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1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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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에반겔리아 대학교)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셨고, 성령으로 인치신 주님께 속하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사회 어떤 조직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독특한 공동체는 성령의 변화시키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별과 신분, 빈부와 지식, 언어와 종족의 장벽을 넘어 ‘오직 하나님의 은혜’(Sola gratia)라는 수단에 의해서 이곳 저곳에서 불러냄을 받은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Lordship)과 성령님의 역사하시는 사역 위에 설립되지 않은 “교회”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오직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이 곳 저 곳에서 불러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라는 말은 원래 ‘불러내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에클레시아(ekklesia)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에클레시아, 즉 모임 또는 회집의 기능과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모임이 없는 교회를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동서남북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찬양하며 친교하고 교육받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더욱 더 돈독하게 키워 나가야 합니다. 모여서 예배하는 일을 등한시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 집단을 교회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모이는 일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는 모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물론 교회는 감염예방준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집단감염의 진원지가 되지 않도록 예방수칙을 준수하는데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마치 교회의 예배가 바이러스 감염의 주범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사실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잘못된 이유를 근거로 예배 모임 자체를 획일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가 ‘정치 방역’으로 의심을 받을 수도 있는 정부의 요구에 너무 쉽게 굴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이는 교회가 아무리 중요해도 그 모임이 자기 만족과 자기 봉사에만 스스로를 진력해 버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모이는 교회는 다시금 이웃과 지역사회를 봉사하고 흩어지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흩어져서 이웃을 봉사하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사회적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어두움 속에 헤매고 있는 이웃과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안에만 있는 진리의 빛을 비추고, 절망 속에 있는 인간에게 하늘의 소망을 심어주며,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선포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장수 시대에는 노인대학을 통해서 지역사회를 봉사하는 사역이 세상을 향하여 기독교신앙을 변증하고 전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서의 짧은 사역이후 자신을 비방하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향해 어떤 깊이 있는 신학적 변증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하여 자신의 삶 자체가 어떠했는가를 회상시켜주는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자신을 변호하였습니다. 세상은 더 이상 이론적 논증과 장황한 설교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세상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삶과 생활, 행동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설교를 듣고자 하는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더 이상 우리의 율법과 고백을 듣지 않으려고 해도 세상은 여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증거에 주의를 기울이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모이는 교회로서의 에클레시아가 개인적 차원의 구속적 삶에 관심을 둔다면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디아스포라는 사회적 차원의 구속적 삶에 관심을 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보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을 모이는 교인과 흩어지는 제자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교인의 형태와 제자의 형태, 이 둘의 기능과 책무는 어느 하나가 우선될 수 없고 동일한 비중의 중요성과 관심을 가지고 수행되어야 합니다.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개인적 차원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이웃과 지역사회를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수 십년동안 지역사회를 효과적으로 봉사해 오던 프로그램을 교회의 당회가 주도적으로 폐쇄해 버리고도 전도 프로젝트를 운운하는 교회가 있다면 지탄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한국교회는 그 동안 개인적 차원에서의 신앙은 잘 감당해 왔을지 모르지만 사회적 차원에서의 책무는 잘 감당하지 못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가 교회를 보는 눈이 비판적인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이는 교회가 흩어지는 비전을 가지지 못하면 자기 도취적인 만족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교회는 자기들만의 개교회주의와 같은 형태로 교회의 담을 높이 쌓고 이기적인 신앙으로 폐쇄적인 집단으로 전락하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교회는 결코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아닙니다.교회는 모이는 교회로만 존재할 수도 없고 흩어지는 교회만으로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의 참된 모습은 마치 우리의 심장과도 같아서 새로운 피는 생산하여 계속적으로 유기체로 내보내고 더러운 피는 정화하는 역할을 감당해 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참된 역할입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열심히 모여서 모이는 교회를 이룩해야 합니다. 함께 모여서 열심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배우며 교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흩어지는 교회로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지역사회 속에서 제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자기치장과 자기 만족의 삶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사자처럼 세속화의 거센 바람을 집어삼키고 정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인은 많으나 제자가 없고, 모이는 교회는 있으나 흩어지는 교회가 없는 이때에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신앙 고백적인 결단과 희생이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김성수 목사 (전 고신대학교 총장,현 미국 에        반겔리아 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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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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