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4-08(목)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기고

실시간뉴스
  • 마음을 여는 시 [신광열 목사] 걱정
    사람이 없어 걱정이다 강 같은 어머니가 없고 산 같은 아버지도 없다 길 같은 선생님도 별 같은 지도자도 흙 같은 목회자가 없어 참으로 걱정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마음을 여는 시
    2021-03-24
  • [신지균 목사포토묵상에세이]하루
    <하 루> 하루를 넘겼을 뿐인데 새해라고 한다. 하루를 넘겼을 뿐인데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넘긴다면 주님 만난 날 있겠지 새해 마라나타 하루 만에 천국 되겠지
    • 오피니언
    • 기고
    2021-01-04
  • 마음을 여는 시[신광열 목사] 응답 應答
    하나님은 누구에게 숨어 있을까 누구에게 하나님은 침묵하실까 누구에게 하나님은 꼼짝도 하지 않으실까 그리고 왜 누구에겐 기다리고 있었듯이 얼른 대답하실까
    • 오피니언
    • 기고
    2020-12-09
  • [이상규 교수]초기 기독교는 낙태(落胎)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시작하면서 임신 중절, 곧 낙태(落胎)는 우리 시대 현안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형법 제269조 제1항과 제270조 제1항에서 비록 법의 규제가 실행되지 못했다하더라도 낙태죄를 명시하고 있는데, 2012년 8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의 합헌을 선고한 바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관 7:2로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개정을 권고했다. 이때까지 국회에서 개정하지 않으면 낙태죄 관련 조항은 2021년 1월1일부로 효력을 상실하고 자동 폐기된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단순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임신 14주, 헌법 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22주를 인공임신중절 가능 기간으로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에 정부는 10월 7일, 낙태죄 자체는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지난 8월 임신 주수(週數)에 따른 인공임신중절 허용이 아닌 낙태죄 전면 폐지를 권고했다고 한다. 또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 참여하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모낙폐)’도 지난 9월 23일 성명을 내고 “처벌 조항 존속은 국가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심각한 역사적 후퇴”라며 반발했다. 그런가 하면 로마 가톨릭교회는 원칙적으로, 복음주의 교회는 낙태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살인행위라는 점에서 이를 반대하고 낙태죄 폐지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태아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상호 대립적인 가치를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낙태죄는 현제 한국 사회의 심각한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낙태 혹은 낙태죄에 대한 의학적 혹은 법률적 문제를 검토하려는 것이 아니라 낙태가 허용되던 그레꼬-로만 사회에서 ‘초기 기독교회’은 낙태 문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대응했던가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초기 기독교’란 예루살렘에 교회가 설립된 이후 300년, 곧 첫 3세기를 칭하는 의미로 한정하고자 한다. 이런 교회사적 검토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교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 1. 낙태하는 사회 낙태란 태아가 모태로부터 자연분만 되기 이전에 인위적으로 태아를 모태에서 제거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그레꼬-로만사회에서는 법적 규제 없이 자행되던 일상사였다. 이 시기 낙태는 이교도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었는데, 가난한 이들보다 부유한 계층이 더욱 빈번했다. 이미 고대 로마의 12동판법(The Twelve Tables, c 450BC)은 가장에게 여아의 유기를 허락하고 있었고, 성별과 관계없이 기형아의 유기를 허락하고 있었다. 플라톤(427-347BC)과 아리스토텔레스(384-322BC)는 낙태를 통한 가족계획을 권장한 바 있는데 이런 전통은 그 이후 헬라 로마사회에 영향을 주었고, 로마의 법은 태아를 인간(a human being)으로 보지 않고 내장(內臟)의 물질(material viscera)로 간주했다. 그래서 낙태는, 용이하지도 않았고 안전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동안 공공연하게 시행되고 있었다. 규제되지 않는 낙태는 결과적으로 성적 무질서와 출산율을 크게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낙태의 방법은 다양했는데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었다. 가장 흔한 방법은 치사량에 약간 밑도는 독약을 복용하여 유산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또 태아를 죽이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독극물을 자궁내로 주입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어 태아와 산모 양자를 희생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사망한 태아를 산모의 체외로 제거하지 못해 산모와 태아가 동반 사망하는 일이 빈번했다. 또 다른 낙태법은 기구를 이용하는 방식인데, 긴 바늘과 갈고리 혹은 칼을 동원하여 태아를 토막 내 자궁을 통해 제거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낙태법이 산모에게도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낙태가 여성의 주요 사망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왜 낙태가 이처럼 횡행했는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불륜에 의한 성행위 은폐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였다. 또 경제적 이유나 재산 상속에 있어서 재산의 분산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부유한 이들은 재산을 여러 후손들과 공유하기를 원치 않았고, 가난한 이들은 대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웠기에 낙태라는 수단을 이용한 것이다. 이런 경우 낙태를 원하는 경우는 여성이 아니라 가장인 남성이었다. 로마법은 가장인 남성(paterfamilias)이 집안 여성에게 낙태를 명할 권리를 포함한 집안 식구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런 권리를 파트리아 프로테스타스(patria protestas)라고 부른다. 사실상 가장인 아버지는 노예나 부인이나 자식을 죽이거나 신체를 훼손하거나 물건이나 소유물처럼 판매할 수 있었다. 도미티안(Domitian) 황제는 조카 줄리아(Julia)를 범해 임신하게 했는데, 그녀에게 낙태를 명했고, 줄리아는 낙태로 결국 사망했다. 남편에게 신생아의 유기를 명할 권한을 허용한 사회에서, 아내나 정부(情婦)의 낙태를 명할 권리가 남편에게 주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못된다. 이런 이유 외에도 부유한 여성들은 성적 매력(sex appeal)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낙태를 선택했다. 2. 초기 기독교회의 대응 이런 시대에 살았던 기독교인들은 영아살해는 물론이지만 낙태 또한 살인으로 보아 이를 강하게 거부했다. 초기 기독교는 특히 3가지 관점에서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태아도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 둘째, 낙태는 명백한 살인이라는 점, 셋째, 낙태 행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른다는 점이었다. 초기 기독교회는 태아도 인간이라고 보았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시139:13-16)을 확신했기에 태아라고할지라도 인위적으로 제거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비록 신약성경에서 직접적으로 ‘낙태’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낙태는 하나님에 대한에 대한 반역으로 여겼다. 낙태 거부는 인간생명을 중시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응답이었다. 교회 지도자들도 이점을 강조하며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초기 기독교 문헌 중 낙태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대표적인 1세기 말 혹은 2세기 초의 두 가지 문서가 디다케(Διδαχή, Didache)와 바나바서신(The Epistle of Barnabas)이다. 디다케는 흔히 ‘열두 사도가 이방인에게 전한 주의 가르침’ 혹은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Doctrina Duodecim Apostolorum)으로 번역되는데, 이 책 서두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으로서의 도덕규범을 ‘두 길’(Two ways)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두 길’이란 생명의 길(the way of life or light)과 사망의 길(the way of death or darkness)을 의미하는데, 이 두 길이라는 상호 대조 개념은 그 이후 기독교적 삶의 태도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생명의 길’을 말하는 디다케 제2장 2항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두 번째 계명은 다음과 같다. 그대는 살인하지 말라. 그대는 간음하지 말라. 그대는 소년을 탐하지 말라. 그대는 음행을 피하라. 그대는 도덕질 하지 말라. 그대는 주술행위를 하지 말라. 그대는 낙태로 아이를 죽이지 말고, 영아도 죽이지 말라(οὐ φονεύσεις τέκνον ἐν φθορᾷ οὐδὲ γεννηθὲν ἀποκτενεῖς). 그대는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바나바서신 또한 디다케와 같은 방식으로 두 길을 제시하는데 디다케 보다 신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후일 아다나시우스는, 디다케는 초신자나 세례준비자들을 위한 훈련교법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이것은 신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낙태 행위에 대한 거부를 가르쳐 준 것임을 알 수 있다. 디다케와 바나바서신에서 말하는 ‘사망의 길’은 영아살인과 하나님의 솜씨(workmanship of God)의 파괴자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또 2세기의 변증가 아데나고라스(Athenagoras)는 마쿠스 아울렐리우스는 황제에게 보낸 ‘청원 Plea’ 35항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낙태를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여성은 살인을 저질렀으며, 하나님께서는 낙태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궁속의 태아조차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돌보시는 대상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생아를 유기하지 않습니다. 신생아를 내다버리는 이들은 유아 살해죄를 저지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낙태나 영아유기를 죄악시했고,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범죄행위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는 이런 행위를 일삼는 이교도를 비판했다. 2세기 말의 미니키우스 펠릭스(Minucius Felix)는 자신의 ‘변증서’(Octavius)에서 이렇게 썼다. “당신들은 한 때 태어난 자식들을 들짐승과 새들에게 유기했으며 아이들을 목을 조르거나 내던져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당신들 중 어떤 여성은 약물을 마심으로써 복중에 있는 후일의 인간의 근원을 멸절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서 출산 전 존속 살해를 저지릅니다. 그리고 이런 형태는 당신들의 신들(gods)로부터 내려온 전통입니다. 사트루누스(Saturn)는 그의 자식들을 유기한 것이 아니라 잡아먹은 것입니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유아를 희생 재물로 바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기독교공동체는 낙태와 유아 유기를 금지했다. 이탈리아의 역사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인드로 몬타넬리(Indtro Montanelli)는 이렇게 썼다. “낙태와 유아 살해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사회풍토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의미에서 이것들은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신자들에게 고아들을 양자로 입양하고 기독교 교리에 따라서 교육 하도록 당부하고 있었다.” 이런 점이 기독교회가 보여준 생명 존중사상이자 생명 윤리였다. 결과적으로 기독교 공동체의 출산율은 이교 사회보다 상대적으론 높을 수밖에 없었다. 미니키우스 펠릭스는 자신의 변증서에서 “날마다 우리의 수는 증가일로에 있다,”며 그것은 “우리의 건실한 생활양식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회는 혼인을 신성시했을 뿐 아니라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상급으로(시127:3) 이해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성행위는 일차적으로 자녀출산을 위한 것으로 보았고 출산과 육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다. 이런 가르침을 따랐던 초기 기독교는 생명 존중 사상을 보여 준 것이다. 이와같은 초기 기독교의 낙태 반대와 그 가르침은 그 이후 시기에까지 변함없이 중시되었다. 그래서 크리소스톰(Chrysostom, c. 347-407)이나 어거스틴(Augustine, 354-430) 같은 4세기 교부들도 낙태를 정죄했다. 낙태 문제에 대해 어거스틴 만큼 강하게 반대하고 어거스틴의 가르침만큼 비중 있게 영향을 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결혼과 성생활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자녀출산이라고 보았고, 쾌락을 위한 성행위를 반대했다. 성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다. 정리하면, 초기 기독교는 영아 유기나 낙태뿐만 아니라 산아제한도 반대했다. 구약의 오난의 체외 사정이 정죄되었듯이(창38:8-10) 의도적이거나 인위적인 산아제한은 부당한 것으로 인식했다. 교부들도 그렇게 가르쳤다. 예컨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이렇게 썼다. “인간의 번식을 위해 하나님이 고안한 정자를 헛되이 사정하면 안 되고 파괴하거나 허비해서도 안 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스토아학파의 경우처럼 결혼에서의 성 생활을 오직 출산만을 위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도리어 유대적 전통을 따라 결혼생활에서의 부부간의 의무와 즐거움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2세기 후반에 와서 변화를 보여 주었는데, 결혼 주된 목적, 그리고 성해위의 유일한 목적은 출산에 있다고 보았다. 이런 변화는 당시의 편만한 낙태 관행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부연하며, 기독교 공동체는 동성애(롬1:26), 항문성교, 구강섹스 등 당시의 난잡한 동생애나 성행위도 분명하게 반대했다. 초기 기독교 문서에서 이런 점에 대해서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면 기독교 공동체에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컨대 바나바서신에서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너는 우리 귀에 들리는 것처럼 더러움을 위하여 입으로 불의를 행하는 남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들의 입으로 불의를 행하는 부정한 여인과 연합하지 말라.”(바나바 서신, 10).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기독교는 그 시대의 풍조에 맞서 영아 유기나 살해, 낙태, 동성애 등을 반대하면서 건실한 가정윤리를 강조하였고, 유아나 영아, 장애를 가진 아이라도 할지라도 인간 생명의 인위적 제거는 범죄라는 점을 가르치고,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양육했는데 이것이 초기 기독교가 보여준 생명윤리였다. 이 글에서는 소개하지 못했지만 초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검투사들의 격투기를 반대한 것이나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주의(pacifism)를 지행한 것도 생명 윤리에 근거한 것이었다.
    • 오피니언
    • 기고
    2020-11-25
  • 마음을 여는 시[신광열 목사] 다대고병
    많아야 하고 크고 높아야한다 솔로몬처럼 처첩도 황금도 많아야한다 매머드처럼 누구보다 웅장하고 커야한다 바벨탑처럼 하늘에 닿도록 높아야한다 그래야 화려하게 망하고 위대하게 쓰러질 수 있지
    • 오피니언
    • 기고
    • 마음을 여는 시
    2020-09-24
  • 마음을 여는 시[신광열 목사] 진 단
    또닥비 소리에 외로우십니까 봄바람 소리에 가슴 나부끼십니까 여행을 준비하면 삶이 설레십니까 음악을 들으면 맘이 행복하십니까 하나도 안 맞으면 병원으로 소풍갑시다
    • 오피니언
    • 기고
    • 마음을 여는 시
    2020-09-04

실시간 기고 기사

  • 마음을 여는 시 [신광열 목사] 걱정
    사람이 없어 걱정이다 강 같은 어머니가 없고 산 같은 아버지도 없다 길 같은 선생님도 별 같은 지도자도 흙 같은 목회자가 없어 참으로 걱정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마음을 여는 시
    2021-03-24
  • 고신대학교복음병원 노동조합 보도 관련 기고문
    본지는 언론의 책임인 사실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노동조합 측에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경남기독신문은 홈페이지 오피니언세션에 “전 행정처장” 곽춘호, 미완으로 끝난 복음병원 노조 개혁”이라는 제목으로 고 곽춘호 사무국장이 노동조합과의 법적 소송, 고발 및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사망하였다고 보도하였고, 노동조합이 낙하산인사로 약점을 잡아 이사장 및 재단관계자들이 친노동조합적 행보를 하게 함으로 병원개혁과 경영합리화를 하지 못하게 하여 상급종합병원 평가에서도 탈락하였으며, 불법적 편의시설 운영하여 노조의 활동자금으로 쓰는 부도덕한 노동조합으로 기사를 게재하였다. 본 노동조합은 언론사의 책무인 사실확인을 하지 않은 17가지의 사항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언론중재신청을 했으며 일부 정정보도가 나갔다. 기사 내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노동조합의 입장을 밝히는 바이다. 1. 노동조합과의 법적 소송, 고발 및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사망한 것처럼 기사가 났지만 고신대복음병원 노동조합은 곽○○국장과 법적소송을 진행한 적이 없으며 매점소송과 관련하여서는 강○○ 전 이사장이 소송을 진행하였고 곽국장은 2016년 6월 당시 해임되어있던 상태로 소송을 진행 할 수 있는 직위가 없었다. 노동조합은 곽국장을 형사 고발한 사실이 없고, 따라서 검찰과 법원에서 무혐의 판결이 난 적도 없다. 그리고 이사회는 여러 가지 비위사안으로 곽국장을 해임징계하였고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징계의 사유는 정당하나 양정이 과하다고 결정한 것이지 징계위원회의 해임결정 자체가 부당하다고 하지 않았다. 또한, 곽국장의 사망원인으로 보도한 ‘뇌출혈’은 전혀 사실 무근이며 직접적인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위와 같이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곽국장의 사망의 원인이 노동조합에 있는 것처럼 호도하였다. 2. 환자보다 직원이 많은 병원이라고 기사에 나와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상급종합병원들보다 환자수 대비 직원수가 적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고신대학교복음병원 노동조합이 전국보건의료노조안에서도 목소리가 큰 거대 공룡 노조인 것처럼 표현하였으나, 전국보건의료노조 조합원수 71,125명 중 1,396여명(약2%)정도의 비율을 가진 지부가 거대 공룡 노조이고 목소리가 크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3. 역대 이사장들이 노동조합의 편을 들고 곽○○국장을 외면했다고 기사에 나와 있으나 이사장과 이사회는 여러 가지 비위로 해임 징계 처분을 받은 곽국장을 오히려 재단 법인 사무국장으로 승진시켰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은 이의를 제기 했지만 이사장 및 이사회는 침묵, 방관으로 곽국장의 편을 들었다. 4. 병원이 노조에 약점이 잡혀 재단 관계자들은 자기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노조에 계속 끌려 다니는 형국이고 지금의 재단 이사장도 노조지부장이 자기 교회에 출석하기에 친 노조 행보를 보인다라는 내용으로 기사가 났다. 하지만, 지부장은 현 이사장이 담임하는 교회에 등록교인일 뿐이며 현 이사장도 곽국장에 대한 노동조합의 이의 제기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5. 여기에 역대 재단 이사장마다 노조의 손을 들어주는 비상식을 자행하는 사례가 빈번하여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노조를 중심으로 한 병원 개혁은 빈번이 물 건너가는 형국은 물론이고 상급종합병원 재지정 탈락되는 수모까지 당하게 된 샘. 이미 외부의 진단에서도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적자 누적 해결책은 인력 구조조정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고 보도하였다. 하지만 역대 재단이사장이 노동조합 편을 든 적이 없고 노동조합이 어떠한 행위로 경영을 어렵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실이 없다. 또한, 엘리오 경영진단 7대 전략영역과 25가지 실행과제에 ‘적자 누적 해결책은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언급은 없었다. 6.노동조합이 병원의 매점·분식점을 운영해 활동자금으로 사용한 것처럼 기사에 나와 있지만 사실 노동조합은 매점·분식점 임대료 수익을 전액 조합원 및 조합원이 아닌 직원들까지 포함하여 설, 추석 등의 명절 선물비용 및 직원 복지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임대료 수익만으로는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워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로 모자란 부분을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7. 매점·분식점 소송과 관련하여 결정문 중 “노동조합법 제81조 제4호 본문에서 금지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므로”을 인용하여 노동조합의 매점·분식점 운영이 불법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하지만 노동조합법 제81조의 입법취지는 사용자(병원)가 노동조합의 조직운영이나 사업에 대한 지원을 하여 노동조합 활동을 지배, 개입하여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헌법재판소 결정(2018.05.31. 선고 2012헌바90 결정)은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는 판결취지이며 개정 법률안을 통해 더 명백해졌다. 부당노동행위라는 주장은 제81조 제4호의 「또한 근로자의 후생자금 또는 경제상의 불행 기타 재액의 방지와 구제등을 위한 기금의 기부와 …예외로 한다.」의 법문구의 취지와 충돌한다. 더군다나 소송은 현재 항소 진행 중으로 완전히 결정이 나지도 않았다. 8. 기사에 ‘민노총의 만행으로 만들어진 지나친 악법들-최저임금제나 주52시간 근무, 노조의 회사경영 참여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 등’이라고 민주노총의 활동을 만행으로 표현하였다. 민주노총은 제1노총이며 노동계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조직으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 ‘민노총의 만행’이라는 표현은 민주노총을 전혀 존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근거없는 주장이다. 최저임금제나 주52시간 근무, 노조의 회사경영 참여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은 국제적 기준에도 못미치는 법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호법이며, 악법이 아니다.
    • 오피니언
    • 기고
    2021-03-02
  • [신광열 목사] 모델링
    개펄에 자꾸 옆으로 걷는 아기 게 엄마게는 혀를 차며 꾸짖는다 쯔쯔쯧 똑바로 쫌 걸어라 얘야 화를 내는 엄마에게 아기게는 묻는다 어떻게 걸어란 말이야 날보고 따라하란 말이야 이렇게 엄마 게는 옆으로 잘도 걷는다
    • 오피니언
    • 기고
    • 마음을 여는 시
    2021-02-03
  • 전 행정처장 곽춘호, 미완으로 끝난 복음병원 노조 개혁
    부·울·경지역의 꼴찌 병원으로 전락되다니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복음병원 행정처장을 지낸 재단 사무국장 곽춘호 장로(60세)가 지난해 12월 26일 심장마비로 소천하여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는 25년 전 12월 25일 성탄절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던 성산 장기려 박사의 뒤를 이어 그 다음날 우리 곁을 떠난 샘. 곽춘호 장로는 한때 장기려 박사를 기리는 장기려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지낸 터라 그 시점이 참으로 묘기만 하다. 지금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고 안타까움과 함께 여러 뒷말들이 오가고 있다. 정년을 불과 6개월 앞둔 터에다 지난 5년여 넘게 복음병원 노조와의 법적 소송 등 온갖 갈등과 대립 속에 오히려 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들은 지속적으로 노조의 편을 드는 듯한 행보가 본인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던 점은 주변에 잘 알려져 왔고 예견되어 왔던 일이다. 더욱이나 그가 매일 출근하는 재단 사무실 입구에는 수년 동안 복음병원 노조가 내건 곽 장로를 규탄하는 현수막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라는 설립 비전을 지닌 기독교 정신을 구현하는 복음병원 내에서 벌어진 불신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살벌한 싸움이라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그는 오래전부터 골리앗 같은 병원의 거대 노조와의 분쟁으로 쌓인 극심한 스트레스와 재단 고위인사들로 부터 받았던 투명인간 대우 등이 견딜 수 없는 일이였기에 결국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져 끝내 소생을 하지 못하게 돼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 했다. 때마침 지난 12월 29일에는 복음병원이 보건복지부의 제4기 상급종합병원 재지정 탈락이라는 비보까지 전해져 또 한 번의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에 지정된 병원들은 전국 45곳 중 부·울·경지역만 하여도 무려 7곳에 이른다. 부산대병원, 동아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인제대백병원, 울산대병원, 경상대병원, 성균관대삼성창원병원까지 포함되었다. 반면에 고신의대 부속 복음병원은 재지정에서 유일하게 탈락되어 지역사회에 창피함과 충격이 크다. 과연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에 대해 고난도 의료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종합병원을 일컫는다. 진료권역별로 인력·시설 장비·진료·교육 등의 항목을 종합 평가해 우수한 병원을 3년 마다 지정한다. 상급종합병원에 지정되면 건강보험 수가 종별 가산을 30%를 적용받는다. 의료기관이 종별가산율을 보면 상급종합병원은 30%, 종합병원은 25%, 병원은 20%, 의원은 15%가 각각 가산된다. 과거 장기려 박사의 헌신에 힘입어 한강 이남에서 최고의 명성을 지녔던 복음병원은 이제 암전문병원이라는 마지막 명예와 자존심마저도 퇴색되고 있는 듯한 불길한 징조이다. 가장 강성인 1천5백여 명의 복음병원 노조원, 저들을 어찌할꼬.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AI시대, 몇 년 전 알파고와의 바둑 대전에서 보듯 앞으로 법원 판결도 AI가 대신하는 날이 머지않았다고까지 예견되는 요즘이다. 현재 병원의 구성원들은 의료진이 2백여 명, 간부를 포함한 비노조직원 3백여 명, 그리고 노조원 1천5백여 명 모두 2천여 명에 이르는 매머드급 규모이다. 언제부터인지 환자보다 직원이 더 많은 병원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들이다. 이는 그동안 고신재단 이사나 총회 유력 위치에 오른 이들이 자기 자녀들을 복음병원에 낙하산 투하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어쩌면 오늘의 이런 기형적인 구조는 당연한 결과인 듯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80년대 재단 이사장을 지낸 박 아무개 목사는 재임 시절 얼마나 많은 자기 교회 교인들을 밀어 넣었는지 출·퇴근 때 교회버스가 오갔다는 우스갯말까지 회자되었다. 이런 교단 내 지도자들의 이기주의와 비양심적인 처신은 방만한 병원경영을 더욱 부추겨 결국 한때 부도라는 파국까지 맞게 되었다.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총회 유력인사들의 자녀들은 끊임없이 재단의 여러 기관에 수시로 공수되는 형국이니 병원의 구조조정 문제는 그야말로 마이동풍 격인 듯하다. 이렇게 노조에 약점이 단단히 잡힌 꼴이니 재단 관계자들은 언제나 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노조에 계속 끌려 다니는 형국이다. 지금의 재단 이사장도 연임한 노조위원장인 간부가 자기 교회에 출석하는 터에 친 노조 행보라는 세간의 평가이다. 역대 병원 원장들 가운데에는 병원 개혁을 하려다 노조와 마찰로 법적 소송까지 가는 수모를 겪고 중도 하차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니면 아예 노조에 침묵 내지는 협조자가 되는 경우이다. 여기에 역대 재단 이사장마다 노조의 손을 들어주는 비상식을 자행하는 사례가 빈번하여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노조를 중심으로 한 병원 개혁은 빈번이 물 건너가는 형국은 물론이고 상급종합병원 재지정 탈락되는 수모까지 당하게 된 샘. 이미 외부의 진단에서도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적자 누적 해결책은 인력 구조조정뿐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서 병원 경영합리화는 그야말로 요원하기만 하다. 과거 개혁과 혁신의 상징인 듯한 손봉호 교수의 아바타인 강 아무개 장로가 이사장 재임시절, 교단 안팎에서는 그가 병원 개혁을 잘 하리라 크게 기대를 하였으나 임기 내내 노조에 끌려 다니며 그저 자신의 임기를 채우는 일에도 급급해 큰 실망과 배신감을 안겨 주었다. 그야말로 복마전 같은 복음병원의 개혁이 얼마나 힘든가를 잘 대변해 준 사례였다. 그를 가까이 지켜본 한 인사는 “그와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이사장으로서 그의 행보가 과연 얼마나 정의로웠는지를 따져 보겠다”라는 의미심장한 코멘트이다. 노조의 활동자금원이 된 병원 각종 편의시설 운영, 법원은 불법이라고 판결하였건만… 현재 복음병원 노조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노총) 산하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다. 병원의료노조는 민노총 가운데 가장 강성 성향을 지닌 노조이다. 1천5백여 명의 거대한 공룡 노조이다 보니 중앙에서도 복음병원의 위치나 목소리는 상당히 크다. 복음병원 노조는 과거 20년 넘게 병원 내 매점과 분식점 등 각종 수익 시설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2010년 7월 노동법 개정으로 노동법 개정 이후 사측이 노동조합에 제공한 시설은 노동조합법 제81조 제4호(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와 노동조합의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거나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가 정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되면서 문제가 붉어졌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도 2012년 6월 ‘시정 지시서’를 통해 “사용자는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며 사용자의 어떠한 개입도 없이 노동조합이 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운영비 지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다가 2016년 6월경 매점과 분식점을 돌려달라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돌려달라는 병원 측과 돌려 줄 수 없다는 노조 측이 협상을 가졌지만 의견차이만 확인했고, 결국 이 문제는 건물명도 소송으로 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부산지방법원 제6민사부는 “원고의 피고에 대한 이 사건 시설 제공은 노동조합법 제81조 제4호 본문에서 금지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이 사건 시설 제공의 근거가 된 단체협약은 강행규정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시설 및 그 점유, 사용으로 인한 이익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원고 측인 병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처럼 당시 강성 병원노조와의 법적인 소송 실무를 추진한 장본인이 바로 전 행정처장 곽춘호 장로였다. 노조 측에서 곽 장로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게 된 것은 당연한 처사. 마침 곽 장로가 병원 과장들에게 골프채를 선물한 것을 빌미로 ‘김영란 법’ 위반 운운하여 노조의 고발사태가 이어졌지만 검찰에 이어 법원마저도 곽 장로에게 무혐의로 판결해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과연 재단의 고무줄 처벌 잣대와 기준은? 과거 고신대 한 교수의 제자에 대한 부적절한 의혹이나 학생회의 문제제기로 학교 공금을 횡령한게 밝혀지자 조용히 해당 교직원의 사표를 받고 사건들을 무마시킨데 반해 곽 장로가가 상급자에게 뇌물을 준 것도 아닌 격려차원에서 동료인 몇몇 과장들에게 골프채를 선물한 것을 두고 노조가 지나치게 부풀려 형사고발을 하고, 재단까지 나서서 ‘해고’라는 징계를 내린바 있다. 그러나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징계위원회가 내린 처사가 부당하다며 복직을 명하여 교단은 또 한차례 망신까지 당한 바 있다. 그 후에도 재단 측은 품위유지 위반이라는 생뚱맞은 무리한 처벌을 계속 고집, 행정처장 직위마저 정지하는 법원 소송도 진행한바 있다. 한 교단 중진목회자는 “이런 처사는 재단이 노골적으로 노조 편을 들어준 또 하나의 고신교단의 흑역사”라고 비판한다. 어떤 이는 곽 장로의 부친인 故 곽삼찬 목사가 과거 고신 총회장을 지낸 강력한 카리스마 행보에 설움을 받았던 일부 목회자들이 세월이 흘러 갑, 즉 실력자가 되어 매스를 잡게 되니 불의에 대한 수술이나 개혁보다 그 아들에게 인간적인 보복 즉 ‘갑질’을 일삼았다는 비판까지 받아왔다. 그래서 뜻있는 교계인사들은 또 다른 적폐가 된 샘이라며 개탄한다. 앞서 교단 실력자들의 자녀들을 편법으로 낙하산 임명한 경우나 공정한 절차를 거쳐 임명된 이들 중에는 물론 실력이 뛰어난 이들도 상당한 사례도 있다. 병원 개혁에 총대를 멘 곽 장로나 현 고신대 김 아무개 사무처장의 경우 다들 그 능력은 인정해오지 않았던가. 이는 누구보다 교단 사정을 잘 아는 목회자 자녀출신이라는 이점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전 행정처장인 곽 장로는 재임 당시인 2015년 서울에서 운영되던 ‘성산 장기려 기념사업회’를 부산으로 유치하고, 고신대복음병원이 위치한 서구 감천로 구간을 ‘장기려로(路)’로 명명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외받은 다문화가정과 외국인들을 위한 의료나눔 활동을 벌인 공적으로 ‘선행천사 세계나눔대상’까지 받은 것처럼 말이다. 그가 한때 소신 있는 병원장과 함께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복음병원을 개혁하려는 계획은 결국 노조의 강력한 저항으로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다. 병원 행정처장으로 다시 복직하려던 그 꿈을 과연 누가 저지하였는가. 역대 여러 재단 이사장들도 결국 노조의 악행을 손보려던 곽 장로의 손을 들어주기 보다는 비겁하게 침묵, 방관 내지 노조 편으로 일관하였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누가 과연 고양이 목에 방울은 달것인가? 지금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경제위기와 함께 급격한 변화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그 중심 키워드는 인력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합리화. 과거 침례병원의 방만한 인력구조와 여기에 덧붙인 무능한 침례교단 지도자들의 행보로 인해 결국 부도와 병원 폐쇄로 이어진 불행한 흑역사를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침례병원 케이스나 제2의 부도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비대한 몸을 다이어트 해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다. 재벌 기업들마저 추진하는 가혹한 경영합리화 프로그램이 과연 복음병원에는 가능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민노총의 만행으로 만들어진 지나친 악법들- 최저임금제나 주52시간 근무, 노조의 회사경영 참여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 등으로 기업들이 점점 골병들고 있는 형국이다. 매년 엄청난 액수의 노조 상납금으로 이 민노총 집단의 거대화에 일등공신격인 그야말로 꿀단지를 공급해 주고 있는 공룡 복음병원 노조. 노조에 포위되어 서서히 좌초되고 있는 고신교단은 물론 대한민국호의 암울한 현실에서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그래서 이번 곽 장로의 돌연사가 시사 하는 바가 크고, 그를 떠나보내는 재단 임원진들의 여전한 노조 편애나 눈치보기식 행보가 하수상 내지는 개탄스럽기만 하다. 미완으로 끝난 그의 병원 개혁 몸부림, 과연 누가 그 뒤를 이어갈 수가 있을까. 노조위원장인가 병원장, 총장, 총회장, 재단이사장인가? 최수경 (출판인, 월간고신 창간 편집장 역임) ※ 기고 또는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고신대학교복음병원 노동조합 보도 관련 기고문 http://gncnews.net/news/view.php?no=855 [정정보도문] 고신대 복음병원 노조 관련 본 신문 지난 2021년 1월 12일자 「전 행정처장 곽춘호, 미완으로 끝난 복음병원 노조 개혁」 제하의 기고문과 관련, 다음과 같이 바로 잡습니다. 1. 고 곽춘호 사무국장이 노조와의 분쟁으로 쌓인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했으나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로, 노조와의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 아닙니다. 2. 환자보다 직원이 더 많다고 보도 했으나 복음병원은 동 지역내 상급병원에 비해 환자수 대비 직원수가 적은 편으로 확인됐습니다. 3. 역대 병원 원장들이 노조와의 법적 소송으로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으나 노조와 법적 소송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4. 편의시설 운영 이익이 노조의 활동자금원이 되었다는 보도 관련, 직원의 후생복지비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됐습니다. 5. 노조와의 법적 소송 실무를 추진한 장본인이 고 곽춘호 사무국장이었다고 했으나 고 곽춘호 사무국장이 진행한 사실이 없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 오피니언
    • 기고
    2021-01-12
  • [신지균 목사포토묵상에세이]하루
    <하 루> 하루를 넘겼을 뿐인데 새해라고 한다. 하루를 넘겼을 뿐인데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넘긴다면 주님 만난 날 있겠지 새해 마라나타 하루 만에 천국 되겠지
    • 오피니언
    • 기고
    2021-01-04
  • 마음을 여는 시[신광열 목사] 응답 應答
    하나님은 누구에게 숨어 있을까 누구에게 하나님은 침묵하실까 누구에게 하나님은 꼼짝도 하지 않으실까 그리고 왜 누구에겐 기다리고 있었듯이 얼른 대답하실까
    • 오피니언
    • 기고
    2020-12-09
  • [이상규 교수]초기 기독교는 낙태(落胎)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시작하면서 임신 중절, 곧 낙태(落胎)는 우리 시대 현안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형법 제269조 제1항과 제270조 제1항에서 비록 법의 규제가 실행되지 못했다하더라도 낙태죄를 명시하고 있는데, 2012년 8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의 합헌을 선고한 바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관 7:2로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개정을 권고했다. 이때까지 국회에서 개정하지 않으면 낙태죄 관련 조항은 2021년 1월1일부로 효력을 상실하고 자동 폐기된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단순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임신 14주, 헌법 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22주를 인공임신중절 가능 기간으로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에 정부는 10월 7일, 낙태죄 자체는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지난 8월 임신 주수(週數)에 따른 인공임신중절 허용이 아닌 낙태죄 전면 폐지를 권고했다고 한다. 또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 참여하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모낙폐)’도 지난 9월 23일 성명을 내고 “처벌 조항 존속은 국가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심각한 역사적 후퇴”라며 반발했다. 그런가 하면 로마 가톨릭교회는 원칙적으로, 복음주의 교회는 낙태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살인행위라는 점에서 이를 반대하고 낙태죄 폐지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태아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상호 대립적인 가치를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낙태죄는 현제 한국 사회의 심각한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낙태 혹은 낙태죄에 대한 의학적 혹은 법률적 문제를 검토하려는 것이 아니라 낙태가 허용되던 그레꼬-로만 사회에서 ‘초기 기독교회’은 낙태 문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대응했던가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초기 기독교’란 예루살렘에 교회가 설립된 이후 300년, 곧 첫 3세기를 칭하는 의미로 한정하고자 한다. 이런 교회사적 검토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교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 1. 낙태하는 사회 낙태란 태아가 모태로부터 자연분만 되기 이전에 인위적으로 태아를 모태에서 제거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그레꼬-로만사회에서는 법적 규제 없이 자행되던 일상사였다. 이 시기 낙태는 이교도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었는데, 가난한 이들보다 부유한 계층이 더욱 빈번했다. 이미 고대 로마의 12동판법(The Twelve Tables, c 450BC)은 가장에게 여아의 유기를 허락하고 있었고, 성별과 관계없이 기형아의 유기를 허락하고 있었다. 플라톤(427-347BC)과 아리스토텔레스(384-322BC)는 낙태를 통한 가족계획을 권장한 바 있는데 이런 전통은 그 이후 헬라 로마사회에 영향을 주었고, 로마의 법은 태아를 인간(a human being)으로 보지 않고 내장(內臟)의 물질(material viscera)로 간주했다. 그래서 낙태는, 용이하지도 않았고 안전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동안 공공연하게 시행되고 있었다. 규제되지 않는 낙태는 결과적으로 성적 무질서와 출산율을 크게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낙태의 방법은 다양했는데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었다. 가장 흔한 방법은 치사량에 약간 밑도는 독약을 복용하여 유산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또 태아를 죽이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독극물을 자궁내로 주입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어 태아와 산모 양자를 희생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사망한 태아를 산모의 체외로 제거하지 못해 산모와 태아가 동반 사망하는 일이 빈번했다. 또 다른 낙태법은 기구를 이용하는 방식인데, 긴 바늘과 갈고리 혹은 칼을 동원하여 태아를 토막 내 자궁을 통해 제거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낙태법이 산모에게도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낙태가 여성의 주요 사망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왜 낙태가 이처럼 횡행했는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불륜에 의한 성행위 은폐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였다. 또 경제적 이유나 재산 상속에 있어서 재산의 분산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부유한 이들은 재산을 여러 후손들과 공유하기를 원치 않았고, 가난한 이들은 대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웠기에 낙태라는 수단을 이용한 것이다. 이런 경우 낙태를 원하는 경우는 여성이 아니라 가장인 남성이었다. 로마법은 가장인 남성(paterfamilias)이 집안 여성에게 낙태를 명할 권리를 포함한 집안 식구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런 권리를 파트리아 프로테스타스(patria protestas)라고 부른다. 사실상 가장인 아버지는 노예나 부인이나 자식을 죽이거나 신체를 훼손하거나 물건이나 소유물처럼 판매할 수 있었다. 도미티안(Domitian) 황제는 조카 줄리아(Julia)를 범해 임신하게 했는데, 그녀에게 낙태를 명했고, 줄리아는 낙태로 결국 사망했다. 남편에게 신생아의 유기를 명할 권한을 허용한 사회에서, 아내나 정부(情婦)의 낙태를 명할 권리가 남편에게 주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못된다. 이런 이유 외에도 부유한 여성들은 성적 매력(sex appeal)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낙태를 선택했다. 2. 초기 기독교회의 대응 이런 시대에 살았던 기독교인들은 영아살해는 물론이지만 낙태 또한 살인으로 보아 이를 강하게 거부했다. 초기 기독교는 특히 3가지 관점에서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태아도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 둘째, 낙태는 명백한 살인이라는 점, 셋째, 낙태 행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른다는 점이었다. 초기 기독교회는 태아도 인간이라고 보았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시139:13-16)을 확신했기에 태아라고할지라도 인위적으로 제거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비록 신약성경에서 직접적으로 ‘낙태’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낙태는 하나님에 대한에 대한 반역으로 여겼다. 낙태 거부는 인간생명을 중시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응답이었다. 교회 지도자들도 이점을 강조하며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초기 기독교 문헌 중 낙태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대표적인 1세기 말 혹은 2세기 초의 두 가지 문서가 디다케(Διδαχή, Didache)와 바나바서신(The Epistle of Barnabas)이다. 디다케는 흔히 ‘열두 사도가 이방인에게 전한 주의 가르침’ 혹은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Doctrina Duodecim Apostolorum)으로 번역되는데, 이 책 서두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으로서의 도덕규범을 ‘두 길’(Two ways)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두 길’이란 생명의 길(the way of life or light)과 사망의 길(the way of death or darkness)을 의미하는데, 이 두 길이라는 상호 대조 개념은 그 이후 기독교적 삶의 태도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생명의 길’을 말하는 디다케 제2장 2항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두 번째 계명은 다음과 같다. 그대는 살인하지 말라. 그대는 간음하지 말라. 그대는 소년을 탐하지 말라. 그대는 음행을 피하라. 그대는 도덕질 하지 말라. 그대는 주술행위를 하지 말라. 그대는 낙태로 아이를 죽이지 말고, 영아도 죽이지 말라(οὐ φονεύσεις τέκνον ἐν φθορᾷ οὐδὲ γεννηθὲν ἀποκτενεῖς). 그대는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바나바서신 또한 디다케와 같은 방식으로 두 길을 제시하는데 디다케 보다 신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후일 아다나시우스는, 디다케는 초신자나 세례준비자들을 위한 훈련교법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이것은 신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낙태 행위에 대한 거부를 가르쳐 준 것임을 알 수 있다. 디다케와 바나바서신에서 말하는 ‘사망의 길’은 영아살인과 하나님의 솜씨(workmanship of God)의 파괴자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또 2세기의 변증가 아데나고라스(Athenagoras)는 마쿠스 아울렐리우스는 황제에게 보낸 ‘청원 Plea’ 35항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낙태를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여성은 살인을 저질렀으며, 하나님께서는 낙태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궁속의 태아조차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돌보시는 대상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생아를 유기하지 않습니다. 신생아를 내다버리는 이들은 유아 살해죄를 저지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낙태나 영아유기를 죄악시했고,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범죄행위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는 이런 행위를 일삼는 이교도를 비판했다. 2세기 말의 미니키우스 펠릭스(Minucius Felix)는 자신의 ‘변증서’(Octavius)에서 이렇게 썼다. “당신들은 한 때 태어난 자식들을 들짐승과 새들에게 유기했으며 아이들을 목을 조르거나 내던져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당신들 중 어떤 여성은 약물을 마심으로써 복중에 있는 후일의 인간의 근원을 멸절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서 출산 전 존속 살해를 저지릅니다. 그리고 이런 형태는 당신들의 신들(gods)로부터 내려온 전통입니다. 사트루누스(Saturn)는 그의 자식들을 유기한 것이 아니라 잡아먹은 것입니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유아를 희생 재물로 바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기독교공동체는 낙태와 유아 유기를 금지했다. 이탈리아의 역사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인드로 몬타넬리(Indtro Montanelli)는 이렇게 썼다. “낙태와 유아 살해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사회풍토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의미에서 이것들은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신자들에게 고아들을 양자로 입양하고 기독교 교리에 따라서 교육 하도록 당부하고 있었다.” 이런 점이 기독교회가 보여준 생명 존중사상이자 생명 윤리였다. 결과적으로 기독교 공동체의 출산율은 이교 사회보다 상대적으론 높을 수밖에 없었다. 미니키우스 펠릭스는 자신의 변증서에서 “날마다 우리의 수는 증가일로에 있다,”며 그것은 “우리의 건실한 생활양식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회는 혼인을 신성시했을 뿐 아니라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상급으로(시127:3) 이해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성행위는 일차적으로 자녀출산을 위한 것으로 보았고 출산과 육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다. 이런 가르침을 따랐던 초기 기독교는 생명 존중 사상을 보여 준 것이다. 이와같은 초기 기독교의 낙태 반대와 그 가르침은 그 이후 시기에까지 변함없이 중시되었다. 그래서 크리소스톰(Chrysostom, c. 347-407)이나 어거스틴(Augustine, 354-430) 같은 4세기 교부들도 낙태를 정죄했다. 낙태 문제에 대해 어거스틴 만큼 강하게 반대하고 어거스틴의 가르침만큼 비중 있게 영향을 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결혼과 성생활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자녀출산이라고 보았고, 쾌락을 위한 성행위를 반대했다. 성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다. 정리하면, 초기 기독교는 영아 유기나 낙태뿐만 아니라 산아제한도 반대했다. 구약의 오난의 체외 사정이 정죄되었듯이(창38:8-10) 의도적이거나 인위적인 산아제한은 부당한 것으로 인식했다. 교부들도 그렇게 가르쳤다. 예컨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이렇게 썼다. “인간의 번식을 위해 하나님이 고안한 정자를 헛되이 사정하면 안 되고 파괴하거나 허비해서도 안 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스토아학파의 경우처럼 결혼에서의 성 생활을 오직 출산만을 위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도리어 유대적 전통을 따라 결혼생활에서의 부부간의 의무와 즐거움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2세기 후반에 와서 변화를 보여 주었는데, 결혼 주된 목적, 그리고 성해위의 유일한 목적은 출산에 있다고 보았다. 이런 변화는 당시의 편만한 낙태 관행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부연하며, 기독교 공동체는 동성애(롬1:26), 항문성교, 구강섹스 등 당시의 난잡한 동생애나 성행위도 분명하게 반대했다. 초기 기독교 문서에서 이런 점에 대해서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면 기독교 공동체에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컨대 바나바서신에서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너는 우리 귀에 들리는 것처럼 더러움을 위하여 입으로 불의를 행하는 남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들의 입으로 불의를 행하는 부정한 여인과 연합하지 말라.”(바나바 서신, 10).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기독교는 그 시대의 풍조에 맞서 영아 유기나 살해, 낙태, 동성애 등을 반대하면서 건실한 가정윤리를 강조하였고, 유아나 영아, 장애를 가진 아이라도 할지라도 인간 생명의 인위적 제거는 범죄라는 점을 가르치고,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양육했는데 이것이 초기 기독교가 보여준 생명윤리였다. 이 글에서는 소개하지 못했지만 초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검투사들의 격투기를 반대한 것이나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주의(pacifism)를 지행한 것도 생명 윤리에 근거한 것이었다.
    • 오피니언
    • 기고
    2020-11-25
  • 마음을 여는 시[신광열 목사] 다대고병
    많아야 하고 크고 높아야한다 솔로몬처럼 처첩도 황금도 많아야한다 매머드처럼 누구보다 웅장하고 커야한다 바벨탑처럼 하늘에 닿도록 높아야한다 그래야 화려하게 망하고 위대하게 쓰러질 수 있지
    • 오피니언
    • 기고
    • 마음을 여는 시
    2020-09-24
  • 마음을 여는 시[신광열 목사] 진 단
    또닥비 소리에 외로우십니까 봄바람 소리에 가슴 나부끼십니까 여행을 준비하면 삶이 설레십니까 음악을 들으면 맘이 행복하십니까 하나도 안 맞으면 병원으로 소풍갑시다
    • 오피니언
    • 기고
    • 마음을 여는 시
    2020-09-04
  • 마음을 여는 시[신광열 목사] 허참
    제자보다 못한 선생 환자보다 못한 의사 사병보다 못한 장교 아이보다 못한 어른 교인보다 못한 목사 안타깝게도 개보다 못한 사람도 더러 있다 해서?
    • 오피니언
    • 기고
    • 마음을 여는 시
    2020-08-0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