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총장] 일상사, 세계관, 그리고 신앙의 문제
지난 호에서 문화 인류학자 마가렛트 미드(Margaret Mead)가 1959년에 제작한 영화에 나오는 인상 깊은 장면 즉, 일본과 캐나다의 아기 목욕 문화에 대해서 잠시 언급한 바 있다. 이 두 가정의 장면에서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가치관이 표현되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영화에 나오는 일본 가정의 경우를 먼저 생각해 보자. 여기서는 의존성, 온화함, 자기 희생과 같은 가치관이 두드러지게 표출된다. 반면, 캐나다 가정의 경우는 독립성, 자기 주장 및 자신의 관심사와 유익과 같은 가치관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관들 뒤에는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종교적 신앙이 기초해 있음을 추적해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불교, 신토주의, 그리고 유교적 신앙의 결합이 가족과 국가의 통합적 정체성에 대한 믿음을 생겨나게 한다. 개인은 집단의 충성된 구성원이 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조화는 이타심과 유순함에서 생겨난다. 이기심, 독립심, 그리고 자기 주장과 같은 가치관은 이러한 공동체의 조화를 파괴한다고 믿는다. 캐나다에서는 계몽주의적 인본주의로 물들어진 기독교를 통해 하나님은 개인을 돌보시며, 인류의 본성과 운명은 자율적인 각자 개인의 성취에 달려 있으며, 개인의 자기 유익과 관심이 이와 같은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수단이라고 믿는다.
일본의 할머니와 캐나다의 어머니에게 왜 그들이 자신들의 특별한 방법으로 아기를 목욕시키는지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그들은 아마도 선뜩 이유를 대지 못할 것이다. 아기를 그런 방식으로 목욕시키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아기를 목욕시키는 방식이고 지금까지 항상 그렇게 해 오고 있는 방식이라고 말할 것이다. 가치관과 그 가치관 뒤에 숨어 있는 종교적 신념은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가 암묵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 이와 같은 가치와 신념은 수년에 걸쳐 우리가 언제나 초점을 맞추는 핵심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서 삶의 한 방식으로 구현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와 신념은 당대뿐만 아니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에 걸쳐 대대로 전승되고 이어진다.
마가렛트 미드의 영화는 또한 우리가 그 신앙을 완전히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지 간에 종교적 신앙이 우리가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을 포함하여 일상생활의 가장 일상적인 활동을 어떻게 강력하게 지시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종교적으로 영감을 받은 충성심, 의존성, 소속감이라는 동일한 충동은 현대 일본의 여러 회사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노동자와 경영진이 경쟁 권력 집단으로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관리자들은 현대 서구 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방식으로 근로자들의 개인적, 사회적, 종교적 필요를 돌보아 준다. 실제로 회사는 기업이라기보다는 확대된 대가족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의존성, 충성심, 소속감이라는 종교적 영감을 받은 가치는 자신들의 관습에 맞게 옷과 헤어스타일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함께 찍는 동양 문화의 가족사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족 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의 개성과 독립성을 표현하기 위해 옷과 헤어스타일을 선택하는 서양 문화의 가족사진과 대조해 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삶을 모든 면에서 아주 강력한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라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종교적 신앙이란 실제로 감정적 필요의 투영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어린 아이일 때는 아버지가 곁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끼고, 아버지가 없으면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는 자신의 삶에 다가오는 불안과 두려움이 때로는 너무 커서 아버지조차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아이는 강력한 대리 아버지 형상을 '하늘로' 투사한다. 이처럼 아버지도 도와줄 수 없을 정도의 불안과 두려움에 대처하려면 인간은 신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들은 믿음을 성육신이나 삼위일체, 인간의 타락,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과 같은 특정 교리에 대한 믿음이나 지적 동의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견해에 따르면 믿음은 과학적 지식과는 대조가 된다. 과학적 지식은 우리에게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을 제공한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신앙은 의지의 행위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종교적 교리는 과학적 증거에 개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서 이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