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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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28세, 유부남, 아내는 임신 6개월

문제 많은 나는 그렇게 군인이 되었다.

 

입소대대에서 보내는 첫날. 생각이 많아서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왜 여기 있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이해시킬 방법이 없었다. 이 밤 혼자 누워있을 아내 생각에 더 마음이 괴롭다. 내 괴로움과 무관하게 소지품은 택배로 보내지고, 빈 가방에는 보급품이라 불리는 다양한 녀석들이 채워졌다. 이거 없어지면 죽는다는 소리만 반복된다.

 

혹시나 기대했던 간단한 신체검사는 나의 건강을 확인시켜줬고 동기들과 같은 복장으로 줄을 지어 이동했다. 커다란 운동장에 멈췄을 때 들려온 한 사람의 고함에 내가 누구인지 분명해졌다. 여기는 논산훈련소다. 학교 운동장 같았지만 우리는 체육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체육 선생님 같았지만 보다 더 고압적이다. 4월의 논산은 딸기향 가득했지만 그다지 달콤하진 않을 듯하다.

 

고역이다. 밥도, 부식도 남기면 안 된다. 동기들은 컵라면 하나가 부족하다며 난리인데 나는 국물 다 먹기 힘들어서 난리다. 모든 훈련이 행군 같다. 사격을 위해서, 교육을 위해서, 수류탄 한 발을 던지기 위해서, 공포스러운 가스를 마시러 가기 위해서, 우린 거추장스러운 단독군장 차림으로 많이도 걸어야 했다. 물론, 진짜 행군 훈련을 하고서는 지금까지 교육장 이동은 산책이란 것을 깨달았지만.

 

“너무 아파요.”

 

신체적 한계와 스트레스로 병이 왔다. 심한 몸살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조교에게 상태를 보고한다. 간단히 확인 후 의무대로 이동. 하지만 훈련병은 아파도 혼자 이동이 불가하다. 인솔 조교가 붙어야 한다. 드라마에서 본 것과 다르게 군의관은 친절했고 내게 수액을 놓아주었다. 일단 누워서 천천히 맞고 쉬라는 명령(?)을 듣고 잠시 눈을 붙인다.

 

“96번 훈련병, 일어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조교가 옆에서 나를 깨운다. 링거는 다 들어갔고 시간은 벌써 밤 12시가 되어간다. 혼자 복귀할 수 없는 훈련병이었기에 또 조교가 붙었다. 하... 불편하다. 전역이 얼마 안 남았다고 들은 병장 조교다. 그리고 늘 무표정에 성대를 꽉 누르는 듯한 소리로 호통을 치는 조교. 분명 카리스마는 있다. 그리고 잘생겼다. 밖에서 만났으면 호감이 갔을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불편하다. 그리고 아직은 나이 어린 청년이 욕 비슷하게 들리는 반말하는 것이 불편하다. 그렇게 나는 생활관으로 복귀를 하게 되었다. 몸이 많이 가벼워져서 걸음은 가볍다.

 

그런데 복귀 코스가 이상하다. 아무리 내게 어색한 길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이 길은 아니다. 점점 어두운 구석으로 데리고 간다. 심지어 연병장을 가로질러 뭐가 있을지도 모를 곳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아, 갈구는 거 아냐?” 말년 병장 귀찮게 한다고 으슥한 곳에서 욕먹을까 긴장이 된다. 나이 먹고 군대 와서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이런 눈치 보고 있는 내가 너무 서글프다.

 

“형수님한테 전화해.”

 

연병장을 지나 도착한 구석진 곳. 조명도 없는 그곳에는 공중전화가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조교 모자를 벗어 내게 푹 눌러 씌운다. 담배 한 대 피고 올테니 여유 있게 통화하라는 말과 함께 더 어두운 곳으로 조교가 사라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망설이는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에 급하게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늦은 시간 훈련소에 있는 남편의 전화에 아내는 많이 놀라는 눈치다. 지금 아프다는 이야기, 너무 고단하다는 이야기를 다 전하지 못하고 자꾸만 눈물이 난다. “왜 울어... 힘들어?” 아내의 눈물 삼킨 말에 나는 더 눈물이 난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눈치가 보였을까? 그리 긴 통화를 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공중전화 부스 밖에 서 있었다. 생각보다 한참 병장 조교는 돌아왔다. 왜 벌써 끊었냐는 말에 딱히 할말은 없다.

“형, 나 담달에 전역이야. 시간은 가더라. 아프지 말고 무사히 전역해.”

다시 가로지르는 연병장은 따스했다. ‘유부남, 고령자(?), 아내가 임신 중’ 나의 이력을 알고는 의무대에서 복귀하는 인솔을 자처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잘생기고 무뚝뚝했던 성현준 분대장,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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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작가 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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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고맙다 조교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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