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1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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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룡 장로(마산회원교회 원로)

 일본을 여행할 때 큐슈에 있는 산사 앞에 수백 년 된 연리지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묘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을 본적이 있다. 큰 나무의 가지가 서로 얼싸 안고 있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여 그 매력으로 마음을 뺏긴 것은 사실이다. 주로 연리지라 함은 같은 종류의 나뭇가지가 서로 붙어 의지하고 있는 모습을 한 상태로 남녀 간의 사랑이나 부부간의 금실, 선비의 우정 등을 나타낸다고 한다. 고금을 막론하고 연리지의 출현은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일로 여기고 귀한 나무로 대우받고 있는 것이다. 

  큰 나무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이라 하고 나뭇가지가 이어지면 연리지라고 한다. 가지가 맞닿으면 바람에 의해 서로 비벼지는 상태가 되어 산불이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땅속의 붙어있는 뿌리 덕분에 나무가 죽지 않고 오랫동안 같이 잘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맞닿은 두 나무의 줄기나 가지는 각각 해마다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어 지름이 점점 굵어지면서 서로가 심하게 눌리므로 제일 먼저 껍질이 압력을 견디지 못해 찢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나무의 세포들이 직접 맨살로 맞부딪치게 되어 운명적인 만남이 완성된다. 이것은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 경우와 흡사하지만 나는 우리 주님의 원가지에 상처 난 우리 인생의 작은 가지가 접붙임을 당한 연리지와 유사하여 정말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무의 연리현상은 아무 가지나 서로 맞닿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동질의 나무라야 가능하다. 소나무나 참나무는 수십 년 붙어있어도 연리지와 같이 결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근본이 서로 달라 돕는 것보다 맞닿을 때마다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상처받지 않고 항상 위로해 주시고 감싸 주시는 우리 주님의 큰 나무에 연리지로 붙어있어야만 잘 생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 전에 태안 꽃박람회에서 크기가 같은 원 가지가 붙어있는 벤자민을 부부나무라 칭하여 20년 동안 잘 키워 큰 나무로 성장시켰다. 두 나무처럼 각각 성장하는 것 같았으나 나중에는 가지가 붙어버린 연리지가 되어 모두들 신기하게 생각하고 기뻐하였다. 부부일체의 사랑을 나타내는 모습처럼 연리지가 되어버렸으나 분명한 것은 부부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주님과의 연리지 사랑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았다. 영국 작가 루이는 ‘인간은 에로스에 의해 성장하고, 스톨게에 의해 양육되고, 아가페에 의해 완성된다.’고 한 것처럼 인간이 가진 사랑은 역시 미완성일 뿐이다.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남녀 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외치고 연리지처럼 서로 변하지 않기를 염원한다. 심지어 가요까지도 연리지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모두 사랑의 홍수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지만 진정 사랑의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우릴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참 나무이신 포도나무로 보내 주셨다. 원가지이신 주님에게 상처 난 연한 포도나무의 순이 되어 접붙임이 되어야만 참 연리지 같은 삶이 전개된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연약한 가지가 주님의 큰 가지에 붙어살면 치유와 함께 연리지의 사랑을 맛보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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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룡 장로] 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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