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3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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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잘못된 만남

 

복학 후 교내 크고 작은 예배 모임과 지역교회 집회에 초대받아 함께 예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인근에 있는 대학에서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예배특강 요청을 받기도 했다. 신학대학원 학생들을 상대로 찬양 콘티 작성법과 예배 인도법에 관한 2시간짜리 특강이다. 마침 신혼여행 일정과 맞물려 고민이 되었는데 선하신 아내님의 허락으로 여행을 1주일 미루고 참여할 수 있었다. 교회 사역을 포함해서 일주일에 찬양 인도를 다섯 번 이상은 고정으로 하는 것 같다.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다니는 것인지 찬양을 섬기러 다니는 것인지 모를 정도의 일정에 고단함도 있지만 좋다. 철가방, 방범대원, 대리운전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교회 청년부예배 강사로 초대를 받았다. 찬양과 말씀을 함께 섬겨달라는 요청이다. 초청해주신 교회의 청년들과 찬양을 연습하며 집회를 준비하는데 담당 교역자가 슬며시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부장 집사님 집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집회를 시작하자는 제안이 왔다. 강사로 사역을 섬길 때 식사 초대는 여러모로 부담이 있다. 무엇보다 시간이 여유롭지 못함이 가장 큰 이유다. 찬양팀과 맞춰야 할 시간도 부족하고, 배가 부르면 사역에 불편함이 생겨 대부분 식사는 정중히 거절한다. 하지만 난감해하는 청년부 사역자를 보며 식사 자리에 함께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부장 집사님은 이미 안면이 있는 분이다.

 

칼국수 집에서 일하며 철가방을 들고 다니던 시절. 대부분 배달처는 대학병원이나 사무실이었다. 가정집 배달이 있지만 얼마 되지 않았다. 그중 늘 불평이 많고 배달원을 함부로 대했던 손님. 그 집 배달 요청이 오면 늘 불편했고 인상부터 찌푸려졌다. 피하지 못해 배달을 가 현관문을 열면 ‘예수만 섬기는 집’임을 드러내는 상징이 많았다. ‘벽의 그림, 말씀 액자. 테이블에 올려둔 십자가.’ 은혜로운 셋팅과 다르게 집주인은 고약했다. 늘 음식 타박에 배달원을 무시하는 말투. “예수 믿고도 저 모양이니 예수님이 욕을 먹지.” 빈 배달통을 들고나오며 늘 혀를 찼던 기억이 난다. 배달 일을 그만둔 지가 벌써 몇 년인데 나는 그 아저씨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 내가 다시 이 집에 오게 될 줄이야!’

 

둘은 단박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고약한 집주인과 배달부. 아니 이제는 청년부 부장집사와 집회 강사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더 무슨 말을 할까? 형식적인 말들로 식사 자리를 채운다. 애매하고 묘한 감정을 애써 감추며 식사가 시작되었다. “요즘도 칼국수 좋아하세요?”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담았다. 우리는 잘못된 만남이었다. 한 상 잘 차린 식사도, 오가는 은혜로운 말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미 서로의 민낯을 보았기에 잔뜩 꾸며진 겉치레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집회 시작을 앞두고 잡힌 식사였기에 긴 시간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짧은 시간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예배는 시작되었고 찬양은 참 은혜로웠다. 청년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했고 나 역시 행복했다. 찬양, 말씀, 기도. 모든 것이 은혜였고, 행복했고, 감사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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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작가 김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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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잘못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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