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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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초등학교 마을 운동회는 동네잔치다. 일단 먹을 것을 파는 분들이 몰려온다. 커다란 통에서 퍼주시는 아이스크림, 거뭇거뭇한 번데기, 머리통만한 솜사탕까지. 평소에 먹지 못하는 간식을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부모님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나오셔서 함께 즐기는 집도 있다.

우리 학교는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고적대’가 있다. 각종 악기들의 조합도 볼거리지만 가장 선두에 위치한 ‘고적대장’은 시선을 쓸어갈 정도의 매력이 있다. 뾰족한 봉을 흔들며 리듬을 맞추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 고적대장 누나의 미모는 늘 학교의 원탑이었다. 멋진 복장과 씩씩한 음악은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초등학생으로 저런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더욱 신나고 신기한 순서는 ‘차전놀이’다. 커다란 기구를 만들어 장수 복장을 한 사람이 선두에 타서 진두지휘하며 두 진영이 싸움을 한다.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이 되지 않을 듯하다. 놀이의 규칙도 잘 모르겠지만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커다란 장비를 들고 부대끼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임진왜란의 한 장면이 저와 같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들이 모여 연습하고 시전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때 아이들은 정말 강했구나 싶다.

운동회 순서를 즐기다가도 긴장이 되는 순서. 100미터 달기기. 경쟁이 있고 순위가 결정된다. 결승지점에서 손에 찍어주는 숫자에 따라 선물과 부모님의 대우가 달라진다. 어떤 아이는 부모님께 등짝을 맞기도 한다. 달리기를 그리 못하지 않았던 나도 긴장이 되는 시간이다. 줄을 지어 쪼그려 앉아 대기하는데 옆 친구가 신경 쓰인다. 적당히 긴장한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떠들고 있는데 이 친구는 말도 없고 진짜로 얼굴빛이 어둡다. 너무 긴장해 있다. 어디가 아픈지, 불편한 상황인지를 물어보았다.

 

 

“내가 달리기만 하면 꼴찌해서. 너무 싫고 무서워.”

 


친구의 답을 듣고 고민이 생긴다. 나는 반장이 아닌가. 가능하면 친구들의 고민을 해결해 줘야 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아 걱정하지 말고 뛰어. 내가 같이 뛰어 줄게.”

 


내 말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였는지 친구는 계속 긴장한 상태로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화약의 거친 소리가 울리고 우리는 초등학생에게 제법 긴 거리를 전력으로 뛰기 시작한다. 친구는 정말 느렸다. 다리도 팔도 같이 느리게 움직이는 듯 했다. 나는 일단 친구와 보조를 맞추었다. 가만 보니 그냥 두면 이 친구의 꼴찌가 확실하다.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포기하지 말고 달려보자고 말을 건네 본다. 앞선 친구들은 이미 하얀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결승 지점에서 기다리던 우리 어머님은 묘한 표정을 지으신다. 아무리 봐도 아들이 열심히 안 뛰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고 이해 못할 순위를 달리고 있었으니. 이미 테이프도 사라지고 결승 라인도 여럿 발자국으로 히끗하다. 어깨를 나란히 하던 친구에게 마지막 파이팅을 외치며 나는 한발을 뒤로 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달리기 꼴찌를 경험했다. 내 손에는 숫자 8이 찍혔다. 머쓱하게 엄마와 마주하고, 어머님의 눈빛은 내게 상황 설명을 요구하는 듯 했다.

 

 

“친구가 꼴찌하기 싫다고 해서요. 그래서 대신 꼴찌 했어요. 죄송해요.”

 


엄마가 꼭 안아주신다. 솔직히 혼날 줄 알았는데, 엄마가 등을 두드려 주시며 잘했다 칭찬하신다. 사실 정확히 뭘 잘했는지 모르겠는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꼴찌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즐거운 운동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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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 강신영 목사 (내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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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행복한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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