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4-16(목)
 
이정희목사.jpg
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 원로)

 1. 서언(序言)

 

그동안 기독교인의 생활용어 바로잡기에 대해서 논해왔다. 하지만 이번 호는 잠시 이를 멈추고 제목 그대로 제107주년을 맞이한 3.1 운동이 당시 교회와 어떤 연관이 있으며, 이런 일이 오늘 현대 우리 교회와 교인들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주는지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먼저 3.1운동이 일어난 시작과 당시 교회의 참여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2. 3.1운동의 배경

 

  1910년 8월22일 한일병합조약에 따라 대한제국을 합병한 일제는 무단통치로 온갖 폭압적인 식민지 지배를 자행했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제한했으며, 너무 가혹한 처벌로 인권을 유린했다. 또한 토지조사사업과 회사령 등으로 경제적 수탈을 자행했다. 여기에 국제적인 많은 이유가 복합되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 속에 민족의 저항으로 일어난 만세 사건이 1919년 3월 1일의 민족 저항 운동이었다.

 

3. 3.1운동과 교회의 역할

 

  1) 교회 중심의 3.1운동: 1919년 3월 1일 정오에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선포함으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은 당시의 교회와 교인들이 거의 중심이었다. 그때의 한국 교인 수는 전체 인구의 1.7%였지만, 독립선언서를 선포한 민족 대표 33인 중에는 16명이 교인이었다. 또한 만세운동은 75%가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특히 이때는 코로나보다 더한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던 때이다. 당시 전국 인구가 약 1천700만 정도였고, 감염자는 약 7백50만 정도였으며, 약 14만 명이 사망했다. 감염의 위험도 있었지만, 당시 참여한 교인들이 약 20만 명이었을 정도로 3.1운동의 주체는 교회와 교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2) 각 교회와 교인들의 사례: 일시별과 참여한 교회들을 보면, 첫째로는 서울 파고다 공원 부근에 있었던 승동교회였다. 이 교회 지하실에서 작성한 독립선언서 유인물은 학생들이 3월 1일을 시점으로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시행하자는 결의를 하고 이를 전국에 배포했다. 이러한 장소 제공과 모체가 된 승동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이 교회는 당시 천대받든 백정인 박성춘 장로를 비롯한 약 20여명의 백정들이 주로 모이는 작은 교회였다. 그의 아들인 박봉출(박서양)은 에비슨 의료 선교사의 도움으로 광혜원(지금의 세브란스 병원)에서 공부하고 1907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의사가 되었다. 그도 또한 3.1운동을 도왔고 나중에 만주에서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독립군들의 군의관이 되었다. 또한, 아버지 박성춘과 함께 천민인 백정을 비롯해서 고질적인 반상의 신분 타파에 절대적 공헌을 했다.

  승동교회에서 시작된 3.1운동에 참여한 교회는 3월 6일에 전북 군산의 구암교회, 8일은 대구 제일교회와 남산교회, 4월 1일은 천안의 아우내 장터에서 유관순과 병천교회가 중심이 되었다. 4월 15일에는 화성 제암리교회의 만세운동이 있었으나 일제는 주민들을 교회 안에 몰아놓고 그대로 불태워 죽였다. 경남의 경우는, 4월 3일 진해에서 주기철 목사의 4촌인 주기용이 웅동에서, 4월 6일은 밀양 춘화교회와 밀양교회 등에서 만세운동이 있었다. 이러한 만세운동으로 전국의 교인들 630여 명의 살상과 많은 교인들이 투옥되게 되었다.

  3) 기독교 중심의 3.1운동의 결과: 만세운동으로 인해 전국으로 검거령이 내려지자 이를 이끌던 지도자들은 중국 등으로 망명하여 1919년 4월 10일에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설립했다. 이때의 취지문을 보면, "우리들은 만세운동을 통하여 조선의 독립을 쟁취한 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3.1 운동의 중심에 기독교적 가치가 중심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기독교 정신은 서재필, 안창호, 이승만, 김구, 이승훈, 이상재, 남궁억, 조만식, 김교신, 윤치호, 김규식, 여운형 등의 많은 지도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4. 3.1운동이 현대 교회에 주는 교훈과 결론

 

  이상으로 볼 때 3.1운동은 당시 기독교적 애국심의 가치관이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한국교회와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엄청난 힘이 있다. 그 당시 교인이 전체 인구의 1.7%였다면, 지금은 15~16%이다. 그러나 힘이 없다. 교회가 사회 걱정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걱정한다고 할 정도로 여러 문제가 있다. 반면 현재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많은 분야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는 오히려 전방위적으로 교회 탄압을 시도하고 있다. 만시지탄의 차별금지법 통과와 이로 인한 동성애 문제 등, 우리 교회가 고수하고 방어해야 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교회는 현재까지 비교적 복지부동이다. 왜 교회의 지도자들은 침묵하고 있는가? 란 비판도 많다. 하지만 3.1절의 시작은 교회의 유명 리더자들이 아니었다. 민족대표 16명도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무명의 목회자와 장로와 교인들이었고, 승동교회나 앞장섰던 이들도 학생들이거나 일반 교인들이었다. 이러한 우리의 선조들은 107년을 지난 현재의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고 본다.“우리의 후대들인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침묵하고 있는가?”. 다시 한 번 우리의 선열들에 대해서 옷깃을 여미며 “나는 오늘 이 현실에서 무엇을 외쳐야 될 것인가?”를 심각한 마음으로 고민해 본다. 

태그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이정희 목사] 3.1 운동이 현대 교회와 교인에게 주는 의미와 교훈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