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3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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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동철 장로(서머나교회)

  소련 연방 제국의 마지막 공산당 서기장 미하엘 고르바초프가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났다. 애칭 고르비의 죽음이 세상에 던지는 여러 얘기에 많은 관심이 끌린다.

지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세계 냉전체제가 화해로 돌아서게 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당시 공산 사회주의의 맹주 소련이 무너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서독이 통일되자 소련의 당시 서기장 고르비는 권력의 통제에도 힘을 잃어갔다. 이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고르비와 대화 시스템을 갖추고 미소 냉전을 끝내고 대화의 파트너로 전환하게 된다. 드디어 1988년 5월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UN에서 연설을 통해 대결에서 협력의 시대를 선언하게 된다. 사실상 공산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선언이었다. 동유럽 소련 연방 제국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소련은 러시아로 돌아가게 된다.

 

  필자는 이 무렵 일선 기자생활 할 때라 생생한 기억들이 있다. 당시 우리는 80년대 신군부의 군사정권이었지만 노태우가 6.29선언으로 다시 정권을 잡아 6공화국 시대를 구가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사정권의 연장에서 북방 정책을 표방하고 소련과의 외교에 힘을 쏟았다. 노 대통령은 90년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했다. 그리고 고르비의 답방형식으로 91년 5월 제주도에서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갖는다. 우리나라가 동토의 땅 소련의 문을 열게 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지금도 러시아는 우리의 중요한 통상 파트너가 되고 있다. 당시 가끔 특별한 기자회견 취재 중 노 대통령은 소련과의 외교 정상화의 북방 외교를 늘 치적으로 앞세우는 모습들을 보아왔다. 사실 이후 러시아로 정치체제가 바뀌면서도 우리와의 외교는 발전해 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후 기독교 복음화가 급격히 확장 됐다는 점이다. 고르바초프의 큰 덕택이자 하나님의 큰 역사로 봐야 할 것이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동방 종교의 대표격인 정교(正敎)가 종교의 영역이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는 공산당 권력 아래에서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하면서 기독교 이단의 기능에서 머물러 있었다. 러시아 정교는 로마의 분열과 함께 동방 정교로 발전하여 러시아에서 교세를 떨쳤지만 러시아 혁명과 함께 교리 상 예수 십자가 복음에 이르지 못하고 공산당 최고 권력에 묻혀있는 유사 기독교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20년간 선교사로 사역하신 한 목회자는 소련 개방과 함께 우리 기독교가 선교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공산당 문화가 가시지는 안 했지만 러시아 정교의 불간섭하는 정서 속에 지금은 한국 교회서도 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사역에 사명을 다하고 있다. 기독교 국가라고 하는 러시아의 정교는 국교화하여 85% 이상의 인구를 가졌지만 개신교는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 한국 교회 선교사는 현재 400여 가정이 러시아 곳곳에서 복음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故 조용기 목사님이 이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역사적 대 집회를 갖고 복음의 바람을 일으킨 적도 있다.

 

  이제 또 러시아는 푸틴의 독재 권력하에서 제국의 탐욕에 불타고 있다. 고르비의 죽음도 국장으로 치르지 않고 장례식에 불참하는 등 고르비의 소련 제국화 포기에 불만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일으키고 온 세계에 호전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북방의 괴물 푸틴의 러시아를 순화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복음임을 깨닫게 한다.


  일찍이 에스겔 선지자는 예언했다. 적그리스도 북쪽이라는 표현 아래 곡과 마곡이 이스라엘을 깊이 괴롭힐 때 하나님이 그들을 가만두지 않겠으며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설파했다. 에스겔 38장과 39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사명과 소망을 던져주고 있다. 공산 사회주의의 본거지 러시아를 두고 말하는 것 같다. 역사의 깊은 곳에 복음의 행함이 함께 깊이 자리를 잡아 나가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간절한 소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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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고르바초프의 죽음과 러시아의 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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