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2-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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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잔돈 주세요"

 

 

복학했지만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학업에 필요한 책값을 만들기도 쉽지가 않다. 봄인데 나는 벌써 가을을 염려하고 있다. 다음 학기 등록이 늘 힘겨운 숙제다. 친구들은 방학이면 캠프 준비, 성경학교 준비, 휴가를 계획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학교 등록이 코 앞이기에 뭐든 해야만 했다. 그래서 매일 일터 정보지 ‘교차로’를 묵상한다. 어떤 분야는 미련 없이 페이지를 넘기고, 어떤 분야는 깊게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학교 다니며, 교회 사역을 섬기며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음을 확인하고는 어제처럼 오늘도 그냥 덮는다.

 

 

“대리운전 해볼래?”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소개하는데 솔깃하다. 운전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람 대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으니 나쁘지 않다. 급여도 일하는 만큼이고 시간도 비교적 자유롭다. “그래, 한번 해보자!” 그렇게 대리운전 회사에 취업을 했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잠시 잠을 청한다. 7시가 되면 사무실에 출근해서 첫 번째 콜을 기다리며 아저씨들과 소소한 대화를 한다. 사무실 분위기도 좋고, 아저씨들도 좋다. 대부분 낮에 다른 일을 하는 분들이다. 직장생활하며 야간에 대리운전하는 것이 많이 고단하실텐데 믹스커피 한잔에 웃으며 콜을 기다리는 아저씨들을 보니 가슴 짠함이 밀려온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대리 부르셨죠? 안전히 모시겠습니다.”

 


이제 제법 인사도, 업무도 익숙해졌다. 대전의 유명한 사거리와 아파트 이름도 외워진다. 모르는 곳은 익숙한 포인트까지만 운전하면 손님들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가끔은 대리기사가 그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는 손님도 있지만, 문제없다. 재미있다. 겨울에는 길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춥고 힘들지만 길다방 믹스커피는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가끔 여유 있을 때 찾는 김밥집은 천국이다.

손님이 많이 피곤해 보이고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모시는 동안 말씀도 별로 없으시고 창밖 먼 곳만 본다.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도착한 곳은 허름한 빌라. 기본요금이 적용되는 거리, 1만 2천 원. 손님은 내게 만오천 원을 주며 “잔돈은 기사님 라면 한 그릇 하세요. 고생하셨어요.” 차 안에서 본 어두운 표정과 달리 밝게 인사를 건네며 엑센트 차주 손님은 낡은 빌라로 들어갔다. 조금 비틀거리는 걸음이 불안해 보여 잠시 서서 바라본다.


저분은 좋은 손님이다. 친절한 매너? 맞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거스름돈. 기본 대리비는 1만 2천 원. 대부분 손님은 1만 5천 원을 기사에게 건넨다. 그리고 짧은 정적이 흐른다. 잔돈을 받는 손님이 될지, 팁으로 주는 손님이 될지가 이 순간 결정이 된다. 물론 기사는 이때 망설이지 않고 얼른 손님에게 잔돈을 내어 드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 역시 순간 멈춘다. 기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획득한 팁은 대리기사에게 큰 힘이 된다. 김밥집에 잠시 앉아 쉬어가며 배를 채우기도 하고 자판기 커피 한잔을 동료 기사에게 대접할 여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엑센트 아저씨는 내게 좋은 손님이다.

 

다음 콜. 외제차, 벤츠다! 손님은 얼굴이 밝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업도 잘되는 것 같고 삶에 여유도 있는 듯하다. 도착한 곳은 둔산동의 좋은 아파트. 몸이 힘들다며 골프가방을 좀 올려달라는 요청을 한다. 대리기사에게 그럴 의무는 없다. 주차까지만 해드리면 된다. 하지만 나는 어떤 기대로 들떠 이미 골프가방을 들고 있었다. ‘100%’ 팁이 나온다는 확신이 들었다. 잔돈 그 이상의 팁을 기대했지만 아, 만 원짜리 한장과 5천 원짜리 한 장을 주시는 손님. 2%의 아쉬움이 남지만, 내게는 아직도 3천 원의 은혜가 있다. 3천 원도 괜찮지 않은가! 그런데 손님이 돈을 주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싸늘하다’

 

 

“잔돈 주세요.”

 

 

그렇게 3천 원을 받아간 벤츠 아저씨. 외제차에 골프가방 이동 서비스. 기대한 내가 잘못일까? ‘그래, 잔돈 받아간 아저씨 잘못은 아니지.’ 혼자 그렇게 충격을 삭혀보지만 뭔가 당한 느낌이다. 오늘 만난 벤츠와 엑센트는 내게 소중한 교훈을 준다.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자. 사람을 기대하며 기대지 말자.」 아마 오늘의 일은 목회할 때도 큰 교훈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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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작가 김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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