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목사] 기독교 용어 고찰 52 : 연기설(緣起說)의 인연(因緣)은 쓸 수 있는 말인가?
I. 서언(序言)
얼마 전 몇 사람의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인연(因緣)이란 말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우리 교인들도 흔히 인연이란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불교의 가장 중심적인 교리 중의 하나인 연기설에서 나온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도 인연이란 말은 수도 없이 많이 한다. 그렇지만 이런 말들의 유래와 그 근본 의미를 안다면, 이는 반드시 금지해야 할 용어이다. 이에 본 호에서는 인연의 모체가 되는 연기설과 인연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II. 연기설(緣起說)이란?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 중의 하나는 바로 연기설이다. 이는 ‘세상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영원불변한 실체는 아무것도 없다’는 이론이다. 또한 연기설에는 세 가지의 근본 원리가 있는데, 첫째는 ‘인과(因果)의 법칙’으로서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에 의해서 반드시 결과가 온다는 이론이다. 둘째는 ‘인연의 법칙’으로서 세상 만물의 변화에는 인과 연, 즉 원인과 조건의 작용에 의한다고 했다. 셋째는 ‘상호 관계성의 법칙’인데 개개의 사물들은 서로 의존하여 존재하는 관계에 있다는 이론이다.
이상의 연기설은 세계와 인생의 모든 현상을 12연기(十二緣起)로 설명하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에 지은 업(業)에 따라 현재의 과보(果報)를 받게 되며, 현재의 업에 따라서 미래의 고(苦)를 받으면서 12가지 인연을 맺게 된다. 곧,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근(六根)·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 등으로서 이를 십이 인연(十二因緣), 십이지(十二支)라고도 한다. 특히 11번째의 생(生)은 업(業)의 인연으로 미래의 생을 받게 된다는 이론으로 전생과 관계가 있다.
III. 인연(因緣)이란?
앞에서 논한 연기론의 세 가지 근본 원리 중에서 두 번째의 ‘인과(因果)의 법칙’중에 ‘인연의 법칙’이 있다. 한자어로는 원인 인(因), 묶음 연(緣)이며, 국어사전의 뜻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인 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서론에서 언급한 대로 불교의 가장 기본적 교리인 연기론(緣起論)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불교에서는 인연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연은 어떤 결과를 만드는 조건으로서, 직접적인 조건은 因으로서 원인을 이루는 근본 동기가 되며, 간접적인 조건은 緣으로서 원인을 도와서 결과가 생기게 하는 조건이라고 한다.’ 즉, 여러 가지 원인 중에서 주된 것은 因이고, 보조적인 것을 緣으로 여긴다. 결국 모든 사물은 이러한 인과 연의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변화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다. 이는 서로의 인연이 맺어지기 위해서는 전생에서 두 사람이 무려 3천 번의 인연이 있어야 되는데, 그 직접적인 조건은 因이고, 옷깃을 스치는 것은 간접적인 조건인 緣이라고 했다.
IV. 적절성과 대안적인 용어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인연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불교의 세계관인 전생(前生)을 인정하는 경우가 될 뿐 아니라 연기론, 즉 인연 사상을 그대로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결국 인연이란 우리 기독교인은 반드시 삼가야 될 말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적인 용어는 무엇인가? 우리 기독교에서는 불교적인 인연의 관계는 일단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대안적인 용어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국어사전적인 인연의 의미는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원인과 결과’를 말하기 때문에 불교적인 요소를 제외한다면 인연은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연의 한자어나 우리말이 불교의 용어와 동일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기독교적 용어를 굳이 찾는다면, ‘하나님께서 자연과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원리와 법칙’을 의미하는 ‘섭리’를 말할 수 있으나 그 말도 인연과 반드시 같은 말은 아니다. 이상으로 볼 때 인연은 전통적으로 모두 다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말할 수는 있지만, 이는 분명히 금지해야 할 불교의 교리적인 용어로 반기독교적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