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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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전학 오기 전 시골학교에서도 이상한 소문은 있었다. 밤 12시만 되면 교내 모든 동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이야기.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싸움을 한다. 책 읽는 소녀의 책장이 넘어간다. 해태 동상이 운동장을 뛰어다닌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 입을 통해 전해졌다. 얼마나 오래된 소문인지 확인조차 어렵다.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잠깐의 오싹함은 있지만 관심이 지속되지는 않았고 해가 진 후 학교에 오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전학을 온 대도시의 학교에도 같은 소문이 돌았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동상이 움직이고 운동장은 또 다른 존재들로 시끌벅적 하다는 이야기. 이제 머리가 조금 더 커서 그런지 의심이 더 크게 작용했다.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에 용기까지 더해졌다. 밤 12시가 되면 정말 우리 학교는 그렇게 변할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관심 받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친구들에게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소문이 진짜든 아니든.

 

“그래, 한번 직접 확인해 보자.”

 

늦은 밤 찾아간 학교, 진실을 찾아서 난 이곳에 왔다. 너무 캄캄하다. 오늘 길 문방구도, 오락실도 불이 꺼지고 학교에는 중앙 현관 불만 켜져 있다. 주무시던 할머님께 아무 말도 없이 나온 것이 조금 죄송스럽지만 오늘 나는 꼭 ‘진짜’를 봐야만 했다. 여름인데 몸이 떨리는 것을 보니 이상한 소문을 나도 믿는 걸까? 빈 운동장과 스탠드, 그리고 동상의 적막함이 더 무섭다. 차라리 술 취한 아저씨나 불량스런 형들의 떠드는 소리가 있었다면 덜 무서웠을 것 같은데... 조금만 참자. 그럼 모든 것이 밝혀진다.

 

“12시”

 

여전히 고요하다. 스탠드에 혼자 앉아 있는 내가 누군가에게는 더 무서운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옆의 동상도 그대로다. 운동장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다. 가끔 바람에 움직이는 그네가 내 닭살을 돋게 만들었지만 직접 다가가 그네를 흔들어 보고는 안심이 되었다. 더 확실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을 어슬렁거려 본다. 이제 제법 용기가 났을까? 학교 뒤편의 동물 사육장도 가보고, 자그마한 인공 호수에도 가본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낸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는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할머니 곁에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으니깐.

 

 

 

  다음날, 나는 친구들을 불러 당당히 어제의 무용담을 나누었다. 밤 12시, 학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알렸다. 친구들은 황당하게 나를 바라보며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를 보였다. 믿지 않는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낼 필요도 없다. 그냥 담담히 상황을 그대로 이야기 하고,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다시 확인할 친구도 없었다. 학교의 이순신 장군님과 세종대왕님은 싸우지 않는다. 책 읽는 소녀는 내가 졸업 때까지 여전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학교는 밤새 안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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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작가 김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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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학교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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