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생각은 옛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아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에 왔다 가셨다. 우리가 실수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리의 약함이 우리를 짓누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실수 했을 땐 빨리 실수를 인정한 후, 용서를 구하고, 실수 한 것을 묵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지나간 옛 모습을 생각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를 인정하는 훈련을 하고 신나해야 한다. 실수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안 되는 줄 아시고, 이 땅에 직접 오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 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임마누엘의 사랑 속으로 빨려 들어가 평안해야 한다. 수만 번을 반복하더라도 연습해야 한다.
잠수할 때는 산소마스크가 필요하지만 육지에 나온 후에는 산소마스크를 벗어야 한다.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육지에서는 산소마스크가 없어도 마음껏 산소를 마실 수 있다. 오히려 산소마스크가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 덥고, 답답한 산소마스크를 벗어 버려야 한다. 그대로 끼고 생활하기를 고집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너무 답답할 것이다. 자유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는 예수 안에 있다. 전에 하던 방식대로 그대로 해선 안 된다. 예수님 밖에서 사용했던 산소마스크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행함으로 고치려 했던 산소마스크를 벗어 버리고, 자유롭게 시원한 믿음의 공기를 마시면 된다. 그냥 예수님 안에 있으면 된다.
생명의 법이나 사망의 법안에 있다는 것은 그 법 안에 그냥 사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생명의 법 안에 있는 자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세상 안에 들어 온 자다.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는 들어 와 있다. 그냥 생명 안에 있기 때문에 그냥 있으면 되고, 생명 안에 있는 줄 알면 된다.
사단은 당신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하는 전문가이다. 그냥 호흡만 하고 편안하게 있으면 되는 것을 그렇게 못하도록 모든 이론을 동원한다. 이미 주신 복음의 풍성함을 누리며, 주님과 함께 있음을 알고, 살면 되는 것을 필요 없는 거추장스러운 산소마스크를 끼고 스스로 호흡을 해야 한다고 속인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보다 높아진 생각을 하게 한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다른 이론을 가지도록 만든다. 우리는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을 따라 싸우는 자가 아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고후10:3)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5)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한다. 영의 생각을 하라는 말이다. 영의 생각을 하는 것이 믿음이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의 믿음이다. 얼마나 쉬운가? 수용하라. 생각하는 훈련만 필요하다.
사망의 일을 많이 해서 사망이 더 많이 오는 것이 아니다. 사망의 법 안에 있는 자들은 그냥 그 안에 있는 것이다. 어두움에 있을 때는 어두움 안에 그냥 있다.
정말 깜깜함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경험 해 본 적이 있다. 배 안에서 하룻밤을 보낸 때였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는 자체 발전으로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소등 시간이 있었다. 소등하기 전에 좁고 좁은 침실에 몸을 맡겼다. “소등”이라는 소리와 함께 배 안은 소등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어두운 것을 경험한 적이 없다.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두움, 시간이 지나가도 눈동자의 동공의 역할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정말 깜깜한 흑암이었다. 아무리 보려고 해도 전혀 볼 수 없었다. 손을 눈앞에 당겨 보아도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으나, 뜨고 있으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깜깜하다는 것을 경험했던 좋은 체험이었다. 마음대로 갈 수도 없었고, 무엇을 찾을 수도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두움은 정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보려고 하는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하나님을 떠나 어둠 가운데 있다는 말은 그냥 어둠 속에 있는 것이다. 무슨 나쁜 일을 하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다. 보려고 노력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둠 속에서는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무엇을 보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둡다. 그냥 어두움 안에 있는 그 자체가 하나님을 떠난 상태다. 보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어둠 자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