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의 땅바닥에 플러스와 마이너스 숫자가 다 있는 아주 크고 긴 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지금 그 자의 중간인 0의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가면 1, 2, 3, 4, 5 …… 그렇게 나아갑니다. 반대로 왼쪽으로 계속 나아가면 -1, -2, -3, -4, -5 …… 그렇게 나아갑니다. 이것을 이렇게 비유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오른쪽 플러스 숫자로 나아가는 것은 의의 길로 가는 것이고, 반대로 왼쪽 마이너스 숫자로 나아가는 것은 죄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필자가 이렇게 비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란 0의 자리에 서 있으면 계속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인간 속의 죄 된 본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서서히 마이너스의 자리로 가게 만들어 버립니다. 즉 0의 자리에 서 있으면 마이너스 1로 가기 쉬워지고, 마이너스 1로 가면 또 마이너스 2로 가기 쉬워지고, 마이너스 2로 가면 또 마이너스 3, 4로 가기 쉬워지고, 그래서 계속해서 더 심한 마이너스의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즉 점점 더 돌이키기 어려운 죄의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람이 0의 자리에서 경건의 노력을 하여서 플러스의 자리로 계속해서 나아가면, 즉 0에서 1로, 1에서 2로, 2에서 3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더욱더 성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렇게 더 높은 플러스의 자리로 나아가다보면 뒤돌아서서 마이너스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꾸준한 기도와 말씀의 경건의 노력으로 중단 없이 더 높은 신앙의 플러스 자리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 디모데전서 4장 7절 후반부에서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라고 말씀하심은 바로 그것을 명하는 것입니다.
도둑의 삶을 살다가 주님을 만나고 회개한 사람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다시는 그러한 죄에게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저 도둑질 하지 않고 살 것이라는 결심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언제 내 속의 죄의 본성은 다시 이전의 죄를 부추길지 알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변화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제는 내가 내 손으로 돈을 벌어서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비로소 이전의 죄 된 생활은 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에베소서 4장 28에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라고 말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저 나쁜 짓을 안 해야지, 죄를 짓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만으로는 죄 된 생활을 온전히 청산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적극적으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주님의 뜻을 받들어서 선을 행하며 살아갈 때에 비로소 진정으로 죄에서 자유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면, 에베소서 4장 2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인은 더러운 쌍욕을 하지 않는 데서 만족하지 말고 더 나아가서 덕을 세우는 아름답고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내가 속한 곳에 은혜를 끼치는 성화된 참 그리스도인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저 그런 0의 자리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명하시는 영적 플러스의 거룩한 자리로 힘차게 발걸음을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죄의 자리인 마이너스에서 점점 멀어지고, 오히려 점점 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성화되어 갑니다. 힘차게 걸어가십시오. 영적 플러스의 자리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