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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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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13일 주일, 진해침례교회 목사 안수 및 임직식이 있는 날 진해침례교회에서 보이는 진해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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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제27회 창원특례시민과 함께하는 푸른음악회
    사진 = 창원기독교연합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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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3
  • [신간소개] 메타버스 교회교육
    새로운 시대의 미래기술은 이미 작동되고 있지만, 이를 수용하지 못하면, 여전히 과거에 머물게 됨을 경고하는 문구이다. 느닷없이 확산된 코로나로 인해, 엄청난 변화가 왔다. 직장인들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고, 학생들은 학교로 등교하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받아야 했다. 오프라인의 일상이 제한받고, 온라인 사업은 급성장하게 되었다. 많은 학자들이 예견한 <메타버스>의 미래는 현실속에 구현되었다 코로나의 급속한 확산으로 인하여 교회는 직격탄을 맞았다. 매주일 예배를 드리던 예배당의 문은 닫히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야 했다. 또한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교회교육>도 온라인으로 진행해야 했다. 평소에 방송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다양한 인력을 갖춘 교회에서는 그나마 적응하면서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처 대비를 못한 교회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규모가 있고, 충분한 인력이 확보된 상태에서 진행하는 매끄러운 프로그램은, 그러한 여력이 없는 교회에는 도리어 위화감을 심어주며,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메타버스 교회교육> 은 이러한 상황에 해법을 제시하는 책으로 출간이 되었다. 저자인 김현철 목사는 청소년사역과 다음세대 사역으로 오랫동안 섬겨왔다. 그러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시대변화의 패턴을 읽고, 이에 적합한 대안들을 시도하면서 체특한 메뉴얼들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김목사는 새로운 시대의 기준이 되는 <메타버스>의 개념을 연구하고, 이를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교육목사인 조민철 목사와 함께 교회의 교육현장에서 진행하여 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경험한 다양한 인사이트와 실제적 프로그램을 <메타버스 교회교육>의 책에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많은 경비와 특별한 기술을 투자하지 않고서라도, 효과적으로 적용하여 시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들은 책상위의 이론이 아니라, 직접 실행한 프로그램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의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때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실전 매뉴얼을 <40가지>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타버스 교회교육>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실제적인 지침들을 참고한다면, 시행착오들을 줄이고 보다 효과적인 교회교육이 가능할 수 있다 < 메타버스 교회학교>는 메타버스의 4 가지 영역인, <가상현실>, <증강현실>, < 라이프로깅>, <거울세계>의 개념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당장 적용가능한 실제적인 교육 프로그램들을 제시하고 있다. 메타버스를 제대로 활용하면, 이전의 시대와는 비교가 안되는 특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불변의 복음을 어떻게 접목시키는 가에 대한 고민과 대안은 지속적으로 나와야 한다. 하지만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 <메타버스 교회학교> 는 스마트폰만 소유하였다면, 누구라도 어떤 교회라도 일단 시작할 수 있는 다양한 현실적 조언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담임목회자가와 교육부서를 맡은 교역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지침서이다. 또한 주일학교 교사들이 함께 이 책을 읽고 서로 토론하면서, 각 교회에 적합한 응용 프로그램을 구상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앞으로의 시대가 메타버스로 더욱 강화되는 추세로 들어 섰기에,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에도 효과적으로 사용되루수 있다. 메타버스를 교회교육과 접목시켜 나온 책으로는 최초로 출판되는 <메타버스 교회교육>은 다음세대를 보다 효과적으로 교육시키려는 모든 분들에게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책의 출판과 아울러, < 메타버스 시대이해, 세대이해, 사명이해>에 대한 컨퍼런스도 진행되기에, 관심있는 교회에서는 책의 표지에 기록된 연락처로 확인할 수 있다. 메타버스 사회가 급속도로 진행되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확신하며,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는 교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전세계적인 펜데믹의 주기가 짧아지고, 범위는 넓고 강력해지고 있기에, 언제 또다시 펜데믹이 발생하지 알 수 없다. 또한 1년 8개월이 넘어가는 기간동안에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예배와 교회교육을 경험한 세대는 이전으로 돌아가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러므로, 코로나가 끝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낙관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교회학교는 여전히 작동됨을 준비해야 한다 여호수아 이후에 일어난 세대는 <다른 세대>가 되어 신앙을 잃어버리고, 이가봇의 비극에 빠졌다. 메타버스 시대를 살아갈 다음세대들은 < 메타버스 교회교육>을 통하여, 메타버스 시대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세워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뉴스
    • 종합
    2021-07-05

실시간 문화 기사

  • 이상규 교수,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 기독교 평화론의 역사" 출판
    기독교의 가장 소중한 언어, 평화 광야. 외치는 자의 소리.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3:2)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마5:9)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5:44)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0~21) 마치 광야에서 들려오는 외치는 자의 소리처럼,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라고 기도하듯이 기독교계에 평화론을 선물하였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는 비단 2천 년 전, 유대 광야에서만 목격되었던 낯선 광경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평화의 소식이 들리는 듯하지만, 2022년 한반도의 상황 역시 광야이기는 마찬가지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평화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여전히 낯설다. 그 이유는 한때 바보새 함석헌이 목놓아 울부짖었던 것처럼, 우리가 “나라의 절반을 꺾어 한 배 새끼가 서로 목을 찌르고 머리를 까고 세계의 모든 나라가 거기 어우름을 하여 피와 불의 회오리바람을 쳐 하늘에 댔던 그 무서운 난리” 이후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이야기하면 자동으로 “평화”라는 단어를 “통일”로 이해했던 현실이 70년의 세월이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두 세대를 훌쩍 넘기는 세월 동안 평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평화맹’으로 살아왔고, 변함없이 남북관계에 모든 것을 저당 잡혀 일상의 평화를 맘껏 누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종교도 예외일 수 없고, 교회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이러한 때에, 성경이 말하는 “예수의 평화.” “Pax Romana”가 아닌 예수의 평화, 하나님의 평화에 기반한 목소리를 내는 일은 소중하다. 거기에다 듣고 싶어하지 않는 목소리를 낸다는 일은 더없이 소중하다. 이상하리만큼 한국교회의 강단에서는 은혜와 사랑의 언어는 넘쳐났지만, 평화의 언어는 갈 길을 몰랐다. 평화를 설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한 후에 늘 따라붙는 수식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다릅니다.”였고, 결어는 항상 “우리나라를 방어해야 하는 전쟁의 시기가 온다면 우리는 보다 현실적이 되어야만 합니다”였다. 교계에서만이 아니라 신학계에서도 평화의 목소리는 언제나 소수의 목소리였고, 그 작은 목소리나마 신학적 사유의 빈곤에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하고 척박한 토양 탓으로 돌리기 일쑤였다. 때로 간신히 틔운 싹조차 말라버리거나 기형적으로 웃자랐던 것이 우리의 현주소였다. 평화신학을 이야기하면 좌우 이념 대립과 정치적 편향성으로 갈등이 표출되기에 십상이었고, 불편함을 끝내 이기지 못해 마음으로는 평화를 원하지만, 차마 목구멍 앞쪽으로 평화의 언어를 뱉어내지 못하였다. 떼제의 유명한 찬양 “Dona Nobis Pacem 주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는 기도회나 개인의 영성에 도움은 되었지만, 국가 차원의 평화는커녕 가정, 교회, 회사, 학교라는 일상 공동체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였다. 그렇게 평화는 거대담론의 주제였으나 마음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암묵적 금기사항 혹은 기피 주제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 기독교 평화론의 역사』를 받아든 소감은 말 그대로 “감개무량”이었다. 평생 신학교 강단에서 교회사를 강의하던 저자의 수고로 “드디어” 기독교 평화론의 역사를 한 줄에 꿸 수 있다니! 가뭄에 단비를 만난 느낌이다. 평화학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평화에 관한 연구의 끈을 부여잡고 싶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부끄럽지만, 일선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서 평화관련 책을 읽다 보면 늘 아쉬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교재로 쓸만한 ‘기독교 평화론’ 책 한 권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평화학이 최근에서야 조명을 받기 시작한 낯선 학문이며 학제 간 융합학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신학계에서 평화학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물론 평화를 주제로 한 논문이나 번역서가 없진 않지만, 교재로 추천하거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기독교 평화론’ 관련 서적은 채 몇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들 정도로 희귀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역사와 통일 평화론에 기여한 기독교의 목소리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기독교 평화주의를 대표할만한 필독서와 교재로 쓸 만한 책이 마땅치 않았던 터라,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 기독교 평화론의 역사』의 가치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하겠다. 하여, 서평자로 비평의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이렇게 이 책을 상찬(賞讚)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2000년대 이후,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평화의 담론이 다양한 얼굴의 일상 평화로 이해되고 있을 때 출간되었다는 시의적절성이다. 앞서 표현한 것처럼 기독교인들에게 부담 없이 얼른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할만한 평화입문서가 부족한 현실에 교과서적인 성격을 부여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이 책은 성경과 역사에 드러난 전쟁과 평화를 아주 간명하게 정리하였다는 것이 상찬의 첫 번째 이유이다. 둘째, 이 책은 다수의 기독교인이 궁금해 하는 성경의 중요한 주제인 ‘평화’를 ‘로마의 평화’와 ‘예수의 평화’로 병치시켜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평화에 대한 메시지가 명징하다. 신약과 구약이 다루는 전쟁과 평화의 난제들을 비켜 가지 않으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예수의 평화’ 즉 사랑과 용서, 화해와 평화라는 성경의 핵심 가치를 끌어안음으로써 폭력이나 전쟁이 아닌 비폭력 평화주의를 기독교 정신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pp.51~52). 셋째, 신구약의 대립적 시각에 이어 초기 교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발전해온 기독교 평화론의 역사를 1)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 된다며 비폭력, 비전, 반전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믿는 ‘평화주의 pacifism’ 2) 가능한 전쟁을 피해야 하지만 불가피한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때 전쟁이 의로운 것으로 용인될 수 있다는 ‘정당전쟁론 just war theory’ 3) 그리고 전쟁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데 힘의 균형을 유지함으로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독교 현실주의 Christian realism’으로 압축 설명하였다. 이는 초기 기독교의 전쟁과 평화 이해, 기독교 국교화와 더불어 발전하게 된 정당한 전쟁론에 대한 설명, 중세시대의 성전론과 이후의 발전사로서 특히 메노나이트 교회사가이자 평화학자였던 가이 허쉬버거의 『전쟁, 평화, 무저항』(1944)의 연구나, 예일대에서 교회사를 가르친 종교개혁 연구의 권위자이자 교회사가였던 롤란드 베인턴의 『전쟁, 평화, 기독교』 (1979)과 전체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더 나아가 인도적 평화주의, 실용적 평화주의, 기독교 평화주의로 분류한 ‘평화주의 유형분류’도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더 깊이 연구하고 싶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p.277). 넷째, 짧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이후에 논의되었던 개혁자들의 평화에 대한 관점을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정리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종교개혁과 개혁자들, 즉 에라스무스, 루터, 츠빙글리, 칼빈이 토대를 두었던 것이 정당한 전쟁론이었음을 밝히는 가운데 이들이 견지한 평화에 대한 작고 큰 차이점들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우선, 에라스무스는 정당한 전쟁론을 수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주의적 평화주의자로 전쟁의 폐해를 신랄하게 지적하며 군주, 귀족, 성직자, 지식인들에게 평화를 호소했다. 루터는 기본적으로 정당한 전쟁론과 두 왕국 이론에 근거하여 국가의 공권력을 하나님께서 위임한 것으로 보았다. 즉 권력 행사의 정당성, 군인의 직제 인정 등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물론 폭력이나 전쟁을 맹목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으나, 루터를 평화주의자라고 볼 수는 없다고 보았다. 스위스 취리히의 개혁자 츠빙글리는 전쟁의 해악이나 폐해를 지적하기는 하였으나, 정당한 전쟁론에 근거하여 복음과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결국 그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에 벌어진 카펠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기독교강요』의 저자로 잘 알려진 칼빈 역시, 정당한 전쟁론에 의거하여 합법적 국가 권력의 법 집행은 정당한 것으로 이해했다. 당연히 전쟁도 합법적이라고 보았다. 개혁교회의 세례를 가장 잘 받은 한국교회가 왜 정당한 전쟁 외에 다른 평화주의자들의 처지를 생각하기 힘들었는지, 독자로서 일말의 단서라도 발견한 느낌이 들 수도 있는 대목이다(7장). 다섯째, 다른 책과 차별성이 돋보이는 장으로서 개혁가들의 관점에서 곧바로 계몽주의 시대로 책장을 넘기지 않고, 재세례파와 평화주의를 소개하였다. 개혁가들과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전적으로 대비되는 재세례파의 연원, 신학, 특성, 평화주의 입장을 짧지만 굵게 소개하였다. 재세례파는 급진적(근원적) 개혁운동이다. 운동 초기부터 주장했던 1) 교회와 국가와의 분리 2) 유아세례 거부 3) 신자들의 세례 4) 폭력과 전쟁을 반대한 메노 시몬스의 평화주의 운동 5)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서 등을 통해 이들의 비폭력 사상을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며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었다. 이뿐 아니라, 20세기 초에 결성된 ‘역사적 평화교회 historic peace church’ 운동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어떻게 평화주의 이상을 지켜왔는지를 설명하였다. 평화사를 통해 들여다본 아나뱁티스트 약사로 소개해도 손색이 없다(8장). 여섯째, 이 책은 단순히 기독교 평화주의를 넘어 계몽주의 평화사상가들과 운동의 맥을 잘 짚어 주었다. 루소의 국제평화에 대한 개념이라든가,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평화 사상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이기에 더욱 값지다. 퀘이커를 비롯하여 재세례파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계열의 평화교회들과 톨스토이, 간디, 안중근, 니버, 요더 등의 평화주의자들을 간략하게 소개한 것도 인상 깊다. 오기로 생각되지만, 282페이지에 평화론을 제시한 이들 중, 윌리엄 펜, 톨스토이, 존 요더 등을 “광의의 정당전쟁론 전통에 서 있다”라고 표현한 부분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톨스토이는 국가를 폭력으로 규정할 정도로 무정부주의에 가까울 뿐 아니라 애국심, 충성심, 군대조직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인물이자 그 어떤 폭력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며 단 하나의 영구적인 혁명으로 도덕적인 혁명과 영혼의 갱생을 주장했다.(『국가는 폭력이다』 참고) 윌리엄 펜은 퀘이커 신자로서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거룩한 실험’을 시도할 정도로 기존의 세속 정부와는 다른 기독교 대안정치를 꿈꾸었고,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정당전쟁론 전통으로 분류할 수 없다. 존 하워드 요더는 아나뱁티스트 전통에 속한 기독교 윤리학자로서 종교적 평화주의 유형분류를 시도한 저명한 학자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의 윤리를 기반으로 한 비폭력 무저항 평화주의를 설파했을 뿐만 아니라, 정당한 전쟁론의 허상을 가장 명확하게 비판한 메노나이트 교회 학자이기에 정당전쟁론과는 거리가 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마지막 일곱 번째로 짧은 지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흐름을6·25 이후부터 최근의 평화통일론까지 잘 정리하였다. 통일 담론으로 이승만의 북진통일론, 박정희 정권의 선 건설 개발 후 통일론(후에 선평화 후통일로 발전),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 1988년의 7.7선언, 1991년의 남북한 UN동시가입,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과 공동선언,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최근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에 이르기까지 핵심을 잘 다루었다. 물론 전두환 정권의 ‘통일헌법’ 제안이라든가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과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김영삼 정부의 단계적 통일방안,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평화체제에 대한 구상, 이명박 정부의 ‘통일준비론’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통일평화담론에 대한 내용이 조금 더 세부적으로 정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이 통일담론 이해가 아니므로 이 몫은 한반도에 사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어도 좋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세상의 평화에 기독교가 이바지하려면 한반도의 역사이해와 평화담론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11장 ‘한국에서의 전쟁과 평화’는 평화담론을 기독교 안에만 머물지 않고 복음주의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차원을 놓치지 않고자 심혈을 기울인 기독교 역사가의 배려가 잘 드러난 장이라 할 수 있다. 책 끝부분에 던져진 “교회가 어떻게 평화를 이루어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독자를 넘어 한국교회가 끝까지 끌어안아야 할 큰 질문이자 과제다.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시종일관 ‘로마의 평화’가 아닌 ‘예수의 평화’를 추구함으로써 교회가 평화를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는 그간 인류가 걸어온 평화사를 큰 시각으로 전망하도록 돕고자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평생 교회사를 연구하고, 강의하고, 몸으로 실천해 온 교회사가의 저술이기에 이처럼 일목요연하고, 명료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기독교인으로서 알게 모르게 ‘평화맹’으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이 한 권의 책으로 평화맹을 탈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다만 한가지 이 책이 우리에게 평화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주고 뼈대를 잘 형성해 주었다면, 앞으로 좀 더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평화사 책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고, 전쟁의 소문이 꽉 들어찬 광야와 같은 세상에 평화의 좋은 소식이 메아리쳤으면 좋겠다. 그 예수의 평화가 모든 이들의 메마른 마음과 삶을 촉촉이 적셔줄 수 있으면 좋겠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는 하나님의 딸이요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마5:9) 글. 김복기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 봄내시민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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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4
  • [신간소개] 메타버스 교회교육
    새로운 시대의 미래기술은 이미 작동되고 있지만, 이를 수용하지 못하면, 여전히 과거에 머물게 됨을 경고하는 문구이다. 느닷없이 확산된 코로나로 인해, 엄청난 변화가 왔다. 직장인들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고, 학생들은 학교로 등교하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받아야 했다. 오프라인의 일상이 제한받고, 온라인 사업은 급성장하게 되었다. 많은 학자들이 예견한 <메타버스>의 미래는 현실속에 구현되었다 코로나의 급속한 확산으로 인하여 교회는 직격탄을 맞았다. 매주일 예배를 드리던 예배당의 문은 닫히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야 했다. 또한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교회교육>도 온라인으로 진행해야 했다. 평소에 방송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다양한 인력을 갖춘 교회에서는 그나마 적응하면서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처 대비를 못한 교회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규모가 있고, 충분한 인력이 확보된 상태에서 진행하는 매끄러운 프로그램은, 그러한 여력이 없는 교회에는 도리어 위화감을 심어주며,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메타버스 교회교육> 은 이러한 상황에 해법을 제시하는 책으로 출간이 되었다. 저자인 김현철 목사는 청소년사역과 다음세대 사역으로 오랫동안 섬겨왔다. 그러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시대변화의 패턴을 읽고, 이에 적합한 대안들을 시도하면서 체특한 메뉴얼들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김목사는 새로운 시대의 기준이 되는 <메타버스>의 개념을 연구하고, 이를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교육목사인 조민철 목사와 함께 교회의 교육현장에서 진행하여 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경험한 다양한 인사이트와 실제적 프로그램을 <메타버스 교회교육>의 책에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많은 경비와 특별한 기술을 투자하지 않고서라도, 효과적으로 적용하여 시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들은 책상위의 이론이 아니라, 직접 실행한 프로그램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의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때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실전 매뉴얼을 <40가지>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타버스 교회교육>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실제적인 지침들을 참고한다면, 시행착오들을 줄이고 보다 효과적인 교회교육이 가능할 수 있다 < 메타버스 교회학교>는 메타버스의 4 가지 영역인, <가상현실>, <증강현실>, < 라이프로깅>, <거울세계>의 개념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당장 적용가능한 실제적인 교육 프로그램들을 제시하고 있다. 메타버스를 제대로 활용하면, 이전의 시대와는 비교가 안되는 특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불변의 복음을 어떻게 접목시키는 가에 대한 고민과 대안은 지속적으로 나와야 한다. 하지만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 <메타버스 교회학교> 는 스마트폰만 소유하였다면, 누구라도 어떤 교회라도 일단 시작할 수 있는 다양한 현실적 조언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담임목회자가와 교육부서를 맡은 교역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지침서이다. 또한 주일학교 교사들이 함께 이 책을 읽고 서로 토론하면서, 각 교회에 적합한 응용 프로그램을 구상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앞으로의 시대가 메타버스로 더욱 강화되는 추세로 들어 섰기에,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에도 효과적으로 사용되루수 있다. 메타버스를 교회교육과 접목시켜 나온 책으로는 최초로 출판되는 <메타버스 교회교육>은 다음세대를 보다 효과적으로 교육시키려는 모든 분들에게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책의 출판과 아울러, < 메타버스 시대이해, 세대이해, 사명이해>에 대한 컨퍼런스도 진행되기에, 관심있는 교회에서는 책의 표지에 기록된 연락처로 확인할 수 있다. 메타버스 사회가 급속도로 진행되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확신하며,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는 교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전세계적인 펜데믹의 주기가 짧아지고, 범위는 넓고 강력해지고 있기에, 언제 또다시 펜데믹이 발생하지 알 수 없다. 또한 1년 8개월이 넘어가는 기간동안에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예배와 교회교육을 경험한 세대는 이전으로 돌아가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러므로, 코로나가 끝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낙관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교회학교는 여전히 작동됨을 준비해야 한다 여호수아 이후에 일어난 세대는 <다른 세대>가 되어 신앙을 잃어버리고, 이가봇의 비극에 빠졌다. 메타버스 시대를 살아갈 다음세대들은 < 메타버스 교회교육>을 통하여, 메타버스 시대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세워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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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합
    2021-07-05
  • [신간소개] 이상규 교수·류운욱 목사 신간 발간
    이상규 편, 『송상석과 그의 시대』 최근 교회사학자인 이상규 교수가 대표로 있는 ‘한국교회와 역사연구소’에서 두 권의 단행본을 발간하였다. 한권은 『송상석과 그의 시대』이고, 다른 한권은 『빛 되신 주, 내 길을 비추시다』이다. 전자는 송상석 목사를 기억하고 고신교회에서 그 분의 긍정적 역할을 기억하는 여러 분들의 원고를 편집한 책이며, 후자는 지금도 생존해 계시는 류윤욱 목사님의 자서전이다. 송상석 목사는 자신의 생애에 대하여는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송상석 목사는 두 권의 책과 파수군에 여러 편의 글을 남겼다. 한 권은 총회재판국에서 목사면직 처분을 받은 후 이에 부당함을 주장하는 『법정소송과 종교재판』, 다른 한 권은 일제통치 하에서 시작된 절제운동에 관한 『한국절제교육연구사료집』이 그것이다. 문서 사역에 탁월했던 그는 그 외에도 『한국장로교50주년기념화보집』을 편집했는데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였다. 1935년 평양신학교에서 발행한 박형룡의 『기독교 근대신학난제 선평』을 편집하고 교열하는 이도 송상석 목사였다. 『기독교 근대신학난제 선평』은 한국인에 의하여 저술된 최초의 본격적인 신학서였다. 파수군에 수록된 논문형식의 글들은 해방 후 한국교회 쇄신운동 당시 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 없이 교권을 장악하려는 것을 보고 장로교회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쓴 글과 당시 총회파가 주도하던 경남노회 유지재단과 교회당 소유를 놓고 국가의 법정에서 민사소송을 하던 중 박윤선 박사의 ‘소송불가론’에 대응하면서 소송의 당위성을 주장한 여러 편의 글들이 있다. 그 외에도 1952년 경남(법통)노회가 총회에서 축출된 후 진주성남교회당에서 총노회를 조직할 때 송상석 목사가 주도하여 작성한 ‘ 대한예수교장로회(고려파) 총노회 발회식 선언문’이 있으며, 그보다 앞서 경남노회가 장로회 총회 및 총회에서 파송한 전권위원회에 제출한 ‘경남노회 진상보고서와 진정서’의 작성자 중 한 사람으로 위촉되어 위 문서를 작성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 외에도 송상석 목사는 고려신학교 출범 당시 후원회 이사를 역임하였고, 공산화된 만주 봉천에서 박형룡 박사를 귀국시켜 고려신학교장으로 세워 고신교회가 출발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이른바 ‘이사회록 위조사건’으로 국가 법정에 고소되어 유죄가 선고되고 이어서 총회재판국에서 목사면직을 선고 받았다. 그가 속한 경남(법통)노회는 총회 재판국의 재판을 거부하였고, 그 결과 고신교회는 고소와 반고소로 분리되어 상당기간을 지난 후 다시 통합되었다. 이번 책 서두에는, 편집자인 이상규 교수가 송상석 목사의 생애 여정을 개괄적으로 정리하였는데, 이 책 전체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제1부에는 ‘송상석 목사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부제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송상석 목사의 제일문창교회를 중심으로 한 목회활동과 그의 일생의 사역에 대한 여러분들의 글이 수록되었다. 그 중에는 아들인 송병일 집사(미국 거주), 목회의 동역자이자 후배인 김기수, 김응수, 류윤욱, 손상률, 조긍천, 황삼수 등 여러 목사님들, 송상석 목사에 의하여 만주 봉천에서 귀국할 수 있었던 박형룡 박사의 아들인 박아론 박사, 또 제일문창교회에서 송상석 목사와 깊이 동역한 현기택 장로에 대하여 현선영 장로가, 송상석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자란 제일문창교회의 김성곤 장로가 기고하였다. 이어서 제2부에는 송상석과 그의 시대‘라는 부제로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여러 활동에 대한 글이 수록되었다. 현재 미국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전 총회교육원장을 역임한 나삼진 목사는 송상석의 문서사역에 관하여, 송상석 목사의 절제운동 전반에 관하여 유성근 목사가, 제일문창교회 출신이면서 SFC 발족에 함께했던 김종득 집사가 송상석 목사와 SFC 활동에 관하여, 송상석 목사를 불신법정에 고소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신재철 목사의 글, 끝까지 송상석 목사를 지지하고 협력하였던 박윤섭 장로에 대하여는 양재한 장로가, 송상석 목사와 이약신 목사의 인간적인 관계와 목회자로서의 동역자로서 함께한 모습에 대하여는 이상규 교수가 집필했다. 그와 함께 필자는 송상석 목사에 대하여 잘못 알려진 몇 가지 사실에 대하여 반박하였다. 송상석 목사가 고등계형사를 지낸 친일 인물이라는 것과 총회파와의 교회당 명도소송 결과 패소하고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송상석 목사가 총회재판국에 의하여 목사면직 처분을 받게 한 이사회록 위조사건에 대한 내용이다. 이 사건들에 대하여는 필자가 여러 사료를 검토하고 사실관계를 정리했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근거를 거지고 당시의 정황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류윤욱 목사의 자서전 『빛 되신 주, 내 길을 비추시다』 류윤욱 목사님은 1955년 대구의 고려고등성경학교를 제 1회로 졸업하신 후 고려신학교를 수학하셨고, 1963년 경동노회에서 목사로 안수받았다. 그 후 경주교회 및 대구 성산교회에서 시무하시고 은퇴와 함께 성산교회의 원로목사로 추대되셨다. 목회기간 동안 고신총회의 지도적 역할을 감당하여 경동노회서 10회기, 경북노회에서 2회기의 노회장, 1964년부터 9년 동안 고려학원 이사, 1982년부터 3년간 고려학원 감사, 1986년 제36회 고신총회장, 또 1990년부터 2년간 다시 고려학원 이사, 1992년부터 2년간 고려학원 이사장으로 헌신하셨다. 또 은퇴하신 후에 중남미의 과테말라에서 교회를 개척하시고 안정시키신 후 후임자를 세우고 돌아오셨다. 류윤욱 목사의 생애는 목회자로서 누구나 본받아야 할 귀한 걸음이었다. 그의 자서전인 『빛 되신 주, 내 길을 비추시다』는 어린 시절 개인적인 삶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러 교회를 시무하시는 동안의 회고를 담담히 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났던 송상석 목사와의 관계, 송상석 목사와 가까운 거리에서 사역하는 동안 일어났던 송상석 목사에 대한 사문서위조사건에 대해 자신이 보고 겪은 사실과 달리 기록되고, 또 송상석 목사에 대한 법정고소가 성경의 가르침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왜곡된 사실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일이라 설명하고 있다(이에 관하여 수년 전 류윤욱 목사는 『역사는 잠들지 않는다』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류윤욱 목사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그것은 고신총회가 고소가 옮은 것인지 반고소가 옳은 것인지 분열될 때에 반고소가 옳다고 밝히고 초지일관 반고소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소와 반고소의 분열은 사실상 교권투쟁과 다름이 없는 힘든 시절이었지만 류윤욱 목사는 고신총회가 고소파와 반고소파가 나누어져 총회를 구성할 때에 총회의 분열을 원치 않고 고소가 옳다는 고신총회 내에 머물면서도 반고소의 신념을 끝까지 지켰다. 한동안 고신총회의 주류는 고소가 옳다는 입장이었고, 류윤욱 목사의 신념은 분명 고신총회의 주류와 반대의 입장이었으나 제36회 총회장으로 선출된 것은 류윤욱 목사의 반고소 신념과 영적 지도력을 고신총회가 인정한 결과라고 보아진다. 그 후 세월은 흘러 1983년 반고소의 교회들과 다시 합하여 형제가 되었으나 고소가 옳은지 반고소가 옳은지에 대해 분명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6년 제65회 총회에서 고신총회가 반고소 고려총회와 통합을 결의하면서 고린도전서 6:1-10의 말씀에 의지하여 “성도간의 사회법정 소송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라는 원리가 옳은 줄로 믿고’라고 하면서반고소가 옳다고 인정했다. 결국 류윤욱 목사가 지켜온 신앙관과 신념이 옳았다는 결론이 된다. 신명기 32:7절에서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기억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에게 물어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지나간 세대가 걸어온 역사,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아는 것이 중요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역사를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필수이다. 류윤욱 목사의 이 책을 통해 지난날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개인적인 삶이나, 교회지도자로서의 삶에서 부족함이 있다면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와 함께 지난날의 역사 중 잘못 기록하고 곡해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도 coram Deo의 원리 앞에 있기 때문이다. ● 책 구입문의는 ‘한국교회와 역사연구소’ 총무 신재철 목사(010 – 3662 – 0638) 글. 강종환 장로(가음정교회) - 법원부이사관 퇴임 - [가음정교회100년사] 집필 - [경남(법통)노회100년사] 집필(공저) - [고려파교회연구]에 '국가인권위원회법 및 차별금지법안의 성적지향에 관한 고찰' 등 다수의 글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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