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0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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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고신교회)

“Why is the Firstborn Blessing Given to the Firstborn?”

“왜 장자의 축복은 처음 태어난 자에게 주어지나요?”

 

지난 주일 설교를 들은 투코 집사님의 질문은 뜻밖이었습니다. “왜 첫째 아들이 장자여야 합니까?” 처음엔 다소 생뚱맞게 들렸지만, 곱씹을수록 그 질문은 제 마음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그동안 성경에서 말하는 장자와 장자권에 대해 나름 분명한 기준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알고 보니 그 기준의 출발이 상식이었습니다. ‘장자라면 당연히 첫째 아들’이라는 세상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을 본다고 자신했지만, 출발점은 여전히 인간 중심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열네 살 많은 이스마엘을 제치고 이삭에게 장자의 축복을 전했습니다. 이삭은 쌍둥이 형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었고, 야곱은 열두 아들 중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을 장자로 세웠습니다. 이런 장면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종종 이상하게 느낍니다. 왜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장자의 원리를 스스로 따르지 않으실까 하는 의문이 들지요. 그러나 그 생각의 출발 자체가 이미 인간적인 상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장자’는 단순히 먼저 태어난 자를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원을 성취하는 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족을 책임지는 자를 의미합니다. 완전한 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생명을 버리심으로 하나님의 가족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장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구원을 완성하는 직분이며, 그 직분은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소명입니다.

장자는 자신이 원해서 먼저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가 먼저 낳았고, 다른 이들이 ‘장자’라 불러주었을 뿐입니다. 본인은 아무런 공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것이라”고 하셨으니 장자이고, 하나님께서 “장자”라 부르셨으니 장자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 처음 태어난 것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치던 날에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민 8:17)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이 곧 장자의 기준입니다.

이 사실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믿음의 조상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에서 대신 야곱에게, 야곱이 요셉에게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믿음으로’ 행한 일이라 증거합니다(히 11:20-21). 이렇게 보면 오히려 이삭이나 야곱, 요셉이 장자가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볼 때는 아무런 모순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에게 의심과 원망이 생기는 이유는 언제나 기준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장자로 세우셨지만, 그 뜻을 혈육의 서열로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장자로 부르셨으나, 그는 하늘의 예배보다 땅의 소산에 몰두했습니다. 제물을 받으시지 않자 그는 분노했고, 그 분노는 결국 동생 아벨을 죽이는 죄로 이어졌습니다(창 4:5, 8).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불신앙이며, 그 불신앙의 결과는 언제나 땅의 소산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장자로 세우신 본래의 사명, 즉 예배의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장자는 가족을 대표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존재인데, 그는 예배보다 자신의 열심과 수확을 앞세웠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이 기준이 되었고, 결국 영적 교만과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깨닫게 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라고 외치면서도 실상은 상식과 서열, 인간의 기준으로 말씀을 판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조금만 어긋나도 우리는 하늘의 소산이 아니라 땅의 소산을 거두게 됩니다. 투코 집사님의 질문은 그 당연하다고 여겼던 기준이 얼마나 인간적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도 제자들을 형제로 인정하셨습니다. 그분의 믿음의 결단이 오늘의 교회로 이어졌습니다. 함께 묵상하던 송동호 목사님이 이런 글을 남기셨습니다.

“The blessing of the firstborn is not a privilege of birth, but the portion of the one who bows before God first.”

“장자의 축복은 태어남의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무릎 꿇는 자의 몫이다.”

그는 곧 이어 이렇게 정정했습니다.

“The blessing of the firstborn is not a privilege of birth, but the portion of the one whom God leads to bow before Him first.”

“장자의 축복은 태어남의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무릎 꿇게 하신 자의 몫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무릎 꿇게 하시는 자, 그가 바로 장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장자의 자리로 불림받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믿음으로 주어진 장자의 자리를 지키며, 하늘의 소산을 거두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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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 땅의 소산 (창세기 4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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