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4(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논문/책

실시간뉴스
  • 행복 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6)
    하나님의 사람이 모인 곳에 복이 있다. 은혜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왜냐하면 가시적으로 은혜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의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생활이 한결같이 복됩니다. 하나님께도 잘하지만 사람들에게도 잘합니다. 우리가 긴 신앙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을 한 가지라도 한 것이 있다면 인생의 역경을 만났을 때 “하나님, 옛날에 제가 행한 그 일을 기억하셔서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원합니다. 이 역경 또한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담대한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복된 이유는 이들에게는 이전에 신실하게 은혜로 다가오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무슨 일을 만나든 신실하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은혜 받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주님이 주신 비전을 품고 있기 때문에 역경이 닥쳐와도 세상 사람처럼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다시금 은혜의 자리로 돌아와 주님께 매달립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꿈을 가진 자는 아무리 어려움이 오더라도 넘어지거나 포기하지 않으며, 주님이 주신 꿈 때문에 때로는 밟히고 눌림을 당해도 절대 소중한 인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참으로 건강하고 그 교회는 부흥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을 몰고 오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경북 의성에 있는 어떤 교회에 집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해는 너무 가물어서 마늘밭, 고추밭, 사과밭이 모두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과수원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가물어서 열매가 전부 시들시들해져 상품이 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교회에 기도를 선포하셨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비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도 들으시고 비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을 비를 달라고 기도하는 기도주간으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온 교인들이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마치는 날 하나님께서 소낙비를 내려주셨는데 그 교회 교인들이 사는 그곳에만 내려 주신 것입니다. 교인들이 다른 곳을 가보니 땅에 먼지만 나고 어디에도 비가 내린 곳이 없더랍니다. 여기저기를 다 돌아보아도 자기 교인들의 과일 밭에만 비를 주셨지 다른 곳에는 한군데도 비를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 교인들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사 믿겨지지 않는 기적적인 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엘리야가 비 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면 비가 오지 않았고, 비를 달라고 기도하면 비가 내렸습니다. 이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이란 이처럼 복이 보장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은혜’란 절대적인 것입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새 차라 할지라도 기름이 떨어지면 그 차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고철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믿는 사람에게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게 부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능력 있는 사람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의 은혜에 푹 젖어들어 있습니다. 약 100명의 자원하는 성도들과 함께 철야기도회를 40일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은혜로 인하여 육신이 피곤한 줄도 모릅니다. 어떤 때에는 두세 시간 밖에 자지 못해도 피곤한 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 목사님이 저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연철’이 아니라 ‘강철’이라고 말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이렇게 유신을 뛰어넘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우리 장로님들은 저에게 “목사님 체력은 대관절 어떤 체력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우리 부목사님들이 저를 못 따라옵니다. 저는 심방을 하루에 많게는 25가정을 심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저역 10시까지 심방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남다르게 건강의 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지게에 짐을 지고 다녔고 보릿단과 볏단을 날랐으며 산 속 깊이 들어가서 장작을 해왔습니다. 또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직접 노를 저어가며 투망으로 고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이런 일들을 하면서 체력을 쌓아왔던 것 같습니다. 청년기에는 7년간 산에서 살면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그 곳에서 밤이나 낮이나 찬송을 부르고 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을 위해서 그런 시간들을 통해 건강한 체력을 만들어주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0-09-24
  • 행복콘서트[정연철 목사]복된 사람의 비결(5)
    하나님을 만나야 하늘 문이 열린다.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어 52년 동안이나 왕위를 지킨 행운아입니다. 역대하 26장을 보면 웃시야 왕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국력을 든든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라도 상당히 부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은 말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채 온갖 교만과 불순종으로 가득 찬 인생으로 전락했습니다. 제사장만이 분향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다 나병에 걸려 비참하게 말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부름받은 이사야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깨닫게 됐습니다. 첫 번째로 깨달은 것은 우선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부정부패로 썩어져 가는 사회를 돌아보면 살 소망이 없어집니다. 진실 되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려움에 처하고, 힘 있고 돈 많은 부정한 자들이 큰 소리를 치는 시대가 돼 가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바라보며 “하나님, 어찌하여 이런 불의 한 자들을 이대로 두십니까?”라는 한탄의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을 보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웃시야의 죽음을 통하여 이사야는 교만한 자의 말로가 어떠한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한때 존귀한 위치에서 크게 쓰임 받았어도 교만해지면 하나님이 버리신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섭리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인생들은 시편 49편 20절의 말씀대로 “존귀하나 멸망하는 짐승”과도 같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52년 장기 집권하던 왕이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자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가 분명히 살아 있음을 믿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공의로 다스리시며 치료하실 것을 깊이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두 번째로 깨달은 것은 인생의 허무함입니다. 52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리며 굳건한 왕위를 지켰던 웃시야 왕이지만 하나님이 버리시자 순식간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이사야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인생의 허무’를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을 한 발짝 귀에서 잠시 돌아보면, 인간의 삶이란 것이 사실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길어야 80년 남짓 살다 가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런 허무한 인생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정립돼야만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정립됐을 때에는 존경받는 인생으로 평가받게 되지만,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살다 간 인생은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초대 왕 사울이 자만과 죄악 속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윗이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기도한 내용은 하나님의 성령을 거두어가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기도한 이유는 그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도 제법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이 참으로 보잘것없다는 것을 더 깊이 절간하고 있습니다. 이 긴 목회의 여정 속에서 참으로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여러 어려운 고비 때마다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 날 저는 제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20년 동안 한 교회에서만 목회를 하다 보니 그야말로 저는 탈진 상태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부산의 모 교회에서 교사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부흥회를 마치고 집에 갈 때는 엉금엉금 기어갈 정도로 영육이 메마른 상태를 지나온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메마른 풀과 같은 저의 영혼과 육신에 힘을 주시옵소서. 저의 영혼과 육신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셔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새 힘을 달라고 주님께 매달리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그 어는 누구라도 우리 인생을 쓸데없이 버려진 메마른 풀과도 같은 존재로 전락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쓸데없다 하시고 버리시면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0-09-04
  • 행복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4)
    예수 그리스도, 하늘 문을 여는 열쇠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아주 다정하게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 될 만큼 깊은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우연히 교회를 다니게 됐고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다 보니 둘의 관계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지 않던 친구는 섭섭한 마음도 들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화 나가는 친구를 불러서 섭섭한 마음을 내비치며 교회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이 몇 살에 돌아가셨냐?” 그랬더니 “몰라.”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설교를 몇 번이나 하셨냐?”, “예수님이 태어난 고향이 어디냐?”라고 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질문에 답변을 못하자 그 친구를 보면서 “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예수를 믿냐? 넌 진짜 예수쟁이가 아니구나! 그런데 무슨 이유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거냐?”하면서 희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인이 된 친구의 대답이 참 재미있습니다. “나는 교회 나간 지 얼마 안 돼서 예수님 고향도 모르지만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이 있어. 첫 번째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무엇인지를 알고, 세 번째는 나 자신이 변했다는 거야. 나 자신이 변했어. 너도 잘 알겠지만 3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술독에 빠졌던 사람이잖아. 그런데 이제는 술을 끊었어. 그리고 가족의 중요성을 알았고. 내 인생에서 정말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삶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어.” 친한 친구가 정말 그렇게 변화된 모습을 지켜보았기에 그는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성경을 남과 같이 몰라도, 예수님께서 몇 살에 세상을 떠나셨는지 몰라도, 예수님 고향이 어딘지 몰라도 그것이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 달라졌는가? 내가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교회에 나가더니 변화됐구나! 이런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어야만 그 사람이 정말 복음으로 변화된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 6장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이 나타납니다. 사실 이사야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 것은 바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습니다. 웃시야가 누구입니까? 바로 이사야 선지자와 사촌지간이 아니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는 웃시야 왕을 많이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의지했던 웃시야가 처음에는 선왕이었지만, 나중에는 사울처럼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예배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저 적당히 제물만 차려놓은 채,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은 잊은 채 통과의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웃시야는 나병에 걸려서 죽게 됩니다. 교만한 육체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에 결국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웃시야가 죽던 해’에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사야가 의지하던 세상의 모든 것이 허망하게 됐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배를 드렸을 때, 이사야는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부복하고 헌신된 마음으로 “나를 보내소서.”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여호와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진정한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마 이‘웃시야의 예배’와 같은 형식적인 예배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없이 적당히 종교적 안위를 얻기 위해 교회에 다니면서 참된 예배자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온전히 합한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면서 환도뼈가 부러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한 이후에도 자신의 아집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여러 번 실수를 거듭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이 얼마나 고집 센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변화되는 것이 어려운지를 야곱의 생애를 통해 성경은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성이 변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타고난 모습이 새로워지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제가 이런 변화의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저 역시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목사가 된 후에 성경을 보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나 자신을 변화시켜달라고 수도 없이 기도를 했지만 변화됐나 싶어 뒤를 돌아보면 변화된 모습이 별로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은 너무나 잘 압니다. 사람들은 “정 목사가 정말 달라졌어. 정말 예수를 믿는 목회자다워”라고 말하지만, 제가 저 자신을 가만히 보면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작은 것 하나 용서하지 못하고, 작은 것 하나 이해하지 못하며, 겉으로는 양보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양보할 줄 모르고, 내 속에 증오와 미움이 있는 것을 보면서 정말 달라지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0-08-20
  • 행복 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3)
    하늘 문을 여는 비결(2) 한나의 경우 마음의 아프믈 해결할 길이 없어서 성전에 나와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입술을 열어 기도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몸부림을 치며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다 보니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제사장이 와서 보니 한나가 얼굴이 불그스름해가지고 입술로 중얼중얼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임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한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술에 취했다고 하자 한나는 “나는 술 취한 것이 아닙니다. 내 원통함을 하나님 앞에 아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기도가 점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소리가 작아집니다. 기도 줄을 잡기 전에는 몸부림을 칩니다. 왜냐면 자꾸 다른 것이 생각나기 때문에 몸부림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더 크게 부르짖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흑암의 세력을 뚫고 나가려면 기도 소리가 지붕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옆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저 교회 이상하다.”라는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저는 개척하면서부터 성도들에게 통성기도를 시켰습니다. “주여!” 소리가 저 건너편에서는 “불이야, 불이야!”라는 소리로 들려서 사람들이 물 양동이를 들고 교회로 달려온 적도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한 것은 자기 자신을 죽인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 자체가 죽는 것이고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임 하나님을 움직이면 사람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어떤 분은 통성기도를 하면 귀를 막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오신 어떤 성도가 처음에는 그렇게 귀를 막았지만 나중에는 우리 보다도 더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온 사람들은 다른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을 잘 못합니다. 너무 조용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합니다. 엘리야가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기도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존 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그는 오직 하나님만 의존 했습니다. 우리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되겠나이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결과로 큰비가 내렸습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비가 내리는지라”(왕상18:45). 조그만 구름이 나중에는 큰비가 되어 내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은 마지막 절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46절). 여기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열기 위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능력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마차를 타고 달리는 달리는 사람보다도 앞서가서 이스라엘 궁전으로 들어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문제를 가지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문제만 해결해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인 응답도 있고 지체되는 응답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만 어떤 때는 기도해도 응답이 늦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뜻으로 기도 응답을 받을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머무르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기록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너에게 큰 것을 맡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큰 것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작은 것에 충성하지 못하면 큰 것에도 충성하지 못한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을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습관저긍로 기도해서는 곤란하며, 하나님과 나 사이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고 중심이 하나님께 고정된 기도가 절대적으로 요청됩니다.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는 그것은 응답인 줄로 믿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하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0-08-06
  • 행복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3)
    하늘 문을 여는 회개(2) 봉사를 하지 못한 사람은 세상의 일보다도 교회의 일을 먼저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무너진 단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늘 문을 열기 위해 단을 구축한 후 희생의 제물을 드렸습니다.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았다”(왕상18:33)고 했습니다. 하늘 문은 무조건 열리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제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것은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드렸을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어서 이삭을 낳고 보니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자꾸 이삭에게 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삭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되겠구나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아브라함아, 모리아 산에 가서 이삭을 바쳐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나무를 지고 산에 올라갑니다. 아들 이삭이 “아버지, 나무는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느니라.”라고만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포개 놓고, 이삭을 나무 위에다 얹어 놓은 후 칼을 빼서 찌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아노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준비해 놓으신 수양을 제물로 잡도록 해주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아브라함이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것은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열려면 제대로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자기 자신의 삶을 바르게 드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세속적인 마음을 다 끄집어내어 불태워야 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이들이 흐트러진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흙탕물을 튀기는 것입니다. 혈기를 부리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이 받아먹는 밥은 건강한 밥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교사들이 세상일로 정신없이 쫓아다니다 준비도 없이 공과를 가르치는 것도 잘못된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변화가 없고 기도해 놓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늘 문을 여는 기도 엘리야를 보면 하늘 문을 열기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왕상18:42). 하늘 문이 열릴 때까지, 빗소리가 들릴 때까지, 조그마한 구름이 떠오를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죄를 짓기는 쉬지만 하늘 문을 여는 것은 이렇게 힘이 드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복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러므로 잘 될 때 조심하는 것이 필요하고 절대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모든 것을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재물도 지나가고 명예도 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오늘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병들 때나 늘 내 곁에서 나를 붙들고 계시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늘 문을 열려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것은 힘든 일이고, 중노동 중에 중노동입니다. 이것은 가만히 묵상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몸부림입니다. 자기 자신의 피와 땀을 짜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응답받는 기도들은 한결같이 몸부림치는 간절한 간구요 호소였습니다. 새벽기도나 철야 기도를 할 때 의자에 앉아서 기도하지 말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권합니다. 무릎을 꿇으면 자연적으로 마음이 겸허해집니다. 사람이 배울수록, 지식이 많아질수록, 성숙할수록 어른 앞에 가면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습니다. 저는 그것을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배웠습니다. 엘리야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하늘 문이 열릴 때까지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엘리야는 허리를 굽혀 얼굴을 무릎 사이로 넣고 오랫동안 기도할 수 있을 만큼 기도의 훈련을 철저히 받았던 것 같습니다. 기도 훈련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무릎을 꿇으려면 관질이 뒤틀리고 아파 옵니다. 그래도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 훈련하면 자연스러워집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0-07-08
  • 행복 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2)
    축복의 하늘 문이 닫히는 이유(2) 하나님은 요셉을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분리시켜 놓았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사로운 혈육의 정까지도 떼어 놓으시려고 야곱과 요셉을 향한 계획을 진행시키십니다. 아버지의 지나친 편애 때문에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었고, 그 시기심이 발단이 되어 결국 요셉이 멀리 애굽으로 팔려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게 만드십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게 만드십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하나님은 자신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견딜 수 없는 질투심에 불타오르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원망과 불평만 할 때에도 하늘 문이 닫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갈 때 그들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자 불뱀이 나와서 물기도 하고, 땅이 갈라져서 죽기도 하였습니다. 불뱀 사건을 통해 원망,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늘 문이 열린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만함도 역시 하늘 문을 닫치게 합니다. 저는 이것을 목회 사역 속에서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사람이 알면 얼마나 알며, 많이 가졌으면 또 얼마나 많이 가졌습니까? 성경에 보면 웃시야 왕은 교만하다가 나병에 걸렸습니다. 사울 왕도 교만하여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범죄 했지만 잘 깨닫고 겸손하니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똑똑한 사람보다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더 귀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중요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낮은 자, 겸손한 자를 쓰십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천대받고 멸시받는 자를 찾아가시고 가까이하시며 그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나타내십니다. 조금 많이 가진 것, 배운 것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면 안 됩니다. 항상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때가 하나님께서 저절로 높여 주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부부 사이에 사랑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범죄 하자 하나님과 맺었던 계약이 깨어졌고 그 결과로 따라온 것은 고통과 땀과 수고뿐이었습니다. 악한 왕 아합의 인생을 보면 꼭 이와 같은 태도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렇게 해야만 자기 잘못을 깨닫기 때문에 하늘 문을 꽉 닫아버리신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여는 회개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 문이 닫혀 있다면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내서 닫힌 축복의 하늘 문을 여는 것이 필요합니다. 건강의 문이 닫혀서 이 병원 저 병원 찾아가도 병이 낫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될 병임에 틀림없습니다. 안 될 때는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 문을 여는 방법은 죄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악을 품고 있으면 기도 응답이 되지 않으며 죄를 제거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8장을 보면 엘리야는 하늘 문을 열기 위해 범죄한 사람들을 다 붙잡아서 기손 시냇가에서 모두 처형합니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 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왕상18:40). 죄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되면 새싹이 움돋는 것처럼,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적으로 복이 오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기업에서도 사회에서도 범죄 때문에 오는 진노라면 온 백성이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나도 니느웨 성에 가서 범죄 함으로 인하여 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전하자 왕으로부터 온 백성이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이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앞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연히 벌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시 엘리야를 보면 그는 닫힌 하늘 문을 열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께 모으고 무너진 단을 구축했습니다. 이것은 철두철미한 회개를 의미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도 무너진 단이 있다면, 즉 새벽기도가 무너지고, 가정예배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결심이 무너졌다면 빨리 원상복구해야 합니다. 다시 원래 모습대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못한 사람은 빨리 하나님꼐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0-06-24

실시간 논문/책 기사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3)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좋은 리더입니다. 사랑이 많은 리더는 공동체를 세웁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르치고 설교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우리가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을 지키고,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성경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인간관계가 좋아집니다. 사랑은 인간관계의 열쇠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자가 지혜자이며 리더입니다. 사랑이 없는 자는 고독하게 되고 실패하게 됩니다. 십계명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 사랑, 인간관계의 관계, 이웃 사랑의 중요성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을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중요한 명령입니다. 성경을 요약하면 “사랑하라”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의 리더십은 관계의 리더십입니다. 사랑의 리더십이 최고의 리더십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거짓이요 위선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흉내는 냈지만,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 사람에 대해 비판하고 미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인이었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 난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면 인간관계가 잘됩니다. 이웃 사람을 사랑하되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사랑합니다. 자신의 몸을 사랑합니다. 나 자신, 내 몸을 사랑하듯이 이웃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표현이요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 넓은 사랑이십니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적이며 변하는 사랑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선물로 준 사랑의 편지요 사랑의 책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나 사람은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 인간을 사랑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사랑하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되고 지옥에 가야 하는 인생인데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인간을 구원시키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인간을 구원해 주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살리시는 하나님, 용서해 주시고 기회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외모 형편을 보시지 않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해 주신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악인과 의인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를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심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긍휼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지어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는 사랑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사랑의 복음입니다. 사랑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Amaging Grace. 놀라운 은총입니다.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가르쳐 주는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비유입니다. 죄는 우리가 짓고 용서는 하나님이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선택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나의 목자, 피난처가 되십니다.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먹이시고, 기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는 이유도 우리가 깨닫고 잘 되게 하기위하여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십니다. 우리를 품으시고 내 모습 이대로 받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저주보다는 축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우리의 감정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대하시고 바라보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 자연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제일이고, 능력이고 , 지혜요, 리더십 입니다. 사랑은 감동을 주고, 설득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랑은 좋은 관계의 열쇠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 사랑의 성령님이십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2-06-14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2)
    하나님의 넓은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넓고 깊은 사랑입니다. 인간의 머리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넓은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신 이유는 사랑이 많으시고 마음이 넓으시기 때문입니다. 넓고 크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온 우주를 품으시고 수 많은 죄인을 품으시고 사랑해주십니다. 사랑의 마음은 넓은 마음입니다. 좋은 사람 좋은 리더의 기준은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 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살면 누구나 사랑할수 있고 골라서 사귀지 않게 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사랑하고 관계 맺는다면 많은 사람을 얻을수 없습니다. 사랑하면서 사는 자는 많은 사람을 얻게 됩니다.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며, 사람 얻는 것이 재산이요 축복입니다. 사랑하면 좋은 인맥을 가지게 됩니다. 사랑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넓은 마음 포용력 넓은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긍휼, 자비, 불쌍히 여겨주심, 오래 참으심, 은혜로우심, 인자하심이 풍부하심, 노하기를 더디하심, 지키시고, 도와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선한 목자,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않으심, 용서하시는 하나님 등 다양하게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둘째 아들 탕자의 비유는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가르쳐줍니다. 아버지 집에서 떠나간 아들, 망한 아들 가난해진 아들, 허랑방탕한 죄를 짓고 실패한 아들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돌아왔을 때 기뻐하고 잔치하는 아버지의 넓은 사랑 하나님의 넓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넓은 사랑은 죄지은 자, 망한 자, 실패한 자 까지도 사랑하시고, 포용하시고, 사랑하는 넓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탕자같은 삶을 살았는데 우리를 사랑하시고 품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구원 받을 자격 없는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의 넓은 사랑 으로 선택 받고 구원 받은 자입니다. 호세아가 음란한 여자 고멜을 사랑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죄가운데 음란하게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과 벗되어 살던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삶이 변합니다. 사랑은 감동을 줍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하면 감동을 주고 사람들이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게 됩니다. 사랑의 리더십은 관계의 리더십입니다. 사랑이 제일이고 최고의 리더십 관계의 비결입니다. 사랑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이기고 승리합니다. 사랑은 아픔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고 고통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면서 산다면 승리자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사랑하면서 사는 자는 사랑받고 존경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은 넓은 사랑을 가지신 선한 목자 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사랑 넓은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참된 예수님의 제자의 증거는 ‘서로 사랑하는 자’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누구나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자까지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사랑이 전부이고 지혜이고 능력이고 리더십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넓은 사랑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책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버리시거나 미워하시지 않습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연약을 아시는 하나님, 우리가 약하여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마음 아파하시면서 사랑하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 똑똑하고 성공하는 자녀만 사랑하지 않고 못난 자녀 실패한 자녀, 병든 자녀를 가슴 아파하면서 늘 생각하며 사랑하게 됩니다. 성경 전체의 중심은 하나님의 넓은 사랑이십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전 세계를 통치하십니다. 사랑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약점이 많아도 내 모습 이대로 받아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질 속성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미워하는 것, 죄짓는 것을 안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해서 징계하시고 고난을 주어 연단시키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고난과 시험도 감당할만한 고난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이 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고 힘들 때 불평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마귀는 싫어 하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뜨겁게 사랑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누면서 사는 삶입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2-05-31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
    사랑의 리더십 사랑이 제일입니다.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이 중요한 것을 아는데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사랑은 성령충만의 열매입니다. 성령충만해야 사랑하게 됩니다. 리더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사랑이 많은 리더가 좋은 리더입니다. 사랑의 리더십이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사랑으로 무슨 일을 하면 부작용이 적고 열매가 좋게 맺힙니다. 사랑의 리더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이 지혜요, 능력이요, 리더십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 받고 싶어합니다. 사랑해 주는 자를 좋아하고 따르게 됩니다. 사랑이 인간관계를 잘 되게 합니다. 미움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미움을 가진 리더는 무너지고 실패합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사랑의 리더십, 관계 리더십입니다. 사랑은 심는 것입니다. 사랑을 심어야 사랑을 거두게 됩니다. 누가 큰 자일까요? 사랑이 많아 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사랑의 리더십이 최고의 리더십입니다. 사랑은 좋은 영향력을 주고 감동을 줍니다. 사랑하면 이해합니다. 대화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줍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섬김, 대접 받으면 기쁘고 행복합니다. 사랑하면 후회가 없게 되고,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면 후회하게 됩니다. 사랑이 식어진 시대입니다. 인간은 사랑에 목말라 합니다. 사랑 받기만 바라지말고 내가 먼저 사랑하는 것이 삶의 지혜, 관계의 지혜입니다. 사랑이 많은 리더는 사랑하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리더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사랑하면서 사는 사랑의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는 지혜자이고 미워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리더십으로 좋은 영향을 주셨습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2-05-17
  • [양대식 목사] 관계의 리더십
    국제 외교 관계 나라와 나라의 외교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외교관계가 잘 되어야 나라가 발전하게 됩니다. 정치 외교 관계가 잘 되어야 합니다. 다른 나라와 관계가 좋으면 많은 혜택과 유익이 있습니다. 선진국과의 좋은 관계는 좋은 영향을 받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실력 있는 대사, 외교관은 언어를 잘 구사하고, 지적 인격적 실력이 있고, 뛰어난 관계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국제 관계, 외교 관계가 잘 되면 수출, 수입을 잘하게 되어 경제에 큰 유익이 됩니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입니다. 영어는 필수입니다. 영어 공부를 하여 국제 외교에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세계 각 나라의 언어를 잘 구사하는 인재들을 영입하여 좋은 국제 관계가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국제 관계, 나라와의 관계에서 서로 주고 받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국제 외교관계가 잘 되려면 탁월한 리더가 있어야 하며, 지혜로운 정치가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국제 관계에서 신용을 쌓고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신뢰를 얻는 길은 정직과 투명성입니다.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국방, 경제, 외교가 튼튼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이기적이거나 욕심을 부리고 비상식적이면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다른 나라의 어려움을 살피고 도와주는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국제 외교 관계를 과감하게 확장시켜야 합니다. 국제관계에서 성공하려면 나라의 지도자가 지혜가 있어야 하며, 다른 나라의 지도자와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국제 외교 관계가 깨지면 나라가 큰 위기, 손실을 보게 됩니다. 국제 외교 관계가 잘 되면 도움 받게 되고 나라가 부강하게 됩니다. 국제 관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국제 관계, 나라와의 관계를 위해 기도하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국제 관계가 잘 되면 선교사님들이 선교하는데도 유익합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2-05-03
  • [양대식 목사] 친구관계 / 인간관계
    친구관계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친구는 있으나 마음 터놓고 믿고 말하는 관계는 적습니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관계는 불안합니다. 인간은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좋은 친구 관계, 우정의 관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요나단과 다윗은 좋은 우정, 친구의 관계가 잘 유지 되었습니다. 서로 욕심 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 우정의 관계였습니다. 다윗이 힘들 때 요나단이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친구 관계가 깨지지 않고 오래 가는 친구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진짜 친구 관계는 관계의 위기가 올 때 잘 이겨내며, 끝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가짜 친구 관계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익이 없다면 멀리하고 관계를 끊어 버리게 됩니다. 친구 관계도 아슬아슬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손해 볼 줄 알며, 서로 간에 배려심이 있을 때 관계가 유지됩니다. 가까운 친구 관계라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때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어느 정도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친구 간에 금전 거래는 가능하면 하지 않아야 관계가 깨지지 않습니다. 도와주고 싶으면 도와주고, 기대하지 말고, 잊어야 합니다. 지속적인 관계, 대화가 있어야 친구 관계가 유지됩니다. 관계를 세우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드나 깨어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너무 자주 전화하거나 연락하면 가벼워 보이거나 실수도 할 수 있으니 적절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것도 친구 관계의 지혜입니다. 친구관계도 시기 질투 할 수 있기에 늘 겸손해야 하며 지나친 자 기 자랑 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좋은 친구관계는 외로움을 이기게 되며 서로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됩니다. 좋은 친구관계를 위해 기도하며, 조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친구가 있다면 행복입니다. 서로 신뢰를 얻고, 약속을 지켜야 하며,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참된 친구는 예수님 이십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면 좋은 영향을 받고 좋지 않은 친구를 만나면 나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좋은 친구의 만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관계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모르는 자입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고통, 스트레스가 가장 큽니다. 누구든지 인간관계에 자신이 있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는 위기의 연속입니다. 인관관계가 힘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얽힌 관계가 풀리고 관계가 유지됩니다. 인간관계 잘하는 비결은 너무나 많기에 답이 없습니다.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해 나가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잘 되는 것 보다 깨지기가 더 쉽습니다. 말 한 마디, 감정, 표현, 행동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관계가 깨지기도 합니다. 성경은 인간관계의 지혜에 대하여 많이 가르쳐 줍니다. 성경에서 관계의 지혜를 찾고 적용해야 합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약하고, 두려움이 많고, 소심합니다. 걱정이 많습니다. 아픔, 상처, 배반당함, 질병, 경제적 고통, 갈등 등 수많은 고난 을 당하고 사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나그네, 질 그릇, 풀 같은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라 해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면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담대하게 도전 하고 해야 할 말을 하고 담대하게 인간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인간관계는 지혜가 많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인간은 인정받고 싶어 하기에 인정해 주고 격려 해 주어야 합니다. 명예를 구하는 인간이기에 명예를 주어야 하고 잘한 자들과 수고한 자들에게 상주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지적하고 책망하기 보다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는 사랑의 마음이 관계를 세웁니다. 인간의 죄성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죄인이고 죄성을 가진 자이기에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죄성이 있기에 욕심이 있고 이기적입니다. 욕심 부리고,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인간임을 알고, 인간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줄이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유익을 쫓아서 사는 인생입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야 인간관계가 좋아집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이지만 마음이 흔들 리고 생각이 복잡하게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약함을 알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지나치게 따지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논쟁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넓은 마음으로 받아 주고 속상해도 하나님께 맡기고 인간을 대할 때 인간관계가 유지됩니다. 인간은 선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기에 상대방에게 선을 행할 기회를 주는 것도 관계의 지혜입니다. 인간관계는 삶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를 결정 짓게 됩니다. 관계가 좋으면 큰 문제도 덮어 주게 되고 관계가 깨지면 작은 문제도 크게 만드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관계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2-04-20
  • [양대식 목사] 관계의 리더십
    부모와 자녀 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가까운 관계인데 깨어지기도 하고 상처 주거나 상처받기도 합니다. 부모에게 상처 많이 받은 자녀는 마음에 쓴 뿌리가 있으며, 증오심으로 가득 차 사회생활, 직장생활 등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자가 됩니다. 인격이 삐뚤어지고 반항하는 성품을 가지게 됩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과 훈계의 균형을 가지고 신앙과 인격 교육을 잘해야 합니다. 자녀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을 갈 때는 부모가 사랑의 마음으로 징계도 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 앞에서 삶의 본이 되어야 부모와 자녀 관계가 잘 유지됩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가 깨어져 불행한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고 해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자녀를 편애하지 말아야 하며, 재산 문제, 유산 주는 문제 때문에 자녀들 간에 관계가 깨지기 쉽기 때문에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유산 분배 문제도 지혜롭게 잘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귀히 여겨주어야 합니다. 혹시 부모가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다고 해도 부모님을 멸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는 자녀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아집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좋아야 삶이 행복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노 엽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님의 삶의 형편을 잘 파악하여 도와주고 힘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 은혜를 보답하려고 하는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관계가 깨지면 삶에 기쁨이 없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좋은 관계는 삶의 행복의 비결이요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서로 간에 기대를 줄이고 마음을 비우고 사랑의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형제 자매 관계 피를 나눈 형제 자매 관계도 깨지게 됩니다. 모든 관계는 위험이 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꿈을 꾼 요셉을 시기 질투하여 구덩이에 던지고 애굽에 팔아 넘겼습니다. 형제가 좋으나 형제 관계도 위험합니다. 형제는 위급할 때 도와주기도 하는 좋은관계입니다. 관계가 좋으면 서로 도우면서 살아갑니다. 형제끼리 관계가 깨져서 원수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산 때문에 관계가 깨어져 원수가 되고 고소하기도 합니다. 형제 관계는 가족관계입니다. 가족관계가 잘 된 가정이 복된 가정입니다. 형제 관계라해도 주고 받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한쪽에서만 계속 주고 한쪽에서 받기만 바라면 관계가 깨집니다. 형제 관계에서 결혼한 형제들의 부인이 중요합니다. 좋지 못한 부인을 만난 형제는 관계가 깨지기 쉽습니다. 형제 자매의 부인이나 남편을 잘 만나야 형제 자매 관계가 잘됩니다. 누님이나 매형, 동서, 매제 관계는 형제 자매 관계인데 좋은 관계여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형제 자매 관계가 나빠서 남들보다 못한 관계이기도 합니다. 서로 관심가지고 꾸준히 연락해야 합니다. 경조사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도와주기도 해야 합니다. 잘되고 성공해도 겸손해야 하며 형제 자매간의 우애가 있어야 합니다. 따뜻한 마음과 사랑은 형제 관계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형제, 자매 관계가 좋은 것이 정상입니다. 깨어진 형제 관계가 있다면 회복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갈등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야곱이 보낸 선물을 받고 에서의 마음이 부드러워 졌습니다. 선물을 주는 지혜는 관계를 회복 시키기도 합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2-04-05
  • [양대식 목사] 관계의 리더십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 고부간의 갈등이 많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가 좋아야 가정이 편안합니다. 과거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이 많아서 고부간의 갈등이 많았습니다. 고부간에 관계가 깨지면 고통이 커집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고 며느리의 실수, 부족을 눈감아 주어야 합니다. 요즘은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 보면서 사는 시대입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격려해 주고 부족한 점이 보이면 상처 받지 않게 부드럽게 대화해야 합니다. 서로간의 나쁜 감정이 커지지 않도록 지혜롭게 해결해야 합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며느리라면 서로의 힘든 상황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독립하여 따로 살면서 서로 보살피면서 사는 것도 하나의 지혜입니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며느리와의 관계가 좋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고부간의 좋은 관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재정문제로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재정관리도 잘해야 합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이해해 주고 섬겨야 합니다. 부모공경의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쉽게 속상해하는 심리를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나이가 든 시어머니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약합니다. 서운한 감정을 쉽게 가지게 됩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형편이라면 상황을 잘 받아 들이고 적응해야 관계가 유지 됩니다. 따로 산다면 자주 찾아 뵙고 인사하며 전화해야 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가 쉽지 않습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미워질 때 ‘시’자들어가는 것이 다 싫다해서 시금치도 안먹고 시편을 읽지 않는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볼 때 자신의 아들을 섬기고 손주, 손녀를 키우고 살림 하느라고 수고하는 며느리의 힘든 환경을 이해하고, 도움이 되고,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며느리는 나의 남편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감사의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힘이 드나 지혜롭게 잘하면 관계가 깨지지 않게 됩니다. 서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해야 관계가 잘 됩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2-03-22
  • [양대식 목사] 관계의 리더십
    목사와 성도의 관계 목사와 성도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지혜로운 목사와 성도는 서로의 관계를 귀하게 여기고 좋은 관계 맺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합니다. 목사와 성도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양은 목자 없이는 방황하게 됩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갈 때 양은 안전합니다. 목사는 성도를 사랑하고 올바른 믿음의 길로 성도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목사는 성도를 가르치고, 인도하고, 보호할 때 성도와 관계가 좋아집니다. 성도는 목사의 말씀에 순종하면 행복해지며, 목사와 관계가 좋아집니다. 목사와 성도의 관계가 좋아지면 삶이 행복하고 교회 생활이 즐겁습니다. 관계가 좋으면 말씀을 잘 듣게 됨으로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관계가 깨어져 말씀을 듣지 않으면 시험에 들고 넘어지게 되며, 믿음이 식어지게 됩니다. 목사와의 관계가 깨지면 교회를 떠나게 되고 교회생활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병들게 됩니다. 목사와 성도의 관계가 좋으면 신앙생활, 가정 교회생활이 행복합니다. 사탄 마귀는 여러 가지 이유로 목사와 성도 사이를 이간시켜 관계를 깨트립니다. 지혜자는 목사와 성도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관계가 깨어졌다면 기도하고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양인 성도는 양으로 족해야 하며 목자인 목사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행복한 관계가 됩니다. 목사는 성도를 사랑하고 말씀을 잘 준비 하여 영의 양식을 주어야 합니다. 성도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기도해주고, 포용해주어야 합니다. 성도는 목사를 귀히 여기고, 섬기고, 순종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목사의 협력자가 되어야 하고, 목사의 허물을 덮어주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선교사와 파송교회와의 관계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파송하면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 할 때 기도하고 신중하게 파송해야 합니다. 선교의 소명이 분명하고 신뢰가 되는 선교사를 파송해야 합니다. 파송했으면 재정적 후원을 잘 해 주고 기도도 많이 해 주어야 합니다. 파송 받은 선교사는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해준 교회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선교지에서 최선을 다해 선교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선교 보고도 해야 합니다. 선교사는 진실해야 합니다. 선교사는 파송해준 교회와 담임목사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관계가 깨지면 도움 받기 힘들고 심지어 선교사 중단, 후원이 중단되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선교사는 파송교회, 담임목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파송 받은 선교사는 파송해준 교회와 담임목사, 선교부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재정 관리를 투명하게 하여 실수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파송교회가 선교사들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고 선교사역을 잘 하도록 기도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파송 받은 선교사는 파송해 준 교회와 담임목사, 선교부 몰래 파송교회 성도들과 은밀히 개인 접촉을 하여 금품을 요구하거나 재정 관계에 엮이지 않아야 합니다. 파송 교회 성도에게 무엇인가 무리하게 요구하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중에 파송교회가 알게 되면 관계가 깨지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채워 주심을 믿고 믿음으로 지혜 있게 선교해야 합니다. 파송 교회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성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선교사는 인간관계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선교사와 파송 교회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언제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2-03-08
  • 행복 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6)
    하나님의 사람이 모인 곳에 복이 있다. 은혜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왜냐하면 가시적으로 은혜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의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생활이 한결같이 복됩니다. 하나님께도 잘하지만 사람들에게도 잘합니다. 우리가 긴 신앙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을 한 가지라도 한 것이 있다면 인생의 역경을 만났을 때 “하나님, 옛날에 제가 행한 그 일을 기억하셔서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원합니다. 이 역경 또한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담대한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복된 이유는 이들에게는 이전에 신실하게 은혜로 다가오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무슨 일을 만나든 신실하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은혜 받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주님이 주신 비전을 품고 있기 때문에 역경이 닥쳐와도 세상 사람처럼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다시금 은혜의 자리로 돌아와 주님께 매달립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꿈을 가진 자는 아무리 어려움이 오더라도 넘어지거나 포기하지 않으며, 주님이 주신 꿈 때문에 때로는 밟히고 눌림을 당해도 절대 소중한 인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참으로 건강하고 그 교회는 부흥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을 몰고 오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경북 의성에 있는 어떤 교회에 집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해는 너무 가물어서 마늘밭, 고추밭, 사과밭이 모두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과수원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가물어서 열매가 전부 시들시들해져 상품이 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교회에 기도를 선포하셨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비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도 들으시고 비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을 비를 달라고 기도하는 기도주간으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온 교인들이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마치는 날 하나님께서 소낙비를 내려주셨는데 그 교회 교인들이 사는 그곳에만 내려 주신 것입니다. 교인들이 다른 곳을 가보니 땅에 먼지만 나고 어디에도 비가 내린 곳이 없더랍니다. 여기저기를 다 돌아보아도 자기 교인들의 과일 밭에만 비를 주셨지 다른 곳에는 한군데도 비를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 교인들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사 믿겨지지 않는 기적적인 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엘리야가 비 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면 비가 오지 않았고, 비를 달라고 기도하면 비가 내렸습니다. 이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이란 이처럼 복이 보장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은혜’란 절대적인 것입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새 차라 할지라도 기름이 떨어지면 그 차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고철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믿는 사람에게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게 부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능력 있는 사람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의 은혜에 푹 젖어들어 있습니다. 약 100명의 자원하는 성도들과 함께 철야기도회를 40일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은혜로 인하여 육신이 피곤한 줄도 모릅니다. 어떤 때에는 두세 시간 밖에 자지 못해도 피곤한 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 목사님이 저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연철’이 아니라 ‘강철’이라고 말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이렇게 유신을 뛰어넘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우리 장로님들은 저에게 “목사님 체력은 대관절 어떤 체력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우리 부목사님들이 저를 못 따라옵니다. 저는 심방을 하루에 많게는 25가정을 심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저역 10시까지 심방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남다르게 건강의 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지게에 짐을 지고 다녔고 보릿단과 볏단을 날랐으며 산 속 깊이 들어가서 장작을 해왔습니다. 또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직접 노를 저어가며 투망으로 고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이런 일들을 하면서 체력을 쌓아왔던 것 같습니다. 청년기에는 7년간 산에서 살면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그 곳에서 밤이나 낮이나 찬송을 부르고 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을 위해서 그런 시간들을 통해 건강한 체력을 만들어주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0-09-24
  • 행복콘서트[정연철 목사]복된 사람의 비결(5)
    하나님을 만나야 하늘 문이 열린다.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어 52년 동안이나 왕위를 지킨 행운아입니다. 역대하 26장을 보면 웃시야 왕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국력을 든든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라도 상당히 부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은 말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채 온갖 교만과 불순종으로 가득 찬 인생으로 전락했습니다. 제사장만이 분향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다 나병에 걸려 비참하게 말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부름받은 이사야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깨닫게 됐습니다. 첫 번째로 깨달은 것은 우선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부정부패로 썩어져 가는 사회를 돌아보면 살 소망이 없어집니다. 진실 되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려움에 처하고, 힘 있고 돈 많은 부정한 자들이 큰 소리를 치는 시대가 돼 가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바라보며 “하나님, 어찌하여 이런 불의 한 자들을 이대로 두십니까?”라는 한탄의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을 보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웃시야의 죽음을 통하여 이사야는 교만한 자의 말로가 어떠한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한때 존귀한 위치에서 크게 쓰임 받았어도 교만해지면 하나님이 버리신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섭리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인생들은 시편 49편 20절의 말씀대로 “존귀하나 멸망하는 짐승”과도 같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52년 장기 집권하던 왕이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자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가 분명히 살아 있음을 믿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공의로 다스리시며 치료하실 것을 깊이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두 번째로 깨달은 것은 인생의 허무함입니다. 52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리며 굳건한 왕위를 지켰던 웃시야 왕이지만 하나님이 버리시자 순식간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이사야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인생의 허무’를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을 한 발짝 귀에서 잠시 돌아보면, 인간의 삶이란 것이 사실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길어야 80년 남짓 살다 가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런 허무한 인생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정립돼야만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정립됐을 때에는 존경받는 인생으로 평가받게 되지만,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살다 간 인생은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초대 왕 사울이 자만과 죄악 속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윗이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기도한 내용은 하나님의 성령을 거두어가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기도한 이유는 그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도 제법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이 참으로 보잘것없다는 것을 더 깊이 절간하고 있습니다. 이 긴 목회의 여정 속에서 참으로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여러 어려운 고비 때마다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 날 저는 제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20년 동안 한 교회에서만 목회를 하다 보니 그야말로 저는 탈진 상태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부산의 모 교회에서 교사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부흥회를 마치고 집에 갈 때는 엉금엉금 기어갈 정도로 영육이 메마른 상태를 지나온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메마른 풀과 같은 저의 영혼과 육신에 힘을 주시옵소서. 저의 영혼과 육신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셔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새 힘을 달라고 주님께 매달리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그 어는 누구라도 우리 인생을 쓸데없이 버려진 메마른 풀과도 같은 존재로 전락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쓸데없다 하시고 버리시면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 오피니언
    • 논문/책
    2020-09-04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