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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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성경 처음 4권은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 복음이다. 마태복음은 세리 마태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한 것으로 구약에 대한 인용도 99회 정도 된다. 또한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므로 신약의 가장 서두에 편집했다. 특히 왕, 왕국이라는 말이 75회 이상 나온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왕의 복음이라고 부른다. 마가복음은 요한의 성을 가진 마가가 바울을 수종들다가 로마에서 로마인들을 위하여 종의 관점에서 기록하였기에 섬김의 관점에서 기록된 복음이다. 그의 어머니는 예루살렘 출신으로써 믿음과 덕을 갖춘 신실한 여성도로서 그 집과 다락방을 사도들의 휴식처로 제공하여 지상교회를 탄생시킨 복음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마가의 외숙부는 바울과 함께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받아 초대 선교사로 명성을 떨친 바나바이다. 누가복음은 아수리아 안디옥 사람인 의사 누가가 당시 지성을 자랑하는 헬라문화를 지배하는 자들을 위해 오신 도성인신 한 예수님에 관해 기록한 인자의 복음이다. 마지막 요한복음은 세베대와 살로매의 아들인 야고보의 동생 요한이 쓴 책으로써 요한은 주님의 제일 어린 제자로 밧모섬에 귀향까지 간 가장 오래 살았던 제자이다. 요한은 영적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를 위해 공관복음에 없는 부분을 보충해서 기록한 우주적인 복음이다.

마가복음은 주후 65년 전후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바울의 전도여행에 동참했다가 중도에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나중에는 옥중에 갇힌 사도 바울의 복음전파에 끝까지 수종들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는 마가복음을 “로마인의 복음”이라고 했다. 마태복음은 혈통을 중시하는 족보로부터 시작하지만 마가복음은 로마인에게 준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시작된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된 복음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착념하지 않게 했다. 복음이란 ‘좋은’이란 말과 ‘철자’란 단어의 합성어로 “좋은 소식”이란 말이다. 마가복음은 총 16장으로 되어 있는데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짧은 책이다. 책의 총 제목은 종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핵심 성구는 마가복음 10장 45절의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이다.

 

광야의 사람 세례 요한

 

그는 선지자의 예언대로 오신 분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사40:3절)을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고 했다. 사실 이 말씀은 이사야가 유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다가 해방되어 올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그보다 더 큰 의미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은 죄악의 사슬에 묶여 있는 백성을 풀어서 참된 자유를 주기 위해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올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바로 그 사역의 수종자가 세례 요한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유대인들의 삶은 당대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당신에게 오늘날 주어진 삶은 또 다른 한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위한 복음의 도구가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너무도 거시적인 동시에 구체적이고 확실한 사건이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러 왔다.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그는 이 땅에 인자의 몸으로 섬기려 오신 분이지만 실제는 하나님의 독생자인 왕이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함부로 맞이할 수 없다.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하늘의 어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주님보다 먼저 오셨다. 당시 유대 사회는 왕이신 주님이 사역하기가 너무도 불편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파 놓은 함정이 많았고, 사두개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박아 놓은 돌부리들이 많아 그 첩경을 평탄하게 하지 않고는 주님이 걸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원해서 광야의 사람이 되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라고 했다. 그는 당시 덕망이 있는 제사장 스가랴와 엘리사벳의 가문에 태어나서 세속적으로 출세를 할 수 있는 신분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 자리를 포기하고 빈들에서 민초들과 함께 생활하는 광야의 사람이 되었다. 그곳에서 약대털옷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광야의 소리로 살았다. 소리란 모양도, 빛도, 냄새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듣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그러나 삶을 변화시키는 소리는 복음의 소리이다. 그는 가장 천한 자리에서 가장 귀하게 살았으며,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권세 있게 살았으며,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 가장 밝게 살았다. 그는 젊은 삼십대에 부름을 받아 짧은 세월을 살았으나 가장 값지고 굵게 살았다. 그 입은 헤롯 대왕도 막지 못했다.

 

예수님의 공생애 준비

 

때가 차매 주님이 오셨다. 세례 요한은 철저하게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신 후에 소리와 같이 사라졌다.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의 인생철학을 너무도 멋있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그렇다면 주님은 세례 요한의 뒤를 이어 오셔서 공생애 구원사역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

먼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세례란 죄사함의 표로써 공교회 앞에서 베풀어지는 예식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죄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 베푸는 것을 사양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그러나 주님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했다. 주님은 죄가 없지만 세상 죄를 대신 짊어지신 대속의 제물 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었다. 주님이 세례 받고 죄가 청산됨으로 하늘 문이 열리면서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다음으로 광야에서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았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주님은 공생애에 불어 닥칠 시험을 이기기 위해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아 금식하며 기도로 준비했다. 사단권세가 주님을 넘어지게 하려고 했으나 주님은 그때마다 철저하게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쳤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선택하셨다. 주님은 구원사역을 이루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소그룹 제자훈련을 시작하셨다. 제자훈련은 주님이 가르쳐 준 성경적인 전도방법이었다. 그러면 주님은 제자선택을 어떻게 하셨는가? 먼저 현장으로 가서 직접 확인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주님은 책상에 앉아서 이력서만 보고 채용한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사역하는 것을 보시고 부지런 하고 충성된 자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이들은 그물과 배 뿐 아니라 심지어 부모와 종들까지 버려두고 쫓았다. 이것이 제자의 도이다.

 

주님의 하루 일과

 

주님의 하루 일과는 너무도 분주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래서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성과 촌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파했다. 본문은 가버나움에서 안식일을 보낸 하루를 통해 주님의 하루 일과가 어떠한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오전에는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가르쳤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주님은 회당에 들어가서 율법을 가르쳐서 천국복음을 증거 하셨다. 그의 말씀은 서기관들과 달리 권세가 있어 뭇 사람들이 놀라고 귀신들이 항복하며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오후에는 심방을 했다.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 인명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주님은 회당에서 교육과 설교사역을 마치시고, 권찰들을 데리고 주의 종들의 집을 심방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확인했다. 주님의 말씀이 증거 된 복음이 가는 곳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다가 주님이 손잡고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님께 수종 들었다.

저녁에 대성회가 열렸다.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소문을 들은 온 동네 사람들이 그 밤에 다 몰려 왔다. 주님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각색 병든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이튿날 새벽에는 기도하러 갔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주님의 하루 사역은 한 순간도 쉴 틈이 없는 분주한 사역이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 미명에 기도할 곳을 찾으셨다. 새벽 기도를 놓치지 않았다. 낮 동안에 이런 사역이 가능했던 것은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만난 큐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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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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