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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6)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천국을 준비하시고, 재림하십니다. 우리의 편이 되시어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하지 않으시고 나를 위하여 모든 것 행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죄성, 이기심은 나를 위하여 사는 이기주의적인 삶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아낌없이 주게 됩니다.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고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정죄하지 않으시고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다시 사신 예수님입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동기가 사랑이십니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마무리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사랑으로 이깁니다. 사랑은 승리의 열쇠입니다. 어떤 것도, 어느 누구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해서 부르시고 선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과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약하여 범죄 했을 때 사단 마귀가 하나님께 참소한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자녀의 사랑의 관계를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 변하지 않으시는 신실한 사랑입니다.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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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7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6)
    하나님을 아는 자는 사랑한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미움은 사단에게 속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아는 자는 사랑하면서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사랑하지 못하며 미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알고 거듭난 자, 은혜받은 자는 사랑의 중요성을 알고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것이 미워하는 것보다 더 쉽고 즐겁습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고 하나님 자녀의 삶은 사랑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거짓말하는 것이고 거짓 된 신앙인격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의 사랑은 지식적으로만 아는 사랑이 아니고, 마음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사랑, 실천하는 사랑,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거짓 사랑이요 위선입니다. 잘 가르치고 설교를 잘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위선이요 가짜입니다. 참된 사랑은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에 옮기는 사랑입니다. 리더는 사랑의 불을 붙여주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미움은 살인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요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미움은 사망이요 사랑은 생명입니다. 사랑은 자신도 살고 남고 살리는 생명 사역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는 자요 미워하 는 자는 어둠에 있는 자입니다. 말세는 사랑이 식어진다 예수님은 말세의 여러 가지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말세는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예언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이루어집니다. 미움으로 가득차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말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이 없습니다. 냉정하고 마음이 따뜻하지 못합니다. 말세는 자 기를 사랑합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말세는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이 식어지고, 세상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합니다. 이기주의 자신만 사랑할 때 삶이 삭막해지고 관계가 깨어집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사람들이 사납고 악합니다. 정죄하고, 고소하고, 죽이는 일까지 행합니다. 사랑이 식어진 가정과 교회는 행복하지 못 합니다. 사랑이 부흥과 화목, 행복의 열쇠가 됩니다. 말세의 징조, 사랑이 식어진 시대에 첫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령 받아 사랑의 열매 맺고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삶, 미움이 가득 찬 삶은 잘못된 영, 악령의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이단의 특징 중의 하나가 악하고, 사납고, 거짓되고, 미움이 가득하고, 사랑이 없습니다. 이단의 잘못된 점을 알고 빠져 나올려고 할 때 협박합니다. 만물의 마지막때, 말세에 정신 차리고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말세에 적극적으로 더욱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 열쇠입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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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27
  • 행복 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6)
    하나님의 사람이 모인 곳에 복이 있다. 은혜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왜냐하면 가시적으로 은혜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의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생활이 한결같이 복됩니다. 하나님께도 잘하지만 사람들에게도 잘합니다. 우리가 긴 신앙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을 한 가지라도 한 것이 있다면 인생의 역경을 만났을 때 “하나님, 옛날에 제가 행한 그 일을 기억하셔서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원합니다. 이 역경 또한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담대한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복된 이유는 이들에게는 이전에 신실하게 은혜로 다가오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무슨 일을 만나든 신실하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은혜 받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주님이 주신 비전을 품고 있기 때문에 역경이 닥쳐와도 세상 사람처럼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다시금 은혜의 자리로 돌아와 주님께 매달립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꿈을 가진 자는 아무리 어려움이 오더라도 넘어지거나 포기하지 않으며, 주님이 주신 꿈 때문에 때로는 밟히고 눌림을 당해도 절대 소중한 인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참으로 건강하고 그 교회는 부흥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을 몰고 오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경북 의성에 있는 어떤 교회에 집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해는 너무 가물어서 마늘밭, 고추밭, 사과밭이 모두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과수원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가물어서 열매가 전부 시들시들해져 상품이 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교회에 기도를 선포하셨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비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도 들으시고 비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을 비를 달라고 기도하는 기도주간으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온 교인들이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마치는 날 하나님께서 소낙비를 내려주셨는데 그 교회 교인들이 사는 그곳에만 내려 주신 것입니다. 교인들이 다른 곳을 가보니 땅에 먼지만 나고 어디에도 비가 내린 곳이 없더랍니다. 여기저기를 다 돌아보아도 자기 교인들의 과일 밭에만 비를 주셨지 다른 곳에는 한군데도 비를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 교인들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사 믿겨지지 않는 기적적인 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엘리야가 비 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면 비가 오지 않았고, 비를 달라고 기도하면 비가 내렸습니다. 이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이란 이처럼 복이 보장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은혜’란 절대적인 것입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새 차라 할지라도 기름이 떨어지면 그 차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고철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믿는 사람에게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게 부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능력 있는 사람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의 은혜에 푹 젖어들어 있습니다. 약 100명의 자원하는 성도들과 함께 철야기도회를 40일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은혜로 인하여 육신이 피곤한 줄도 모릅니다. 어떤 때에는 두세 시간 밖에 자지 못해도 피곤한 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 목사님이 저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연철’이 아니라 ‘강철’이라고 말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이렇게 유신을 뛰어넘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우리 장로님들은 저에게 “목사님 체력은 대관절 어떤 체력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우리 부목사님들이 저를 못 따라옵니다. 저는 심방을 하루에 많게는 25가정을 심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저역 10시까지 심방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남다르게 건강의 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지게에 짐을 지고 다녔고 보릿단과 볏단을 날랐으며 산 속 깊이 들어가서 장작을 해왔습니다. 또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직접 노를 저어가며 투망으로 고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이런 일들을 하면서 체력을 쌓아왔던 것 같습니다. 청년기에는 7년간 산에서 살면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그 곳에서 밤이나 낮이나 찬송을 부르고 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을 위해서 그런 시간들을 통해 건강한 체력을 만들어주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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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4
  • 행복콘서트[정연철 목사]복된 사람의 비결(5)
    하나님을 만나야 하늘 문이 열린다.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어 52년 동안이나 왕위를 지킨 행운아입니다. 역대하 26장을 보면 웃시야 왕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국력을 든든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라도 상당히 부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은 말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채 온갖 교만과 불순종으로 가득 찬 인생으로 전락했습니다. 제사장만이 분향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다 나병에 걸려 비참하게 말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부름받은 이사야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깨닫게 됐습니다. 첫 번째로 깨달은 것은 우선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부정부패로 썩어져 가는 사회를 돌아보면 살 소망이 없어집니다. 진실 되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려움에 처하고, 힘 있고 돈 많은 부정한 자들이 큰 소리를 치는 시대가 돼 가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바라보며 “하나님, 어찌하여 이런 불의 한 자들을 이대로 두십니까?”라는 한탄의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을 보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웃시야의 죽음을 통하여 이사야는 교만한 자의 말로가 어떠한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한때 존귀한 위치에서 크게 쓰임 받았어도 교만해지면 하나님이 버리신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섭리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인생들은 시편 49편 20절의 말씀대로 “존귀하나 멸망하는 짐승”과도 같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52년 장기 집권하던 왕이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자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가 분명히 살아 있음을 믿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공의로 다스리시며 치료하실 것을 깊이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두 번째로 깨달은 것은 인생의 허무함입니다. 52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리며 굳건한 왕위를 지켰던 웃시야 왕이지만 하나님이 버리시자 순식간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이사야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인생의 허무’를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을 한 발짝 귀에서 잠시 돌아보면, 인간의 삶이란 것이 사실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길어야 80년 남짓 살다 가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런 허무한 인생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정립돼야만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정립됐을 때에는 존경받는 인생으로 평가받게 되지만,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살다 간 인생은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초대 왕 사울이 자만과 죄악 속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윗이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기도한 내용은 하나님의 성령을 거두어가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기도한 이유는 그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도 제법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이 참으로 보잘것없다는 것을 더 깊이 절간하고 있습니다. 이 긴 목회의 여정 속에서 참으로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여러 어려운 고비 때마다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 날 저는 제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20년 동안 한 교회에서만 목회를 하다 보니 그야말로 저는 탈진 상태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부산의 모 교회에서 교사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부흥회를 마치고 집에 갈 때는 엉금엉금 기어갈 정도로 영육이 메마른 상태를 지나온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메마른 풀과 같은 저의 영혼과 육신에 힘을 주시옵소서. 저의 영혼과 육신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셔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새 힘을 달라고 주님께 매달리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그 어는 누구라도 우리 인생을 쓸데없이 버려진 메마른 풀과도 같은 존재로 전락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쓸데없다 하시고 버리시면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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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4
  • 행복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4)
    예수 그리스도, 하늘 문을 여는 열쇠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아주 다정하게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 될 만큼 깊은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우연히 교회를 다니게 됐고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다 보니 둘의 관계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지 않던 친구는 섭섭한 마음도 들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화 나가는 친구를 불러서 섭섭한 마음을 내비치며 교회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이 몇 살에 돌아가셨냐?” 그랬더니 “몰라.”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설교를 몇 번이나 하셨냐?”, “예수님이 태어난 고향이 어디냐?”라고 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질문에 답변을 못하자 그 친구를 보면서 “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예수를 믿냐? 넌 진짜 예수쟁이가 아니구나! 그런데 무슨 이유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거냐?”하면서 희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인이 된 친구의 대답이 참 재미있습니다. “나는 교회 나간 지 얼마 안 돼서 예수님 고향도 모르지만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이 있어. 첫 번째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무엇인지를 알고, 세 번째는 나 자신이 변했다는 거야. 나 자신이 변했어. 너도 잘 알겠지만 3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술독에 빠졌던 사람이잖아. 그런데 이제는 술을 끊었어. 그리고 가족의 중요성을 알았고. 내 인생에서 정말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삶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어.” 친한 친구가 정말 그렇게 변화된 모습을 지켜보았기에 그는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성경을 남과 같이 몰라도, 예수님께서 몇 살에 세상을 떠나셨는지 몰라도, 예수님 고향이 어딘지 몰라도 그것이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 달라졌는가? 내가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교회에 나가더니 변화됐구나! 이런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어야만 그 사람이 정말 복음으로 변화된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 6장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이 나타납니다. 사실 이사야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 것은 바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습니다. 웃시야가 누구입니까? 바로 이사야 선지자와 사촌지간이 아니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는 웃시야 왕을 많이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의지했던 웃시야가 처음에는 선왕이었지만, 나중에는 사울처럼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예배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저 적당히 제물만 차려놓은 채,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은 잊은 채 통과의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웃시야는 나병에 걸려서 죽게 됩니다. 교만한 육체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에 결국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웃시야가 죽던 해’에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사야가 의지하던 세상의 모든 것이 허망하게 됐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배를 드렸을 때, 이사야는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부복하고 헌신된 마음으로 “나를 보내소서.”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여호와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진정한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마 이‘웃시야의 예배’와 같은 형식적인 예배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없이 적당히 종교적 안위를 얻기 위해 교회에 다니면서 참된 예배자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온전히 합한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면서 환도뼈가 부러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한 이후에도 자신의 아집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여러 번 실수를 거듭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이 얼마나 고집 센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변화되는 것이 어려운지를 야곱의 생애를 통해 성경은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성이 변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타고난 모습이 새로워지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제가 이런 변화의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저 역시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목사가 된 후에 성경을 보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나 자신을 변화시켜달라고 수도 없이 기도를 했지만 변화됐나 싶어 뒤를 돌아보면 변화된 모습이 별로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은 너무나 잘 압니다. 사람들은 “정 목사가 정말 달라졌어. 정말 예수를 믿는 목회자다워”라고 말하지만, 제가 저 자신을 가만히 보면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작은 것 하나 용서하지 못하고, 작은 것 하나 이해하지 못하며, 겉으로는 양보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양보할 줄 모르고, 내 속에 증오와 미움이 있는 것을 보면서 정말 달라지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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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0
  • 행복 콘서트[정연철 목사] 복된 사람의 비결(3)
    하늘 문을 여는 비결(2) 한나의 경우 마음의 아프믈 해결할 길이 없어서 성전에 나와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입술을 열어 기도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몸부림을 치며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다 보니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제사장이 와서 보니 한나가 얼굴이 불그스름해가지고 입술로 중얼중얼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임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한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술에 취했다고 하자 한나는 “나는 술 취한 것이 아닙니다. 내 원통함을 하나님 앞에 아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기도가 점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소리가 작아집니다. 기도 줄을 잡기 전에는 몸부림을 칩니다. 왜냐면 자꾸 다른 것이 생각나기 때문에 몸부림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더 크게 부르짖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흑암의 세력을 뚫고 나가려면 기도 소리가 지붕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옆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저 교회 이상하다.”라는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저는 개척하면서부터 성도들에게 통성기도를 시켰습니다. “주여!” 소리가 저 건너편에서는 “불이야, 불이야!”라는 소리로 들려서 사람들이 물 양동이를 들고 교회로 달려온 적도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한 것은 자기 자신을 죽인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 자체가 죽는 것이고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임 하나님을 움직이면 사람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어떤 분은 통성기도를 하면 귀를 막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오신 어떤 성도가 처음에는 그렇게 귀를 막았지만 나중에는 우리 보다도 더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온 사람들은 다른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을 잘 못합니다. 너무 조용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합니다. 엘리야가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기도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존 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그는 오직 하나님만 의존 했습니다. 우리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되겠나이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결과로 큰비가 내렸습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비가 내리는지라”(왕상18:45). 조그만 구름이 나중에는 큰비가 되어 내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은 마지막 절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46절). 여기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열기 위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능력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마차를 타고 달리는 달리는 사람보다도 앞서가서 이스라엘 궁전으로 들어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문제를 가지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문제만 해결해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인 응답도 있고 지체되는 응답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만 어떤 때는 기도해도 응답이 늦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뜻으로 기도 응답을 받을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머무르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기록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너에게 큰 것을 맡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큰 것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작은 것에 충성하지 못하면 큰 것에도 충성하지 못한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을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습관저긍로 기도해서는 곤란하며, 하나님과 나 사이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고 중심이 하나님께 고정된 기도가 절대적으로 요청됩니다.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는 그것은 응답인 줄로 믿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하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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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책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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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대식 목사] 사랑의리더십에 대하여(17)
    사랑의 사도 요한 사도 요한은 별명이 우레의 아들이었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질투심이 많고, 높아지고자 했으며, 사랑이 부족한 자였습니다. 예수님 가까이에서 말씀 듣던 요한이었습니다. 사랑의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사랑의 은혜에 감동 받아 사랑의 사도로 변화된 요한입니다. 요한 1서 4장에서 요한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정확하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한은 사랑의 사람으로 변하여 사랑을 전하는 사도였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노령의 나이에 항상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사랑에 대하여 가르치고, 설교했다고 합니다. 말로만 사랑을 외친 것이 아니고 자신도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하시며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실까요? 사랑이 중요하고 실제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고 서로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자들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면서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 믿는 자들이 갈등이 생기고 틀어지면 서로 해결하지 못하고 속으로 꽁하면서 미워하며, 복수하려고 합니다. 좁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좁으면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사랑의 마음은 넓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넓으면 사랑하게 되고 사람들을 품게 됩니다. 사랑의 사도로 변화된 사도 요한을 보면 우리도 사랑의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은혜 받고 말씀 듣고 성령 받으면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하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최고의 변화와 기적은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리더는 말 잘하는 자 보다 사랑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사랑의 리더, 사랑하는 교사, 사랑의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면서 사는 자가 가장 매력이 있고 잘 사는 자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 살면서 소금과 빛이 되어 선한 영향을 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유혹의 광장입니다.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에 빠지면 죄짓게 되고, 유혹에 넘어가고, 시험에 듭니다. 세상은 사탄 마귀가 활동하는 무대입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 쾌락과 돈,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시험과 유혹에 넘어져 죄짓게 되고 믿음이 약해집니다.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근심하게 됩니다. 세상 유행 문화 풍조를 따라가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오락 취미에 빠져 하나님 섬기지 아니하고 예배드리지 않으면 믿음이 식어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 세상에 취하여 하나님을 멀리하면 세상이 우상이 됩니다. 세상은 화려해 보이고 우리에게 성공을 줄 것처럼 유혹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다 보면 망하게 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평안과 믿음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힘이 되십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여 끊임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은 언젠가는 무너지고 세상의 것은 헛된 것입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다가 바울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믿음이 식어졌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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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1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6)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천국을 준비하시고, 재림하십니다. 우리의 편이 되시어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하지 않으시고 나를 위하여 모든 것 행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죄성, 이기심은 나를 위하여 사는 이기주의적인 삶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아낌없이 주게 됩니다.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고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정죄하지 않으시고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다시 사신 예수님입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동기가 사랑이십니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마무리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사랑으로 이깁니다. 사랑은 승리의 열쇠입니다. 어떤 것도, 어느 누구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해서 부르시고 선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과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약하여 범죄 했을 때 사단 마귀가 하나님께 참소한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자녀의 사랑의 관계를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 변하지 않으시는 신실한 사랑입니다.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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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7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5)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생각이 중요합니다. 생각이 악하면 악인이고 생각이 선하면 의인입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좋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좋은 생각을 하게 되면 좋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는 악을 싫어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립니다. 악은 죄요 죄는 관계를 깨트립니다. 악을 생각하는 자가 리더가 되면 공동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사랑의 리더는 선을 추구하고 선한 것을 생각합니다. 선한 것을 생각하고, 선한 것을 말하고 행동하게 되니 관계가 잘 됩니다. 악의 소속은 사단이고 선의 소속은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해야 합니다. 사랑을 가진 자는 선한 것만 생각하기에 지혜 자입니다. 사랑이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는 악한 생각을 조절 합니다. 미워하는 악의 생각을 버리고 사랑하는 선한 생각을 합니다. 사랑의 사람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좋은 것을 생각하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좋은 것을 생각할 때 좋은 열매 맺게 됩니다. 사 랑하면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의로우십니다. 말씀이 진리이고 의로운 말씀입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는 마음이 온유하면서 불의, 죄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불의에 대하여는 NO 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죄가 있고 불의합니다. 세상은 정의가 없고 불의함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싫어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진리는 예수님, 말씀, 진실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는 진실, 공의, 정의를 추구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불의를 멀리하며, 진리를 구하는 리더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리더입니다. 사랑이 없고 불의를 행하며, 진실, 진리를 버리는 자가 리더가 되면 공동체는 무너지게 됩니다. 리더가 누구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불의, 거짓을 기뻐하는 리더는 타락한 리더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불의와 거짓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의와 진리, 진실은 오래가며 관계를 세우는 지혜입니다. 리더는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 가운데서 진실해야 합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이 최고의 지혜요 리더십입니다. 사랑이 능력이요, 영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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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07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4)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말세는 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주의자가 많은 시대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는 시대입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이기심이 관계를 깨뜨립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는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추구합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많지 않습니다. 이기심은 무지요, 불신앙이요, 어리석음입니다. 이기주의자가 리더가 되면 공동체가 무너집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시고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좋은 리더는 남을 배려하고 헌신과 희생, 사랑이 넘치는 리더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불신앙이요 어리석음입니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자는 성숙한 자요 지혜자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자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입니다. 욕심 부리는 자입니다. 리더는 사랑의 마음으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의 마음 가진 자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고 섬기면 좋은 관계가 됩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면 누구나 다 싫어하고 관계가 깨지며 좋은 리더가 되지 못합니다. 인정받고 신뢰받는 리더는 사랑의 마음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자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의 삶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유익하게 해주는 삶 전체이셨습니다. 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합니다. 희생 헌신하는 자가 어리석은 자가 아니고 지혜자입니다.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하면 성내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는 분노를 다스립니다. 화내고 성내다가 관계가 깨집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성내지 않습니다. 성을 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열 번 잘하다가 한번 화내고 성내면 이미지가 나빠지고 관계가 깨집니다. 사랑의 리더는 분노의 감정을 다스립니다. 마음에 분노가 가득할 때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의의 분노, 죄가 없는 분노, 거룩한 분노,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는 분노입니다. 인간의 분노는 죄성을 가진 분노입니다. 미움의 마음을 가지면 혈기 부리고 분노하게 됩니다. 분노가 커지면 크게 싸우게 되고 문제가 커집니다.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살인하기도 합니다. 사랑은 삶은 문제, 사고를 예방합니다. 미움은 분쟁을 일으키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미움의 마음을 가지면 싸우게 되고 관계가 깨집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좋게 보고 좋게 생각하기에 성내지 않고 혈기 부리지 않게 됩니다. 사랑은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는 힘입니다. 사랑의 마음은 상대방에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사랑은 선한 마음 가지고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날마다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리더는 사랑이 많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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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3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3)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의 하나님은 겸손하십니다. 모든 것을 가진, 전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겸손하십니다. 교만이 없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교만하지 않으셨습니다. 교만한 자를 책망하신 예수님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는 우유부단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자, 교만한 자는 말씀으로 책망하고 충고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책망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책망하고 충고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교만하지 않고 겸손합니다. 사랑이 없고 미움으로 가득 찬 사람이 교만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자는 교만을 버리고 언제나 겸손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면서 사는 자는 언제나 겸손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사랑의 리더는 교만을 멀리하고 언제나 겸손합니다. 교만하면 관계가 깨지고 겸손하면 관계가 세워집니다. 교만은 미움이요 어리석음입니다. 겸손은 사랑이요 지혜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겸손하게 사는 자는 사랑 받고 축복받게 됩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 사랑하면 교만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 겸손하신 예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사랑하면 무례히 행동하지 않습니다. 남을 미워하면 함부로 행동하고 예의가 없습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이 있으면 예의가 있습니다. 무례하지 않고 예의가 있어야 관계가 좋아집니다. 무례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좋은 리더는 사랑의 마음으로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무례히 행함은 질서 없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는 질서를 귀히 여기고 질서를 지킵니다. 리더가 질서가 없으면 리더십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따르지 않습니다. 가까운 관계에서도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가까운 사이라고 무례히 행하다가 상처 주고 관계가 깨집니다. 가정에서의 가족관계, 친한 친구 관계에서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부모, 자녀, 부부관계에서도 무례하게 함부로 행동하다가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무례한 말, 행동이 쌓이면 폭발하게 됩니다. 사랑은 행동이 신사적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이 말하는 내용, 행동을 지켜봅니다. 무례한 말, 행동을 하게 되면 인간관계는 순간 깨지게 됩니다. 관계가 아슬 아슬 합니다. 무례한 삶이 관계를 깨뜨립니다. 사랑하면 무례히 행동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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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1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2)
    오래 참고 사랑하면 인내하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에 오래참고 양육합니다. 사랑하기에 오래 참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지 않고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을 향해 오래 참으십니다. 사랑하기에 참으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십니다. 사랑하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인내가 없으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성숙해질 때까지 오래 참으십니다. 만약에 하나님께 참으시지 않고 우리가 죄짓고 실수할 때마다 정죄하시고 심판하셨다면 우리가 성장하거나 성숙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적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우리의 믿음이 커질 때까지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죄성이 있어서 인격이 비뚤어졌고 미성숙하며 자주 넘어집니다. 우리가 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오래 참고 기다리심으로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 닮는 성숙한 자가 됨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인격이 성숙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하나님께서 나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셨습니다. 오래 참으시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인내합니다. 부모의 자녀 사랑은 뜨겁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에 자녀에 대해 오래 참고 기다립니다. 수십 년을 아니 평생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에 대해 오래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하기에 지루하다 느끼지 않고 참아줍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인내이며 오래 참으심 입니다. 극심한 십자가의 고통은 10분도 참기 힘든데 6시간의 극심한 고통을 십자가 위에서 오래 참으셨습니다. 인내의 사랑으로 구원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아줄 수 있습니다. 너무 조급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고 기다려주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오래 참고 기다려주다 보면 변화된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은 감정을 다스리며 쉽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오래 참는 사랑, 인내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오래 참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온유하며 사랑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포근합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최고 듣기 좋은 말입니다.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가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사는 복된 자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온유하십니다. 우리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해주십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온유하십니다. 사랑하면 온유하고 사랑받는 자도 온유해집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하며 사는 자는 사납지 않고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인간은 사랑을 받으면 순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자는 온유해집니다. 온유한 자는 다투거나 부딪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는 온유함으로 좋은 관계를 만듭니다. 온유는 겸손입니다.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은 언제나 겸손합니다. 사랑으로 온유, 겸손한 자는 누구나 다 좋아합니다. 온유는 친절입니다. 사랑은 친절입니다. 사랑이 없는 자는 불친절 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는 사람을 대할 때 짜증 내지 않고 친절합니다. 친절한 삶이 사랑의 삶입니다. 사랑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을 대할 때 사랑으로 친절하게 대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위로, 돌보심, 지키심, 격려의 말씀은 사랑의 하나님의 친절입니다. 사랑하면 친절하게 됩니다. 리더는 온유하고 친절한 사랑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친절은 인간관계의 지혜입니다. 사랑하면 온유합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며 사는 삶이 복 받는 비결입니다. 시기하지 아니하며 인간은 누구나 시기 질투심이 있습니다. 시기, 질투는 자신을 망하게 만듭니다. 마음이 좁고 욕심이 많은 자가 시기, 질투심이 많습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는 다른 사람이 축복받고 잘 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지 않습니다. 남이 잘 될 때 기뻐하고 축복하는 마음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시기 질투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될 때 기뻐하시고 잘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 넓은 마음입니다. 좋은 리더는 사랑의 마음으로 시기, 질투 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에 시기하지 않습니다. 형제는 형제가 잘 될 때 시기 질투합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을 때 형제들이 시기 질투 했습니다. 시기, 질투하는 리더는 무너지고 실패합니다. 사울 임금은 시기, 질투심을 가지고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망했습니다. 시기, 질투는 죄이고 어리석음입니다. 시기, 질투는 미움이고 관계를 깨뜨립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은 축복해 주는 선한 마음, 넓은 마음입니다. 리더는 시기, 질투 버리고 넓은 마음으로 축복해 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차 시기, 질투 하지 않았습니다. 큰 자는 시기심이 없고 마음이 넓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자입니다. 시기, 질투는 영육을 병들게 하고 삶을 실패로 이끌어 갑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친구 관계에서 서로 시기, 질투하면 참된 친구가 아닙니다 자랑하지 아니하며 인간은 누구나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자랑하는 것도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상대방이 고난당하고 어려운데 내가 지나치게 자랑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불편하고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다른 사람이 좋은 일이 있어 자랑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자랑함으로써 사람들을 낙심시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칭찬하거나 자랑해 주면 덕이 될 수 있으나 내가 나에 대해 자랑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나의 약함을 자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자랑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세계의 주인, 부요의 하나님이신데 자랑하지 않으시고 겸손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려는 마음을 절제하고 겸손히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에 대해 자랑은 절제하나 다른 사람이 자랑 할 때는 들어주고, 기뻐해 주고, 칭찬하는 마음이 사랑의 마음을 가진 리더, 넓은 마음 가진 자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겸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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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책
    2022-10-19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1)
    사랑이 제일이다. 성경은 ‘사랑이 제일이다. 지혜가 제일이다.’ 라고 가르쳐 줍니다. 제일이다는 의미는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삶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지혜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자는 지혜자이고 지혜자는 사랑하면서 사는 자입니다. 사랑이 지혜입니다. 사랑과 지혜는 인간관계의 열쇠, 성공의 열쇠입니다. 사랑이 있고 지혜가 있으면 어디에서나 사랑받고 인정받게 됩니다. 사랑의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성경 말씀입니다. 율법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사랑이 행복의 열쇠, 건강의 비결입니다. 사랑은 회복의 능력, 치유의 능력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 기적과 부흥 역사가 일어납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자는 지혜자입니다. 사랑하면 이해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서 이해해줍니다. 모든 문제는 사랑 부족, 이해 부족으로 오는 오해에서 시작됩니다. 사랑하면 존중해 주고 귀히 여깁니다. 차별하지 않고 인격을 귀히 여겨 줍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힘이 납니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서 기도해 주고 격려 칭찬해 줄 때 힘이 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격려해 줄 때 다른 사람이 힘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면 알면서도 어떤 때는 모르는 척 합니다. 상대방의 실수 허물을 눈감아 주고 덮어줍니다. 사랑하면 때로는 해야 할 말을 용기 있게 말합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보면 사랑의 마음으로 단 둘이 있을 때 가르치고 충고해 줍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르치고 충고하면 깨닫고 고마워하게 됩니다. 인간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는지 느끼고 알게 됩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고 미움의 마음으로 행하면 문제가 일어나고 관계가 깨집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식사하실 때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죄인들까지 사랑하시고 죄인들과 식사하면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사랑이 제일인 것을 알고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지혜자입니다. 사랑으로 행할 때 열매 맺히고 결과가 아름답게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방언을 하고, 말을 잘하고, 예언을 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식이 있고, 인물이 좋고, 설교를 잘해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 오래 다니고, 믿음이 좋다고 말하고 다녀도 사랑이 없으면 헛된 것입니다. 사랑이 행복이요, 성공입니다. 사랑이 없는 것은 불행이요, 실패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감동을 주지 못하고, 열매가 없게 됩니다. 사랑이 있고, 말 잘하고, 가르치기를 잘해야 의미가 있고 효과가 나타납니다. 사람은 무엇을 잘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자를 좋아합니다. 사랑이 지혜이고, 리더십입니다. 사랑이 많은 자가 영향을 많이 끼치고 사랑이 없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르치고 설교하면 감동을 주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랑이 최고의 기술이고 예술입니다. 사람은 영적 존재이기에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어느 정도 압니다. 사랑하면 사랑 받게 됩니다. 사랑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아가페의 사랑,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대상을 넓혀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면 사랑의 폭, 관계의 폭이 작아집니다. 만나는 사람,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지혜입니다. 사랑으로 행하여 원수가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 참 사랑의 지혜입니다. 인생의 삶에 원수가 없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자녀들을 교육해야 하며, 가정에서도 사랑이 넘쳐야 천국 같은 가정이 됩니다. 사랑이 부족한 리더는 좋은 리더가 아닙니다. 사랑이 제일이고 최고로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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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책
    2022-10-05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0
    사랑과 미움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자주 바뀝니다. 사랑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면 관계가 좋아지고 미워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사랑하면 행복해지고 미워하면 불행해집니다. 사랑과 미움은 대조적이며 결과는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사랑하면서 사는 자는 자신이 먼저 기쁘고 감사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얻게 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부드럽고 말이 부드럽게 됩니다. 남을 미워하면 마음에 기쁨이 없게 됩니다. 미워하게 되면 마음이 거칠고 언어가 거칠게 됩니다 미움은 살인의 시작입니다. 미움으로 가득찬 리더가 있다면 공동체가 분열되고 무너지게 됩니다. 사랑의 삶을 사는 자는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게 마무리 됩니다. 미움과 시기로 가득 차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닌 사울의 마지막은 비참하게 끝이 났습니다. 사랑의 가족, 공동체 교회 공동체가 축복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사랑이 교회 성장의 비결입니다. 서로 미워하면 갈등이 일어나고, 분열되고, 다투고, 싸우게 되어 공동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이냐, 사단이 주는 미움의 마음이냐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넓은 마음입니다. 미움은 죄성이고 시기 질투입니다. 천국은 사랑만 있고 영원히 사랑하면서 사는 나라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미운 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편애하지 말고 골고루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가운데서 용납하라 사랑은 용납하는 것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는 것이 넉넉한 사랑입니다.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주는 마음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죄인들까지 품으시고 받아주는 사랑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를 초청하시고 예수님께로 오면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시는 사랑의 예수님이십니다. 믿음 약한 자, 의심하는 자, 죄짓고 방황하는 자를 용납하고 받아주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은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편견을 갖지 말고, 편애하지 말고, 인종차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자임을 알고 귀히 여기고 받아주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은 받아줍니다. 용납합 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용납하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인간은 무시당하고 배척당할 때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단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나 사람들은 받아주고 용납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올 때 받아주고 용납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교회 문턱을 낮추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올 때 환영해 주고, 받아주고, 용납해 주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은 넓은 마음, 인간의 영혼을 귀히 여기고 용납하고 받아주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인간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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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책
    2022-09-23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9)
    사랑은 갈등해결의 지혜 인생의 삶은 갈등의 연속입니다. 갈등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사소한 것이 원인이 되어 갈등이 일어납니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고통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갈등이 해결됩니다. 사랑은 갈등해결의 지혜요 열쇠입니다. 사랑이 부족하고 미움이 있을 때 갈등이 시작되고 갈등이 커지게 됩니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관계가 깨지고 관계가 깨지면 불행해집니다. 사랑은 갈등을 치유하는 능력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갈등의 이유를 덮어버리게 됩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이 문제가 되어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랑은 지혜요, 능력입니다. 사랑의 능력으로 갈등이 해결됩니다. 갈등이 해결되면 화목하게 되고 좋은 관계가 유지됩니다. 삶의 기쁨과 평안은 좋은 관계에 있습니다. 사랑으로 갈등을 치유하고, 갈등을 예방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자가 사랑의 리더입니다. 좋은 리더의 기준은 사랑의 마음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화목을 만드는 자입니다. 사랑의 마음, 사랑의 동기로 행하는 리더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의 지혜로 갈등을 해결하는 자가 행복한 리더입니다. 리더가 행복하면 리더를 따르는 자들이 행복하고 공동체가 행복해집니다. 리더는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해결하기도 합니다. 사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리더가 좋은 리더입니다.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덕을 세워야 갈등이 줄어들고 해결됩니다. 믿음에 덕을 세워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자는 어디에서나 덕을 세웁니다. 덕을 세우지 않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사랑은 죄를 덮는다 죄, 허물이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사랑하면 허다한 허물을 덮어 버립니다. 남의 허물, 죄를 들추어내서 문제를 만드는 자는 사랑이 없는 자입니다. 사랑은 소경이 되게 합니다. Love is Blind 인간관계에서 사랑이 있으면 사람의 단점을 안보고 장점을 보게 됩니다. 누구나 단점이 있고 장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덮어 주고,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고, 기억도 안하시는 사랑의 예수님이십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선한 마음 가진 자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사랑의 마음은 복 받을 마음입니다. 노아의 아들 가운데 셈과 야벳은 아버지 노아의 실수 허물을 보고 덮어 주었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좋은 자세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죄와 허물을 덮어 준 셈과 야벳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허물과 죄를 들추어내고 폭로했던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리더는 남의 죄와 허물을 들추어 내지 않고 덮어 주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덮어 주는 자가 많지 않습니다. 미움의 마음으로 사람들의 죄, 허물을 확대하고 폭로하여 부끄럼을 당하게 하고 큰 상처를 주는 자가 있습니다. 나 자신도 죄와 허물이 많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남의 허물을 덮어 주는 포용력과 사랑의 마음을 가져 야 합니다. 말세 시대는 사랑이 식어지 시대이기에 종말의식을 가지고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데 미지근하지 말고 열정, 열심, 적극적으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나 혼자만 사랑하는 짝사랑이 아니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관계가 좋아집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삶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사랑으로 허물을 덮어 줄 때 가정과 공동체, 교회가 살아 움직이고 작은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면 후회 하지 않게 됩니다. 미워하면 후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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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8)
    사랑의 지혜 사랑하는 것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인간관계가 깨집니다. 지나친 사랑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관심을 주는 것은 좋은데 지나친 관심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사랑하는 데도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밀고 당기는 지혜입니다. 이중성품, 거짓 된 자, 성품이 까다로운 자를 사랑해야 하는데 힘듭니다. 거짓되고 성품이 까다로운 자를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아야 하나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의 지혜입니다. 너무 소외시키지는 않아야 하나 사랑의 마음으로 지혜 있게 대처해야 합니다. 진실 되고 성품 좋은 자는 조금만 사랑을 주어도 고마워하고 관계가 좋아집니다. 나쁜 사람은 문제를 만들고 좋은 사람은 문제를 덮어버리고 해결하는 자입니다. 사랑이 없고 상처 많은 자를 사랑해야 하나 지혜롭게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한 자들, 상처 받은 자들이 피해 의식을 가지고 사랑할 줄 모르며 사랑을 주는 자들에 대해서도 오해하게 됩니다. 문제 요소가 많은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를 대할 때 사랑의 지혜로 대해 주어야 상처를 덜 받게 됩니다. 사랑은 상처를 회복시키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데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랑을 주면 상대방도 내게 사랑을 주겠지 하는 기대감을 버리는 것이 사랑의 지혜입니다. 기대하지 않고, 사랑하고, 베풀고, 섬기는 것이 사랑의 지혜입니다. 어디에서나 나를 좋아하는 자가 있고 싫어하는 자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자를 생각하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랑하며 사는 삶이 사랑의 지혜입니다. 좋은 사람은 언제나 좋게 해석하고 인격, 성품을 가진 자입니다. 좋은 사람을 사랑하여 관계가 더 두텁게 하는 것이 사랑의 지혜입니다. 사랑은 지혜이고 예술입니다. 사랑하는데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데 지나친 무관심은 버리고 지나친 사랑은 사랑받는 자가 사랑의 소중함을 잊을 수 있기에 사랑의 균형을 맞추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전화 잘 안하다가 가끔 전화하면 고마워하는데 너무 자주 전화하면 가볍게 여기고 고마움을 모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랑은 인간을 대하는 관계인데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복음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사랑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의롭다 하시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전능하시다는 것을 부활하심으로서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고, 내가 너를 사랑해서 부활했다고 증거를 나타내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 되어 우리를 실망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약속대로 부활하셔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사랑의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사랑의 대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사랑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생각할 때,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사랑의 복음, 살리는 복음입니다. 사랑은 살리고 세우는 지혜요, 능력입니다. 누가 능력 있는 자입니까? 사랑하면서 사는 자, 사랑의 복음을 전하면서 사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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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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