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7-20(월)
 
  • 1913년 호주 선교회서 진주지역 선교사로 파송
  • 1925년 창신학교 전신 호신학교 초대 교장으로 부임, 학교 발전에 크게 공을 세우다
  • 진주 성남교회 개척 공로자로 유명... 1932년 56세로 별세, 빛바랜 묘비만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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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3월에 개정 공포된 일정 통제의 사립학교 규칙 중 10년의 유예기간이 끝났다. 일본어로 가르치고 성경·역사·조선어를 가르치지 않는 조건부 인가를 사립학교에 내렸다. 곧바로 일제의 조선학교와 기독사학에 대한 탄압이었다. 이렇게 사립학교 탄압 조치가 내려지자 선교계 사학 창신학교에도 탄압의 물결이 밀려왔다. 1908년 개교한 창신학교는 3·1운동을 주도했다. 이에 창신학교는 일제의 탄압으로 경영난에 봉착하여 버티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192541일 호주선교회가 구원자가 되어 창신학교를 인수하게 된다. 호주의 ()’와 창신의 ()’을 따서 호신학교로 하고 새롭게 출발한다. 새로운 교사들을 기용하고 고등보통학교 과정(4년제 중학교)의 수업을 회원동(구 창신학교 교사)에서 시작한다. 이때 마산에 처음으로 고등보통학교가 설립된다는 소문을 듣고 신입생이 350명이나 몰려왔다고 한다. 이와 함께 창신학교 고등과 교원들과 학생들이 호신학교로 옮겼으나 정신적 바탕인 민족자주정신과 기독정신은 이어갔다.

 

  창신학교와 함께 이어온 호신학교는 복음 전파와 하나님 유일 사상, 기독교 이념을 이어갔다. 호신학교는 고등보통학교 지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일본인 채용, 일본어 상용 등 일제의 압박을 견디며 큰 혼란을 겪게 된다. 물론 호신학교는 지정학교가 되지 못하면서 상급생들이 진학할 수 없어 재학생들의 불만이 높아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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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호주선교회는 진주에서 사역하던 신학자이자 교육자인 아더 윌리암 알렌 선교사를 호신학교 초대 교장으로 파견하여 학교 경영을 맡겼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1926319일 창신학교 15회 고등과에서 승계된 학생들과 함께 호신학교 제1회 졸업식이 있었고, 다음 해 321일 창신학교 초등과 16, 호신학교 2회 졸업식을 가지면서 이어갔다.

 

  알렌 교장은 호주에서 많은 학교 시설을 지원받아 어려움 가운데서도 좋은 시설을 갖추고 학교 운영을 이어갔다. 학생들의 학습 분위기도 크게 고무되면서 야간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공부하는 사학으로 명성을 보였다고 한다.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호신학교가 지은 붉은 십자형 벽돌 건물은 당시 최고의 2층 양옥이었다. 일제시대 혁신적인 학교 운영 가운데서도 일제의 탄압은 계속되었다. 이름을 안 알란이라는 조선명으로 바꾼 알렌 교장은 193272656세의 일기로 순직한다.

잠시 알렌 선교사의 일생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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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렌 선교사는 멜본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하여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목회자가 되기로 하고 빅토리아신학교 교육기관인 오르몬드대학에서 3년간 신학을 전공한 후 1913년 호주장로회 교육선교사로 조선 땅에 내한했다. 알렌 선교사는 호신학교 교장이 되기 전 진주선교부에서 선교사로 섬겼으며 진주교회 당회장으로 시무하면서 청년들을 지도했다. 19247월 진주 성남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이같이 진주지부에서 사역하다가 1925년 호신학교로 옮겨 7년간 섬기다 순직하게 된다. 56세의 일기로 순직한 알렌 선교사는 호신학교 교장으로 열정적으로 일하다가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으로 쓰러져 소천했다. 알렌 선교사의 비보에 마산·진주 등지 호주선교사의 사역지에는 큰 충격이 있었다.

  호신학교와 문창교회, 의신여학교가 공동으로 장례를 치르고 당시 마산시 상남동 외국인 묘지에 알렌 선교사의 유해를 안장했다. 이후 진주 성남교회에서 유해를 모셔 산청 시천면 묘지로 이장했다. 그때까지 묘비가 유실되지 않고 있다가 경남성시화본부가 마산 공원묘지에 호주선교사 성역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묘비와 함께 유해를 이장 안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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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 바랜 묘비에는 기록되어 있다.

 

 “호주 멜본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시고1925년 진주지방에서 선교를 하시며 192476일 진주 성남교회를 설립하고 기독교 선교에 헌신하시다 1925년 호신학교 개편 시 교장으로 봉사하며 한국인의 중등학교 교육에 크게 기여하시다가 193272656세를 일기로 별세하시다.”

 

  귀한 푸른 눈의 헌신적 선교 사역의 발자취, 알렌 선교사의 남은 묘비는 국가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글. 박동철 장로(서머나교회 은퇴)   

 

자문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

박시영 부경기독교역사연구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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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기독문화유산을 지키자 (7)- 호주 선교사 아더 윌리암 알렌 선교사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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