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8-07(금)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내용의 카드뉴스 제작을 거부한 학생이 수행평가에서 0점을 받았다는 사례가 알려졌다. 학생은 반대 입장으로 과제를 제출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찬성 취지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과제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수행평가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공교육이 학생에게 특정한 가치관을 사실상 강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에서 찬반이 첨예하게 나뉘는 사안이다.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고, 종교와 양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입장도 있다. 학교가 이러한 사회적 쟁점을 다룰 수는 있다. 그러나 교육이라면 찬성과 반대의 근거를 함께 살펴보고 학생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찬성 입장만을 과제로 인정하고 반대 의견은 제출할 수 없게 한다면, 그것은 토론교육이 아니라 정답을 미리 정해 놓은 교육에 가깝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교육이 ‘다양성’과 ‘반편견’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다양성을 말하면서 성경적 창조 신앙에 따른 견해는 편견으로 규정하고, 그 견해를 밝힌 학생에게 불이익을 준다면 그 교육은 스스로 모순에 빠진다. 다양한 생각을 존중한다면서 특정한 생각만 허용하는 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또 다른 획일성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라는 말씀은 기독교 인간관의 기초다. 이는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차별하기 위한 주장이 아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엄하다는 고백인 동시에, 인간의 성이 창조주께서 주신 질서라는 고백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교육 현장에서는 생물학적 성보다 개인이 느끼는 성정체성을 우선하고,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개인이 선택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려 한다. 남자가 여자가 될 수 있고 여자가 남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나의 논쟁적 견해로 소개하는 것과, 학생들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가치로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직 세계관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아이들에게 논쟁 중인 젠더 이론을 확정된 진리처럼 주입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면 그 차이를 설명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신앙과 양심도 존중해야 한다.

경상남도교육청이 각급 학교에 안내했다는 용어 개선 사례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부모님’을 ‘보호자님’으로, ‘엄마·아빠와 함께’를 ‘보호자와 함께’로 바꾸도록 안내했다는 것이다. 물론 조부모나 친척, 위탁가정 등 다양한 양육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배려할 필요는 있다. 필요한 경우 ‘부모 또는 보호자’라고 함께 표현하면 된다. 그러나 부모와 엄마, 아빠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족 언어 자체를 고정관념이나 지양해야 할 표현으로 취급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양한 가족을 배려하는 것과 부모의 존재와 의미를 언어에서 지우는 것은 구별돼야 한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는 이른바 포괄적 언어 정책과도 닮아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 부모라는 표현 대신 보호자나 가족 구성원 등의 표현을 우선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가정환경을 배려한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배려를 위해 표현을 추가하는 것과 기존의 가족 언어를 지워야 할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공교육에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는 특정 종교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성경적 인간관과 가족관을 낡은 편견으로 취급하고, 그 신앙에 따라 다른 의견을 가진 학생에게 침묵이나 복종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국가와 학교의 중립성이란 기독교 신앙만 교실 밖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특정한 젠더 이론을 세워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차별받는 학생을 보호하는 것과 모든 학생에게 특정한 성윤리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것은 구별돼야 한다.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과 그 사람의 모든 주장과 선택에 동의하는 것도 같은 일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성과 결혼, 가족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아서도 안 된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명령하는 일이 아니라, 사실과 근거를 바탕으로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일이어야 한다. 다양성을 가르치려 한다면 반대할 자유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질문할 자유와 양심에 따라 판단할 자유가 없는 교실은 결코 자유로운 교실이라고 할 수 없다.

 

 

경상남도교육청(교육감 권순기)은  부모, 엄마·아빠라는 용어 대신 보호자로 표기해 달라며 각급 학교와 기관에 발송한 다양한 가족 형태 존중을 위한 고정관념 용어 개선 안내공문을 공식 철회했다.

 

경남교육청은 713이번 조치는 해당 공문 취지가 본래 교육적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거나, 학교 현장의 오해를 유발할 소지가 있고, 이미 현행 법령에 따라 사용 중인 학부모용어 사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될 수 있어 취해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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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 다양성을 말하면서 왜 다른 생각은 허용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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