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6(월)
 
오태열 목사.jpg
오태열 목사(사천중앙교회)

 신부이며 작가인 H. Nouwen(1932-1996년)은 현대인의 불행은 무관심과 분노에서 온다고 하였다.

어떤 목자에게 양 100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의 양이 낙오가 되었다. 내버려두면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될 수밖에 없다. 목자는 남아 있는 99마리를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게 된다. 이것이 길 잃은 양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이요 사랑이다. 목자의 마음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게 있었다. 99마리의 양이 있다고 위안을 삼지 않았다.

현대인들은 오히려 하나에 관심을 쏟는 것을 비판하고 분노해 버린다. 하나 때문에 전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하나를 쉽게 포기한다.

사람은 숫자에 매인다. 긍휼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불행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잃어버린 그 하나에 있었다. 이는 숫자의 개념도, 재산의 문제도 아닌 마음의 문제다. 현대인은 어느새 물질화, 물량화, 숫자화, 경영화 되어 하나를 소중히 여기려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사회가 살벌해진다. 목자는 무리를 떠난 양에게 정죄와 책망, 책임도 묻지 않았다. 사랑이란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조건을 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멜로 영화의 고전인 러브스토리에서 여자주인공은 아버지를 미워하여 단절하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화해를 권면하면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그 주변 환경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다.

한 마리의 양은 이유야 어떠하였든 목자와 무리를 떠남으로 길을 잃어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왜 그랬느냐고 물을 필요가없다. 물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그랬느냐? 그러면 되겠느냐며 따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건과 까닭을 묻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집 떠나, 유흥비로 돈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는 왜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죽은 이내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고 기뻐하며 동네잔치를 베푼다.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는다. 내 모습 이대로 받으시고 사랑한다. 예수께서 세리 마태가 회개할 때 제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세관 현장에서 그 모습대로 부르셨다. 그리고 그의 집에 들어가 식사하실 때,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다고 비난하면서 죄인의 친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죄인이 죄인과 함께하면 죄를 더 지을 수밖에 없지만, 의인과 함께하면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7:14절에 ‘믿지 않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않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창조적인 사랑이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데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자로 만드시고, 사랑한다. 마태는 훗날 마태복음의 저자가 되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교만한 의인보다 겸손한 죄인을 더 사랑하신다”고 하였다. 부모는 병들어 아파하는 자식을 더 사랑하듯, 예수님은 고난 당하고 병든 영혼에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푸신다. 사회 약자들인 고아와 과부, 지극히 작은 소자들, 이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까지라 하였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 헤매시고 찾아서 벗들과 함께 기뻐하는 목자,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다. 목사인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다.

태그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오태열 목사] 작은 자에 대한 관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