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0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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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부산 은파교회)

 80-90년대에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코스에 반드시 들어가는 곳이 천년고도(千年古都) 경주이다. 아직도 가이드 누님의 설명이 남아 있는 유적지가 있는데 바로 ‘에밀레 종’이다. 경주 국립박물관 앞마당에는 동종(銅鐘)하나가 놓여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 최대의 종으로 이는 통일신라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경덕왕이 만들기 시작하여 손자인 혜공왕이 완성한 국보 29호이다. 따라서 이 종의 공식 이름은 [성덕대왕 신종]이지만 흔히 [에밀레 종]이라고 불린다.

경덕왕은 선왕의 기리기 위해서 구리 20만근을 들여 종을 만들기 시작했다. 종을 만드는 재료가 부족하여 스님들은 집집마다 시주를 받으려 다녔다. 한 스님이 쓰러져가는 집을 방문했을 때 한 아기의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저희 집에는 아무 것도 시주할 것이 없습니다. 이 아이라고 괜찮으시면 받아주십시오”

드디어 종이 완성되어 타종하여 보았으나 이상하게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날 밤, 스님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산 아기를 넣어 종을 만들어야 소리가 난다” 고 말했다. 꿈을 깬 스님은 지난 번 그 여인을 찾아갔다. 그러자 여인은 “부처님과의 약속이니 기꺼이 아이를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아이는 곧 뜨거운 쇳물에 넣어졌고, 마침내 종이 완성되었다. 타종을 하자 종에서는 이제껏 들을 수 없었던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는 그 종소리가 마치 아기가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 ‘에밀레-’로 들렸다. 이로부터 그 종은 ‘에밀레 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종의 특이한 것은 바로 옆에는 듣는 소리나 저 멀리서 듣는 소리가 거의 같은 크기로 들리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다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거부하거나 회피하거나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반드시 죽음은 불청객처럼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사람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미국 시카고 대학병원에서 30년 이상 환자들을 돌보았던 저명한 여의사 ‘엘리자벳 퀴블러로스’는 그의 저서 <인간의 죽음>에서 모든 환자들이 다섯 단계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1단계(죽음에 대한 부정), 2단계(분노), 3단계(인정), 4단계(우울증), 5단계(죽음에 대한 인정)이다. 1단계인 ‘죽음에 대한 부정’에서 시작해서 5단계인 ‘죽음에 대한 인정’으로 마친다.

죽음에 대한 한자어를 보자. 죽을 사(死)를 풀이하면 ‘한 일(一) / 저녁 석(夕) / 화살촉 비(匕)’가 된다. 즉 “어느 날 밤에 비수(匕首)가 날아 온다” 가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말씀에서 (눅12:20)에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라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이 단어가 ‘죽을 사(死)’ 글자 그대로이다. (잠27:1)에서도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라고 말한다.

그렇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이 구절을 우리는 잘 새겨들어야 한다. “도로 찾다”는 말은 ‘잠시 빌려준 것을 다시 거두어 들인다 / 회수한다’ 라는 뜻이다. 우리의 목숨, 우리의 영혼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꾸어온 것이지, 자신의 것이나 부모님의 것도 아니다. 영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이 그렇다고 되어 있다. (겔18:4)을 보니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라고 영혼의 주인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해 두고 있다.

어느 대학교 도서관 화장실에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라는 의미 있는 낙서가 있다고 한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 밤도 죽음의 비수가 나를 빗겨간 것에 감사하면서 하루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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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 죽을 사(死)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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