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크기변환_황권철.jpg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샤클롯(Shachllot) 부인이라는 73세의 할머니가 있었다. 노랑머리에 젊은이 못지않은 미모를 갖춘 아름다운 노인이었다. 평소에 음식을 조절해 먹으므로 몸매를 잘 가꾸어 항상 고상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귀부인이었다. 그 여인에게 딸이 하나 있기는 하나 교회 출석을 잘 하지 않았기에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운전하여 동양인이 세운 교회에 출석했다. 그 교회가 바로 김동명(안이숙 남편) 목사가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척한 한인침례교회였다. 부인은 김동명 목사와 안이숙 사모의 신앙에 감동을 받아 젊은 목사를 친 자식 같이 생각하고 주의 종으로 섬겼다. 그 여인은 30분 이상을 운전하여 김 목사가 개척한 교회에 오기까지 열 개가 넘는 백인교회(白人敎會)를 지나오면서도 주변의 동양인 할머니와 미국인 할머니들을 전도하여 모시고 왔다. 또한 교회 맨 앞자리에 앉아 설교를 들었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언제나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예배를 마치면 자기 집 근처에 있는 분들을 태워 집으로 모셔다 드렸고, 여름성경학교 때는 음료수와 과자를 한 아름 사서 동네 아이들을 교회로 데려오기도 했다. 하루는 한 동양인 할머니가 물었다. “당신은 백인이면서 화려하고 좋은 백인교회도 많은데 하필이면 동양인이 세운 한국인 교회에 오십니까?” 그때 샤클롯 부인은 “한국인 김 목사는 내 아들 같은 주의 종이며 내 기도의 뒷받침이 절실히 필요한 주님의 일꾼입니다. 내가 사는 날 동안 그를 붙잡아 주어야 해요 당신도 힘껏 도와주세요” 라고 했다. 그녀는 78세의 일기로 김 목사의 장례주례를 받고 천국으로 갔다.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 시절 칠년 기근의 때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를 자기 집으로 모셔서 섬김으로 선지자를 보호한 그 하나님이 선지자를 모신 그 과부와 아들까지 지켜 주셨다.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1-42)라고 했다.

 마가는 어떤 사람인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에 12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큰 집을 소유한 부자였다(행 12:12). 이는 마가가 부유한 유대인 가문의 출신임을 보여준다.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 의하면(행 12:13-16) 마가 집안에 계집종이었던 로데가 베드로의 음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베드로는 마가의 모친 마리아의 집에 자주 왕래하였을 뿐 아니라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기도 했다(골 4:10). 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오게 한 이는 베드로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마가를 친히 아들이라(벧전 5:13)고 불렀다. 또한 마가 자신이 쓴 복음서의 근본 자료도 베드로에게 전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즉 마가는 AD 30-65년 사이에 베드로가 행한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이르는 전도사역의 초기부터 끝까지 그와 함께 하면서 베드로가 전하는 바를 기록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서보다 특별히 베드로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가 사도는 아니지만 베드로의 직접적인 증언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에 사도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연유로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복음이라는 별명까지 붙이기도 한다.

 마가복음이란 저자 마가의 이름에서 붙여진 것이다. 초대교회 각종 문헌과 교부들의 증언에 의하면 본서의 저자가 마가임을 너무도 쉽게 확증할 수 있다. 또한 마가복음 10장은 갈릴리에서 유대 예루살렙 입성 전까지의 유대사역을 요약하고 있다. 예수님은 마지막 한 주간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인자(the Son of God)는 섬기려 왔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의 수난의 의미를 밝히는 동시에 참된 제자의 길이 섬기는 종의 길임을 알려 주고 있다. 예수는 만왕의 왕이신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셨으나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섬기려 오셨다(마 20:28; 요 13:12-17). 주님의 대속적인 죽으심과 섬김의 본은 결코 분리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는 성도는 누구나 그가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신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3-4)고 권면했다. 성도의 참된 교제도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 서로 서로 섬기는 자세를 가질 때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섬김의 자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죽음을 본받는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없는 자는 진정으로 섬기는 삶을 살 수 없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태그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황권철 목사] 마가가 당신을 섬깁니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