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오늘날 ‘세상을 뒤집는다’라는 표현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직장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질서를 뒤흔드는 증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과 거의 다르지 않고, 삶의 방식에서도 하등 차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소위 “그리스도인 정치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다. 기존 체제의 일부가 되어 다른 정치인들과 똑같은 언어를 쓰고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권력을 다룬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 예배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사회와 정부는 교회를 결단코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우습게 바라볼 정도다. 교회가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집단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당시에는 상황이 달랐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자들”(행 17:6), 다시 말하면 “세상을 뒤엎은 자들”이라 불렀다. 복음은 그만큼 강력하게 기존 질서를 흔드는 힘이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기업의 본분은 주주들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반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철저히 자유시장 논리 속에서 기업의 역할을 규정했다. 그러나 그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이웃을 사랑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며 노동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기독교 경제관은 그에게 분명히 불편하고 위험한 사상으로 비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프리드먼의 경제 논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의 주장 속에서 암묵적으로 드러나는 역설적 진실, 곧 기독교가 세상의 질서를 뒤흔드는 힘을 지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프리드먼이 두려워한 바로 그 지점이 사실은 기독교의 본질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적 위로나 도덕적 교훈에 머물지 않는다. 기독교는 사회와 경제, 문화의 기반을 흔들며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운동이다.
현대의 세속 문화 속에서도 이러한 특성은 여전히 선명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을 고통스러운 의무로 여기고, 소비를 행복의 조건으로 찬양한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로 말한다. 노동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고귀한 행위다. 노동은 이웃을 섬기고 창조세계를 돌보는 청지기의 소명이다. 따라서 노동은 선하다. 반면 소비와 서비스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기독교는 세상의 지배 신념에 도전하게 된다.
오늘의 산업자본주의는 더 많은 상품을 더 빠르게 만들어 내도록 우리를 몰아붙인다. 그 과정에서 생산품의 질은 떨어지고, 노동은 소모품이 되며, 자원은 고갈된다. 그런데 교회가 “노동은 존귀하다”라고 가르치고 “소비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라고 선포한다면, 그것은 곧 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복음은 세상의 근본 질서를 뒤흔드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십자가 자체를 “걸림돌”이라 부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로마 제국의 권력과 논리를 무너뜨렸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이 세상의 권력, 부, 쾌락 중심적 가치들을 무력화시키고 방향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그렇기에 복음은 언제나 기득권자들에게는 불편한 진리가 되지만, 새로운 세상을 여는 희망의 등불이 된다. 복음은 세상을 변혁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본질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문화와 사회의 근본 질서를 새롭게 정의하고, 모든 권력과 가치 체계를 향해 “방향을 돌리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선포한다. 기독교는 오늘도 세상을 뒤집는 운동이다.
오늘의 교회는 단순히 “예수 믿고 복 받는다”는 기복 신앙의 메시지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복음은 우리의 안위를 약속하는 값싼 위로가 아니라, 세상 권력과 질서 앞에서 불편한 진리를 외치는 선포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선포해야 할 메시지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도전이며,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오늘의 교회는 바로 이런 불편한 진리를 담대히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따르며 살아가는 성도들을 길러 내야 한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정과 직장과 사회 속에서 “세상을 뒤집는” 증인이 될 때, 비로소 교회는 초대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세상에 걸림돌이자 동시에 희망이 될 수 있다.
김성수 목사(탄자니아 아프리카 연합대학교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