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훈(家訓)에서 제일 많은 것 중의 하나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일 것이다. 즉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되어간다는 뜻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목(和睦)은 개인과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최고의 덕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예수님 역시 예물보다 우선시되는 것은 화목이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5:24)에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특히 중국은 예로부터 화(和)를 인간관계에서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논어(論語)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이 있다. 군자는 사람과 화합하는 것이지 뇌동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타인과 진실로서 화목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맹자(孟子)에도 ‘하늘의 별은 땅의 이(利)에 미치지 못하고, 땅의 이(利)는 화(和)에 미치지 못 한다’고 했다. 또한 중용(中庸)에는 ‘화이부류(和而不流)’라 곧 <모든 사람과 조화를 갖는다는 것이 세상 풍조에 휩쓸려 가는 것은 아니다>는 의미이다.
인간사회도 자신의 활동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밖의 어떤 다른 힘과의 조화 때문에 움직이고 있음을 모른다. 곧 인간 사회는 이 자신에의 집착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으며, 항상 어떤 관계 이상의 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승패가 중요한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도, 아무리 전승에의 좋은 기회를 잡았다 해도 사람의 화(和)만은 못하다고까지 생각했다.
오자(吳字)는 ‘싸움에 이써 화(和)한 것보다 더 이기는 것이 없다’ 하였고, ‘도를 얻은 왕자는 그 백성을 다스리는데 먼저 화하고, 그 후에 큰일을 이룬다’고 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설득을 아주 중요시 여긴다. 중국인은 무슨 일이든지 설득을 하려 한다. 중국인들은 오른쪽을 가리키며, 오른쪽으로 가라 한다 해서 모두가 그에 따르는 법은 없다. 왜 오른쪽으로 가는가 잘 설명을 듣고 납득하지 않고는 안 간다. ‘호떡 집에 불 난 것 같다’는 속담도 중국인이 말이 많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임진왜란 때의 명장 이시송(李始松)은 ‘궁적물추(窮寂勿追)’의 전력으로 유명한데 이는 ‘너무 몰아붙이면 오히려 반항심 때문에 세력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망가는 왜군을 다 섬멸하기보다 공격을 중지하고, 성 밖으로 적군을 철수시키고, 적이 도망갈 길을 터주었다.
그렇다면 화목(和睦)에 대한 성경은 가르침은 어떠한가? 성경도 화목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인정하고 있다. (잠언18:19)에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라고 말씀한다. 사도 바울에 화목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로마서12:18)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라고 말씀한다.
그럼 화목에 대한 예수님의 지혜를 들어보자. (마가복음9:50)에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는 소금을 ‘청결’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예로부터 이 세상에서 소금보다 청결한 물건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소금은 두 개의 가장 깨끗한 것, 즉 ‘태양과 바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소금이 비추는 흰 색깔 그 자체가 청결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깨끗하게 하는 힘을 가져라. 이기심, 비통, 분노, 질투로부터 깨끗함을 받아라. 이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너희는 이웃과 화목할 수 있다’ 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부터 깨끗함을 받아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면 다른 사람들과 진실한 교제 안에서 살수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화목’을 강조하실 수 있는 것은 본인이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로마서3:25)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라고 말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