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08(토)
 
수정_박동철 장로 사진(2022).jpg
박동철 장로(1027)

 

 얼마 전 지역 유력 일간지를 통해 경남도의 싱크탱크인 경남연구원 김진형 연구원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100년 후 보물급 문화유산을 보호할 수 있는 ‘미래유산제도’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김 연구원의 주장을 다시 살펴보면, 곳곳에 산재한 국가문화유산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하고 동판을 붙여 보호하자는 논지다. 국가유산으로 등록되기 전 ‘미래유산제’를 설치해 함부로 유실되지 않도록 하자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이 칼럼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우리 교회도 기독교 문화유산 보호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싶다.

그동안 경남 지역 각 교회를 돌아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독교의 고귀한 문화유산이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고 유실되고 있는 실정을 목도했다.

한국 기독교가 선교 140년을 맞았으며, 국내 1천만에 달하는 기독교 인구로 인해 ‘기독교 강국’, ‘선교 강국’이 되었다. 여러 지역의 100년 이상 된 초대교회를 방문해보면 국가보물급이 될 만한 유산들이 흩어져 있으나, 체계적인 보호의 손길 없이 유실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까운 경남 지역만 하더라도 100년 이상의 역사를 품은 교회가 100여 개소에 달한다. 1888년 캐나다 제임스 게일 선교사와 미국 북장로교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 이후, 당시 경남 부산 지역에는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이 줄을 이어 들어와 부산·마산·진주 등 경남 전역 마을마다 교회를 세웠다.

경남성시화운동본부는 10여 년 전 호주 선교사 역사관을 마산에 세우고 여러 유산을 모아 성역화해 놓았다.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주 지역은 올해 선교 120년을 맞아 서부경남 부흥의 비전을 세우는 연합집회와 학술세미나를 이어 개최하고, 진주지역 기독역사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역사관을 짓고 유산을 모아 보관·관리하는 길도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작 보물급 기독유산들은 각 지역 교회가 관리하거나 흩어져 방치되고 있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먼저 각 교회가 관리하고 소장한 유무형의 유산들을 정리하고 집대성하여, 국가기관의 미래유산제도에 편입시켜 제도적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길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고귀한 유산이 단번에 국가유산으로 등록되어 영구히 보호받는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취지에서 선교 120년을 맞은 진주 지역의 초대교회, 진주교회를 찾아 유산이 될 만한 소장·관리 유물을 살펴봤다. 당장 눈에 띄는 유물이 있었다.

120년 전 호주 커렐 선교사가 진주교회를 세우고 교회가 부흥했으나, 곧 일제의 침탈을 당했다.

1919년 3·1독립운동 때 전국의 교회들이 분연히 일어섰던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1919년 3월 18일 진주 고을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날 때, 일제히 모이는 신호가 당시 진주교회 종탑에서 울렸다. 얼마나 위대하고 엄청난 복음의 숨결이 있었던가. 나라를 살리기 위해 초대교회 종탑의 종이 진주 고을 백성을 모아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종이야말로 국보급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구국의 종이 이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다행히 현재 천안의 고신대학교에서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 국가유산으로 등재하고, 국가 차원의 보호를 받아야 함이 당연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3·1운동 참여 등 역사 발전의 굴절마다 교회의 흔적이 위대한 역사 속 숨결로 숨어 있다.

이것은 하나의 중요한 예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경남·부산 선교 140년이 다가오고 있다. 이 즈음에 기독교 문화유산을 집대성하고 고증을 거쳐, 국가 미래유산제도와 유산등록의 정책적 관리를 위해 능동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지역 교계가 한마음으로 뭉치고, 이 일을 함께 살펴나가야 할 것이다.

 

 

태그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박동철 장로] 고귀한 기독문화 유산 보호의 길 찾자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