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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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룡 장로(마산회원교회 원로)

  '욱여쌈'이란 말은 바울이나 요셉에게 어울리는 말로 정말 헤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을 때 사용하면 적격이다. 이 말은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말로 ‘안쪽으로 조금 우그러져 있다.’는 형용사‘욱다’와 ’싸다‘라는 동사와 어울려 만들어진 순수한 우리나라의 말로 물건을 안에 넣고 보이지 않게 씌어 가리거나 둘러 말다는 뜻이다. 물건이나 물체가 아닌 사람이 욱여쌈을 당한다면 포도즙을 짤 때 포도를 짓누르는 것과 같이 엄청난 고통을 당하여 사방이 캄캄하고 터질 것 같은 답답함으로 생을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욱여쌈을 당한 사람하면 조선시대 이 순신 장군을 떠올리게 된다. 조정은 조정대로 위태한 나라를 위해 적극 힘을 보태주지 못하여 방해꾼이 되었고 아군은 아군대로 지도자가 자기의 공을 드러내기 위해 싸움은 뒤로한 채 허위보고와 헐뜯는 일에 몰두하여 적군 아닌 적군이 되었다. 지원군인 명나라도 일본과의 약은 정치로 군대 해산과 적대 행위 종료와 귀향을 명령하여 돕는 아군이 아니라 방해하는 적군이 되어버린 것이다. 진짜 적군인 왜군은 어찌하든지 이 순신 장군을 죽이고 조선 수군을 멸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던 것이다. 돕는 이 하나 없는 이 순신 장군은 아마 온 천지가 적들에게 포위되어 욱여쌈을 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왜군과 명군은 돌아갈 고향이 있었으나 아군은 돌아갈 고향이 없다고 탄식했던 것이 아닐까? 결국‘죽으면 살리라.’라는 담대한 마음으로 적의 종자를 멸할 것을 명령하여 왜란을 승리로 이끌게 되어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한 것이다.

작금에 우리나라의 형편은 국내외적으로 욱여쌈을 당한 형국에 처해졌다. 정파는 정파대로 교파는 교파대로 편을 나누어 국론이 통일되지 못하여 유대나라처럼 온통 찢어진 상태로 분열된 느낌이다. 북한은 시간만 나면 무력으로 남한을 접수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주위의 강대국들은 한국이 부강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아 보이지 않게 방해 공작을 멈추지 않는다. 특히 젊은이와 믿는 백성들까지도 방황하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많은 것을 포기하려 한다. 게다가 기상이변과 코로나까지 더 심해져 어려운 형국을 맞아 일제강점기의 최악의 순간처럼 도저히 미래가 암담하다. 일자리는 줄어들어 일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가 없어 직장도 결혼도 미루거나 포기한다.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축하하지만 시국적으로 현재는 어려운 시기로 개인도 국가도 욱여쌈을 당하여 어려운 상태에 처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순신 장군도 바울도 요셉도 욱여쌈을 당하여 도저히 인간적으로 ‘바람 앞의 등불’같이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죽기로 각오하면 살리라.’하고 상황을 대처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살려 주시고 높여 주셨다. 우리의 현실은 지금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모든 분야에 욱여쌈을 당한 상태로 어려운 위기의 비상상황임을 기독교인이 먼저 절감해야 한다. 우선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진정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었는지 자성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개체인 나라는 존재는 극히 작지만 예수님은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성질이 날 때 내가 나를 죽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도 나를 죽여야 한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고 불평과 불만의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와도 나를 죽이자. 그리하면 그 분이 내 안에 계셔서 크게 역사해 주시고 위기에서 구해 주신다.

지금은 온 세계가 코로나와 전쟁 때문에 경제 침체의 욱여쌈을 당하여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나만 죽으면 전능자는 삽니다. 나 자신을 죽이세요. 그 분이 모든 환난을 감당하십니다.’라고 외쳐야 한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그 분이 환난을 능히 감당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절대 필요한 때다.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임을 명심하자.

2022.08.22.

 

 

 

 

경남기독신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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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룡 장로] 욱 여 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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