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 언약으로 하나가 되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통해 우리에게 새 언약을 주셨다. 바른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새 언약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맺은 놀라운 사랑의 언약(Blood Covenant)이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셨다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 되었다는 의미이다. 새 언약을 통해 우리에게 일방적인 사랑으로 주신, 하나 됨의 정체성(oneness-identification)은 중요한 정체성이다. 제자들만 하나 된 것이 아니고 모든 믿는 자들이 예수님과 하나 되었다. 주님은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17:20)라고 기도하셨다. 주님의 기도는 응답되는 기도다. 그래서 우리에게 응답된 것이다.
그 날 밤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그날 밤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혼 서약인 새 언약은 최고의 언약이요, 놀라운 비밀이다. 주님이 우리의 신랑이 되었다. 사랑하는 신랑은 언제나 우리와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함께 한다. 우리가 신랑과 하나 됨으로 신랑이 우리의 죄로 심판받으실 때 우리도 심판을 받았다. 신랑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부활 한 것이다. 신랑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은 나와 하나가 되어 하신 일이다. 예수님과 하나 됨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다. 또 우리는 신랑과 함께 일으켜 졌다. 나아가 우리는 신랑과 함께 하늘에까지 함께 앉혔다(엡2:6). 놀라운 일 아닌가!
하나 됨이라는 것은 이제 신랑 되신 예수님이 계신 곳에 우리가 있게 된 놀라운 비밀이다.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 일인가! 이것이 하나 됨의 비밀이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비밀이다. 우리는 “내가 있는 곳에 예수님 함께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복이 이미 주어졌다는 것을 알겠는가?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내가 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기에 떨어 질 수 없게 해 주셨다. 그분이 찾아 오셨기에 예수님이 계신 곳에 내가 있다. 예수님이 하늘 우편에 앉아 계시므로 나도 하늘 우편에 앉아 있다. 성경은 이 정도로 우리의 정체성의 회복을 완벽함으로 말한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이제 완벽한 하나가 되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하시지 않는가!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여기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다. 우리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는 것에 만족하시지 않으시고 ‘함께’를 넘어 하나 되기를 원하셨다. 그저 단순하게 ‘함께’를 뛰어 넘어 새 언약을 맺으셔서 임마누엘로 우리와 하나가 되셨다. 우리에게 임마누엘의 엄청난 복이 임한 것이다.
새 언약으로 우리는 하나 되었다는 것을 실재로 알고 믿게 된다면 너무 너무 감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 지고, 우리에게 다가 올 때 죄에서 벗어난 확신을 갖게 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9절의 거듭난 사람은 죄에 있지 않는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고 믿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는 말씀 앞에 우리는 담대히 “아멘!” 할 수 있다.
나는 온전한 복음의 이해가 없을 때는 이 성경구절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죄인인데, 죄를 짓고 있는데, 죄를 짓지 않는다”고 성경이 말하니 어려웠다. 육으로 생각하니 어려웠던 것이다. 로마서 6장만 잘 읽어 봐도 우리는 죄에서 분리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청산하셨다.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도 청산하셨다. 만약 미래는 “네가 잘 살아서 해결하라”고 하셨다면 우리는 가망이 없는 사람이다. 누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는 도를 닦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도를 깨달아 이미 이루어 졌음을 수용하고, 주님과 하나 됨이다. 기독교는 임마누엘이다.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기독교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