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말하는 용돈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자기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을 말한다. 자기가 벌지 않아도 생기는 돈, 즉 불로소득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용돈은 주로 아직 어린 미성년자거나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적은 금액의 돈을 용돈이라 한다.
옛날 어렵던 시절에는 어릴 때 용돈을 받아 본 적이 없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요즘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정기적으로 쓸 수 있는 용돈이나 학용품 살 돈을 준다. 어릴 때부터 용돈을 관리할 능력을 키우거나 독립심을 키우도록 교육적으로 용돈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옷이나 장신구를 위해 사용하도록 용돈을 주거나 대학생 정도의 청년이면 교통비는 물론 교제비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용돈을 주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대학생 된 아이들이 방학 때가 되면 자기 힘으로 아르바이트 해서 자기 용돈과 학비까지도 벌어 쓸 뿐만 아니라 저축까지 하는 것은 정말 칭찬할만한 일이다.
옛날 형편이 어려울 때에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은 진정 사랑을 베푸는 큰 은혜라 할 것이다. 부모님이 어렵게 벌어서 사용하라고 주신 용돈을 향토장학금이라 하여 신나게 썼던 기억이 난다면 정말 철없이 소비했다는 마음으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진정 자녀가 성장하여 경제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면 가난한 시절에 부모님이 사랑의 진액을 다 바쳐 우리에게 주신 용돈은 은총임을 기억하고 이제는 치사랑으로 약해진 어른들께 감사함을 담아 용돈이 역으로 이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필자가 잘 알고 있는 친구 중에 자녀가 다 잘 성장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자녀결혼, 직장 문제나 손자를 걱정함이 없이 잘 살아가는 분이 있다. 항상 얼굴에는 기쁨으로 가득 차 감사함으로 늘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우리를 늘 편안하게 해 주는 분이다. 그런데 어느 날 파안대소하여 점심식사를 쏜다고 해서 나갔더니 큰아들이 아파트를 팔고 중도금 일부를 아버지에게 용돈이라 하면서 일금 일천만 원을 통장에 입금을 시켰다고 했다. 요즘 이런 자식을 찾아볼 수 없는데 보기 힘든 효도를 실천한 참 귀한 아들이라 생각되었고 정말 부러웠다. 친구의 아들은 새집으로 이사해야 하고 자기 자녀를 키우려면 얼마나 쓸 곳이 많을 텐데 부모에게 용돈을 그렇게 많이 주다니... . 난 그 순간 감동을 받아 한참동안 그 친구가 부러워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친구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이 복을 주고도 남음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용돈은 주로 아이들에게 주는 돈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이렇게 자녀가 경제적 능력이 없어진 부모에게 쓸 돈을 챙겨서 드리는 것은 마땅하고 귀한 일이다. 일천만 원이나 되는 큰돈도 돈이지만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리는 것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진정한 효심에서 출발한 것이라 믿어진다. 사실 옛날에는 부모가 자녀를 키운다고 제대로 먹거나 입지도 못 하고 자녀를 키우는 일에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노후대책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늙어 경제적 능력이 없어진 부모님에게 큰돈은 아니더라도 용돈을 챙겨드리는 자녀들이 많아지면 존경과 사랑, 그리고 축복이 공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