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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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열 목사(사천중앙교회)

도피처란 도망하여 몸을 피하는 곳으로 매우 부정적인 말이다. 실제 도피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연관 검색어로 “비열한, 소심한”이 뜬다.

그래서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도피는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앞만 보고 나가야 하는 사회 속에서 잠깐 멈추어서는 것조차 부담이 되어버린 현실이 씁쓸하다.

삶 속의 스트레스가 극심해질 때마다 우리에게도 도피처가 필요하다. 사람들 대부분은 피시방, 노래방, 술집, 산을 도피처로 삼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을 도피처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점 자체의 고요함과 따뜻한 분위기가 감성에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임경선 작가는 자신의 에세이 집에서 “카페”라는 공간을 정의하기를 불필요한 마음의 짐을 들고, 머릿속을 비워내고,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새로움의 힘을 얻어가는 곳이라 하였다.

경쟁이 치열한 현실 속에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쉬어갈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일상 속 혼자 조용히 있을 곳이라면 도피처로 족하리라 생각된다. 도피는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태종 이방원이 싫어 깊은 산속에 들어간 생육신들과 같은 현실 도피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도피처는 절대 소심하고 비겁한 자들이 찾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는 곳, 불안해진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라야 한다.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부지중에 실수하여 사람을 죽인 과실 치사범의 생명을 보존시켜 주시고자 도피성 제도를 두게 하였다. 도피성이란 히브리어로 이르 미클라트라는 말로써 “받아들이는 성읍”이라는 뜻인데 살인한 사람을 받아들여 그에게 안전을 보장해주는 장소이다.

그러나 아무런 기준 없이 살인자를 다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비고의적인 살인자 곧 과실 치사 자의 경우에만 해당 되었다. 이 도피성은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쪽에 3개, 서쪽에 3개가 있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누구든지 사고가 나면 도피성으로 빠르게 도망할 수 있도록 잘 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고 길도 넓게 잘 정비하여 두었다. 도피성에는 유대인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 속에 거류하는 거류민과 이방인들도 들어갈 수 있었다. 이는 “구원의 포괄성”을 의미한다. 구원은 유대인들이 오해한 것처럼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혈연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열려 있었다.

내게도 도피처가 있다. 고향의 바다이다. 목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 힘든 선택을 해야 할 때와 심한 고독이 나를 짓 누를 때에는 고향의 바다를 찾는다. 이곳은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곳이며 기도의 처소였다. 바닷가를 거닐며 상념에 잠길 때,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고향의 바다는 삶에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포근히 품어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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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열 목사] 우리의 도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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