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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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잠복(潛伏), 사라지는 고물을 찾아서

 

분리수거장은 돈 주고 버리기 아까운 물건들을 내어두는 곳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돈이 되는 물건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폐지는 물론이고 고철과 공병은 어떤 이의 주 수입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큰 규모의 아파트에서는 제법 큰 수익을 만들어 아파트 복지를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아파트는 규모가 작아 폐품으로 모을 수 있는 금액은 미비하다. 오히려 얼마간 돈을 만들기 위해 묵혀두었다가는 분리수거장이 냄새나고 지저분한 공간이 되어 버린다. 실제로 전임 소장님은 폐품을 관리해 월 2~3만 원의 현금을 만들기도 했다. 후문에는 그 돈은 개인 용돈이 되었다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여하튼 모으면 돈이 될 수 있지만 내 기준에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 지역에 고물을 취급하는 사장님과 연계하여 매일 수거하는 조건으로 아파트 측에서 일절 금품을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얼마간의 돈을 포기했지만, 입주민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매일 치워지는 폐품으로 아파트가 너무 깨끗해 졌다.

 

“소장님, 요즘 폐지랑 고철이 왜 이렇게 안 나오죠?”

 

업체 사장님의 전화다. 매일 수거하러 와보면 돈이 되는 폐지와 고철은 없고 잡다한 물건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물건을 누가 집어갈까 싶어 며칠 더 지켜보자는 말을 전하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고물이 좀 덜 나오는 날도 있을 수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확실히 이상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고물은 모이지 않았다.

 

‘누군가 몰래 가지고 가는구나!’

 

확신이 들었다. 마침 분리수거장을 비추는 CCTV가 있어서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시간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시간을 빠르게 돌리며 영상을 재생한다. 차곡차곡 쌓이는 폐지들. 그런데 어느 시간이 지나니 갑자기 사라진다. 그 순간을 다시 천천히 돌려본다. 새벽 시간, 어느 노인이 수레를 끌고 들어와 차분히 야무지게도 돈 되는 물건만 담아 간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찾아오셨다. 하, 고민이 깊어진다.

 

「잠복을 결정하다」

 

계약한 사장님께 미안한 마음도 들고, 분명한 절도라는 생각에 잠복을 결정했다. 반드시 잡아서 경찰에 넘길 계획이었다. 아내에게는 며칠간 못 들어 올 수도 있다는 말을 남겼다. 제법 비장하다. 밖에서 보일까, 관리실 불도 끄고 의자에 몸을 푹 묻은 상태로 새벽까지 뜬 눈으로 지켜본다. 첫날은 실패다. 반드시 다시 온다는 확신으로 둘째 날을 맞았다. 조금 지루해질 즈음에 드디어 나타났다. 영상에서 보았던 손수레와 할아버지다. 익숙하게 고물을 챙겨 담아 조용히 대로변으로 빠져나간다. 은밀히 드러나지 않게 따라가 본다. 굽은 허리로 옆 건물의 폐지도 조용히 정리하며 수레에 물건을 쌓는다.

 

‘이걸 어쩌지.’

 

나는 무엇을 고민했을까? 할아버지와 대면하지 못하고 조용히 관리실로 돌아왔다. 사장님과 의리가 있으니 할아버지를 제재했어야 하는데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민이 깊어졌다. 날이 밝은 후 고물상 사장님과 통화하며 그간 상황을 설명했다. 상황의 난감함, 사장님께 미안함이 버무려져서 말도 조리 있게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의외의 시원한 답으로 나의 고민을 해결해 주셨다.

 

“아이고, 소장님. 그러면 그 영감님께 고물 다 드리세요. 우리는 여기 아파트 물건 없어도 아무 지장이 없어요.”

 

정말 그래도 될지, 미안한 마음에 한 번 더 되물으며 감사 인사를 드린다. 내가 감사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지만 감사했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그리고 부끄러웠다. 목사보다 사장님 마음 씀이 더 고왔다. 그리고 나는 한 번 더 잠복을 이어간다. 그 할아버지를 만나야 했다. 새벽이 되어 어김없이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어제처럼 익숙하게 고물을 담아 돌아가는 길을 쫒아간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본다.

 

“어르신, 제가 여기 아파트 관리소장이에요. 저희 고물을 매일 수거해 가실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요청을 드렸고 할아버지는 신이 나서 깨끗하게 정리해 가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이미 손수레에 실린 우리 아파트 물건은 말이 없다.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비밀은 그 녀석들만 입을 다물어 주면 아무 문제 없을 듯하다. 오늘도 이렇게 인생의 한 수(手)를 배운다.

 

에필로그

 

그 후 할아버지는 새벽이 아닌 낮 시간 당당하게 고물을 챙겨 가셨다. 입주민이 간섭이라도 할라치면 관리소장님 허락이 있었다며 당당해 하신다. 그리고 얼마지않아 다시 폐지가 쌓이기 시작했고 더 이상 치워지지 않았다. 아파트 미관상 좋지 않기도 했지만 할아버지 신상이 염려되어 동네 고물상을 찾아다니며 할아버지 안부를 물었다. 마침 한 고물상에서 할아버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갑자기 몸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며칠 계시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 무엇을 위해 그리 고생하며 살다 가셨을까. 여전히 고물은 말이 없다.

 

11_신재철 목사 잠복 강신영 목사.jpg
삽화작가 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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