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8-0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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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부산은파교회)

지혜의 사람인 바울은 (고전3:18)에서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는 모호한 말씀을 하였다. 과연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바울의 행간이 궁금해진다. 바울은 생생한 어구를 사용하면서 지혜로운 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그것은 겸비하게 배우는 자가 되라는 권면을 신선하게 표현한 것이다. 더욱이 벌써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에게는 아무도 무엇을 가르칠 수 없다.


  플라톤은 ‘자기는 지혜를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인간이다’ 라는 철학적인 말을 남겼다. 쿠인틸리안 역시 ‘자기들의 학식에 대해 그처럼 자신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틀림없이 훌륭한 학자들이 되었을 터인데’ 라고 한 제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서양 속담에 ‘무지하면서도 자기의 무지를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피하라. 무지하지만 자기의 무지를 아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가르쳐주라’ 는 말도 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은 자기가 어리석은 자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자기의 무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옛 선비들에게도 이러한 어리석음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었다. 영등포 가리봉동을 지나 시흥에 이르는 중간지점, 왼편에 그리 높지 않는 야산이 있다. 그 산 이름이 독산(禿山, 민둥산)이며, 이 산 이름이 연유가 되어 그 인근 마을을 독산동이라고 한다. 이 산은 예부터 벌거벗었기로 그 같은 슬픈 이름을 얻은 것 같다. 그런데 조선시대 초기에 이곳에 살았던 유명한 선비 강의(姜艤)의 호가 독산(禿山)이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강의를 찾아와 자네가 호를 독산이라고 한 것은 살고 있는 지명을 따른 것인가 아니면 딴 뜻이라도 있는 것인가 하고 물었다. 이에 그는 자기 호가 왜 독산이라고 지었는지 늘어놓았다. ‘내 집 지은 곳에 산 하나가 있는데 활딱 벗겨져서 나무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독산이라 한다. 어찌 이 산은 본래부터 나무가 없어 그러하리오. 한성 외곽에 자리잡은 까닭으로 도끼로 찍히고 소나 염소 따위에게 먹히는 것이 나날이 심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산 밑에서 성장하면서 개연히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탄식하면서 그 독산의 처지와 나의 처지를 비교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의 본성도 또한 이 산의 나무와 같은 것인데 진실로 그 마음을 바로 다스리지 못하면 뭇 사욕이 엄습해 오는 것과 바로 이 산의 나무를 도끼와 소나 염소가 해치는 그것과 같다. 감히 이것으로 표준하여 스스로 나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마음에 나무가 없다는 독산의 말은 어쩌면 현대인에게 공통된 상황의 날카로운 지적으로 보인다. 사욕의 도끼날에 남벌되어 메마르고 벌거숭이가 되어버린 민둥산, 너도 독산이요, 나도 독산이다. 우리 옛 선조들은 이 같은 마음의 벌거숭이, 마음의 어리석음을 자처하는 것으로 사리에 겸손하게 대하는 정신적 전통을 지니고들 살아왔던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이 같은 어리석음의 가치를 두는 인간을 찾아볼 수 있다. 삼성산이 시흥 쪽으로 뻗어오다가 부러질 듯 단절된 목에 형세가 뛰어나갈 것 같은 험한 바위가 바로 호암이다. 범이 달리는 형세의 바위라 그 기세를 누리기 위해서 호압사를 짓고, 다시 그 북쪽에 호랑이를 위업하는 사자암을 지은 것이다. 지금도 그 지점에 호압사며, 사자암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애써 어리석음에 가치를 두었던 흔적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율법에 능통하였던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참 진리를 발견한 이후에 이전에 자기가 알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혜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혀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의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바울처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립보서3:8-9),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젊은 시절 한 때 ‘성경박사가 아니라 성경밖에 모르는 바보’ 라는 좌우명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시절이 그립다. 세상의 수많은 때가 묻어있는 나 자신을 볼 때 심히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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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 어리석은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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