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간 자율학습. 학원. 교회. 집”
고등학생 때 내 동선의 전부다. 누가 봐도 바른학생의 모습이다. 물론 나를 돌보고 계신 이모님 입장에서는 교회라는 곳이 늘 눈에 가시였겠지만. 그날도 루틴에 충실했다. 부족한 과목을 메우기 위해 학원을 가고 있었다. 학원 빌딩 바로 앞에는 작은 포장마차가 있다. 어묵과 떡볶이도 있지만 가볍게 소주 한잔 기울이는 사람들도 섞여 있는 곳이다. 별 생각 없이 바라 본 포차에 익숙한 사람이 보인다. 그도 나를 보았고 내게 손짓한다. 교회에서 찬양인도를 하는 친구.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친구. 늘 우러러 보며 동경했던, 교회친구다.
“어디가? 한잔 하고 가.”
친구 주변에는 다른 교회 친구들도 있었고 청년부 형도 있었다. 정겹게 교제(?)를 나누는 모습에 더해진 술 한 잔이 내게는 너무 어색하게 다가왔다. 그냥 어벌쩡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했다. 마치 내가 몰래 술 마시다 걸린 듯 얼굴이 뜨거워졌다. 친구들 표정은 정말 평온한데.
교회에서 다시 만난 친구들은 여전히 평안하다. 찬양인도를 하고, 헌금 위원을 하고, 대표기도를 한다. 내가 문제일까? 친구들이 누리는 극강의 평안이 이상해 보인다. 예배 후 사적인 교제들이 이어진다. 어떤 아이들은 피아노 앞에 삼삼오오 모여 찬양을 부르고, 어떤 경건파 친구들은 지하로 내려가 기도를 한다. 집안의 눈치를 보며 교회 다니던 내게는 그런 2부 행사가 쉽지 않았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는 내게 포장마차의 무리들이 나를 부른다.
“00형 집에 갈 건데, 같이 갈래? 잠깐 놀다 가라.”
포장마차에서 모임을 주도하던 청년부 형의 자취집에 가자는 친구의 권유였다. 부담도 있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걸음을 함께 한다. 부엌 하나에 작은 방 하나. 그곳에 남자 여럿이 모였다. 익숙하게 어떤 것을 꺼내 입에 문다. 단체 흡연이 시작된 것이다. 소주를 권했듯 친구는 나를 챙기며 따뜻한 미소로 한 대 권한다. 머리가 좀 복잡하다. 신앙이 아니라도 술과 담배는 학생이 할 것이 아니라고 배워왔는데, 지금 내게 던져진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겸연쩍 웃으며 부드럽게 거절하고 적당히 어울리다 집으로 돌아왔다.
나름 극강의 보호막을 치며 친구들의 문화를 거절했지만 나도 변하고 있었다. 헐렁한 양복바지, 하얀색 셔츠. 머리에는 과한 무스. 당시 오랜만에 만났던 내 초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멀리하기도 했다. 내가 좀 이상해 졌다는 말이 오랜 친구들 사이에서 돌았다는 이야기를 성인이 된 후 듣게 되었다. “너 그때 완전 날라리였어.” 어떤 친구의 직설에 웃음이 나온다. 나는 그렇게 교회 다니는 날라리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흡연과 음주”
지금 생각해 보면 신앙의 핵심은 아니지 싶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두 가지를 하지 않는다. 누군가 목사라서 안하냐는 질문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맞는 말은 아니다. 일단 맛도 없고 돈이 들고 건강에 유익도 없는 것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첫째 이유다. 굳이 신앙적인 이유를 꼽아 보자면, 많은 성경의 가르침을 다 따르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하지 말자는 신념이다. 믿음으로 포장해보지만 역시나 맛없는 것에는 유혹이 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