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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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목사(통영시민교회)

<특별 기고> 

 

필자는 고신포럼의 한 일원으로서 고신포럼의 이념구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고신포럼으로부터 그 어떤 권위도 부여받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의 글은 철저히 필자 개인 의견이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필자 개인에게 있음을 밝혀 두는 바이다.

(그리고 장문이라 서두에 단락의 제목을 밝히고 그 순서에 따라 의견을 펼침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1) 우리는 개혁주의 노선을 추구한다.


우리 고신이 개혁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이유는, 지난날 종교적 혼합과 세속적 타락으로부터 오직 하나님 말씀 앞에서 반드시 걸어야 할, 말씀중심의 길을 끊임없이 찾고자 하는 선진들의 생명을 건 투쟁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Protestant 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2) 개혁주의는 전 고신 인이 추구해야 할 정신이다.


그런데 이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이는 어떤 특정한 집단이나 인물만이 취급할 수 있는 전유물인양 주장하는 전제를 필자는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라면 누구나 이 점에 관하여 깨어있어야 하고, 특히 고신 인이라면 이 개혁주의 노선을 반드시 지켜야하고 그 길을 가야 할 길이 아닌가? 그래서 필자는 그 권위와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그것에 대하여 논하고 바른길을 찾는 것에는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3) 고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회복하는 길은 신학적 논리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정00 목사가 고신의 정체성과 개혁주의 신앙과 관련하여 제기한 신학적 이슈에 관련하여, 첫째는 제기된 문제의 팩트를 확인하고, 둘째는 그 오류가 무엇인지 근거와 논리로 반박하고, 셋째는 그 제기된 문제가 분명 신학적 문제가 있다고 하면, 소위 목회적 경험과 전문적 지식을 가진 분들이 냉정한 판단을 통하여 바로잡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 교수와 모 목사는 본질적인 문제 보다 비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하여 본질을 희석시키려고 정치 논리로 몰아가는 것이 아닌지 자못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결코 신학적 문제는 정치적 논리로 풀어서는 안 된다.

고신을 걱정하는 순수한 의도를 지닌 개혁주의 신앙을 걸어가는 자로서, 제시한 문제점들을 향하여 소위 ‘일개 목사’를 운운하면서 무시하는 처사는 결코 고신인답지 않는 처사이다. 적어도 고신포럼이 어떤 정치적인 사익을 챙기기 위한 것이었다면, 분명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며, 비도적인 집단으로 매도한 모 목사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적인 관점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거기에 대한 오류를 수정해야지 어떤 정치적 프레임을 둘러씌워, 하나님 앞에서 불타는 열정을 가진 한 목사를 매도하거나, 더욱이 우리 교단에 소속된 수백 명의 회원을 가진 고신포럼을 아무 근거 없이 정치적으로 몰아 공격하고 있는 현실에 심히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4) 고신포럼은 고신의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고신포럼은 성경과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가르침을 따라 개혁주의 교회 건설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친목을 위한 소모임이 아니며, 엄연히 대표를 비롯한 조직을 갖추고 있어, 모 목사가 폄하할 정도가 결코 아님을 밝혀 둔다.

그런데 모 목사는 고신포럼에서 '고신'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 근거로 ‘고신몰’ 폐쇄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고신몰은 고신교회와 성도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교회 관련 물품들을 공급하여 상생하는 길을 찾으려 하였으나 이용자가 너무 적어서 그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폐쇄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내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모 목사의 말한 것처럼 따끔한 질책을 한 후에 폐쇄했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며, 이를 근거로 목사들의 학문토론을 지향하는 고신포럼의 폐쇄를 운운하는 것에 심히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고신포럼의 주제와 강사선정까지 간섭하는 듯한 발언은 그 정도를 넘어선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고신포럼을 ‘정치모임, 자기편을 만드는 도구의 장, 정치화시키려는 장을 삼으려는 합리적 의심이 간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정치적 프레임에 대해서야 말로 고신포럼이 엄중히 경고하고 사과를 받아야 할 사안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단체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할 경우에는 그 단체의 이름을 사칭하여 사리사욕을 취하거나, 그 단체의 이름을 사용함으로 명예를 훼손하고 심각한 폐회를 끼친 경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고신포럼에서 고신의 이름에 어떻게 명예를 훼손했으며, 심각한 폐해를 끼쳤는지 그 근거를 들어 제시해야 할 것이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고신’, 그 자랑스러운 이름은 고신 인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럽게 사용해야 할 것이며, 그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마땅한 일이며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물론 개혁주의 입장에서 학문적인 따끔하고 아픈 지적은 언제든지 겸허히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고신’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전진하는 ‘고신포럼’ 을 향해, 자신의 생각이나 입맛에 맞지않다고 하여 고신포럼을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정치 놀음이 아닌지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5) 올바른 신학적 논쟁으로 고신 정체성을 회복하자

 

지금 우리는 시대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교회가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반석 위에 교회를 든든히 세워야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우리 안으로부터 성숙한 신학적 논쟁으로 바른 신앙과 신학을 회복시켜 가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런 알맹이 없는 발언으로 비난을 쏟아내는가?’, ‘어떻게 정당하게 신학적인 논쟁을 통해 해결할 생각보다는 정치적 논리로, 위협에 가까운 말들을 할 수 있는가?’를 되묻고 싶다.

그렇다. 존경과 공경은 중요한 윤리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치열하고 성숙한 논쟁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는 가치요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교단에서 누가 보더라도 정치적인 인물일 수밖에 없는 목사의 글에서, 순수하게 학문적, 신학적 문제를 제기한 후배 목사를 향하여, 정치적 배경을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적반하장이 아닌지 되묻고 싶을 뿐이다.

교단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한 목사의 열정을 꺾어 버리고 상처를 준다면 교단의 미래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를 계기로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논쟁하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옳지 않는가? 비난이 아니라 생산적인 비평의 장, 정치적 프레임이 아니라 순수한 신학적 논쟁의 장, 권위의식으로 무시할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수용하고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이 바로 개혁주의 정신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장이 가감하게 마련되길 바란다.

 

 

6) 따라서 ‘교단신학과 정체성 회복을 위한 대토론회’ 를 제안한다.


제3회 고신포럼을 개최하면서 상당히 미묘한 주제라는 것을 인지한 준비위 측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가진 특정인에게도 동일한 시간을 배정하여 강의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통보받았다.

그리고 정상적인 절차를 따라 제안한 것은 아니지만, 모 목사가 ‘그렇다면 이슈의 중심이 된 모 목사와 정당하게 공개 토론의 장을 가져보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그 제안에 대해 ‘격이 떨어진다.’는 식의 회피성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을 인정받게 될 것인데, 그 논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차제에 소위 말하는 고신 신학의 바른 정립을 위하여 격을 높여 한 번 진중하게 대내외적인 장에서 공개 토론을 하면 어떨까 제안한다. 발제자를 3-4명 정도로 하고, 발제 주제 전문을 발제 전에 다른 발제자들이 공유하게 하고, 그 발제 후는 ‘일대일’, 또 ‘일대다’의 형식으로 적어도 3차례의 반론기회를 부여하여 분명하게 대토론회를 가져보면 좋겠다. 이것을 고신포럼이 주최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코로나 시대에 한국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고, 누구든지 당당하게 신학을 논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모든 목회자들과 소위 젊은 신학자들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래도 배움에 자부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얕은 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한 젊은 목사에게 완전히 굴복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너무나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적어도 필자에게 ‘고신신학이 이래서는 안 된다.’ 라는 것까지는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그렇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고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지켜나가야 할 적기라고 생각한다. 이 일이 일부의 불필요한 오해와 왜곡된 시각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기를, 또한 고신 신학의 발전적인 기회를 놓치므로 후회할 일이 없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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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고신, ‘개혁주의’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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