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정확히 백년 전인 1924년에도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렸었다. 백년이 지난 지금도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신앙인 에릭 리들(1902.01.16-1945.02.21)을 소개한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태어났으며 5살 때 부모님을 따라 영국으로 귀환한 뒤에 1924년까지 영국에서 자랐으며 이후 1925년에 중국선교사로 파송받게 된다.
그는 에든버러 대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인 육상선수를 하게 된다. 수년간 국내대회를 휩쓸다가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100미터 경기가 주일에 열린다는 이유로 출전을 포기한다. 그 때 그가 한 유명한 말이 ‘나는 주일에는 달리지 않습니다’ 이다. 이를 두고 영국 국민들은 그를 향하여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대신 그는 400미터에 처음으로 출전해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 수상식 이후에 이런 인터뷰를 했다. ‘처음 200미터는 내가 최선을 다해서 달렸고, 마지막 200미터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달렸다’
올림픽 이후 그는 중국선교사로 파송을 받아서 사역하던 가운데 중일전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1943년에 일본군에 의해 억류되었다. 한번은 영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교환협정을 통해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를 했다고 한다. 1945년 뇌종양으로 사망을 하게 되는데 그의 나이 43세이다. 그의 놀라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불의 전차’이다.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성경 속의 여러 인물이나 한국교회사에도 답답하리만큼 말씀 그대로 실천하려고 애를 쓴 분들이 참으로 많다.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향하여 ‘외골수다, 답답하다, 유별나다, 미련하다’ 등등 많은 비난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과연 하나님께서도 같은 평가를 하실까?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는 열심당원 출신이 4명 포함되어 있다. [작은 야고보, 유다, 시몬, 가룟 유다] 이렇게 네 사람이다. 열심당(셀롯)이란 말은 ‘칼을 가슴에 품고 다닌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행자들로 보고 있다. 로마로부터 유대인을 해방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행동대원이라고 믿는 극렬 민족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 외에는 어떤 왕도 없고, 성전 세금 외에는 어떤 세금도 없으며, 열심당원 외에는 어떤 친구도 없다” 는 무시무시한 슬로건을 내걸고 로마 정권에 항쟁하였다.
열심당은 간헐적으로 항쟁을 계속하다가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자 마지막 요새인 [마사다]에서 지도자인 [엘리자]의 지휘아래 끝까지 항쟁하였다. 주후 73년 [마사다]가 함락되기 전날 960명이 자살을 하므로 이들은 끝까지 로마에 무릎을 꿇지 않은 무리들이다. 이스라엘 청소년들은 걸어서 그곳까지 오르며 이스라엘 정신을 익히고, 군인들도 정신교육의 도장으로 삼고 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바르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고 인정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이 땅이고, 성도의 관심은 저 하늘이다. 바울은 (골로새서3:2)에서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열왕기상 18장)에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나온다. 당시 악랄한 왕 아합은 왕궁 근처에 좋은 포도원을 발견하고 주인 나봇에게 그 밭을 자기에게 팔라고 제안을 한다. 공짜로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제 값을 주고 팔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봇은 팔기를 거절한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왕상18:3)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나봇]은 포도원이 아까워서 팔지 못한 것이 아니다. 흥정이 맞지 않아서 팔지 못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25:23)을 보면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 라고 말한다. 결국 나봇은 이 말씀을 지키다가 목숨을 던졌다. 과연 우리들은 에릭 리델처럼, 나봇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한 때 유행했던 복음송 중에 이런 가사가 떠오른다.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