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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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사랑 받은 제자 요한

 

 그는 주님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은 자이다. 열두 제자로 부름 받은 것도 은혜인데 언제나 예수님을 그림자처럼 수행한 핵심그룹이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항상 주님과 함께 했다. 변화산상에도 같이 갔고 겟세마네 동산에도 같이 갔다. 아마 주님에게 이 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라고 하면 요한을 택했을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 지실 때 다 주를 버리고 도망갔지만 그래도 골고다 현장까지 따라 간 유일한 제자가 바로 요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하셨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주님은 구약의 모든 율법을 사랑의 계명 하나로 요약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 가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그는 사도들 중에 가장 많은 계시를 기록했다. 요한복음과 요한 일, 이, 삼서와 요한계시록 다섯 권 중에서 요한계시록에서 만 본문 가운데서 저자가 저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외 요한복음이나 서신서들의 저자가 요한임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르고 있다(계 1:1). 요한 이서와 삼서의 서두에서 기자는 자신을 장로(the elder)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을 사도라고 부르는 대신에 장로라는 권위로 기술하고 있다. 요한 일서에는 예수의 지상 사역 기간 중 자신이 개인적으로 사랑받는 동료였음을 시사하고 있다(요일 1:1-4).

 그는 공동체를 더 소중히 여겼다. 여기서 언급된 우리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논설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요한복음에서도 기자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억제했다. 마지막 21장에 가서도 세배대의 아들들이라고 했고, 디베랴 바다에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도 특별히 언급을 피했다(요 21:2). 요한복음은 아람어적 배경을 갖고 있는 헬라어를 사용한 팔레스타인의 한 유대인의 증거에 기초를 두고 있다. 기자는 요한이 주님의 목격자인 것을(요 1:14, 19:35) 적극 뒷받침해 주고 있다(요 21:24). 열두 사도 중에 형제가 부름을 받은 것은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자신뿐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두 사람 중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요한임을 증명하는 것이다(요 1:41). 주님의 특별한 사랑받는 제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십자가 상에서(요 19:26)와 부활의 현장에서(요 20:2-10), 디베랴 바닷가와(요 21:7), 베드로에 관한 사건을 통해(요 21:20-23) 주님의 사랑받는 장본인임을 말하고 있다(요 21:24).

 

언약사상을 마감한 요한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를 기록하고 마지막으로 계시록을 기록했다. 그가 쓴 복음서는 공관복음과 전혀 다른 각도에서 기록했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당시 유대와 로마와 헬라라는 시대적인 정황에서 복음서를 기록했지만 요한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기록했다. 그는 태초에서부터 언급하여 당시 유대와 지배국가 로마와 헬라 문화를 초월하여 우주적인 초자연적 복음으로 기록했다. 그러면서도 흩어진 유대의 디아스포라들에게 당시 이단자들인 영지주의 유혹에 미혹 받지 않도록 특별한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말세에 일어날 교회의 모든 환란을 이기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나아갈 천국을 소개하므로 구원역사의 언약사상을 마감한 최후의 사도였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 사상에 변함이 없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으므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8-9). 그는 순교는 하지 않았으나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 순교자였다.

 또한 그는 신약의 묵시록을 기록한 자이다. 신약 성경의 제일 마지막 책으로써 문학적 유형으로 보면 구약의 에스겔서, 다니엘서, 스가랴서와 대단히 흡사하다. 그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와 결별한 때였고, 또 로마 제국에 의해서 독립된 운동으로 간주되었던 시기이다. 저자의 진술에 따르면 그의 이름이 요한이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노예)이다. 이 책의 환상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신앙 때문에 유배지인 밧모섬에서 받은 것이다. 그는 아시아교회에 잘 알려진 인물이며 이미 예언자로 인정받았고(계 22:6, 9, 19), 전에도 계시적 성격을 띤 환상을 받아 왔던 사람이었다. 유스티누스(Justinus AD 150년경)는 계시록은 우리 중의 한 사람인 그리스도의 사도중 한 명인 요한에 의해 쓰여졌다고 했다. 그 외에도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AD 200년경), 오리게네스(Origenes AD 225년경) 등 2세기 중엽에서 3세기 중엽까지 요한의 저작설이 알렉산드리아를 포함한 서방교회들에 의해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삭줍기

 

 유세비우스는 그가 에베소에 돌아와서 트라야누스(Trajanus)시대까지 살았다고 한다. 아폴로니우스(Apollonius)에 의하면 그는 에베소에서 어떤 죽은 사람을 살렸으며,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스(Clemens of Alexandria)는 에베소 근교에서 한 강도를 갱생시켰다고 한다. 이레니우스(Irenaeus)에 의하면 이교도적 케린투스(Cerinthus)에게 항거했다고 한다. 제롬(Jerome)에 의하면 그가 만년에 기력이 없고 너무 쇠약하여 말하기조차 어려울 때 그는 사람들에게 받들려 기독교 집회에 매번 거듭해서 “어린 자녀들이여 서로 사랑하라”를 되풀이 했다고 한다. 요한이 에베소에 거주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결정적인 증인은 이레니우스이다. 이레니우스는 요한이 에베소 지역에서 살았으며 또 거기서 일했다는 사실을 폴리갑(Polycarp)과 파피아스(Papias)를 통해서 직접 받았다고 확실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레니우스는 그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이러한 것들을 폴리갑으로부터 전해 들었음을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레니우스의 증언은 교회의 용인된 전승이 되었다. 그는 한 때 밧모섬에 유배 가서 그곳에서 본 것으로 요한계시록을 썼다. 밧모 섬은 요한이 환상을 보았던 장소이다. 그가 거기서 기록했거나 아니면 후에 에베소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밧모섬은 에게 해에 있는 작은 돌섬으로 여기에는 유배지가 하나 있었다. 이곳으로 정치범을 유배시키기 위해 또는 광산에서 강제노동을 시키기 위해 보냈던 것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다”(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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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요한(John's Behind Stories)-사랑의 사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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