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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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에반겔리아대학교)

 성경적 세계관의 한 특징은 창조와 타락과 구속의 의미를 우주적, 포괄적,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해 보면, “창조의 지평은 타락의 지평이며 그것은 곧 구속의 지평”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의 결과이며, 인간의 타락은 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고, 그리스도의 구속은 이 모든 것을 새롭게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창조 세계의 그 어떤 것도 인간 타락의 범위밖에 있지 않습니다. 오염된 물이 깨끗한 연못을 오염시키듯이, 타락의 유해한 영향은 창조 세계의 모든 영역을 더럽혔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세상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이 아니라는 그것이니라.”(약 1:27).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벧후2:20).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성경 구절들을 잘못 이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의 ‘세속적인’ 생활 양식에 대한 거부를 마치 ‘타계적’(他界的)인 생활 양식을 권면하는 것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범주에 기본적으로 교회, 개인적 경건, 그리고 ‘거룩한 신학’으로 이루어지는 ‘성스러운’ 영역 밖에 있는 모든 것을 포함시켜서 창조 세계를 소위 ‘거룩한 영역’과 ‘세속인 영역’으로 잘못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속적인’ 영역들을 세속주의적 세력에 내어 주게 만들었습니다. 월터스(Albert Wolters)의 지적과 같이 이런 ‘두 영역 이론’에 물든 교회야말로 서구의 급속한 세속화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만일 정치와 산업, 예술, 언론을 본질적으로 ‘세속적’, ‘세상적’, ‘속된’ 영역으로, 또 ‘자연적 영역’의 일부로만 낙인 찍는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문화에서 인본주의의 물결을 더 이상 효과적으로 막아 내지 못하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이들 성경 본문에서 말하는 세상(world)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용어는 성경에서 실제로 여러 가지의 상이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세상은 우주(universe), 육지(earth), 사람이 거주하는 지구(inhabited earth) 또는 지구의 대부분의 사람들(most people on the earth)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세상은 신학자 헤르만 리델보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 밖에서 죄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구속되지 못한 삶의 총체”(the totality of unredeemed life dominated by sin outside of Christ)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죄성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를 굽게 하거나 비틀거나 왜곡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세상이라는 의미입니다. 부정적인 의미의 세상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죄에 오염되어 있는 창조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오염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라는 것은 일부 크리스챤들, 예컨대 애미쉬(Amish)와 같은 일부 수도사들이 하는 것처럼 사회로부터 은둔하는 삶을 살거나 문화와 접촉을 최소화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창조 세계를 왜곡시킨 모든 것을 인식하고 여기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저항하면서 사회를 변혁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적 세계관은 마치 종교가 개인구원의 문제와 같이 하나님과 관련된 인간의 사적 생활에만 관계가 있고, 인간과 인간의 사회 관계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종교와 사회 생활이 분리될 수 있다고 결코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적 관점은 개인 생활은 물론 사회 생활 전체가 하나님께 속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임무는 사회에 완전히 속한 자로서의 삶을 살거나, 아니면 사회로부터 절연된 금욕적인 수도자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 생활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누리고 즐기며 살아가되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높이며,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누룩과 같이 내부로부터 나타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의 양태를 종교개혁자들은 한 마디로 “우리는 이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아니다”(We are 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과 다른 여러 가지의 가정적 미덕들, 자신이 할 일에 충실하는 것, 우애, 충성, 검소, 정직 등과 같은 수많은 사회적 미덕들은 사실상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변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독특한 달란트를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가능한 한 최고 정도까지 개발할 소명과 특권,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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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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