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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6)
    하나님을 아는 자는 사랑한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미움은 사단에게 속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아는 자는 사랑하면서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사랑하지 못하며 미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알고 거듭난 자, 은혜받은 자는 사랑의 중요성을 알고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것이 미워하는 것보다 더 쉽고 즐겁습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고 하나님 자녀의 삶은 사랑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거짓말하는 것이고 거짓 된 신앙인격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의 사랑은 지식적으로만 아는 사랑이 아니고, 마음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사랑, 실천하는 사랑,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거짓 사랑이요 위선입니다. 잘 가르치고 설교를 잘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위선이요 가짜입니다. 참된 사랑은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에 옮기는 사랑입니다. 리더는 사랑의 불을 붙여주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미움은 살인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요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미움은 사망이요 사랑은 생명입니다. 사랑은 자신도 살고 남고 살리는 생명 사역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는 자요 미워하 는 자는 어둠에 있는 자입니다. 말세는 사랑이 식어진다 예수님은 말세의 여러 가지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말세는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예언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이루어집니다. 미움으로 가득차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말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이 없습니다. 냉정하고 마음이 따뜻하지 못합니다. 말세는 자 기를 사랑합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말세는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이 식어지고, 세상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합니다. 이기주의 자신만 사랑할 때 삶이 삭막해지고 관계가 깨어집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사람들이 사납고 악합니다. 정죄하고, 고소하고, 죽이는 일까지 행합니다. 사랑이 식어진 가정과 교회는 행복하지 못 합니다. 사랑이 부흥과 화목, 행복의 열쇠가 됩니다. 말세의 징조, 사랑이 식어진 시대에 첫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령 받아 사랑의 열매 맺고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삶, 미움이 가득 찬 삶은 잘못된 영, 악령의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이단의 특징 중의 하나가 악하고, 사납고, 거짓되고, 미움이 가득하고, 사랑이 없습니다. 이단의 잘못된 점을 알고 빠져 나올려고 할 때 협박합니다. 만물의 마지막때, 말세에 정신 차리고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말세에 적극적으로 더욱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 열쇠입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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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27
  • 행복 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6)
    하나님의 사람이 모인 곳에 복이 있다. 은혜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왜냐하면 가시적으로 은혜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의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생활이 한결같이 복됩니다. 하나님께도 잘하지만 사람들에게도 잘합니다. 우리가 긴 신앙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을 한 가지라도 한 것이 있다면 인생의 역경을 만났을 때 “하나님, 옛날에 제가 행한 그 일을 기억하셔서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원합니다. 이 역경 또한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담대한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복된 이유는 이들에게는 이전에 신실하게 은혜로 다가오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무슨 일을 만나든 신실하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은혜 받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주님이 주신 비전을 품고 있기 때문에 역경이 닥쳐와도 세상 사람처럼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다시금 은혜의 자리로 돌아와 주님께 매달립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꿈을 가진 자는 아무리 어려움이 오더라도 넘어지거나 포기하지 않으며, 주님이 주신 꿈 때문에 때로는 밟히고 눌림을 당해도 절대 소중한 인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참으로 건강하고 그 교회는 부흥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을 몰고 오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경북 의성에 있는 어떤 교회에 집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해는 너무 가물어서 마늘밭, 고추밭, 사과밭이 모두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과수원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가물어서 열매가 전부 시들시들해져 상품이 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교회에 기도를 선포하셨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비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도 들으시고 비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을 비를 달라고 기도하는 기도주간으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온 교인들이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마치는 날 하나님께서 소낙비를 내려주셨는데 그 교회 교인들이 사는 그곳에만 내려 주신 것입니다. 교인들이 다른 곳을 가보니 땅에 먼지만 나고 어디에도 비가 내린 곳이 없더랍니다. 여기저기를 다 돌아보아도 자기 교인들의 과일 밭에만 비를 주셨지 다른 곳에는 한군데도 비를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 교인들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사 믿겨지지 않는 기적적인 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엘리야가 비 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면 비가 오지 않았고, 비를 달라고 기도하면 비가 내렸습니다. 이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이란 이처럼 복이 보장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은혜’란 절대적인 것입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새 차라 할지라도 기름이 떨어지면 그 차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고철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믿는 사람에게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게 부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능력 있는 사람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의 은혜에 푹 젖어들어 있습니다. 약 100명의 자원하는 성도들과 함께 철야기도회를 40일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은혜로 인하여 육신이 피곤한 줄도 모릅니다. 어떤 때에는 두세 시간 밖에 자지 못해도 피곤한 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 목사님이 저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연철’이 아니라 ‘강철’이라고 말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이렇게 유신을 뛰어넘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우리 장로님들은 저에게 “목사님 체력은 대관절 어떤 체력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우리 부목사님들이 저를 못 따라옵니다. 저는 심방을 하루에 많게는 25가정을 심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저역 10시까지 심방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남다르게 건강의 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지게에 짐을 지고 다녔고 보릿단과 볏단을 날랐으며 산 속 깊이 들어가서 장작을 해왔습니다. 또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직접 노를 저어가며 투망으로 고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이런 일들을 하면서 체력을 쌓아왔던 것 같습니다. 청년기에는 7년간 산에서 살면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그 곳에서 밤이나 낮이나 찬송을 부르고 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을 위해서 그런 시간들을 통해 건강한 체력을 만들어주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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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4
  • 행복콘서트[정연철 목사]복된 사람의 비결(5)
    하나님을 만나야 하늘 문이 열린다.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어 52년 동안이나 왕위를 지킨 행운아입니다. 역대하 26장을 보면 웃시야 왕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국력을 든든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라도 상당히 부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은 말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채 온갖 교만과 불순종으로 가득 찬 인생으로 전락했습니다. 제사장만이 분향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다 나병에 걸려 비참하게 말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부름받은 이사야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깨닫게 됐습니다. 첫 번째로 깨달은 것은 우선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부정부패로 썩어져 가는 사회를 돌아보면 살 소망이 없어집니다. 진실 되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려움에 처하고, 힘 있고 돈 많은 부정한 자들이 큰 소리를 치는 시대가 돼 가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바라보며 “하나님, 어찌하여 이런 불의 한 자들을 이대로 두십니까?”라는 한탄의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을 보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웃시야의 죽음을 통하여 이사야는 교만한 자의 말로가 어떠한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한때 존귀한 위치에서 크게 쓰임 받았어도 교만해지면 하나님이 버리신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섭리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인생들은 시편 49편 20절의 말씀대로 “존귀하나 멸망하는 짐승”과도 같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52년 장기 집권하던 왕이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자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가 분명히 살아 있음을 믿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공의로 다스리시며 치료하실 것을 깊이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두 번째로 깨달은 것은 인생의 허무함입니다. 52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리며 굳건한 왕위를 지켰던 웃시야 왕이지만 하나님이 버리시자 순식간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이사야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인생의 허무’를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을 한 발짝 귀에서 잠시 돌아보면, 인간의 삶이란 것이 사실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길어야 80년 남짓 살다 가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런 허무한 인생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정립돼야만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정립됐을 때에는 존경받는 인생으로 평가받게 되지만,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살다 간 인생은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초대 왕 사울이 자만과 죄악 속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윗이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기도한 내용은 하나님의 성령을 거두어가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기도한 이유는 그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도 제법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이 참으로 보잘것없다는 것을 더 깊이 절간하고 있습니다. 이 긴 목회의 여정 속에서 참으로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여러 어려운 고비 때마다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 날 저는 제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20년 동안 한 교회에서만 목회를 하다 보니 그야말로 저는 탈진 상태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부산의 모 교회에서 교사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부흥회를 마치고 집에 갈 때는 엉금엉금 기어갈 정도로 영육이 메마른 상태를 지나온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메마른 풀과 같은 저의 영혼과 육신에 힘을 주시옵소서. 저의 영혼과 육신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셔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새 힘을 달라고 주님께 매달리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그 어는 누구라도 우리 인생을 쓸데없이 버려진 메마른 풀과도 같은 존재로 전락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쓸데없다 하시고 버리시면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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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4
  • 행복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4)
    예수 그리스도, 하늘 문을 여는 열쇠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아주 다정하게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 될 만큼 깊은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우연히 교회를 다니게 됐고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다 보니 둘의 관계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지 않던 친구는 섭섭한 마음도 들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화 나가는 친구를 불러서 섭섭한 마음을 내비치며 교회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이 몇 살에 돌아가셨냐?” 그랬더니 “몰라.”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설교를 몇 번이나 하셨냐?”, “예수님이 태어난 고향이 어디냐?”라고 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질문에 답변을 못하자 그 친구를 보면서 “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예수를 믿냐? 넌 진짜 예수쟁이가 아니구나! 그런데 무슨 이유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거냐?”하면서 희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인이 된 친구의 대답이 참 재미있습니다. “나는 교회 나간 지 얼마 안 돼서 예수님 고향도 모르지만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이 있어. 첫 번째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무엇인지를 알고, 세 번째는 나 자신이 변했다는 거야. 나 자신이 변했어. 너도 잘 알겠지만 3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술독에 빠졌던 사람이잖아. 그런데 이제는 술을 끊었어. 그리고 가족의 중요성을 알았고. 내 인생에서 정말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삶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어.” 친한 친구가 정말 그렇게 변화된 모습을 지켜보았기에 그는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성경을 남과 같이 몰라도, 예수님께서 몇 살에 세상을 떠나셨는지 몰라도, 예수님 고향이 어딘지 몰라도 그것이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 달라졌는가? 내가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교회에 나가더니 변화됐구나! 이런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어야만 그 사람이 정말 복음으로 변화된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 6장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이 나타납니다. 사실 이사야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 것은 바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습니다. 웃시야가 누구입니까? 바로 이사야 선지자와 사촌지간이 아니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는 웃시야 왕을 많이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의지했던 웃시야가 처음에는 선왕이었지만, 나중에는 사울처럼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예배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저 적당히 제물만 차려놓은 채,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은 잊은 채 통과의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웃시야는 나병에 걸려서 죽게 됩니다. 교만한 육체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에 결국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웃시야가 죽던 해’에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사야가 의지하던 세상의 모든 것이 허망하게 됐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배를 드렸을 때, 이사야는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부복하고 헌신된 마음으로 “나를 보내소서.”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여호와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진정한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마 이‘웃시야의 예배’와 같은 형식적인 예배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없이 적당히 종교적 안위를 얻기 위해 교회에 다니면서 참된 예배자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온전히 합한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면서 환도뼈가 부러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한 이후에도 자신의 아집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여러 번 실수를 거듭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이 얼마나 고집 센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변화되는 것이 어려운지를 야곱의 생애를 통해 성경은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성이 변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타고난 모습이 새로워지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제가 이런 변화의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저 역시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목사가 된 후에 성경을 보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나 자신을 변화시켜달라고 수도 없이 기도를 했지만 변화됐나 싶어 뒤를 돌아보면 변화된 모습이 별로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은 너무나 잘 압니다. 사람들은 “정 목사가 정말 달라졌어. 정말 예수를 믿는 목회자다워”라고 말하지만, 제가 저 자신을 가만히 보면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작은 것 하나 용서하지 못하고, 작은 것 하나 이해하지 못하며, 겉으로는 양보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양보할 줄 모르고, 내 속에 증오와 미움이 있는 것을 보면서 정말 달라지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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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0
  • 행복 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3)
    하늘 문을 여는 비결(2) 한나의 경우 마음의 아프믈 해결할 길이 없어서 성전에 나와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입술을 열어 기도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몸부림을 치며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다 보니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제사장이 와서 보니 한나가 얼굴이 불그스름해가지고 입술로 중얼중얼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임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한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술에 취했다고 하자 한나는 “나는 술 취한 것이 아닙니다. 내 원통함을 하나님 앞에 아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기도가 점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소리가 작아집니다. 기도 줄을 잡기 전에는 몸부림을 칩니다. 왜냐면 자꾸 다른 것이 생각나기 때문에 몸부림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더 크게 부르짖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흑암의 세력을 뚫고 나가려면 기도 소리가 지붕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옆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저 교회 이상하다.”라는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저는 개척하면서부터 성도들에게 통성기도를 시켰습니다. “주여!” 소리가 저 건너편에서는 “불이야, 불이야!”라는 소리로 들려서 사람들이 물 양동이를 들고 교회로 달려온 적도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한 것은 자기 자신을 죽인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 자체가 죽는 것이고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임 하나님을 움직이면 사람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어떤 분은 통성기도를 하면 귀를 막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오신 어떤 성도가 처음에는 그렇게 귀를 막았지만 나중에는 우리 보다도 더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온 사람들은 다른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을 잘 못합니다. 너무 조용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합니다. 엘리야가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기도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존 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그는 오직 하나님만 의존 했습니다. 우리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되겠나이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결과로 큰비가 내렸습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비가 내리는지라”(왕상18:45). 조그만 구름이 나중에는 큰비가 되어 내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은 마지막 절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46절). 여기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열기 위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능력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마차를 타고 달리는 달리는 사람보다도 앞서가서 이스라엘 궁전으로 들어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문제를 가지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문제만 해결해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인 응답도 있고 지체되는 응답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만 어떤 때는 기도해도 응답이 늦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뜻으로 기도 응답을 받을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머무르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기록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너에게 큰 것을 맡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큰 것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작은 것에 충성하지 못하면 큰 것에도 충성하지 못한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을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습관저긍로 기도해서는 곤란하며, 하나님과 나 사이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고 중심이 하나님께 고정된 기도가 절대적으로 요청됩니다.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는 그것은 응답인 줄로 믿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하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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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6
  • 행복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3)
    하늘 문을 여는 회개(2) 봉사를 하지 못한 사람은 세상의 일보다도 교회의 일을 먼저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무너진 단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늘 문을 열기 위해 단을 구축한 후 희생의 제물을 드렸습니다.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았다”(왕상18:33)고 했습니다. 하늘 문은 무조건 열리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제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것은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드렸을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어서 이삭을 낳고 보니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자꾸 이삭에게 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삭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되겠구나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아브라함아, 모리아 산에 가서 이삭을 바쳐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나무를 지고 산에 올라갑니다. 아들 이삭이 “아버지, 나무는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느니라.”라고만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포개 놓고, 이삭을 나무 위에다 얹어 놓은 후 칼을 빼서 찌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아노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준비해 놓으신 수양을 제물로 잡도록 해주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아브라함이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것은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열려면 제대로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자기 자신의 삶을 바르게 드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세속적인 마음을 다 끄집어내어 불태워야 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이들이 흐트러진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흙탕물을 튀기는 것입니다. 혈기를 부리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이 받아먹는 밥은 건강한 밥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교사들이 세상일로 정신없이 쫓아다니다 준비도 없이 공과를 가르치는 것도 잘못된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변화가 없고 기도해 놓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늘 문을 여는 기도 엘리야를 보면 하늘 문을 열기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왕상18:42). 하늘 문이 열릴 때까지, 빗소리가 들릴 때까지, 조그마한 구름이 떠오를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죄를 짓기는 쉬지만 하늘 문을 여는 것은 이렇게 힘이 드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복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러므로 잘 될 때 조심하는 것이 필요하고 절대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모든 것을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재물도 지나가고 명예도 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오늘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병들 때나 늘 내 곁에서 나를 붙들고 계시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늘 문을 열려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것은 힘든 일이고, 중노동 중에 중노동입니다. 이것은 가만히 묵상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몸부림입니다. 자기 자신의 피와 땀을 짜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응답받는 기도들은 한결같이 몸부림치는 간절한 간구요 호소였습니다. 새벽기도나 철야 기도를 할 때 의자에 앉아서 기도하지 말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권합니다. 무릎을 꿇으면 자연적으로 마음이 겸허해집니다. 사람이 배울수록, 지식이 많아질수록, 성숙할수록 어른 앞에 가면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습니다. 저는 그것을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배웠습니다. 엘리야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하늘 문이 열릴 때까지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엘리야는 허리를 굽혀 얼굴을 무릎 사이로 넣고 오랫동안 기도할 수 있을 만큼 기도의 훈련을 철저히 받았던 것 같습니다. 기도 훈련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무릎을 꿇으려면 관질이 뒤틀리고 아파 옵니다. 그래도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 훈련하면 자연스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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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8

실시간 논문/책 기사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0
    사랑과 미움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자주 바뀝니다. 사랑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면 관계가 좋아지고 미워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사랑하면 행복해지고 미워하면 불행해집니다. 사랑과 미움은 대조적이며 결과는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사랑하면서 사는 자는 자신이 먼저 기쁘고 감사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얻게 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부드럽고 말이 부드럽게 됩니다. 남을 미워하면 마음에 기쁨이 없게 됩니다. 미워하게 되면 마음이 거칠고 언어가 거칠게 됩니다 미움은 살인의 시작입니다. 미움으로 가득찬 리더가 있다면 공동체가 분열되고 무너지게 됩니다. 사랑의 삶을 사는 자는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게 마무리 됩니다. 미움과 시기로 가득 차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닌 사울의 마지막은 비참하게 끝이 났습니다. 사랑의 가족, 공동체 교회 공동체가 축복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사랑이 교회 성장의 비결입니다. 서로 미워하면 갈등이 일어나고, 분열되고, 다투고, 싸우게 되어 공동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이냐, 사단이 주는 미움의 마음이냐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넓은 마음입니다. 미움은 죄성이고 시기 질투입니다. 천국은 사랑만 있고 영원히 사랑하면서 사는 나라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미운 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편애하지 말고 골고루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가운데서 용납하라 사랑은 용납하는 것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는 것이 넉넉한 사랑입니다.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주는 마음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죄인들까지 품으시고 받아주는 사랑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를 초청하시고 예수님께로 오면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시는 사랑의 예수님이십니다. 믿음 약한 자, 의심하는 자, 죄짓고 방황하는 자를 용납하고 받아주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은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편견을 갖지 말고, 편애하지 말고, 인종차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자임을 알고 귀히 여기고 받아주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은 받아줍니다. 용납합 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용납하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인간은 무시당하고 배척당할 때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단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나 사람들은 받아주고 용납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올 때 받아주고 용납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교회 문턱을 낮추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올 때 환영해 주고, 받아주고, 용납해 주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은 넓은 마음, 인간의 영혼을 귀히 여기고 용납하고 받아주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인간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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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3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9)
    사랑은 갈등해결의 지혜 인생의 삶은 갈등의 연속입니다. 갈등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사소한 것이 원인이 되어 갈등이 일어납니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고통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갈등이 해결됩니다. 사랑은 갈등해결의 지혜요 열쇠입니다. 사랑이 부족하고 미움이 있을 때 갈등이 시작되고 갈등이 커지게 됩니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관계가 깨지고 관계가 깨지면 불행해집니다. 사랑은 갈등을 치유하는 능력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갈등의 이유를 덮어버리게 됩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이 문제가 되어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랑은 지혜요, 능력입니다. 사랑의 능력으로 갈등이 해결됩니다. 갈등이 해결되면 화목하게 되고 좋은 관계가 유지됩니다. 삶의 기쁨과 평안은 좋은 관계에 있습니다. 사랑으로 갈등을 치유하고, 갈등을 예방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자가 사랑의 리더입니다. 좋은 리더의 기준은 사랑의 마음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화목을 만드는 자입니다. 사랑의 마음, 사랑의 동기로 행하는 리더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의 지혜로 갈등을 해결하는 자가 행복한 리더입니다. 리더가 행복하면 리더를 따르는 자들이 행복하고 공동체가 행복해집니다. 리더는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해결하기도 합니다. 사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리더가 좋은 리더입니다.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덕을 세워야 갈등이 줄어들고 해결됩니다. 믿음에 덕을 세워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자는 어디에서나 덕을 세웁니다. 덕을 세우지 않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사랑은 죄를 덮는다 죄, 허물이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사랑하면 허다한 허물을 덮어 버립니다. 남의 허물, 죄를 들추어내서 문제를 만드는 자는 사랑이 없는 자입니다. 사랑은 소경이 되게 합니다. Love is Blind 인간관계에서 사랑이 있으면 사람의 단점을 안보고 장점을 보게 됩니다. 누구나 단점이 있고 장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덮어 주고,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고, 기억도 안하시는 사랑의 예수님이십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선한 마음 가진 자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사랑의 마음은 복 받을 마음입니다. 노아의 아들 가운데 셈과 야벳은 아버지 노아의 실수 허물을 보고 덮어 주었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좋은 자세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죄와 허물을 덮어 준 셈과 야벳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허물과 죄를 들추어내고 폭로했던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리더는 남의 죄와 허물을 들추어 내지 않고 덮어 주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덮어 주는 자가 많지 않습니다. 미움의 마음으로 사람들의 죄, 허물을 확대하고 폭로하여 부끄럼을 당하게 하고 큰 상처를 주는 자가 있습니다. 나 자신도 죄와 허물이 많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남의 허물을 덮어 주는 포용력과 사랑의 마음을 가져 야 합니다. 말세 시대는 사랑이 식어지 시대이기에 종말의식을 가지고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데 미지근하지 말고 열정, 열심, 적극적으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나 혼자만 사랑하는 짝사랑이 아니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관계가 좋아집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삶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사랑으로 허물을 덮어 줄 때 가정과 공동체, 교회가 살아 움직이고 작은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면 후회 하지 않게 됩니다. 미워하면 후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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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8)
    사랑의 지혜 사랑하는 것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인간관계가 깨집니다. 지나친 사랑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관심을 주는 것은 좋은데 지나친 관심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사랑하는 데도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밀고 당기는 지혜입니다. 이중성품, 거짓 된 자, 성품이 까다로운 자를 사랑해야 하는데 힘듭니다. 거짓되고 성품이 까다로운 자를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아야 하나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의 지혜입니다. 너무 소외시키지는 않아야 하나 사랑의 마음으로 지혜 있게 대처해야 합니다. 진실 되고 성품 좋은 자는 조금만 사랑을 주어도 고마워하고 관계가 좋아집니다. 나쁜 사람은 문제를 만들고 좋은 사람은 문제를 덮어버리고 해결하는 자입니다. 사랑이 없고 상처 많은 자를 사랑해야 하나 지혜롭게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한 자들, 상처 받은 자들이 피해 의식을 가지고 사랑할 줄 모르며 사랑을 주는 자들에 대해서도 오해하게 됩니다. 문제 요소가 많은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를 대할 때 사랑의 지혜로 대해 주어야 상처를 덜 받게 됩니다. 사랑은 상처를 회복시키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데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랑을 주면 상대방도 내게 사랑을 주겠지 하는 기대감을 버리는 것이 사랑의 지혜입니다. 기대하지 않고, 사랑하고, 베풀고, 섬기는 것이 사랑의 지혜입니다. 어디에서나 나를 좋아하는 자가 있고 싫어하는 자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자를 생각하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랑하며 사는 삶이 사랑의 지혜입니다. 좋은 사람은 언제나 좋게 해석하고 인격, 성품을 가진 자입니다. 좋은 사람을 사랑하여 관계가 더 두텁게 하는 것이 사랑의 지혜입니다. 사랑은 지혜이고 예술입니다. 사랑하는데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데 지나친 무관심은 버리고 지나친 사랑은 사랑받는 자가 사랑의 소중함을 잊을 수 있기에 사랑의 균형을 맞추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전화 잘 안하다가 가끔 전화하면 고마워하는데 너무 자주 전화하면 가볍게 여기고 고마움을 모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랑은 인간을 대하는 관계인데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복음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사랑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의롭다 하시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전능하시다는 것을 부활하심으로서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고, 내가 너를 사랑해서 부활했다고 증거를 나타내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 되어 우리를 실망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약속대로 부활하셔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사랑의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사랑의 대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사랑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생각할 때,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사랑의 복음, 살리는 복음입니다. 사랑은 살리고 세우는 지혜요, 능력입니다. 누가 능력 있는 자입니까? 사랑하면서 사는 자, 사랑의 복음을 전하면서 사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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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3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7)
    사랑의 은사 사랑의 은사는 큰 은사입니다. 여러 가지 은사가 있지만 사랑의 은사가 가장 좋은 은사이고 최고의 은사입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이 잘 안 되기도 합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고 성령의 은사입니다. 성령 충만 받고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고 싶어집니다.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의 은사가 있으면 미운 마음이 사라지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랑의 하나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의 은사가 있으면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며 사는 것이 쉽고 즐거움이 됩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이 더 힘들고 미운 생각이 사라집니다. 내 힘으로 사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면 사람을 얻게 됩니다. 사람을 얻는 것이 재산이고, 사람을 잃은 것이 큰 손해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사람에 대해 기대를 낮추게 됩니다. 사랑하면 사람에 대해 욕심을 버립니다. 욕심 이 끼면 사랑이 아닙니다. 욕심을 가지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미워하게 되고, 미워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사람에 대해 욕심을 버리고 사랑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과 사랑의 은사를 하나님께 사모하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사랑의 은사를 주십니다. 사랑하며 사는 삶이 최고의 삶, 지혜의 삶입니다. 말세는 사랑이 식어지는 시대입니다.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며 식어진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능력 사랑은 능력입니다. 사랑은 핵폭탄보다 더 큰 능력입니다. 세상 권력보다 사랑의 능력이 큽니다. 사랑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사단 마귀는 잔인합니다. 사랑하면 서로 느끼고 통합니다. 사랑으로 대화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육신의 병, 마음의 병, 마음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미움은 스트레스와 병의 원인이 됩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쫒는 능력입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을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사랑은 사단과 세상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참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자의 마음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사랑으로 전도하고, 상담하고, 가르치고, 설교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사랑의 마음은 따뜻하고 온유한 마음입니다. 사랑은 관계의 능력이 되고 갈등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미움은 관계를 깨뜨리고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랑이 최고의 능력이고 설득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소통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교육해야 교육이 잘 됩니다. 사랑은 리더십의 비밀입니다. 다윗의 리더십의 특징은 사랑 실천입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시기 질투하며, 죽이려고 했던 사울을 미워하거나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리더십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마음으로 원수까지 사랑을 실천한 다윗을 향해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했습니다. 요셉의 리더십도 사랑의 리더십입니다. 구덩이에 던지고 애굽에 팔아넘긴 형제들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요셉은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의 능력을 믿고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믿음의 사람이고 지혜자입니다. 참 사랑은 말만 가지고 하는 사랑이 아니고 실천하는 사랑입니다. 병든 자를 돌보아 보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리더와 인격이 성숙한 자는 사랑하면서 사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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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0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6)
    하나님을 아는 자는 사랑한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미움은 사단에게 속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아는 자는 사랑하면서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사랑하지 못하며 미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알고 거듭난 자, 은혜받은 자는 사랑의 중요성을 알고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것이 미워하는 것보다 더 쉽고 즐겁습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고 하나님 자녀의 삶은 사랑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거짓말하는 것이고 거짓 된 신앙인격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의 사랑은 지식적으로만 아는 사랑이 아니고, 마음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사랑, 실천하는 사랑,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거짓 사랑이요 위선입니다. 잘 가르치고 설교를 잘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위선이요 가짜입니다. 참된 사랑은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에 옮기는 사랑입니다. 리더는 사랑의 불을 붙여주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미움은 살인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요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미움은 사망이요 사랑은 생명입니다. 사랑은 자신도 살고 남고 살리는 생명 사역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는 자요 미워하 는 자는 어둠에 있는 자입니다. 말세는 사랑이 식어진다 예수님은 말세의 여러 가지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말세는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예언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이루어집니다. 미움으로 가득차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말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이 없습니다. 냉정하고 마음이 따뜻하지 못합니다. 말세는 자 기를 사랑합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말세는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이 식어지고, 세상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합니다. 이기주의 자신만 사랑할 때 삶이 삭막해지고 관계가 깨어집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사람들이 사납고 악합니다. 정죄하고, 고소하고, 죽이는 일까지 행합니다. 사랑이 식어진 가정과 교회는 행복하지 못 합니다. 사랑이 부흥과 화목, 행복의 열쇠가 됩니다. 말세의 징조, 사랑이 식어진 시대에 첫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령 받아 사랑의 열매 맺고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삶, 미움이 가득 찬 삶은 잘못된 영, 악령의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이단의 특징 중의 하나가 악하고, 사납고, 거짓되고, 미움이 가득하고, 사랑이 없습니다. 이단의 잘못된 점을 알고 빠져 나올려고 할 때 협박합니다. 만물의 마지막때, 말세에 정신 차리고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말세에 적극적으로 더욱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 열쇠입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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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책
    2022-07-27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5)
    사랑의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성령님은 따스한 하나님이십니다. 부드러운 성령님, 사랑의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얼마나 사랑이 많은지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십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은 큰 관심을 가지신 성령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성령님이시기에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할 때 사랑의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따뜻한 사랑의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변호사가 되어 변호해 주고 보호해 주십니다. 슬플 때 위로해 주십니다. 위로의 영, 격려의 영, 성령님은 사랑의 성령님이십니다. 사랑의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기에 말씀을 통하여 은혜 받게 하시고 잘못된 길을 갈 때는 깨닫게도 하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사랑의 성령님은 거듭나게 해주시고 새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영감과 지혜주시고 성령의 좋은 열매 맺게 하십니다. 사랑의 성령님이십니다. 사랑의 성령님과 동행하며 좋은 관계 맺고 사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사랑의 성령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사랑의 성령님과 동행할 때 사랑의 사람, 사랑의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성령님으로 부터 성령받으면 따뜻한 자로 사랑의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 성령 충만하면 열매가 맺힙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 중 첫 번째 열매입니다. 사랑이 가장 중요한 열매입니다. 사랑은 계속해야 합니다. 사랑하다가 포기하고 미워하면 실패합니다. 계속 사랑,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고 끝까지 관계가 좋아집니다. 가까운 사이의 관계에서 관계가 깨지는 이유는 계속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열 번 잘해주다가 한 번 잘못하면 돌아서고 배반하게 됩니다. 인간의 죄성이기에 믿을 수 없습니다. 아홉 번 사랑해 주고 잘해준 것을 잊어버리고 한 가지 섭섭한 것만 기억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합니다. 받은 사랑 하나라도 있으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나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해야 참 사랑이고 인간관계가 깨지지 않게 됩니다. 사랑이 중요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 알면서도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것이 쉽습니다. 성령 받고 성령 충만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할 힘이 생깁니다. 사랑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것이 즐겁고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넘치는 사랑의 공동체는 성령충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힘듭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 받으면 원수를 사랑합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원수를 향해 보복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하면 원수를 이기는 것이고 원수가 생기지 않게 됩니다. 누구와도 원수를 만들지 않고 사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스데반과 다윗의 원수 사랑의 비결은 성령충만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령 충만함으로 사랑 충만,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차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사랑으로 편지를 썼으며 성도를 향해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2-07-14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4)
    예수님의 사랑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했으나 실패 했지만 예수님은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절정입니다.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십자가 때문에 죄인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억지로 죽어주신 것이 아니요 스스로 자발적으로 죽어주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사랑이 많아도 나 대신 죽어 줄 자가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 하나 대신해서 죽어주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복음인데 사랑의 복음입니다. 사랑의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를 사랑해 준다는 소식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사랑으로 가득 차 희생하신 삶, 섬김의 삶입니다. 죄인들, 수많은 병든 자, 소외된 자, 가난한 자들을 사랑해서 구원해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위로와 용기를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희생입니다. 사랑하면 희생합니다. 희생하는 것을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쁨과 사명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는 희생으로 죄인을 살려주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희생해서 살리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사랑은 살려 주는 지혜요 힘입니다. 미움은 살인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미워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향해 비웃고 저주하고, 욕하고, 침 뱉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까지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용서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용서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면 불쌍히 여겨 주고 용서해 줍니다. 사랑은 단점을 보지 않고 장점을 보게 됩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 주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삶이 아니요 우리를 위해 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함을 체험하시면서 우리의 가난을 이해하시고 우리에게 부요함을 주십니다. 예수님 자신은 죽고 대신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나의 슬픔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어주셨습니다. 나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나 위하여 천국 준비하시고 나 위하여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고 나 위하여 모든 삶을 드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는 희생으로 많은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사랑은 열매 맺게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행할 때 열매 맺게 됩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관계의 능력, 화목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죄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 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불화의 관계를 화목의 관계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사랑은 좋은 관계를 맺게 하고 화목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나로 인해 관계가 좋아지고 화목이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마음으로 사역하셨습니다. 목자 없는 무리를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해 주시고 병든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누가 만든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 죽어주신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 화목을 만드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능력이고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고난 후에 영광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십자가 고난을 참고 인내할 때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처럼 사랑하면서 살 때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신실한 사랑,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신 예수님을 우리도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식어진 말세 시대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삶은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을 지키는 삶입니다. 힘든 시대에 서로 사랑함으로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2-06-28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3)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좋은 리더입니다. 사랑이 많은 리더는 공동체를 세웁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르치고 설교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우리가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을 지키고,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성경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인간관계가 좋아집니다. 사랑은 인간관계의 열쇠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자가 지혜자이며 리더입니다. 사랑이 없는 자는 고독하게 되고 실패하게 됩니다. 십계명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 사랑, 인간관계의 관계, 이웃 사랑의 중요성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을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중요한 명령입니다. 성경을 요약하면 “사랑하라”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의 리더십은 관계의 리더십입니다. 사랑의 리더십이 최고의 리더십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거짓이요 위선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흉내는 냈지만,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 사람에 대해 비판하고 미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인이었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 난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면 인간관계가 잘됩니다. 이웃 사람을 사랑하되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사랑합니다. 자신의 몸을 사랑합니다. 나 자신, 내 몸을 사랑하듯이 이웃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표현이요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 넓은 사랑이십니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적이며 변하는 사랑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선물로 준 사랑의 편지요 사랑의 책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나 사람은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 인간을 사랑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사랑하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되고 지옥에 가야 하는 인생인데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인간을 구원시키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인간을 구원해 주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살리시는 하나님, 용서해 주시고 기회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외모 형편을 보시지 않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해 주신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악인과 의인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를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심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긍휼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지어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는 사랑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사랑의 복음입니다. 사랑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Amaging Grace. 놀라운 은총입니다.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가르쳐 주는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비유입니다. 죄는 우리가 짓고 용서는 하나님이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선택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나의 목자, 피난처가 되십니다.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먹이시고, 기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는 이유도 우리가 깨닫고 잘 되게 하기위하여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십니다. 우리를 품으시고 내 모습 이대로 받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저주보다는 축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우리의 감정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대하시고 바라보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 자연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제일이고, 능력이고 , 지혜요, 리더십 입니다. 사랑은 감동을 주고, 설득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랑은 좋은 관계의 열쇠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 사랑의 성령님이십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2-06-14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2)
    하나님의 넓은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넓고 깊은 사랑입니다. 인간의 머리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넓은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신 이유는 사랑이 많으시고 마음이 넓으시기 때문입니다. 넓고 크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온 우주를 품으시고 수 많은 죄인을 품으시고 사랑해주십니다. 사랑의 마음은 넓은 마음입니다. 좋은 사람 좋은 리더의 기준은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 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살면 누구나 사랑할수 있고 골라서 사귀지 않게 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사랑하고 관계 맺는다면 많은 사람을 얻을수 없습니다. 사랑하면서 사는 자는 많은 사람을 얻게 됩니다.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며, 사람 얻는 것이 재산이요 축복입니다. 사랑하면 좋은 인맥을 가지게 됩니다. 사랑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넓은 마음 포용력 넓은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긍휼, 자비, 불쌍히 여겨주심, 오래 참으심, 은혜로우심, 인자하심이 풍부하심, 노하기를 더디하심, 지키시고, 도와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선한 목자,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않으심, 용서하시는 하나님 등 다양하게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둘째 아들 탕자의 비유는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가르쳐줍니다. 아버지 집에서 떠나간 아들, 망한 아들 가난해진 아들, 허랑방탕한 죄를 짓고 실패한 아들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돌아왔을 때 기뻐하고 잔치하는 아버지의 넓은 사랑 하나님의 넓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넓은 사랑은 죄지은 자, 망한 자, 실패한 자 까지도 사랑하시고, 포용하시고, 사랑하는 넓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탕자같은 삶을 살았는데 우리를 사랑하시고 품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구원 받을 자격 없는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의 넓은 사랑 으로 선택 받고 구원 받은 자입니다. 호세아가 음란한 여자 고멜을 사랑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죄가운데 음란하게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과 벗되어 살던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삶이 변합니다. 사랑은 감동을 줍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하면 감동을 주고 사람들이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게 됩니다. 사랑의 리더십은 관계의 리더십입니다. 사랑이 제일이고 최고의 리더십 관계의 비결입니다. 사랑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이기고 승리합니다. 사랑은 아픔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고 고통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면서 산다면 승리자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사랑하면서 사는 자는 사랑받고 존경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은 넓은 사랑을 가지신 선한 목자 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사랑 넓은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참된 예수님의 제자의 증거는 ‘서로 사랑하는 자’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누구나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자까지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사랑이 전부이고 지혜이고 능력이고 리더십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넓은 사랑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책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버리시거나 미워하시지 않습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연약을 아시는 하나님, 우리가 약하여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마음 아파하시면서 사랑하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 똑똑하고 성공하는 자녀만 사랑하지 않고 못난 자녀 실패한 자녀, 병든 자녀를 가슴 아파하면서 늘 생각하며 사랑하게 됩니다. 성경 전체의 중심은 하나님의 넓은 사랑이십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전 세계를 통치하십니다. 사랑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약점이 많아도 내 모습 이대로 받아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질 속성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미워하는 것, 죄짓는 것을 안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해서 징계하시고 고난을 주어 연단시키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고난과 시험도 감당할만한 고난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이 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고 힘들 때 불평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마귀는 싫어 하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뜨겁게 사랑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누면서 사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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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책
    2022-05-31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
    사랑의 리더십 사랑이 제일입니다.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이 중요한 것을 아는데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사랑은 성령충만의 열매입니다. 성령충만해야 사랑하게 됩니다. 리더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사랑이 많은 리더가 좋은 리더입니다. 사랑의 리더십이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사랑으로 무슨 일을 하면 부작용이 적고 열매가 좋게 맺힙니다. 사랑의 리더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이 지혜요, 능력이요, 리더십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 받고 싶어합니다. 사랑해 주는 자를 좋아하고 따르게 됩니다. 사랑이 인간관계를 잘 되게 합니다. 미움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미움을 가진 리더는 무너지고 실패합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사랑의 리더십, 관계 리더십입니다. 사랑은 심는 것입니다. 사랑을 심어야 사랑을 거두게 됩니다. 누가 큰 자일까요? 사랑이 많아 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사랑의 리더십이 최고의 리더십입니다. 사랑은 좋은 영향력을 주고 감동을 줍니다. 사랑하면 이해합니다. 대화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줍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섬김, 대접 받으면 기쁘고 행복합니다. 사랑하면 후회가 없게 되고,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면 후회하게 됩니다. 사랑이 식어진 시대입니다. 인간은 사랑에 목말라 합니다. 사랑 받기만 바라지말고 내가 먼저 사랑하는 것이 삶의 지혜, 관계의 지혜입니다. 사랑이 많은 리더는 사랑하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리더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사랑하면서 사는 사랑의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는 지혜자이고 미워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리더십으로 좋은 영향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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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책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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