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1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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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밀알교회)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토마스 왓슨이라는 유명한 설교자가 이런 말을 했다. “베드로를 감옥에서 끌어낸 것은 천사의 활동이었으나 천사를 움직인 것은 교회의 간절하고도 지속적인 기도였다.” 앞서간 선진들이 가르쳐 준 또 하나의 지침서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기도의 부담을 주셨다. 신앙의 선배들은 그 부담이 떠날 때까지 기도했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으로 갔다. 세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기도하러 가시고 다른 제자들은 산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벙어리 귀신들린 자의 아버지가 찾아와서 아들을 고쳐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귀신을 좇아내지 못했고 그때 마침 주님이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셨다. 그가 주님께 와서 말하기를 당신의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했으나 고치지 못했으니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했다. 그때 주님은 그 아버지를 책망하면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시면서 고쳐 주셨다. 사역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제자들이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쫒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했다. 기도는 부흥의 열쇠이다.

마가복음 9장의 변화산상과 산하에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기도의 능력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한다. 목양에 기도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기도가 능력이요 재산이다.

 

엿새 후에 또 오른 산

 

본문 2절에 “엿새 후에” 라고 했다.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누가는 “팔 일쯤 되어”라고 했다. 그러면 엿새 후와 팔일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사건 앞에 주님은 제자들과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수련회를 가졌다. 누가는 그곳에서 출발한 날짜와 이곳에 도착한 날을 포함시켰고 마가는 제외했다. 주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의 수련회를 마치고 한 주간이 지나갈 무렵 산으로 올라가셨다. 이 사건에서 주는 영적인 도전이 무엇인가?

첫째, “따로”라는 말이다. 주님은 이 산에 도착하여 제자들 중에 몇을 따로 세웠다. 그들이 베드로, 요한, 야고보이다. 이는 주님이 제자들을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충성과 섬김을 위한 구별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 큰 헌신을 하기 위해 따로 세우는 반열에 참여하도록 힘써야 한다.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 온 교회가 금식하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평생 존귀하게 쓰임을 받았다.

둘째,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라고 했다. 아홉 제자들을 산 아래 두고 세 제자를 데리고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들에게는 남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높은 고지를 정복해야 만이 새로운 세계에 눈이 열리게 된다.

셋째,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라고 했다. 그들은 변화된 주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은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광채, 곧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그들은 완전히 황홀경에 사로잡혀 자아와 세속적인 정욕 가치관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그래서 초막 셋을 짓고 그곳에서 살기로 작정했다. 제자들은 천국과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화된 주님을 보았다.

넷째,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라고 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때 주님은 새로운 사명을 주셨다. 왜 그들을 산상에 불러 올렸으며, 천국을 보여 주셨는지를 알게 되었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사명을 발견하게 된다.

다섯째, “오직 예수”만 보였다고 했다. 우리의 눈에는 주님만 보여야 한다. 신앙의 대상은 모세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닌 오직 예수이다. 예수만이 우리의 영원하신 목자이다.

 

 

산에서 내려올 때에

 

주님은 기도를 마치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 산상에서는 천국이 임했는데 산 아래에서는 사단의 소굴이었다. 주님은 구원사역의 완성을 위해 산상에서 천국의 예고편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산 아래에서는 사단의 지배로 악령이 득세하고 있었다. 주님은 산 아래 머물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책망했다.

첫째, 그들은 변론을 좋아하는 자들이다.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왜 서기관들이 그 많은 율법적인 지식을 가지고도 능력을 행치 못했는가? 그들은 기도하지 않고 언제나 변론을 좋아했다. 하나님의 능력은 변론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나타난다. 아무리 많은 무리가 모여서 변론을 해도 그곳에는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는 변론하기 이전에 무릎을 꿇어 기도해야 한다.

둘째, 참 믿음이 없었다. 주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하면서 책망했다. 이 믿음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역사하는 믿음이다. 주님이 한 순간만이라도 떠나 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유아적 믿음이다. 참 믿음은 시공을 초월해서 역사를 일으키는 능력 있는 믿음이다.

셋째,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를 책망했다. 그 아버지는 주님께 말하기를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했고,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다. 그때 그 아버지가 즉시로 주님 앞에 엎드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간구 했을 때 주님이 귀신을 꾸짖어 추방하니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라고 했다. 그때 주님이 손을 잡고 일으키시니 온전하게 되었다. 이 때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 귀신들린 아들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아버지가 안고 있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가문과 더 확대해 가면 유대민족과 온 인류의 문제가 그 속에 담겨져 있다.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외아들은 그 아비의 생명줄이요 그 가정과 가문을 이어갈 기업이요 포기할 수 없는 아들이다. 주님이 나인 성으로 들어갈 때 동네에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는 상의를 발견했다.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아들은 어머니의 생명이요 그 가문의 기업을 이어갈 생명줄이었다. 이와같은 개인과 가정의 평생 문제를 사전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믿습니다’ 한다고 치유 될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번 받은 은혜로 목사가 되겠다고 덤비는 것과 같다. 이런 것은 기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여기 기도는 단순히 ‘믿습니다’ 하는 일회성으로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지속적으로 산상에 오르는 특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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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기도는 내 인생의 밑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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