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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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에반겔리아 대학교)

 현대사회는 과학과 과학 기술 등 여러 면에서 굉장한 승리를 쟁취한 사회이면서도 동시에 전례 없는 부정과 부패, 불공정, 불의, 고통 그리고 비극에 깊이 빠져있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방대한 선택의 범위를 구가하면서 자국의 시민들은 거대한 자유를 누리게 하는 바로 그 정부가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에 달하는 사람들을 영속적인 가난의 상태에 머물도록 만들고,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정치테러와 고문이 그들의 항존적 환경이 되도록 지원하거나 그러한 불의를 자행하는 부정의한 현실이 바로 현대사회의 한 심각한 비극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함께 분노하고 가슴 아파하며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 같이 흐르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하늘의 평강(샬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공의가 없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평강의 삶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기쁨과 떨림과 환희가 있는 샬롬은 공의로운 상태 하에서만 피어날 수 있습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많은 조건들과 상황들은 공의도 마찬가지로 깨뜨려 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공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상호간의 의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는 공의를 추구하는 사회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는 언제나 샬롬의 사회를 지향합니다. 그러나 공의를 추구하지 않는 사회는 샬롬의 성취를 가로막습니다. 예를 들어, 방직 공장 안에 어린아이들을 가두고, 자연 자원들을 함부로 낭비함으로 후손들로부터 그것을 착취하며, 자국 영토의 확장을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국가는 불의한 국가이며, 이와 같은 사회와 국가는 공의를 파괴하며 필연적으로 샬롬의 성취를 가로막는 흑암의 세력입니다.

그렇다면 공의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공의라는 단어를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냉담하고 원칙을 고수하는 비인간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의와 관련하여 연상되는 것은 재판 과정, 법적 절차, 감옥 등과 같은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공의는 본질상 권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공의와 권리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향유할 수 있을 때 그 사회는 공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권리라는 단어 역시 공의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소 냉담하고 비인간적인 어떤 것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권리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연상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 천부적 인권, 유엔 회원국의 권리, 권리 헌장 등과 같이 다소 추상적이며 고양된 권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권리의 의미를 공의와 관련하여 아주 다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개인이 어떤 것에 대해 권리를 가진다라고 할 때 그것은 윤리적으로 합법적인 권리, 그것을 실제로 향유함에 대한 주장, 그리고 그 어떤 것을 누림에 있어서 직면할 수 있는 위협으로부터 보장받을 것에 대한 주장을 의미합니다. 권리는 다른 이에 대해 윤리적으로 합법적인 권리입니다. 권리는 다른 이에 대해 의무와 책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모든 책임이 권리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모든 권리는 책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권리는 또한 그것을 실제로 누림에 대한 주장입니다.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그 권리를 실제로 향유하지 못하면 그 법은 공허한 것입니다. 그리고 권리는 그 어떤 것을 누릴 때에 일반적이거나 심각한, 그러나 고쳐질 수 있는 위협으로부터의 사회적보장을 주장합니다. 위협에 대해서 보장하라는 주장을 권리로 보는 것은 권리가 사회에서 약자와 자신을 변호할 수 없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상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권리를 우리는 자기 방어의 권리, 자유의 권리, 발언과 참여의 권리, 그리고 안전과 생계의 권리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안전과 생계의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안전과 생계권은 그것이 없다면 모든 다른 권리가 의미가 없어지며,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권리라는 의미에서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대부분의 다른 권리들보다 더 근본적입니다. 언론의 자유는 그것이 얻어지는 만큼 삶에 유익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이도 많은 다른 권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안전과 생계권보다는 임의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과 가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관용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안전을 위협받는 자들과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은 살롬의 성취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과 같은 것입니다. 부유한 자가 기아에 있는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도울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육체적으로 그 어려운 자를 공격하는 것만큼 그 주린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겠지만, 이것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공의에 관한 책입니다. 구약의 모세 오경과 선지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공의를 요구하시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공의에 대해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람들은 고아와 과부들, 나그네들, 그리고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 사회에 공의가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실제적 원칙은 공의가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공의가 요구하는 것은 고아와 과부들, 나그네들, 그리고 가난한 자들과 같이 한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지고 자신의 공정한 몫을 갖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해하는 공의의 본질은 현대 서구사회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공의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는 공의와 권리의 문제를 인간 존재의 아주 섬세한 조직과 같이 가장 근원적인 것에서부터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작금의 국내외 정세를 보면서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희생 제물이나 감언이설의 의식이 아니라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흐르게 하라”(암 5:24)는 것임을 갈파했던 아모스 선지자의 호소를 다시금 가슴에 새길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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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공의가 하수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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