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통안보 위에서 피어난 대한민국의 기적
우리가 매일 공기처럼 누리고 있는 평화와 번영은 결코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내부에서는 이 평화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주장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이재명은 주한미군을 향해 "점령군"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또한 민주당 일각에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한미동맹 약화를 시도하고 있다.
교육 현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전국교직원노동자조합(전교조)은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미국이 200년 동안 세계를 향해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테러·전쟁 일람표」를 게시하면서 그 목록에 '코리아 전쟁(1950~1953)'을 포함시켰다. 이는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을 마치 미국이 일으킨 전쟁인 것처럼 왜곡하여 서술한 것이다.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미군과 유엔군 장병들이 피를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희생을 침략전쟁의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역사 왜곡은 결코 교육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러한 왜곡된 역사관의 배경에 깔려 있는 안보 망각증이다.
우리는 흔히 6·25전쟁을 과거의 사건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것은 평화협정이 아니라 휴전협정이었다. 총성이 멈추었을 뿐 전쟁은 법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다.
실제로 북한은 휴전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무장공비 침투, 청와대 기습 사건, 대한항공 폭파,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끊임없이 자행해 왔다. 최근에는 대한민국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무력 적화통일의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북한만이 아니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통일을 가로막았던 중국 역시 오늘날 군사적 팽창과 패권 전략을 통해 동북아 질서를 흔들고 있다. 북·중·러의 전략적 협력이 강화되고, 대만해협의 긴장이 높아지는 오늘의 국제정세는 대한민국의 안보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처럼 6·25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안보 현실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 온 한미동맹의 가치는 오늘날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매년 6·25가 다가오면 우리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일어선 대한민국의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그 기적을 가능하게 한 안보의 토대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탁월한 외교적 통찰로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그에 따라 주둔한 주한미군이라는 든든한 안보 우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76주년 6·25를 맞아 우리는 한미동맹의 역사적 의미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1. 절체절명의 위기, 대한민국을 구한 국제동맹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집단의 기습 남침으로 대한민국은 불과 3개월 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나는 국가 존망의 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정부와 유엔군 지휘부는 낙동강 방어선마저 붕괴될 경우 대한민국 정부를 제주도로 이전하고, 최악의 경우 대만이나 류큐 열도에 망명정부를 수립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정도였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북한의 침략 실상을 알리며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였고, 유엔 안보리 결의와 미국의 신속한 군사 개입은 대한민국을 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미군이 이 땅에 왔기에 우리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고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다. 미국은 전쟁 기간 동안 약 178만 명의 병력을 파병했으며 전사자 3만 6천여 명을 포함하여 14만 명이 넘는 희생을 감수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전후 복구를 위해 막대한 원조를 제공하였다. 폐허가 된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침략군이 아니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혈맹이었다.
2. 벼랑 끝 외교가 만들어 낸 안보의 핵심, 한미상호방위조약
전쟁의 총성이 멈춘 뒤에도 진정한 외교전은 계속되었다.
1953년 미국은 휴전을 서두르고 있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확실한 안보 보장 없이 휴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강수를 통해 미국을 압박하며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1953년 6월 18일 새벽, 전국 수용소에 있던 약 2만 7천 명의 반공포로가 석방되었다. 이는 미국의 휴전 구상에 큰 충격을 주었고, 결국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단순한 외교 문서가 아니다. 이후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 안보를 지탱해 온 국가 생존의 기둥이었다.
만약 이 조약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수차례 북한의 군사적 위협 앞에서 존립 자체를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자유대한민국을 지켜 준 가장 강력한 안전장치였다.

3. 조약 제4조가 증명하는 진실
주한미군은 점령군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지금도 주한미군을 "점령군"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원문만 읽어 보아도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The Republic of Korea grant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cepts, the right to dispose of United States land, air and sea forces in and about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
대한민국은 미군 주둔 권리를 "허여(Grant)"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Accept)"한 것이다.
조약 체결 당시 대한민국 국회와 미국 상원은 모두 정식 비준 절차를 거쳤다. 따라서 주한미군은 국제법상 대한민국의 동의와 요청에 의해 주둔하는 동맹군이다.
점령군은 승전국이 패전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주둔하며 통치하는 군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아래 상호 합의에 따라 주둔하는 합법적 동맹군이다.
이것은 정치적 견해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적 사실이다.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단순한 양국 간 협정을 넘어 서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안보체제의 핵심 축이다.
더욱이 미국 의회는 매년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주한미군의 급격한 감축이나 철수를 제한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국제법과 미국 국내법에 의해 보호받는 안보 체제의 핵심 요소인 것이다.

4.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 주한미군 철수
역사는 때때로 적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를 통해 진실을 보여준다.
김일성과 북한 정권이 지난 7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요구해 온 것이 있다. 바로 주한미군 철수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곧 미국과의 충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자체가 가장 강력한 전쟁 억제력인 셈이다.
따라서 한미동맹 해체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단순한 외교 노선의 차이를 넘어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 축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되는 오늘의 국제정세 속에서 한미동맹의 가치는 오히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을 대한민국 내부에서 대신 외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주장인가.
결론
안보 우산 위에서 피어난 대한민국의 기적
미군이 휴전선에서 강력한 억제력을 유지해 주었기에 대한민국은 지난 70여 년 동안 단 한 번의 전면전도 없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안보가 안정되자 세계 자본이 한국에 투자했고, 우리는 경제 개발과 산업화, 교육 발전과 복지 확대에 국가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결코 우연히 찾아온 선물이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 통찰과 한미상호방위조약, 그리고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 위에서 가능했던 역사적 결실이다.
우리는 미국을 숭배하는 민족도 아니고 어느 나라에 의존하기만 하는 민족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분명하다. 자유대한민국은 한미동맹이라는 토대 위에서 생존하였고 성장하였다.
동맹은 굴종이 아니라 국익이며, 감사는 사대주의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정직한 태도이다.
제76주년 6·25를 맞아 우리는 자유를 위해 피 흘린 국군과 유엔군, 그리고 한미동맹을 가능하게 한 건국 세대의 통찰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았고,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멈추지 않고 있다. 자유는 지켜질 때만 존재하며, 평화는 힘 위에 세워질 때만 지속될 수 있다.
은혜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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