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18(월)
 

주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으라 


우리가 주님께 쓰임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야 한다. 일평생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 일곱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말씀을 규칙적으로 묵상하는 일이다. 그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 고아원 일을 시작할 때도 말씀의 인도를 받았다. 그는 시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아 길거리에 버려진 고아를 위해 일평생 헌신하며 살았다. 말씀이 그의 길에 등이 되고 빛이 되었다. 둘째, 기도를 통해 성령의 내적 음성을 들었다. 그는 사람에게 무엇을 의논하기 이전에 먼저 무릎 꿇어 기도하므로 성령님께 물었다. 고아원 건물을 지을 때도 많은 시간을 기도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그때마다 성령님은 지혜를 주시고 판단력을 주셔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게 하셨다. 셋째, 성령이 주시는 내적 평강을 누렸다. 사람이 볼 때 합당하고 좋게 보일지라도 심령의 깊은 곳에 평강이 임하지 않을 때는 일을 추진하지 않았고 기도의 응답으로 심령에 평강이 임할 때 까지 기다렸다. 넷째, 일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가를 면밀히 검토했다. 모든 일을 시작할 때 자신의 동기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은지 항상 확인했다. 심중에 지극히 작은 일부분이라도 잘못된 욕심의 그림자가 있으면 그것을 제거한 후에 일을 시작했다. 다섯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한분만을 의지했다. 그는 1842년 2월 5일 경 갑자기 곤궁에 처해 위기를 맞아 지출경비를 충당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여호사밧이 아람과의 전투에서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함 같이 주님만 바라보았다 여섯째, 항상 성령 안에서 일을 시작하고 진행했다. 그는 성령님과 더불어 사역하고 성령의 지배를 받아 성령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추진할 수 있었다. 마지막 일곱째, 환경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은 인간의 처한 환경을 다스리시고 이끄시는 분이심을 믿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을 때는 환경을 통해 막으셨다. 그래서 그는 이 사실을 알고 환경을 변화시키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늘 바라보았다.

  마가복음 11장 본문은 주님이 예루살렘을 입성하기 전후에 일어난 사건과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케 한 내용을 기록한 말씀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든지 주님을 만나면 변화 받게 된다. 비록 미물의 나귀도 주님을 만남으로 주님의 장중에 귀하게 쓰임 받는 존재가 되었다. 주님은 장사의 놀이터로 변해버린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은혜의 처소로 복원 시키셨다. 기도가 능력이요 기도가 재산이다. 성소에 기도소리가 끊어지지 않을 때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 


나귀 타고 입성


  본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주님은 동네 밖에서 제자들을 보내어 나귀 새끼를 풀어 오라고 하셨다. 이는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다. “...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주님이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마를 타고 임하지 않으시고 왜 나귀 곧 나귀새끼를 타셨는가? 이는 선지자의 글인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둘째, 매인 인생을 풀어 주기 위해 오셨다. 나귀는 첫 새끼를 대속 제물로 드리는 유일한 짐승이다.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아는 짐승이다. 그래서 나귀는 다른 사람의 구유에서는 절대로 먹지 않는다. 이사야는 이스라엘과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나귀를 들어서 책망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 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나귀는 주인에게 목숨을 바쳐 순종하는 짐승이다. 예수님은 태어나서 구유에 누우셨다. 그 구유가 나귀의 구유이다. 유대인지명유대의 구유이면 당연히 나귀의 구유이기 때문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나귀는 주인에게 목숨을 바치는 순종의 짐승인 것처럼 주님 또한 주인 되신 하나님께 목숨을 바쳐 구원사역을 이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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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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