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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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고신교회)

 두런두런 둘러앉은 장로님들의 담소 가운데 20만 원짜리 봉투 하나면 총회에서 발언해 줄 목사들 많다아니 발언 안 할 사람 거의 없다라는 말로 폭소가 터져 나옵니다. 참 검소한 고신 교단의 목사들입니다. 상임위나 특별국의 자리 하나면 평생 다져왔던 인간관계나 의리는 배설물처럼 여기는 결단력 있는 고신 교단의 목사들입니다. 이렇게 다루기 좋은 목사 장로이니 계파나 진영의 의도를 가지고 매관매직하면 오늘날 고신에 만연되어있는 계파와 진영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 자명합니다.

 

아니 혹자는 이미 보수는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보수를 만들어 개혁을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자고 주장합니다. 뼛속까지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총회 임원으로 만들어 죽어가는 보수를 살려야 한다고 평생 개혁에서 쌓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작금의 정치행태에 발맞추어 가능한 봉투가 되는 자리를 만들고, 그곳에서 천년만년 누리고 싶어 하는 형국입니다. 20만 원짜리 봉투와 자리의 맛을 봐 버린 소위 보수라는 자들은 아예 정치적인 의리와 명분은 상실되어버렸고, 보수라는 가면만 쓰고 있을 뿐 언제든지 개혁도 되고, 진보도 되어 그동안 누리던 봉투의 자리를 놓칠까 전전긍긍하며 그 신보수라는 새 배에 올라타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최근 들어 고신교단 내에 계파와 진영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커진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서울의 L 목사님께서 열변을 토하신 것처럼 총회 서기 출신 카르텔입니다. 총회 부회록 서기가 되기 전에 총회 준비를 위한 총회 서기부 MT라는 명목으로 그 해 부회록 서기 후보의 물망에 오르는 사람을 부부 동반 모임에 참여시킵니다. 그러니 총회 임원에 입성하기 위해서 그 계파 사람이 아니면 시작부터 불가능합니다. 지금 총회 서기부에 포진한 분들을 보십시오. 계파 색채가 엷고, 계파를 싫어하고, 보수성향이 있는 사람도 일단은 그 진영에 몸을 기대고 양다리를 걸쳐야 시작이 됩니다. 균형 있는 총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명한 명분으로 다리만이라도 걸치고 시작했는데, 회록 서기를 지나면서 하체가 들어가고, 부서기를 지나면서 몸통이 들어가고, 서기가 되면 총회를 손에 쥐고, 서기를 마치면서 그 영향력은 한국교회로 확대됩니다.

 

사욕에 치우친 사람이 총회 임원, 특히 총회장이 되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4년 동안 총회 서기부를 거치면서는 구석구석을 너무도 잘 알게 된 서기부 임원들이 총회장단이 되었을 때, 유익한 점보다 작금의 현상처럼 위험하고 무법천지가 될 위험성이 훨씬 높습니다. 소위 서기 카르텔이라는 것을 반드시 총회적으로 다루어 이 카르텔로 인한 계파와 진영을 넘어 안하무인의 정치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서기부를 거치지 않아도 총회장단에 오를 정도의 사람이면, 이미 노회와 목회에 상당한 경험과 식견을 가진 분들로서 충분한 자질이 검증되었고, 사무총장 이하 직원들의 훌륭한 보좌가 있기에 1-2년의 총회장단 사명은 충분히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한국교회에서의 우리 교단의 몫이 있습니다. 교단의 위상을 생각해서 대부분이 총회장을 역임하신 분들이 이사로 가십니다.

 

총회 서기부를 마치고는 특별국이나 상임위에는 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고 총회 임원회에서 의논이 있었다지만 관례처럼 총회 서기를 마치면 총회를 잘 안다는 빌미로 감사국에 들어갑니다.(현재 감사국원 3명은 최근 총회 서기역임) 총회 감사국인지 총회 서기 지내신 분들의 친목회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입니다. 총회 감사국이 총회 서기부의 연장선 조직입니다. 총회 감사국은 별정직처럼 그 기능상 법적 전문가, 재정 전문가, 행정 전문가 정도는 배치해야 합니다.

 

차라리 총회를 잘 아는 서기부 출신들로 총회를 하나 만드시지요.

 

총회 총대로 나올 정도가 되면 기본적인 자격과 능력을 갖춘 분들인데, 총회 서기 출신들이 꼭 해야 한다는 논리는 총대들을 얼마나 무시하는 처사인지 총대들은 알아야 합니다. 총대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당근 하나 던져주면 입을 다무는 총대들이니 무시당하는 줄도 모를 수 있습니다.

 

유일하게 서기를 마치고 임원회에서 의논한 대로 그 어느 상임위도, 틀별국도, 이사도 가지 않은 분이 고 신수인 총회장이십니다. 최근 총회 서기를 지낸 분 들 중 유일하게 보수진영의 고 신수인 총회장님께서 약속을 지켰습니다. 소위 개혁진영의 서기들은 단 한 명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너무 개혁을 잘하셔서 말입니다.

 

처음 시작할 땐 훌륭하셔서 선출되셨습니다. 그런데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여기엔 그 어떤 사람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총회가 훌륭한 분들로 보호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총회장의 사역이 끝날 무렵 고 신수인 총회장님께서는 당신의 몫인 “CBS이사를 제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총회장님께서 가셔야 교단 권위와 위상이 서게 된다고 고사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렇게 전달하여 CBS에서는 제가 이사로 갈 것 다 알고 전화까지 왔었습니다. 물론 개혁에 몸을 담았던 총회장 출신은 선배 총회장 출신 목사님의 이사 자리를 빼앗아서라도 반드시 그 자리에 갑니다. 말 그대로 개혁 정신이 투철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난 후 고 신 총회장님께로부터 미안하다고 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 힘들게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래 그 자리는 제자리가 아닙니다. 총회장님 자리니 총회장님 편하신 대로 하시라고 대답했고, 현제 이사로 있는 당시 총회 서기가 고집을 부려 그 자리로 갔습니다. 사욕에 눈이 뒤집히면 세상이 말하는 윤리도 도덕도 질서도 없습니다.

 

현재 우리 고신총회가 한국교회에 파송하는 이사는 CBS, 성서 공회, 찬송가 공회, CTS, 군선교 위원회입니다. 현재 이사를 하고 있는 분들은 다 총회 임원 출신이고, 목사인 경우는 다 총회 서기 출신입니다. 고 신수인 총회장님을 분기점으로 해서 그동안 관례로 총회장을 역임했던 분들이 가던 이사를 총회 서기를 마치고 가는 아주 개혁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총회를 잘 아는 것을 넘어 총회 울타리 밖에 있는 이권도 잘 알게 된 것입니다. 총회장단이 갖는 위엄과 일반 목사와 비교할 수 없는 혜택에 눈이 멀어 목사의 정년까지 희생해 가며 자리에 오르고 내 때만 망하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그동안 꿈꾸어 왔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됩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런 세월이 가는 동안 고신의 신앙과 정신은 오물통이 되어 썩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위기가 아니라고 했다가 집권을 하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위기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 역시 진영논리로서 총대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속임수입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고신의 교회들에게 떠넘기는 기가 찬 술수이지요. 그리고 뒤에서는 몇 년 세월을 통해 달인의 경지에 오른 실력으로 소위 봉투가 되는 일에는 탁월한 안목으로 몇 수를 내다보는 행보를 하게 됩니다.

 

총회 서기부는 총회 서기단 활동으로 총회 임원회 자리를 끝내야 합니다. 총회장단은 시대 시대마다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바라보며 영적으로 한국교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장자 고신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을 세워야 합니다.

 

총회가 평안하고 태평성대일 때는 농어촌에서 목회하시는 훌륭한 목사님도 총회장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고신이 위기라고 특별기도회를 하는 상황이라면 총회장 되기 위해 몇 해 동안 수천, 수억을 쓸 것이 아니라 총회장에 된 후 수억을 총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인물을 총회장으로 세워야 합니다. 고신이 위기라고 기도회를 하면서, 1) 눈 감고 아웅 하지 말고 2) 순수한 교회들과 성도들의 주머니를 갈취하지 말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또 이미 그 자리에 오르신 분이라 해도 위기의 총회를 위하여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분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정말 고신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장관급 이상의 고위 관직에 있었던 사람에게, 퇴임 후에도 그의 공직에 대한 헌신을 기려 예의를 갖추어 존중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관리는 개인의 행복에 우선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바쳤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로 일한 관리가 퇴직했을 때 그를 예우함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이는 전관예우라는 말의 뜻은 본래의 뜻과는 거리가 멉니다. 가장 잘못된 사례가 법조계의 전관예우입니다. 전직 판사와 검사가 퇴직 후에 변호사가 된 사람을 현직 검사나 판사가 예우해 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변론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관(前官)이라는 이유로 유리한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공정을 생명으로 하는 법정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총회 감사국은 서기부 출신의 전관예우의 자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총회 피감 기관들을 공정하게 제대로 감사할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관예우 받았으니 밥값을 해야겠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신을 대표하는 한국교회의 자리도 서기부 출신의 전관예우의 자리로 자리매김해 버렸습니다. 당연히 사리사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릅니다.

 

*묻고 싶습니다. 앞서 언급한 총회를 대표하여 파송하는 이사직에 어떤 근거로, 어떤 기준으로 파송하는지, 서기 출신이 총회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총회 임원회는 총대들이 납득 할 수 있는 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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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현령비현령(5) -전관예우(前官禮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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