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9-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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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진해 웅천교회)

  어느 날 어떤 일로 많이 화가 나있는 나에게 주님은 질문하셨다. “네가 그렇게 성을 내고 화를 내며 실수를 해도 네가 의인임을 믿니?”라고 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대답 할 수밖에 없었다. “예, 주님 믿습니다.”는 나의 대답에 주님은 나의 마음의 생각으로 즉시 말씀하셨다. “그래, 고맙다. 내가 생명 바쳐 이루어 놓은 일을 너의 상태와 상관없이 받아주니 고맙구나. 그래, 맞아. 너는 죽었고, 내가 네 안에 산단다. 너는 이제 죽었단다. 네 안에 내가 단단다. 나는 사과하고 싶은데 너도 받아들일 수 있겠니? 받아들인다면 가서 사과하렴. 사과할 수 있겠니?”라고 하셨다. 사과하려니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그날 믿음으로 사과를 했다. 그전에 하던 사과의 개념과는 달랐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는 믿음으로 사과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여러 차례 지나가면서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의인이기 때문에 의인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마5:40-41)라는 말씀을 알 것 같았다. 믿음으로 믿음의 연습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믿음의 행위들은 나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성령님의 도움심이 틀림이 없었다. 그렇게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은 변화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는 말씀은 스스로 도저히 온전할 수 없는 나를 온전하게 하셔서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하라고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안다고 말했으나 그대로 알지 못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를 믿고 있었다. 나의 모습과 상태에 따라 임마누엘을 믿었다. 이론은 임마누엘이었지만 실재는 임마누엘의 삶을 살 수 없었다. 은혜가 되는 것 같을 때는 임마누엘을 많이 믿었다. 은혜가 떨어진다 싶을 때는 형편없었다.

이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의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을 100% 받아들이기로 결단했다. 나의 행위에 기준을 두지 않고 주님께서 하신 일에 기준을 두기로 결단했다. 그러니 쉬워졌다. 행복해 졌다. 감사가 넘친다. 기쁨이 넘친다. 오늘도 능력의 삶을 산다. 나는 변화된 나를 보게 되었다.

 

임마누엘을 실재로 믿고 생각하고 말하고 기도했더니 많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놀라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흥분되기도 했다. 앞을 못 보는 분이 눈이 열렸다. 불가능한 일들이 일어났다. 마음은 흥분되었다.

치유 전도 집회를 계획하며 전도지를 만든다고 만든 것이 이웃교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모양이다. 이 일로 목회자 모임에서 나를 불렀다. 느낌에 야단치려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적과 기사로 전도하신 예수님 따라하려고 하는데 방해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도 따라해야지!”하는 생각은 않고 방해하려고 한다는 생각에 격분해 진 것이다. 시기와 질투 때문이라는 생각까지 드니 마음이 힘들었다. 모임에 가서 “전도하려 하는데 왜 그러느냐”고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다. 나는 마음은 편하지 못했고 분하기까지 했다.

기도하는데 주님의 음성이 마음 깊은 속에서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성한아, 기사와 표적이 네가 한 일이니?”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 맞다. 그런데 네 마음은 지금 왜 그러니? 마치 무언가 부숴버릴 것 같구나!”라고 하셨다. 성격이 급한 나를 꼬집으셨다. “예, 주님, 억울합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전도하는 일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사방에서 야단들입니다.” “그래, 나도 안다. 그런데 생각해 보렴. 네가 그런다고 내가 더 역사하고, 네가 안 그런다고 내가 덜 역사하겠니? 그렇지 않단다.”라고 하셨다. “주님, 그러면 어째야 합니까?” “화를 내지 마라. 그리고 몰라서 그랬으니 시켜주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그래라. 그래야 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너도 평안해 진단다.”라고 하셨다.

이 음성을 들은 나는 더 괴로워졌다. 억울한 마음이 식지 않는 것이었다. 계속 기도했다. 주님의 음성과 옥신각신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결국 나는 주님께 순종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을 했는데 왜 그렇게 기쁨이 넘쳐나든지 주님과 옥신각신할 때의 마음은 어디로 가 버렸는지 찬송이 터지고 감사가 터져 나왔다. 그 모임은 그렇게 은혜로 마무리 되었다.

 

 

 

 

임마누엘 하셔서 항상 정확히 인도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주님을 믿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다. 당신 안에 잠자는 성령의 능력을 깨우는 길은 임마누엘의 생각으로 충만케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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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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