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0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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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목사 (탄자니아 아프리카연합대학교 총장)

 “삶 전체가 예배다.” 이 강렬한 개혁신학의 외침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거룩한 반란에서 비롯되었다. 요한 칼빈(John Calvin)은 인간의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살아가는 소명임을 선포했다. 성직자만 거룩하고 평신도는 영적 2등 시민으로 여겨지던 중세 교회의 위계 구조 속에서, 종교개혁자들은 가정, 직장, 시장, 농장, 사무실 등 모든 일상적 삶의 자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선언했다. 이는 캐나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가 말한 “일상의 삶의 성화(the sanctification of ordinary life)”를 의미한다.

이 위대한 개혁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네덜란드의 신학자이자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 선언하지 않은 영역은 창조 세계의 단 1인치도 없다”고 외쳤고, 하나님의 주권은 모든 영역에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훗날 ‘카이퍼주의(Kuyperianism)’로 발전했고, 교회는 ‘제도적 교회(church as institute)’와 ‘유기적 교회(church as organism)’로 구분되어 설명되었다. 즉, 교회는 주일에 예배당에 모여 말씀과 성례를 통해 형성되며, 동시에 세상 속에서 문화와 교육, 정치, 예술의 영역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구현한다.

그런데 오늘날 ‘삶 전체가 예배다’라는 이 고상하고 심오한 구호가 아이러니하게도 원래의 본질적 의미를 상실한 채 오용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제임스 K. A. 스미스(James K. A. Smith)는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예배를 단지 ‘표현(__EXPRESSION__)’으로 축소하면서 공예배의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예배당은 ‘선택 사항’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실험실이나 산속의 일출, 책 읽는 순간, 일상의 루틴이 예배당보다 더 진정성 있는 예배의 장소처럼 여겨지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오해는 종종 왜곡된 카이퍼주의, 즉 “카이퍼보다 더 카이퍼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삶의 다양한 ‘영역들(spheres)’을 강조하다 보니 오히려 각 영역 사이의 경계를 지나치게 감시하며, 예배당에서의 공동체적 예배는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마치 ‘진짜 사역’은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교회의 공적인 예배 모임은 형식적 종교 활동에 불과한 것처럼 치부된다. 그러나 이것은 카이퍼의 본래 정신을 벗어난 것이다. 오히려 카이퍼는 ‘유기적 교회’는 반드시 ‘제도적 교회’로부터 양육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배는 단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시는 시간이다. 말씀과 성례를 통해 성령께서 우리를 ‘형성’하신다. 이 형성의 과정 없이는 아무리 열정적인 문화 변혁도 기독교적 소명의 진정성과 지속성을 잃게 된다. 교회는 바로 이 전인적인 신앙 인격 형성의 장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위해 준비되는 영적 훈련소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보수적 반동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의 성화’라는 종교개혁의 유산을 올바르게 계승하려는 본질적인 지향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시는 일에 참여하길 원한다. 정의를 세우고, 문화 속에서 복음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길 원한다. 그러나 그 모든 소명이 제대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 안에서 성화되는 훈련이 필요하다. 바로 그것이 공동체적 예배다.

‘삶 전체가 예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먼저 예배당에서 예배를 배우는 것이다. 우리가 공예배 속에서 말씀과 성찬에 참여하고, 공동체와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령의 임재 속에 다시 세워질 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그분의 대사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방향을 얻게 된다. 세상은 여전히 거칠고 불완전하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예배당으로 돌아온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세상으로 파송 받는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모든 삶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외치면서도, 그 삶이 예배를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져야 함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제임스 스미스 교수가 힘주어 강조하는 바와 같이, 삶 전체가 예배가 되려면 우리는 반드시 삶을 예배로 형성하는 그 거룩한 공간, 곧 예배당(sanctuary)으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탄자니아 아프리카연합대학교에서 모든 교직원들과 학생들에게 주일 공예배를 중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유다.

 

 

김성수 목사 (탄자니아 아프리카연합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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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삶 전체가 예배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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