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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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밀알교회)

무화과나무의 비유

 

 

왜 무화과나무로 비유했을까? 지금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감람산은 무화과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산의 높이가 20-30척 되는 것이 많다.

이 말씀을 하실 때가 유월절 직전이므로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이 돋아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 비유를 사용하셨다.

팔레스타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올리브나 오동나무가 상록수인데 비해 무화과나무는 낙엽수로 겨울에 잎이 떨어졌다가 봄에 잎이 돋아나 여름이면 무성해진다. 곧 결실의 때가 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의 마지막 종말의 때가 다가왔음을 기억하라는 사실이다.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인자가 문 앞에 이른 사실을 알림이다. 사실 주님의 말씀은 구원사역이 당도한 것을 말씀하신 것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재림의 주로 오실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말씀하고 있다. 주님이 당신의 문 앞에서 두드리고 계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둘째,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시 중 영원한 비밀은 개인의 종말인 죽음과 우주적인 종말인 말세이다. 만약 이것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 세상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것이므로 우리가 알 바 아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했다. 우리는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주의 일에 힘쓰면 된다.

셋째, 주의하고 깨어 있으라고 했다. 주인에게 신실한 청지기는 준비하여 깨어 있는 자이다.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준비성이다. 열 처녀 비유에 보면 신랑이 더디 오므로 열 처녀 모두가 졸고 잤다.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생각하지 않고 잤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하고 졸았다. 오늘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쉬고 다 같이 즐긴다. 그러나 기름이 없이 사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기름을 준비하고 사는 자들이 있다. 깨어 있는 성도들은 기름을 준비한 성도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말세기 말을 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종말론적으로 살았다. 그렇다면 2천 년이 지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더 철저하게 종말론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삶은 내세에 대한 소망이 너무도 희미해 졌다. 우리는 이전에 바울이 버린 배설물에 사로잡혀 세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고백한 사도 요한의 고백이 신약교회의 유일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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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무화과나무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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