안건이 공개되자 노회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안건의 핵심은 이렇다. 노회가 총대를 파송하고, 선출직 후보를 내면서 잘 살피지 못한 죄가 있으니 자숙과 회개의 의미로 일정 기간 선출직 후보를 내는 것을 자제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안건을, 한 시찰회가, 그들의 표현으로 만장일치로 작성해서 올렸다는 것이다. 이미 오후에, 불미스러운 일로 중도 하차하게 된 노회원이 노회 앞에 겸손히 사과하여 노회 장소는 다소 먹먹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교회 노회원들과 장로 총대들이 앉아 있는 자리였다. 해당 교회도 문제 해결을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중이니 조금 더 인내하며, 기도하며 지켜보자는 제안도 이미 있었다. 교회법적으로 타당한 흐름이었다. 또한, 몇 년을 겸손히 선출직 출마를 준비한 노회원과 해당 당회가 앉아 있는 자리였다. 관례상 이미 차기 총회의 회계로 섬길 장로 총대도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노회 전체의 자숙과 회개를 위해 그들 일부의 손발을 묶자는 내용의 안건이 한 시찰회의 담합으로 올라온 것이다. 제안 설명은 더 가관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해하지 마라. 어떤 사람을 겨냥한 청원이 아니다. 이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안다. 반대 의견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라. 이런 자숙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선출직 후보가 오히려 더 떳떳하게 출마할 근거가 된다. 자숙하는 것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어차피 안될 것인데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시찰의 의견을 존중해주면 좋겠다.” 이런 식의 제안 설명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느끼겠지만 이 청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자숙과 회개를 일종의 퍼포먼스로 만들었다. “어차피 받아들여지지 않을 내용인데, 선출직 출마자들이 떳떳하게 출마하기 위해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총대를 보내지 말자고 한 정당한 의견에 관해서는 극렬하게 반대한 시찰이다. 정말 자숙과 회개를 생각했으면 이 안을 낼 것이 아니라, 총대를 보내지 말자는 의견을 따랐어야 했다. 후자의 의견에는 극렬히 반대했으면서 전자의 의견을 다시 내는 수치스러운 짓이었다. 둘째,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고 자숙해야 할 문제를 일부 노회원과 총대에게만 전가했다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 이런 식의 회개와 자숙이 있던가? 이 의견을 낸 시찰은 결국 5명의 총대를 보내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본인들은 무슨 자숙과 책임을 지게 되었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지라는 의견을 내고, 결정하는 것이 그들의 자숙과 회개이던가? 셋째, 노회를 기만하고, 말씀의 원리에 관한 존중이 전혀 없고, 노회를 오히려 기만한 것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안 될 줄 알고 올렸다”??? 그럼 올리지 말아야 했다. 시작부터 40분의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노회원들의 울화통을 터지게 했으며, 일부 노회원들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안기는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될 것을 알았다.”라니? “노회의 화합”을 운운했지만, 오히려 분열을 일으켰다. 여기에 형제를 배려하는 것이 있나? 보여주기식 회개가 성경적인가? 이 안건을 냈다면, 법과 절차를 따지기 전에 노회장을 비롯한 임원회는 마땅히 꾸짖어 기각이든, 반려하는 것이 교회법적 정신에 더 부합한다. 노회장 손에는 성경이 있었고, 교회법적 정신이 있었는데, 임원들 손에는 그것이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해당 시찰회의 손은 말할 것도 없다. 넷째, 형제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협잡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아무리 제안 설명하며 아니라고 해도, 해당 형제들과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마음으로 아파하는 형제들이 가득 앉아 있는 자리였다는 점이 강조된다. 분명 그들 대부분은 분개하고, 부담을 느끼고, 참담함을 느꼈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 청원의 부당함에 관해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동안 그 반대 의견을 다시 반대하는 다른 시찰 회원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도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언급된다. 몇 차례 높은 언성의 반대 의견이 나오고, 다시 대응하는 해당 시찰회 소속 목사들의 의견이 있고 난 뒤, 다른 시찰에 속한 한 노회원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이 의견을 반려하자고 제안했고, 이후 해당 시찰회는 모든 의견을 접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개를 두고 일각에서는 짜여진 듯한 흐름이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이런 그림은, 지금 항간에 떠도는 소문, 즉, 그 잘못과 실수를 빌미로 정치적으로 해당 목사를 완전히 무너뜨리려고 했다는 해석과 맞닿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시찰부원 전원이 알고 했든지, 모르고 했든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번 부산 서부노회 총회 총대에는 유지재단 이사로 봉사하는 장로 총대가 낙마했다. 선배 장로이자, 그간 덕망 있고, 존경받으며, 겸손히 노회와 총회를 섬기던 장로 총대도 낙마했다. 노회원들도 잘 모르는, 어쩌면 총회로 가서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총대도 몇 사람이나 선정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총회 헌법위원이고, 노회 전입으로는 가장 오래된 노회원도 14명 중 13번으로 겨우 붙었다. 정기노회가 많이 남아 있을때부터 낙선시키자는 말까지 돌던 노회원이었다. 치열한 표 싸움과 힘 대결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건 앞에 언급한 수치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덤이다. 부산 서부노회 총대는 이제 벼슬이고, 부산 서부노회는 쇼맨십으로 노회를 운영하며, 부산 서부노회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수치스러운 노회가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현주 국장
    • 기자 수첩
    2026-04-16
  • [기자 수첩] 교회의 결정, 교회가 책임진다
    포도원교회가 공동의회를 통해 김문훈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적법한 절차와 다수의 찬성을 거쳐 내려진 이번 결정을 두고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한 인사 논란으로만 볼 사안이 아니다. 이는 한 공동체가 자신들의 목회 역사와 사역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신앙적 판단이며, 동시에 교회 정치의 영역에 속한 문제다. 이미 확인된 바와 같이, 해당 공동의회는 교단 헌법과 교회 정관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되었고, 다수의 성도가 참여한 가운데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번 결정은 절차적 정당성과 공동체적 합의를 모두 갖추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이 결정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원로목사 추대는 본질적으로 누구의 권한인가. 교회의 일은 교회가 결정하는 것이 개혁교회 정치의 기본 원리다. 외부 여론이 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 더욱이 원로목사 추대는 완전무결한 인물에 대한 시상이 아니라, 한 목회자가 오랜 시간 교회를 섬긴 공로를 교회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공동체적 고백에 가깝다. 인간의 연약함이 드러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사역의 시간을 지워버리는 것이 과연 성경적 태도인가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성경은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동시에 회개한 자를 향한 공동체의 태도 또한 중요하게 다룬다. 징계와 회복, 책임과 은혜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긴장 속에서 함께 서 있어야 할 진리다. 특히 교회는 세상보다 더 엄격한 공동체이면서도, 동시에 세상보다 더 깊은 관용을 보여야 하는 공동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 13:4-7)라는 말씀은, 죄를 덮어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회개한 자를 향한 공동체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번 포도원교회의 결정은 바로 그 지점을 보여준다. 잘못에 대한 책임은 이미 감당되었고, 그 이후의 평가는 공동체가 내렸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과거의 헌신을 기억하기로 선택했다. 물론 모든 성도가 동일한 생각을 가질 수는 없다. 반대와 기권의 의견 역시 공동체 안에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다수의 결정이 내려진 이상, 그 결정을 교회 밖에서 반복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는 건강한 교회론과는 거리가 있다. 교회는 여론으로 움직이는 기관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서, 말씀과 질서 안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공동체다. 때로는 논쟁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공동체가 스스로의 결정을 감당해 나가는 책임과, 회개한 자를 향한 공동체의 태도다.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어디까지 정죄하고 어디서부터 품어야 하는가.
    • 기자 수첩
    2026-03-24
  • [기자의 시선] 김 모 목사 사건, 책임과 회복 사이에서 고신은?
    최근 한 목회자의 과거 언행이 문제로 제기되었고, 그 여파로 해당 목회자가 직을 내려놓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당사자는 잘못을 인정했고 공식 사과를 발표했다. 일정 부분 책임은 분명해졌다. 목회자의 언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상처를 남겼다면 그것은 분명한 문제이며, 교회는 죄를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잘못은 지적되어야 하고, 책임은 져야 한다. 그러나 사건은 단순히 여기서 끝나는가. 보도가 확산되는 과정은 유난히 빠르고 집요했다. 자료의 전달 경로, 취재의 방향, 시점의 절묘함을 두고 교단 안팎에서 여러 해석이 오가고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추측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사건이 자연 발생적 문제 제기였다면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일정한 목적을 가진 흐름이 작동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약 누군가의 의도와 계산이 개입된 일이라면,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은 오직 한 사람의 언행 문제로만 이해되어야 하는가? 회개는 한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다뤄야 한다. 죄를 책망하되, 회개를 외면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돌이키고 책임을 인정했다면, 교회는 그 다음을 고민해야 한다. 회복의 길을 열 것인가, 아니면 완전한 배제를 선택할 것인가. 잘못이 드러난 자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다른 목적을 품고 이 일을 움직였다면 그 또한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회는 행위뿐 아니라 동기도 살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책임은 분명히 묻되, 회개하는 자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허락하는 것. 그것이 교회의 방식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한 번의 잘못으로 남은 사역의 가능성까지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정의라면, 교회는 회개의 자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분노가 아니라 더 깊은 분별이다. 죄는 책망하되, 회개는 붙드는 공동체. 그것이 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길이다. 김현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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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6
  • [기자수첩] 팩트체크는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봐야 한다
    헌재가 2007헌마1189 결정에서 밝힌 “개방감사는 선택 여지 없이 추천 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부분은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합헌 결론을 뒷받침하는 핵심 법리로서, 여전히 유효한 기준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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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10
  • [기자 수첩] 고신총회 선거운동, 세속화 우려와 필요한 균형
    고신 총회의 선거를 두고 내부에서 “세속 정치의 축소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후보자의 출마 소견 발표와 지지 연설, 그리고 노회별 조직 활동이 과열되면서 교단 초창기의 순결한 정신에서 멀어졌다는 우려다. 실제로 권력 다툼처럼 비치는 장면들이 신앙 공동체의 거룩함을 흐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문제 제기는 경청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해법으로 제시되는 대안—경쟁 선거를 없애고 ‘청빙형 구조’로 전환하거나, 모든 선거운동을 전면 금지하고, 오직 기도만으로 지도자를 세우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교단이 수천 교회와 수만 성도를 아우르는 규모로 성장한 상황에서,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다면 총대들의 올바른 분별이 어려워진다. 선거운동을 막는 것이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밑 인맥 정치와 폐쇄적 추천 구조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 □ 맛디아 선출의 성경적 교훈 흔히 ‘세속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맛디아를 뽑듯”이라며 하나님의 뜻에 의탁해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면밀히 살펴보면, 맛디아 선출은 단순한 영적 의탁만이 아니라 분명한 절차와 기도가 함께 작동한 사건이었다. 사도행전 1장은 네 단계로 분명히 전개된다. 1. 자격 기준 설정: 베드로는 예수님의 세례부터 승천까지 동행한 자만이 사도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행 1:21-22). 이는 오늘날의 후보 자격 심사와 같다. 2. 후보 추천: 공동체는 요셉(바사바, 유스도)과 맛디아 두 사람을 후보로 세웠다(행 1:23). 이는 공동체적 검증의 절차였다. 3. 기도: 사도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누가 주님의 택하신 자인지 보이소서”라고 간구했다(행 1:24-25). 4. 제비뽑기: 공동체는 제비뽑기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렸다(행 1:26). 이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공정성과 하나님의 뜻을 함께 드러내는 제도적 장치였다. 즉, 맛디아 선출은 기도+기준+절차가 어우러진 사건이었다. 단순한 초자연적 계시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규칙을 정하고 사람을 세운 후,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오늘날 교단 선거 제도가 후보 자격 심사, 소견 발표, 기도, 투표를 거쳐 지도자를 세우는 과정과 원리적으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맛디아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오히려 현행 선거 제도를 정당화하는 성경적 근거가 될 수 있다. □ 민주적 절차의 성경적 정당성 맛디아 사건뿐 아니라, 사도행전 6장의 집사 선출도 교회의 민주적 절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소외되자 사도들은 온 회중을 불러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너희 가운데서 택하라”(행 6:3)고 요청했다. 공동체는 직접 참여하여 일곱 사람을 선택했고, 사도들은 기도하며 안수했다. 이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공정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적 행위였다. 사도 바울 또한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고 교훈했다. 교회의 질서와 절차를 존중하는 것이 곧 성경적 원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교회 정치에서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것은 세속화가 아니라, 성경이 보여준 질서와 공동체 참여 원리를 오늘날에 구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의 거룩성은 절차 자체를 거부하는 데 있지 않고, 절차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공정하게 운영하는 것에 있다. □ 정체성 회복, 구호로는 부족하다 정체성 회복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고신이다”라는 구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사참배 거부와 교단 분립의 정신을 오늘에 계승하려면,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 속에서 제도적 정직성과 투명성을 구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 결속만 강화하고 실제 개혁은 이루지 못하는 공허한 구호에 머물 위험이 있다. □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태도 결국 문제는 제도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운용하는 태도와 방식에 있다. 과열 경쟁과 파벌주의를 경계하는 한편, 후보자의 비전과 신앙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선거운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절제되게 운영하는 것이다. 고신은 초창기부터 세상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복음의 순결을 지켜온 저항 공동체였다. 그 전통을 오늘에 적용한다는 것은 곧 기도와 제도를 함께 붙들고, 어떤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정직한 태도로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다. 총회 직분은 권력이 아니라 섬김의 자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 고신은 다시 신뢰받는 교단으로 서게 될 것이다.
    • 기자 수첩
    2025-09-02
  • [기자의 눈]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학교법인 고려학원 개방감사 선임이 세 차례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방감사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분을 고려학원 이사회가 표결로 두 차례나 부결시켰고, 한 차례는 아예 안건으로 상정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올해 1월, 추천위원회로부터 추천받은 분이 올해 총회를 위한 선거 활동이 이미 시작된 현시점까지도 일하지 못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개방감사제도는 학교법인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좋은 사회적 제도이다. 개방 감사가 제대로 일을 해야 사립학교 법인의 운영이 투명해진다. 개방 감사는 그야말로 '개방'이다. 학교법인 이사회 외에 ‘외부’ 전문가나 관련 분야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감사로 선임하여 학교법인 이사회 구석구석을 살핀다. 이사회의 운영, 재정 상황 등을 살펴 투명성을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난다면 외부 기관이나 이해관계자가 조처할 수 있도록 정보를 '개방(?)'한다. 이런 중요성이 있기에 개방 감사 추천 시 준비된 전문가를 추천하고, 결격 사유가 있는지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다. 특별히 학교법인 고려학원은 여타 사립학교와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신학과 신앙에 기초하고, 교회의 대사회적 책무라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어떤 사립학교보다 더 공공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하지 않은가? 왜 개방 감사 선임을 의도적으로 막고, 또 미루고 있는가? 심지어 1월에 모였던 추천위원회에는 고려학원 이사회에서 파송한 위원이 3명이나 있지 않았는가? 그 추천위원회 위원장도 이사였다. 이사회에서 7명의 추천위에 3명의 이사를 파송한 것 자체가 추천위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는 선 결정이다. 그래서 학원이사회가 존속한 오늘까지 추천위에서 결정된 개방 이사를 박수로 받아 왔던 것이다. 자기 부정도 이런 부정이 없다. 무엇이 갑자기 "두려워 숨고"(창3:10) 있냐는 것이다. 특히, 이 시대는 소통의 시대, 원활한 대화의 시대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 학교법인 고려학원은 소통이 막혀있고, 대화가 단절된 듯하다. 내부적으로만 전전긍긍하는 자기들만의 소통만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심을 지울 수 없게끔 만든다. 이사회의 이런 행보는 교회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위이다. 개방 감사 미선임은 사립학교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과거 고려학원은 부도났었다. 관선 이사 체제로 운영되는 수치를 겪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은가? 무엇이 두려워 숨었나? 이사장도 개방 감사 본인에게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다고 몇 차례나 말했고 당연히 선임될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한다. 결국 이사장은 수차례에 걸쳐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말했다. 그렇다면 부결로 선임을 막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이 두려워 숨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가? 글. 김현주 대표
    • 기자 수첩
    2025-06-29
  • [기자의 눈] 공의 없는 회의, 노회는 누구의 것인가
    장로교회는 회의체 교회이다. 당회, 노회, 총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치리는 회의를 통해 이뤄진다. 그렇다면 그 회의의 질서는 곧 교회의 질서이며, 그 공정성은 곧 교회의 양심이어야 한다. 회의가 무너지면 교회의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최근 경남의 예장 합동 총회 산하 한 노회 회무에서 참담한 회의 절차의 왜곡이 벌어졌다. 정식 안건 상정 없이, 임원회의 결정만으로 총회 총대 후보로서의 피선거권이 박탈되었고, 당사자는 해명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심지어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사진행 발언을 요청한 다른 노회원들의 발언권마저 제한되었다. 정회 후 속회된 본회의에서 한 노회원이 여러 명의 서명이 날인된 연명부와 함께 이의를 제기하는 안건을 정식으로 상정했지만, 신임 노회장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며 24시간 이내에는 재논의할 수 없다’는 이의제기를 인정해 기각해버렸다. (※ 노회 규칙 또는 총회 헌법, 만국통상회의법에서 '24시간 이내 재론 불가'의 근거가 되는 조항은 찾을 수 없었다.) 임원선거를 앞두고 정회를 하기 전에는 노회장이 선거관리위원장에게 제척사유가 있다며 “파면”을 선언했다. 당시 노회장은 “선거관리위원회는 일시적인 기관이며, 선거 후 해체되는 조직이다”, “선관위가 부정을 저질렀기에 노회에서 제지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선관위원장의 직을 박탈했다. 그러나 해당 노회 규칙 제16조 5항에 따르면 선거관리위원장은 직전 노회장이 맡게 되어 있으며, 이는 임명직이 아니라 규칙으로 정해진 직책이다. 이러한 결정이 회의 결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절차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한 것이다. 선거의 공정성은 구성원의 신뢰로 유지되며, 위임된 권한은 결코 자의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 이 두 사례는 모두 명백히 헌법과 회의법 모두에 반하는 처사다. 예장(합동) 헌법 정치편은 노회가 회의체임을 선언하고 있으며, 모든 결의는 회의 구성원의 다수결에 따라야 한다고 밝힌다. 회의의 절차는 노회 규칙을 따르며, 규칙에 명시되지 않은 미비한 부분에 있어서는 만국통상회의법(로버트의 의사규칙, Robert’s Rules of Order)을 따른다고 되어 있으며, 이는 의장이 결의 없이 독단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회의에서 총회 총대 후보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일은 교회의 공적인 치리 행위이다. 그리고 설령 그 제한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 결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공의를 상실하게 된다. 치리회의 권위는 그 내용만이 아니라, 진실하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이러한 조치는 반드시 회의 안건으로 상정되고, 당사자의 소명 기회가 보장되며, 전체 회원의 토론과 표결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임원회는 단지 행정적 보조기구이지, 노회를 대신해 피선거권을 박탈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 더욱이 피선거권 박탈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사전 보고 없이 의장이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이의 제기조차 봉쇄한 것은 회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이는 결국 교회의 공의를 가리는 일이며, 그 피해는 특정인만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가 입게 된다. 회의는 누구의 것도 아닌 전체의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 있는 결의의 자리여야 한다. 회중의 권리를 대리하는 총대의 피선거권이 정당한 절차 없이 침해된다면, 이는 단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 회중 전체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이다. 교회의 질서는 행정이 아니라 진리로부터 비롯되며, 그 진리는 겸손과 공의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교회의 회의가 오만과 독선으로 흐를 때,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외면하는 길이 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 16:18)는 말씀은 회의 자리에 앉은 모든 이들이 두려움으로 붙잡아야 할 경고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노회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회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진정한 회의의 회복 없이는, 교회의 개혁도 없다.
    • 기자 수첩
    202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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