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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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검색결과

  • 러시아, 간첩 혐의로 한국인 선교사 체포
    지난 3월 11일, 대한민국 국민 1명이 1월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고 러시아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타스 통신은 사법 당국자를 인용해 “간첩 범죄 수사 중 한국인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타스 통신은 체포된 한국인 백씨가 국가 기밀 정보를 외국 정보기관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형사 사건 자료가 ‘일급기밀’로 분류됐다고 보도했으나 혐의의 세부 내용 등에 관한 정보는 공개 되지 않고 있다. 외교부는 체포사실을 인지한 직후부터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소식이 알려지자 지구촌사랑의쌀나눔재단이 언론을 통해 체포된 백 씨가 극동 지역에서 북한 노동자 등을 도우며 선교활동 하던 백광순 선교사라고 밝혔다. 백 선교사는 4년 가량 재단 소속으로 보편적인 선교 활동 외 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10년 넘게 해외 선교에 매진했다고 전했다. 재판의 발표에 따르면 백 선교사는 소외된 계층과 해외 노동자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옷 등을 제공하고 의약품을 제공한 구호 활동이 전부라며 탈북을 도왔다는 등의 의혹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다만, 백 선교사가 연해주 선교사협의회에 가입하지 않은 까닭에 해당 단체에 소속된 선교사들과 교류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 세계 각국에 69개 해외 지부, 국내 116개 지부를 두고 무료 급식, 쌀·생필품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재단 측은 이날 회의를 거쳐 백 선교사의 구명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외교부와 러시아 대사관에 제출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러시아는 지난 2022년 2월 특별군사작전 이후 한국이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10∼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 뉴스
    • 종합
    2024-03-14

오피니언 검색결과

  • [기고] 선거, 또 다른 분열의 시작인가?
    역사관 역사는 어제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로 또 내일로 이어지므로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나 어제를 생각하고 평가하여 교훈을 얻으려 한다. 인간과 인간들이 모인 공동체는 부족함에 따르는 내재적인 한계로 인하여 개인으로부터 국가사회까지 어제의 평가에 따른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는 통상 같은 반응을 보이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교훈을 받기 위함일 것이다. 본래 어제에 대한 전체적 평가는 먼저 개인과 각 개별사회가 자신들의 몫을 평가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전체적인 역사의 평가에 편입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리고 어제의 역사에서 받은 교훈을 오늘과 내일에 적용하여 긍정적인 부분은 더 확장하고 부정적인 부분은 개혁하여 바꾸도록 하는 것이 역사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자가 가지는 사명이다. 문제는 역사에 대한 평가에 특정한 의도와 목적이 스며들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에 있다. 역사를 바라보고 평가함에 목적과 의도가 개입하면 그 틀을 통하여 역사를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역사를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하고 그 목적의 틀과 달리하는 부분은 삭제하거나 변형하고 목적의 틀에 맞는 부분만으로 역사를 살피고 판단하게 되므로 그 결과 역사는 전체적으로 왜곡되게 된다. 이를 위하여 어제의 역사를 ‘점령’하기 위해 애를 쓰고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이다. 권력과 정치가 역사를 ‘점령’하여 틀을 만든 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하여 자신들이 가진 권력의 힘으로 이러한 틀을 사실상 강요하게 될 때 역사관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내일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러한 틀에 의하여 제한되므로 내일 역시 왜곡된 역사관으로 맞추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된다. 분열의 두 주제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로부터 사회 곳곳에 ‘분열’이라는 분명한 잘못에 빠져들고 있다. 분열은 공동체 모두에 불이익을 준다. 작게는 공동체의 발전을 막지만 크게는 공동체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한다. 우리 역사에서 ‘분열’이 국가적인 비극으로 이어진 대표적 사건을 예로 들자면, 임진왜란을 앞두고 이이(율곡)가 주장한 십만 양병은 동인과 서인의 치열한 당파싸움으로 무산되고 그 대가로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참화를 겪게 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인한 국가의 극심한 쇠약으로 병자호란까지 겪어야 했다. 또 해방 후 공산주의자에 의하여 장악된 북한과 달리 남한은 위로는 정치인들로부터 시작하여 아래로 폭력배까지 온 나라의 각 분야뿐만 아니라 좁은 지역까지 좌우로 나누어진 적이 있었다. 이렇게 되자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남로당의 수괴 박헌영은 북한의 김일성이 오판하도록 부추겼고 그 결과 공산주의의 팽창을 도모하던 스탈린, 이에 동조하던 모택동, 한반도의 적화를 획책하던 김일성의 야욕은 함께 어우러져 6.25 전쟁이 발발하였고 신생 독립국인 이 나라에 엄청난 참화를 가져왔다. 이처럼 분열은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 다시 ‘분열’의 망령이 온 나라를 덮고 있으며 이 분열에 대하여 ‘진영논리’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진영논리는 ‘자신이 속한 쪽의 이념과 행위는 무조건 옳고, 다른 쪽의 이념과 행위는 무조건 배척하는 논리’를 말하며 분열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분열의 주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반일’(또는 항일)이냐 ‘반공’이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두 문제가 무슨 까닭인지 우리 사회에서 함께 얽혀 있다. 즉, ‘반일’을 주장하는 측 대부분은 ‘분배’를 우선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스스로 ‘진보’라고 이름하고 있고, ‘반공’을 외치는 대부분은 ‘성장’을 우선으로 하고 있으면서 스스로 ‘보수’라고 하고 있다. 이 네 개의 주제가 짝을 지어 나누어져 양극으로 분열이 공고히 되면서 진영논리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해방공간에서의 분열 우리나라가 전 근대적인 왕조의 국가로부터 현대 시민사회로 변화하는데 걸린 기간은 채 50년 정도이다. 그 50년은 우리나라보다 일찍 현대 시민사회로 발전한 서구 여러 나라에 비해서는 굉장히 빠른 기간이었다. 그런데 그 기간에 우리는 국가적으로 두 번의 큰 비극이 있었다. 하나는 일제의 침략에 의한 국권의 상실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채 5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북한 공산주의자의 침략에 의한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있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6.25 전쟁이 있은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어제’ 있었던 두 비극의 역사를 두 개의 틀로 나누어 보고 있다. 이 나눔의 하나는 ‘반일’, 다른 하나는 ‘반공’이라는 두 개의 역사관이 기초하고 있다. 이 두 역사의 유산은 분명히 우리가 함께 물려받아 서로 다듬어 가야 할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나누어지고 말았으며 오늘날 우리 사회 분열의 큰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문제는 ‘반일’의 틀에서는 ‘반공’의 가치를 낮추고 ‘반공’의 틀에서는 ‘반일’의 가치를 유보하려는데 있다. 이를 상징하며 극단적으로 대조하며 상징할 수 있는 두 인물이 있는데 ‘김원봉’과 ‘노덕술’이다. 김원봉은 광복군에 참여한 항일투쟁의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지만 해방 후 북한 공산정권에 참여하여 반공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노덕술은 일제하 경찰 간부를 지낸 친일파였으나 해방 후 경찰과 군인의 길을 걸으면서 반공주의자로 살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김원봉’을 지지하는 세력과 ‘노덕술’을 옳다고 하는 세력으로 나뉘고 있는데 이 나눔에 앞장선 것이 정치인과 정치세력이고 이에 휘둘린 것이 국민이다. 우리는 김원봉의 항일은 인정하되 그가 걸었던 공산주의자의 길은 거부해야 하고 노덕술의 친일은 거부하고 반공에 대하여는 인정하면서 함께 갔어야 했다. 그런데 ‘냉전’이라는 세계질서의 재편과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6.25 전쟁의 직접적인 참화로 인하여, 초기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정치세력 역시 반일보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현실적 위협 앞에 반공을 더 앞세웠다. 우리는 반공이 ‘국시’(國是)가 되었고 ‘노덕술’의 길에 더 기울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반공’을 국시로 하던 정치세력들이 장기집권과 독재의 길을 걸어 반공의 가치를 훼손시켰고, 이에 저항하던 이른바 민주화 세력은 무슨 까닭인지 반공보다 반일을 내세우면서 역사관이 나누어지게 되었으며 국민도 함께 나누어졌다. 이렇게 나누어진 역사관을 가진 두 정치세력으로 인하여 어느 정치세력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반공과 반일이 시소게임처럼 오르내리게 되었다. 해방에 공헌한 두 세력과 6.25 전쟁 우리나라의 해방에는 두 세력의 공헌이 있다. 즉, 일제 강점하에서 만주를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하던 무장 항일투쟁 세력과 미국을 중심으로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던 세력이다. 항일무장투쟁 세력은 지역적인 원인에 의하여 공산주의 국가가 된 소련과 사실상 공산주의 국가가 되기 직전의 중국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당시 그들은 소련 및 중국의 공산주의자들과 ‘항일’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독립투쟁을 하였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없었으며 사실상 공산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깊이 살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해방 후 좌우가 나누어진 공간에서 무장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많은 이들이 공산주의를 택하였으며 그들은 발걸음을 북으로 향하였거나 발걸음을 미처 옮기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눈과 마음은 평양으로 향하였다. 반면 서재필, 이승만을 위시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외교적인 항일을 한 독립운동 세력이 존재하였다. 이들은 3.1 독립만세운동을 기점으로 미국에 사실상의 임시정부를 세우고 일제의 강점으로 인한 각종 폐해와 조국의 힘든 모습을 언론과 외교적 접촉을 통해 서방세계에 전하면서 꾸준히 독립을 외쳐왔다. 이윽고 8.15해방이 되고 군사적 목적으로 남북이 분할되었을 때 북에는 항일무장투쟁을 지향했던 공산주의자들이 사실상 지배하는 구도가 되었고, 남에는 미군의 지원으로 이승만을 중심으로 외교적인 항일투쟁을 하던 세력이 사실상 지배하는 구도가 되었다. 그런데 점령군을 위한 사실상의 분단 5년 동안 북은 김일성에 의하여 공산주의에 반하는 세력이 철저히 괴멸되었으나 남에는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이 합법적 또는 불법적으로 공존하게 되었다. 이 두 정치세력은 각기 남한과 북한을 기반으로 정통성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 두 세력은 각기 정통성에 대하여 서로의 결함을 하나씩 품고 있었다. 항일무장투쟁 세력은 활동 범위가 사실상 남만주와 소련의 연해주로 거의 소련과 중국에서 싸웠다. 그들이 독립의 의기를 높이 들고 일본군과 피 흘리며 싸운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귀중한 가치이며 희생이 틀림없으나 그 희생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은 중국과 소련이다. 중국과 소련은 자국의 영토를 지키는데 자신들의 군대 외에 우리의 독립군이 조력한 것이다. 반대로 외교투쟁 세력은 일본군을 상대로 생명을 건 직접적인 희생이 따르는 투쟁은 없었다. 아깝게도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으로 흘러간 국제정세의 흐름, 즉 공산주의의 팽창과 이를 저지하려는 서방 제국 사이에서 우리의 두 독립운동 세력은 서로를 인정하고 타협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 버렸다. 6.25 전쟁은 공산주의의 팽창을 노리던 소련과 적화통일을 꾀하던 북한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남한에서 공산주의를 지향하던 자들의 공통적인 지향점을 향한 비극이었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의 도움으로 공산주의를 지향하던 자들의 꿈은 깨어지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한은 ‘반일’ 외에 ‘반미’도 자신들의 역사관에 새로이 삽입하여 저항 세력이 없도록 사상적 통일을 이루었으며, 남한은 6.25 전쟁을 통하여 공산주의를 지향하던 남로당 세력이 거의 뿌리를 뽑히게 되는 결과가 이루어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보도연맹사건’이란 비극이 개입하였다. 이 보도연맹사건과 4.19 민주혁명의 희생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절대적 공헌을 하였던 외교투쟁 세력의 건국에 대한 공헌을 부정하는 요인이 되었다. ‘반공’의 쇠퇴와 ‘반일’의 오류 앞서 지적하였듯이 ‘반공’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던 정치세력은 부패와 함께 불법적인 장기집권을 꾀하면서 정치적 독재 세력이 되어 ‘반공’의 가치를 훼손하였다. 그리고 민주화를 위하여 국민은 저항하게 되었는데 민주화 시위에 앞장서 ‘민주’를 부르짖던 대학생 등의 구호에 공교롭게도 ‘반미’가 함께 등장하였다. 이 ‘반미’ 구호의 등장은 미국이 독재 정부를 옹호한 것에 대한 반발인지 또 다른 뿌리 깊은 연유가 있는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반미’를 외치던 일부 ‘운동권’의 이탈된 모습은 ‘반공’을 우리나라를 지키는 제일의 가치로 여기던 많은 국민에게 ‘운동권’, 즉 민주화 세력에 대한 사상적 불신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 사건으로 민주화를 주장하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약칭)에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학생대표를 파견하였고 그 자격으로 북의 계획에 따라 '남북청년학생 공동선언'이란 것을 발표하여 충격을 주었다. 세월이 지나고 이를 주도하던 ‘운동권’ 중 상당수는 선거를 이용하여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정치세력에 가담하였으며 그들의 속한 정당은 세 차례 집권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집권하고 있는 동안 주변에 자신들의 우호 세력을 양성하고 지지하였으며 그들에 의해 ‘반일’의 역사관을 국민과 학생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하였는데 공교롭게도 그만큼 ‘반공’의 가치가 훼손되었다. 우리나라는 평양의 김일성과 그 후손들의 최우선 과제인 ‘적화통일’ 앞에 놓여 있음에도 왜곡된 역사의 틀로 ‘반공’을 훼손시킨 것이다. 당연히 국민은 ‘반일’의 역사관과 ‘반공’의 역사관으로 분열되었다. 이 분열은 이에 편승한 정치인의 ‘정치’에 의하여 더욱 깊어져 가고 있으므로 이에 편승한 정치인들이 도태되고 국민 스스로가 자각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최근 두 사건은 국민의 잠재적인 반일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수년 전 있었던 태평양 전쟁의 전범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은 법의 해석을 빌어 지난 역사로 인하여 우리 국민에게 잠재되어 있던 반일의 역사관을 교묘하게 깨웠다. 그 결과 국민의 반일 감정은 절정에 이르렀고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던 일본의 소비재 기업 중 하나는 매장을 상당수 철수하기도 하였다. 물론 일제의 강압 통치로 인하여 희생된 분들과 후손들, 그중 지금도 생존해 계시는 분들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이 국민의 항일감정은 충족시켰을지는 몰라도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실정법으로 일제의 강압 통치와 그로 인한 제 문제를 다루는 것이 법적 타당성이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불에 기름을 더한 듯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일본은 정화수라고 부른다)의 방류이다. ‘반일’을 외치던 그들은 그 오염수로 인하여 당장 우리 국민이 수산물을 먹기만 하면 모두 방사능으로 인하여 큰 문제가 생길 것처럼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의견을 나타내었다. 그런데 정작 일본의 동쪽, 즉 후쿠시마 앞을 지나는 쿠로시오해류는 주 방향이 베링해를 향하고 있고 베링해를 지나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오면서 5-7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동안 태평양의 바닷물과 섞여 희석되게 된다. 이 쿠로시오해류에 의해 방사능 오염수(일본은 정화수라고 이름한다)가 가장 먼저 닿은 곳은 베링해와 캐나다, 미국의 서해안인데 사실상 그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가 우리에게 전혀 영향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으나 이는 과학에 맡겨야 할 문제이지 우리의 감정에 맡겨야 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작 그들은 중국의 동해안에 산재한 원자력발전소와 발해만과 황하강, 양자강에서 나오는 각종 오염에 대해서는 아무런 시비를 말하지 않고 있다. 유독 먼 바다를 향하는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자신들의 ‘반일’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책이 아닌가 의심된다. 그런데 지금 일본의 유명관광지에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넘쳐나고 유명 골프장에는 골프를 즐기는 우리나라 골퍼들이 원정 골프를 즐기고 있다. 심지어 오염수를 들먹이며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정치세력에 속한 정치인 중 이미 일본에서 아** 맥주를 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건배하는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에 올렸었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그들이 외치는 ‘항일’은 누구를 위한 항일이고 무엇을 위한 ‘항일’이었던가? 참으로 모순된 모습이 아닐 수 없다.(이에 대하여 언론에 보도되었음에도 당사자는 이에 대하여 유감의 표시를 한 적이 없다) 교회는 분열에서 자유로운가? 이제 얼마 후에는 또 선거를 치르게 된다. 이 선거기간 ‘정책’이 아니라 국민을 혼돈에 빠뜨리는 ‘구호’가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우리나라 선출직 공무원의 대표 격인 국회의원은 국민(지역구)으로부터 존중과 존경을 받아 선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거의 양당 정치로 이루어진 정치구조에서 우리는 동의할 수 없거나 못마땅한 부분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노선에 따라 투표하게 되고 그에 따른 지지로 선출되는 것이다. 즉, 정치인은 존경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지지, 즉 투표로 선출된다. 따라서 정치인은 가치 있는 정책을 입안하고 소신을 세우기보다 ‘정치’를 통한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당선을 위해) 지지를 더 얻고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때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를 외면하기도 한다. 선거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기독교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에서 선출되고 국회의원, 도의원 중 교회 중직자의 비율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정당에서 ‘성적지향’을 교묘하게 감춘 차별금지법과 그 유사한 법률, 교사의 권위를 침해하여 결국 사회 전반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학생인권조례 등과 관련한 입법 활동이 가장 활발한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가? 지난날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교파별로 집권 정부를 지지하느냐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느냐로 나누어졌던 한국교회이다. 지금의 분열 상황에서도 교회는 자유스럽지 못하다. 신사참배에 따른 신앙 문제로 ‘반일’을 외칠 수 있고 유물사관을 반대하면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직접적 피해로 ‘반공’도 외칠 수 있는 교회지만 역시 같은 구도로 분열되어 있다. 일부라고 하지만 목회자와 장로는 은연중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어 성도들에게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고 교인들도 교회 내에서 자신의 정치 성향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하나님 말씀을 따라야 할 교회 역시 진영논리와 정치 성향에 따라 나누어지는 비극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4월에 있을 총선에서 양측은 건곤일척의 대결을 할 것이다. 대통령을 탄생시켰으나 국회의 소수당인 집권당은 당연히 그 구도를 바꾸려 할 것이고 외형상 야당이지만 국회의 압도적 다수로 사실상 집권당처럼 행세하는 야당은 이 구도가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거대 양당에서 과반수가 나오지 않으면 소수의 야당은 이 틈새에서 자신들이 과반수를 만드는데 수를 보태는 대신 과도한 정치적 이익을 가지려 할 것이다. 이 선거기간 동안 정치세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교회를 이용하려 할 것이고 이는 개교회 내부의 분열, 교회 간 분열, 교파끼리의 잠재적 분열까지 가져올 위험이 있다. 한국교회는 이제 깨어야 한다. 분열 앞에서 교회는 하나님 말씀 앞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진영이 나누어진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제한된 안타까움이 있어도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가 말씀의 가르침과 한계를 벗어나 정치와 가까이하게 되면 교회가 또 하나의 분열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가 말씀의 진리를 굳건히 세우지 못하고 교회답지 못할 때 주변 사회는 끊임없이 교회에 도전해 오고 교회의 자리를 좁히려 할 것이다. 이제 교회의 지도자와 모든 교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이 나라의 분열을 해소할 수 있도록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 오피니언
    • 기고
    2024-03-06

문화 검색결과

  • [신간] '중동선교 한인교회사' 발간
    중동선교협의회(회장 신영수목사) 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중동지역의 한인교회사“는 중동지역 한인선교사들의 지난 50년 중동 22개국에 세운 51개의 한인교회와 이 곳에 파송된 한인선교사들의 땀과 눈물의 선교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이슬람의 심장,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부터 시작된 손때 묻은 중동선교역사는 가슴으로 잉태된 현장의 기록이며 하나님이 일 하신 사도행전 29장이다. 중동지역 한인선교협의회 (중선협)는 1984년 9월 중동지역에서 이슬람 선교의 체계적 협력을 위해 당시 중동지역의 4개 한인교회 (쿠웨이트, 바레인, 요르단, 아랍에이리트) 담임목사들이 중심이 되어 중한연 (중동지역 한인교회 연합회)을 설립했다가 1988년 9월, 중동지역에 파송된 모든 선교사들 (목사 선교사뿐만 아니라 여성 선교사 및 평신도 선교사도 포함)이 참여하는 ‘중선협’으로 명칭을 바꾸어서 2024년 현재는 중동지역의 35여 한인교회와 중동 23개국의 선교사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중선협은 매 2년마다 <중선협 선교대회>를 개최해 시대에 걸 맞는 선교 전략을 나누고 영적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데 올해 제 23차 중선협대회는 오는 6월 24일부터 27일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340여명의 중동지역 선교사와 자녀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가진다. 특별히 이번에 처음으로 발간한 “중동선교 한인교회사”는 제 23차 중선협대회의 기금마련에 유용하게 쓰이게 된다고 한다. 도서출판 우리하나 신국판 690p 49,000원 21세기 포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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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행사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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