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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샬롬나비 논평] 2025년 사순절을 맞는 교회와 신자의 자세
    <2025년 사순절을 맞는 교회와 신자의 자세> 사순절 기간 한국교회는 문화적 회개, 금식, 휴대폰 절제를 통한 성화의 삶을 실천하자 사순절을 맞이하여 우리 욕망을 절제하며 사회적인 소외자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펼치자 사순절(四旬節, 영어: Lent)은 부활절을 맞이하기 앞서서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정결하게 준비하기 위하여 주일을 제외한 40일간 갖는 금식과 금욕의 기간을 말하는데, 이 기간에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낮아지심과 고난을 기억하면서 회개와 기도 등 영적 훈련에 힘씀으로 경건한 삶과 영적 성장을 위한 특별한 훈련의 기회를 가진다. 사순절은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전통이다. 일찍부터 초대교회는 부활절에 앞서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을 가지는 것이 신자들의 경건과 영성 훈련에 필요함을 인식하고 부활절 전 얼마의 기간을 정해 이를 실천해 오다가, 마침내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부활절과 더불어 사순절을 교회의 절기로 지킬 것이 결정되었다. 사순절은 비록 성경에 근거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아직 교회가 동.서방 교회로 분열되기 전 모든 교회가 하나로 연합하여 결정한 우주적 교회의 결정으로, 이는 교회적 권위를 가지는 보편교회의 규례이며, 기일과 방식에 다소간 차이가 있을지라도 동.서방 교회 모두가 지키는 교회적 전통이다. 매년 맞는 사순절이지만, 2025년의 사순절은 현직 대통령 탄핵 사태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 속에서 연일 전국적인 대규모 찬반 집회가 이어지고 좌우진영간 극단적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국민적 분열의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그 어느 해와도 다른 사순절을 맞게 하고 있다. 이에 샬롬나비는 2025년의 특별한 사순절을 맞아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모든 교만을 내려놓고 겸비한 마음을 갖는 사순절이 되도록 하자. 사순절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신 것과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고난을 기억하는 절기이다. 성육신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본성(본체)으로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나 그러한 하나님의 지위를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발적으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그가 이처럼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신 것은 죄인된 우리를 동정하셔서 자신을 우리와 동일시 하심이었다(빌 2:5-8).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신 것 또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 위하여 죄인된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허물과 죄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짊어지신 것이었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이러한 겸손과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는 절기이다. 그러므로 2025년 사순절을 맞아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더 낮은 마음과 가난한 마음을 갖는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를 맞아 우리 사회 국민은 진보와 보수의 입장에 따라 탄핵 찬반으로 갈라진 채 상호 적대적 비방과 혐오의 수준이 도를 넘어서고 있으며, 향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서는 자칫 불복(不服) 충돌 사태로까지 치달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날로 어려워져만 가는 국내외 경제 여건 속에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민생의 어려움은 서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며 미래를 절망하게 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에는 온통 불안과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사회가 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념과 지역에 따른 편가르기, 서로를 향한 적개심과 투쟁 속에 나라가 질곡의 고통과 혼란 속에 있다. 이런 가운데 수많은 소시민들이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한 채 충동적 살인과 자살이 증가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사순절을 맞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적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교만한 마음과 공격적 태도를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를 동정하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 비록 겸손한 삶의 실천으로 자신이 억울한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함으로 할 수 있는 대로 화평을 도모하며 사회적 화합과 통합을 이루는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또한 우리는 같은 선상에서 헌법재판소에서 국회측과 대통령측이 이런 국민들의 고통과 혼란을 돌아봄으로 국가의 대의를 위하여 당사자들이 서로 겸손한 자세와 서로를 이해하려는 관용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스도인 정치인들은 정치권 또한 여야가 상대 당에 대해 겸손한 자세를 가짐으로 상호 존중과 이해 속에 대화와 상생의 정치가 실현되게 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2.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의 삶을 사는 회개와 성화의 삶을 다짐하자. 사순절은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죄를 애통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간절히 구함으로 신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에 필요한 영적 변화와 성장의 기회를 가지는 기간이다. 특별히 그동안 죄의식을 가지면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지나쳐 온 죄나 은밀하게 행한 죄를 회개하며 새사람의 삶을 살기를 다짐하는 기간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 안에 있는 어찌할 수 없는 죄성을 슬퍼함으로 옛사람(죄성)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의의 본성)의 옷으로 갈아 입는 성화의 삶을 훈련하는 기간이다(엡 4:22-24). 죄를 버리고 민족의 죄를 교회가 책임지는 자세로 기도해야 하겠다. 오늘 대한민국이 이러한 국론분열과 정치 사회적으로 국민간의 대립이 심화되는 속에는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서로 상대방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비판하는 자세가 자리잡고 있다. 오늘의 나라의 혼란 속에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과 책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죄와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깊이 회개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돌아서야 하겠다. 3. 탐욕, 과소비, 향락을 멀리하고 물질적 금식 뿐 아니라 문화적 금식을 실천하자. 역사 이래 대한민국이 오늘 시대만큼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선 나라가 되었던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민은 국가의 번영 가운데에서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일부는 자유 대한민국을 비판하고 “헬조선”이라고 부르면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 시대만큼 탐욕과 과소비 향락이 만연한 시대도 찾기 어렵다. 기독교인들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기까지에는 기독교와 신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오늘날 대한민국에 만연한 국가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교회의 책임의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순절 기간동안 기독교인들은 금식과 특별새벽기도 등 영적인 절제와 청빈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더해 음식과 의복 그리고 생활방식 등에서도 비싸고 화려한 것들을 피하는 등 육적인 절제와 청빈의 삶도 실천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육체적 쾌락과 만족을 구하는 오락이나 유흥 향락을 피하고 문화적 금식을 함으로 영적 육적 경건의 훈련을 하여야 한다. 휴대폰 사용도 절제하고,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휴대폰 사용 유보, 인터넷 오락 사용 유보를 실천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자. 4. 가난한 이웃, 소외계층, 외국인, 탈북민을 돌아보아 구제에 힘쓰자. 사순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과 낮아지심과 희생과 고난을 기억하는 기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에 있어서는 하나님이시지만 자신의 하나님 됨을 주장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곧 죄로 더럽고 비참하고 하나님과 소외된 형편에 있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공감하심으로 자신을 우리와 동일시하신 것이다. 사순절 기간 동안 교회와 신자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낮아지심의 의미를 기억함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들을 돌아보아 그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실직자 가족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 고아, 독거노인, 가출 청소년, 청소년 가장, 노숙자, 쪽방촌 등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 탈북민 등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계층에 있는 사람들 또는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을 찾아 사랑의 나눔과 구제를 실천하여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에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우리의 작은 것들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 하겠다. 5. 한국교회는 사순절 기간 동안 깊은 통회의 기도와 회개를 통해 세상의 빛으로 거듭나자 주님이 우리를 위해 받으신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사순절을 보내며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주님이 우리의 모습을 보시며 어떻게 생각하실지를 깊이 묵상해야 하겠다. 주님을 따라오려면 네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라 오라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지기보다는 영광을 원했고 주님의 은혜 속에 우리의 꿈을 이루고자 노력한 모습을 회개해야 한다. 우리 주변의 연약한 자를 돌보기보다는 자신의 부를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회가 갈라지고 분열할 때 주님이 원하시는 희생과 사랑을 통한 연합의 길을 걷지 못했다. 한국교회는 진보와 보수가 애국심을 다르게 표시하여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져 기도회를 가졌다. 탄핵찬성파들은 반대파를 “극우들”이라고, 반대파들은 찬성파를 “빨갱이”라고 비방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를 향하여 하나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한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모습 때문에 주님이 이름이 조롱당했고 교회는 사회가 기대하는 신뢰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벗어난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회개하며 주님의 참된 제자되기 위해 우리의 죄악된 모습을 회개해야한다. 우리는 다음같이 기도했으면 한다: ‘주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우리의 연합과 상호 신뢰를 회복시켜 주소서. 그리하여 한국교회가 절망과 아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의 등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분열된 한국사회 안에 예수 샬롬과 화목을 이루는 모판(母板)이 되게 하옵소서.’ 2025년 3월 31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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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2
  • [기고] SFC 폐지(2), 당랑재후(螳螂在後)
    2007년부터 2020년까지 13년 동안 인구가 1.5% 증가한 반면, 고신교단은 17%정도 감소했습니다.(총회 촬요 참조) 특히 청소년 인구는 13년 동안 27% 감소했는데, 교신교단은 50% 감소했습니다. 13년 동안 감소한 것과 통계청에서 내놓은 미래 예측치를 대비해 보면 2020년을 기준으로 2030년이 되면 고신교단의 청소년이 71% 감소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2035년이 되면 통계적으로는 제로가 됩니다. 13년이 지나면 고신교단에서 청소년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통계상 수치입니다. 총회 미래정책위원회가 SFC에 요청하여 받은 자료에 의하면 전도에 대해서는가장 전도를 많이 한 해에 운동원 1인당 0.03명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권역과 대학에서 전도한 결과는 0명입니다. 재정과 관련해서는10년 동안 SFC에 100억 이상이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총회, 노회, 기관, 개채 교회,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것 등을 다 하면 최대 200억까지 추산한다는 기사가 났습니다.더 심각한 것은 SFC의 근본정신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인데 교회 중심이 되지 않으니 SFC 간사들이 강정마을에 가서 데모를 하는 것을 넘어 성경과 고신 신학에 위배 되는 주장을 하는 강사들을 초청하여 수련회나 세미나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청소년의 수가 감소한 것이 SFC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SFC의 사역을 재정으로만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문제는 교회 중심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SFC 폐지라는 안건이 상정되기 전에, 총회 SFC 상임위원회에서 전국 35개 노회별 SFC 담당자들을 모아 SFC 발전을 위해서 연석회의를 하는 자리에 총회 미래정책위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때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SFC의 변화와 혁신을 위하여 피터지게 토론하고 대안을 마련했더라면 SFC폐지라는 안건은 상정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회의는 본질과는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순수한 SFC 위원들은 모르는 물밑 의도와 충동질이 있었음을 충분히 예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본질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누군가 ‘감정’을 부추키는 발언을 했고, “70년이 된 SFC를 폐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우리 모두가 SFC인데 폐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총회미래정책위원이 점령군이냐?”등의 고성이 오갔습니다. 회의의 본질을 흐리고 ‘감정’을 부추키는 발언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모임은 오히려 SFC 폐지를 상정하도록 충동질하는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총회 미래정책위원회에서 2022년 7월 SFC 폐지 청원 건을 총회에 상정했습니다. 정말 SFC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겠습니까? 내 자식이 죽을 것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현재 고신대와 복음병원의 위기와 똑같습니다. 어쩌면 SFC는 고신의 정체성의 문제요, 미래에 대한 문제이기에 훨씬 더 심각한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SFC를 위해 총회상임위 두 기관과 35개 노회 SFC 담당자들이 함께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 자리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논리적인 대화나 토론은커녕 선입견을 가지고 집중적인 성토의 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SFC간사 중에서도 전도 및 학원복음화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 SFC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지 않느냐는 총회의 질문에 끝까지 차별금지법 반대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총회석상에서의 대답은 오늘날 SFC 정서는 대표간사의 말도 안 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탈교회의 극단적인 모습입니다. 수도권 SFC는 지방 SFC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다르다고 하는 대답이었습니다.(이 부분은 오히려 수도권 목회자들이 더 분개하는 부분입니다.) 일반 사회적 흐름에 반대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면 전도가 안 된다는 겁니다.(총회 회의록 참조) 학원복음화를 입에 대지도 않는 자들이 진리의 문제를 제기하니 전도를 핑계 삼습니다. 이것이 바로 탈교회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교회중심이 되지 않는 조직은 불신앙으로 변질된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학원 SFC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총회임원선거를 앞두고 ‘김경헌 = 손현보 = SFC 폐지’라는 등식을 만들어 총대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이 정말 SFC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보입니까? SFC를 위하여 순수하게 헌신하는 분들을 돼지 떼에 넣어 비탈길을 달리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미래요, 우리의 고향인 SFC를 인질로 잡아 사욕을 탐하는 짓을 더 이상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가관인 것은 2023년 8월 중순에 SFC 출판부에 큰 재정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출판부 간사 중 한 사람이 수 천 만원의 재정 사고를 낸 것입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출판부 정상화와 쇄신을 위한 전권위원회’가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 일로 애매하게 어려움을 당할 위기에 처했던 출판부의 다른 간사의 SFC지도부를 향한 애절한 호소가 항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개체교회에서 재정 비리사고가 나면 관련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SFC는 지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불과 얼마 전 KPM에서 있었던 재정 사고가 불현 듯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은급재단은 어떤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당랑재후(螳螂在後)’란 말이 있습니다. 매미를 덮치려는 사마귀가 뒤에 참새가 노리고 있음을 몰랐다는 뜻으로,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뒤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모름을 탄식하는 말입니다. 이미 참새의 부리가 쪼아버린 것 같은 먹먹한 심정이 저만의 느낌이 아니기를 바라며, SFC를 사랑하는 동지들이여 지금이라도 당랑재후(螳螂在後)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 독자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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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1
  • [기고] 아무리 급해도(2)
    아무리 급해도(3) : 논문표절 최근 몇 년 사이 대학 총장과 총장 후보의 논문표절 문제가 자주 불거졌습니다. 인터넷에 “대학 총장 논문표절”이라고 검색하면, 국내외 많은 대학의 논란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경우 사퇴라는 절차를 밟았고,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많은 논란 때문인지 교육부 역시 최근 연구 부정행위에 대해 아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로 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학교마다 ‘연구 윤리 진실성 위원회’ 같은 기구를 통해 특히 총장 후보에 관한 엄격한 자격 검증을 거치도록 합니다. 대학 총장은 교수들과 연구자들을 이끕니다. 연구에 부정행위가 있다면 한평생 연구로 씨름해 온 분들을 이끌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신임 총장의 2004, 2005, 2007, 2008년 출판 논문들은 각각 심각한 수준의 표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중 게재, 자기표절, 논문 쪼개기, 덧붙이기 출판 등의 연구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이미 알려졌습니다. 고려학원 이사회 역시 이 사실을 분명 알았으며, 그 심각성을 인지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총회 운영위에서도 논문표절에 관한 우려로 인해 반대의견이 나왔지만, 이사장은 “연구 윤리규정이 제정되기 전인 2017-18년 전에 자신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대법원은 이를 표절이라 보지 않는 판례가 있다”라며 설득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표절은 인정하는데 대법원이 표절이라 보지 않으니 괜찮다는 겁니까? 이런 내용이 공개된 상황에서 기독교 대학을 자부하며, 개혁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고신대학교를 비롯한 고려학원이 이런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까? 낯 뜨거워서 기도회를 어떻게 합니까? 지금 이 심각한 문제가 교육부를 통해 신임 총장의 전 소속 학교인 백석대학교에 의해 조사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인간적인 관계로 인한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닌 정확한 조사와 판단을 기대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생활의 순결에 위배됩니다. 아무리 급해도(4) : 교단 가입의 부당성 고신총회 헌법 제57조 다른 교단 목사의 가입에 보면 “다른 교단 소속 목사가 본 교단 노회에 가입하고자 하면 반드시 시무교회와 함께 가입하여야 하며 다음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총회 어느 노회에선 이런 것을 살피지 않고 그냥 원래 출신이 지역의 교회니까 받자고 했다고 합니다. 타 교단 목사의 가입 절차가 총회 법에 어긋난다면 원인 무효입니다. 지금도 대다수의 노회에서는 타 교단 출신의 목사 가입을 엄격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례가 되면 타 교단 목사 가입이 불법으로 노회마다 행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적은 글에 대해 고신대의 모 교수가 글로컬 대학을 비판하면서 소위 고신 정체성 운운했는데 이런 부당한 방법으로 교단 가입한 것은 고신 정체성과 일관성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신앙의 정통에 위배됩니다. 총장은 도덕성에 흠이 없어야 교직원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가 있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논문표절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총장이 다른 교수들, 직원들의 비도덕적인 면을 어떻게 지도할 것입니까? 정관개정의 절차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려학원의 질서를 잘 세워 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겠습니까? 교단 가입 절차에 문제가 있는 목사가 교단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울 수 있습니까? 대법원의 판례를 예로 들어 표절 문제를 넘어가려 한다면, 특정인을 선거에서 유리하도록 법을 개정하며 조치한 경우에 대해서 공직자 선거법 위반이 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 총장의 선출과정에서 드러난 정관개정의 절차 문제나 교단 가입의 절차 문제를 사회법에서 다룬다면 원인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도덕적 결함을 지닌 총장이 학생들 앞에서 교단의 핵심 정신인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외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선임한 이사회와 총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신은 사람을 못 키운다는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대로 세워야겠다면 불법을 계획하고, 눈감고, 시행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논문표절은 본인이, 정관개정의 절차적 문제는 고려학원 이사들이, 그리고 노회 가입은 그 노회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총회 임원회 역시 이 모든 일을 방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알고도 묵인하고 강행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야 고려학원이 삽니다. 기워야 할 옷이 있다면, 그리고 좋은 옷을 만들고자 한다면 제대로 해야지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총장이 열심히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약점과 비합리적인 것과 비윤리 불법적인 모든 것을 덮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고신대의 어려운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교육부의 글로컬 대학 진입과 부산광역시의 라이즈(RISE) 사업을 수주해야 하는데,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할 총장이 장관이나 시장을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두가 손뼉 치고 따라갈까요? 선임된 총장을 위해서 한 일들 같습니까? 얼마든지 일 잘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족쇄를 채워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닙니까? 아니 족쇄를 채워 소신껏 일을 못 하게 하는 것을 넘어 사리사욕을 채우지는 않을지 심히 염려됩니다. 이런 사실들을 아는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비웃지는 않을까요? 개인 어느 누구를 비웃는 것이 아니라 출옥 성도의 ‘코람데오’ 신앙을 저버린 고신을 말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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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9
  • [기고] 고신, 우이독경(牛耳讀經) 교단과 대학교
    지난 글에 대한 반론이 나왔습니다. 고신대학교 모 교수님이 쓴 글입니다. 반론이라는 말 자체는 없지만, 내용을 보면 반론이 확실합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것이라 짐작했던 터라 이 반론이 참 반갑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내용은 ‘우이독경(牛耳讀經)’,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지난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염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본질을 흐리는 말싸움, 감정싸움으로 비치지 않길 바랍니다.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에 나온 반론도 ‘위기’, ‘골든타임’을 표면적으로는 인정하는 듯 보이니까 말입니다.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지난 글에서 지적하고자 했던 것은 간단합니다. “언제까지, 얼마가 필요한가?” 다시 설명해 드립니다. ‘골든타임’으로 접어든 ‘위기’의 고신대학교에 관한 교단 지도자들의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교단 지도자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작금의 이런저런 노력이 귀하지 않다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와 성도를 설득해 기부금을 받는 정도의 방법이 주요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본질을 해결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고신 내부의 큰 소리를 들어달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고신교단의 교회는 고신대학교를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그런데 ‘위기’와 ‘골든타임’이라는 상황에 다시 더 큰 기부금을 요청하며 걷고 있습니다. 기도회를 하면서 말입니다. 저의 제안은 언제까지, 얼마를 기부해야 하며,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묻는 것입니다.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제는 정확한 판단과 분석이라는 것을 보고 싶고, 봐야 할 때라서 그렇습니다. 저는 저의 이 제안이 간단명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론을 보니 제 제안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장황하지도 않은 장황한 역사만늘어놓았습니다. 2003년, 2014년, 2015년의 이야기가 지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73회 총회가 드디어 제대로 된 대책을 내며 일을 시작했다는 생색뿐입니다. 과거의 장황한 역사를 꼬집은 것은 이 ‘생색’을 돋보이게 하는 양념이었군요. 책임져야 할 자들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에게 말하느냐는 마음이 행간에 엿보입니다. 설명이 어려운 듯하여 다시 설명해 드립니다. 과거에는 전혀 기부금이 없었습니까? 역대 최고 수준의 기부금을 언급하는데, 이것이 고신대학교를 살릴 수 있습니까? 이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판단과 분석을 토대로 노력하자는 겁니다. 본질을 흐리지 마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고신대학교의 상황에 관한 미화뿐입니다. 과거에는 전혀 기부금이 없었고, 과거에는 교직원들의 헌신이 없었습니까? 교수의 81%, 직원의 42%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면, 교수의 19%와 직원의 58%와는 갈등이 없습니까? 내부적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겁니까? 아니면 듣기 싫은 겁니까? 지금 모든 지방 사립 대학은 연합 대학을 통해서라도 글로컬 대학에 진입하는 일에 대학의 사활을 걸고 있는데(참고,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58472), 글로컬 대학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은 도대체 어떤 근거와 데이터를 가지고 하는 말입니까? 대학에 몸담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카테고리가 헷갈리거나, 아니면 호도(糊塗)하는 유희삼매(遊戱三昧)만있습니다. 교육부와 지자체가 발주하는 사업에 참여한 결과로 받은 금액이 64억 중 교직원 인건비, 학교 운영비로 지출된 금액이 1원이라도 있습니까? 이 금액은 그야말로 프로그램을 위한 비용입니다.혹시 64억을 받아 학교 살림이 나아졌는데도 ‘위기’와 ‘골든타임’에 동조하며 계속 모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시는 겁니까? 반론자도 고신대학교의 문제가 학령인구 감소와 그에 따른 재정위기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안으로 학생들이 공부와 자기 발전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을 제시하다니요? 또한, 구조조정을 언급하면서 실제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일반적인 상식은 ‘세속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시하면서 교직원 연봉의 십일조를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것을 언급하다니요? 도대체 구조조정과 연봉의 십일조 기부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이것이 어떻게 전체 고신대학교를 위한 상생이 되는지요? 수익 구조 다각화에 대한 노력과 5년 재정 구조에 대한 정밀 시뮬레이션 완성? 좋습니다. 바로 이런 대책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본질을 흐리지 말고, 그 방법을 고신대학교를 위한 더 큰 헌신과 헌금을 요구하는 고신 교회 앞에 설명해 주십시오. “모금하다가 안 되면 할 수 없고”라는 식의 미봉책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동참하지 않는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의 염려와 중심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고신 사랑’을 폄하하지 마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가짜 뉴스라는 지적만있습니다. “재학생 등록률과 신입생 충원 결과를 보면 1년 100억 적자가 날 것이 분명한 사실인데”라는 표현이 가짜 뉴스인가요? 제 나름대로 정보를 통해 파악한 금액입니다. 저의 부족함 때문에 계산상 조금의 오류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주는 이가 없으니 그럴 수 있지요. 그런데 이게 가짜 뉴스라고 지적받을 표현인가요? 그렇다면 반론자는 자료를 다루는 교수 아닙니까? 병원의 적자는 어떻습니까? 학교법인 고려학원의 적자가 100억 이상 나는 것이 가짜 뉴스라면, 본질을 흐리지 말고, 진짜 뉴스로 ‘정확한 적자 금액’을 분명히 밝혀주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오히려 가짜 뉴스만 있을 뿐입니다. “혹자는 의대와 복음병원을 헐값에 인수하려는 사람들과 모의를 벌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위기라고 말만 하면서 오히려 잘못된 과장 정보로 위기를 부풀리기만 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신학교수인 반론자는 정말 신앙 양심에 화인을 맞았습니까? 십계명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동료를 향한 가짜 뉴스를 은근히 양산하는 말장난을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잘못된 과장 정보로 위기를 부풀렸다면, 지금 반론자가 말하는 위기와 골든타임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이 정도 매너의 교수가 신학교수로 학교 강단에 있는 고신의 현실이 개탄스럽기까지 합니다. 본질을 흐리는 공격을 멈추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질 생각도 없는 나팔수의 아부만 있을 뿐입니다. 도대체 교수님은 우리 고신교단과 고신대학교에서 어떤 책임 있는 자리에 있습니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개진하는 것은 신자 개인의 자유이나, 총회와 고신대학교를 대변하는 듯한 이런 주장으로 교단과 고신대학교를 갈라치기 하는 (파탄 내는)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나팔수의 아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이것이 극단적인 분리주의 사고방식인 것은 모르실 리 없겠지요. 본질을 흐린 채 말장난, 정중하고 정확한 논의를 촉구합니다. 정확한 사실을 제시하는 책임 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 독자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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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7
  • [특별기고] 통합 기념 한마음교회 유감
    폭염입니다. 여름의 태양이 작열하는 계절! 이 여름에 우리 주님 다시 오신다면 태양처럼 뜨거운 신앙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으실 것 같습니다. 사역의 현장마다 여름 태양보다 더 뜨거워서 주님의 칭찬을 받는 우리 교단 교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듯이 우리는 성공적인 교단통합을 이었습니다. 그 통합기념으로 한마음교회를 설립한 것입니다. 전국 노회와 교회들이 마음과 기도와 물질을 모아 세운 기념비적 통합기념교회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통합기념 한마음교회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는지요? 통합기념 한마음교회는 고신교단의 여러 어른들과 선배 목사님들 그리고 총회 임원들 그리고 (구)고려의 선배들과 임원들이 힘들게 이루어낸 통합의 금자탑이며 결정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교회의 지 교회가 되어있습니다. 교단통합을 하면서 기념으로 교회를 설랍(립)하되 (구)고려측의 목회자를 세우기로 결의하고 설립한 교회가 바로 한마음교회입니다. 그런데 (구)고려측의 일대 한마음교회 전임목사는 당회장권 한번 갖지 못하고, 고초를 겪다가 사임하였습니다. 한마음교회 담임목사에게 이러저런 이유로 당회장권을 이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년 동안 무려 6번이나 당회장을 바꾸면서 힘들게 했습니다. 이런 상식 밖의 이상한 일이 통합기념 한마음교회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안양일심교회 부목사로 사역했던 이 모 목사가 담임으로 있습니다. 안양일심교회가 물심양면으로 많은 부분을 헌신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국 노회와 교회의 헌금으로 세운 통합기념교회를 일심교회 40주년 지교회로 삼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유감스럽게도 통합기념교회 설립을 위한 목적헌금이 한 교회의 지교회를 설립하는데 사용되는 어처구니 없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교단 전체가 바로 알고, 바로 잡아야 하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우리가 하나의 교단으로 통합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처음의 약속과 결의가 깨짐으로 아름다운 통합정신이 훼손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지만, 특히 (구)고려 측 형제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아픔이 된 것입니다. 이런 사태로 인해 안양일심교회와 당회장은 (구)고려 측 형제들로부터 신뢰를 잃었고,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미안했던지, 무마하려고 (구)고려의 어려운 분들을 후원하겠다고 접촉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고려 목사들은 의도가 순수하지 못한 후원금을 받을 리 없지 않습니까? 지난해부터 제안하는 후원금을 거부해 왔습니다. 올해 들어와서 또다시 (구)고려 동문회에 7천만원 정도를 후원하겠다고 제의를 해왔지만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교회와 선교사들이 많이 있었지만 통합기념교회를 세우려는 큰 뜻이 있기에 거절했던 것입니다. 급기야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기어코 후원을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거부했는데도 비공식체널을 통해 기어코 다수의 교회에 상당한 후원을 감행한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저도 부교역자 약 10년, 한 교회 담임목회를 27년째 하니 37년 사역을 하며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은 사람입니다. 교회의 내부 사정이 있어 그렇겠거니, 일면 이해가 가지만, 그렇지만 한마음교회의 문제는 양 교단 통합기념 교회인만큼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국 노회와 교회의 헌금은 통합기념교회를 설립하기 위한 목적 헌금입니다. 그 목적대로 쓰이지 않았다면 바로 잡는 것이 마땅합니다. 따라서 교단 70주년을 맞아 통합기념교회를 다시 세우려는 계획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국 노회와 교회의 후원금 13억여원은 교단통합의 정신과 기념을 담는 명실공히 통합기념교회 설립을 위해 쓰여져야 할 것입니다. 안양일심교회는 고신교단의 대표적인 큰 교회 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당회장 김홍석목사님은 앞으로 총회에 큰 일을 감당해야할 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중대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고 교단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안양일심교회 김홍석목사는 통합기념 교회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할 것입니다. 이것이 (구)고려측 대부분 형제들의 일치된 생각입니다. “순교자의 고장! 진리의 파숫군! 경건자의 훈련소, 예수의 제자들이 일어나는 산실!” 그 교단이 우리 고신 입니다. 저는 우리 교단의 일원이고 교단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고신의 목사로 함께 사역함이 늘 감사합니다. 저는 고신인이 된 것이 좋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뒤를 이어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 정신을 이어가는 우리 교단이 좋고 자랑스럽습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고신과 고려의 통합이 자랑스럽습니다. 통합 후 (구)고려 동문들이 연합하여 학원이사로, 고신세계선교회 이사로, 이단사이비연구소장으로, 동문회 임원으로. 각 상비부에서... 각처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운 하모니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통합입니다. 이렇게 배려해 주고, 사랑해주는 우리 ‘고신’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따라서 통합기념교회가 다시 설립되어 통합정신이 훼손되지 않고 계승되어 아름다운 교단을 잘 보전하고, 또 더 아름답게 발전되기를 기원하는 바램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 통합기념교회 설립을 이행하라! * 전국 노회와 교회의 목적 헌금을 반환하라! 2022년 7월 중순 신앙 열정이 여름 태양처럼 뜨겁기를 기도하며... ※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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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2
  • [신재철 목사] 안녕, 대전(大田) : “전학왔니더”
    “푸를 청(靑), 소나무 송(松). 청송에서 대전으로 전학왔니더.” 전학 수속이 끝나고 들어간 교실. 담임 선생님께서 친구들에게 자기소개를 해보라 말씀하셨다. 나는 큰 소리로 나의 고향 이름을 소개하며 인사했다. 아이들이 나의 인사보다 더 크게 웃는다. 왜 웃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정해주신 빈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와 다르게 아이들 얼굴이 뽀얗다. 우리 엄마가 읍내에서 사준 이랜드 옷이 촌스럽게 느껴졌다. 어쩐지 다들 공부도 잘 할 것 같다. 주눅과 함께 찾아든 두려움도 잠시. 쉬는 시간에 몰려든 아이들의 질문 세례에 정신이 없었다. 자꾸 말을 시킨다. 그리고 아이들은 더 크게 웃는다. 아마도 나의 사투리가 재미있고 신기했던 것 같다. 대놓고 놀리는 것은 아닌데 뭔가 찝찝하다. 촌놈 하나 전학 오니 신기해서 구경하러 온 느낌이다. “뭐여~ 내가 언제~” “니가 그랬잖여~ 왜그랴~” 나를 구경하러온 친구 무리와 떨어진 곳에서 조금 큰 소리가 난다. 제법 덩치 큰 남자 아이 둘이서 대화를 하고 있다. 내게 몰려든 아이들이 이제 그쪽으로 몰려간다. 아직은 인사도 제대로 못한 옆 짝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큰소리로 대화하는 두 명의 친구, 그곳으로 몰려드는 아이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첫인상이 좋았던 짝은 웃으며 답한다. “응, 쟤들 싸우는 거야. 그래서 구경 간거지모.” 응? 싸우는 것이라고? 저렇게 느린 말로, 저렇게 너그러운 톤으로 싸움이 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있던 경상도에서는 싸움이 나면 일단 말로 여럿 죽인다. 목소리도 얼마나 큰지 말한 대로 곧 실천할 것 같은 위협이 느껴진다. 경상도 말은 나름 살가운 인사도 종종 살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해를 받기도;; 뭔가 대전 친구들은 푸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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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1

실시간 기고 기사

  • [독자기고] [미국 제74회 국가조찬기도회]기독교적 가치수호를 위한 트럼프 연설, 현대판 고레스라는 평가.
    1. 트럼프 대통령 연설 주요 내용 2026년 2월 5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74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여 약 1시간 동안 신앙과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1) 기도는 미국의 슈퍼파워: “기도는 위로를 주고, 치유하며, 힘을 실어줍니다. 간단히 말해서, 기도는 미국의 슈퍼파워(America's superpower)입니다.” 2) 종교적 자유의 회복: 과거 교회 등의 정치적 발언을 제한했던 ‘존슨 수정안’을 무력화한 성과를 강조하며, 신앙인들이 공적 광장에서 더 당당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3) 천국행에 대한 확신: “제가 천국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후보는 아닐지 몰라도, 신앙인들을 위해 정말 많은 선한 일을 해냈기 때문입니다.”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행위구원론자로 비판치 말것). 4) 학교 내 기도 보호: 공립학교 내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 지침을 발표하며 ‘하나님 아래 한 국가’의 가치를 재확인했다. 2. 미국 내 긍정적 반응: 우리 시대의 고레스왕 보수적인 기독교계와 공화당 지지층은 이번 연설에 열광하며 그를 현대판 고레스왕(Cyrus the Great)에 비유하고 있다. 현대판 고레스왕이란, 성경 속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아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도왔던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이처럼 트럼프가 비록 전통적인 성직자 스타일은 아닐지라도, 기독교적 가치를 정책적으로 수호하고 종교적 자유를 되찾아주는 선택받은 지도자라는 믿음이 투영된 것이다.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찬사도 이어졌다. 폴라 화이트 목사 등 주요 종교 지도자들은 트럼프를 말뿐인 정치인이 아니라 행동으로 신앙을 증명하는 인물로 평가하며, 낙태 반대 정책과 이스라엘 지원, 종교 자유 확대 등을 근거로 전폭적인 지지를 표하고 있다. 지지자들은 또한 그가 정치적 올바름에 맞서 “메리 크리스마스”를 되찾아주었고, 공공장소에서 신앙의 표현을 정상화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3. 공화당원 및 핵심 지지층의 지지율 현황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전체 지지율의 등락과는 별개로, 당내와 핵심 종교 지지층에서는 압도적이고 견고한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2026년 2월 초 기준 공화당원들 사이에서의 지지율은 약 73~90퍼센트에 달하며, 이는 당내에서 그의 영향력이 여전히 절대적임을 보여준다. 백인 복음주의자 가운데 약 72~76퍼센트가 그의 국정 수행을 지지하고 있으며, 응답자의 70퍼센트 이상이 그를 미국의 위대함을 회복할 강력한 리더로 신뢰하고 있다. 정책적 신뢰 측면에서도 지지층의 약 75퍼센트는 관세 정책과 연방 공무원 개혁, 그리고 교육 분야에서의 종교 자유 강화 정책에 대해 강력한 찬성 의사를 보이고 있다. 요약하자면, 이번 기도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단순히 정치인이 아닌, 보수 기독교 가치를 수호하는 현대판 고레스왕으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자리였다.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공화당과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결집력이 강해진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성경 속 인물에 투영하며 지지층의 결속을 다진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4. 트럼프의 기독교적 가치가 미칠 영향 트럼프의 종교 중시 정책은 미국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국제 관계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최근 한국 기독교계의 큰 관심사였던 손현보 목사의 석방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인 J.D. 밴스 부통령과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손 목사의 가족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면담을 진행했고, 한국 정부에 종교적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는 등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북한에 억류되었던 임현수 목사나 해외 선교사들의 석방에 관여했던 전례와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이러한 행보는 트럼프가 자신의 우방인 보수 기독교계의 목소리를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종교적 자유와 보수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 내 기독교 세력과의 유대가 강화될수록, 한미 외교는 경제나 안보 중심의 동맹을 넘어 가치 동맹의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게 된다. 손현보 목사 사례에서 확인되듯, 트럼프 행정부는 우방국 내부의 종교적 이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국 정부의 대미 외교 전략에 있어 새로운 고려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번 국가조찬기도회는 자신이 신의 도구로서 미국의 위대함을 회복하고 있다는 확신을 지지자들에게 분명히 각인시킨 자리이다. 현대판 고레스왕을 자처하는 그의 리더십은 미국 대선 판도를 흔들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과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외교적 문법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변화의 방향과 파급력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share/p/1Umicri64o/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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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0
  • [논단] “병사 적금도 못 주는 나라, 이게 국가인가?” 국방 예산 파탄 낸 이재명 정부의 무능과 안보 포기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안보다. 성경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 5장 8절)고 말한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책임진 정부가 나라를 지키는 젊은 장병들의 먹거리와 미래를 위한 적금조차 챙기지 못한다면, 그 정부는 국가로서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은 임계점을 넘어 ‘안보 파탄’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장성민 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창군 이래 전례가 없던 국방 예산 미지급 사태가 현실화되었다. 1. 창군 이래 초유의 국방 예산 미지급 사태 지난달 말, 정부는 한국은행으로부터 이른바 ‘마이너스 통장’ 방식의 일시 대출로 5조 원에 달하는 급전을 사용했다. 그러나 정작 국방 예산 집행에는 1조 3천억 원 규모의 심각한 공백이 발생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국가 재정 운용의 붕괴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2. 군인 밥값과 적금까지 체불한 나라 이 예산 공백으로 인해 최전방에서 복무하는 병사들의 봉급과 적금 지급이 지연되었고, 심지어 급식 조달 비용까지 제때 지급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가는 부르면 응답한 청년들의 헌신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그 최소한의 책무조차 저버렸다. 나라를 믿고 청춘을 바친 장병들에게 돌아가야 할 기본적 보상마저 지키지 못하는 정부를 국민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3. 방산 업체 대금 미지급, K-방산의 근간을 흔들다 문제는 병영 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방 예산 체불은 방위산업체 대금 미지급으로 직결되며, 대한민국 안보의 또 다른 축인 방위산업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전 세계가 K-방산의 경쟁력과 신뢰성에 주목하는 시점에, 정부의 예산 집행 불능은 우리 방산 기업들을 내부에서부터 고사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재정 문제가 아니라, 국가 방위 역량을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다. 4. 군 무력화의 우연인가, 의도인가 더욱 심각한 것은 현 정부의 일관된 안보 인식이다. 보안법 약화 시도, 북한 노동신문 개방, 대북 접촉의 무분별한 허용 등은 이미 국민적 우려를 낳아 왔다. 여기에 전방 장병들에게 총 대신 삼단봉을 지급하고, 대북 자극 자제만을 강조하는 현실은 이번 국방 예산 사태가 단순한 실수인지, 아니면 체계적인 군 무력화의 일환인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5. 결론: 위정자는 하나님과 국민 앞에 책임져야 한다 위정자는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통해 공동체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5조 원의 급전을 어디에 사용했기에, 국가의 최후 보루인 국방 예산마저 지급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명확히 답해야 한다. 군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은 이 사태에 대해 국민 앞에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 성벽 위를 지키는 파수꾼이 잠들거나, 파수꾼에게 줄 양식이 없어 그를 굶긴다면 그 성은 머지않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이라도 안보 무능과 예산 파탄의 현실을 직시하고, 국가의 근간을 허무는 일련의 행위들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두려움 없이 행하는 정부의 끝은 결코 평안하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독자의 논단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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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30
  • [긴급 논평] 정교분리를 오독한 권력의 폭거 이재명 정권의 ‘교회 전쟁’ 선포를 규탄한다
    지난 1월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를 근본에서 뒤흔드는 발언을 공개 석상에서 내놓았다. 그는 이른바 ‘정교유착’을 “나라가 망하는 길”, “반란 행위”로 규정하며, “큰 돌부터 집어낸 다음 자갈과 잔돌을 집어내는 단계가 올 것”이라는 표현으로 개신교를 향한 단계적 수사와 탄압을 노골적으로 시사했다. 이는 단순한 법 집행의 의지 표명이 아니다. 정권에 비판적인 종교 세력을 구조적으로 제거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명백한 ‘종교를 향한 전쟁 선포’에 해당한다. 1. 정교분리 원칙에 대한 치명적 오독과 대통령의 무지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정교분리 원칙에 대한 중대한 오해이자 왜곡에 기초해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말하는 정교분리는 종교가 정치 현실에 대해 침묵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권력이 특정 종교를 국교화하거나 종교 영역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원칙이다. 정교분리는 권력의 방패가 아니라 신앙의 보루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 원칙을 정반대로 전도하여, 종교인이 정치 권력을 비판하면 처벌하겠다는 입막음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헌법 정신에 대한 정면 위반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권의 정책 실패와 도덕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회자들의 발언을 ‘반란 행위’로 규정하고 수사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공언한 점이다. 신앙과 양심에 따른 공적 발언을 범죄로 둔갑시키는 이러한 발상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에게서 나올 수 없는 독재적 사고다. 대한민국은 천부인권 사상 위에 세워진 나라이지, 권력 비판을 반란으로 규정하는 체제가 아니다. 2. 역사 속 종교 탄압 정권들의 공통된 말로 역사는 종교를 억압하고 교회를 적으로 돌린 정권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를 분명히 증언한다. 일제는 신사참배를 국가 의례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며 교회를 굴복시키려 했다.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성도들이 투옥되고 순교했지만, 교회는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신앙의 자유를 유린한 일제는 결국 역사 속에서 패망했다. 나치 독일 역시 교회를 국가 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키려 했다. 그러나 고백교회와 본회퍼 목사를 중심으로 한 신앙의 저항은 끝내 꺾이지 않았다. 교회를 통제하려던 나치 체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범죄 집단으로 기록되며 붕괴했다. 소련과 공산권 국가들 또한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규정하고 교회를 파괴했지만, 국민의 영혼까지 통제하는 데는 실패했다. 종교 탄압으로 유지되던 체제는 내부로부터 붕괴되었다. 이재명 정권의 현재 태도는 이러한 전체주의 정권들이 반복해 온 종교 통제의 전형적인 수순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3. 왜 개신교인가: 권력의 불안이 드러난 ‘돌 깨기’ 전략 이 대통령이 “큰 돌부터 잡겠다”고 공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개신교가 가진 공적 발언의 힘과 사회적 결집력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정권의 부정부패, 정책 실패, 자유민주주의의 훼손을 가장 집요하게 비판해 온 집단이 교회라는 사실을 권력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수사’라는 칼을 먼저 휘두르며 공포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특정 목회자를 먼저 표적 삼아 교계 전체를 위축시키려는 이 방식은 비겁한 갈라치기 전략이다. 그러나 한 명의 목회자를 탄압하는 순간, 그것은 곧 수많은 성도와 한국 교회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가 된다. 신앙 공동체는 공포로 해체되지 않는다. 4. 결론: 한국 교회의 각성과 행동을 촉구한다 지금은 침묵할 때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성벽이 무너지는 순간, 교회는 파수꾼의 자리에서 나팔을 불어야 한다. 정교분리에 대한 왜곡을 방치하는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동조다. 오늘 강단의 자유가 무너지면, 내일은 신앙의 자유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 한국 교회는 권력의 협박 앞에 고개 숙이지 말고 진리와 공의의 목소리를 더욱 분명히 내야 한다. 일제의 칼날 앞에서도 신앙을 지켰던 선조들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천부인권을 부정하는 권력 앞에서 교회는 기도의 무릎과 행동하는 양심으로 동시에 서야 한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 자유 침해의 현실을 국제사회와 자유 진영에 알리고,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 가치 위에서 연대해야 한다. 거짓과 탄압은 결코 진리와 자유를 이길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역사의 교훈을 직시하고 종교 탄압의 칼춤을 즉각 멈춰야 한다. 한국 교회는 신앙의 깃발 아래 다시 하나로 일어서, 대한민국과 교회의 자유를 지켜낼 것이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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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2
  • [독자기고] 국내전도위원회를 해산하라(7)
    8. 결론: 용기와 분별, 그리고 개혁의 길로 나아가야 할 때 고신 교단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이 선택은 단지 행정적 방향을 정하는 문제가 아니라,교단의 미래,교회의 지속성,다음 세대의 신앙,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이 걸린 문제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교회는 교회 개척을 성장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그 시대에는 그것이 옳았고, 실제로 효과도 있었습니다.그러나 202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한국 사회는 그때와 완전히 다릅니다. 인구는 줄어들고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고 교회의 고령화는 가속화되고 신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사회 전체는 급속하게 탈 기독교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 변화 속에서도과거 전략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성경적 충성도, 개혁주의적 보수성, 교회의 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맹목이고,역사적 무지이며,결국 교회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문제 앞에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논의하라고. (행 15) 시대를 분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알라고. (대상 12:32) 남은 것을 정리하고 구조를 재정비하라고. (딛 1:5) 다수의 지혜로 교회를 지키라고. (잠 11:14) 교회를 하나로 세우고 강하게 하라고. (엡 4:11–13) 이것이 성경이 제시하는 전략적 리더십의 본질입니다. 개혁주의 전통은 더욱 분명히 말합니다. “교회의 상태를 살피라.” — 존 녹스 “시대를 슬기롭게 분별하라.” — 『제2치리서』 “시대의 위험을 관찰하라.” — 조지 질스피 “시대에 맞는 방향을 제시하라.” — 새뮤얼 러더포드 “각 시대를 위해 다른 결정을 하라.” — 웨스트민스터 총회 이것이 바로 장로교 정치의 핵심 정신이며,고신 교단이 따라야 할 신학적 정체성입니다. 고신 교단이 회복해야 할 것 고신 교단이 진정으로 지켜야 할 것은: 과거 방식의 반복이 아니라 성경적 분별이며 무조건적 확장이 아니라 지혜로운 재건이며 개척의 숫자가 아니라 교회의 건강이며 독립의 자유가 아니라 장로교적 연합과 협력이며 구조적 관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조직 개편이 아니라,영적 각성이며신학적 회복이며개혁의 정신을 다시 붙드는 일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지금 고신 교단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행정 결정이 아닙니다.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멈출 용기 질문할 용기 진단할 용기 과거를 내려놓을 용기 미래를 새롭게 설계할 용기 성경 앞에서 결단할 용기 성경은 과거로 돌아가라 하지 않습니다.성경은 지금 이 시대를 분별하고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을 행하라고 합니다. 마지막 권면: 고신 교단이여, 시대를 분별하라 오늘 고신 교단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만약 우리가 지금 필요한 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10년 후, 20년 후, 고신 교회들은유럽의 교회처럼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이것은 비판이 아니라 예언적 경고입니다. 그러나 고신 교단이성경의 지혜,개혁주의 전통의 정신,그리고 시대를 분별하는 통찰을 붙든다면,앞으로의 10년, 20년은 새로운 부흥과 건강한 재건의 시대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개척의 시대가 아니라, 개혁의 시대이다. 지금은 확장의 시대가 아니라, 분별의 시대이다. 지금은 숫자의 시대가 아니라, 복음의 시대이다. 고신 교단이 이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기도합니다.그리고 이 시대에 다시 한번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귀한 도구로 쓰임 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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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9
  • [기고 ] 한동훈의 몰락과 자유의 윤석열의 사형 구형 배신이 완성한 대한민국의 참혹한 비극
    괴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시간 반복된 선택과 방조, 자기기만, 그리고 권력 엘리트의 오만이 켜켜이 쌓여 완성된다. 그리고 그 괴물이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선명한 날짜로 기록된다. 2026년 1월 13일. 어제 대한민국 정치사는 거대한 분기점을 통과했다. 한쪽에서는 국민의힘 전 대표 한동훈이 당 윤리위원회에서 ‘제명’이라는 최고 수위의 징계를 받았고, 같은 시각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전 대통령 윤석열에게 특검이 ‘사형’을 구형했다. 이 두 사건은 결코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배신의 시작과 그 처참한 최종 결과가 같은 날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 배신의 서막: 익명 뒤에 숨은 조롱과 기만 이 모든 비극의 파편은 한동훈 전 대표와 그 가족이 연루된 ‘당원 게시판’의 충격적인 문장들에서 시작되었다. “건희는 개목줄 채워서 가둬놔야 돼.” “윤석열은 알코올성 치매 같고 김건희는 걸레짝 같습니다.” 당무감사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문장들은 단순한 감정의 배설이 아니었다. 특정 IP 대역에서 가족 명의 계정들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반복 작성된 ‘여론 조작’의 산물이었다.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검찰 엘리트 출신의 당대표가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자신을 발탁한 주군과 동지들을 향해 혐오의 칼날을 휘두른 것이다. 사태가 불거지자 그는 부인했고, 정황이 드러나자 가족의 소행이라며 비겁하게 숨었다. 증거 인멸을 방불케 하는 새벽 시간대의 대규모 게시물 삭제는 그가 그토록 외치던 ‘법치’가 사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음을 방증한다. 2. 구조적 배신: 보수의 궤멸과 ‘수사 정치’의 부메랑 한동훈의 배신은 개인적 일탈을 넘어 구조적이었다. 그는 검찰 권력을 정치의 중심부로 끌어들여 보수 진영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했다. 정치의 사법화: 수사를 정책보다 앞세우며 보수 진영의 인물들을 연이어 사법의 도마 위에 올렸다. 그 결과 보수는 ‘범죄 집단’이라는 낙인을 얻었고, 이 틈을 타 이재명 정부가 탄생하는 토양이 마련되었다. 엘리트주의의 오만: 법을 독점한 소수 엘리트가 도덕과 정치를 재단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겸비해야 할 인간이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에 앉았을 때, 공동체는 분열되기 시작했다. 3. 주군을 향한 칼끝, 그리고 사형 구형 역사는 배신을 기억한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를 찔렀고, 유다는 예수를 팔았다. 그러나 한동훈의 배신은 한 개인을 넘어 자유 대한민국의 체제와 보수의 가치를 무너뜨렸다. 정의의 칼이라 믿었던 것은 결국 주군을 향한 비수가 되었다. 어제(13일), 조은석 내란 특검팀은 12·3 비상계엄을 헌법 파괴로 규정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한때 자유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인물이 ‘내란의 수괴’로 호명되는 참담한 광경 앞에서, 그를 보좌하며 권력을 누렸던 이들의 ‘배신’과 ‘방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배신자는 당에서 쫓겨났고, 주군은 형장의 문 앞에 서게 된 이것이 바로 배신이 완성한 최종적 풍경이다. 4. 한국 교회와 국민을 향한 호소 이 사태는 단순히 정당 내부의 분쟁이나 특정 정치인의 몰락이 아니다. 대한민국 검찰 엘리트주의의 민낯이며, 지난 수년간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정치 수사가 가져온 피의 청산서다. 이제 질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국민에게 던져진다. 우리는 이 기만과 파국의 과정을 보고도 침묵할 것인가. 1919년 3·1운동이 신앙적 양심의 각성이었듯,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거짓과 배신을 걷어내고 진실을 바로 세울 ‘제2의 영적 각성 운동’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법의 이름을 빌린 증오와 보복에 의해 계속해서 파괴될 것이다. 한국 교회가 깨어나야 한다. 침묵을 신앙으로 포장하는 비겁함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진실의 편에 서야 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로 공의와 회복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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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5
  • [기고] 손현보·전광훈 목사 구속과 윤석열 사형 구형: 자유민주체제의 위기
    지난해 ‘예배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앞장섰던 손현보 목사가 구속되었다. 그리고 어제, 광화문에서 현 정권의 폭주를 비판해 온 전광훈 목사마저 구속되었다. 거의 동시에,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는 검찰이 내란죄를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다. 이 세 사건은 결코 서로 무관한 개별 사건이 아니다. 이것들은 하나의 선으로 꿰어져 있다. 그리고 그 선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이 지금 자유민주주의의 궤도를 이탈하여, 점점 더 깊은 ‘공산 전체주의적 통치 체제’의 늪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체제의 위기이며, 국가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위험한 신호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이 위기의 실체를 다음 네 가지로 고발하고자 한다. 1. 본질을 가리는 ‘낙인의 정치’와 법치주의의 붕괴 손현보 목사와 전광훈 목사는 무장봉기를 획책한 적도 없고, 국가기관을 점거한 적도 없으며, 폭력을 선동한 적도 없다. 그들이 한 일은 오직 헌법이 보장한 ‘말할 권리’를 행사하며, 신앙의 양심에 따라 이 나라의 타락과 폭주를 향해 예언자적 경고를 보낸 것뿐이다. 그런데 정권은 그들에게 ‘체제 위협 세력’이라는 굴레를 씌워 감옥으로 보냈다. 이것은 법치가 아니라, 정치다. 그것도 가장 저급한 형태의 정치, 즉 반대파를 범죄자로 만드는 정치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 구형은 이 광기의 정점을 보여 준다. 쿠데타도 없었고, 무장 반란도 없었으며, 국가 전복의 실체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국가 전복 세력에게나 적용되는 ‘내란죄’를 끌어와 사형을 구형한다. 이것은 법 집행이 아니라 정치적 보복이며, 이것은 재판이 아니라 사실상 정치적 처형의 예고다. 2. 역사의 반복: 나치와 홍위병의 수법이 다시 살아났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극우”라는 낙인 프레임이 거의 마술처럼 작동하고 있다. 이 딱지가 붙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시민도, 존중받아야 할 목회자도, 심지어 전직 대통령도 아니다. 그는 곧바로 “제거해도 되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것은 우리가 역사에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전체주의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나치는 유대인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여 대중의 증오를 조직했고, 문화혁명기의 중국은 지식인과 종교인을 “인민의 적”으로 몰아 홍위병을 동원해 숙청했다. 지금 한국에서 난무하는 “극우”, “내란”, “체제 위협”이라는 언어는, 정권에 비판적인 인물들을 하나씩 격리하고, 침묵시키고, 제거하기 위한 숙청의 언어와 다르지 않다. 단지 총 대신 판결문을 들었을 뿐,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3. 십자가 대신 홍위병의 완장을 찬 일부 목회자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참담하고 더 부끄러운 장면은, 일부 목회자들이 이 광기의 선봉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고사모’ 목사 장로들은 동료 목회자를 향해 “극우”라는 낙인을 찍으며 구속을 정당화하고, 오늘 아침 한 목사는 전직 대통령을 향해 “사형이 마땅하다”고 외친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나치 시대의 선동가를 본다. 나는 그들의 언어에서 문화혁명의 홍위병을 본다. 복음을 선포해야 할 입술이 고발과 선동의 도구가 되었고, 교회는 권력을 향해 예언자적으로 외쳐야 할 자리에서 권력의 확성기로 전락하고 있다. 광화문 성도들이 들었던 것은 총과 폭탄이 아니라 태극기와 찬송가였다. 그들의 요구는 단 하나,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의 길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자들이 바로 교회 안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의 깊은 영적 타락을 보여 주는 증거다. 4. 지금 멈추지 않으면,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없다 손현보 목사 구속, 전광훈 목사 구속, 윤석열 전 대통령 사형 구형. 이 세 사건은 대한민국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명확한 이정표다. 우리는 지금 자유에서 통제로, 민주에서 관리로, 공화국에서 전체주의 체제국가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역사는 준엄하게 경고한다. 이 길의 끝에는 결코 정의도, 평화도, 인권도 없다. 이 길의 끝에는 언제나 공포와 침묵, 그리고 뒤늦은 후회만이 남았다. 지금 이 광풍을 멈추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생각이 다르면 제거되는 나라”, “말하면 잡혀가는 나라”로 완전히 변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오늘 동료를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 역시, 머지않아 그 돌을 맞는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진리의 편에 서 있는가, 아니면 광기의 확성기가 되어 있는가.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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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4
  • [독자기고] 국내전도위원회를 해산하라(6)
    7. 고신 교단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한국 사회의 변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 변화에 무기력하게 휩쓸릴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더욱 성경적이고, 더욱 개혁주의적이며, 더욱 전략적인 길을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 교회와 고신 교단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히 교회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구조를 재정비하는 ‘지혜로운 전략’입니다. 아래는 고신 교단이 시대에 맞게 반드시 선택해야 할 7가지 방향입니다. A. 국내 교회 개척 프로그램의 일시적 중단 개척을 멈춘다는 것은 선교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오히려 지금의 혼란 속에서 더 바른길을 찾기 위한 신앙적 결단입니다. 한국 사회의 인구 구조 분석 기존 교회의 건강 평가 지역별 실제 수요 조사 개척이 아닌 통합·강화 전략 필요성 확인 사역자 배치 구조 재점검 총회는 이러한 작업을 위해 개척을 일시적으로 멈추고,오히려 더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을 해야 합니다. 성경적 명령은 “계속 진행하라”가 아니라,“모여서 논의하라”(행 15)입니다. B. 다음 세대 복음화에 교단적 역량 집중 한국의 미래 교회는 다음 세대 사역에 달려 있습니다.지금 고신 교단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청년·청소년·어린이 사역의 재건입니다. 대학·캠퍼스 선교 강화 청년 신앙 공동체 회복 어린이/청소년 교육 커리큘럼 재정비 디지털·미디어 기반 복음 전도 가정 사역 및 부모 교육 지원 한국의 다문화·외국인 가정 자녀 선교 다음 세대를 잃으면, 교회 전체를 잃습니다.개척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세대를 복음으로 세우는 일입니다. C. 교회 통합(합병)을 적극 추진하여 건강한 공동체로 재편 지금 한국은 교회를 늘릴 때가 아니라, 건강한 교회를 만들 때입니다.작고 분산된 교회를 합쳐 하나의 강하고 지속되는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성경적이며 개혁주의적 전략입니다. 교회 통합은 다음과 같은 열매를 가져옵니다. 목회자와 성도의 피로 감소 사역의 집중과 다양성 확보 다음 세대 사역 강화 재정 효율성 증가 지역 내 건강한 교회 생태계 조성 서로 고립되지 않는 장로회적 협력 구조 회복 이는 바울이 디도에게 말한 “남은 것을 정리하라”(딛 1:5)는 명령을 오늘 교회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D. 기존 교회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기 새로운 교회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이미 있는 교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고신 교단은 다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 리더십 교육 강화 목회자 재교육 및 코칭 제도 평신도 신학 교육 및 사역 훈련 교회의 재정·행정 구조 개선 지역 공동체 봉사 및 선교 활성화 현대 문화에 맞는 예배 및 교육 개편 건강한 교회는 성장합니다.그러나 약한 교회가 많아진다고 해서 성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E. 목회자를 ‘시대를 해석할 수 있는 지도자’로 양성하기 오늘의 목회자는 성경 지식뿐 아니라,시대 분석 능력, 문화 이해, 미디어 활용, 사회 구조 이해, 가정·심리·교육에 대한 통찰이 필요합니다. 고신 교단은 목회자를 아래와 같은 분야로 훈련해야 합니다. 인구 구조 변화 분석 현대 청년 문화 이해 디지털 시대의 목회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 지역 선교 전략 실제적 교회 구조 개혁 방법론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때를 알고 이스라엘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아는 자들”(대상 12:32)의 역할입니다. F. 한국의 새로운 선교지를 향한 전략적 전환 한국은 이제 더 이상 단일 민족·단일 문화 사회가 아닙니다.오히려 다음과 같은 새로운 선교 기회가 열린 시대입니다.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국제 학생 난민 사역 디아스포라 귀환자 온라인·디지털 세대 고신은 한국 안에서 새로운 열방(mission field)을 발견해야 합니다.이는 고신 교단 전체의 미래 사역 방향을 확장할 기회입니다. G. 장로교 정치의 본질 회복 — ‘독립’이 아니라 ‘연합’에 서기 교회 개척이 ‘독립’과 ‘자율성’의 기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장로교 정치의 정신은: 서로 연결되고 서로 돕고 서로 보호하고 하나의 교회 됨을 실현하는 것 여기에 있습니다. 고신이 교회를 강하게 만들고 싶다면,더 많은 작은 교회가 아니라, 더 강한 연합의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요약: 지금 고신에게 필요한 것은 ‘양적 확대’가 아니라 ‘질적 재건’이다 지금 고신 교단의 사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척을 잠시 멈추고 교단의 전체 구조를 분석하며 기존 교회를 재건하고 다음 세대를 복음으로 세우며 새로운 선교지를 향해 사역을 확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경적이고,개혁주의적이며, 2026년 한국 사회의 현실에 맞는고신 교단의 참된 길입니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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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계
    2026-01-13
  • [특별기고] 교회와 성도의 정치참여에 대하여
    들어가며 필자의 고향은 진주시 정촌면 관봉리에 있는 진주 강씨의 집성촌이며, 우리 가정이 복음화된 것은 1932년경으로 추정된다. 할머니가 가장 먼저 결신 하신 후 증조할머니를 설복하셨으며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주일 옥봉리교회(현 진주교회)로 발걸음을 옮기시면서 우리 가정에 복음의 역사가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주변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그 와중에 불치의 병을 갖고 있던 어린 시조카가 계셨는데 그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며 복음을 전하셨다. 그분은 저에게는 3종 숙이 되시며 후일 저명한 목사님이 되셨다. 두 분이 함께 고향 동네의 뒤편 작은 골짜기의 굴에서 함께 기도하면서 당시 치유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병이 치유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 가정이 복음화되었으며 또 믿는 친척이 늘어 갔다. 할머니는 우리 집 텃밭에 교회당을 세웠는데 그 교회가 지금 정촌면 관봉리에 있는 관봉교회로 1934년에 세워졌다. 그 교회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친척들과 함께 옥봉리교회당에서 나오신 조사(?)의 인도로 예배를 드렸는데 누군지 알고 싶어서 확인하였더니 진주교회의 초기기록이 6.25 전쟁으로 불타 누군지 밝힐 수 없었다. 그런데 방해자가 생겼다. 집안의 촌수가 머지않은 친척 어른 세 분이 예수 믿는다고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교회당을 파손하기도 하고 집에 와서 그들에게 집안 형님이 되시는 저의 할아버지에게 폭언하는 일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였다. 문제는 이들이 나중 알고 보니 공산주의자들(속칭 지방빨갱이)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보도연맹 사건 때 몸을 피해 숨어있다가 동네를 인민군이 점령한 후 붉은 완장을 차고 나타났다. 인민군 치하에서 할머니는 교회에서 혼자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며 성경을 읽고 계셨고, 아버지는 현재의 이장 격인 구장을 하시면서 젊은이가 피난을 가고 남은 가정 - 집성촌이니 결국 집안사람들 - 을 돌보고 계셨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1950년 가을 추석 직전에 인민군들이 도주하였는데 이때 이들도 함께 도주하였으며 곧이어 국군과 경찰이 진주해 들어 왔다. 어떤 연유인지 국군과 경찰은 교회를 지키고 계셨던 할머니와 구장을 하던 아버지를 부역 혐의자로 체포하였고 추석 후 즉결 처형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인민군들이 급히 도주하면서 남겨 놓고 간 문서 중에 할머니와 아버지를 추석 후에 인민재판을 통하여 처형하기로 한 내용의 인민재판 문서가 발견되어 할머니와 아버지는 국군 지휘관의 사과와 함께 석방되었다. 놀랍게도 그 고발자들은 할머니가 예수 믿는다고 우리 집과 관봉교회에 와서 행패를 부리던 그들 3인이었다. 아버지는 촌수가 머지않은 친족으로부터 배신당했다는 충격으로 고향을 떠나기로 하고 우리 가정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마산으로 거주를 옮겼다. 지금의 마산합포구 성호동 산비탈에 주거를 정하였는데 출석할 수 있는 교회는 문창교회였다. 당시 문창교회는 총회파와 고려파가 교회당 소유권을 갖기 위하여 소송이 시작된 교회였다. 총회파는 김석찬 목사님이셨고 고려파는 송상석 목사님이셨는데 피난민으로 문창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대부분 총회파를 지지하였으나, 할머니는 일제 하의 경험으로 신사참배는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는 현재의 고신 교회인 고려파 신앙을 택하셨고 우리 가정은 고려파의 교인이 되었다. 따라서 나는 태어나면서 고려파 교인이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고려파 교인이 아닌 적이 없었으며, 고려파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고려파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로부터 핍박받은 간접 경험자, 또 해방 후 6.25 전쟁이 마칠 때까지 공산주의가 나라 전체뿐만 아니라 교회에 어떤 핍박을 하였는지 역사와 교회사를 통하여 알고 있으므로 필자는 분명히 반공주의자이다. 이렇게 나 자신을 밝히는 것은 이 글에 따른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함이다. 보수개혁주의 신앙인으로 드리는 질문 나는 고신 교회의 보수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신봉함을 다시 한번 밝히면서 최근 고신 교회 내부에서 이른바 교회의 정치참여에 관한 논쟁에 관하여 필자의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이 논쟁의 시발점이 어디서부터인가 하는 것은 관점에 따라 다르다. 먼저 ‘포괄적차별금지법’이 대두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분이 계신다. 포괄적차별금지법의 일부 내용은 성경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위배하였으므로 기독교계가 함께 거부해야 할 법안임은 틀림없다. 물론 그 법안의 내용 중 당연하고 긍정적인 내용이 함께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 법안의 목표는 동성애를 묵인하고 오히려 보호하기 위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생소한 단어인 ‘성적지향’을 보호하는 해괴한 내용을 넣는 것이 주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고 있는 교회의 정치참여 문제는 직접적으로는 지난해 10월 27일 한국교회 연합예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집회는 ‘예배’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하였으나 자타가 정치적 목적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대통령의 탄핵 과정,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한국교회와 고신 교회의 일부 목회자와 교회가 국힘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로도 많은 교회 지도자가 보수 정치세력을 지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실정법 위반이 문제 되었으며 그 중 손현보 목사님이 구속되어 지금 재판에 계류되어 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주제가 되어 제19회 미래교회포럼에서는 ‘설교와 정치참여’란 주제로 포럼이 개최되었다. 백석대 김윤태 교수는 [정치참여적 설교의 긍정성과 부정성]이란 제목의 글에서 ‘정치나 정부정책과 관련된 어떤 현실 이슈가 언급될 때마다 지역적 이념적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정교분리의 원칙이 편파적이고 선택적으로 적용됨으로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현재 ‘진영논리’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의 극단적인 분열이 교회 내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가나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유지 보존 증진시키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질서와 문화를 조장 보호하고 법과 제도를 통하여 사회적 국가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국가와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목적이다’라고 국가와 정치의 사명과 목적을 정의하였다. 또 교회의 사회적 사명에 대하여는 ‘교회 또한 하나님의 뜻이 교회와 국가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짐을 믿으며 하나님의 의의 통치의 실현을 위해 이 땅에 평화와 공의의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 교회는 이를 위해 신자들에게 이런 기독교 시민의식을 가르치고 실천하도록 장려한다’라고 정의하였다. 따라서 목사의 설교는 ‘당연히 이러한 부분을 포함하여야 하며 이는 교회의 대 사회적 활동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교회는 사회적 공공성의 의미를 가지며 사회적 순기능을 담당해야 한다.’고 신자의 삶을 통한 설교의 대 사회적 기능을 밝혔다. 그리고 교회의 정치참여에 대하여는 ‘교회와 목사는 정당들 간의 투쟁과 경쟁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켜야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목사는 선거철을 맞아 신자들에게 정부와 정치의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의미를 알게 하고 그럼으로 시민으로서 신자들이 바른 정치참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정의하였다. 따라서 ‘공의롭고 질서 있는 사회를 위해 바른 정책을 추구할 수 있는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목사는 성경적 가치와 기준을 가르쳐 줌으로 신자들이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설교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종교의 자유에 관하여 ‘국가권력이나 정치세력은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서 행하는 정당한 비판을 제한하거나 금해서는 안 된다. 목사가 기독 신자에게 시민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행해야 할 것을 설교하는 것은 목사의 권리이며 이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것은 종교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설교와 종교의 자유와의 관계를 결론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국가와 정치, 교회의 사명, 정치에 관한 목사의 설교 한계, 교회의 정치참여, 설교와 종교의 자유에 관한 탁월한 의견을 제시해 주셨다. 김 교수가 제시한 이러한 몇 가지 원칙에 관하여 아무도 달리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원칙에 따라 최근 기독교의 정치참여에 관한 부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 상당수 교회는 보수적인 정치세력 – 지난 대선 때는 김문수 후보를, 이후 사실상 보수 정치세력인 국민의 힘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교회와 성도들이 보수정치를 지지하기 때문에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였고 국민의 힘이 보수 정치세력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정치지향점이나 정책이 이 나라에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데 상대적으로 가깝거나 적합하기 때문인지 묻고 싶다. 이 질문은 비슷한 것 같지만 출발점을 완전히 달리한다. 아마도 이 질문에 백이면 백 모두 후자의 이유로 보수 정치세력을 지지한다고 할 것이다. 즉, 보수정당이 또는 보수 정치세력이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에 세우고 교회의 사명을 이루는데 상대적으로 적합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힘 핵심 인사들이 이단 세력인 통**와 교류하고 그들로부터 정치자금이 아니라 뇌물로 보이는 물품을 건네받은 것에 대하여 왜 침묵하고 있는가?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해도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종교를 표방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기존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고 대다수 국민이 그렇게 알고 있는 집단에서 불의한 것을 매개체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세력의 핵심에 접근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지금 이 문제는 여야 양측 모두에게 위법한 사실이 나타나 언론에 집중하여 보도되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점차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아마도 이 문제가 어쩌면 현재의 정치구조에도 큰 타격을 입힐 공산이 크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는데 상대적으로 적합하다고 믿은 정치세력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고 오용하는 자들과 불법적인 거래가 있었다면 마땅히 비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하여 보수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교회와 단체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 마 5:37은 이렇게 말씀한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반공주의자로서 드리는 말씀 – 오세택 목사님의 인공기 발언에 대해 필자는 또 반공주의자로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앞서 말씀드린 제19차 고신미래포럼에서 오 모 목사님의 놀라운 발언을 지상을 통하여 보았다. 오 목사님의 발언은 위 포럼에서 자료로 배포한 발제문 ‘설교와 정치참여’에 있는 내용과는 결을 달리하는 다른 내용이다. 왜 발제문과 전혀 관계없는 내용을 말씀하셨는지 내가 직접 포럼에 참석하지 못하여 오 목사님의 발언을 전체적으로 듣지 못하였으므로 깊은 뜻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크리스찬투데이’에 보도된 그대로를 몇 개 인용한다. 당시 사랑의교회가 태극기를 내건 모습을 언급하면서 “개혁주의 입장에서 교단 정신으로 보면 그게 정당한가? 민족주의인가, 국수주의인가? 하나님 나라는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것” “모든 지상의 국가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고 구원한다는 의미에서, 달려면 만국기를 붙여야 할 것 아닌가? 성조기를 붙이면 美 문화원인가 할 것이고, 일장기를 붙이면 더 이상할 것” “공간이 부족하면 하나님 나라를 지향한다는 상징으로 붙일 한 국가 깃발이 있다. ‘북한 인공기’다. 붙이려면 그걸 붙여야 한다”며 “그럼, 사람들이 ‘저게 뭐냐’라고 할 것 아닌가? 그때 얼마나 (설명할) 기회가 좋은가? 복음은 좌우를 넘어, 위에서 내려다봐야 한다. 좌우의 관점을 가지고 보면 교회는 분열할 수밖에 없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태극기는 비록 음양과 팔괘의 사상이 들어 있지만 조선 말 고종황제 때 기본이 만들어지고 이후 조금씩 변화하면서 항일 독립투쟁 때부터 우리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국기가 되었고 이에 대하여 아무도 거부하지 않는다. 사랑의 교회가 태극기를 게양한 것은 나라 사랑의 의미가 아닌가? 심지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수립 직후인 1946년 2월 16일부터 1948년 7월 10일까지 북한도 태극기를 사용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공기는 다르다. [나무위키]의 해설에 따르면 인공기의 의미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인공기가 제작되었을 당시의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내세운 인공기의 의미는 “인공기 위와 아랫부분 파란색은 한반도 좌우에 있는 동해와 서해를 의미하고 빨간색 별은 공산주의, 그리고 빨간색 별을 둘러싼 흰색은 공산주의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당연히 태극기의 파란색, 빨간색과는 뜻이 다르다.” 다음은 김일성종합대학의 기사에서는 또 다르게 언급되는데 이는 북한 외무성에서 밝히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날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국기의 색갈을 붉은색, 흰색, 푸른색으로 하니 좋다고, 국기의 붉은색은 항일 선렬들과 조선의 애국자들이 흘린 피와 공화국의 주위에 굳게 뭉친 우리 인민의 불패의 위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된다시며 국기의 흰색은 우리나라가 한 강토에서 하나의 혈통과 언어, 문화를 가지고 결백하게 살아온 단일민족국가라는 것을 상징하며 푸른색은 민주주의 새 사회건설을 위하여 투쟁하는 우리 인민의 씩씩한 모습과 세계의 평화와 진보를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인민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공화국기에 드리는 경의 —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박사 부교수 박희순)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는다. [히스토리의 역사산책]이라는 다음(daum.net)의 블러그에서는 인공기는 북한공산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위와 아래에 파란색이 있고 그 사이에 넓은 빨간색이 있으며 그 안에 하얀 동그라미와 붉은 별이 있다. 빨간색은 공산주의와 혁명 그리고(김일성의 독재 이후에는) 주체사상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파란색은 평화에 대한 염원과 인민의 희망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하얀색은 광명 및 음양사상을 상징한다. 하얀 원 안에 있는 붉은 별은 한반도 전체의 공산주의 건설을 뜻하는데 조선인민군의 상징으로도 통한다고 한다’ 위 세 가지 인공기의 의미 중 어느 것을 택하여도 인공기는 공산주의 이념과 주체사상을 상징하기 위해 또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인공기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오 목사님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함을 보이기 위해, 복음이 좌우를 넘어 위에서 보듯이 하기 위해 인공기를 게양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제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며 “사상과 이념을 넘어 사회주의·공산주의·자본주의·민주주의를 넘어 우주적 관점으로 사랑하자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고 해명하였다고 한다. 그런 뜻이라고 하더라도 인공기를 게양하자는 말씀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북한 공산주의자도 용서의 대상이며 복음이 전해져야 하며 구원의 대상인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내려놓고 참회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는 죄의 고백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오 목사님이 인공기를 붙이자고 하신 것은 자칫하면 공산주의자들이 우리의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죄악들에 대하여 묵인하고 관용을 베풀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북한 공산주의자에 대한 관용보다 그들로 인하여 고통받는 동포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해방 후 분단의 공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저질은 수많은 끔찍한 범죄 – 이른바 적색테러, 6.25 전쟁의 참화, 그 후의 각종 침략행위를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북한에는 공산정권에 의하여 수많은 동포가 삶의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들의 삶의 고통을 외면하고 엄청난 재원을 대량 학살 무기 등 군비를 갖춤에 사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여순반란 사건 때 반란군들이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 동신과 동인을 모르고 죽였을까? 아니다. 그들은 손양원 목사님이 누군지 알고 있었고, 동신과 동인을 손 목사님의 아들인 것을 알고 죽였다. 이 땅에서 가장 비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목사님의 아들을 그들과 뜻을 함께할 수 없음을 알고, 그들의 뜻에 방해된다고 죽인 것이다. 6.25 전쟁 때에는 손양원 목사님 역시 공산군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한센병 환자와 함께 아무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성자(聖者)와 같은 삶을 사시는 목사님을 역시 그들의 뜻에 방해되고 뜻을 함께할 수 없음을 알고 죽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6.25 전쟁 때 공산군들은 이 땅의 수많은 목사님 등 기독교인을 죽였고 교회당을 불태웠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때보다 10배가 넘는 순교자의 이름이 합동 측에서 발간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100년사』 2권 88면과 747면에 명시되어 있다. 교파별로 모두 조사하여 정리하면 엄청난 수가 될 것이다. 그들은 미군을 점령군, 소련군을 해방군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 세계 역사를 다 찾아봐도 목사를 학살하고 교회를 불태우는 해방군은 없다. 그 전쟁범죄자의 후계자들이 그들의 목표를 위하여 상징으로 내세우는 것이 인공기이다. 그런데도 인공기를 게시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과거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도 있었지만, 최근의 노동운동 현장에서 북한 공산주의에 영합하는 듯한 구호와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민주화를 위한 학생운동도 좋고 노동자의 이익을 위한 노동운동도 좋으나 그 주장이 북한 공산주의를 이롭게 하는 구호와 주장은 결코 잘못된 것이다. 부패한 자들이 통치하는 사회주의는 부패한 자본주의보다 국민의 모든 삶을 훨씬 힘들게 한다. 중국과 북한, 남미의 여러 나라 사례를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모습을 우리의 경험으로 여겨야 한다. 마치면서 필자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교회와 신자는 정치와 단절될 수 없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고 신자 역시 시민으로서 국가의 통치체제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교회와 국가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짐을 믿으며, 신자는 하나님의 의의 통치의 실현을 위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신자는 선거 때마다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투표로 나타내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교회와 목사님은 신자들이 바르게 정치참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성경적 가치와 기준을 제시하고 가르쳐 줄 뿐이지 직접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찬반을 거론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국가의 정책 역시 그러하다. 분명히 성경적 가치관과 배치된다면 그 부분에 대하여 반대해야 하지만 국가의 정책은 대부분 항상 양면을 가지고 있으므로 전문적인 지식과 깊은 성찰이 없다면 쉽게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추구하는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한 정치를 이루는 것은 우리의 정치적 전략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는 이유 하나로 가이사의 것을 쉽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롬 13:1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가르쳤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 말씀을 기록할 때 로마제국이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권력이 정당하고 타당해서 복종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악한 체제하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복종하라고 가르쳤다. 그것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교회와 목사님, 그리고 모든 성도가 교회와 성도의 정치참여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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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8
  • [독자기고 ] 국내전도위원회를 해산하라(5)
    6. 적용: 고신 교단이 직면한 ‘현실 외면’ 의 문제 문제를 직면하는 것과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오늘 고신 교단이 겪는 가장 심각한 위기는 단지 한국 사회의 인구 감소나 교회 세대 구조의 약화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보고도 아무 근본적 변화 없이 과거의 전략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총회가 시대를 분석하지 못하면, 총회는 제 기능을 잃습니다. 지도력이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면, 지도력은 형식으로 전락합니다. 교회가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면, 교회는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래는 고신 교단이 현재 보이는 주요 문제들입니다. A. 인구 감소 속에서도 계속되는 국내 교회 개척 추진 고신총회는 여전히 ‘국내 교회 개척’ 을 교단 성장의 주요 전략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미 다음과 같은 구조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 세계 최저 출산율 ● 총 인구 감소 ● 교회 출석 인구 감소 ● 청년층의 급속한 이탈 ● 기존 교회의 연령 구조 악화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 개척을 계속 확대하는 것은 선교적 확장이 아니라, 구조적 분열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입니다. 새롭게 세워진 교회는 대부분 미약하고, 기존 교회는 더 나뉘어 약해집니다. 나눔은 많아지고, 강함은 줄어듭니다. B. ‘성장’의 착각 — 실제로는 신자 이동일 뿐이다. 고신의 새로운 개척교회와 소규모 지교회들은 종종 “성장” 을 보고합니다. 그러나 그 성장은 대부분 전도나 회심이 아니라, 기존 신자의 이동입니다. ● 새로운 교회가 생기면 ● 근처의 기존 교회 성도들이 일부 이동하며 ● 통계상 “성장” 이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성도 총량이 줄어드는 사회에서의 재배치일 뿐입니다. 즉, 고신 교단이 “성장” 으로 인식하는 것들 중 상당수는 실제로는 교회의 약화를 가속하는 현상입니다. C. 목회자와 성도의 고령화 — 개척이 아니라 통합이 필요한 시대 고신 교단의 목회자 평균 연령은 꾸준히 올라가고 있으며, 젊은 목회자 공급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성도 역시 동일한 패턴을 보입니다. ● 청년/청소년 비율 급감 60–70대 중심의 예배 ● 농어촌 및 중소형 교회는 다음 세대가 거의 없음 이런 구조 속에서 교회를 더 세우는 것은 물과 영양이 부족한 땅에 더 많은 씨를 뿌리는 일과 같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씨앗’ 이 아니라, 이미 심겨진 교회를 살리고 강화하는 일입니다. D. 전도보다 ‘전입 성도’ 가 많은 구조 — 선교의 진정한 부재 개척교회 중 회심자(처음 믿는 사람)의 비율은 극히 낮습니다. 고신 교단 전체적으로 보아도 청년 회심자는 드뭅니다. 그런데도 개척을 통해 얻는 “성장 수치” 가 마치 선교적 성공처럼 보도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선교의 결실이 아니라, 타 교회 성도 한두 명을 빼 오는 ‘재배치 효과’ 일 뿐입니다. 한국 교회 전반이 이 문제를 겪고 있지만, 특히 고신의 경우 교회 개척 정책이 적극적이기에 피해는 더 크고 구조적입니다. E. 개척이 목표가 될 때 — 사명보다 ‘직분 확보’ 의 문제 물론 모든 개척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성령의 부르심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척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구조적 현실 속에서 다음과 같은 동기도 실제로 존재합니다. ● 담임 목회 자리 확보 ● 교회의 갈등 회피 또는 독립적 운영 ● 장로회적 감독을 벗어난 자율성 추구 ‘내 교회’ 라는 자기실현 욕구 이러한 개척 동기는 선교가 아니라 개인적 동기이며, 결과적으로 교단 전체의 건강을 약화시킵니다. 바른 교회 개척은 성령의 부르심 + 실제적 필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실제적 필요” 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F. 성경적/장로교적 명령과의 충돌 — ‘분별없는 개척’ 은 불순종이다. 앞서 보았듯, 성경은 다음을 명령합니다. ● 문제를 ‘모여’ 함께 논의하고 해결하라 (행 15) ● 시대를 분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알라 (대상 12:32) ● 남은 것을 정리하고 구조를 정비하라 (딛 1:5) ● 다수의 지혜로 교회를 안전하게 하라 (잠 11:14) ● 교회를 하나로 세우라 (엡 4:11–13) 또한 개혁주의 전통은 말합니다. “교회의 상태를 살피라” — 존 녹스 “시대를 분별하라” — 제2치리서 “시대의 위험을 관찰하라” — 조지 질스피 “시대에 맞는 방향을 제시하라” — 새뮤얼 러더포드 “각 시대를 위해 다른 결정을 하라” — 웨스트민스터 총회 그러나 고신 총회는 오늘 한국 사회의 인구 구조와 교세 감소라는 시대적 위기를 전략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적 명령에도, 개혁주의 정치 전통에도, 지금 시대의 필요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G. 가장 큰 위험 — ‘현상 유지’ 를 믿음으로 착각하는 것 고신 교단이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은, 새로운 전략을 세우지 않는 것을 믿음이나 보수성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신실함은 과거의 방식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방식으로 오늘의 상황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적 보수성은 변화가 두려워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더욱 하나님 중심의 지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그냥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분석하고, 재정비하는 것입니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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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6
  • [독자기고] 국내전도위원회를 해산하라(4)
    5. 개혁주의 선배들:총회는 시대를 분별하고 교회의 상태를 판단해야 합니다. 성경이 교회가 시대를 분별해야 함을 가르친다면, 개혁주의 전통은 그 원리를 제도적으로구현하였습니다.장로교 정치의 핵심 정신은 단순히 회의를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총회가 시대적 위기와 교회의 필요를 분석하고 교단 전체를 이끌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고신 교단이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실용적 실패가 아닙니다.이는 개혁주의 교회 정치의 근본정신에서 벗어난 심각한 정체성의 이탈입니다. 아래 인용문들은 장로교 전통의 가장 중요한 문헌들이 총회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A. 존 녹스(John Knox) – 1560년 『제1치리서(First Book of Discipline)』 존 녹스와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자들은 총회를 단순한 행정 기구로 보지 않았습니다.그들은 총회를 교회의 영적·전략적 중추로 이해했습니다. 인용문: “총회는 교회의 상태를 살피며, 전체 교회의 순결과 연합을 지키기 위하여 필요한 일들을 심의해야 한다.”— First Book of Discipline, Head VII (1560), John Knox 외 여기서 두 가지 핵심 명령이 나옵니다. “교회의 상태를 살피며”(consult upon the state of the Kirk) → 인구 변화, 문화 변화, 사회적 위기 등 실제 상황을 분석하라는 뜻입니다. “필요한 일들을 심의하라”(deliberate upon things expedient) → 즉, 전략적 판단과 실행 방안을 마련하라는 뜻입니다. 오늘 고신총회가 한국 교회의 위기와 인구 붕괴 상황을 평가하지 않는다면,이는 존 녹스가 말한 “총회의 본질적 의무”를 외면하는 것이 됩니다. B. 『제2치리서(Second Book of Discipline)』(1578) – 시대를 분별하라 스코틀랜드 장로교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인 『제2치리서』는 총회의 책임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인용문: “총회는 각 지역 교회와 노회들 가운데 누락되었거나 잘못된 것을 처리하고 바로잡으며, 시대를 슬기롭게 분별하고 사탄의 역사와 교회의 필요를 판단해야 한다.”— Second Book of Discipline, Chapter 7 (1578) 여기서 특히 중요한 문구는 다음입니다. “시대를 슬기롭게 분별하며”(discern wisely the times) → demographic collapse, secularization, youth apostasy 등 시대적 변화에 대한 평가를 의미합니다. “교회의 필요를 판단하며”(necessities of the Kirk) → 지금 교회가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석하라는 명령입니다. 만약 오늘 한국 사회가 인구 붕괴, 고령화, 교세 감소라는 위기를 겪고 있다면,총회는 이 문헌에 따라 반드시 방향 전환과 재평가를 해야 합니다. C. 조지 질스피(George Gillespie, 1646) – 총회는 ‘시대의 위험’을 살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가장 뛰어난 신학자 중 하나였던 조지 질스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용문: “교회의 최고 치리회는 시대의 위험을 관찰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위협하는 병에 대한 적절한 치료책을 제시해야 한다.”— George Gillespie, Aaron’s Rod Blossoming(1646) 즉, 총회는: 시대가 교회에 어떤 위험을 주는지 분석해야 하고 그 위험을 치료할 구체적 처방을 제시해야 한다. 오늘 한국 교회의 위험은 명백합니다. 출생률 최하 청년 불신앙 목회자 고령화 교회 과포화 개척의 남발 교회 간 ‘빼오기’로 인한 약화 이 시대에 총회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질스피의 기준에서 “총회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습니다. D. 새뮤얼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 1644) – ‘시대를 위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러더포드는 장로교 정치의 기초를 세운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총회의 본질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용문: “총회는 교회의 전체 상태를 판단하고, 시대에 맞는 방향을 제시하며, 현재의 필요에 따라 적절한 질서를 정해야 한다.”— Samuel Rutherford, The Due Right of Presbyteries(1644) 여기에서 우리는 총회의 3대 핵심 책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교회의 전체 상태를 판단하라” → 지금 한국 교회가 어떤 상태인지 총회가 분석해야 합니다. “시대에 맞는 방향을 제시하라”(direction for the times) → 오늘 시대에 맞는 전략을 제시하라는 뜻입니다. “현재의 필요에 맞는 질서를 세우라”(present necessity) → 예: 교회 개척이 아니라, 교회 통합/강화 전략. 러더포드는 오늘 고신총회가 해야 할 말을 이미 400년 전에 말해 놓았습니다. E. 웨스트민스터 총회(1645) – “여러 시대를 위하여” 판단하라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중 『교회정치 형태』는 총회의 역할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인용문: “총회(혹은 회의)는 신앙의 논쟁, 양심의 문제, 실제적 사안에 대하여, 여러 시대(divers ages)의 교회를 위하여 조언하고 결정해야 한다.”— Westminster Assembly, Form of Presbyterial Church Government(1645) 이것은 명확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교회는 모든 시대에 같은 전략을 사용할 수 없다. 시대가 바뀌면 총회도 ‘지금 시대의 필요’를 따라 판단해야 한다. 오늘 고신총회에 이 문장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70–90년대에 효과적이었던 교회 개척 전략을 2025년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정신에 반한다.” F. 결론: 총회가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개혁주의 신학에서의 탈선입니다. 개혁주의 전통 전체를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총회는 교회의 상태를 분석해야 하고(녹스) 시대를 분별해야 하며(제2치리서) 시대의 위험을 평가해야 하고(질스피) 시대에 맞는 방향을 제시해야 하며(러더포드) 시대마다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웨스트민스터) 즉, “교회 개척을 무조건적으로 계속하는 것”은 개혁주의가 아닙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전략을 재구성하는 것”이 개혁주의입니다. 고신총회가 현재의 방향을 계속 유지한다면,이는 개혁주의 전통에서 멀어지는 것이며,한국 교회의 현실을 무시한 위험한 신학적·전략적 맹목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독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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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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